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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냥 날 놓아주면 돼 05




한 달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그를 억지로 보냈다.


호텔의 새 부지를 알아보는 겸 그가 가고 남은 빈자리를 민비서가 채우고 있다.


앞으로 보름,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와 함께 보던 코펜하겐의 노을은 여전히 오묘한 빛깔을 냈고 매일 저녁 그와 이곳에 앉아 저 노을을 봤었다.


이젠 민비서가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민비서 그거 알아요? 내 말, 단 한 번도 이유 같은 거 물은적 없는 거.”


“이사님이 하시는 말씀이니까요.”


“근데 그런 민비서가 처음으로 못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나 그때 사실 민비서 말대로 하지말까, 고민도 했는데 그 사람이 너무 궁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궁금증은 해결 되셨습니까?"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한 것투성이에요. 내가 이렇게 호기심이 많았나? 가끔 그런 생각도 해."


"이사님도 그거 아십니까?"


"뭘?"


"이렇게 진심으로 웃는 거 처음 봅니다."


"그 사람이 그래. 나를 진심을 다해 웃게 만들어. 다 포기하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십니까?"


"물론."


"그럼 다행입니다."



민비서와 업무 외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대화를 하는 건 호텔 사업에 뛰어든 지난 3년 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무심했다.


아니, 나 자신 조차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삶이 우울하고 스스로를 불쌍하다 여기며 잡생각이 들지 않게 더욱이 일에 매진했다.


그런 나를 꿋꿋하게 지켜온 건 민비서였다.



"고마워요. 윤기씨보다 어린 상사, 고귀하게 모시느라 고생했어요."


"이사님께서 잘 이끌어 주신 덕분이죠.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이뤄 내시니까요. “


“내가 그랬어요?”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참, 윤기씨."


"네, 이사님."


"어차피 내가 더 어린데 이사님 말고 이름 한번만 불러 봐요."


"안됩니다."


"어?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그래도 안 됩니다."


"민비서, 실직자 되고 싶어?"


"제가 이사님을 어떻게."


"탄소야~하고 불러봐요. 나 한 번도 윤기씨가 내 이름 부르는 거 못 들어 봤단 말이에요."


"다음에……. 다음에 불러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후……. 탄소……. 이사님 도저히."


"뭐, 들은 걸로 할게요."



민비서는 처음 불러본다는 낯선 내 이름을 작게 말하고선 고개를 숙였다.


쑥스러워하는 게 함께한 지난 시간들 중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윤기씨.”


“저, 회사에서 전화가...”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에게 말하려던 차에 그의 핸드폰이 울리고 나도 그대 동시에 서로에게 입을 열었다.


그가 난감해 하다 이내 핸드폰을 뒤집곤 내게로 고개를 들었다.



“이사님 먼저 말씀하십시오.”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 봐요.”


"저 그럼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네, 다녀와요."



그가 가고 혼자 남아 지는 노을을 보다 눈을 감았다.


이 황홀경을 보는 것도 점점 끝이 난다.




*




김대표가 걱정 말라던 일들은 결국 사단이 났다.


해외 파파라치들을 신경 쓰지 못한 탓에 지난 한 달간 나와 그의 행적들이 낱낱이 들어났다.


지난밤 민비서가 받은 전화는 스캔들에 대한 소식을 전하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고 민비서는 급히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났다.


그와 함께한 한 달이 지나고 그와의 인연을 끝내기 위해 연락처를 지웠었다.


지난 밤 스캔들 때문인지 그에게서 연락이 계속 왔지만 받지 않았다.


부재중과 함께 쌓여가는 문자도 읽지 않았다.


민비서가 잘 정리해 나가리가, 김대표가 예쁘게 포장한 결혼발표 기사를 내리라 그렇게 믿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코펜하겐의 풍경 따위를 눈에 담았다.



-김대표님께서 해결하고 계시는데 김태형씨가 문제에요. 대표님 연락이 안 된다고 회사로 찾아오셨었어요.


민비서.”


-네.


“내 말 안 잊었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른척해요. 만나주지도 말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천진난만했던 모습들이, 그의 웃음들이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든 애정이었다.


처음부터 예견된 이별이었고 언젠가 끝을 맺어야 했던 일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이별 준비를 했다. 결국 각자가 가야했던 결론에 맞닿았으니까.



-왜 이제야 전화 받아요.


“스캔들은 잘 해결되고 있어. 그러니까 연락 안 된다고 찾지 마. 약속했잖아. 너도 나도 이제 각자 갈길 가자고,”


-이사님은 그게 그렇게 쉬워요?


“네가 네 입으로 그랬어. 남준오빠랑 나, 결혼 허락한다고. 돌아가면 결혼 기사 나올 거야. 바빠서 긴 얘기는 못해.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난 후회해요.


“김태형씨. 진심보다 더 특별한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돈으로 이뤄진 약속이 그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일방적인 통화종료로 내 귓가에는 뚜- 뚜- 뚜-하는 수화 음만 들릴 뿐.


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을 잡다하게 펼쳐보였다.


차라리 나쁜 인연으로 쉽게 잊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김변호사님 잘 지내셨죠. 스캔들 때문에 바쁜 거 아는데, 지난번에 부탁드린 일.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 주셨으면 해서요. 그리고 할아버지랑 아버지께는 아무 말 하지 마시고요.”




*




호텔 일도 스캔들도 마무리 되고 2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티비를 틀면 그가 나오고 바쁜 스케줄로 고사하던 라디오 디제이를 받아들인 건지 요즘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갔고 바뀐 게 있다면 내 삶 곳곳에 존재하던 그가 없다는 것, 그 뿐이었다.


퇴근을 하면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그와 자주 만나던 1104호에 멈춰 선다.


자랑스럽게 보여줬던 야경은 이제 그저 빛을 밝히는 조명 따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사라진 내 삶은 다시 처음 그때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얘기 들었어. 요즘 다시 약 먹는다며. 결혼은, 기다려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



스피커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김대표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오버랩 되고 이내 소음처럼 흩어졌다.


한동안 대답 없는 나를 기다리던 그는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라디오 듣고 있나 보네. 내일 다시 연락할게 그때는 대답 해 줄 거지? 피곤할텐데 얼른 쉬어.



그의 전화가 끊기고 그의 전화를 받기 전 보고 있던 화면으로 넘어갔다.


사진 속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도 따라 입 꼬리를 올려보지만 예전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다.


입 끝이 파르르 떨려오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내 라디오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선 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아닌 광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를 찾아 올 사람이 없음에도 울린 초인종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자 보이는 건 김닥터였다.


그가 나를 지나쳐 룸을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고 나도 그를 따라 맞은편에 앉았다.



“아직 집에 안가시고 여기서 뭐하세요.”


“그냥. 집에 가기 싫어서요.”


“걱정 되서 왔어요. 윤기씨가 매일 이사님 걱정된다고 나한테 연락하는 건 알아요?”


“민비서가 괜한 일을 했네요.”


“윤기씨는 이사님이 진심으로 걱정 되서 하는 일이에요.”


“알아요, 나도.”


“요즘 몸은 좀 어때요? 힘든 건 없어요?”


“견딜만해요.”


“마음 말고 진짜 몸은 어떠냐고 묻는 거 에요. 아시면서 또 대답 피하시죠.”



김닥터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와 민비서가 하는 걱정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모른척한다는 걸 그들도 안다.


떠올리기 싫어도 잊히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이 더욱 내게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유산도 분만이나 다름없는 일이에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래도 꽤 오래 힘들어요. 이사님도 아시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내가 못 지킨 거니까.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더 아파요.”


“이사님은 충분히 하셨어요.”


“내게 올 아이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에요.”



비록 떠나보낸 아이지만 내게 기적처럼 찾아온 임신소식이었다.


오래전 김닥터가 내게 한 말이 있었다.


‘아마 치료가 길어질수록, 약에 의존 할수록 아기를 갖는 건 점점 더 어려워져요. 항정신성 약물이 그래요. 몸이 많이 망가질 거 에요.’


그와 잠자리를 가진 건 그날이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라 장담했던 김닥터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비록 떠나보냈지만.



“김닥터가 그랬잖아요. 기적 같은 일을 해 낸 거라고. 그래서 그냥 궁금했어요. 기적처럼 내게 온 그 아이가 태어나면 딸일지, 아들일지, 누굴 닮았을지.”











꾸준히 달려오고 있는 웨이콩 입니다. :-)

사실 처음 기대에 비히면 막장드라마 수준의 글이지만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마무리는 3-4편이 었는데 어느덧 연재횟수도 5회를 맞이하네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오늘도 찌통폭격기가 된 제 글, 제 머리를 매우 칩니다...!

하지만 기다려주세요ㅜ

쓰다보니 좀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이야기를 풀다보면 끝에 누군가는 웃고있을테니?(아마도 그렇겠죠?)


하루종일 비가오던 어제와 달리 기분좋은 날씨의 화요일 이었습니다!

모두 오늘 하루도 즐겁게 마무리하시고 내일은 밤 늦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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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1.187
여름이에요!!!!!!!!! ㅠㅠㅠ 하 아프지마 탄소.... 결국 멀어졌네요 진짜 마음아파요 ㅠㅠ 김닥터 대신 태형이가 올까봐 솔직히 조금 두근두근...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웨이콩
여름님 어서오세요💜
흐어어엉 저듀 같이 웁니다 ㅜ 얼른 두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오기를 기도해 봅시다...!

4년 전
비회원20.14
힝...ㅜ 여주 힘들겠네요 아! 암호닉 신청 어떻게해요?
4년 전
웨이콩
우선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독자님이 원하시는 애칭으로 써주시면 됩니다..!
4년 전
독자1
단무지입니다! 아이가 생겼었는데 유산이라니ㅠㅠㅠ 진짜 마음아프네요.. 그러고보니까 남준이 너무 착하네요 지칠만도한데 계속 기다려주잖아요ㅠㅠㅠ
4년 전
웨이콩
단무지님 어서오세요💜
아기에 대한건 저도 쓰면서 고민 많이한 대목인데 휴... 좀 더 행복하게 해 줄 걸 그랬나 봅니다 ㅜ
그리고 나중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겠지만 남준이가 기다려 주는 건 사랑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2화 즈음 나왔던 자살기도 이후의 죄책감 때문 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마무리 된 이후 각 인물들의 이야기도 천천히 풀어갈 예정이니 함께 달려보아요💜

4년 전
비회원20.14
암호닉 "연지곤지"로 신청할게요!
4년 전
웨이콩
연지곤지님 환영합니다💜
4년 전
독자2
자색고구마에요 작가님💜
마지막까지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봤어요..
이쓸데없는 공감능력.. 너무 슬퍼요.. 아가를 떠나보내다니.. 태형이 아가 맞죠..? 태형이가 나중에 알게될까요..? 남준이는 이미 알고 있을까요? 알고 묵인을 하능거라면 정말... 여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이롷게까지 여주의 삶을 걱정하면서 보는 스토리는 처음인것 같아요ㅜㅜ

4년 전
웨이콩
쓰면서도 너무 안타까운 삶을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슬퍼하며 썼어요 ㅜ 저희의 탄소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3
헐랭ㅠㅠㅠ 유산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 여쥬 몸도 마음듀 너무 공허할거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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