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고영표가 지난 7일 수원 LG전에 선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KT 위즈 제공
910일 만의 등판이었다. 그렇게 기다려왔는데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하필 상대가 LG 강타선,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자존감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고영표(30·KT)는 생애 첫 선발 등판을 앞두고도 하지 않았던 긴장에 잠을 설쳤다. 오랜만에 복귀하는 보통의 이들과 달리 KT 5선발 고영표는 잘 던져야 정상, 못 던지면 큰일인 상황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KT는 스프링캠프 시작 단계에서 선발 5명을 일찍이 확정했다. 지난 시즌 외국인 투수 데스파이네, 쿠에바스와 역시 10승을 거둔 배제성, 소형준에 고영표가 합류했다. 2년간 공익근무를 마치고 온 고영표의 합류는 올시즌 KT의 가장 큰 ‘플러스’ 요인으로 꼽혔다.
고영표는 군 입대 전 KT가 거의 유일하게 ‘선발’이라 자부할 수 있는 국내 투수였다. 2017년부터 2년간 선발로 뛰었다. KT가 압도적 꼴찌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고영표는 늘 승수보다 패수가 많았고 10승도 해보지 못했지만 리그에 새로 등장한 사이드암 선발로 존재감을 확실히 새겼다. 군 복무를 마친 고영표는 2군에서 한동안 준비 기간을 거치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이강철 KT 감독마저도 “10승은 하겠다”며 바로 선발로 낙점할 정도로 고영표는 준비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른 팀에서는 국내 선발진이 확실히 돌아가는 KT를 부러워한다. 잠까지 설치고 등판한 복귀전에서 고영표는 그 이유를 확실하게 입증했다.
고영표는 지난 7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LG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2안타 5삼진 1실점으로 잘 던졌다. 2018년 10월10일 롯데전 이후 첫 등판에서 고영표는 3회 2사 1·2루 이천웅에게 적시 2루타로 내준 1점 외에는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랜만의 1군 실전에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스스로 빠져나왔다. 3회 선두타자 김민성을 몸에 맞는 볼, 유강남도 볼넷으로 출루시켜 무사 1·2루 위기로 출발했다. 갑자기 주무기인 체인지업 제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정주현과 홍창기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다. 체인지업으로 잡았다. 이천웅에게 2루타를 맞아 첫 실점, 김현수에게도 다시 볼이 몰리자 자동 고의4구로 만루를 채운 고영표는 4번 라모스를 유격수 직선타 처리해 대위기를 1실점으로 끝냈다. 역시 체인지업이었다. 오랜만의 등판에서 주무기가 갑자기 막혔지만 곧바로 제구를 되찾아 다시 뚫어내며 스스로 위기를 정리했다.
0-1로 뒤진 6회까지 88개를 던진 고영표는 물러났고, 경기 중반까지 침묵하던 KT 타선은 7회 4점, 8회 3점을 뽑아 7-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선발승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영표가 주자를 내보내고도 무너지지 않고 1실점으로 막은 투구가 KT의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고영표는 이날 몸에 맞는 볼 2개와 볼넷 3개를 던졌다. 경기 뒤 “복귀전 치고는 6이닝 1실점이면 잘 한 것 같지만 내가 완벽하고 싶었나보다. 몸에 맞는 볼을 2개나 준 것이 많이 아쉽다”며 고영표는 “선발로 합류한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두 외국인 투수와 배제성, 소형준이 그동안 잘 했기 때문이다. 좋은 선발진에 나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은 “공백기로 인해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안정을 찾은 뒤에는 무난하게 잘 던졌다. 앞으로 충분히 더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5선발’의 첫 투구에 크게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