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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가족들과 관계를 끊는 것보다 온라인 관계를 끊는게 더 힘들 정도였다. 그건 주어진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거였고, 오로지 내가 쓴 글, 내가 만든 이미지 만으로 구성된 우주였으니까.
권여선, <이모>
통장에 입금된 여덟자리 숫자를 보고 나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한달에 35만원씩 쓰던 그녀가 9년 5개월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숫자들은 그녀와 세상 사이를, 세상과 나 사이를, 마침내는 이 모든 슬픔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 사이를 가르고 있는,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처럼 여겨졌다.
권여선, <이모>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권여선, <카메라>
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권여선, <역광>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권여선, <실내화 한켤레>
사람들은 그것이 불행한 사고였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도 합니다. 타인의 고통은 차창 밖으로 밀려나는 풍경만큼이나 빨리 멀어지는 것이니까요. 나는 아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개를 찾고 싶습니다. 짙은 어둠속에서 꺼내주고 싶습니다. 개는, 어디에 있을까요?
조수경, <외선순환선 2014년 봄, 그 후>
투명함이라는 것은 말이야,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자기를 더이상 드러낼 의지를 잃었다는 것과 같고 그건 죽음이나 무와 마찬가지라고.
최정화, <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