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재로 생긴 것이라 얘기한다.
후쿠시마 원전을 10년 동안 점검했던
이사람도 그것을 알았다.
후쿠시마 제 1호 원자로는
70년대 초에 미국 회사에서 만들고
그 이후로 미국의 엔지니어가 점검해왔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여러번의 문제가 있었지만
도쿄전력은 입닥치라고 얘기한다.
원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1989년, 지금 까지 본적없는 큰 균열이 발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케이 스가오카와 동료들은
점검 중 더욱 놀란다.
습기건조기의 방향이 반대로 놓아졌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반대로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도쿄전력은 스가오카와 동료를 협박하여
문제없다는 허위문서를 쓰게 하고 침묵시켰다.
스가오카는 참다 못해 일본의 담당관청에 고발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중에 원전 내부고발자을 통해 이 사실이
에이사쿠 사토에게 전해진다.
경제산업성은 내부고발자들의 이름을 도쿄전력에 밝힌다.
사토는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린다.
그제서야 일본 관료들은 움직였다.
17기의 원전이 일시정지되고,
조사위원회는 도쿄전력이 몇십년도 전부터
중대한 사고를 은폐, 조작해왔다는 것을 밝혀낸다.
사장, 간부는 사임 압박을 받고, 사원은 징계를 받았지만
결국 아무도 기소되지 않는다.
사토는 그 이후로 가짜뉴스, 협박, 기소을 당하고
동생이 체포된다.
검사는 동생에게 '지사인 형을 말살하겠다'라고 말한다.
직원들까지 자살로 죽자 주변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사임한다.
재판에서 사토는 무죄가 확정됐다.
간 나오토는 오랫동안 원자력의 위험을 알리는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압력과 보복이 갔다고 얘기한다.
연구자가 원전의 위험성을 말한다면
업계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
정치가는 전력회사에서 원조를 받는데위험을 얘기하면 받을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원전을 추진하면 수많은 자금지원을 받게 된다.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다.
원자력을 비판하지 못하게 만든다.
후쿠시마 바다의 방파제는 6m에 지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은 원래 35m 높이에 건설될 예정이였지만
표고 10m의 위치에 건설한다.
가져오기 쉽다는 이유였다.
한마디로 도쿄전력은 경제적 효율이 높다는 판단을 하였다.하지만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전원이 끊기고
비상용발전기는 쓰나미에 떠내려갔다.
너무 낮은 위치에 설치했기 때문이다.
전기가 없음으로 원자로 냉각은 불가능해졌다.
간 나오토는 원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도쿄전력이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였다.
3월 11일 사고 이후 도쿄전력은 간나오토에게는
비밀로 하고 사고를 축소은폐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쿄전력은 사고를 해결하지 않고 철수하려 했다.
도쿄전력은 보고서에 연료봉의 손상, 멜트다운에
이르렀다는 것을 단 하나도 쓰지 않았다.
3월 15일에는 아직 그런 상황이 이르지 않았다고
간나오토에게 허위 보고를 올린다.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을 믿지않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헬리콥터로 사찰하였지만 늦었다.
3월 11일 밤에 이미 3개의 원자로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나오토가 도쿄전력의 철수를 막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큰규모의 재해가 됐을 것이다.
현재 도쿄전력은 자신들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통제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 때문이라고.
불리한 수많은 자료는 숨기면서.
현장직원.
도쿄의 지진학자 시마무라 히데키.
앞으로도 대규모 지진이 있을거라 예측하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런 규모의 지진을 버티는 시설은어짜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쿄전력.
원전을 전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판단했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지진학자들이 도후쿠 대지진같은 규모는
어떤 원전도 버틸 수 없다고 얘기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말이 없어진다.
직원은 후쿠시마 사고를 인류가 기억하길 바란다.
더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