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9136 우륵은 490년경 대가야의 직할 현인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예술을 통해 혼란스러운 가야국의 정치적 통합을 꾀하고자 했던 그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朴堧)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 음악의 대표 현악기인 가야금(伽倻琴)은 위가 둥글고 아래가 평평한데,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천원지방)는 천문관을 나타내고 있으며, 열두 개의 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 것이다. 대가야 가실왕(嘉悉王)이 “여러 나라의 방언(方言)이 각각 다른데 그 성음(聲音)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만들게 하였다. 우륵의 삶은 시대적인 상황 탓에 순탄하지 않았다. 철기로 일어섰던 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에 의해 무너졌다. 551년 우륵은 제자 니문(尼文)과 함께 신라에 망명했다. 신라는 가야의 소리까지 차지한 셈이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소경(國原小京, 충주)에 안치시키고, 신라의 정치 문화 통합을 위해 계고(階古)·법지(法知)·만덕(萬德)을 우륵에게 보내 세 사람에게 각각 가야금·노래·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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