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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기(30)ll조회 417l 1
이 글은 4년 전 (2020/1/15) 게시물이에요





삼국지 항상 백전노장 포스를 풀풀 풍기는


촉의 명장 "황충"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황충하면 정군산전투, 관우와의 대결, 하후연 박살낸 일화 등등


숱한 전투에서 용맹함을 보여준 촉의 장수였습니다.


좋아하시는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





황충(黃忠, 148~222)





삼국지 인물 8. 황충(한승)은 누구인가? | 인스티즈





남양군 출신이며 자는 한승(漢升)이다. 형주목사(荊州牧使) 유표(劉表) 부하였으며, 장사태수(長沙太守)로 임명된 한현(韓玄) 휘하의 장수로 장사를 지켰다. 관우(關羽)가 장사성(長沙城)을 공격해와 그와 싸움을 벌였으나 서로 1번씩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이후 위연과 함께 유비를 찾아가 부하 장수가 되었는데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張飛), 마초(馬超), 조운(趙雲)과 함께 오호대장군으로 불렸다. 유비가 익주를 얻을 때 공적을 세웠으며 한중 쟁탈전에서는 적장 하후연(夏侯淵)을 죽이며 맹활약하였고 후장군에 올랐다. 사망 후 강후(剛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중국에서 '노익장(老益壯)'의 대명사로 일컫는다.











삼국지 인물 8. 황충(한승)은 누구인가? | 인스티즈








생애


황충은 남양군 출신으로, 처음에 그는 형주목 유표(劉表)의 부하로 중랑장에 임명되어 유표의 조카 유반과 함께 장사를 수비했다고 한다.


유표가 죽은 후 혼란스런 틈을 타고 조조(曹操)가 형주에 침입해 세력을 넓히자, 임시로 비장군의 지위가 주어지고 원직을 겸무하게 된다. 그러나 장사태수 한현(韓玄)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208년(건안 13년) 조조가 적벽 대전에서 패하여 형주에서의 지배력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유비(劉備)가 형주 남부의 여러 군을 평정하자, 한현이 유비에게 항복할때 함께 귀순하였다. 나아가 유비가 촉으로 들어갈 때도 함께 수행, 그 무렵에는 직위를 받아 가맹에서 철수해 유장(劉璋)을 공격하는 등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


항상 선두에 서서 전장으로 달려가고 과감하게 적을 공격해 진지를 무너뜨리는 용맹함은 실로 삼군 가운데 으뜸이었다고 한다. 비록 늙었지만 무장으로서의 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으며, 익주 평정 후 그때까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토로장군에 임명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을 공략했을 때에는 정군산에서 하후연(夏侯淵)을 공격, 솔선해 병사들을 격려하면서 오로지 적을 공략하여 마침내 정예병을 격파, 대장 하후연까지 죽이고 촉한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공적으로 정서장군(征西將軍)에 올랐으며, 같은 해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후장군(後將軍)까지 올라 관내후(關內侯)라는 작위를 하사받았다. 이때 관우(關羽)는 스스로 유비의 가신들 가운데 필두를 지킨다는 특별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황충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에 내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제갈량(諸葛亮)이 유비를 만류했지만, 유비는 황충의 실적을 높이 평가해 그의 진언을 물리쳤다.[1]


황충은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죽은 후 강후(剛侯)라는 시호가 추층되었다. 황서라는 외아들이 있었으나 일찍 죽어서 후계자는 없다.






《삼국지연의》에서의 황충


관우가 장사를 공략할 때 그와 대적하였다. 오랜 공방 끝에 황충의 말이 부상을 입어 그가 낙마하였다. 하지만 관우는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기로 마음먹고 그 허를 찌르려 하지 않고, 말에 다시 올라타려는 황충을 도와주었다. 이것에 대해서 황충은 감복하였고, 태수 한현에게 백발백중의 활 솜씨로 관우를 쏘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고뇌하였다. 결국 다음 대결에서는 그의 장기인 활로 관우의 투구만을 쏘아 빚을 갚았다.


그 결과 황충은 명령위반죄로 한현에게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동료 위연이 “장사의 공신을 처형하는 것은 당치 않으며 오히려 태수의 학정이야말로 그 죄를 물어야 한다” 라고 민중을 선도하고 한현을 등진다. 위연은 한현을 살해하고 관우에게 항복해 성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황충은 처형을 면하였다.


그 후 황충은 주군 한현에 대한 충성을 지켜 병을 핑계로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있었는데, 유비가 직접 찾아가 앞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그는 유비의 신망과 인덕을 인정해 저항한 것을 사죄하고 충성을 맹세하였다.


유비의 촉 공략을 수행했을 때에는 위연이 공을 세우려고 몰래 빠져나간 결과 도리어 위기에 빠진 것을 구하여 아군이 궁지에 빠지는 상황을 미리 막았다. 또 한중 쟁탈전에서는 같은 노익장으로 불리는 엄안(嚴顔)과 짝을 이루어 활약한다.


222년 이릉 전투에서 황충은 유비가 “노인이 나서봤자 소용없다”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분기해 적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진지를 공격해 사적을 죽이고 반장(潘璋)과 힘겹게 싸운다. 그리고 주위에서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적진 깊숙이 침입해 들어가다 어깨에 마충(馬忠)의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 유비는 “내가 그런 서운한 말을 해서 그대가 이런 일을 겪고 말았다” 며 사죄하였고, 황충은 유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후에 차남 황열이 작위를 이었다.









삼국지 인물 8. 황충(한승)은 누구인가?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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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거리


[황충에 대한 궁금증]


1. 황충은 늙었을까?


  정사에서는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그를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아 유표의 종자(從子-조카) 유반(劉磐)과 함께 장사군(長沙郡) 유현(攸縣)을 수비하게 했다.  조공(曹公-조조)이 형주를 점령하자 임시로 비장군(裨將軍) 직을 대행하게 하니, 예전 임무에 종사하며 장사태수 한현(韓玄)에 속하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이 부분에서 중랑장과 비장군의 직위, 임명 시기를 볼 필요가 있다. 

  비장군은 장군직 중 최하 직책이며, 편장군, 아문장군, 호군과 직위가 같다. 사실 모든 장수들이 다 장군이 되는 건 아닌지라 최하급 장군이라고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장군직 아래론 교위도 있고 여러 가지 직책이 있다. 이와 같은 직위에 오른 장수가 관우, 정보, 위연 등이 있는데, 관우는 잠시 조조 휘하에 근신할 때 안량을 벤 전공으로 편장군 관직을 수여받았고, 이때가 30대 후반~40대 초반이였다. 정보는 손책 휘하에서 비장군 관직을 수여받고, 이때가 40대 중반~ 50대 초반이다(참고로 관우와 정보는 나이가 10살 정도 차이가 나며, 두 명이 관직을 수여받은 때가 몇 년 차이가 있다). 위연은 익주 공략(유비입촉) 때 군공을 세우고 아문장군이 되었고, 몰년으로부터 나이를 어림잡아 이때를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추측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장군 직책은 최하 30대 중후반 정도, 노련히 짬밥을 쌓아올려 대충 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장수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솔직히 관우는 조조의 호의에 의한 특진이지만 이전부터 공을 세운 것까지 합침). 조조가 형주를 점령한 시기는 208년, 유표의 아들 유종이 항복했던 때이다. 이때의 나이를 딱 마흔부터 시작해 길게 잡아 쉰까지 본다면, 황충은 158?~168?년생이고, 결국은 관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어리게 된다. 참고로 관우는 생년이 미상이지만 유비보다 좀 많거나 조금 어린 것으로 보아 160?~162?년생으로 볼 수 있다. 관우는 정확히 219년 겨울에 죽고, 이때 나이가 50대 후반부터 60세까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황충이 비장군이 된 시기가 무조건 40대 초반 이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수여받는다면 60줄을 넘겨서도 될 수 있다. 다만, 황충이 늙었다는 증거가 역사 어딜 뒤져 봐도 전혀 없기 때문. 이랬는데도 황충이 실제로도 노장이었다는 소릴 한다면 그건 추측일 뿐이다. 황충을 노익장의 대명사로 쓰는 것도 연의의 영향이라 생각된다.

2. 황충은 명궁일까?

  황충은 설정상 활을 잘 쏘고, 게임에서도 궁노 특화 장수이기도 하다. 다만 이건 나관중이 지어낸 설정일 뿐, 역사에서 황충이 활을 잘 쏜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유비가 형남 4군을 점령하면서 마지막으로 간 장사.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의 일이 [장사성을 점령할 때 계속 점령전에 나서지 못한 관우가 직접 500기를 이끌고 장사로 가 그곳의 노장 황충과 일기토를 호각으로 벌이며 실력을 겨뤘다. 이때 황충이 낙마하지만 관우가 이를 봐주고, 그 감사의 의미로 관우에게 활을 쏘지만 허공에 시위만 당기다 마지막에 머리 대신 그저 상투를 맞추었다. 이를 본 한현에게 내통이라며 모함을 받고, 이때 위연이 한현에게 반란을 일으켜 황충과 함께 유비에게 투항한다]라는 이야기로 나온다. 하지만 이것도 뻥이다. 

  정사에서는 

선주(先主-유비)가 남쪽으로 여러 군(郡)을 평정하자 황충이 마침내 위지(委質-몸을 맡김)하고는 그를 수행해 촉(蜀)으로 들어갔다.」

라고 써져 있다. 한현은 유비가 오자 투항했으며(참고로 한현은 이후에 유비 밑에서 계속 일했지만 그 후의 기록이 없을 뿐임), 이때 황충이 딸려 붙은 것이다. 

  참 안타깝게도 위에 써진 황충과 관우의 멋진 영웅담은 사실 없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정사 자료를 아랫쪽에 넣을 것이다.

3. 황충의 군재는 어떠한가?


  딱히 군재를 평해야 할까- 황충의 군재를 평할 수 있는 정확한 증거는 한중 쟁탈전이 있다. 정사에서는 

건안 24년(219년), 한중(漢中) 정군산(定軍山)에서 하후연(夏侯淵)을 공격했다. 하후연의 군대는 매우 정예했으나 황충은 적의 예봉을 꺾어 어김없이 전진하며 사졸들을 격려하여 이끌고, 징과 북소리는 하늘을 울리고 환성은 골짜기를 뒤흔드니, 한번 싸움으로 하후연을 참(斬)하고 하후연의 군대를 대패시켰다.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올랐다.」라고 써져 있다. 


  특히 이때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을 죽이고(직접 베어 죽였는지 난전 중에 죽은 건지는 一戰斬淵이라는 대목의 논란 때문에 불명) 완전히 대승을 거둬 유비가 한중을 얻고 한중왕이 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황충은 이렇게 공을 세우고 정서장군으로 승진한다.

  간단히 말해, 황충은 오호장군급 군재와 무용을 갖췄으며(촉 명장들의 전을 '관장마황조'로 엮은 것이 이를 증명), 무시할 수 없는 뛰어난 장군이다.

4. 관우가 정말 무시했는가?

  이후 정사에서는 

이 해(219년), 선주(先主)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어 황충을 후장군(後將軍)으로 임명하려 하니 제갈량이 선주(先主)를 설득하며 말했다.

“황충의 명망(名望)은 본래 관우, 마초와 동등하지 않았는데 이제 곧바로 동렬에 두려 하십니다. 마초, 장비는 가까이에서 그의 공을 직접 보았으므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나 관우는 멀리서 이를 들으면 필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불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주가 이르길 “내가 직접 이해시키겠소”라 하고는 마침내 관우 등과 더불어 나란한 지위에 두고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내렸다.」

라고 써져 있다.

  이 일을 연의에서는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뒤 가장 공이 큰 다섯 장군들을 오호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이를 통보하기 위해 비시를 관우에게 보냈다. 이 사실을 듣고 관우는 '다른 이들은 인정하지만 마초 같은 망명한 객장이나 황충 같은 늙은이가 나와 대등한 취급을 받는 건 인정할 수 없다'며 화를 낸다. 그러자 비시는 '관 장군께서는 높은 벼슬을 하고 싶어서 뜻을 펴온 것입니까? 이번 관작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 형님과의 사사로운 정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간언한다. 이를 듣고 관우는 반성했다]라며 나온다. 이 대목을 꼬집어 보자.

  우선 오호대장군이란 명예관직은 정사에선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예를 들자면) 조운이 다른 네 명의 사방장군보다 관직이 떨어져 이를 보정하고자 나관중이 멋대로 만든 소설 속 허구일 뿐이다. 사실은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유비와 제갈량이 이야기를 나눈 것에 불과하고, 관우 본인의 입장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저 연의 내에서만 본다면, 황충은 분명 관우와 고작 10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 이미 호각지세로 일기토를 겨룬 사이였는데, 이제 와서 늙은이 취급한다는 게 말이나 될까? 황충을 늙은이라고 욕하는 것은 그때 그 사건과 모순이 된다.

5. 끝까지 유비를 위해 대장부처럼 싸우다 간 충신

  연의에서는 유비가 형주 수복과 형제의 복수를 위해 오군을 정벌하러 갈 때 같이 따라 나서고, 한참 승세를 몰고 있을 때 홀로 소수대를 이끌어 적진을 휘젓다 화살을 맞고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황충은 이렇게 늙을 때까지 폐하(유비)를 모시게 되어 정말 기쁘다 하며 죽는다.

이때가 221~222년 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유비가 한중왕이 된 이듬해 사망했다. 병으로 죽었다는 증거도 없고, 늙어서 천수를 누려 죽었다는 증거도 없다. 문제는 유비가 촉한 황제로 등극하기도 전에 죽었던 것이다(황충 역시 유비에게 큰 보탬이 될 인재였지만 다른 이들처럼 사선을 밟게 되어 꽤 슬프다). 그러나 황충이 유비를 섬긴 날부터 죽는 날까지 오직 주군을 위해 한 몸 바친 충신이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유비도 이에 상응해 최대한 중용하려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요약

황충은 늙었다는 증거가 없다. 

또한 활을 잘 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촉의 다른 명장들과 비견될 만큼 실력과 군재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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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에 대한 진수의 평]

삼국지 인물 8. 황충(한승)은 누구인가?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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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의 무장들 조운,황충,위연 비교]



1. 가장 먼저 조운, 황충, 위연 세사람의 입촉 직후의 관직<1>과 입촉 당시의 기록들

 

 

조운: 유비의 입촉 당시 아문장군-> 입촉후 익군장군 승진 //(서촉의 여러 군현들을 평정)

 

황충: 유비에게 항복할 당시 비장군(5품)-> 입촉후 토로장군 임명 //(항상 앞장서 진격하였으며

용기가 삼군중 으뜸이었다)

 

위연: 입촉전까지 직책 없음-> 입촉후 아문장군 승진 //(유비를 수행해 여러차례 전공을 세웠다)

 

 

익군장군, 토로장군, 아문장군 등은 후한의 공식 직책상에는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현재까지 밝혀진 사료에 의하면) 따라서

 

유비가 임의로 새롭게 창설한 잡호장군의 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근거로 세사람의 직책에 대한 추론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황충은 그냥 임명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같은 5품의 잡호장군으로 임명되었을

 

경우인데 이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항렬이지만 상설직인 비장군에서 보다 격이 낮은

 

잡호장군으로 굳이 임명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두번째인 최소 4품의 잡호 장군으로 승진했다고 봅니다.

 

이는 조운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본적으로 장군의 직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최소한 아문장군직은 5품 잡호 장군으로 여겨지며

 

승진했다는 표현을 생각했을때 황충과 마찬가지로 4품의 잡호장군으로 승진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위연의 경우는 본래 부곡

 

(사병)출신에 별다른 직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굳이 추정해 보자면 입촉전에는 6품 이하의 호군직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사서의 기록과 전체적 승진의 단계를 고려해 보면 위연은 나름대로 공훈을 세우긴 했으나 다른 무장들의

 

공을 훨씬 뛰어넘는 빼어난 큰 공을 세웠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2. 한중을 차지한 이후 유비가 제위에 오른 이후의 직위와 사서에 기록된 전공들

 

이때 이 세사람은 외형적 승진에 있어 차이가 납니다.

 

조운: 익군장군 변함 없음 //(한중공방전시 황충등을 구하고 공성계로 조조군을 깨뜨림)

 

황충: 정서장군(2품)에 임명됨 //(하후연을 참하는 등 한중공방전의 일등공신)

 

위연: 진원장군(3품인지 4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움 단계상은 4품으로 보아야 하나 후에 진북장군(2품)이 된 것을

고려 하면 3품으로 보아야 할 것도 같음)임명 //(특별히 기록된 바 없음)

 

이상을 살펴 보면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운은 공이 있었음에도 승진하지 않았고 황충은 당시 좌장군이었던

 

유비의 직위보다 더 높은 정서장군에 임명됩니다. 그리고 위연은 기록된 아무런 공이 없음에도 한중도독에 임명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건데 첫째, 유비와 유비의 세력은 이미 후한의 명목상 직위는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스스로 여겼다는 점이며, 둘째 조운의 익군장군은 조운만의 특수한 역할에 맞게 설정된 직위였기에 굳이 승진할

 

필요가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위연이 특별한 공이 없음에도 승진한 것은 유비의 신임이 남달랐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추정해 봅니다.<2>

 

 

3. 유비의 황제 등극시기와 사후의 직위 변동

 

조운: 223년(유비 사후인지 생전인지는 불분명하나 사후로 추정하고 있음) 중호군(4품: 금군(=중앙군)의 지휘관직),

정남장군(2품), 진동장군으로 승진-> 1차 북벌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제갈량과 함께 품계가 깍여 진군장군으로 강등됨

 

황충: 220년 사망 최종 직위 후장군(2품이상 직위로 추정)

 

위연: 221년 진북장군(2품) 임명

 

이시기는 특별한 공훈이 없음에도 전원이 승진했고 이는 촉한 전체의 인사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비의 한중왕등극->

 

황제등극 등의 내부적 제도개편에 따른 승진 및 인사 이동이라고 여겨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운의 직책 변화인데 나열된 관직을 차례로 승진했다고도 볼 수 있고 중호군은 겸직이고 정남장군에서 진동

 

장군으로 승진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후한의 직책상 4정장군은 4진장군보다 좀더 격이 높게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승진했다고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저는 촉한의 관직 체계가 후한과는 조금 달랐음을 증명하는 예들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3>

 

또한 조운은 제갈량과 더불어 패전의 책임으로 직책이 강등된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당시 촉한의 군부에

 

있어 가장 높은 직위 혹은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4. 종합 결론

 

이상의 내용으로 조, 황, 위의 삼인이 함께 활동한 시기에 세사람의 관직 이동모습과 사서에 기록된 공훈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결과만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위연은 촉한의 차세대 주축 장수로서 유비의 확고한 신임아래 계획적으로 키워진 감이

 

강하지 직접적인 비교에 있어서 조운등과 함께 활약할 당시에는 이들 보다 더 뛰어났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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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vs 황충]












삼국지에서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각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데, 

그 중 노익장이라는 형태로 잘 알려진 건 촉에서는 황충, 오에서는 황개 등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촉의 황충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부풀려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는 황충전의 내용이 생각 외로 짤막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알려진 황충의 이미지는 주로 연의의 이미지가 강하죠.

신궁이라 불리며 궁술에 뛰어나고, 60대가 넘은 나이임에도 여타 장수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용맹과 기세를 가진 장수입니다.

다만 위에서 보다시피 황충에 대한 기록은 매우 짧고, 또 합류 시기가 유비가 형주를 제압하기 시작했을 때즈음이라는 것 때문에 뒷날에 합류한 마초보다는 빨라도 다른 유비군의 막료들보다는 상당히 늦은 시기에 유비군에 영입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비군에 합류한 뒤 황충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유비의 입촉시절.

황충전에 언급되었다시피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과시했고, 그 기세는 삼군 중의 으뜸이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어쨌든 용맹한 장수였다는 것은 확실한 거겠죠.

 

황충의 가장 큰 활약은 유비가 입촉 후에 북벌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한중 땅을 공략했을 때 보입니다.

다들 알고 계실 정군산 전투죠.

그리고 당시 정군산을 지키고 있던 것은 하후연을 총사령군으로 한 위나라 군대의 몇 안되는 정예부대였습니다.

하후연은 조조의 일족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언제나 뒤에서 보급과 유격을 맡아왔고 조조에 대한 충성심, 장수로서 보유한 용맹 등 위나라 top 클래스에 드는 장수였습니다.

 

근데 황충은 한 번 싸움으로 그 하후연을 개발살내버렸습니다.

하후연이 그렇게 만만한 장수도 아니거니와 한중을 지키고 있던 군세의 전력이 약했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죠.

그 공을 크게 인정받아서 황충은 정서장군에 임명되었고, 그 뒤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 연의에서는 오호장군의 후미로 임명됩니다.

 

황충전 내에서는 후장군, 관우가 전장군, 장비, 마초는 각각 좌우장군에 임명되었죠.

다만 관우, 장비, 조운 등은 유비를 오래 전부터 수행하며 비록 촉서에 적힌 내용은 적을지라도 여러 군공과 경력을 쌓았던 것이 확실했으며, 마초 역시 군벌 출신으로서 한 때 조조도 두렵게 했을 정도로 여러 싸움을 거치고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황충은 유비가 형주를 제압했을 때부터 합류했던 장수였던지라 기존 유비군 내부에서 황충의 관직에 대한 의견이 조금 분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충전에 기재된 제갈량의 우려 역시도 그런 맥락에서 온 게 아닐까 싶은데, 제갈량의 예상대로 관우는 맨 처음에 관위를 받지 않으려 하다가 비시한테 꾸중(...)을 듣고 관위를 받아들이게 되죠.

이 후 손제리의 뒷치기로 형주를 잃은 관우가 목숨을 잃었을 때, 복수전을 위해 유비가 직접 친정한 이릉대전에서 뒤에 합류한 관흥, 장포 등의 젊은 장수들을 극찬하며 했던 '예전에 짐을 따르던 장수들은 모두가 늙어버렸는데.'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출진, 용맹을 과시하다가 전사하고 맙니다.

 

다만 이는 연의에서 알려진 내용이고 사실은 후장군으로 임명된 그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의에서는 황충이 죽은 나이를 75세의 고령으로 적고 있는데, 사실 황충의 실제 연령이 어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몰년은 있지만 생년은 없기 때문이죠. 이는 관우, 장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촉서는 내용이 매우 간략합니다.

 

그래서 흔히 촉군에 굵직한 인상을 남긴 장수들의 기록이 생각외로 부실하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충이 비록 기록된 내용과 군공은 짧을 지라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었던 유비의 눈에 들 정도의 인재는 되었으며, 정군산 전투에서의 군공으로 자신의 가치를 빛냈다는 점입니다.

 

황충의 나이에 대해서는 진짜 연령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들이 일찍 죽어서 후사가 없었다는 것과 유비에게 합류하기 이전에 유표군 휘하에서 중랑장을 지내고 있었다는 점, 관우가 황충을 자신과 같은 반열에 두려는 유비의 관직분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점 등을 보았을 때 적어도 촉군 내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당시 장수들의 평균 연령은 전사를 제외하면 4~50대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 많이 쳐주었을 때 50대 후반에서 60대 초 즈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정도 연령이면 노익장이라 불릴만 하고, 또 연의 이전부터 각종 민담이나 야사 등에서는 황충은 노익장의 대명사였다고 하니, 어쨌든 당시로서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장수치고는 제법 고령자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여담으로 진수는 황충을 조운과 더불어 관영, 하후영 등에 빗대어 높은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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