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 이름을 불러 준 그 목소리를 나는 문득 사랑하였다
너의 색으로 변해버린 나는 다시는 무채색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네가 없는 곳에도 너는 있고 내가 가는 곳마다 너는 있다
내 생각보다 네 생각이 많아 내가 너인 때도 있었다
bgm - 율리아, 바다에 띄워 보내는 이야기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준, 마음 한 철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에 침묵을 걸었는데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김이강, 서울 또는 잠시 中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오직 단 한 번 유서를 쓰듯 우레가 치듯 나에게 오라 부디, 사랑이여 와서 나를 짓밟아라 최갑수, 단 한 번의 사랑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도종환, 한 송이 꽃 부르지 않아도 이미 와 있는 너 이승의 어느 끝엘 가면 네 모습 안 보일까 물 같은 그리움을 아직은 우리 아껴 써야 하리 내가 바람이면 끝도 없는 파도로 밀리는 너 이해인, 내일
한 번이면 된다
봄을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네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네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백희다, 너는 또 봄일까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정현종, 갈증이며 샘물인
내가 말 한다고
네가 꽃필 거면
이미 오래 전에 내 말은
봄비로 너를 적셨겠지
내가 말한다고
네가 노래 부를 수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내 말은
너의 악기로 흥얼거렸겠지
모든 말들
부질없다는 거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꽃 피자고
노래하자고
김현옥, 말 中
나의 고독이
너의 고독과 만나
나의 슬픔이
너의 오래된 쓸쓸함과 눈이 맞아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와 손을 잡고
나의 저녁이 너의 저녁과 합해져
너의 욕망이 나의 밤을 뒤흔들고
뜨거움이 차가움을 밀어내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같이 있으면 잠을 못 자
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
최영미, 연인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겼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일까
나도 그러했었다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도종환, 끊긴 전화
뭔가가 시작되고 뭔가가 끝난다
시작은 대체로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나구나, 했는데 또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었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가 가장 슬프다
황경신, 그때가 가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