하데스와 루시퍼 01 written by. 91레이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신을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기도에 한창인 사람들.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주님! 울부짖기도 한다. '행복 기도원' 슬그머니 눈을 뜬 백현의 시야에 벽에 걸린 팻말이 들어온다. 나무에 홈을 내 쓰여 진 글씨다. 행복. 여기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백현은 제 오른쪽을 봤다. 십자가를 향해 두 손을 뻗은 양부모가 보인다. 흐느끼고 있다. 이번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조된 목소리로 기도를 주도하는 목사 겸 원장이 보인다. 끔찍이도 닮았네. 백현이 눈썹을 찌푸렸다.
오늘은 연기할 기분이 못됐다. 그래서 눈 감고 있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신과의 교감에 푹 빠진 기도원 사람들이 한 눈 파는 저를 눈치 챌 리도 없으니 과감히 행동하기로 했다. 아, 손 저려. 백현이 가지런히 모으고 있던 손을 내렸다. 표정은 건조하게 식어있다. 양부모도 있고 원장님도 있고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그게 잘 안 됐다. 달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방과 후 기도써클에서 열심히 대표기도를 하고 있던 그 때였다. 웅- 웅- 핸드폰이 울렸다. 기도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미간을 좁히자 백현은 당황했다. 대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종료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어머니' 발신자 표시에 두 눈이 커다래졌다. 이 여자가 웬일이지. 한 달에 한 번 전화 올까말까 한 대상이었다. 백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껐다. 다시 핸드폰을 켰을 땐 하교 길이었고 10통이 넘는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백현이 갑갑한 표정을 했다. 모두 기도원 사람들에게 온 메시지였다. 백현은 양부모에게서 온 메시지부터 살폈다. 대체 이 여자가 무슨 바람이 들어 전화를 한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하, 헛웃음이 나온다. 단체문자였다. 뭘 기대한 거야.
[ 여러분 기도합시다. 원장님 아들 찬열군 아시죠? 위대한 복음을 설파하기 위해 제 3세계에서 1년간 선교활동에 매진하던 찬열군이 며칠 뒤면 한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7시 행복 기도원. ]
백현이 힘 빠진 손가락을 움직여 나머지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중엔 양부모에게서 온 메시지가 한 통 더 있었다.
[ 집 들리지 말고 기도원으로 바로 오렴. ]
*
모데라토 보통 빠르기로 아다지오 매우 느리게 프레스토 매우 빠르게! 백현은 속으로 중얼대며 걷는 속도를 조정했다. 고개는 앞을 향해 있었지만 힐끗대는 눈동자가 저를 따라오는 남자를 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 대체 누굴까. 기도원을 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오며 제 뒤에 바싹 따라 붙고 있다. 처음엔 설마 했지만 발 템포를 조정해보니 저를 따라오는 게 확실했다. 장난 좀 쳐봐? 백현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저를 따라오는 정체불명의 남자에 대해 찝찝한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겠지만 백현은 오히려 신이 났다. 학교 기도써클 집 또는 학교 기도써클 기도원. 수녀님이 따로 없는 지루한 루트를 반복하는 게 백현의 일상이었다. 기독교 가정에 입양 되 모범생으로, 착실한 양아들로, 믿음 충만한 신자로 조용히 살아왔지만 사실 그는 재미없게 사는 건 딱 질색인 자유영혼이다. 자유영혼. 좋은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랬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식 쟁이, 싸이코, 이중인격자에 가까웠다.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백현은 눈에 띄게 느리게 걸었다. 뒤따라오던 남자가 자신에 맞춰 걷는 속도를 낮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휘-휘- 휘파람을 그린다. 태평한 걸음과는 달리 백현의 두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디로 들어갈까. 재밌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데 사방이 구식건물 뿐이다. 저런 건물은 재미없는데. 일자형 복도에 계단뿐이겠지? 고음으로 치닫던 휘파람이 한풀 꺾인다. 그리고 백현이 휙, 빠르게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한눈에 봐도 낡은 건물. 곳곳에 금이 가 있고 페인트는 너덜너덜하다. 타다닥.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백현이 계단을 올랐다. 예상대로 건물구조는 단순했고 높이 또한 백현의 기대를 져 버렸다. 높이 높이 오르고 싶은데 4층이 끝이다. 아씨, 잘못 골랐네. 똥 밟은 표정을 한 백현이 계단 옆 복도 벽에 바짝 몸을 기댄다. 빨리 올라와라. 백현이 키득댔다. 워! 하고 놀래 킬 순간을 상상하며. 왠지 긴장되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초조히 카운트다운을 센다. 하나, 둘, 셋.
......음? 하나, 둘, 셋. 올라올 때가 됐는데? 백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 기다려?"
목 뒤에 느껴지는 인기척. 소리의 방향을 향해, 백현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악 시발 깜짝이야!"
백현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저를 따라오던 장신의 남자가 우뚝 서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백현이 우왕좌왕 위아래로 남자를 스캔한다. 보통 사람에 비해 확연히 까만 피부, 검은 머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까만 올 블랙 복장.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제 뒤에 있던 그 남자가 맞다. 남자는 여유로웠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백현을 귀엽다는 듯 내려다보는 그 얼굴엔 승자의 웃음이 걸려있었다.
"얌전한 줄만 알았는데 이런 장난도 칠 줄 아네?" "뭐, 뭐야 당신!" "욕도 할 줄 알고." "..................." "놀랐어."
누가 할 소리! 백현이 황당한 표정을 했다. 남자가 팔짱을 끼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까닥한다.
"왜 그런 얼굴을 해?"
걱정스레 찡그린 눈썹. 하지만 입 꼬리가 올라가 있다. 백현은 지는 기분을 느꼈다. 남자는 절대로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빤히 꿰뚫고 있다는 표정임에 분명하다.
"이정도로 놀라면 큰일인데⋯."
남자의 목소리는 걱정하는 건지 놀리겠다는 건지 애매했다. 키가 맞지 않아 턱을 들어 남자와 눈을 맞추던 백현이 고개를 내린다. 그리고 잠시 후 뭐가?, 눈만 올렸다. 톡 쏘는 목소리에 톡 쏘는 눈빛이다. 잠시 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더욱 단단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남자가 느릿느릿 말꼬리를 늘이며 백현에게 깍지 꼈다. 그러더니 손이 작네, 하고 백현의 손등에 키스했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뻔뻔해 백현은 뿌리치겠다는 생각 한 번 못해본 채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다. 대담하게 다가오는 남자의 무게에 밀려 백현의 등이 벽에 닿는다. 깍지 낀 손등도 벽에 붙었다. 키스할 듯 천천히 가까워지는 남자의 얼굴.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백현을 내려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기까지 1cm도 채 남지 않았다. 프스스 웃는 남자의 웃음이 백현의 얼굴에 닿는다.
"나 너 스토커야."
*
꿈을 꿨다. 아니, 꿈은 상상의 공간이니 자면서 과거를 봤다는 표현이 맞겠다. 1년 전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백현의 꿈속에 그대로 재현됐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툭툭 튀어나오는 고질적인 꿈이었다.
"백현아, 보고 싶을 거야."
찬열이 백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조물조물 만졌다. 백현은 가만히 찬열과 눈을 맞췄다. 처진 눈이 느리게 깜박인다. 1시간만 있으면 찬열이 떠난다는 사실이 믿길 것 같으면서도 안 믿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양부모에게 입양 온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찬열을 봐왔다. 찬열은 기도원 원장 부부의 하나 뿐인 아들이었다. 백현이 양부모를 따라 기도원에 갈 때면 늘 찬열이 교단 근처에 서 있었다. 어떤 날엔, 목사를 겸업하는 제 아버지를 대신해 성경 말씀을 강의할 때도 있었다. 백현은 늘 교단 위의 찬열을 올려 다 봤다. 정말 매일 매일.
그런 찬열이 1년간 해외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했다. 해외선교를 위해서. 세상 끝까지 성령이 전파 되어야 하는 데 아직 세상엔 하나님의 말씀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고 했다. 기도원 사람들은 찬열을 말렸다. 찬열이 가고자하는 나라가 분쟁지역이기도 했고, 또 선교사 피랍으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열은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떠나게 됐다.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 할 거예요. 믿음이 있다면 죽지 않아요.’ 위험한 선교를 말리는 기도원 사람들을 설득시킨 찬열의 말이었다. 그 말에, 기도원은 감동의 도가니가 됐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토록 충만할 줄이야!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행복 기도원의 슈퍼스타 박찬열이 떠나는 날, 바로 오늘.
"나 잊으면 안 돼."
찬열이 백현의 등을 쓸었다. 백현에게서 대답이 없자, 알겠지? 하고 생긋 웃는다. 백현이 끄덕였다. 어떻게 잊겠는가. 잊고 싶어도 못 잊을 사람이다. 찬열의 바람대로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 라운지에 우뚝 서있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보니 슬슬 찬열이 입국장에 들어가야 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 봐, 늦겠다."
오늘 처음으로 백현이 먼저 꺼낸 말이다. 힐끔 시계를 쳐다본 찬열이 씁쓰름하게 웃으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런 찬열을, 기도원 사람들 쪽을 향해 백현이 돌려 세운다.
"너 간다고 다들 오셨는데 나하고만 인사하면 서운해 하셔. 인사드리고 가."
백현이 찬열을 밀었다. 찬열의 긴 몸이 앞으로 갸우뚱 한다. 하지만 곧 균형을 잡고 휘적휘적 사람들 틈바구니 속을 향해 걸어갔다. 찬열이 걸어오자, 사람들은 환호하며 준비된 현수막을 흔들어댔다. ‘새 세상을 열고 돌아올 하나님의 아들 박찬열.’ ‘주 영광 만국에 뿌리리.’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곱씹은 백현이 겨우 웃음을 참는다. 어째서 이렇게 열광하는 건지, 그놈의 새 세상이 뭐 길래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뭔가 하늘의 세계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내세가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천국에 가겠다고 이 난리를 떠는 기도원 사람들이 백현에겐 이상하게 느껴졌다. 찬열군!,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슈퍼스타를 부르짖는 양부모 또한. 백현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열정이다. 아줌마 대체 왜 우는 거예요? 백현은 정말 묻고 싶었다.
기도원 사람들과 찬열이 나눈 마지막 시간은 짧았다. 3분도 채 안 됐을 거다. 몸 건강하세요, 늘 기도하세요, 주님만을 바라보세요. 상투적인 인사를 끝으로 찬열이 백현에게로 다시 걸어왔다. 그리고 대뜸 제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백현에게 걸었다. 어? 백현이 큰 눈을 하자 내 분신, 찬열이 말했다.
"다녀올게." "........." "나를 위해 기도해줘."
낮고 자상한 목소리에, 백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톡톡 백현의 어깨를 두드리는 걸 끝으로, 찬열이 입국장에 들어갔다.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는 찬열의 뒷모습을 백현도, 백현의 양부모도, 원장 부부도, 다른 모든 기도원 사람들도 숨죽여 지켜봤다. 그리고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진 순간, ‘기도합시다!’ 누군가 선동하는 외침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고개가 밑으로 훅 꺾였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금세 기도에 빠진 사람들. 찬열을 위해 기도하는 게 틀림없다.
백현은 한 박자가 느렸다. 기계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기도에 잠긴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던 찬열의 마지막 목소리가 떠올라 천천히 눈을 감는다. 해달라면 얼마든지. 백현이 두 손을 모아 소중히 꼭 잡는다. 주님,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는 시끄러운 공항소음에 쉽게 묻혔다. 백현운 기도했다. 순전히 찬열을 위해서.
"비행기가 추락하게 해주세요."
탁 트인 넓은 창문 너머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새파란 하늘을 향해 발사.
"부디 순교하시길 바래요."
구름 위로 비행기가 붕 떴다. 그 때부터 1년간, 십자가 목걸이는 백현의 목이 아닌 신발 밑창 아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박찬열의 분신. 백현은 한 발짝 한 발짝 꾹꾹 눌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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