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다각/현성] 랜덤 프로포즈 시즌2(Random Propose Season2) 부제 :: 로맨틱 프로젝트(Romantic Project) 07 w.달간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오지도 않은 잠을 품에안고 그렇게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아침. 넋이 나간 사람인 것처럼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우현은 상체를 일으켜 머리맡에 등을 기대며 고른 숨을 내뱉었다.
「우현아.」 「…….」 「조금만 더 기다려줘. 돌아갈게. 조금만, 나 좀 기다려줘.」
꿈. 꿈 속에서 성규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던 손을 쥐락펴락 해보는 우현. 정말 징하다. 꿈에 나올 정도로 내가 니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나보다 성규야.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 하려했던 우현은, 액정에 띄워진 부재중 전화에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듯 했다. 이게 뭔지, 의외의 이름이 액정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며칠동안 연락이 없던 성규. 새벽 4시 27분에 전화를 했던 흔적을 손에 들고있던 우현은 갑자기 두근거려오는 심장에 급히 부엌으로 나가 생수통을 꺼내들었다.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들이킨 우현은 다시 한번 성규의 이름을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성규야, 그 새벽에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한거니. 귀 옆에 살짝 갖다댄 휴대폰에서 열이 오르는 듯 하다. 우현은 신호음이 가는 순간순간마다 가슴이 저릿한 걸 느껴야했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뚝 끊어진 전화와 방바닥을 나뒹구는 휴대폰. 꺼져있다니, 나 화병나서 죽는꼴 보려고 이러는건가?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이를 악무는 우현. 일부러 꺼놓은것인지 아니면 배터리가 다 되서 저절로 꺼진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운한건 어쩔 수 없었다. 니가 자꾸 나를 피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잖아. 마른세수를 하며 거실로 나온다.
“…후우, 명수야.”
웬일로 고요한 숙소 분위기. 명수를 부르던 우현이 테이블 위에 딱 붙어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떼어 손에 쥐었다. 성열을 만나러 가야한다고 적혀있는 포스트잇. 허, 내가 이러는 와중에 너는 성열씨랑 붙어먹는다 이거구나. 왠지 모를 부러움으로 차오르는 가슴. 우현은 결국 또 한번 욕을 내뱉으며 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야 김성규!!!! 아침부터 목청 큰 사내의 목소리가 숙소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몇번 더 악을 지르던 우현은 헤집어진 뒷머리를 긁적이며 욕실로 들어갔다. 씻자, 일단 씻고나서 진정을 하든 대책을 세우든 하자.
*
「오늘의 주제는!! (빠밤) …아니 우현씨.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지긴 할까요? 영상편지 부탁드립니다. 패기있는 토크ㅅ….」
…저게 뭐야. 무료함과 나른함을 견디지 못하고 TV를 튼 호원은 빠르게, 그러나 심상치않은 내용을 담고있는 예고편에서 우현의 얼굴을 보고는 채널 돌리던 걸 멈추었다. 진지해보이는 분위기하며 마지막에 띄운 그 영상편지라는 말은 또 뭐란거지. 마음이 그닥 편하지는 않다. 이불을 툭툭 건드려보다가 결국 휴대폰을 꺼내든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성규에게 전화를 건다.
꺼져있는 휴대폰. 호원이 탐탁잖은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또 왜 휴대폰을 꺼놓고 난리야. 예고편 하나 때문에 예민해진 호원은 우현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해보다가 다시 한 번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 사이에 휴대폰을 다시 켰을지 누가 알아? 마른침을 삼키며 신호음에 귀를 기울이는 호원.
- 여보세요?
받았다. 작았지만, 또렷하게 들려온 성규의 목소리. 호원이 입꼬리를 당겨 씨익 웃고는 입을 떼었다. 나 이호원이야. 그 말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야 할 성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으음? 김성규, 나 이호원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하는 호원. 그리고 그제서야 아아…네. 하는 성규의 힘없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힘이 없다 못해 애절하고 슬프게 들리기까지 한다. 무슨 일은 남우현이 아니라 너한테 있는거냐 김성규? 호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규를 불렀다. 앞뒤 말 다 자르고 들어온 우현에게서 무슨 일이 생겼냐는 그 말. 저가 말을 할 때마다 대답이 없는 성규에 뭔가를 알아챈 호원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았다.
“너 요즘 남우현이랑 무슨 일 있지.” - ……없어요. “나한테 거짓말 안 통해. 무슨 일 있는거 맞잖아.” - 이호원씨.
괜히 넘겨짚지 마세요. 들리는 성규의 단호한 목소리에 호원이 당황해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맞으면서 무슨. 헛웃음만 맴도는 입가를 손등으로 스윽 훔친 호원이 성규에게 병원을 가르쳐주며 이리로 오라고 한다. 성규가 뭐라 대답할 틈도없이 뚝 끊어버린 전화. 찝찝한 기분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내가 지금 이런 와중에, 둘이서 또 골치 아프게 그러기야? 호원이 눈을 감으며 자리에 눕는다.
“호야, 과일 먹을래?”
불편한 저의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드는 그 목소리. 호원은 곧바로 상체를 일으켜야 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건 쟁반 위, 사과 몇개와 과도를 들고 서있는 동우. 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만 조금 전 성규와의 통화는 싹 다 지워져버렸다.
과일 깎을줄은 알아? 별로 무시하려고 했던 말은 아닌데, 동우의 부풀어오른 볼을 보고 호원은 잠시 당황해야했다. 과도를 손에 들고 손목을 까딱이던 동우가 그 예쁜 입술을 오물거리며 쫑알쫑알 말을 하기 시작한다. 호야가 뭘 모르네. 내가 얼마나 과일을 잘 깎는데? 그 말투마저 어린애 같아보여서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내는 호원. 동우가 의자를 끌어다 안고는 호원의 무릎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사과 하나를 집어들고 사과껍질을 이리저리 돌려 깎아 내려간다.
“어때 나 잘하지.” “어이구, 그거 잘해서 기분 좋으시겠어요.” “나 진짜 잘 하지않아? 호야호야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그래그래 잘 깎는다.” “히, 당연하지.” “근데 동우야. 너 회사에 들어오는 일도 많을텐데 자꾸 시간내서 나 간호 안해도,”
우읍. 호원의 말은 동우가 사과 조각을 입에 물림으로써 뚝 끊어져야 했다. 호야 자꾸 그런말 하지마 이건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거니까. 동우가 입술을 삐죽이며 시선을 떨군다. …진짜, 겁나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 호원이 알겠다며 동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따라 웃은 동우는 사과 한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으응? 왜 그렇게 봐 호야?” “…….”
…아아. 과즙 때문인지 촉촉히 젖어있는 동우의 입술을 멍하니 쳐다보는 호원. 곧, 혀로 입술을 할짝이며 고개를 기울이는 동우의 행동에 숨을 들이삼켰다. 지금 이게 무슨 짓,
“…….” “…너 뭐하는거야?” “아니이…뽀뽀 안한지 쫌 된거 같,”
입술에 닿은 촉감. 눈을 슬며시 감던 호원은 금세 입술을 떼고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놓으며 다소곳하게 자세를 고쳐잡는 동우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안한지 꽤 된것 같아서 이런 대담한 짓을 했어요 동우씨? 장난스레 웃던 호원이 동우가 들고있던 과도를 뺏어 쟁반위에 올려놓고 협탁위로 치운 후 동우의 허리를 잡아끌었다.
흐익! 호, 호야 뭐해! 당황한 동우가 고개를 들이미는 호원에 당황해하며 손바닥으로 호원의 입을 막고 밀어낸다. 호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뭐야, 뽀뽀 안한지 꽤 된 것 같다며? 호원의 말에 동우가 두 뺨을 붉히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그거야 그렇지만…호야 지금 환자잖아 응?
…아나. 동우의 말에 호원이 아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붙들고있던 허리를 놓아주었다.
“낫기만 해봐.” “어어?” “그땐 진짜 죽었어. 물고 빨고 마음대로 할거야.” “…으이이,”
부끄러운 듯 확 달아오른 동우의 뺨을 아프지않게 꼬집던 호원이 피식 웃으며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두눈을 질끈 감았다 뜬 동우가 괜히 팔소매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부끄러워?” “아니거든?”
하하하하. 한동안 병실 안에는 호원의 정직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심심하다.”
들뜨다가도, 지루해지는 얼굴표정에 애써 웃어보이던 명수가 몇시간째 입국게이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다. 성열과 커플아이템으로 맞추려고 샀던 페도라와 선글라스까지 갖추고 온 명수의 뒤로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성열의 입국취재를 위해 온 기자들도 보였고 ‘여리여리한 그대는 나만의 선녀’ 라는 플랜카드를 들고서 새벽부터 와 있던건지 꾸벅꾸벅 졸고있는 팬클럽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보였다.
그래도 역시 그 중에서 튀는건 당연히 자신이려나. 검은색 목도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선이 잘 빠진 바디라인과 적당히 큰 키에 사람들이 이따금씩 명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른 성열이 나와서 저를 꽈악 끌어안아 주기만을 기다리는 명수였다. 성열아 언제오니, 내가 줄게 너무 많다.
“무거워…….”
명수의 손에는 포장된 페도라와 선글라스, 그리고 저가 정성껏 쓴 노란색 편지가 들어있는 하늘색 상자와 함께 어젯밤 죽어라 구운 ‘L’ 모양의 쿠키상자가 같이 들려있었다. 팔 빠질 것 같다. 이게 이렇게나 무거울 줄이야. 명수가 표정을 구기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제 성열이 나올 시간이 됐는데…
“야야 여리오빠 나온다 나온다!”
한 팬이 무심코 외친 그말에, 명수의 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 듯 했다. 성열이가 나온다고? 자세를 똑바로 고쳐잡고 입국게이트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명수. 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명수의 마음을 알아챈 듯 서서히 열리는 게이트 문과, 동시에 터지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들.
“이성열씨, 세계적인 패션쇼에 서보신 소감은 어떠한가요?” “여리오빠!! 오빠아!!” “해외 런웨이를 밟아본건 처음이실텐데, 국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아, 지나갈게요.”
성열이다. 입국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달려드는 기자들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성열을 부르는 와중에 자신만 멍하니 서 있다. 명수는 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더니 익숙하게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어느덧 성열의 앞에 섰다. 으응?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명수가 꽤나 당황스러웠던 성열이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서서 놀란 얼굴로 명수를 쳐다보았다. 어? 인피니트 엘? 성열을 찍어대던 기자들이 이젠 명수까지 붙여 투샷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명수야….” “허, 뭐야 그 표정은. 헤어졌던 남친 다시 만나는 여친이세요?” “뭐라고? 너 진짜!” “됐고, 왔으면 얼른 해주지?” “뭐를.”
숨 막히도록 안아준다며. 성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한 명수는 상자를 든 채로 팔을 벌렸다. 성열이 피식 웃으며 명수에게 안긴다. 아주 짧고, 또 가벼운 포옹이었지만 둘은 그 사이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운 느낌. 등을 가볍게 토닥이던 성열이 명수와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기자들이 이게 웬 떡이냐며 손을 바쁘게 놀려댔고, 성열을 보러 온 팬들은 명수까지 볼 줄은 몰랐는지 하나같이 벙찐 얼굴이었다.
그리고 정신없는 와중에 용기있게 성열의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미는 한 기자. 성열씨, 엘씨와는 무슨 관계시죠? 그 질문에 당황한건 성열쪽이 아니라 명수쪽이었다. 아니 뭐 그런걸 물어보고 그러십니…
“아주 친한 절친이에요. 다들 모르셨죠?” “정말인가요 엘씨?” “아…네 그럼요. 제가 해외 다녀오면 성열이가 마중 나오기도 하고 뭐, 그런사이 입니다.”
명수가 성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씨익 웃었다. 성열도 따라 웃는다. 둘은 철저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 뭐 하나라도 걸려라하는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던 기사는 아쉬운 듯한 얼굴로 아 그러시군요. 하며 그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간다. 명수가 성열의 어깨를 주물주물 만지더니 어디 가고싶은데 있어? 하고 물으며 공항을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벤 문을 열어주자 성열이 생글생글 웃으며 벤에 오른다. 내심 거남에게서 벤을 빌려온 자신이 뿌듯해지는 명수였다.
“우리, 방송국 가면 안돼?” “어? 방송국?” “응. 나 갑자기 가고싶어졌어. 오랜만이니까.” “니가 원한다면야 뭐.”
명수가 시동을 걸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좋다, 그냥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성열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허밍을 한다. 몇달 전 우현이 활동했었던 후속곡 노래였다. 갑자기 드는 성규 생각에 명수가 시선을 내리깔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러다가 룸미러로 성열을 보니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한껏 들뜬 모양이다. 후우, 곧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으니까. 명수는 성규에 대한 얘기는 후에 꺼내기로 하고 공항을 벗어나 방송국으로 향했다.
*
“여기 되게 오랜만인거 알아?” “그렇긴 하지.” “어? 명수야 저기.” “으응? 뭐.” “저기 저분, 성규씨 아니야? 맞지?” “…….” “맞네 맞아. 성,”
방송국에 도착한 둘. 그리고 성열의 말에 잠시나마 움찔거렸던 명수. 로비 한 쪽에서 보이는 성규의 모습에 표정을 굳히던 명수는 성규를 부르려는 성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제 쪽으로 가깝게 당겨안았다. 성열이 뭐냐는 듯 명수를 보았고, 곧 굳은 얼굴로 성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 아…하며 몸에 힘을 풀고 고분고분 가만히 있는다.
로비 중앙으로 걸어나오는 성규의 옆에는 두준이 함께 있었다. 불안해 보이는 성규의 얼굴을 단번에 스캔한 명수가 자판기 옆으로 몸을 숨기며 스쳐지나가는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계속 혼자가도 된다며 괜찮다고 말하는 성규와 걱정되니 같이 가주겠다는 두준. 명수가 두준의 뒷통수를 노려보다가 자판기 앞으로 다시 나온다. 둘은 이미 방송국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뭐야, 성규씨 원래 검은 수트입고 다니지 않아? 귀에 리시버도 꽂는데. 오늘은 왠지 그냥 일반인 같아 보여.” “……성열아.” “으응?”
성규씨 따라 가자.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성열은 명수의 그 말에 왜? 하는 얼굴로 명수를 쳐다보았다. 일분 일초가 급한 명수는 대답도 하지않은 채 다짜고짜 성열의 팔을 잡아 끌었다. 혼자가도 된다는건 뭐고, 걱정되니까 같이 가주겠다는건 뭐야. 벤에 올라 또 한 번 시동을 거는 명수의 손이 미약하게 떨려왔다.
*
“……저 혼자 들어갈게요.” “괜찮겠어요?” “제가 뭐 다치는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그만 둔거라면서요. 윽박 지를수도 있는거고…만약에라도 손 댈,” “호원씨는 그런 분 아니에요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성규의 목소리가 병원 복도 바닥에 내려앉았다. 혼자서 심각한 두준을 뒤로한 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성규. 그 안에는 의자에 앉아 호원의 무릎위에 고개를 묻고 잠들어있는 동우와, 그런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있는 호원이 있었다. 고개를 돌린 호원이 주춤거리며 들어오는 성규를 보고는 살짝 웃으며 거기 앉아. 한다. 성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다 말해봐. 두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장난을 쳐대던 성규는 무거운 정적을 뚫고 들어온 호원의 말에 고개를 들어 호원을 쳐다보았다. 네? 뭘 다 말하라는…. 말 끝을 살짝 흘리자 호원이 무슨 일 있었는지 다 말하라며 목소리를 낮춘다. 곤란하다. 언젠가는 알아야 할 사실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말하기에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무섭다. 저를 보고있는 호원이.
“…저 보디가드 그만 뒀습니다.” “뭐?” “DJ 다시 하기로 했어요. 보디가드는 어제부터 그만 뒀어요.” “……왜 그만 뒀는데?”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려고 그랬어요. 보디가드를 하면서 DJ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현씨는,”
제가 옆에 없어도 다칠 일이 별로 없어요. 성규가 옅게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호원이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악 문다. 다칠 일이 별로 없다니. 웃기네 김성규. 호원은 곧장 협탁 위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들어 우현의 번호를 찍어내렸다. 성규가 그런 호원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다칠 일이 별로 없어? 이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보디가드를 그만 두다니. 그리고, 남우현이 지금 괜찮을거라 생각해? 분명 괜찮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우현이 빨리 전화를 받기를 바라는 호원이었다.
그리고 신호음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 여보세요. “남우현.” - ……왜. “지금, 괜찮냐? -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김성규 보디가드 관둔거, 괜찮냐고 너.”
스피커 폰으로 바꾼 호원 덕에 우현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던 성규는 우현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뭐에 찔리기라도 하듯 가슴이 죄여왔다. 우현이 목소리다. 별로 안 된 것 같은데 왜이리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지. 성규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저가 할말은 없으니까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걸 눈치챈 호원이 저를 보내주질 않는다. 어떤 말 하나로.
“이제 어쩔거냐.” - 뭘 어째. “김성규 말야. 그냥 이대로 지낼거야?” - 내가 그냥 지낼것 같아? “…….”
단호해진 우현의 목소리. 성규가 멈칫하고 멈춰서서 호원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성규의 작은 그 목소리에 호원이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어떻게 할건데? 지금 우현은 성규가 호원의 옆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아마 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내 옆에 데려다 놓을거야. “무슨 수로.” - 그건 무슨 방법으로 되는게 아니지. 그냥, 정신차려놓고 보면 성규가 내 옆에 있겠지. “…….” - 난 그래도 믿고있거든. “무엇을.” - 아직, 성규가 나 좋아한다는거.
그러니까 더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지금 형이랑 통화중인 지금도 나는 성규 생각 뿐이야. 아직 어떻게 하겠다하는 마땅한 방법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옆으로 올거야. 아니, 안 온다 할지라도 내가 오게 할거야. 김성규는 내 옆에 있어야 해. 나한테서 떨어져 있는거? 그 꼴 내가 못 봐. 절대 못 보지.
- 게다가 더블 DJ? …듣자하니 파트너도 남자던데. 그 분이랑 놀아나는 꼴은 더더욱 못 봐. “…그래, 알겠어. 어디 한 번 열심히 잡아봐.” - ……어, 끊을게.
뚝, 끊어진 통화.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문 채로 호원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는 성규. 호원이 성규를 보며 피식 웃는다. 유하게 풀린 얼굴과는 다르게 튀어나온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는 듯 성규를 푹푹 찔렀다.
“들었어? 이래도, 남우현이 다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 “지금 니 행동이 다치게 하고 있잖아.”
호원의 말에 성규는 대답이 없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끝내 대답을 회피한 성규는 다급하게 병실을 나갔다. 호원은 굳이 잡지 않았다. 저가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성규 본인의 판단까지 관여할 자격은 없으니까.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있는 동우를 내려다 보던 호원이 저도 몸을 뉘이며 눈을 감는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편이구나.
*
“……? 엘군? 성열씨?” “아아…성규씨.” “어, 성규씨 이분들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병실을 나온 성규는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저가 들어올때만 해도 혼자였던 두준의 앞에 명수와 성열이 서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명수와 성열은 똑같은 페도라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성열의 손에 들린 노란색 편지와 쿠키로 보이는 상자도 함께 보인다. 명수가 곤란한 얼굴로 성규를 보더니 잠깐 망설이다 물었다. 성규씨, 정말 다시 돌아올 생각 없어요? 그 물음에 성규가 또 한 번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성규의 대답은,
“방송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두준씨…….” “보아하니 성규씨는 DJ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자꾸 부담주지 마시죠.” “그 쪽이 성규씨라도 됩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 “표정이 말해주고 있잖아요. 싫어하는거 안 보이십니까?” “…….” “더이상 할말 없는걸로 알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요 성규씨.”
두준에게서 나왔다. 성규의 손을 잡은 두준은 어이없어하는 명수를 노려봐준 뒤 그대로 복도를 돌아 가버렸다. 호원의 병실 앞에 남은 명수와 성열. 그 중에서도 특히 명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 주먹을 꽉 쥐며 화를 참아보려다가 악을 지르며 복도 옆 벽을 발로 깐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씩씩거리니 성열이 당황한 듯 명수의 팔을 붙잡으며 진정하라고 한다. 오늘 입국한 저는 그동안의 상황을 몰랐으니 더 당황스러웠을 터.
“저 분 사람 꼭지 돌게 하네.” “……그럼 이제 성규씨 보디가드 안 해?”
물어오는 성열의 말에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게 할거야. 뒤이은 명수의 말에 성열이 응? 하는 얼굴로 명수를 본다. 우현이 형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거든. 꼭, 반드시. 돌아오게 해. 기다리다 보면, 성규씨는 자연스럽게 우현이형 옆으로 오게 될거야. 명수의 말에 성열이 으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우현은 그럴것이라고 확신하는 명수의 앞으로 성열이 손을 내민다.
“응?” “잡아줘. 지금 이 상황 때문에 머리 아프단 말야.”
성열이 칭얼거리며 손을 더 내밀었다. 명수가 성열의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살짝 잡으며 웃는다. 저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라도 행복하자.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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