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놀랍니다. 하지만 현재 교육 현장에서 이런 성희롱은 놀랍기는커녕 아주 비일비재합니다. 다들 참고 쉬쉬하니 알려지지 않을 뿐이죠. 저 역시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한 뒤 더 이상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원평가 성희롱 공론화 교사 A씨)
교원평가 서술형 항목에 여러 교사를 상대로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을 쓴 고등학생이 최근 ‘퇴학’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학생은 익명으로 쓰는 교원평가 항목에 6명의 교사를 상대로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 X발”, “XX 크더라 XX 나오는 부분이니?”, “OO이 XX통 너무 작아” 등의 발언을 남겨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겼다. 욕설 필터링에 의해 걸러지지 않게 하려고 교묘히 글자를 변형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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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제제기를 했을 때만 해도 학교나 교육청은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가해 학생이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없었고, 경찰 역시 정식 접수가 될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해했다. 이러한 소극적 태도는 언론 보도를 통한 공론화와 민원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바뀌었다. 피해 교사 측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면 교육 당국이 여느 때처럼 관망하며 조용히 넘어가려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가해 학생 특정·처벌은 ‘계도’ 위한 것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미성년자에게 너무 과한 처벌을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런 우려는 교육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일단 남학생의 여성 교사 대상 성희롱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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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똑바로 봐야 한다. 남학생은 여교사를 대상으로, 남교사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저지른다. 이 문제의 본질은 교사-학생 구도가 아니라 ‘젠더 권력’의 작동 그 자체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왜곡된 10∼20대 남성의 성 인식은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발목을 거세게 붙잡고 있다. 여기에 어떤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이를 참다 못해 반격하거나, 계도를 통해 잘못임을 알려주려는 여성들이 ‘과격해서’ 정말 문제인 건지 자문해 볼 일이다.
지난해 1월 한 여자고등학교 재학생이 군 장병에게 보낸 장난스러운 위문편지 논란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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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원평가 성희롱 같은 사태는 교권의 무너짐에 더해 젠더 권력이 이중으로 작동한 경우임을 인정해야 한다. 가정도, 학교도, 교육청도, 사회도 남학생 교육에 손을 놓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폭력성이 키워진 것이다. 이를 정면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내놓는 교원평가 시스템 개선안 같은 건 허울일 뿐이다.
정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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