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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데이_희진ll조회 25102l 6
이 글은 4년 전 (2019/7/24)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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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dayhumor.com/?bestofbest_342408


원본이 너무 길어서 반씩 나눠서 올립니다!

진짜 흡입력 장난아니니까 끝까지 읽어보세여...!





1.



악마는 늘 교회 안에 산다. 항상 거기 있었고,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예외는 없다.

금속 십자가가 주조되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전에도, 그러니까

원시의 그때도. 흙바닥 위에 얼기 설기 쌓아 올린 조잡한 건물이 최초의 신앙적 성격을 띈 이래로,

늘, 악마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요셉은 늘 기도실 안에 있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오직 신만 아신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때도 있었고, 간헐적으로 뺨맞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오늘은 후자였다. 맞는 소리가 들려오고 난다음에는 항상 입술이 터져 있었다.

입술에 핏기를 묻히고 나온 요셉은 놀라우리만큼 침착한 표정이다. 항상 그렇다.



아프다는 찡그림도, 기분이 좃같다는 말도, 언젠간 이곳을 벗어나고 말 거라는 다짐도 없이

그냥 무표정이다. 나는 아직도 그 무표정이 두렵다.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셉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세워, 쏘는 시늉을 나에게 해보였다.



목사에게 맞고 나면 늘 저런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에게 제안을 걸어오는 것이다.

기분도 더러운데, 한판 쏘러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 나선다.



‘한 판 쏘러 간다’ 는게 무슨 의미인지, 이 조그만 어촌 마을의 주민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이 게딱지만한, 다 녹슬어가는 교회의 목사 아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절대 모를 걸.



요셉은 스스로 개조한 공기총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있는지는 나와 요셉만 안다. 교회 본관 안에 하도 오래되어 헐거워진 널빤지 바닥 아래에,

그 어설픈 장총이 조용히 숨겨져있다.

다 부서질 것 같은 그 조잡한 나무 장총이 어떤 위력을 내는지, 보지 못한 사람은 믿지 못할 것이다.



해안 절벽위에 세워진 교회를 따라, 삼십분여를 걸어가다보면 나오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는

멧비둘기들이 모여 살았다. 간혹은 꿩도 나왔다. 꼬리가 긴 숫놈과 짧은 암놈도.



요한의 취미가 언제부터 지속되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물어보기도 뭣 하잖은가.

언제부터 아버지한테 뺨을 맞으면 멧비둘기를 쏴죽이기 시작한거니?

그 질문은 언제부터 아버지한테 뺨을 맞기 시작한거니? 로 귀결될 거고, 그런 질문은 끝이 없다.



때 투성이인 교회 공동 샤워실에서 씻으며 본 요셉의 몸에는 폭력의 흔적이 가득했다.

꼬집었나? 두드려팼나? 아니면 뜨거운 걸로 지졌나? 어느 질문도 필요 없었다.

물어볼 법한 모든 폭력의 방법이 다 동원된 것 같았다.

처음 요셉의 몸을 본 순간, 멍하니 못박혀 선 내게 요셉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몸에 비누칠을 하고,

거품으로 몸을 가렸다. 나를 흘끗 쳐다보는 눈은 ‘뭘봐? 대수롭잖게?’ 라고 되묻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다.

뒷 산에 도착하자, 요셉은 준비해온 비둘기 먹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여러곳에 넓게 골고루. 그리고 멀찍히 물러선 나와 같이 담배를 물어피우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두대 연달아 다 태우자, 푸덕 소리와 함께 멧비둘기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연덕스럽게 모이를 쪼아먹기 시작한다. 매번 똑같다. 참말로,똑 같다.



“저렇게 멍청하면 좋았을텐데”



요셉이 멍하니 비둘기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학습능력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아무것도 모르고 말이야.

얘넨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를걸”



요셉이 공기총의 압축 프레스를 당겨 장전했다.

그가 찬찬히 비둘기 무리 속으로 걸어가는데도, 멧비둘기들은 요지부동이다.

모이를 쪼는데 여념이 없다. 그가 가장 살찌고 큰 놈으로 타깃을 골라잡았다.

멧비둘기들이 아무런 불안도 없이, 주변 놈들을 밀치고 바닥을 쪼아 올리는데만 열중이다.



피슛- 소리가 들려온다. 소음이 크지 않다. 일부러 저렇게 개조한 것일까.

한발을 필두로 여러번의 공기 찢는 소리가 퓻퓻 정신없이 시작된다.

자신이 쪼아먹는 모이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임을, 한참 늦게 깨달은 멧비둘기들이

요란하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요란한 날개 푸드덕거림이 잦아든 요셉의 주변으로 너덧마리의 비둘기들이 덜찢긴 몸을 가누며

제자리에서 빙글 빙글 돌기 시작한다. 벌써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 날갯짓 한번 못해본 놈들도 보인다.



제자리에 선 요셉이 그 쓰러진 비둘기들에게 다시 공기 총을 쏘기 시작한다.

깃털과 살점이 공중으로 팍팍 튀어올랐다. 



뒤돌아보며 요셉이 천사같이 웃었다. 정말로, 티하나 없이 맑은 웃음이다.



“너도 쏴볼래?”



항상 요셉이 묻는 말이다. 내 대답도 정해져있다.



“아니, 나중에”



요셉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대답한다.



“그래, 알았어”







2.







내가 이 기도원에 오게 된 건 정확히 삼개월 전 일이다.

이름도 모를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이 기도원의 전도사였다고 했다.



스물여덟까지 백수로 사는 내게, 전화온 기도원의 여자는 먹여주고, 재워주며, 월급까지 주겠다고 했다.

노가다로 열흘 일하고, 방세를 내고 스무일간 할일 없이 멍하니 한달을 채우며 지내는 내게 그야말로 천국 같은 조건이었다.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건가요? 물어보는 내 질문에 더없이 친절한 상대 여자는

‘신도들만 관리해시면 됩니다’ 라고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신도들을 관리한다라. 교회는 태어나 평생 근처도 가본적 없던 나는 무슨 일인지 쉬이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버지랑 싸우고 집을 나온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하나 잡을수 없었던 내게는, 마치 은총 같은 소리였다.



신도들만 관리하시면 됩니다.



집안이 개차반인 까닭에, 할아버지가 전도사였다는 사실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집 안만 들어서면 폭군으로 변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듯 고매한 직업의 소유자였다는 사실도.





해남에 있다는 기도원을 찾아, 고시원의 짐을 조촐히 꾸렸고, 그날로 출발했다.

교회랑 기도원의 차이도 모르던 나는 도착해서야 둘의 차이를 알았다.

숙박시설이 갖춰져있고, 부지가 넓으며, 그 외에는 일반적으로 보던 교회랑 동일한 구조라는걸 안것도,

도착하고 나서였다.



기도원은 해안 절벽 끝에 있었다. 고속 버스를 타고 내리고도 택시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했다.

거기가 어디요? 내 첨 들어보는 교횐데… 라고 중얼거리며 운전을 시작했던 기사가 도착 직전까지 내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토록 구석인줄 자신도 몰랐었을테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딴데 교회도 있나? 내뱉는 기사말대로- 뻘이 군데 군데 드러나고, 못쓰는 고깃배들이 항만 위로 덜렁 덜렁 올려져 있었다.



더는 못들어가니 여기서 요금주쇼, 라고 내뱉는 기사에게 돈을 주고

내려서 시뻘겋게 녹이슨 배들을 따라 걸었다. 바닷바람이 내심 상쾌했다.



시골 어촌이 그렇듯,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않은지 오래 되어보였다.

생업때문에 나이들어서도 바다를 타는 다 쭈그러든 늙은이 몇이 담배를 물고 퉁퉁 거리며 배를 타고 나가는게 보였다.



썩어가는 동아줄, 떨어진 낚시 바늘과 떡밥이 지린내를 풍기며 삭아들어가고 있는 바닥으로

내가 걸음을 옮길때마다 조각난 항구 바닥으로 요란하게 기어들어가는 엄지 손가락만한

갯강구들이 가득했다.



절벽을 한참 걸어올라가는 내내,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이 헐떡거렸다.

정말 지독히도 멀었다. 절벽위로 다다르자, 저 아래로 멀찍히 보이는 조그마한 읍내와

고깃배들, 숨어든 소라게처럼 옹기 종기 모여있는 판자집들이 보였다.



조금더 올라가니, 다 쓰러져가 사람이 있을까 싶은 벽돌 건물들이 보였다.

한참 전에 세워진듯 기도원은 붉으칙칙한 벽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대한 철책문이,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 사이로 우뚝- 기도원을 막고 있었다.

칭칭 동여맨 쇠사슬과 우람한 자물쇠가 조용했다.



망설이다, 철책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분여를 흔들었을까, 저 멀리 십자가 아래 기도원 본관 문이 열리고,

조그만 여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가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철책 앞에 이르자, 목걸이를 목에서 벗겨낸다.

그리고 나는 그게 목걸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옷 앞섶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열쇠뭉치들이 드러났다.

목걸이인줄 알았던 그 작은 체인 아래로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둥근 열쇠뭉치들을 꺼내

몇번 뒤적이더니, 키 하나를 골라 철책 문 열쇠를 찾았다.



지금은 쓰이지 않을법한 거대한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칭칭 뱀처럼 감긴 자물쇠를 걷어내자 철책문이 끼이익- 요란하게 열렸다.



내게 전화를 돌렸던 여자임이 분명했다.

뿔테안경을 낀 아담한 미인이었다. 단발 머리를 자를 대고 자른듯, 길이가 일정하게 치렁거렸다.

유행이 조금 지난듯한 플레어 스커트는 발목까지 떨어져내렸다. 검은 색이었다면 수녀가 입는 옷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뻔한 디자인이었다. 짙은 검정색 대신 천을 채워넣은건 팔십년대 다방의 커튼으로나 쓰면 딱 맞을 듯한 패턴 무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없는 민낯은 내 눈을 잡아끌었다. 흰 피부에 가는 선, 이마의 둥근 윤곽에서 코로 떨어져내리는

곡선이 아름다웠다. 이런 촌구석에 왜 이런 여자가 있을까. 저런 형편없는 스커트를 입고?



여자는 마치 날 이제야 봤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김 전도사님 손자 되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잡초가 듬성 듬성 자란 관리되지 않는 정원을 그녀가 가로질렀고, 나는 따라 걸었다.



뒤를 따라 걷는 내내 치렁치렁한 그녀의 스커트 뒤로, 감춰져 보이지 않을 다리와 엉덩이의 윤곽을 상상하는 탓에

순간 우뚝 멈춰선 그녀와 부딪힐 뻔 했다.



허겁지겁 멈춰선 내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또박 또박 말을 이었다.



“목사님 먼저 뵙고, 그 다음 쓰실 방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기도원이 조금 크니까, 어디가 어딘지 빨리 익히시는게

길을 덜 해매시게 될 거에요”



그녀를 따라 목회하는 방을 중앙으로 가로질렀다.

뻔한 교회 풍경이랑 똑같다. 길쭉하게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목제 의자들.

다른게 하나 있다면 다들 지독하게 낡아서 앉자마자 삐걱 삐걱 소리를 토해낼 것 같다는 점이다.

바닥도 마찬가지로 목제였다.



녹슨 못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낡은 교회안은 그 안에 공기마저 같이 낡아간듯 지독한 나무 냄새로 텁텁했다.

어릴때 키웠던 햄스터가 죽은 것도 모르고, 내내 방치했다가 뚜껑을 열었을 때의 그 톱밥냄새랑 유사하다.



회랑을 쭉 따라걷던 내게, 그녀가 이윽고 검은색 문이 커다랗게 막아선 한 방 앞에서 멈췄다.

얇은 손으로 문을 미는게 힘겨워 보였다. 검정 문은 보기와는 달리 커다란 쇠문이었다.



천천히,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자,



믹스 커피와 물 ?이는 기구, 그리고 플라스틱 의자가 몇개 있는 넓따란 기도실이 눈에 보였다.

사무용 데스크가, 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웅장했다. 질 좋은 목재를 넉넉히 쓴 거대한 책상이었다.

플라스틱 의자가 덜렁 앉아있는 회의실 책상과는 영 딴 판이었다.

거대한 책상 뒤로는 갈색 가죽 의자로 덮힌, 마찬가지로 거대한 회전식 사무용 의자가 보인다.

책상 위에는 나전칠기로 마감된 명패가 침침한 전구에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목사님?”



단발머리 그녀가 조용히 부르자, 큼직한 손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허공으로 잠시 뻗어올라가 정지한다.



“ちょっと…”

잠시만 …



일본인인가?

저 책상이 있는 부분만, 거대 빌딩의 멋진 회사에서 오려온듯 빛이났다.

그 주변에 자질구레하고 정리안된 풍경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뒤돌려져 있던 의자가 천천히 빙글 돌아 내게 앞을 보였다.



사람 좋아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중년이었다. 풍채가 좋다.

정장도 깨끗하다. 품이 잘떨어지고 마감이 좋은걸로 보아 맞춤 정장인것 같았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도 염색이 잘 되어있었고, 적당히 바른 포마드가 그런 사람좋음을 더했다.



“아이고, 먼 길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첫 말과 달리 아주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중저음의 중년이 번쩍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 전도사님 손자라고 하니, 다른 사람이 생각이 나야지요.

마침 기도원 관리해주시던 분이 그만두시게 되어서요. 부지불식간에 전화를 드렸는데, 이렇게

흔쾌히 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말 뒤에 껄껄 웃는 호탕함이 자연스러웠다. 판매실적으로 전설을 올린 영업팀 부장같기도 하고,

수제 정장점의 성공한 주인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해남 끝 촌구석의 기도원 목사같아보이지는 않는다.



이래 있을 법한 신앙이 있느냐, 하는 따라올 질문을 예상하던 내게 목사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먼 곳 오셔서 피곤하실텐데, 우선은 쉬실 방으로 안내해드리지요.

하는 일이 궁금하실텐데, 별 일 없습니다. 그냥 청소 조금해주시고, 사람들 안내해주시는게 전부에요.

일이 너무 쉬워서 따분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일찍 쉬시고, 내일부터 하실 일을 안내해드릴겠습니다. 미스 리?”



미스리, 하는 지독히도 촌스러운 호칭으로 불인 뿔테안경의 그녀가 고개를 까딱, 한다.



도로 웅장한 가죽 의자에 앉은 목사는, 서류를 들여다보며 내가 나갈때까지 고개 한번 들지 않는다.

뿔테안경의 그녀가 어서 나오지 않고 무얼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자,



허둥지둥 고개를 숙여보이고 그녀를 따라 기도실을 나섰다.







본관 옆을 따라 무성한 잡초를 밟으며 오분여를 걷자,

기도원과 똑같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숙소들이 눈에 드러났다.



일제 시대때 지어진 건축물인 듯 했다. 서양 양식이 어설프게 섞인 구조가 그러했다.

부동산이 제일 비싼 작금의 건물과는 다르다.

공간이 넉넉히 쓰이고, 한층과 한층의 사이가 유독 넓다. 벽돌도 두껍고, 튼튼해보인다.

충분히 공간을 사용하고 둥근 기둥들이 완만한 반원 구조를 가지고 드문 드문 튀어나와 있다.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다.



첫번째 숙소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지금은 쓰이지 않는 목제 계단 손잡이들이 똑같이 시커멓게 때가 껴있었다.



“이층을 쓰시면 될 겁니다. 따듯한 물은 오후에만 나오고요. 불편하신게 있으시면,”



여자가 방까지 나를 안내한 후, 다시 의례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편히 쉬세요”



여자는 지었던 미소가 사라지는 것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슬쩍 방에 들어가니, 사람 한명 간신히 누울법하게 좁았다. 이전에 지내던 내 고시원 방과 별 다를게 없다.

티비도 없고, 연식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이 작동될까 의심될만큼 누추하게 달려있었다.



욕실에 들어가니, 물을 켜자 한참 끓는 소리를 내다가 둔탁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보였다.

녹 슨 물이 세면대에 흐르다가, 잠시 뒤 투명한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흐르는 물을 잠시보다가,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입에 꺼내물고, 피울만한데가 어디있나- 살펴보는데 내가 걸어나왔던 숙소 현관으로

나랑 동년배인 남자 한명이 걸어나오는게 보였다.



그가 바로 요셉이었다.



기도원이니까 흡연은 안되려나, 하고 멈칫 하는 찰나에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것까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요셉의 첫인상이었다.



“왜요, 기도원이니까 담배는 안되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천역덕스레 물어오는 통에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마저 웃어오는 폼이 퍽 친근했다.



“맘껏 피워도 되요. 대신 목사 꼰대랑 미스 리한테만 걸리지 말아요. 잔소리 심하니까. 알겠죠?”



꼰대 목사라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실소를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요셉도 씨익 웃어보였다.



“이 지루한데는 뭐하러 오셨어요?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담배도 한달에 한번 생필품 사러갈때 사야되요.

몰래 사야되는건 덤이고… “



“돈 준다던데요. 신도 관리하고… 하는거 없는데 월에 백만원씩 준다길래 왔죠”



“아하”

요셉이 담배를 손에 들고 알았다는 표정을 해보였다.



“그 전도사님 손자라던 분이시구나”



이름도 모를 할아버지가 나오는 통에 나는 대답하기가 퍽 애매해졌다. 물론 맞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뭔가 복잡한 기분이다.



“주말 빼곤 퍽 한가해요. 가끔 기도하러오는 일행 있으면, 밤에 술마시나, 아니면 나와서 담배피거나 하는거 감시에요”



주변을 휘휘 둘러본 요셉이 가까이 다가와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섹스하는 것도요”



내가 벙쪄있자 요셉이 피식 거리며 말을 이었다.



“웃기죠? 술담배는 그렇다쳐도, 부부간이나 연인끼리 오는 목회자들이 밤에 떡치나 안떡치나 그것도

감시해야된다 이말이에요. 명색이 기도원이라 이건데, 참 좃같은 소리지”



말을 끝낸 요셉이 찡그린 얼굴로 담배를 빨아들였다.



“많아요. 그런 사람들. 기도회오면 각 방쓰는게 원칙인데. 방 가봤죠? 혼자 자기도 좁을만큼 좁아터졌다고요.

그런데도 그렇게들 해대요. 그럴땐 그냥 잠자코가서 문만 두드리면 되요. 웃긴건, 그렇게 새벽녁에 노크를

하면 귀신같이 조용해져요. 방금전까진 세상아 떠나가라 들리던 신음소리나 뭐 그런게 뚝 끊긴다고요.

그거 해보면 참 웃겨요”



요셉은 말을 재미있게 했다. 뭐하는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나같이 여기 식객으로 머물면서 신도관리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직원일까. 신자일까.



직원으로 보기엔 숙소 앞에서 피워무는 담배가 영 아니었고, 기도회까지 와서 못참고 섹스를 해대는 사람들에 대해

개구지게 품평을 하는걸 보니 신자로 보기에도 무리였다.



주머니를 까뒤집어 담뱃재를 털고 있는 요셉에게, 내가 물었다.



“뭐하는 분이세요? 저같은 관리원?”



요셉이 재를 털면서 무심하게 덧붙였다.



“저요, 목사 아들이에요”







3.





요셉과 멧비둘기 죽이기를 하고 올때면, 매번 똑같은 주제로 토론이었다.

심심찮으면 가서 쏴죽이는데도, 저렇듯 모이만 뿌리면 몰려오는 이유가 뭘까?



“동물적인 본능도 없을까? 매일 모이뿌리는 왠 놈이 마지막에는 돌변해서 쏴죽이는데 말이야”



“뭘, 사람들도 별 다를거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요셉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잘 들어봐. 매일 뉴스만 켜면 자동차 사고, 혹은 지하철 사고, 스케일이 좀 크면 비행기도 떨어지고…

매일같이 뒈져간단 말씀이야. 그런데도 어때? 매일 아침 출근길이면 버스며 지하철이며 미어터진다고.

휴가철에는 비행기 예매하기 힘든 건 말 할 것도 없고. 그런데도 매일 탄단 말씀이야. 나는 아니겠거니, 안일한거지”



생각해보니 그럴듯하다.



“모이 뿌리면 몰려드는 새새끼들이랑 우리랑 다를게 없다는 증거지. 쟤넨 알곡 쪼아먹으러 오고,

우리는 월급타러 나가잖아. 그 와중에 죽을수도 있다는거? 다 알아. 그건 유치원생도 안다고.

그래도 나가야돼. 모이 안먹으면 뒈지는 저 새들처럼 말이야”





난 요셉의 저 발음이 좋았다. 뒈-진다. 뒈진다는 말의 그 기묘한 요셉만의 억양이 있었다.

요셉의 입을 통하면 철학자가 머리를 골싸버릴 문제도 너무나도 간단해진다.

우리는 모이를 좇아 모여드는 저 새새끼랑 다를바 없다는 자칫 기분 나빠질 문제들도.



꽁초를 들며 요셉이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도 폐암이란 공기총을 앞에 두고 있단 말씀이야. 근데도 우린 이 모이쪼기를 그만두지 못하지”



기분이 이상하다.











기도회는 종파가 없었다.



한마디로, 사이비였다.

그리고 어촌 구석 끝의 사이비 교회로 얼마나 많은 신도가 몰리는지, 나는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짐작도 못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내내 예배였다.

평일내내 사람 하나 없이 잡초만 우거진 이 기도원으로, 주말만 되면 바닷 바람에 쪼글쪼글해진 늙은이들이 가득 가득

몰려들었다.



기도회가 사이비임을 알게 된 후로,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할아버지가 그럴듯한 곳에서 전도를 했을리 없지, 하는 이상스런 퍼즐이 맞추어진 까닭일까.



성경도 있었고, 십자가도 있었다. 그리고 휴일마다 몰려드는 늙은이 신도들도 있었다.

구색맞춰 잘 흘러가는 교회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특이점도 찾을 수 없다. 음울하게 낡아빠졌다는것 말고는.



목사는 힘이 넘쳤다.

늙은이들을 앞에두고 마치 왕이라도 된 듯 호령했다.

설교는 내가 들어도 다음 설교문을 대신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뻔했다. 좋고, 또 좋은 구절들 뿐이었다.



낡은 목제 의자를 가득매운 늙은이들 앞에, 녹이 슨 십자가가 매달린 교단에 서서

우렁 우렁 목소리를 토해내는 목사의 멋들어진 옷차림과 머리는 꽤 기이한 풍경이었다.



첫 예배날, 얌전히 앉아 경청하는 시늉을 하던 내게

요셉이 가만히 다가와 앉았다.



“지겹죠?”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내게, 요셉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놀라지 말아요. 이제 꽤 재밌는걸 보게 될테니까”



어리둥절하는 사이, 그 일이 벌어졌다.



“흑흑흑… 아흐흑”



“히야아아아…!”



“어어어아아!”



이상한 소리들이 낡은 교회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흐느끼는가 하면, 마구 쏘아붙이며 외치는 고성같기도 했다.



늙은 어부들, 바닷바람에 그을린 피부에 곱게 분을 바른 점잖은 복장의 할머니들, 그리고

중년의 아줌마들, 머리칼이 희게 세어간 아저씨들이, 눈을 까뒤집고 흰자를 드러낸채 부들 부들 떨었다.



마구 터지는 방언 사이로 요동치는 그들의 손들이 보인다. 혼절할듯 울음을 터뜨리고,

기도하듯 손을 모아잡고 주륵 주륵 눈물을 쏟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만세를 외치듯 손이 높게 들어올려지기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두손을 연신 흔들어대는 사람들까지.

교회 안은 순식간에 여호와가 재림한 것 같은 환희와 울음의 교성이 가득했다.



나까지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집단 트랜스? 무의식을 모조리 서툰 바느질로 할로윈 헝겁 인형처럼 이어버린 것 같았다.

소름끼침이, 이해할수 없음이, 두려움이 한군데로 엮여져 하나가 되어 너울 너울 춤춘다.



힘이 여전히 넘치는 목사가 무어라 교단을 향해 마구 외치고 있었다.

내뱉는 말은 넘치게 메워진 신음과 교성 때문에 들리지 않는데도, 신도들은 감읍해 마지않는다는듯

울음을 터뜨리고 또 터뜨렸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손바닥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같은 기묘한 악다구니 속에서,

나는 요셉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멍해졌다.



내 옆엔, 우스워죽겠다는 듯이 끅끅 거리는 요셉이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요셉은 입을 틀어막으며 웃어대고 있었다.



웃음이 멎을랑하면, 누군가가 어김없이 다시 괴상하고 소름끼치는 방언을 내질렀고,

그때마다 요셉은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으며 그렇게 웃었다.

눈에는 눈물까지 맺힐듯이 그렇게.



기도원이, 회랑이, 사람이 끓을듯이 넘치는 이 정경이 점점 괴리되어 갔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공간에 뚝 떨어진 것 같다. 이 울음과 비명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할 것만 같다.

그리고, 내 옆에는 마치 앨리스를 구덩이에 밀어넣은 짓?은 토끼처럼 요셉이 낄낄대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그 광경 속에서, 나는 또 하나 무언가를 더 본다.

목사가, 요셉을 노려보고 있었다.

섬뜩했다. 사람좋음이 마치 한때의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목사의 표정은 뒷덜미를 서늘하게 할 만큼

소름을 달아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깔끔한 정장이, 포마드가, 마치 그 소름돋는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구실 좋은 껍데기처럼 보일만큼,

직선으로 굳어진 그 두 눈동자는 악다구니 속에서 차갑고 단단하게 요셉에게 못박혀있었다.



못마땅한 시선을 거둔 목사가 한 손을 높이 연단 위로 들어올린다. 그래도 멈추지 않자,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おしまい ! "

그만 !



저번에도 들었지만 생경하다.

일본어? 외국어를 익힌적 없는 나도 분명히 알 수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발음이며 외침이었다.

목사도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던데, 사이비 기도원 목사라도 마찬가지라 그건가. 신학교를 일본에서 나오기라도 했나?



서서히 비명과 신음이 잦아들고, 방금까지 있었던 아비규환이 거짓말처럼 음소거되자,

눈을 까뒤집던 신도들이 언제그랬냐는듯 차분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목사도 사람좋은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리던 그 사람으로 되돌아온다.



방금 생각났다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띈 목사가 말을 잇는다.

“요셉아, 이따가 잠시 기도실로 오련?”



요셉의 표정이 굳는다.



“예”



그러나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신도들이 서서히 자리를 일어나, 다시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아직도 괴리를 떨치지 못하고

회랑 의자에 앉아있다. 점잖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이든 할머니들 부축하며 조심 조심 자리를 뜨는 한명 한명에게

도대체 어디에 그토록 소름돋는 울음의 언어가 숨겨져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윽고 신도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멍하니 의자에 앉아 요셉을 기다리는 나만 남았다.



묵직한 기도원 검정 쇠문 안으로 들어간 목사와 요셉을 기다리는 내내, 낡은 회랑의 공간이 어제와 오늘 있을 모든 소음을

한번에 소모한 것처럼 지독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짝- 짝- 가죽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조용한 단말마의 소리가 쇠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조심스레 쇠문 앞으로 다가갔다.



조금씩, 그러나 점차로 선명해지는 채찍 휘두르는 소리가 명백히 쇠문 안에서 밖으로 실낱같이 끊이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뚜렷해지는 소리에 내가 움찔 거리며 쇠문에 다다르자,

예고없이 웅장한 쇠문이 활짝 열렸다.



목사가 숨을 몰아쉬며 넥타이를 조절하며 기도실에서 걸어 나왔다.



“아, 오늘 예배가 처음이시라 놀랐지요? 성령에 감읍하셔서 방언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도 놀라실 것 없어요”



더할 것 없이 완벽했던 포마드 아래로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려있다.

넥타이를 마저 정리하며 붙이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말 뒤로는 껄껄거리는 호탕함이 다시 번졌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목사가 뚜벅 뚜벅 교회 회랑을 나서고,

요셉이 핏물 섞인 침을 나무 판자 바닥에 퉤- 뱉으며 걸어 나온다.

부어오른 입술이 선명한데도, 놀랄만큼 침착하다.

손을 총모양으로 만들어 보이며, 쏘는 시늉을 해보인다.



“저랑 총 쏘러 가실래요?”







4.





요셉이 목사의 친아들이 아니란 것을 알게된건, 기도원 생활이 막 한달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어떻게 된거야?”



“네살배기일 땐가, 기도원 앞에 버리고 갔다나. 기억도 안나 나는”



대꾸하는 요셉에겐 털끝만큼의 아련함이나 향수도 없어보였다.



“그 뒤로 우리 인류애에 불타는 ‘꼰대’ 목사께서 날 거두신거지”



낄낄 거리며 담배를 무는 요셉은 역시 모든걸 간단하게 만드는 언변을 본인의 과거사에게까지 적용했다.



“엄마는? 기억 안나?”



“엄만지, 아님 뭐 줏어다 떠맡길 요량이 있던 다른 아줌만지 알게 뭐야.

거적데기 같은 가디건을 입고 있던 파마머리는 기억나. 얼굴은… 하나도 기억 안나고”



어쩌면 저렇듯 순수하게, 해맑게 버려졌다는 이야길 할 수 있을까.

순수한 감탄이 잠시 마음 속에 일었다.



부러 센척하는 것도 아니고, 씩씩하게 굴어볼 요량으로 없는 가면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요셉에겐 정말로 ‘본인이 유기된 일 따위’도 멧비둘기 모이 쪼기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기도원은 정말로, 늙은이 밖엔 없었다.



내 나이 또래라곤, 요셉과 나, 그리고 미스 리 밖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들중 가장 젊은 축이라곤, 서른 후반에 이른 아줌마 아저씨들이었으니까. 더 덧붙일 필요가 없다.



건물조차도 낡아빠진 마당에 몰려드는 사람마저 늙은이들이라니.

어쩌면 요셉과 내가 그토록 빠른 시일에 스스럼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연식 오래된 것들 사이에 놓인 유일한 어린 것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 점이 크게 작용했을것이다.



매일 같은 일상. 잡초를 뽑고, 썩어가는 목조 건물 구석 구석을 기름걸레질하고,

예배 시작과 종료 후 공손하게 손을 모아 신도들을 마중하며, 방문객이 있을때마다 철문의 육중한 자물쇠 쇠사슬을

여닫는 일. 틈틈이 요셉과 담배를 피우는 일.

하품나올 정도로 쉬운 일을 하면서도, 내 통장엔 틀림없이 백만원이 입금되었고,

다달이 나가는 담뱃값 정도를 제외하면 돈 쓸 일도 없었다.



“기도원, 이렇게 사람 많을줄 몰랐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셉과 뽑은 잡초 더미 위에 드러누워 영 한가했다.

풀 독 오를 염려따윈 개나 줘버린 둘 위로 짙은 풀 꺾인내가 진동했다.



“그러게, 돈 백만원씩 따박 따박 꽂히는거 보니까, 성금도 꽤 될 것 같은데”



벌떡 일어나 앉은 요셉이 무척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꽤 된다고? 너 이새끼. 진짜 세상을 한참 모르네”



“뭘 모른다고?”



혀를 끌끌 차며 요셉이 나를 끌고간 곳은, 기도원 중앙 교회 뒤쪽에 있는 임시판자로 지어진 가건물이었다.

생각해보니 한번도 와본적 없던 곳이다.



비를 막기위해 지어진 어설픈 판자들이 툭 치면 무너질 것처럼 아슬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마치 대충 엎어놓은 갈색 박스 상자처럼.



그리고 거긴 먼지낀 회색 방수포대로 무언가가 덮혀있었다.



“자 봐라”



요셉이 포대를 벗기자, 도저히 이 낡아빠진 다 녹슬어가는 기도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품위있는 녹색 스틸이 빛을 뿜었다.



세단이었다. 은은하고 어두운 녹색이 품위있게, 조용히 웅장했다.

재규어였던가? 내 궁금증을 마치 요셉이 미리 읽어내듯 대답했다.



“재규어야, 이거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성금 꽤 되는’ 기도원 목사가 몰기엔 조금 거창하지, 안그래?”



과연 그랬다. 세상에. 재규어라니.

목사가 돈을 그렇게 버는 직업이었던가. 물론 대형 교회들은 종종 탈세 혐의도 받고, 돈 많은 기업가들의

돈세탁 수단도 된다고 뉴스에서 봤지만, 저 세단은 이 시골 어촌 기도원의 구석에 콕 박히기엔 과하잖은가.

그런 의문을 담아 요셉에게 묻자, 요셉은 의례 그렇듯 막힘없이 설명해주었다.



“수협조합 사장, 고깃배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금을 얼마나 처박아 두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래.

너 살던 도시로만 나가도 은행장이니, 기업가니 하는 사람들이 힘있는 사람들이지만 여긴 안그래.

귀촌해서 여기 발붙이고 살려면, 지역 유지들 눈밖에 한번 나면 절대로 못살아.

저 꼬질꼬질한 할배 할매들이 생선 비릿내나는 돈 뭉치가 얼마나 썩어나는지 넌 절대 모를거다”



방언을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토해내던 그 사람들이, 현금뭉치까지 토해내고 있다니.



“우리 꼰대 돈 많아. 너 달달이 백만원 꽂아주는건 일도 아닐걸 아마.”



요셉은 다시 방수포대로 재규어를 덮었다.







기도원에 온 이후로 발기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전과 같으면 고시원 구석에 있는 구식 컴퓨터로 포르노를 틀어놓고 자위를 했겠지만, 이곳은 마땅치 않다.

하릴없이 성기를 만지작 거리다 부풀어오르면 흔들어대고 사정한 뒤, 닦아내기 전 잠시 멍하니 공상한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 자위라니. 퍽 웃기는 노릇이다.

횟수가 줄어들자 자연히 일어서는 수가 늘어난 거겠지.



“요즘 자주 꼴리고 그렇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아니라기도 민망한 기분에 그냥 잠자코 있었더니, 요셉이

짓?게 웃었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잖아, 기도원만 오면 그렇게들 해댄다고.

하지 말아야한다는 괜한 금기가 남자든 여자든 더 그렇게 만드는거야.

아저씨들이 교복에 환장하는거랑 같은거지. 하면 안되잖아? 근데 그러니까 더 하고 싶은거야”



요셉의 말이 맞다. 눈요깃거리 하나 없는 이곳에서, 사정의 직전의 순간이 되면

뿔테 안경을 낀 단발머리의 미스리가 흠칫 흠칫 떠오르는게 그 증거 아닐까.



기도원에 있는 미스테리한 우리 연배의 그 소녀. 금단이라기엔 어감이 무겁지만, 자위의 대상이라고 터놓기엔

아무리 요셉이라도 꺼려지는 그런...



펄럭거릴 법한 유행지난 옷이, 그녀의 몸 어느 한부분도 노골적으로 윤곽을 드러내지 않음에도,

나는 하얗고 가느다란 그 목덜미를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흴 그녀의 다리와 엉덩이를 떠올리게 된다.

볕 좋은 날이면 더울법한 날씨에서도, 그녀는 항상 발목까지 오는 치렁한 스커트만을 입었다. 묘하게 아쉽다.



늙은이들 가득한 이 기도원에서 요셉과 너무나도 빠르게 친밀해진 것과는 영 딴판으로,

미스 리와는 말 한마디 나눌 수가 없었다. 쭉 동향을 보아하니,  미스 리는 우리와 같은 기도원 숙소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 기도원 본관 위에 딸린 작은 다락을 제 방으로 삼고 거기서 지내는 듯 했다.



이 궁벽지고 갯강구 가득한 썩어가는 항구에, 젊은이라곤 딱 셋이다.

가끔 오는 , 예배가 아닌 숙박 기도를 제외하면 아마도 우리 또래를 볼 일은 없어도 좋다 하겠지.



“조금만 기다려”



쳐다보자 요셉이 천사같은 웃음을 또 지어보이며 마저 말했다.



“야동같은거랑은 비교도 안되는거 보여줄게”







요셉의 말이 무엇인지 알게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하릴없이 같은 일상을 보낸지 열흘 정도 되었을까, 내가 기도원에 입실한 이후로 처음-

숙박기도를 신청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입실 기간은 총 일주일로,  다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부근 교회에서 마땅한 기도 시설을 찾지못해 임시로 이곳을 대관하는 느낌이었다.

열명 가량의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속한 교회의 전도사의 인솔을 받아 봉고차에서 우 내렸다.

청년부들이다. 마뜩찮은 눈빛으로 삐걱대며 부식되어가는 기도원이며 좁아터진 숙소를 돌아보는 눈이

모두들 영 불만스러워보였다.



“와이파이 없어요?" 그게 첫 질문이었다.



눈썹을 갈매기처럼 힘주어 그린 진한 화장의 여자애였다.



“그런건… 없는데요”



내가 어물어물 대답하자, 눈동자에 짜증이 어리는게 명확히 보였다.



“야, 와이파이는 무슨 와이파이야. 딱봐도 전도사가 핸드폰도 다 걷어가게 생겼구만. 하...”



머리를 빡빡민,  그 나이 치고 험상?게 생긴 남자애 하나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남자애 말이 맞았다. 한없이 무기력한 표정의 전도사는 속한 청년부 열명의 핸드폰을 모조리 수거했다.

아마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인듯 싶었다. 전도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일일이 핸드폰을 걷는내내, 툴툴거리면서도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마 서로간에 어릴때부터 쭉 보아온 것 같다.



저 아이들에게,

뭘 기도하란 것일까.

무엇을 기도하든, 굳이 꼭 이런 해남 땅 절벽 위까지 와야만 하는 것일까.

나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백수니 타박 타박 들어오는 소득이 아쉬워 이 공간에 눌러앉았다치지만,

십대 후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 삐딱한 무리들이 여기서 열흘을 얌전히 보낼 수 있을까.



요셉이 누구보다 멀쩡한 얼굴, 표정 그리고 목소리로 기도원 내에서 지켜야 되는 몇가지를

수련원 교관처럼 조목 조목 주의를 주는 동안, 열댓명의 청년부 아이들은 내내 부루퉁한 표정이다.



“… 그러니까, 핸드폰 몰래 반입하시면 안됩니다. 어차피 해안절벽 주변이라 핸드폰 가지고 있어도

인터넷도 안되실 거구요. 당연하지만 기도원 내에서 요양하시는 동안에는 술, 담배같은거

절대로 안됩니다. 예배, 성경토론, 주일 기도, 나머지 스케줄은 교회에서 하시던 거랑 얼추 비슷할겁니다.

어려운 일 없고요. 자의로 오셨든 타의로 오셨든, 일단 여기 오셨으면 각자 나름대로

얻어가는 것이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역시 퍽 달변이었다. 멀끔하고 유연한 요셉의 언변을 듣는 동안, 몇몇 여자애들이 흥미가 동한다는듯

흘끗 흘끗 요셉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 하는 표정으로 해산하려고 하던 아이들을 요셉이 다시 불러모았다.



“웃기는 말이지만, 이 안에서는 애정행각도 절대로 금지입니다. 주님에게 하는 것 빼고요”



마지막 말에 아이들이 푸핫, 실소를 터뜨렸다.



“늘 드리는 주의사항이지만 연배있으신 분들보다, 젊은 청년부니까 더 신신당부하는 겁니다. 아셨죠?”



여지껏 쭉 보아온 느낌에- 요셉이 ‘애정행각 금지’를 맨 마지막에, 그것도 덧붙여 언급하는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요셉의 표정이란, 공기총을 들고 멧비둘기 모이를 뿌리는 눈빛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요셉의 마지막 주의사항이 끝나자 묘하게 가라앉는 아이들의 눈빛과 빠르게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시선교환이

그러한 내 생각을 더 굳혔다.



과연 그 첫날밤, 요셉이 말했던 ‘야동이랑은 비교도 안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터졌다.











5.



밤중에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 요셉은 실실 웃는 얼굴이었다.



“…뭐야”



덜깬 눈이 슬슬 감기는데, 요셉은 내 얼굴에 대고 손전등을 탁-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강한 불빛이 안구에 쏟아져내렸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번갈아하는 통에 눈이 얼얼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그만해"



“일어나, 얼간아. 재밌는거 보러가자”



“…재밌는거?”



“얼른”



눈을 비비며 따라나서자 요셉은 경쾌한 걸음으로 숙소 옥상으로 올라갔다.

낡은 계단은 요셉과 내가 올라가는 걸음을 조용히, 삐걱대는 소리로 받았다.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낮이면 덥다고 할 정도로 따듯한 날씨였지만, 바닷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까닭에 밤은 늘 쌀쌀한 곳이었다.

팔뚝을 비벼대며 몸을 웅크리고 따라올라간 곳에서, 요셉은 잠시 바닥에 손전등을 비추고 무언가를

찾는 기색이었다.



“뭘 찾는거야?”



요셉은 대꾸없이 손전등으로 한 부분을 가만히 비추더니, 이윽고 손전등을 입으로 물고 손으로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뭐…야?



나는 손전등 불빛 아래로 드러난 뻥 뚫린 어둠을 말을 잊고 쳐다보았다.

문인가? 지하로 통하는건가? 아니, 여긴 옥상인데?



손전등으로 비춰도 간신히, 한두발자국 앞에 계단 두어칸만 보일정도로 짙고 새카만 어둠이었다.

비로소 이 기묘한 양식의 기도원 건물들이 새삼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어설픈 서양양식과 일본풍 벽돌 건물들, 층계 사이가 이상하리만큼 넓어서 공간 낭비가 심한 것같은 이 건물.



비밀통로 따윈 구시대 전설, 그 안에서도 유물 취급받을만한 현대에서- 실제로 그런 것을 목격하자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느껴졌다.



웅장하진 않았다. 사람 한명이 간신히 걸어내려갈 법한 좁은 크기의 석제 계단이다.

요셉이 손전등을 손에 다시 쥐어잡고, 따라오라는 듯 내게 고개를 까딱 움직여보인다.

먼저 쑥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고, 나도 여러번 왼발을 내디뎌 앞 디딜 곳을 가늠한다.



계단은 짧았다. 층계와 층계 사이의 일미터 남짓한 공간을 이렇게 계단으로, 복도로, 그리고 또 계단으로

전 층계 사이에 걸쳐 뚫어놓은듯 했다.



몹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죽은 쥐 시체라도 있는 것일까. 일미터가 못되는 높이의 통로에서 걷기 위해

요셉과 나는 몸을 잔뜩 구부리고 오리걸음처럼 걸어야했다.



석회가루, 떨어진 나무판자, 돌부스러기. 내 위치가 어딘지 가늠이 전혀 안될 정도로 어둡고 텅 빈 공간을

요셉은 마치 제 집 드나들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척척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오리걸음을 지속하는 그 순간, 아… 하는 교성이 어둠을 뚫고 내 귓속에 가만히 파고들었다.



“여기다”



목소리를 한껏 낮춘 요셉의 말이, 조용해서 더 선명하게 들렸다.



요셉이 멈춘 곳 바로 앞에서, 미미하게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들어오는게 보인다.

괴이하다. 빛이란 항상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것만 보아왔는데,

우린 지금 아래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빛을 보고 있다.



빛이 들어오는 구멍은 바로 환풍구였다.

구색만 낸 그 듬덩듬성한 구멍 앞으로, 요셉과 나는 가만히 간격을 좁혔다.



우리 둘의 시선이 낙하하는 그곳으로, 오늘 낮에 보았던 고등학생 둘이 몸을 나누고 있다.

좁은 침대에 구겨지듯 섞인 둘이, 마치 기름과 물처럼, 비중이 다른 액체처럼 섞이기를 시도하며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얼핏보면 흥분할 만한 광경이 아니다. 

환풍구는 좁고, 구도도 형편없다. 실제로 고등학생의 정사란 것이 묘하게 자극적으로 와닿지만,

어두침침한 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바라볼만큼 유혹적인 광경은 아니다.

소녀의 외모도 빼어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성기에 피를 몰리게 만드는건,



불과 이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실제로 타인이 섹스를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신선함이었다.

카메라를 거친 것도 아니다. 연출된 포르노도 아니다.

짓?은 농담처럼, 나는 그저 담담히 일어난 두 사람의 섹스를, 지독히도 침착하게 관찰하고 있다.



마법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바로 지척에서 섞이고 있는 남녀를 바라보고 있다는건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둘이 교성을 지르며 섹스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헛기침만 해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걸 당장에 알아차릴만한 거리다. 그 가까움이, 의도된 연출이 아님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침 삼키기도 조심스럽다. 좁은 기도원 방을 생각해볼때, 내가 누워있었을 때 천장까지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가늠해볼 때, 나는 과장삼아 팔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이다.



요셉이 다시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는 통에, 나는 환풍구에서 시선을 떼고 요셉을 쳐다본다.

공포 영화의 클리셰처럼 자신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춘 요셉이, 천천히 입모양으로만 말한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서, 요셉이 무엇을 말하는지 입모양으로 유추한다.



‘기다려’



손짓과 함께 입모양이 더해진다. 바닥을 가리켜보이는 손짓이 명확하다.



‘여기서’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뭘 하려고 하는걸까?



오리걸음으로 다시 돌아온 길을 걸어나가는 요셉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환풍구 구멍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나 혼자 공간을 차지하는 통에 아까보다 더 잘보였다.



둘의 움직임이 점차 격렬해진다. 나도 마른침을 삼키며 조용히, 그러나 열기를 가지고 그 둘을 관찰한다.

서로를 향해 치닿는 움직임이 정상을 앞둔 시점에, 텅빈- 조용한 기도원 복도 사이 사이로

문득 문득 악물린 신음이 새어나가는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말했던 것이 뭔지, 명확히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열기가, 소음이, 신음이, 움직임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멎어버리는 광경.



끝으로 치닫는 뜨거움이 순식간에 빙해 속으로 처박힌 것처럼, 꽁꽁 얼어붙어버리는 광경을

다른 곳이 아닌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이 순간, 나는 마치 내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리모콘을 가진

전능한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섹스의 끝, 사정의 끝, 오르가슴의 끝. 한순간에 멈춰세워지는 것에 대부분의 세상사가 익숙하지 못하겠지만,

생동감이 끓는 체온처럼 사방으로 비산하는 교미의 마지막이, 뒷머리를 잡아채이듯 강제로 멈춰세워지는 장면에

나는 잠시나마 전율 비슷한 것까지 느꼈다.



가만히, 요셉의 목소리가 천장 아래 문 앞에서 나지막히 들려오는게 들렸다.



“아침에 주의드렸죠. 그만둬주세요, 다 들립니다”



무미건조한듯 하지만, 나는 어감에 희미하게 묻어나는 요셉의 웃음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거기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두 어린 남녀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교성이 가득채우던 방과 복도들을 이젠 침묵이 무서운 기세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하고 요셉이 방 앞을 떠나는 소리가 들려와도

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자세 그대로 못박혀있다.



머리를 민 험상?은 남자애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천천히, 자신에 아래에 깔린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기는게 보인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하… 좃같네, 진짜로…”



“어떻게해? 너 빨리 나가, 얼른… 니 방으루 가 빨리…”



“얼마 안남았는데…”



“말 못들었어? 빼, 얼른”



달아오른 물건을 천천히 수습하는 남자와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듯 이불로 몸을 서둘러 감싸드는 여자까지

이것이 요셉이 말한 ‘재밌는 것’ 일까? 재밌는지는 몰라도, 쉬이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건 분명하다.

누가 남녀의 섹스를 지근거리에서 이렇게 관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질주하는 기관차를

일시에 멈춰세우는 저 장엄함과 측은함을 목격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리걸음으로, 다시 옥상으로 올라오자 숨이 넘어갈듯이 낄낄거리고 있는 요셉이 보인다.



“봤어?”



요셉은 웃느라 정신이 없다.



“절정의 순간에, 꼭 그때 노크를 해야된다고. 그게 재미거든.

남자든 여자든 호흡이 거칠어지고 소리가 높아질때, 딱 두드리는거야. 봤지?

귀신같이 조용해지는거…”



“무시당하거나, 몰매 맞은 적은 없어?”



“돌았냐. 여기가 밖이라면 그럴수도 있겠지. 근데 기도원이야. 지들도 그걸 무의식적으로 뼛속까지 안다고.

물고 빨고 떡치고 그럴데가 아니라는거 아는거야. 못참고 선을 넘은건 자기들이다… 잘못한건 우리다…

희한하게들 그렇게 생각을 해. 사실 떡 좀 치면 어때? 여기선 안되고 밖에선 되나?

그런데도 다들 항변 한마디 못해. 자 봐봐, 쟤네 내일이면 우리 눈도 못마주치는 아주 순한 양이 된다고.

차있는 중년 부부같으면 짐싸서 다음날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고”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는 요셉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들여다보니, 의문점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근데 이거 뭐야? 왠 비밀 통로야? 이거 너 빼고 다 알아?”



요셉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 여기가 원래 뭐하던덴지 모르지?”



고개를 끄덕이자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요셉이 말을 이었다.



“여긴 말이야, 원래도 기도원이었어”



“…”



“한국은 총기 밀제조에 민감해. 내가 그 공기총을 어디서 얻었겠어?

주웠단 말씀이야, 여기 처음 들어오던 날"



시시껄렁한 농담인가 싶어서 요셉을 쳐다보는데, 표정이 진지했다.



“알지 모르겠는데, 이 건물 양식보면 옛날 드라마같은거 안떠올라?

이거 일제시대때 지어진거야. 왠 돈많은 지주가 지은거라고. 십자가 하나 박아놓고,

숙소 차려놓고 본관차려놓고. 존나 거창하고 뜻깊은 이유가 있지.

만주나 상해로 무기 밀수, 폭탄 밀매하던 독립군 숨겨주려고 그랬다 이말이야”



매일 조금씩 썩어가는 이 건물이 그런 그럴듯해보이는 연유로 지어진 거라고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늙은이들이 정신나간 울음과 웃음을 교대로 질러대고, 재규어 세단을 모는 괴상한 목사에,

잡초가 우거진 뜰을 가진 이곳이 그런 유서깊고 고상한 이유로 만들어졌다니.



“숙소, 기도원 본관. 다 층계 사이가 어정쩡하게 남아도는 이유가 그거라고”



“본관도 그래?”



“그래, 거기도 여기랑 비슷해. 암튼”



“암튼?”



요셉이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대답이 지체되는 동안 나도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한개비 물었다.



“여기서 먹이고 재우고 하다가 순사들 뜨면 잽싸게 층계 사이 이 쥐구멍으로 숨고 그랬던거야.

근데, 어느날인가 누가 처신을 잘못했는지 몰라도, 여기서 먹고자고 하던 한국 군인들이 죄다 일망타진당했대”



“건 왜그랬을까?”



“모르지. 그런데 생각해봐. 우리가 본 환풍구처럼 각 방을 훔쳐볼 수 있게, 부러 그렇게 해놓은거라고 내 생각엔.

그런데도 그렇게 죄다 잡혀들어갔다는건 뻔한거 아냐? 누가 꼬바른거지 뭐. 난 그거 사진으로 봤어.

여기서 지내던 반일 인사들, 한국 군인들, 수십명이 죄다 귀랑 코가 베여서 형무소 앞에 머리가 주렁주렁 줄로 엮어놓은 사진.

꼭, 과일 나무 같이.”



얼핏 얼핏 교과서에서 보았던 것 같은 그 일본의 만행이 이미지로 떠오를듯하다.

담배를 필터까지 다 태운 요셉이 멀찍이 꽁초를 집어던졌다.



“옛날에 역사대백과였나. 아마 해적판이었을거야. 애들도 보라고 만든 책에 그런 사진을 버젓히 출판해놨을리가 없지.

누렇게 뜬 종이에서 봤단 말이야. 잘린 머리가 주렁주렁한 그 형무소 앞 풍경을.

그 때, 순사들이 닥쳤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요셉이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역시 천사같은 웃음이다.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어.

당시에 이곳 지게꾼으로 일했던 석쇠라는 노비가 있었어. 나중에 다마루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개 지게꾼이었던 주제에 전도사가 되고, 나중에 기도원을 운영하는 목사가 되어버려”



기분이 이상해진다.

요셉이 빙글 빙글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지게꾼에서 대형 기도원 목사로 인생 역전을 한 그 다마루라는 남자가, 바로 우리 꼰대의 아버지 되시겠다 이말이야.

난 항상 궁금했어. 독립군 대거 축출때, 당시에 이 기도원을 지었던 목사도 잡혀갔거든. 주도자가 멀쩡할리 있겠어?

그 사람도 목이 잘렸단말이지. 근데 그 이후로 일본 토지조사원은 비천한 노비 지게꾼이었던 석쇠, 다마루에게

이 기도원의 운영을 맡겨버려. 아주 파격적으로”



상상이 일기 시작한다. 만석꾼인 주인이 독립군을 불러 먹이고 재우고 숨겨준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국적 잃고, 고향 잃고, 그저 돈 있으면 그만일 것 같은 분위기에- 때마침 대일본제국의 적을 지붕 아래 숨겨주는 놈이 있습니다.

한 마디면 인생이 확 뒤집힐 것 같은 어느 지게꾼 노비의 머릿속이, 상상에 선명해진다.



“우리 꼰대는 말이야. 줄을 잘 타. 본인이 어디 서야할 줄 아주 잘 알아. 아마 그렇게 같은 동포 팔아먹고

신세고친 그 다마루라는 남자의 핏줄이 분명하다 싶어.”









5.







꿈을 꾸었다.



기도원 주변에 있는 을씨년스런 죽어가는 나무들한테서, 도저히 열릴리 없다고 생각하던 과실들이 주렁주렁한 꿈.

물론 그건 잘렸다던 독립투사들의 머리들이었다. 꿈인 까닭인지, 나는 두려움 없이 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틀어잡힌 머리카락들이 줄기라도 되는 듯 가지마다 억세게 묶여 있었다. 희한하게도, 단 과실 향이 가득했다.

과당 넘치는 과일들이 그러듯 단물이 떨어져 내리듯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핏물들이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지에 묶인 찡그린 표정의 머리가 ‘안녕?’ 하고 인사했다.

갑자기, 주렁주렁 매달린 수십개의 머리들이 동시에 눈을 뜬다.  그리곤 다같이 무어라 소리쳐 내뱉기 시작했다.

목사의 주도아래 예배를 시작했던 신도들이 내뱉던 기묘한 방언들이었다.



어떤 머리는 낄낄 거리고 어떤 머리는 흐느꼈다. 괴성을 지르는 머리도 있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머리도 있다.

마침내 나는 그 기묘한 과일 나무에게서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던 머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재차 말을 건낸다.

‘안녕?'



안녕, 하고 답하는 사이, 잠에서 깼다.



식은땀이 흐르는 채 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벽 세시쯤 되겠다, 싶었다.





몸에 흐르는 찬 땀기를 닦는 내내 나무 아래서 쏟아지던 핏방울들이 떠올라 선뜩했다.

수건으로 정신없이 몸을 훔쳤다.



그리고, 내 방 중앙에 달린 환풍구에 눈이 가 닿았다.



어두컴컴한 방이지만, 깜깜함에 익숙해진 눈은 한부분만 더 시커먼 그 구멍을 어려움없이 식별해낸다.

뻥뚫린, 눈알이 도망간 눈구멍 같은 구멍이었다.

누군가 있어도, 숨소리 죽이고 있으면 모를 그런 구멍. 내가 그 고등학생의 정사를 훔쳐봤을 때처럼.

여느 관찰자가 나를 소리없이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셉의 말로는 비밀 층계를 아는건 기도원 안에서 자기 뿐이라고 했다.

어릴때부터, 놀거리 하나 없는 이 거대하고 칙칙한 기도원을 이곳 저곳 쏘다니던 그만이

이곳에서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을 꿰고 있다고, 했다.



어린 요셉이 저 홀로 잡풀 우거진 기도원 뜰과 숙소, 본관 건물을 오가며 이곳 저곳을 탐험하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담배를 몰래 필 곳을 찾아 구석 구석 뒤졌겠지. 요셉은 담배를 중학교 시절부터 피웠다고 했다.

신도들 몰래, 그리고 심심하면 기도실에서 자신을 두들겨패는 꼰대 목사 몰래.



매번 멧비둘기를 쏴죽이기전에 심심찮게 있는 폭력을 담담히 알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까지 목사가 두렵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게 보이는 모습은 항상 정돈되고, 깔끔하며, 기운 넘치는 중소기업 사장 같은 모습 뿐이었다.

나는 요셉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같이 분개하지도, 이 사실을 멈추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지도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사는게 버거워 월 백을 받으러 해남땅 촌구석으로 빌빌 기어든 자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폭력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살며, 우연히 찾아온 또래가 그것에 관해

걱정이나 분노 어느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된 요셉마저도, 기도원 밖에서 정의하는

‘정상적인’ 사람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는걸, 그때마다 자각하고 이상한 안도감에 빠졌다.

기도원 전도사였다는 할아버지의 존재가 불편하다가, 이곳이 사이비라는 걸 알고는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쓸모있는 사람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이 속해있는 이 공간의 이상함이란,

비틀리고 이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이란 ‘이런 곳’이지… 하는.



매번 발길에 걷어차이면서도 도망갈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시골 개처럼.

그럼에도 주인이 오면 꼬리를 흔드는 그 불쌍하고 멍청한 짐승들처럼.

요셉과 나는 닮았다.





젖은 몸을 대충 수건으로 닦아내고 옆으로 수건을 집어 던졌다.

눕자, 빨려들듯 어두운 그 구멍과 시선이 정면으로 맞닿는다.



잘린 머리들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눈 앞에서 떠다녔다. 순사가 들이닥치기 전,

저 구멍으로 방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을 과거의 그들이 떠오른다.



잘린 머리의 입이 움직이며 하는 ‘안녕’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자, 나는 그 구멍을 계속 마주보지 못하고

벌떡 몸을 다시 일으켰다.



담배라도 한대 피워물고 와야겠다 싶었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뜰로 걸어나오자, 항상 그렇듯 쌀쌀한 밤공기가 다리에

닭살을 돋아올렸다.



불을 켜고 연기를 뿜는동안, 지대가 더 아래에 있는 본관이 어슴푸레 보였다.



순간 담배를 든 손이 우뚝, 정지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일순 심장을 두근 뛰게 만들었다.



미스 리. 본관 윗 다락에 살고 있는 미스 리.

요셉의 말로는 모든 건물이 동일한 숨겨진 층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 본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낡으칙칙한 붉은 벽돌이 점차 뚜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밤바다에 끼는 해무 때문에 어슴푸레해 보이는 그 구조가, 눈 앞으로 달려들듯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자고 있을 것이다.

얌전히 담배나 피고 내 방으로 들어가자. 허튼 짓 하지 말자. 식객으로 얹혀 허드렛일 하는 주제에

사고라도 치게 된다면 말없이 여길 떠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목덜미와 손, 발목 말고는 칭칭 싸매어 드러내지 않는 뿔테낀 차가운 표정의

그녀가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가 계속해서 궁금해져왔다.

잘때도 그렇게 긴 옷을 입을까? 얌전히 누워잘까? 아니면 여느 사람들처럼 팔다리를 내던지고

편하게 잘까? 어쩌면 속옷만 입고서 잘지도 모른다.



상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동안 손에 쥔 담배개비가 속절없이 다 타들어가 길게 늘어졌다.



숙소로 향하는 뜰을 익은 눈대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발에 종종 걸리는 잡초 무더기를 그대로 헤치고 걷는 통에 종아리가 거친 풀에 쓸려 쓰라렸다.



단순히 걸음을 옮기는동안, 내딛는 한걸음마다 마음 속 흥분이 불쑥 불쑥 자라는게 느껴진다.



본관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요동이 더 심해졌다.

무릎이 후들 후들 떨리며 몸에 힘이 스윽 빠져나가는 듯 했다.



옥상이겠지. 문은 거기있을 것이다.

예배하는 곳으로 쓰이는 본관 1층, 그리고 작은 셋다락같이 생긴 2층, 그리고 가끔 빨래를 널어말리는 3층.

3층에 올라가 요셉이 했듯 바닥 문을 찾아열면, 그 일미터 남짓한 비밀 층계가 드러날 것이다.



옥상으로 올라가, 발치로 여닫는 문을 더듬어 찾았다.

새벽중에 일어나 이짓거리를 하고 있는 나도 결코 정상은 아니다. 뼈저린 자아성찰이다.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않는 온갖 행동이 점철된 이 기도원에서 나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고.



발문에 미묘한 높낮이의 철책이 덜컥- 걸려든다. 손을 더듬어보니, 과연 바닥과 색이 비슷한 육중한

쇳문이다. 아래위로 여닫는 모양새가 숙소에 있던 것과 꼭 같았다.

들어올리자, 생각보다 큰 소음이 쇠를 긁는 모양새로 커다랗게 울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잔잔히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드러난 뻥뚫린 어둠을 보자, 생각지도 못했던 일말의 망설임이 드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망설임은 생각보다 짧았다. 손전등도 없는 지금, 나는 저번에 요셉과 함께 했을때보다

훨씬 더 주의를 들이며 발을 찬찬히 내디뎠다.



숙소에 있던 층계참보다 훨씬 작았다. 아래로 진입하자 야트막하고 좁은 것이 눈에 찬찬히 들어왔다.

구석즈음에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소층계가 보였다. 기도원 본관 위로 통하는 층계일 것이다.

자극 없는 기도원에서, 자위의 대상으로 떠올리던 여자의 위에 서있다. 아무도 몰래.

저리듯이 손발이 미미하게 떨려왔다.



환풍구가 어디지?

컴컴한 까닭에, 그리고 불 하나 켜있지 않은 까닭에 어딘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기척을 죽이고 찬찬히 바닥을 ?는 동안, 이윽고 다른곳보다 아주 약간 더 밝은 작은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침을 삼킨다.

천천히, 소리를 죽여 다가가는 동안 심장 고동이 점차로 더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 작은 구멍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쉼호흡을 했다.

내려다본다.



작은 쪽창이나마 있는 숙소를 훔쳐볼 때보다 더 어두웠다. 그야말로 깜깜하다.

조바심내지 않고, 눈이 어둠에 익기를 기다린다.



삼분여가 지나자, 서서히 다락에 있는 것들의 어슴푸레한 실루엣들이 동공에 담기기 시작했다.

넉넉한 방이다. 내가 있는 신도 숙소 따위보다 훨씬 넓다. 나무 마루들의 선이 하나 하나 식별되기 시작하고,

세면대, 어울리지 않는 둥근 바닥카펫, 작은 소파, 옷걸이 행거, 그런 것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소파에 이르자 내 동공이 한층 더 커지기 시작한다.

흰 매트리스에 흰 천이다.



그런데… 누워있는 실루엣이 이상하다.



둘이다.



어째서 둘이지? 싶은 생각에 눈에 더 힘을준다. 부릅뜨고 누워있는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용을 쓴다.



남자다. 그리고 여자다.



여자는 미스리일 것이다. 남자는 누구지? 이 외간 기도원에 남자란 별로 없다.

매번 방문하는 신도들은 예배가 끝나면 죄다 빠져나가고, 나 혹은 요셉 아니면 목사 셋 뿐이다.

숙박 기도를 하고 오는 일행들을 제외한다면.



예상이 맞아 떨어지며,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는 풍채좋은 남자의 모습이 분간되었다.

목사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와 품 좋은 정장을 벗어던지고, 사각 속옷만 입고 오르락 내리락 뱃구레를

움직이며 잠에 빠져 있다.



싱글이라기엔 크고, 더블이라기엔 작은 애매한 침대다. 공간을 죄 차지한 목사 옆에 작은 선처럼 다소곳한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부터 ?어 나가는 내 시선이 흔들린다.

신비롭다면 신비로웠던 기도원의 그 작은 새같던 소녀의 옆에 누워있는, 사이비 기도원의 목사가

내 생각을 온통 붙잡고 흔드는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는 통에, 진정이 되질 않는다.



하얗고 가느다란 다리다. 마찬가지로 흰 속옷이다.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 다리와 허리로 이어지는 그 천조각이,

쉬이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흰 몸이다.

치렁치렁한 원피스 스커트로 감싸인 몸이, 이 작은 다락에서 온전히 드러내어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희디 흰 허벅지에서 직선의 보랏빛 선 몇개를 발견한다.

흰 빛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보라색 선들이었다. 뭘까, 저게?



시선이 계속 위로 오른다.

차마 장기가 다 들어가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늘고 흰 허리를 지나, 내 시선이 브래지어로 이어져간다.

침 삼키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의 관찰이다. 내 시선과 그녀의 피부가 ?닿아 스쳐올라가는 내내 숨소리 하나 내쉴수 없다.

그리고, 그자리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충격이 내 관찰을 산산히 부숴놓는다.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6.



어둠에 익은 눈이, 단발 머리로 감싸인 그녀의 눈동자가 이 환풍구 구멍으로 뻗어오는 것을,

명확히 드러내 보인다.



새벽에 두 눈을 명확히 뜨고 환풍구 구멍을 뚫어져라 쳐다볼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나신을 꼼짝도 하지 않고, 드러난 몸을 가릴 생각도 않고, 그저 차가운 시선이 내 눈동자로 쏘아져와 박힌다.



숨이 가빠져온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일까? 어떻게?



산중에 호랑이와 마주한 사냥꾼이나 심마니들은, 몸이 굳어진 것처럼 그 산주인들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지.



어둠속에 미미하게 빛을 발하는 그녀의 흰 눈동자와 천장을 사이로 마주한 내내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가운 시선이었다.



경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비웃는 것 같기도 했으며,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벗고 있는 것은 그녀이지만, 반대가 된 기분이다.

온 몸이 벗겨져 사람들이 가득한 시내 한복판으로 쫓겨난 기분이었다.



얼른 이 층계를 벗어나 니가 자고 있던 숙소로 돌아가! 머리속 이성이 쉴새없이 명령을 내렸지만,

나는 정말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벗은 몸이며, 팬티며, 브래지어며, 흰 피부며, 내가 간절히 원했던 다른 부분으로 향할 시선의 여유따윈 조금도 없었다.

나는 그 날카로운 시선에 못박힌 것처럼 미동도 하지 못하고, 환풍구 너머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움직여, 움직여, 얼른 움직여 이 머지리같은 놈아.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잠이 덜깨인 목사의 몸이 뒤척인다.

아주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돌아선 풍채좋은 중년의 남자가, 손을 그녀의 팬티 속으로 밀어 넣는다.

마치 엄마의 젖을 찾아 쥐는 어린아이의 잠투정처럼.



그리고 그 상태로 미동없이, 다시 잠 속으로 빠진다.



까슬한 음모의 감촉이 내 손으로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목사의 일련의 동작 중에도, 서슬퍼런 그녀의 시선은 환풍구를 마주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아무 미동도 없이.



두려움이 든다. 정신을 차리자.

힘겹게, 아주 힘겹게, 발을 뒤로 움직여 환풍구 앞에서 뒷걸음질을 한다.



머릿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시선이 걷히고, 참았던 호흡이 일순간 폭팔하기 시작한다.

폐가 잊었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기 시작한다. 뒷덜미에 땀이 선뜩하게 흐른다.



그럴리가 없다. 요셉이 말하길 그 밀폐 층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설령 그 층계의 존재를 안다한들, 그 어둠 속에서 기척하나 없이 있는 자신을 어떻게 꿰뚫어 본단 말인가.



정신없이 오리걸음으로 왔던 길을 더듬어 나오고, 옥상에 올라와 철문을 도로 닫는다.

잡초 우거진 뜰을 다시 정신없이 헤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다리에 닿는 잡풀들이 다리를 잡아채는 손처럼 죄다 불안하다.











“너지?”



“뭐?”



“시치미 떼지마, 머저리새끼야”



토요 예배가 끝난 뒤, 담배를 피우러 뒤뜰로 돌아나가는 찰나, 요셉과 미스리가 대화하는게 들려왔다.

왜였을까, 나도 모르게 우뚝- 담벼락 너머에 멈췄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 왜 그래 진짜? 그냥 죽어. 한심하니까. 넌 스스로 한심하지도 않니?”



“… 뭐라는거야. 또 왜그래?”



이상하다. 달변인 요셉이 저렇듯 어눌하게 쩔쩔매는 것도, 표독한 표정 하나 지을줄 모를것 같던

미스 리가 저렇듯 경멸의 목소리로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것도.

둘 사이에 뭐가 있었을까? 그러고보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오기전까지, 어린 사람이라곤 둘 밖에 없었을텐데. 요셉은 내게 한번도 미스리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미스리가 요셉을 몰아붙이는건,

어젯밤 일 때문일 것이다. 초조해진다. 흰 나신과 차가운 눈빛이 생각난다.

내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스리는 어젯밤 환풍구 너머에 서있던 것이

요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안그래도 사는거 구질구질하고 좃같아. 너까지 안그래도 충분히 좃같다고. 알아?”



“말 한마디 안섞다가 뜬금없이 무슨 짓인데? 뭐때문에 이러는건지 짐작 한개도 안가니까

설명해주고 욕을 하던가 해…. … 화나려고 하니까”



요셉의 목소리가, 기도원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흔들리고 동요한다. 뺨을 얻어맞아도 변함없던

톤과 억양에 화가 담긴다.



“넌 진짜… 최악이야.”



그 말을 끝으로 미스리가 내가 있는 쪽으로 휙 돌아 걸어 나온다.

어쩔줄 모르고 엉거주춤 얼어있는 나를 발견하고 주춤, 걸음을 멈춘다.

차갑고 차가운 눈이다. 흘끗 나를 쳐다본 그녀가 그대로 냉기어리게 나를 스쳐지나간다.

어젯밤 그 눈동자 그대로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담배를 든 손으로 요셉이 서있는 뜰로 걸어들어가기도, 모른척 숙소로 돌아가기도…



“뭐해, 담배 피러왔으면 피우고 가”



깜짝 놀라고 만다. 담벼락 너머에서 주춤주춤 요셉이 있는 쪽으로 걸어들어간다.



“...무슨 일 있는거야?”



죄책감이 마구 심장 아래 언저리를 찔러대는 기분이지만, 모른 척 요셉에게 말을 건넨다.



“글쎄, 모르겠네… 원래는 소닭보듯 하고 지냈는데… 나한테 말 안한지 한참 됐거든…”



“둘이 싸웠어?”



말없이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 요셉을 보는데, 이상한 감정이 든다. 뭐지? 이게?



“여긴 정상이 없어”



요셉이, 기도원에 온 이후로 내내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생각해온 말 그대로를 정확히 꺼낸다.

맞다. 여긴, 정상이 없다.



“정상이 없는 곳에 멀쩡한 사람이 들어오면, 못 견디는게 당연한거야.”





순간, 내가 들었던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지, 불현듯 캐치해냈다.



갖고 싶어 마지않았던 것을 다른 사람이 별다른 노력없이 손에 쥐었을 때, 그걸 지켜보던 심정.

질투다. 이건 질투야.



희한하다고 생각한다. 체념하고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동안, 결코 들어본 적이 없던 기묘하고 생경한 감정이다.



그런데,

말을 아끼는 요셉과, 방금 전에 있었던 미스리와 요셉의 대화가 내포하고 있던

악연으로 헤어진 연인같았던, 서로간의 혐오가 담긴 애증이- 내게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총 쏘러 갈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셉이 목사한테 얻어맞지 않고 제안해오기는, 처음이었다.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목사가 팬티 속으로 손을 밀어넣던 내 또래의 그 비밀스런 소녀와, 기도원에 묶인 천덕꾸러기 개처럼 사는 요셉이,

그들의 과거가, 점차로 궁금해졌다. 온갖 추측과 추리가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이상스런 분위기와 일견 혐오하는 듯하지만 과거에 서로에 감정을 나눴던 것 같은 그들의 대화가

내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짝사랑 상대방의 일기장처럼 내내 생각 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해독하고 싶었다.



방법은 꽤 간단했다. 열흘에 한번씩 읍내로 나가 생필품을 살때, 나와 요셉은 항상 같이 파란색 트럭을 타고 갔다.



담배를 한보루씩 사들고, 라면이며 락스며 자질구레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득 사서 돌아오는게 일과다.



요셉이 잠시 슈퍼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몰래 사비를 들여 소주를 여러병 샀다.

안주로 삼을 오징어도 샀다.



담배는 여러번 같이 피웠어도 술을 같이 마셔본 적은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뻔뻔히 캐묻기에 위해서는, 같이 취기가 오르면 보다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늘 그렇듯 담배보루를 숨기는 좌석 아래 부분에, 사놓은 소주병과 오징어 몇마리도 같이 숨겨넣었다.





생필품을 정리하고, 내 방으로 소주와 안주거리를 숨겨놓은 다음 나는 내내 기회를 엿보았다.

술을 터놓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새벽녁이 적당할 것이다.







요셉은 대취했다.



그는 술도 잘마셨다.

새벽녁에 깨우자, 졸린 눈을 떠올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옥상에 차려놓은 조촐한 술상을 보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역시, 천사같은 웃음이었다.



“너랑 술 한잔 할 생각을 못했네. 미안해, 이 그지같은 곳에 있다보면 이런 술자리 한번도 퍽 쉬운게 아니거든”



요셉은 내가 내미는 종이컵을 마다하고 그대로 병째 들고 시간을 들여 소주를 마셨다.

쓰다는 표정 한번 없다. 간간히 어설프게 구워진 오징어 다리를 씹는 것 말고는 유쾌한 표정으로 술을 들이켰다.



물어볼까, 물어볼까, 타이밍을 재다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셉말대로 ‘이 그지같은’ 곳에 살면서도 괴이한 낙천성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그가,

내게 한번도 말을 꺼내지 않던 미스리에 대해서 물어보려면 아직은 아니다. 그가 좀 더 취했을때, 물어보기로 한다.



요셉은 내게 술을 억지로 권하지도 않았다. 세병을 거푸 마시고서야 조금 눈이 풀리는게 보였다.



“야아… 기분 좋다. 나도 종종 마셨는데… 늘 혼자마셨거든. 동갑내기 친구랑 마시긴 처음이다…

혼자 먹다보니까 먹을 요량도 생각도 안났는데. 이제 종종 마셔도 되겠다. 기분 좋다.”



내가 잠자코 있자, 요셉이 기분좋게 웃으며 말을 덧붙여왔다.



“말해”



“…뭐?”



“뻔하지. 담배 하나 피우기도 눈치보던 니가 먼저 술상 차려놓고 나 부를정도면 뻔하잖아.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서 부른거 아닌가, 싶었지.”



요셉은 날카롭다. 둥글 둥글 웃는것 같으면서도 찌르는데가 있다.

이 기도원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얻은 것들일까. 어른스러우면서도, 징그럽게 조숙한 아이같기도하고.

종잡을 수 없다.



“그… 얼마전에… 미스 리랑, 말이야.”



“아, 그거”



그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셉이 품을 뒤진다. 낡아빠진 카키색 미군 바지속에서, 꼬질꼬질한 스냅사진을 꺼내 내게 건넸다.

…그녀다. 요셉과 미스리가, 얼굴 맞대어 붙이고 환하게 웃고 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연인이다.

내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사진 속 둘은 지금보다는 더 어려보인다.



“지금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게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요셉이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기독교 아동부 담당 전도사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하는 구연동화같이, 과장된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톤으로,

명확하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이상한 기도원에 요셉이라는 남자아이와 미스리라는 여자아이가 살았어요”



진부한 시작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아름답게 끝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동화책을 펴드는 아이처럼,

나는 떨며 요셉의 말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취한 요셉이 왼손과 오른손에 소주병을 한개씩 집어든다. 마치 왼손과 오른손에 인형을 하나씩 끼우는 복화술사처럼.

알록달록한 헝겁인형이 아니라, 다 마셔서 비워진 소주병이라는 것만 다르다.



“둘은 이상스런 기도원에서, 서로 처음만나자마자 반했어요”



마른 침을 삼키며 요셉을 쳐다본다.

금지된 동화를 꺼내서 읽는 아이처럼.



“미스리는 엄마가 아팠어요.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집을 나와버리고 나서는 남겨진 엄마와 어린 여자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생활비도 막막한 상황에, 엄마까지 덜컥 아파버리니까. 미스리는 막막했어요.

어린 여자애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할 수 있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닥치는대로 해도 엄마 병원비를 벌기엔 막막했어요”



요셉이 한쪽 소주병을 들고 가만히 흔들어보였다.



“근데 그때 맘씨 좋은 아저씨가 한명 나타났어요.

엄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의 주주 중 한명이었던 목사님이었어요.



엄마 치료비를 지원해줄 수 있다고 했어요.

학비도 벌어야되고, 엄마가 나은 다음에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공부도 해야한다고 했지요. 꿈같은 이야기였어요.

미스리는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중퇴했기 때문이었지요. 돈 벌기에 목매느라

꿈도 꾸지 않았던 공부까지 해야한다고 말해준 어른은 처음이었어요.



‘아저씨가 일하는 기도원에 와서 허드렛일이라고 거들련? 치료비는 걱정말거라.

월급도 줄 수 있단다’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 아니겠어요?"



천역덕스러운 요셉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듯이 억양의 높낮이를 다루는것이 퍽 자연스럽다.



“이상스런 기도원에 온 소녀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감당하기 어려웠던 병원비가 수납 데스크에서 매달 꼬박 꼬박 지불될때마다, 목사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기도원에서 신도들을 안내하고, 잡무를 도맡아하면서도 너무 너무 행복해하고 감사했어요.



아줌마 아저씨 신도들이 방언을 내지르고, 해안 절벽 끝에 콕 처박혔지만 무슨 상관이겠어요?



기도원은 지옥같던 삶에서 바야흐로 처음 펼쳐진 낙원같은 거였으니까요”



요셉의 목소리가 여전히 꾸밈없이 밝았고, 소주병 두개를 나누어 쥔 양손이 너울 너울 춤추듯 흔들리가

소주병 두개를 부드럽게 이어 붙여보였다.



“요셉이라는 아이는 버려진 고아였고, 역시 마찬가지로 천사같은 목사에 의해 구원받은 아이였지요.



세상에서 도려내듯 버려진 둘은 처음부터 동질감을 느꼈어요.

기댈곳 하나 없는 세상에서 마치 둘 만이 서로를 알아보듯 강한 무언가를 느꼈어요.

비맞은 개처럼 살아오던 요셉에게 소녀는 마치 따듯한 데운 담요 같은 것이었어요.



둘은 수줍게 서로 감정을 토로했어요. 아무도 없는 절벽 끝 기도원이 순식간에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처럼

따듯하고 소란스러운 곳인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흡족하고 흡족했어요”



요셉이 이어 붙였던 소주병들이, 서서히 균열이 일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목사 아저씨가 기도실로 미스리를 불렀어요.



‘너는 내 첫사랑을 닮았단다’



참말로 그렇다면, 목사 아저씨가 그토록 헌신적인 친절을 베푼 것도 짐작이 되지 않을까요?

목사는 소녀를 자기 옆자리 앉히고, 더듬기 시작했어요.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미스리는 가엾게 빌고 빌었지만, 목사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어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데, 목사가 나지막히 말했죠...



“네 엄마를 생각해!”



쩔그렁!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소주병을 떨어뜨렸다. 멍하니 요셉을 쳐다보았다.

요셉의 입에서, 목사의 기운 넘치는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흉내낸 것 같은 어설픈 느낌이 아니다. 녹음해놓은 목소리를 그대로 틀어놓은듯,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목소리였다.



얼어붙은 내 앞에서 요셉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스리는 납득하고 말았어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했어요. 그 비싼 치료비를 다달이 부담하며, 월급까지 주는 이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이유. 나가서 몸을 팔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그 금액이 시원스레 해결되는 이유.



자기 혼자 참으면 되는거니까요. 그냥 그러면 되는거니까요.

그렇게 기도원은 또다른 지옥이 되었어요.



미스리는 아주 느린 자살을 선택했어요.

엄마를 살리는 대신, 자기 영혼은 아주 천천히 죽어가기로… 그렇게 생각한거에요”



요셉이 소주병을 완전히 떨어뜨려, 양팔을 쫙 벌렸다. 두 소주병이 더 이상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떨어뜨려 놓겠다는 듯이, 손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쭉 양팔을 벌려 그렇게 떨어뜨려 놓았다.





“소년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묶여있는 개처럼 살아와서 도망가는건 엄두도 못냈죠. 소녀를 설득할수도 없었어요.

병원비는요? 영화 ‘졸업’의 벤저민과 엘레인이 도망가는건 너무도 요셉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는 미래가 두려웠어요. 목줄이 풀리는게 두려웠죠.



멧비둘기를 쏴죽이면서, 담담히 하루안에 포함된 화를 삭히며 살아가는게, 어린 소년 요셉이 선택한 길이었어요.



미스리와 요셉은 둘 다 타협했어요.

둘이 만나 심장이 졸아들듯 서로 나누던 비밀스런 시선도 없어지고,
새벽중이면 몰래 나와 찬 바닷바람 속에서 손을 잡고, 해무 속을 거닐던 조촐한 데이트도 사라졌어요.



어느날부터, 미스리는 요셉을 ‘머저리’ 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 멧비둘기 새끼말고, 목사를 쏴죽이기 전까진 넌 영영 머저리야!”





소름이 돋는다. 손가락이 벌벌 떨렸다. 요셉의 입에서 나온 건… 너무도 흡사해, 아니 흡사한 것을 넘어

내 뒤에서 미스리가 내뱉는 것같이 흠잡을데 없이 똑같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 멧비둘기 새끼말고 목사를 쏴죽이기 전까지 넌… 영영 머저리야…



요셉이 양쪽 소주병을 별안간 바닥에 던져 박살냈다.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요셉은 요모양 요꼴로 살다가… 어느날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게 되고…

술을 마시다 이렇게 동화 한편을 들려주게 됩니다.”



요셉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요셉 주변의 공기가, 데워지고 끓는 그 공기가,

그가 울고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만지면 데일듯 뜨거워보이는 눈물이 숙여진 고개 아래로

조용히 선명하게 그어졌다.



요셉이 펼쳐낸 구연동화가 가지는 디테일들은, 아마도 그가 직접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요셉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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