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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버려진 신사가 하나 있어-. 거기 가 보는 건 어때?"
그 말을 듣고, 곧장 배낭을 챙겨메고는 길을 떠나왔다. 한 손에는 너무나 많이 펼쳐봐서 닳아버린 꼬깃한 지도가 있었다.
" 여기가, 77 계단인가."
앞에 주욱 위로 늘어선 수많은 돌계단에 잠시 숨을 깊게 들이 마시었다가 그대로 내뱉었다. 뭐, 이쯤이야.
배구를 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서야 이 계단을 올라올 순 없겠네.
그래서, 버려진 건가 이 신사?
가뿐 숨을 마시며 마주한 신사는... 생각보다 덜 스산한 분위기였다.
해가 지는 각도에 따라 들어선 노을빛을 품고있는 신사는 오히려,
" 예쁘네, 생각보다."
곧장 발걸음을 옮겨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저장되는 우물가에 서 더러워진 손과, 얼굴을 헹궜다.
아무리 그래도, 신사니까 예는 지켜야지.
손수건에 대충 물기를 닦으며 향한 배전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지 꽤나 오래 지난 듯 했다.
조용히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 속 담아온 바람을 속으로 빌어봤다.
찬찬히 두 눈을 뜨니, 꽤나 어두워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우? 아, 아니 여자아이?"
털에 잔뜩 잎사귀를 붙이고, 바닥에 널부러져 새근새근 숨을 쉬던 작은 여우가 퐁! 하는 소리와 동시에
눈을 잔뜩 비비며 하품하는 여자아이로 변해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던 내게 그 정체 모를 아이가 입을 열었다.
" 으음, 너야? 이걸 고맙다고 해야하나, 혼을 내야하나...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고맙네 인간!"
"...누구, 누구길래..."
" 으응? 나? 아아, 이런... 신령 체면이 말이 아니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에 붙은 잎사귀를 떼던 여자아이는 싱긋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 나 여기 신령! 닝이라고 하네, 인간의 아이야!"
신령...?
버려진 줄만 알았던 77계 신사에서, 신령을 만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