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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이즈 영훈ll조회 706l 1
이 글은 4년 전 (2019/10/22) 게시물이에요

폭풍전야


1636년 12월 말, 조선군 도원수 김자점은 평안도와 황해도의 길목인 정방산성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김자점의 휘하에는 어영군 5,000명(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20일)이 있었고,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지금의 예비군에 상응하는 황해도 속오군 12,000여 명(승정원일기 1635년 9월 24일)도 간접적으로 김자점 휘하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속오군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급변 사태가 일어나면 이들은 둘로 나뉘어 일부는 정방산성에 들어가 병마사 이석달 지휘를 받고, 나머지는 장수산성에 들어가 관찰사 이배원의 지휘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황해도 속오군 5,000명을 의주로 증원하자는 논의(승정원일기 1636년 3월 4일)가 있었던 것을 보면, 바로 이 5,000명이 정방산성에 들어가고 그 나머지 7,000명이 장수산성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반이 비변사의 말을 아뢰기를 "이달 18일 인견할 때 상께서 '병사가 정방산성으로 옮겨 들어가면 도내의 군병을 나누어 감사로 하여금 모처에 들어가 방수하게 함으로써 기각지세를 만들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전에는 장수산성을 감사가 들어가 방수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본성은 직로에서 거리가 먼 듯하니 서흥산성이 험고하면서도 길목에 있는 것만 못합니다. 다만 새로 시작하는 일이라 비용과 인력을 소모하는 것이 분명 많을 것이니, 이것이 염려스럽습니다. 두 성의 편하고 아님은 신이 감히 판단할 수 없으므로 삼가 결재를 기다립니다. 본도의 속오군이 모두 12,000여 명인데, 전에는 모두 황주산성으로 들어갔고, 도내 각처의 산성은 단지 민병에게 들어가 지키게 하여 매우 허술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병사를 정방산성으로 옮겼으니 형세가 전과 크게 달라져서 도내의 군정에 대해 변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수신으로 하여금 다시 더 참작하여 속오군을 덜어 감사에게 분속시키게 하고, 각처의 산성에도 수효를 헤아려 덜어주어 모두 반드시 지키려는 형세가 있어야 비로소 사리에 맞을 것입니다. 감히 아룁니다"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1635년 9월 24일)


이러한 속오군의 규모와 집결은 구체적으로 곡산군수 이위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이위국은 곡산의 군사 500인을 데리고 서쪽으로 달려갑니다. 따라서 유사시 1개 군현에서 소집되는 속오군은 500명 남짓으로 추정되는데, 황해도에는 24개 군현(신증동국여지승람)이 있으니 24×500=12,000으로 앞서 언급된 황해도 속오군 12,000여 명과 매끄럽게 들어맞습니다. 이 사실을 정리하면 아래 지도와 같습니다.



김자점과 병자호란 1. 폭풍전야 | 인스티즈



전쟁의 시… 작?


기존의 병자호란 서술에서 김자점이 욕을 먹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봉수 신호를 뭉개고 도성에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만갑의 병자록에 따르면, 압록강에서는 이미 12월 6일부터 봉화가 오르고 있었지만, 김자점은 이 봉수 신호를 묵살하다가 12월 10일이 되어서야 파발을 띄웠기 때문에 인조가 피난할 시기를 놓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병자록은 교묘한 서술 트릭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8일에 앞서 나가게 한 전봉군이 의주진강을 건넜다. 초9일 여명에 전봉군의 다음으로 내보낸 호쇼이 어르커 친왕이 1니루의 각 3갑사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넜다. 같은 날, 어르커 친왕의 다음으로 내보낸 도로이 요토 버이러가 1니루의 각 5갑사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넜다. 10일에 성스러운 한이 대군을 거느리고 건넜다.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16일)


이경증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일에 들어온 의주부윤 임경업의 장계는 이달 9일 인시에 성첩한 것입니다. 적병의 동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연속해서 치계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아직 이어서 올라온 보고가 없으니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12일)


12월 12일에 의주에서 치계하기를 "이달 9일에 금나라 군대가 구련성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하였다. (조익, 포저집 병정기사)


행재소가 포위된 소식을 들으니, 처음에 의주부윤 임경업이 초9일에 장계하여 들어와 "압록강변에 적 기병이 두루 가득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신즙, 하음집 병자록)


청나라 측에서 선봉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진입한 것은 12월 8일, 조선 측에서 이것을 인지한 것은 12월 9일로 진술이 공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나만갑의 병자록에서만 그보다 3일이나 앞서 의주에서 이미 변란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다시 병자록으로 돌아가 보면 나만갑이 자신의 서술 속에 감춰둔 트릭이 간파됩니다.


12월 6일 이후에 잇달아 두 봉화를 들었는데, 김자점은 말하기를 "이것은 박로가 들어가서 오랑캐가 반드시 나와 환영하는 것이다. 어찌 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하고는 즉시 치계하지 않았다. (나만갑, 병자록)


익히 알려진 것처럼, 봉수 신호 2거는 적이 국경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음을 의미하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국경 바깥에서 활동이 관측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군사적인 비상 사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마푸타가 이끌던 청나라 선봉군은 소수인 데다 상단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강 너머에 보이는 이들이 실제로 상단이나 사절단인 경우에도 2거가 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로 봉수 신호 2거를 받은 김자점이 내린 판단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12월 8일에 야음을 틈타 청나라 선봉군이 강을 건너고, 다음날이 되어 의주의 조선군이 청군의 도강을 인지하여 2거를 3거(적의 진입)로 전환하자마자 정보는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퍼집니다. 평양에서는 당일에 곧장 봉화를 통해 변고를 인지했고, 산골 깊숙한 곡산(행정적으로 황해도지만 연락망이 평안도에 연결되어 있다)에도 순식간에 소식이 닿아 곡산군수 이위국은 정방산성으로 달려오는 길에 청나라의 선봉군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12월 초9일에 변방의 봉화가 문득 오르니 평양 백성들이 물 끓듯 하였다. (신익성, 낙전당집 홍명구묘지명)


며칠 뒤에 봉화로 화급을 알렸는데 낮에 봉화가 셋 이르렀으나 파발은 없었다. (조경, 용주유고 이현신도비명)


이해 겨울에 북로가 과연 침입해 왔다. 당시에 도원수 김자점이 정방산성에 있었으므로 공이 병사 500인을 거느리고 정방산성으로 달려가다가 총수(蔥秀)에 이르러 다른 샛길로 서울을 향하는 100여 기의 북로를 만났다. (박세당, 서계집 이위국행장)


당연히 김자점도 9일에 봉화로 급변 사태를 인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4거(적의 공격)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를 파악할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도성까지 봉수를 전달하는 것을 보류한 채 군관 신용을 정찰조로 북쪽으로 파견합니다. 물론 다음날 신용이 가지고온 소식은 김자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고, 김자점은 오히려 신용을 의심하면서 으름장을 놓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정보를 통해 신용의 보고를 믿게 되고 늦어도 11일 아침에는 서울로 파발을 띄웠습니다.


9일에 비로소 군관 신용을 보내 의주에 가서 살펴보게 하였다. 신용이 순안에 이르니 적의 기병이 이미 가득차 있었다. 곧장 돌아와 감사 홍명구에게 고하자, 홍명구가 크게 놀라 단기로 자모산성에 달려 들어갔다. 신용이 돌아와 김자점에게 보고하니, 김자점이 말하길 "망령된 말로 군정을 어지럽힌다"하고 목을 베려고 하자, 신용이 말하길 "적이 내일은 마땅히 여기 당도할 것입니다. 우선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라 하였다. 조금 있다가 나중에 보냈던 군관이 또 와서 급함을 보고하는데, 신용이 말한 바와 같아 비로소 장계를 올렸다. (나만갑, 병자록)


12월 12일 오후에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가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적의 형세가 급함을 알았다. 그러나 적이 잠깐 사이에 질풍처럼 이에 이를 줄은 역시 몰랐다. (나만갑, 병자록)


12월 12일 저녁에 서변의 급보가 이르렀다. (어한명, 강도일기)


이렇게 보면, 당시 조선의 내부 정보망에서 김자점이 실제로 지연시킨 시간은 2일이 채 되지 않습니다. 다만 김자점이 급변 사태를 인지한 뒤에도 봉수 신호가 한양까지 송신되지 못한 건 사실로 보이는데(인조실록 1637년 4월 10일), 김자점이 일부러 봉수를 올리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실린 1636년 7월의 감찰이 평안도와 황해도에 한정되어 있었으니, 정방산성에서 나온 봉수 체계가 개성 인근에서 끊겨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애당초 김자점의 역량 밖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전쟁의 시… 작?


기존의 병자호란 서술에서 김자점이 욕을 먹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봉수 신호를 뭉개고 도성에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만갑의 병자록에 따르면, 압록강에서는 이미 12월 6일부터 봉화가 오르고 있었지만, 김자점은 이 봉수 신호를 묵살하다가 12월 10일이 되어서야 파발을 띄웠기 때문에 인조가 피난할 시기를 놓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병자록은 교묘한 서술 트릭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8일에 앞서 나가게 한 전봉군이 의주진강을 건넜다. 초9일 여명에 전봉군의 다음으로 내보낸 호쇼이 어르커 친왕이 1니루의 각 3갑사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넜다. 같은 날, 어르커 친왕의 다음으로 내보낸 도로이 요토 버이러가 1니루의 각 5갑사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넜다. 10일에 성스러운 한이 대군을 거느리고 건넜다.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16일)


이경증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일에 들어온 의주부윤 임경업의 장계는 이달 9일 인시에 성첩한 것입니다. 적병의 동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연속해서 치계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아직 이어서 올라온 보고가 없으니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12일)


12월 12일에 의주에서 치계하기를 "이달 9일에 금나라 군대가 구련성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하였다. (조익, 포저집 병정기사)


행재소가 포위된 소식을 들으니, 처음에 의주부윤 임경업이 초9일에 장계하여 들어와 "압록강변에 적 기병이 두루 가득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신즙, 하음집 병자록)


청나라 측에서 선봉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진입한 것은 12월 8일, 조선 측에서 이것을 인지한 것은 12월 9일로 진술이 공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나만갑의 병자록에서만 그보다 3일이나 앞서 의주에서 이미 변란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다시 병자록으로 돌아가 보면 나만갑이 자신의 서술 속에 감춰둔 트릭이 간파됩니다.


12월 6일 이후에 잇달아 두 봉화를 들었는데, 김자점은 말하기를 "이것은 박로가 들어가서 오랑캐가 반드시 나와 환영하는 것이다. 어찌 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하고는 즉시 치계하지 않았다. (나만갑, 병자록)


익히 알려진 것처럼, 봉수 신호 2거는 적이 국경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음을 의미하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국경 바깥에서 활동이 관측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군사적인 비상 사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마푸타가 이끌던 청나라 선봉군은 소수인 데다 상단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강 너머에 보이는 이들이 실제로 상단이나 사절단인 경우에도 2거가 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로 봉수 신호 2거를 받은 김자점이 내린 판단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12월 8일에 야음을 틈타 청나라 선봉군이 강을 건너고, 다음날이 되어 의주의 조선군이 청군의 도강을 인지하여 2거를 3거(적의 진입)로 전환하자마자 정보는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퍼집니다. 평양에서는 당일에 곧장 봉화를 통해 변고를 인지했고, 산골 깊숙한 곡산(행정적으로 황해도지만 연락망이 평안도에 연결되어 있다)에도 순식간에 소식이 닿아 곡산군수 이위국은 정방산성으로 달려오는 길에 청나라의 선봉군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12월 초9일에 변방의 봉화가 문득 오르니 평양 백성들이 물 끓듯 하였다. (신익성, 낙전당집 홍명구묘지명)


며칠 뒤에 봉화로 화급을 알렸는데 낮에 봉화가 셋 이르렀으나 파발은 없었다. (조경, 용주유고 이현신도비명)


이해 겨울에 북로가 과연 침입해 왔다. 당시에 도원수 김자점이 정방산성에 있었으므로 공이 병사 500인을 거느리고 정방산성으로 달려가다가 총수에 이르러 다른 샛길로 서울을 향하는 100여 기의 북로를 만났다. (박세당, 서계집 이위국행장)


당연히 김자점도 9일에 봉화로 급변 사태를 인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4거(적의 공격)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를 파악할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도성까지 봉수를 전달하는 것을 보류한 채 군관 신용을 정찰조로 북쪽으로 파견합니다. 물론 다음날 신용이 가지고온 소식은 김자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고, 김자점은 오히려 신용을 의심하면서 으름장을 놓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정보를 통해 신용의 보고를 믿게 되고 늦어도 11일 아침에는 서울로 파발을 띄웠습니다.


9일에 비로소 군관 신용을 보내 의주에 가서 살펴보게 하였다. 신용이 순안에 이르니 적의 기병이 이미 가득차 있었다. 곧장 돌아와 감사 홍명구에게 고하자, 홍명구가 크게 놀라 단기로 자모산성에 달려 들어갔다. 신용이 돌아와 김자점에게 보고하니, 김자점이 말하길 "망령된 말로 군정을 어지럽힌다"하고 목을 베려고 하자, 신용이 말하길 "적이 내일은 마땅히 여기 당도할 것입니다. 우선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라 하였다. 조금 있다가 나중에 보냈던 군관이 또 와서 급함을 보고하는데, 신용이 말한 바와 같아 비로소 장계를 올렸다. (나만갑, 병자록)


12월 12일 오후에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가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적의 형세가 급함을 알았다. 그러나 적이 잠깐 사이에 질풍처럼 이에 이를 줄은 역시 몰랐다. (나만갑, 병자록)


12월 12일 저녁에 서변의 급보가 이르렀다. (어한명, 강도일기)


이렇게 보면, 당시 조선의 내부 정보망에서 김자점이 실제로 지연시킨 시간은 2일이 채 되지 않습니다. 다만 김자점이 급변 사태를 인지한 뒤에도 봉수 신호가 한양까지 송신되지 못한 건 사실로 보이는데(인조실록 1637년 4월 10일), 김자점이 일부러 봉수를 올리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실린 1636년 7월의 감찰이 평안도와 황해도에 한정되어 있었으니, 정방산성에서 나온 봉수 체계가 개성 인근에서 끊겨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애당초 김자점의 역량 밖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자점과 병자호란 1. 폭풍전야 | 인스티즈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 35에 있는 천림산 봉수대가 복원돼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누구나 한방 맞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마이크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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