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 암호닉 *
보리차
기맘빈과김밥
지나니
코카콜라
미니슈
우왕굿
토마스
다이
비빔밥
쿠쿠
뿌리부터햫기가동동나네
밤비
꿀떡
조으디
너에게로가는걸음
메추리맘빈
두비두밥
뿌요
됴아
지원아
분홍양말
옥수수
쎄니
파랑짹짹이
주네야
닭다리
종대생
뚜기두밥 오뚜기밥
꿍디꿍디
bobb_y
으우뜨뚜
감자
도비
백년가약
헛둘헛둘
으컁컁
꽁냥꽁냥
구릴라
유자
뜟
쥬넹쥬네
식빵
닐리리야
매력넘치는
하늘
해피
비니비니한비니
후은
춘향
허니콤보
우현동자
한비니맘비니
김밥이랑
찌푸
라임
콩듀
암호닉 신청감사드립니다! 꾸준한 댓글 부탁드려요~
"핀셋은 이게 마지막이야."
"..."
"제기랄, 겨우 다왔네. 힘들어 죽을뻔했잖아."
오세훈은 욕을 지껄이며 마지막으로 꽂았던 핀셋을 빼내들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핀셋이라 눈에 확 띄는 것이기에 쉽사리 중앙지에 도착했다.
몸을 숙이고 조용조용하게 말하곤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 흥분하면 시선을 끌기때문에 눈치는 봐야했다.
주변을 살폈다. 헝거게임을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주변은 항상, 매번 살피는 것.
보이지는 않지만 나와 오세훈 말고 다른 참가자들도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오세훈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내 옆에 같이 몸을 숙이고 중앙지를 쳐다봤다. 성인남성의 키 반 쯤오는 높이의 풀이라 자칫 방심할 수 도 있었다.
내 머리카락 또한 흩날렸고, 아무렇게나 뒤로 넘기며 최대한 눈을 가리지않으려고 노력했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반쯤 꿇은 상태로, 그리고 아빠다리로 앉은 채 여러차례로 자세를 바꾸며 오랫동안 지켜봤다.
오세훈은 다행스럽게도 지겹다는 말 한마디도 뱉지않은채 똑같이 중앙지를 쳐다봤는데, 그 또한 목적이 중앙지로 바뀐것 같았다.
커다란 숨소리 하나 들리지않고 쥐죽은듯 바람만 거세게 불어대는 게임장, 그리고 대포소리 하나 안들리는 이태의 시간.
눈을 깜빡이며 한 쪽면에 설치된 텐트를 응시했다. 이윽고 때 맞춰 누군가가 지퍼를 열고 나왔다.
대포소리, 김지원과 김한빈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고. 지금껏 몇 명이 살아남았더라?
부스럭거리는 오세훈을 힐끔보니, 자신이 뽑아든 핀셋을 굴리다가 잔뜩 구부려뜨리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진짜. 너무 조용하지않아?"
먼저 텐트 안에서 나온 여자는 박초롱이였다. 박초롱은 긴머리를 휘날리며 지루하다는 불평을 터뜨렸다.
이때쯤이면 좀 대포도 터지고- 혼잣말인지 모두에게 하는 말인지 구별안갈 정도로 박초롱은 태연했다.
박초롱 뒤를 이어 부스럭대다가 나온 남자는 김종인이였다. 남태현과 싸웠던 장본인, 아마 남태현을 죽였을 것이다.
살인전과 있는 새끼. 김진환의 말이 기억나서 잠깐 몸을 움츠러들였다. 난도질하는 모습이 왠지모르게 상상이 갔다.
나른한 눈빛을 하고 중앙지에서 주변을 주욱 둘러보는 그의 기색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가빠오는 심장소리를 움켜쥐었다.
오세훈은 굴리던 핀셋을 뒤로 던져버리고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몰라, 여기 누가 있는지."
김종인의 말에 박초롱은 발끈하며 그럼 왜 안나오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떽떽거리는 목소리에 김종인은 짜증이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게 퍽이나 소리질러대면 나오겠다, 어? 김종인은 박초롱에게 아예 시선을 돌린 듯해보여 다시 고개를 조금씩 들었다.
김종인은 나와 오세훈 자체를 뒤로 한채 박초롱을 내려다보며 팔짱을 끼고있었고, 박초롱은 앙앙거리며 짜증을 내고있었다.
두 명뿐인가. 오세훈은 약간의 칼날 소리를 내며 언제 덮칠지를 계산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최대한 총구소리를 내지않으려고 노력하며 장착했던 총을 집어들었다. 일단 박초롱을 죽여야 할지, 김종인을 죽여야할지.
오세훈과 눈을 맞췄다. 오세훈은 가만히나를 쳐다보다가 냉담한 웃음을 천천히 지어올렸다.
"떽떽거리지마, 시끄러워."
김종인의 목소리도 아닌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목소리에 나는 총을 떨어트릴 뻔했고, 오세훈은 떨어뜨릴 뻔했던 총을 들고있던 내 손을 움켜쥐었다.
야, 정신 안차려? 오세훈은 귀찮은 목소리로 이런것도 챙겨줘야 되겠냐며 툴툴거렸다.
미안...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또한번 들렸다. 여기서 너가 여자라고 우리가 봐주는거다.
박초롱은 할말이 없었는지 쳇, 거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소리를 냈다. 박초롱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대충 기다렸다.
김종인, 저 여자애 언제 죽일거냐? 그 남자가 물었다.
"조만간."
"하여튼 물러터진 새끼."
"그건 니가할말이 아닐텐데... 그 비니좀 벗어."
"뺏은건데 마음에 들었어. 그 새끼가 쓸 때부터 탐났거든."
비니? 나는 그 단어에 파블로스의 개처럼 반응하여 급박하게 고개를 그 쪽으로 틀었다.
차학연, 여튼 존나 이상한 새끼. 김종인은 읊조리며 기지개를 폈다. 어떻게 대포소리 하나도 안들리냐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차학연은 보라색 비니를 뒤집어쓴채 김종인을 따라서 스트레칭을 하고있었다.
김지원의 것. 눈이 저절로 커졌다. 입술이 달달 떨려왔다. 김지원, 김지원 건데... 왜 쟤가 갖고있는거지?
심지어 그냥 깨끗한 상태도아닌, 피가 얼룩진 비니였다. 차학연은 비니를 자주 고쳐쓰며 마음에 든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아무튼 간만에 마음에 든다. 이거 쓰니까 좀 안전빵 되는것 같아... 김지원이라고 했던가? 그 새끼는 왜 안죽고있어, 재수없게.
"...안 돼."
나도모르게 총구를 들이밀어 넣으려고 했다. 김지원이 떠올랐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쓰고다니던 비니를 보니, 김지원이 더 떠올랐다.
죽여버리고싶었다. 매우. 나는 김지원이 저 새끼들에게 당한 장면이 상상이 되어서 더 화가 났다.
이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안전장치 따위 풀어놓은지 오래였다. 당장이라도 쏴 죽여버리고 김지원을 찾아내고싶었다.
그런 총구를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용기있게 감싸는 피가 잔뜩 묻은 손. 나는 오세훈도 아닌 누군가가 내 옆에 귀신같이 왔다는 사실에 놀랄 기색도 없었다.
천천히 내 총구를 감싼 손이 누군가 하고 시선을 옮기니,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너가.
살풋 웃어보이는 너의 살구색 얼굴 속 이목구비 사이로 응집된 핏자국들과 흘러내리다가 만 줄기들이 너무 적나라해서.
"...야,"
"..."
왜 두 눈은 반 쯤 감겨있는 걸까.
잔뜩 부풀어 오른 입술은 왜 멍이 들어있는 걸까.
애매하게 웃어보이는 입가가 찢어지는 이유는 뭘까.
핏덩이가 응집되어 있는 건지, 나는 이유를 모른다.
그냥 단지 너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너는 정말 힘겨운 웃음을 한 번 짓고서 쥐었던 총구를 내렸다.
중앙지에서는 세 사람이 자잘한 말 싸움을 하고있어서 작은 잡음들은 쉽사리 먹혔다.
1초가 1분인 듯 숨막히는 시간이 하나 둘 씩 지나면서 내 앞에 있는 너가 진짜 너구나, 라는게 실감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볼을 감싸쥐더니 너는 정말 안죽었다며 의미없는 말을 내뱉고는 내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멈춘 것만같았다. 그냥 크게 눈을 뜨고 미동도 없이 너를 내 시야에서만 고정했다.
못 본 사이에 누구한테 그렇게 얻어맞고 하루를 지낸거야? 아픈거 싫어하는 너인데, 나는 너의 끔찍했던 모습이 생각나지않았다.
"..."
"...야, 야... 정신 차려...!"
"..."
"...김...한빈...!"
오세훈은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김한빈의 얼굴을 건들였다. 김한빈은 눈을 감은채 내 옆에 엎어져있었다.
오른팔은 내 팔에 걸친채 그는 숨을 쉬지않는 것처럼 보여서 내가 오히려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김한빈, 김한빈. 너... 왜그래. 어디서 이랬어... 말이 나올듯 말듯했다. 나는 김한빈 쪽으로 완전히 몸을 틀어서 어깨를 흔들었다.
만신창이가 되 버린 그의 얼굴은 대조적으로 평화롭게만 보였다. 두 눈은 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가.
비상식략을 건네면서 까지 날 죽이지 말라던 김한빈의 목소리가 상상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날 지키려고 했던,
김한빈이 왜 내 눈앞에서 나약하게 쓰러져있는 것인가. 두들겨맞은 자국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가슴팍이 막혀버릴 듯했다.
"야, 어떡해...!"
"...김, 김한빈... 정신차려...!"
"하... 진짜, 미쳐버리겠네."
"김한빈... 김한빈... 너 왜여깄는거야... 왜..."
"일단 진정해. 여기는 눈앞에 적진이라..."
"김한빈... 눈 좀 떠봐, 응?"
오세훈은 쌍으로 지랄한다며 욕을 지껄였다. 하지만 나는 들리지않았고, 오히려 자극제가 되서 김한빈의 어깨를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일어나보라고. 들리지않는 걸 억지로 중얼거리며 김한빈을 정신없이 깨웠다. 오세훈은 곧바로 미쳤냐며 흔들던 내 팔을 잡았다.
진정해, 너 또 정신나갔지? 그는 허탈하게 짧은 웃음을 짓더니 나를 뒤로 밀어뜨려 버렸다. 뒤로 넘어간 내 모습을 보더니 그는 잠시 얼굴을 굳혔다.
한참동안 나는 허공을 쳐다보고, 오세훈은 나와 김한빈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망할 것들이라며 분풀이를 할 데가 없었는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내가 여기 적진 앞에라서 소리를 못지르는게 내 평생 한이 될 것 같다, 씨발. 오세훈은 끝까지 욕을 했다.
김한빈 때문에 니 또 정신나갔으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 겠다고. 그는 주먹을 꽉 쥐고 김한빈의 등을 거세게 한 번 때렸다.
둔탁한 소리가 한 번 들리자 나는 그제서야 초점을 맞추고 오세훈을 쳐다봤다.
오세훈은 손목을 돌리면서 화를 참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뭣 때문에 이리 해야되는 건지 자신도 이해가 안됀다며.
"김한빈은 내가 데리고 갈께."
"...뭐?"
"니 새끼 또 정신 안차리고 있으면 김한빈은 걍 죽어. 끝."
"..."
"하, 씨발. 진짜 내가 쓸데없이 정만 없어도..."
"..."
"핀셋으로 꽂아두고 갈테니까 알아서 잘 찾아와라. 중앙지... 부탁할께."
오세훈은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망설임없이 김한빈을 반쯤 일으켜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게 했다.
흐느적거리며 완전히 오세훈에게 기댄 김한빈의 얼굴은 지치고 고난에 흠뻑 빠져버린 얼굴이였기에 나는 더더욱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수고하라는 의미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존나 무겁다며 중얼거림을 뒤로 한 채 엉금엉금 걸어갔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서 일어설 모양인 듯 했다. 나는 몇 초간 그 둘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중앙지로 옮겼다.
여기서 뭐해? 박초롱이 되돌아 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차학연은 스트레칭 중이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박초롱도 왔으니까 물 떠오러 가자. 김종인은 차학연에게 권유를 했고, 차학연은 잠시 아무말이 없었다.
저 가방에 물이 있을거 아냐, 그거 가져오면 안돼냐? 차학연은 날카롭게 쏘아붙혔다. 그에 김종인은 그런대답이 나올줄 알았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김남준 꼴 나고싶어? 무서울 정도로 즐겁게 말하는 김종인의 대답에 차학연은 할말을 잃었는지 목소리가 들리지않았다.
저 가방 주변에는 지뢰가 가득하다구. 일부러 지뢰 주변에 적은 숫자의 가방들만 놔둔거 몰라?
박초롱은 자신이 여기를 지키고 있겠다며 싹싹하게 말했다. 김종인은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은 눈치였다.
"갔다 올께. 잘 지켜라."
"엉. 빨리 와라."
차학연과 김종인은 미리 길을 알아놓았던 건지 다행스럽게도 내가 있는 쪽 정반대로 걸어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타이밍을 엿봤다. 박초롱은 기지개를 펴더니 지루하다며 텐트 주변에 놓아두었던 캠핑용 의자에 다가갔다.
풀썩 앉더니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가방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비니를 벗고는 무슨 생각이 난건지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
여러모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아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타입이 제일 싫었다.
김종인도 없겠다, 차학연도 없겠다. 더군다나 마지막 안방마님이였던 박초롱 마저도 텐트 안에 들어가있는 상태.
가방 하나 훔쳐 올 수 있는 시간이였다. 지뢰? 지뢰같은건...
타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급박하게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들린 발자국. 그것도 빠르게 달리는 속도로 울려퍼지는 소리가.
내가 보는 쪽에서 왼쪽 방향에서 튀어나온 강슬기. 강슬기는 하룻동안 심신을 안정시켰는지 혈색이 어제와 다르게 좋아보였다.
공포감에 질린 얼굴 빼고는. 강슬기는 누가 볼세라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가방 가까이 다가갔다.
지뢰가 있을 텐데.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박초롱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툭툭 건드리던 강슬기는 품에서 막대를 꺼내 아슬아슬하게도 가방을 꺼냈다.
둥둥 뜬 채 강슬기 가까이 오는 가방은 이제 곧 그녀의 품으로 들어갈 듯 해보였다.
오른쪽에서 약간 비스듬한 쪽에서 누군가 또 이윽고 튀어나왔다. 작은 체구는 아니였고, 남자였다.
육성재. 육성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정신없이 강슬기와 같은 수법으로 가방을 꺼내올 계획이였는지 달려오면서 막대를 꺼냈다.
강슬기는 육성재가 다가오는 걸 힐끔 보고는 덜덜 손을 떨며 가까스로 건져왔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더니, 자신이 나온 방향과 반대인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강슬기가 가장 잘못한 것은 걸었다는 것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쥐새끼 두마리가 있네?"
감춰져있던 목소리가 텐트안에서 울려나왔다. 강슬기와 육성재는 깜짝 놀란 얼굴로 텐트를 쳐다봤다.
정말 귀찮아 죽겠어. 박초롱은 투덜거리더니 잠시 아무말을 하지않았다. 강슬기는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했다.
육성재는 묵묵히 가방을 꺼내들었고, 그 또한 성공했는지 강슬기와 다르게 뜀박질을 하며 걸음소리를 죽이고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시간과 어긋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어디로 던진거지? 그리고 누구에게 던진거야?
눈이 방황하고 있을 무렵에 그 대상자가 누구인지는 곧바로 밝혀졌다. 맞은 대상자가 고통에 뒤덮힌 신음을 빽 질렀기 때문이다.
아악!!!! 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고통이 울려퍼지자, 곧이어 강슬기가 들고있던 가방을 떨어뜨리며 쓰러졌다.
풀썩 쓰러진 그녀는 자신의 발목을 쥐며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강슬기는 손바닥에 묻어나오는 새빨간 피를 보더니 더욱 버둥거리며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박초롱이 강슬기에게 뾰족한 무언가를 던져 발목에 리스크를 준 듯했다.
그것이 정통으로 박혀서 그녀는 박힌 다리를 아예 쓰지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10걸음 이상으로 떨어진 숲 속으로 가려는 모습이 안쓰럽게만 보였다.
부욱- 하고 지퍼가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텐트가 열렸다. 박초롱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정당당하게 가져가던가, 쯧."
"...하윽, 하... 으... 윽...!"
"아파뒤질거 같니?"
박초롱은 해맑게 웃으며 강슬기에게 다가갔다. 강슬기는 그녀가 가까이 올 수록 몸부림을 쳤다.
"아파 뒤질거 같으면,"
"...흐윽, 흐윽...하, 하아..."
"죽어, 병신년아."
박초롱은 순식간에 강슬기 몸 위로 올라타더니, 저항하는 그녀의 몸을 가볍게 제압했다.
그리고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여주며 박초롱은 망설임없이 강슬기를 향해 던졌던 칼을 다시 들어올렸다.
푹, 푸욱, 푹, 푹, 푸욱.
무언가를 찌르는 소리가 다섯번 연속으로 들렸고, 누군가의 헐떡이던 숨이 끊어졌다.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볼 수가없어서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펑- 하고 터지는 대포소리가 게임장 전체를 울렸다.
"진짜 이 년도 불쌍해..."
"..."
"뭐 죽은사람은 말이 없지만."
뭐에 홀린 듯 박초롱이 강슬기에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재빠르게 총구를 올렸다.
가장 가까운 지뢰가 파묻힌 구덩이로 추정되는 경계. 그리고 충격을 주면 백퍼센트 터져버리는 지뢰.
원거리. 박초롱, 강슬기. 가방. 총알. 김지원, 김한빈. 비니, 피.
김종인, 차학연. 오세훈. 칼, 단도. 달리기, 계획. 육성재, 지뢰.
탕! 탕!
총구 속에서 올곧게 나아가는 총알 두 발, 이윽고 거세게 터져버리는 지뢰들이 아름다운 폭파음을 내며 모여있던 가방들을 분산시켜놨다.
여기저기로 떨어지는 가방들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시야를 어둡게 해준 덕분에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연기속으로 달려나갔다.
가방, 가방. 가방 어딨지. 총알탄, 빨리 찾아야돼. 김한빈, 김한빈...
왜 없어.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 거렸다. 겨우 찾은 가방 속에는 총알탄은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씨이발, 나는 욕을 읊조리며 다른 가방을 찾으러 뛰었고, 곧이어 찾은 가방에도 총알탄은 없었다.
어딨는거야, 대체!!
"...죽어, 씨발!!!!!"
누군가 내 뒤를 덮쳤다. 나는 뒤를 돌아보자마자 덮침을 당했고, 눈을 질끈 감은채 날 덮친 사람과 함께 저만치 굴러갔다.
굴러가는 동안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눈 앞이 다 아찔했다. 강슬기의 신음소리가 아직도 퍼져나오는 것만같았다.
대놓고 치고들어오는 칼의 소리에 처음에는 찔릴뻔했다. 가까스로 막았지만 더 세게 그 경계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거센 팔 힘에 주체할 기운 조차 없어서 고개를 이리저리 피했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귀 근처에서 들려왔다.
소름끼친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옅어지는 연기 사이에 날 덮친 사람을 올려다봤다.
"와, 이 년. 11점 맞은 년이네?"
"...박초롱!"
"내 이름도 아네, 영광스러워라."
"..."
"근데 나는 너 이름 몰라. 난 너가 존나 싫거든."
박초롱은 낄낄거리며 칼을 내 얼굴 근처에서 움직여댔다. 나는 숨이 턱턱 막혀오고 있었고, 박초롱이 내 다리를 한번 걷어찼다.
아! 하고 짧은 고통을 호소하며 순간적으로 쥐고있던 팔 힘이 풀리자, 박초롱은 이때다 싶었는지 벌떡 일어났다.
넌 좀 특별히 죽여줄께. 박초롱은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건지 내 다리를 여러 번 걷어차며 아픔도 못느낄 정도까지 차버릴 기세였다.
김지원이랑 김한빈이라고 했던가? 여우 년이야, 이거. 걔네한테 뭘 해줬길래 걔네가 그렇게 정신을 못차려?
특히 김지원. 내가 꼬셔서 너 관한거 알려고했는데 넘어오지도 않더구만? 김한빈도 마찬가지였어.
도움도 안돼는 년... 몸 대줬지? 안봐도 뻔해. 그렇게 쓸게 없어서 몸이라도 대줬구나?
"...사, 흐윽, 사람이..."
"..."
"할말이 있고... 안할말이 있지..."
"...뭐라고?"
"몸 대준건 너잖아, 크윽, 씨발아...!"
몸대줬다. 나는 그말에 울컥해서 아픔도 잊고 서 있던 박초롱의 다리를 있는 힘껏 넘어뜨렸다.
예상치도 못했던 내 기습에 박초롱은 몰랐는지 그대로 당해버렸다. 넘어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대놓고 맞았는지 아프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프잖아 씨발아!!!!!!! 박초롱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사람이 할말이 있고, 안할말이 있다고 했잖아. 넌 도를 지나쳤어. 내 말에 박초롱은 기가찼는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지금, 날 이렇게 엿먹인거냐? 드센 그녀의 말에 나는 군말없이 박초롱 위에 올라타 감춰뒀던 칼을 꺼냈다.
죽여버려야 돼. 죽여, 죽여야 해. 이같은년, 죽여버려야해.
그럼, 나 지켜주는거지?
김지원이 웃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 나야.
김동혁은 술취한 모습을 애써 보이지않으려고 했다.
잘했다, 아가야.
김진환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내가, 내가 좋아하거든.
김한빈이 살벌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누나.
종대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사랑해.
윤형이가... 보였다.
"...이런 뒤질라고 환장한 년!!!!"
박초롱은 거친 욕을 뱉으며 내 가슴팍을 발길질 해댔다.
숨이, 숨이 안숴졌다. 컥, 컥거리며 호흡이라도 애써하려고 내 몸은 발버둥 치고있었다.
풀을 잡았다. 고통을 맞대응하겠다는 것처럼 나는 풀을 뜯어낼듯이 잡았다.
박초롱은 복날에 개패듯이 내 얼굴과 다리를 미친듯이 차고, 밟고, 눌렀다. 벌써부터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악!!!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입술은 벌써 터져버린지 오래였다. 너무 세게 깨문 탓이였다.
너란 년, 정말 마음에 안들어!!!!!!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버러지같은 년이 있을 수 있지? 정말 역겹다, 개새끼야!!!
박초롱은 번뜩이며 숨겨뒀던 내 칼을 발견했다. 이런걸 숨겨놨냐며 기가찬 웃음을 짓더니 망설임없이 들어올렸다.
이젠 정말 작별인사할 차례야. 뭐, 전해줄 말 없어? 내가 좀 착해서, 이런건 전해줄께. 김지원이라던지, 김한빈이라던지.
내가 끝까지 살아남을 거거든. 박초롱은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경악스러울 정도로 깔깔대며 웃었다.
숨조차 고르기 바빴다. 헉헉대며 어질어질한 눈앞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박초롱은 아무말하지않는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쯧, 불쌍해라."
"..."
"12구역만 아니였다면 내가 널 살려줬을지도 모르지."
"..."
"상관없어, 넌 죽으면 돼. 그게 원래 스토리야."
"..."
"전해줄 말, 없구나? 불쌍해라- 김지원이랑 김한빈이 꽤 울겠네? 크큭..."
박초롱의 비아냥 거림.
정말... 죽는걸까.
"...꼭 저런것들이 죽을려고 안간힘을 쓴다니까."
박초롱 뒤에서 누군가 한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박초롱은 눈을 치켜뜨며 뭐냐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못알아볼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보인다.
"나?"
"넌, 유일하게 안죽은 사람 중 하나?"
"그렇게 소문이 났어? 하여튼."
그리고 나서 대꾸할 틈도없이 박초롱의 목소리가 허공에 분리되었다.
"...얜 또 왜이리 만신창이야."
그 사람은 내 위에 올라탔던 박초롱을 발로 깠다. 박초롱은 힘없이 내 옆으로 무너져내렸고, 나는 겨우 정신을 잡은채 옆을 쳐다봤다.
그녀는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등 뒤에는 날카로운 화살이 박혀있었다. 심장 정통으로.
내 칼을 쥔채 박초롱은 볼품없이 죽었다. 이윽고 하늘을 울리는 또 한번의 대포소리.
이제 일어나. 구해준 사람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못 움직여? 그 사람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왔고,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다리가... 골절되버렸어. 그 사람은 말을 잇지못했다. 대체 무모한 짓을 왜한거야, 어?
"날 구해줬으면 멋있게라도 박초롱 죽이던가."
"...흐으,"
그 사람은 날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눈앞에 보여주는 총알탄 네 개.
가득 차 있는 거야. 그 사람은 무덤덤히 말하며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을 빼앗더니, 잔뜩 쑤셔넣었다.
총알탄 구하느라고 여기저기 다 뒤지진 않았다만, 일단 네개 넉넉히 챙겼으니까 가져가고.
"일으켜줄께. 어디 갈데 있어?"
"..."
"있구만, 빨리말해. 데려다줄께."
손승완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렬했지만 날 겨우겨우 일으켜 내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게 했고, 그녀는 내 허리를 감싸는 동시에 팔을 잡았다.
휘청거리는 탓에 그녀는 답답해했지만 중심을 잡아내자 손승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절뚝 절뚝 거리는 내 오른 다리가 볼품없어보였다. 민망하고 짜증나서 다리를 잘라내고 싶었다.
내 심정은 아예 모르는 손승완은 긴 머리카락을 넘기며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는 듯해보였다. ...오세훈, 오세훈.
중얼거리자 가까스로 알아들은 그녀는 너 저쪽에서 튀어나온거 봤다며 발걸음을 틀었다.
어떻게 오세훈이랑 동행할 생각을 했냐, 존나 기발한듯. 손승완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숲속 으로 들어오는경계에 들어왔다.
"핀셋, 꽂아둔데 있어. 거기... 거기 따라가면 돼."
"핀셋?"
"...저기, 반짝이는거."
"아, 어."
손승완은 머쓱하게 웃더니 곧바로 활기차게 가보자며 내 발걸음을 최대한 배려했다.
박초롱이 눈앞에서 발길질과 난도질을 해대는 필름영상이 아직도 아른거려서 쉽사리 눈을 감지 못했다.
후유증,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뭔 스트레스만 받으면 두통이 오는 타입이라서 내가 너무 싫었다. 신세지는 것 같아서 그것도 더 싫고.
김기범 보고싶다. 손승완은 옆에서 중얼거리며 퍼뜩 내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순간 무슨소린가 싶어서 그녀를 쳐다봤다.
"죽었잖아."
"..."
그러고보니까 눈물자국이 심하긴 했다.
뭘그리 빤히쳐다보냐는 손승완의 말투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녀는 눈을 마구 비볐다.
안 울었어. 진짜야. 거짓말을 해대는 통에 나는 모른척 눈감아주고 애꿎은 핀셋을 가리키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김기범을 좋아했나보다.
이홍빈이 죽였고, 나는 그런 이홍빈을 죽여줬으니 손승완은 과연 어떤기분일까.
손승완은 웃음을 잃지않았다. 흥흥, 거리며 약간의 허밍을 하며 즐거워보였다. 즐거운 척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