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1.부여연맹
연맹이란 말이 맞지 않지만, 우선 부여의 갈래는 1)한에서 빠져나온 독립국가 2)한에 속한 국 중 하나
로 설명이 되는데, 보통 2)번으로 의견이 몰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여는 고조선 때부터 중국 역사에 등장하여
한나라의 방패와 창 역할을 하며 고조선을 견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여가 중국역사라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사대시절을 중국역사라고 하지 않잔습니까)
1_2.졸본 동 북 부여
1)졸본부여 : 졸본부여는 소서노의 고향이자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 입니다.
2)동부여 : 훗날 고구려에 병합됩니다.
3)북부여 : 주몽의 고향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서부터 백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서노는 주몽의 부인이자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창업한 일등공신입니다만, 갑툭튀한 유리를 친애하는 주몽에게 실망하여
두 아들을 데리고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 갑니다. 여기서 소서노의 고구려내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주몽의 측근들에 의해
소서노는 졸본, 고구려에서의 영향력을 잃었고 그에 따라 자신이 물러날 때를 직시하고 두아들과 새로운 국가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백제전성기 지도
2.백제의 시작
백제의 시조를 말하고자 하면 흔히들 '온조'라고 생각 하실 겁니다. 물론 맞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이설입니다.
중국역사와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내용엔 백제의 시조를 '비류'혹은'소서노'로 칭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소서노를 여대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비류가 미주홀(지금의 인천)에 세운 국가와 온조가 세운 십제가 병합 되었을 때, 미주홀이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근거로
두형제중 형인 비류를 초대왕으로 말하는 설도 있습니다.
3.백제의 뿌리
백제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아버지는 고구려 어머니는 졸본부여 사람입니다. 소서노가 고구려를 세웠지만 사서에선
그녀를 고구려 사람보다는 졸본사람이라는 말이 더 많습니다. 위에 부여를 설명한 이유인데요.
주몽과 비류는 아버지를 떠난 자식들입니다. 또한 백제가 건국된 이후로도 고구려 내의 '졸본'지역과 교류를 하였을 뿐
고구려전체와 교류를 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백제는 고구려역시 부여의 후손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나 훗날 고구려가
국토확장을 하며 여러 부여국가를 병합하는 것을 보고 더이상 같은 뿌리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근초고왕시절 먼저 북벌을 시도합니다.(그전부터 트러블은 있었지만 생략했습니다) 훗날 성왕때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기도 합니다.
4.백제연맹(지금부턴 정말 설입니다. 더욱 흥미로 읽어주세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백제는 백제의 일부분이라는 설입니다. 제나라 송나라 시절 백제는 왕을 직접 임명하고 제후를 봉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매라왕 벽중왕 불중후 등을 임명한다며 제나라에 동의를 구하는 국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백제연맹은 제수백제 아신백제 북령백제 남한백제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후에 남한백제가 멸망하고 제수백제역시 급변하는 중국내 영토싸움에 밀려 멸망하였고 아신백제는
남한백제와 제수백제가 멸망한 후 차차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북령백제는 그 명백을 이어가 훗날 대조영의 발해건국의 세력에 합류 하였습니다.
정말 국뽕맞은 내용이지만, 제수백제와 북령백제의 실존가능성은 제법 높은데요. 그 이유는 제수백제와 남한백제의 기와양식
주택양식, 집터등이 상당히 유사하며 ‘송서(宋書)’ 97권 백제전에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하고 백제는 요서를 지배했는데 백제의 소치(所治)는 진평군 진평현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치'는 통치가 아닌 도시 혹은 수도로 해석
하는데, 진평군은 요서를 점령한 백제가 세운 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후, 역사관을 수정하여 여러 백제의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라는 말도 있구요..
잘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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