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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18/1/18) 게시물이에요


엄벌주의와 필벌주의 - 징역 1년의 무게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문유석

1. 양형 문제는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법원은 양형 문제에 관한 국민의 비판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있으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 범죄에 대한 양형이 너무 가볍다는 등의 문제 이전에 짚어보고 싶은 것이, 기본적으로 어떤 형벌이 가벼운 것인지 무거운 것인지에 대하여 판사들과 일반 국민들의 의식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법원이 누구를 징역 3년(또는 5년)의 엄벌에 처했다는 식의 기사가 나면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벌금이나 집행유예는 형벌도 아니며 실형만이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적어도 징역 10년 이상은 되어야 어느 정도 엄벌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 중한 범죄에 대하여는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형벌만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경우 등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입장을 ‘엄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벌주의’는 사실 인간의 본성에는 가장 부합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구약성서,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의 기본 형벌이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동해(同害)보복과 엄벌주의입니다. 살인한 자는 죽이고, 도둑질한 자는 팔을 자르며, 간음한 자는 거세하고, 빚 안갚는 자는 노비로 삼는 등이죠. 현대에도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엄벌주의’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 입증되었다면, 지금도 대다수의 문명국가들에서 빵 한 개를 훔쳐도 평생 감옥에 가두는 식의 형벌체계를 유지하고 있겠죠.

그에 비하여, 범죄율을 낮추는데 보다 효과적인 것은 오히려 ‘필벌주의’일지 모릅니다. 범죄를 범했을 경우 적발되어 처벌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면, 충동적 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의 범죄율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쉽게 들 수 있는 예가 바로 ‘카파라치’입니다. 교통단속당국이 카파라치에 의한 교통위반사범 신고를 포상하게 하자 위반사례는 극적으로 급감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측천무후 시대의 비밀밀고조직 운영, 북한의 5호 담당제 등 전사회적인 상호감시와 밀고 체제는 범죄 적발률을 매우 높이는데, 이러한 경우 충동범죄를 제외한 범죄의 범죄율은 상당히 떨어지곤 했습니다.

문제는, ‘필벌주의’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언제나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 하에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 내지 투쟁하는 존재이기에 모든 사람이 규칙을 완벽하게 준수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위의 역사적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완벽히 범죄를 적발해 내어 벌하는 사회는 엄격한 통제사회가 되는데, 개인들이 사회의 완벽한 통제에 대하여 느끼는 고통이 범죄피해를 입을 가능성으로 인한 고통보다 클 수도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전반부의 개인의 본능적인 폭력범죄와 후반부의 개인의 범죄충동을 테크놀로지로 거세하여 순종적인 바보로 만드는 체제의 구조적 폭력을 대비하여 보여주며 무엇이 더 무서운 것인지 질문했었습니다. 요즘에는 ‘데쓰노트’라는 만화가 큰 인기였죠? 일기장에 범죄자의 이름을 적어 넣기만 하면 범죄자를 죽게 할 수 있는 노트로 범죄 없는 세계를 만들려는 비뚤어진 이상주의자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 이야기의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은 ‘필벌주의’, ‘엄벌주의’로 손쉽게 범죄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들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의 결말도 그렇듯이 인간사는 그렇게 단순명쾌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가치상대주의에 기반한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엄벌주의’와 ‘필벌주의’는 모두 형사정책적 수단에 불과하지 목적이라고는 볼 수 없고, 복잡다양한 현대사회에서 다른 모든 위험과 마찬가지로 ‘범죄’ 역시 절멸의 대상이라기 보다 ‘관리’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위험을 절멸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위험을 낳기에, 적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형벌은 사회의 안전함을 보장하기에 적절한 수준이면 족하지, 형벌 수준이 절대적으로 어느 정도여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 엄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따라야 할 예로 드는 곳의 하나가 미국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확실히 선진국 중 가장 형벌이 엄한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설민수 판사님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0만 명을 넘고 있으며, 199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수형자가 평균 8개월 형을 선고받는데 비해 미국의 수형자는 평균 3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프랑스보다 4배 더 형벌이 엄하므로 4배 더 안전한 국가일까요? 거꾸로, 4배 더 무거운 형벌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요소가 많은 사회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엄벌’이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평균적인 형벌 수준이 높고 많은 수감자 수를 유지한다면 교정시설을 엄청나게 증설해야 하고, 세금으로 그 많은 수감자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동시에, 수감인원 증가는 사회적으로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하기도 하죠. 물론, 그런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야 할 만큼 범죄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위험이 큰 상태라면 이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일본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치안이 가장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결국, 성범죄, 화이트컬러 범죄, 뇌물죄, 위증죄 등 특정 범죄에 대한 형벌 수준이 적정한지에 대하여는 많은 고민과 개선이 필요합니다만, 전반적인 우리나라의 형벌 수준이 일반적으로 너무 낮다던지, 무조건 형량을 지금의 몇 배 더 높게 올려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3. 또한, ‘엄벌’ 여부의 기준에 대하여는, 징역을 하루도 받아 본 적 없는 일반 시민들이 개개인의 정의관념과 제한된 정보량에 의해 느끼는 감각과, 실제 형을 복역하는 사람들이 복역기간 및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고통 및 불이익(이 고통및 불이익이 바로 형벌의 본체)에 의해 실제 측정되는 양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 역시, 직접 수감생활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연수생 시절 국선변호를 위한 교도소 접견, 검찰시보 시절 인권보호를 위한 유치장 감찰, 형사단독판사 시절 관내 교도소 시찰 등의 기회가 있었고, 형사재판업무를 할 때는 상당수의 구속피고인이 교도소에서 써 내는 엄청난 양의 편지, 탄원서 등을 읽고 법정에서 대화도 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우리’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하고 처벌받는 것은 막연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교정행정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고, 재소자의 인권도 신장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예산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교도시설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본 사례 중에는 그리 넓지 않은 감방에 16명의 재소자가 정좌 자세로 빈틈 없이 앉아 수감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잘 때는 옆으로 누워 퍼즐 맞추기를 해야 되겠더군요. 8월초 35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일 때 감방 내 온도가 어떨지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전통적인 징벌방인 독방(한 명이 세로로 누우면 꼭 맞는 정도 사이즈)에 두 명의 죄수가 나란히 정좌해 있기에, 무슨 독방에 두 명이 있냐고 물었더니 청사 사정상 독방을 한 명이 쓰는 사치(?)를 부여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 사례는 갑자기 관할 조정 등으로 당해 교도소에 수감해야 할 인원이 급증했는데 미처 교도소 증설 등이 이루어지지 못한 과도기의 특수한 사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하튼, 평생 처음으로 자유를 구속당하고 남들이 쳐다보는 쇠창살 속에 수감된 사람들은 그 기간이 단 하루, 아니 몇 시간만 되어도 엄청난 공포와 좌절감, 자기모멸과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정치범, 양심범, 장기수 등이 상대적으로 수감생활을 잘 견디는 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최대요소의 하나인 ‘자기모멸’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 이불에 오줌 싸고 일어나서 느끼는 공포와 자기모멸의 기억을 되살려 보십시오. 전통적인 징계수단인 키를 쓰고 소금얻으러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는 방법은 형벌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고안한 가혹한 형벌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이란 자기 잘못과 치부를 공개적으로 지적당하고 멸시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무언가 자아의 본질적인 부분이 파괴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대응하죠. 자존을 상실한 채 무조건 순종하고 눈치를 보게 되던지, 자존을 억지로라도 지키기위해 자기 잘못을 끝까지 합리화하고 사회를 적대시하던지 등등. 더 나아가 타인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시되는 삶을 길든 짧든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그 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실형 복역자의 사회복귀는 형사정책적 과제이지만, 솔직히 아직 우리 사회에서 실형 전과자가 취업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불이익을 제도적이든, 비제도적이든 입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등학교 때 EBS에서 쟝 가방, 알랭 들롱 주연의 ‘암흑가의 두 사람’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레미제라블에서 쟈벨 형사와 쟝발잔의 관계를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도 인간 사회는 잘못을 저지르고 죄값을 치른 자를 온전히 용서하는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결론은, 범죄가 피해자에 미치는 고통에 대하여 함부로 가벼이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자에 대한 징역 1년이 엄한 벌인지 아닌지 역시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더우기, 판사로서는 ‘징역 1년의 무게’를 함부로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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