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수도 평양, 그곳은 천여년전 고구려의 수도였다. 427년 장수태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200년 가까이 고구려의 수도였다. 평양 대성산 유적지에 고구려의 궁성인 안학궁지가 발굴되었다. 안학궁은 고구려의 태왕 및 왕족들이 거주한 궁성이다.

안학궁 복원도
안학궁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 12년(1481)에 편찬되었다가 중종 25년(1530)에 새로이 증보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1 평양부 고적조에 보인다.
대성산성은 돌로 쌓았고, 둘레가 24,300척이다. 장안성(고구려 평원왕 때 건설하여 천도한 곳으로 지금의 평양)은 대성산 동북쪽에 있다.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5,161척이요, 높이는 19척이다.고구려 평원왕 28년(586)에 평양에서부터 이곳으로 옮겨 와 살았다. 성 가운데에는 안학궁의 옛터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1 평양부 고적조
고구려 태왕이 기거한 안학궁지는 사방전체 둘레가 2,480m 되는 토성안에 있으며, 성과 성내에서는 성벽 20개소, 궁성문 자리 6개소, 해자 자리2개소, 궁터의 집자리 52개소(궁전터 21개, 회랑31개) 등이 발굴되었다. 정방형에 가까운 안학궁 성벽의 가운데에는 남문(정문)과 좌우의 남서문, 남동문, 동쪽에는 수구문(水求門)이 발굴되었다.
안학궁 성벽의 남문은 현재 주춧돌이 없어졌지만, 주춧돌을 올려놓기 위해 잔돌을 쌓은 기초시설물이 잘 남아있어 이를 통해 성문 전체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기초 시설물은 앞면 45.6m, 너비 18m 안에 3개씩 8줄로 들어서있다. 문루의 정면 길이와 측면 너비의 평면 구성비례는 서울 숭례문이나 경북궁 근정전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가운데 남문의 면적은 약 400 미터제곱에 달하는데, 이는 평양의 대동문이나 보통문, 그리고 서울의 숭례문(남대문)이나 흥인지문(동대문)의 문루보다 무려 2배 반이나 크다.

안학궁지 건물 배치도
안학궁의 중심선상에서 남쪽의 남궁, 중앙의 중궁, 북쪽의 북궁, 동쪽의 동궁, 서쪽의 서궁이라 부를 수 있는 궁전터가 발견되었다.
중궁의 제1호 궁전지는 앞면 길이가 90.5m, 옆면 너비가 33m, 궁전 크기는 앞면이 87m, 옆면이 27m나 되는 매우 장대한 건물로 140개의 기둥자리가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고구려 안학궁은 현존하는 고궁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서울 경복궁 근정전(앞면 길이 30.7m)보다 3배나 크다. 뿐만 아니라 옛 유적으로 남아있는 것중 가장 큰 신라 경주 황룡사지 중심건물인 금당(앞면 길이 49m)의 2배에 이른다.
놀라지 마시라. 당나라 수도 장안에 있던 당나라 시기(663) 최대의 궁전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의 궁전지 앞면 길이는 75.9m이고 옆면 길이는 41.3m이다. 고구려 안학궁의 전정 건물지는 이보다 앞면 길이가 무려 15m나 큼을 알 수 있다.
궁전 전체 규모로 보아 고구려의 안학궁은 당나라 최대 규모라는 대명궁과 비교할만하다.
고구려인들이 이룩한 우수한 건축기술은 후세에 계승되어 우리나라 고대건축기술의 훌륭한 전형이 되었다. 안학궁처럼 큰 건물이 앞뒤 채로 배치되어 있고, 그것이 짧은 복도와 나래채로 구성된 건축유적으로 개성의 만월대 중심 건물지가 있다. 이는 고구려 왕궁 건축술을 고려가 계승했음을 의미한다.
안학궁지에서 드러난 건축물의 배치 상태와규모는 우리나라 고대 건축유적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대규모 건축물일 뿐 아니라 동양에서 흔치않는 목조건축 유적이다.

평양성 구조
고구려 안학궁이 당나라 대명궁을 능가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능가했다. 평양성은 둘레가 16km인데, 그 안에 여러 겹으로 막은 성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23km로 중국 장안성보다 훨씬 길다. 참고로 당나라 장안성은 둘레가 13km, 총 길이가 16km라 하니 고구려 평양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 종영된 '역사스페셜'에서는 고구려 평양성이 당대 세계 최대의 성이라 극찬하였다.
안학궁과 평양성은 당시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며 중국에 문명을 전파해주고, 거대제국 수, 당을 꺾은 동북아시아 최강자 고구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하겠다.

안학궁 모형도
p.s>>
장안의 화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장안은 바로 서울, 수도를 뜻합니다. 지명으로는 중국의 장안과 고구려의 장안이 있지요. 장안이란 용어의 사용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언각비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우리말글 바로쓰기' 지침서입니다. 아언각비를 우리말로 풀면 '바른 말을 통해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한다'란 뜻입니다. 『아언각비(雅言覺非)』첫머리에 나온 항목이 장안으로, 장안=서울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장안.낙양(長安. 洛陽)은 중국 두 서울의 이름인데,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취해 서울의 일반적인 이름으로 삼아 의심하지 않고 써 왔다. 고구려의 평양성을 장안성이라 한 것을 보면 서울을 장안이라 칭하게 된 것이 이 때부터 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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