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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ll조회 159l 3
이 글은 3년 전 (2020/10/27) 게시물이에요


[던전핵로그라이크게임이어떻게...]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 | 인스티즈


🔼 촌스러운 표지






간단한 책 소개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서이다. 물론 역사라고 해봐야 특별히 거창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RPG의 서브장르일뿐인


이쪽 장르에 책 한 권이 통째로 헌정돼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그렇고, 다른 로그라이크 광신도들에게도 꽤나 가슴 뛰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로그라이크라는 장르가 이미 서브장르를 넘어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잡는 데에 성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장르 자체가 약동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누가, 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게임을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세하게 다뤄준다.


신빙성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작가가 직접 발품 팔아 인터뷰를 해서 얻은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인터넷에선 찾아보기 힘든 정보들도 군데군데 끼어있곤 한다.


여러모로 로그라이크 팬들에겐 상당히 흥미로운 책인 셈이다.


흑백 화면을 3시간째 바라보며 @가 T를 찢어죽이는 장면에서 남다른 전율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런데, 본인은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ASCII 그래픽 따위에서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 것 같다고...?


그래도 상관 없다. 이 책은 게임 자체보단 그 게임이 만들어진 동기와 상황 따위에 훨씬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로그라이크 장르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한 번쯤은 훑어볼만 하다.


게임 문화 전반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다면, 아마도 스팀이 탄생하기 약 23년 전의 인디 게임들이


어떤 환경에서 개발되고 배포되었는지에 대해서 호기심을 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불평하고 싶은데, 제목이 제목값을 못한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분명히 '로그라이크 장르가 비디오 게임의 방향을 어떻게 바꿨는가' 라고 쓰여져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다룬 내용은 별로 없다.


게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조목조목 따져보는 부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부제목을 그냥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 따위로 지었다면 훨씬 나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튼.






내용 요약



책에서 소개하는 게임은


Beneath Apple Manor


Rogue


Sword of Fagoal


Hack -> Nethack


Moria


Angband


ADOM


총 7가지가 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가장 중요한 Rogue 하나만 요약해볼 생각이다.


나머지에 대해서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책을 직접 사보라는 얘기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Moria만큼은 이미 다른 분이 개인적으로 정리해놓은 문서가 있으므로 이걸 참고해보면 좋을 것이다.


[Moria의 역사 링크]





ADOM은 개발자가 직접 자기 게임에 대해 강연한 내용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












Rogue (1980)


Michael Toy, Glenn Wichman, Ken Arnold, Jon Lane 제작




[던전핵로그라이크게임이어떻게...]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 | 인스티즈


🔼 Star Trek (1971)






캘리포니아 주의 리버모어에서 태어난 마이클 토이는 그곳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바로 핵물리학자와 카우보이. 마이클 토이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 타입의 사람이었다.





당시 연구소에선 매해 방문자의 날을 개최하였기 때문에 마이클 토이는 자연스럽게 연구실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컴퓨터가 있는 곳엔 게임이 있었고, 그곳에서 마이클 토이는 Star Trek이라는 제목의 게임에 사로잡히게 된다.












화면에 -E 로 표시되는 엔터프라이즈 호를 조종해 +k+로 표시되는 클링온 선박을 잡아죽이는 게임이었다.


  스크린샷을 보면 무언가 격자식 그래픽을 갖춘 것 같지만


  문자열이 갱신되는 게 아니라 새로 출력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픽이라 하기엔 너무 원시적인 상태였다.


  자세한 건 영상을 참고하자.





아무튼 마이클 토이는 이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게된 그는 이후 15년 동안 마주치는 모든 컴퓨터마다


  Star trek의 클론을 작성해놓는 희한한 일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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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ossal Cave Adventure






시간은 흘러 70년대 후반, UC 산타 크루즈에 입학하게 된 토이는 곧 컴퓨터 연구실 붙박이가 돼버린다.


  연구실 한 구석을 차지하던 PDP-11/70은 어느덧 VAX-11/780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머지않아 토이는 아파넷과 그곳에 있는 다량의 게임들을 발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단연 Colossal Cave Adventure라는 게임이었는데,


  이는 후일날 봇물 터지듯이 등장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들의 원형이 되는 물건으로


  게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놈이었다. 전설은 또다른 전설을 낳는 법.


  토이는 게임 속의 장면들이 VAX의 터미널을 통해 묘사될 때마다 무언가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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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enn Wichman (아래쪽), Michael Toy (빨간 티셔츠)




Star Trek을 거쳐 Colossal Cave Adventure에 심취하게 된 토이는 자기만의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연구실에서 자신과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사람을 한 명 더 발견해냈으니, 바로 글렌 위치맨이었다.


  글렌이 열심히 코딩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가만히 지켜보던 토이는 대뜸 자신이 플레이 해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런 둘이 절친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 글렌은 어릴 적부터 D&D 던전 마스터, 보드 게임 제작 등을 해왔기 때문에 게임 디자인 경험이 출중한 상태였고


  토이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둘의 협동은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어느덧 굉장히 친해진 둘은 아파트 월셋방을 나눠 쓰기도 하면서


  각자가 만든 게임을 서로 바꿔서 플레이 해보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 하지만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토이의 관심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급격히 식어버리고 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이 '고정돼있기' 때문이었다.



  어드벤쳐 게임을 플레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플레이어는 대담하게 모험을 떠난다. 그런 플레이어를 수만은 난관이 압박해오고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드벤처 게임의 한계 상 정답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고


  정답을 알기 위한 시행착오가 즐거울 망정 이미 알아버린 정답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드벤처 게임은 사실상 일회용 게임인 셈이었다.


 

  물론 당시의 게임 제작자들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선택지를 마련해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일부 성공적인 작품은 지금까지도 고전의 이름을 가진 채 살아남아 종종 회자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또 해도 재밌는 갓겜'을 찾아나선 마이클 토이의 불만을 꺾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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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n Arnold








무언가 뛰어난 혁신을 바라던 마이클 토이는 아파넷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차로 90분 거리에 있는 UC 버클리 대학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바로 켄 아놀드와 그가 정리한 Curses 라이브러리 말이다.




- 1973년,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가 UNIX를 발표한 이후 UNIX는 어느 교수님의 손에 들려 UC 버클리로 전파됐고


  빌 조이를 필두로 한 버클리 해커 팀은 Berkeley Software Distribution UNIX, 즉 그 유명한 BSD를 탄생시킨다.


  이후 BSD는 VI 편집기 등의 유용한 프로그램과 함께 카세트 테이프에 실려 UC 캠퍼스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유용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바로 Cursor Optimization, 줄여서 Curses 시스템이었다.


  (켄 아놀드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VI 편집기에서 코드를 따와서 정리한 것이라 한다.)



  이 커서 어쩌구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서 커서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가졌다.


  그럼 그 전까진 커서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단 말인가? 글쎄... 나는 거기까진 모르는 인간이라 이 부분은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고, 검색해봐도 영 신통찮은 대답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커서라는 신기한 도구를 활용해 화면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다가 문자를 찍어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이클 토이는 이 기능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그래픽'을 가진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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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그의 게임 화면





- 토이는 '그래픽'을 가진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렌과 함께 의논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결과물은 Colossal Cave Adventure와 그 파생작들과는 확연히 달라야만 했다.


  모험이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제공해줘야만 하는 것이었다.


  일단 기반이 될 설정을 세우기 시작한 둘은 D&D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 셋팅을 기반으로


  플레이어가 직접 모험가가 되어 보물과 괴물로 들어찬 'Dungeons of Doom'을 탐색하는 내용을 떠올렸다.


 


- 이 때 'Rogue'란 제목이 글렌의 뇌리에서 뿅 하고 튀어나왔는데, 이유는 정말이지 단순했다.


  당시에는 게임의 제목을 명령어처럼 입력해서 실행시켜야 했기 때문에 제목이 길고 복잡하면 쓸데없이 외우기 힘들어진다는 논리였다.




- 아무튼 게임은 개발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과제는 모험가가 활약할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장소는 매 게임이 시작될 때마다 달라져야 했다. 요즘 들어 '절차적 생성'이라 불리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둘은 알고리즘을 짜는 일에 시간을 쏟기 시작했고 그럭저럭 괜찮은 해결책을 찾아냈다.


  전체 맵을 3*3의 바둑판으로 쪼개놓고, 각각의 구획에 랜덤으로 방을 0~1개씩 생성한 다음에 복도를 그어서 쭉 이어놓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벽은 '-'와 '|'로 표시됐고, 바닥은 '.'으로, 복도는 '#'으로 표시됐다. 플레이어는 '@' 기호로 나타내졌는데,


  이는 'Where you're at'이란 문장에서 따온 것이었다.


 


- 포션이나 스크롤 등의 아이템들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미명 하에 매 게임마다 달라지게끔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글렌은 이렇게 회상했다.


  "저희는 자신이 만든 게임에 놀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죠. 포션이나 스크롤 따위는


  새로 시작할 때마다 모두 달라지는데, 이름과 효과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 몹들을 만드는 건 간단했다. D&D에서 가져오면 됐기 때문이다.


  코볼트, 오우거, 임프, 박쥐 등등등... 예를 들면 'B'는 박쥐를 'Z'는 좀비를 나타내는 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컴퓨터 용량이 바닥을 기던 시절이었던 관계로 몬스터들의 다양한 특수능력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Rogue의 몹들은 단순한 전술밖에 구사하지 못하는데, 다른 게 아니라 이런 뒷사정이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토이는 이 부분을 특히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 둘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결실을 맺자, 연구실에 게임을 설치해놓은 그들은 플레이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호평일색이었다. 심지어 게임적으로 모자란 부분조차도 플레이어들은 상상력으로 어떻게든 채워넣으며 플레이를 이어나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는데, 어느 플레이어가 대뜸 '이 몬스터는 이런이런 행동양식을 가진 것 같다' 라고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용량 문제로 그런 복잡한 기전은 애초에 넣을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 '영구적 죽음' 시스템도 이 때부터 이어졌다. 이후에 세이브 기능이 추가되긴 했지만, 죽으면 곧장 세이브 파일을 삭제시켜버리는 식으로 유지했다.


  이에 대해 토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당시의 게임들이란 그저 여러가지 동작들 사이의 배열과 타이밍 맞추기가 전부였죠. 그냥 올바른 방식대로 입력하기만 하면 게임이 깨지는 식이었습니다.


  '영구적 죽음'은 거기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어요. 당신이 마주한 상황은 진짜이고 실수도, 한 수 무르기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게임을 깨기 위해선 언제 도망치고 언제 들어갈지 모조리 꿰고 있어야만 합니다."




- 게임의 목표는 던전 최하층에 있는 Amulet of Yendor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옌더의 아뮬렛이라는 것이 사실은 맥거핀이다. 아니, 게임 스토리 자체가 없다.


  이는 어느정도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만들고자 한 건 순간순간의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순간은 소중하고, 플레이어는 다음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이런 순간순간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추억으로 남죠. 좀 더 방대한 이야기는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인생과도 같죠.


  어느날 잠깐 멈춰서서 뒤돌아보고 '아, 그 때 그런 일들이 있었지...' 하고 회상하기 전까지는 방대한 이야기란 없는 겁니다."



  아뮬렛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뭐가 됐든 플레이어를 던전 바닥으로 내려보낼 구실 정도면 충분한 것이고, 중요한 건 그 사이의 경험일 따름이다. 


  이런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지향은 로그라이크 장르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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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는 사이에 웃지 못할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마이클 토이가 성적불량으로 퇴학당한 것이 그것이었다.


  뒷사정은 뻔했다. 게임 제작에 심취한 나머지 학교 생활에 전혀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귀찮은 학교 생활을 멀리 했을 뿐, 토이의 실력은 이미 수준급인 상태였고, 그는 곧장 UC 버클리의 컴퓨터 연구실에 취직하게 된다.


  토이 입장에서는 컴퓨터에 대해 배우면서 쓰잘데기 없는 성적표 대신에 돈다발을 받으니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 하지만 글렌에겐 불행이었다. 친한 친구가 멀리 가버린 데다가 게임 제작에도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글렌은 UC 산타 크루즈에 남아 자신만의 Rogue를 계속 개발했지만 결국엔 중단해버렸다고 한다.




- 그런데, UC 버클리라니... 위에서 한 번 나온 적이 있지 않았던가? 바로 켄 아놀드가 이 때부터 Rogue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마침 아놀드도 아파넷을 통해 전파된 Rogue를 플레이하고 있던 참이었고, 심지어는 개선점까지 생각해두고 있었다고 한다.


  토이는 UC 버클리에 오자마자 아놀드를 찾아나섰고 둘이 절친이 되는 것 역시 시간문제였다.




- 한동안은 아놀드와 토이의 공동개발이 이어졌다. Rogue는 BSD UNIX의 기본 게임으로 탑재되면서 널리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편지가 날아들어왔다. 핵무기 개발 연구소에서 배달된 편지가 둘을 벙찌게 만들기도 했지만


  가장 압권이었던 건 바로 벨 연구소에서 날아온 편지였다.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가 재직하는 그 연구소 말이다.


  편지의 내용을 본 토이와 아놀드는 자지러졌다.


  '켄 톰슨이 속임수를 쓴다.' (정황상 세이브 파일 백업해놓은 듯)


  '데니스 리치가 게임에 푹 빠져서 당신들이 걸어놓은 보안을 뚫으려고 한다.'


  그 당시의 컴퓨터 덕후에게 둘은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웅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편지를 받은 둘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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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n Lane








- 시간은 또다시 흘러... 아놀드는 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고 토이는 '올리베티'라는 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본래 타자기를 생산하는 회사였던 올리베티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컴퓨터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이곳 연구실에 취직한 토이는 대담하게도 Rogue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다.


  연구원 중 일부는 순전히 Rogue를 플레이하기 위해 퇴근 시간 넘어서까지도 연구실에 죽치고 앉아있고는 했다고 전해진다.




- 당시 연구실의 컴퓨터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얽혀있었기 때문에 사용량을 체크하기가 수월했다.


  담당자였던 존 레인은 어느날 수상한 프로그램이 사용시간 1순위를 찍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Rogue 말이다.




- 그런데 이 사람, 대인배였다. 아니면 그 당시의 컴퓨터 공학자들이 대부분 그런 성격이었던 걸까?


  아무튼 Rogue가 생각보다 리소스를 적게 먹는다는 걸 확인한 존 레인은 사람들이 연구실 컴퓨터로 마음껏 게임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본인도 게임판에 합류하기 시작한 건 덤이었다. 그는 Rogue 특유의 게임 철학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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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gue : The Adventure Game








- 레인과 토이는 순식간에 친해졌고, 게임에 대한 여러가지 담론들이 오고 갔다.


  그러던 중 향후 Rogue의 방향을 결정한 얘기가 등장하고 말았으니, 바로 Rogue의 PC 포팅과 상업화였다.


  구미가 당긴 둘은 의기투합해 Artifitial Intelligence Design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Rogue의 PC 버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런저런 일을 겪는 와중에 소스 코드가 토이의 수중에서 사라진 모양이었다.


  토이는 UC 버클리에 쳐들어가 소스 코드를 냅킨에다 적어 오는 일까지 벌였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결국에는 모조리 새로 써야 했다.


  Curses 라이브러리도 증발해버렸기 때문에 출력 시스템까지 새로 작성했다고 전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게임은 Rogue : The Adventure Game이라는 제목이 붙어 팔리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변경점도 생겼는데, @는 ☺+로 대체당했으며 개빡센 D&D 저작권을 피하기 위해 Kobold를 Kestrel로 변경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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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yx 버젼 Rogue








- 새롭게 단장한 게임은 PC 유저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한참 모자랐다. 사실은 본전치기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좀 더 넓은 물, 즉 대형 매장에서의 판매를 원하는 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바로 Epyx라는 게임 회사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볼품없는 그래픽의 하드코어한 게임성을 가진 Rogue였지만, 이미 만들어둔 게 있으니 개발비를 최소화할 수도 있고


  코어 게이머 위주로 마케팅을 펼치면 어느정도 수익성이 보장되리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 어찌저찌 계약을 따낸 레인과 토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레인은 주로 PC 버젼을 담당했고 토이는 Mac 버젼을 개발했다.


  문제는 Mac 버젼에 그래픽을 넣는 과정에서 생겨났는데, 둘 모두 미술 쪽엔 재능이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었다.


  여기서 글렌 위치맨이 토이의 러브콜을 받고 다시 등장하는데, 그는 보드 게임 제작 등을 하며 미술 쪽도 꽤나 익혔던 모양이었다.


  글렌은 크레딧에 자신이 'Glenn Wichman and Scores of Others'라고 짬처리를 당한 것에 분노했고


  아트 담당을 넘어 전체적인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후에 포팅되는 아타리 ST 버젼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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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yx Rogue. 여기에 묻히다.

 






-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Rogue 상업화의 결말은 비참했다.


  마침내 개발을 완수하고 다량으로 찍어낸 Rogue의 패키지가 대형 매장에서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한 마디씩 내놓기 시작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pyx의 사장은 Rogue가 대중에게 어필하기엔 너무 트릭키했다고 꼬집었다.



  글렌은 억하심정으로 불법 복제에게 책임을 전가할뻔 했지만, 이내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Rogue는 당시 기준으로도 구시대적인 게임이었던 것이다.


  사운드도 없었고, 애니메이션도 없었고, 캐릭터 클래스 같은 시스템도 없었다.


 

  토이와 아놀드는 과거를 회상했다. 대학에선 모두가 Rogue를 공짜로 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그걸 돈 주고 판다니, 그런 걸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염치 없는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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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마이클 토이, 글렌 위치맨, 켄 아놀드






- 그렇게 Rogue의 상업화는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유산은 아직도 살아숨쉬고 있었다. 수많은 로그류 게임을 낳은 것이다.


  개발자 개개인들에게도 Rogue는 인생에 큰 족적을 남긴 게임으로 남았다.



  켄 아놀드에게 Rogue는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같은 흥미를 가진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서 호응을 얻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하는 '당신의 아이디어에 나도 영감을 받았다' 라는 투의 얘기를 듣는 건


  굉장히 즐거운 기억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글렌은 상업화의 실패로 얻은 좌절감을 금세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저는 Rogue를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덕분에 재기할 수도 있었구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Rogue를 플레이하고, 개선점을 추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저희는 장르를 만들어낼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결국에는 그렇게 돼버린 모양입니다.


  저로서는 그 과정 속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존 레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저도 개발을 하긴 했지만, 다른 세 사람이야말로 진짜 천재들입니다.

 

   특히 마이클은 난수를 활용해 매번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게임을 기획하고, 실제로 만들어냈어요.


   바로 그 부분이 Rogue를 특별한 게임으로 만들어주는데 말입니다.


   저는 Rogue란 게임이 어떻느니 하는 대화에 끼어들진 않는 편이지만,


   그런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조금씩 웃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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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






- 회의에 참석한 마이클 토이와 존 레인은 빌 조이, 켄 톰슨 등과 인사를 나누고


  데니스 리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다가와 귀띔해줬다.


  "데니스 리치 씨, 이 분이 바로 마이클 토이입니다."


  그러자 유닉스의 창조주인 데니스 리치가 대답했다.


  "자네가 그 마이클 토이라고??"


  토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리치는 Rogue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농담조로 Rogue를 '역사상 가장 거대한 CPU 자원 낭비'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Rogue의 복사 방지 보안을 뚫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어찌저찌 UC 산타 크루즈의 연구실을 해킹해서 거기에 저장돼있는


  Rogue의 알파 버젼을 가져다가 'Under Bell Labs'란 이름으로 수정해놨다는 등의 얘기였다.



  토이는 감격에 젖어 회상했다.


  "저의 영웅들, UNIX의 개발자들이... Rogue를 플레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Rogue란 게임에 담긴 뒷이야기들이다.


 





후기



여기까지 쓴 나는 아래의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던전핵로그라이크게임이어떻게...]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 | 인스티즈








바로 이 책의 '확장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올해 3월에 나왔다!



이 확장판은 본편에서 다루는 게임들의 좀 더 자세한 뒷이야기들과


로그라이트 게임들, 특히 FTL과 로그레거시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서평에 나와있는데


돈이 아까워서 이것까지 사서 보진 않을 생각이다.


그럼 여러분은 나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돈낭비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치겠다.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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