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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이준혁 엑소 강동원
중력달 전체글ll조회 1840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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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구요, 그쪽."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그만의 공기로 읊조리듯 말하는 그를 처음으로 마주한다. 덕분에 지금 내 눈엔, 이 땅의 모든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 걸린 듯 느리게 펼쳐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이 멈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것도 나 혼자만.



  힘들죠.

  아니, 한 번을 안 웃길래.


  난 그쪽 때문에 몇 번도 더 웃는데.



  그가 차곡차곡 쌓은 말을 그대로 옮겨 내 머릿속에다 나열했다. 빠질 것 같이 위태롭던 정신이 대체 어디로 도망갔나 했더니, 벌써 저 손아귀에 있다. 노랫말 같은 목소리도 저 다정한 표정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건,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요' 라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은 거, 가져갈게요' 같은 세상 멋 없는 몇 마디와 '적립 필요하세요' 혹은 '네, 진동벨로 알려 드릴게요' 따위의 답변이 여태껏 서로 나눈 이야기의 전부였던 우리 사이에 오고 간 첫 대화였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한밤중의 폭풍우처럼 마구 휘몰아치는 주문의 향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자 이제 막 고지가 보여 한숨 돌릴 채비를 할 시간인 '오후 2시'만 되면 꼭 찾아와 나를 묘한 미궁 속에 빠뜨리고 말던 나만의 신비소년이, 그저 존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상상을 불러 일으키던 그 신비소년이 글쎄,



  "저, 저를…기, 기다려요?"



  나더러 지금 기다렸다고 말한다. 왜요? 두 눈을 뜨고도 두 귀로 생생히 듣고도 영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건 모두 실제상황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전부,


  이 모든 게 나를 기다렸다고.

  다 나를 향한 것이었다고.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응, 그쪽이요."



  기다란 고개를 잔잔히 끄덕이다 또다시 나를 뚫어져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오는 특유의 저 빤한 두 눈 그리고 그만의 어투. 존댓말과 반말을 적절히 섞는다는 게 어떤 건지 가슴에 확 와닿은 적이 여태 없었는데, 어쩌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저 다정한 고갯짓과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기다렸어요.


그가 다시금 문장을 이루는 형태소 하나 하나 음미하듯 읊었다. 쭉 뻗은 목울대가 나지막이 진동할 때마다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그의 붉은 입술이 만들어 낸 음성은 하루 온종일 지겹도록 카페 안을 내내 감돌던 CD 음악 소리보다 더 음악같이 느껴져 이제는 왠지 아득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아니, 먹을 게 없어서 내가 지금 더위를 다 먹은 건가? 두 눈 다 뜨고서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겠고. 어쩌면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다 보니까 몹쓸 냉방병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잘 붙어 있던 나사가 와장창 빠지기라도 했나. 덕분에 머리에 생겨난 잡념이 아주 한 가득이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상 선택지 모두 어딘가 시원치 않다는 게 영 문제지만.



  "…저, 저를요?…,"



  장편영화 한 편도 10초면 금방 다운로드 받는다는 요즘 같은 5G 시대에, 버퍼링 잔뜩 걸린 스피커처럼 어버버 얼버무리다 나도 모르게 귓가를 긁적였다. 덩달아 잘근잘근 아랫 입술도 깨물어 씹었고. 궁지에 몰리면 절로 튀어나오는 내 오랜 버릇들이었다.



  "음…그…어,"



  내뱉어진 말끝마다 당황, 창피, 부끄러움. 당장이라도 홍당무 색 크레파스로 색칠해야 할 법한 울긋불긋한 감정들이 진득하게 묻어나 두 뺨을 가득 물들였다. 밀려드는 민망함에 표정 짓는 법을 까무룩 까먹은 사람처럼 그저 바보처럼 허허실실 웃던 내 두 눈이 덜컥 걸음을 멈춘 곳은,


하필 그의 티없이 깨끗한 낯이었다. 흘끗, 나는 겁도 없이 그 잘난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눈, 코,

그리고 입….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푸흡…."




  그래봤자 그 멋들어진 생김새를 호기롭게 올려다 볼 용기란 몇 초도 안 돼 금방 사라져버렸지만.


  그게 다 저 이해 못할 웃음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뻘건 고구마가 된 내 얼굴을 발견한 그가 또 한 번 꺄르르 낯모를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저 쪼꼬만 얼굴까지 가려가면서.



  연이은 웃음 때문에 몽글몽글 다람쥐가 따로 없는 유독 통통한 두 볼이 연거푸 부풀었다 말았다 한다. 아니, 이 봐요. 그렇게 계속 웃으시면 고개를 들 수가 없잖아요…. 보고 또 봐도 그저 낯설기만 한 그의 웃는 얼굴 때문에 나는 당장이라도 어딘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고만 싶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음 미리 어디 구석에 구덩이라도 파놓을 걸 그랬지.



  어………뭐더라, 다음이…,

  "아이구, 맞다."



  나는 약 2, 3초간 멍하니 놓고 있던 넋을 황급히 다잡았다. 그래, 일단 할 일은 마저 해야지. 고개까지 좌우로 내저으며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맸다. 성장 드라마 주인공라도 된 듯 두 주먹에 힘까지 주고서 정신을 차렸다.


  사실 이번엔 좀 위험했다. 인정하는 바다. 하는 말마다 눅눅함 뚝뚝 떨어지는 말만 하나 둘 늘어 놓는 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잖아.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은 전부 시커먼 거짓말이더라. 이 사람이 내 인생의 호랑이일지도 모르고.



  놓을 뻔한 정신을 가까스로 되찾은 나는 애국가처럼 줄줄 꿰고 있던 매뉴얼대로 다시 물었다.


  뭐 어차피 물어도 필요 없다 할 걸 잘 알지만,

  혹시…,



  "그, 적립…은 안,"

  "할게요."

  "…?!"



  엥. 내 예상을 가로 막는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게 어째 물 흐르듯 잘 흘러간다 했지. 흐트러지려는 정신 잘 다잡자고 열심히 채찍질 한 지 10초도 안 돼 또다시 렉에 걸리고 말았다. 고장난 로봇처럼 버벅였다. 이 역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멈춰 설지 모를 탱탱볼 같은 신비소년이 만든 작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부르는 메뉴는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한 잔 통일에, 그 흔한 포인트 적립도 제휴 할인도 일절 필요 없다던 소위 '레벨 1 손님'이었던 그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레벨 만렙'이 된 채 내 앞에 서있다. 수개월이 넘도록 묻는 족족 딴 건 다 마다하던 사람이 대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실까. 반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뒀음 공짜로 먹은 프라푸치노만 몇 십잔은 됐을 텐데.



  "아?! 하, 하시는 구나! 어……”

  “….”

  "네, 번호! 번호 불러주세요…,"



  '뜬금포 시리즈, 지은이 신비소년'이라는 책이 만약 이 세상에 있다면, 1탄 제목은 아마 <느닷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테고, 후속작 2탄은 <당신을 기다렸어요>, 마지막 최종 시리즈 타이틀은 <백년만의 포인트 적립>이 될 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햇볕 가득 비추는 저 창밖부터 쳐다봤다. 오늘도 엄청 덥겠다. 생전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할 정도로 날이 많이 무덥나. 그런 말이 되지도 않는 것에 가능성을 끼워 맞춰 볼 만큼 어쩐지 오늘의 신비소년은 해도 해도 너무 엉뚱했으니까.



  "010…"


그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저 번호를 불렀다. 어쨌거나 포인트 적립용이겠지만.



"아, 아니다."



  숫자 11자리를 나지막이 불러주던 그는, 고장이 난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곧바로 정정하고 나섰다. 나는 그저 두 눈만 꿈뻑일뿐이었다.



  "오늘은 적립 말고 저장해주세요."

  "…네?!"



  나는 곧바로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을 쳐들고서 그를 보았다. 덜덜거리는 검지로 그가 천천히 불러주는 번호 열 한 자리를 열심히 찍어 내려가던 내 모든 것을 멈추게하는 그 문제의 음성을 듣자마자,



  "저장이요."

  "…저장…이요?"

  "응, 저장."



  나는 또다시 앨리스가 살 법한 미로 속에 놓였다.

  죄송하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모르겠어요.




'뭐라고요? 제가 아는 저장은 '컴퓨터 파일 저장' 같은 거나 '내 마음속에 저장' 뿐인데….'


뭐 이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지금 이런 허튼 소리나 늘어 놓을 때가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양쪽에 무려 두 개씩이나 달려 있는 귀가 일순간 하등 쓸모없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소리가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나타나 똑같은 메뉴를 늘 같은 방식으로 주문하던 그를 나는 이젠 훤히 다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이쯤되면 그는 내게 눈 가리고 푼다 해도 자신 있는 애기들 산수 문제였는데. 



  "하하, 저…한 번만 다, 다시 말씀…해주시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있는 그는 봐도 봐도 통 어렵기만 한 미적분 공식이 따로 없었다. 풀기는커녕 무어라 건드리지도 못할 고난이도 수수께끼가.



  표정 짓는 법도 모자라 이젠 대답하는 방법까지 죄다 까먹어 웅얼웅얼 얼버무리던 내게, 미궁의 신비소년이 다시금 확인 시켜주듯 음절 하나하나 힘주어 내뱉은 그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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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해요, 내 번호.



수포자였던 나를 매일 울게 만든 미적분이나 벡터 공식보다 적어도 열 배 쯤은 더 어려웠다. 덕분에 잔뜩 꼬여 복잡한 이 속내 모른 채 한껏 여유로운 저 표정도, 능구렁이가 따로 없는 녹진한 두 눈빛도 모두 다, 내겐 정답 모를 문제 같았다.



  "이따 퇴근하고 뭐해요."



  풀기 힘든 문제가 무려 두 개다. 이젠 딱히 뭐 출구도 없는 것 같다.


음…'세상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가기'라든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말고는 뭐 없긴한데.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너무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때문인지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뭐랄까, 왠지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뭐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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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화해요, 기다릴게."



  묻는 것도 그가, 그에 따른 대답도 역시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린다'는 말만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미다.


기다린다는 말은 여태 내게 그저 '왜 이렇게 커피가 안 나와요!', '아니, 사람을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해요!' 와 같은 죄다 뾰족뾰족 날이 선 것들 뿐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혼이 아주 쏙 빠져 너덜너덜해진 나를 향해 싱긋, 지구의 모든 걸 화르륵 녹일만큼의 미소를 짓던 신비소년은 본인 얼굴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큰 손바닥을 귓가에 갖다 대곤 팔랑팔랑 전화 받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휘적휘적 카페 밖을 나섰다. 왠지 이제 조금은 어울리게도 보이는 까만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로 유유히.



  아 맞다.

기다린다고 했어요, 나.



  카페를 벗어나던 그가 고개를 돌아 동글동글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그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분명 이제 그는 사라지고 없는데,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았다. 영수증 정리하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있던 내 눈에 그제야 들어 온건,



'Minnie'



수개월이 넘도록 내 왼쪽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아빠진 초록색 명찰이었다.



  늦었지만 레벨 1 수준의 쉬운 손님이라는 말은 이제 정말 취소다. 어쩌면 지금의 내겐 저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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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신비소년이 모습을 감춘 후, 나는 숨만 붙은 따뜻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온통 헤집어 놓은 머릿속을 잘 다독여 정리해보려 해도 결국 그 끝엔 그에 관한 적잖은 궁금증만 배로 커질 뿐이었으니까. 나름 잘 닫아뒀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창문이 열려있었다. 반도 안 열려 있던 창문을 대놓고 활짝 열어 젖힌 건 모두 그 사람이고. 



  정말 그 사람이 날 기다릴까, 정성스레 불러준 이 번호로 대체 어떤 연락을 보내는 게 좋을까. 전쟁 같았던 점심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오후 개시를 하고도, 나는 동전 넣는 자판기와 다름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 빠졌다. 그 사람의 멀끔한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머릿속에서 속절없이 표류한 셈이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뇌중에 가득 들어찬 그의 생김새를 오목조목 뜯어 보던 나는 다시금 내 명찰을 매만졌다. 미리 좀 바꿀 걸 그랬다.



  'Minnie' 느닷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어이가 없어서 터지는 실소가. 겁도 없이 용기와 감정만 앞섰던 어린 날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몸소 깨달았다. 그때 불렸던 닉네임이 아직까지도 내 명찰을,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여태 안 바꾸고 있었던 닉네임이 이렇게 불릴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미니씨. 

  그것도 그 사람에게서.



  '미니마우스 알아? 미키말고 미니. 너 미니마우스 닮았어.'


  치기어린 지난 날의 사랑이 지어다 준 이름을, 신비소년이 불러 주는 날도 있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구나 싶어진다. 사랑 같은 건 더이상 취미도 없고 조금의 관심도 없다 자부했었는데, 참으로 웃긴게, 밋밋하기 짝이 없던 내 인생에 그 남자 한 명 등장했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 모든 걸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퇴근까지. 다섯 시간 가량 포스기를 두드리는 내내 내 주위를 맴돌던 고민은 단 하나였다. 


  번호를 불러 줘서 받긴 받았는데, 저장하래서 저장까지도 해뒀는데, 이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까. 늘 나를 기다렸다는 그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머리를 아무리 갸웃대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영 않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아냐, 이건 너무 영업 사원 같잖아.


  >저기…안녕하세요.

  이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다.



  그의 빤한 눈을 두 눈으로 마주할 때보다 오만 배는 더 넋이 나간 상태로 하루를 보냈던 내가 오랜 고민 끝에 픽한 문장은,



  >저녁 

  >드셨어요?



  그래도 다행히, 후보작으로 선정된 문장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편에 속했다.




  Rrr-


  전송 버튼을 누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화면이 금방 깜빡인다. 벌써 그 사람일까, 대체 뭐라고 답이 왔을까. 갖은 두려움에 실눈을 뜨고 있던 내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날 반긴건,



  <안 먹었어요. 같이 먹으려고.

  <나 지금 카페로 가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낮은 그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그만의 문장들이었다. 퇴근하려면 아직 30분은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입이 마르고 땀이 난다. 내가 이토록 자율신경계가 예민한 사람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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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에 쩐 유니폼을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둘둘 말아 놓았던 머리를 풀어 내렸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왠지 신경이 쓰인다. 라커룸에 넣어 놓고 도통 쓰지 않았던 헤어 미스트까지 뿌려가며 머리를 빗어 넘겼다. 틴트를 들어 다 날아가버린 화장을 고치고, 눈 밑으로 비죽 번진 아이라인을 면봉으로 정리했다. 퇴근 후 카페를 나서면 그 사람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부터 찾았다. 해가 다 졌는데도 이렇게나 덥네. 오래 기다렸음 더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영 취미가 없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휘두르며 그를 찾았다.


  어, 저기…. 

  주머니 춤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벽 한 쪽 구석에 기대 서있던 그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왔어요, 피곤하죠."



  발이 묶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향해 신비소년이 기다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온다. 그가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아, 많이 기다리셨죠. 미안해요…"

  "음…별로."



  그저 고개를 내젓는다. 둥근 이마가 조금 젖어있는데, 그는 결국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음…정 미안하면,"



  미안하면?

  본인도 조금은 민망한지, 두 볼을 머쓱하게 매만지던 신비소년이 드디어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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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구요, 그쪽."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그만의 공기로 읊조리듯 말하는 그를 처음으로 마주한다. 덕분에 지금 내 눈엔, 이 땅의 모든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 걸린 듯 느리게 펼쳐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이 멈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것도 나 혼자만.



  힘들죠.

  아니, 한 번을 안 웃길래.


  난 그쪽 때문에 몇 번도 더 웃는데.



  그가 차곡차곡 쌓은 말을 그대로 옮겨 내 머릿속에다 나열했다. 빠질 것 같이 위태롭던 정신이 대체 어디로 도망갔나 했더니, 벌써 저 손아귀에 있다. 노랫말 같은 목소리도 저 다정한 표정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건,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요' 라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은 거, 가져갈게요' 같은 세상 멋 없는 몇 마디와 '적립 필요하세요' 혹은 '네, 진동벨로 알려 드릴게요' 따위의 답변이 여태껏 서로 나눈 이야기의 전부였던 우리 사이에 오고 간 첫 대화였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한밤중의 폭풍우처럼 마구 휘몰아치는 주문의 향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자 이제 막 고지가 보여 한숨 돌릴 채비를 할 시간인 '오후 2시'만 되면 꼭 찾아와 나를 묘한 미궁 속에 빠뜨리고 말던 나만의 신비소년이, 그저 존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상상을 불러 일으키던 그 신비소년이 글쎄,



  "저, 저를…기, 기다려요?"



  나더러 지금 기다렸다고 말한다. 왜요? 두 눈을 뜨고도 두 귀로 생생히 듣고도 영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건 모두 실제상황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전부,


  이 모든 게 나를 기다렸다고.

  다 나를 향한 것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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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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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쪽이요."



  기다란 고개를 잔잔히 끄덕이다 또다시 나를 뚫어져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오는 특유의 저 빤한 두 눈 그리고 그만의 어투. 존댓말과 반말을 적절히 섞는다는 게 어떤 건지 가슴에 확 와닿은 적이 여태 없었는데, 어쩌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저 다정한 고갯짓과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기다렸어요.


그가 다시금 문장을 이루는 형태소 하나 하나 음미하듯 읊었다. 쭉 뻗은 목울대가 나지막이 진동할 때마다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그의 붉은 입술이 만들어 낸 음성은 하루 온종일 지겹도록 카페 안을 내내 감돌던 CD 음악 소리보다 더 음악같이 느껴져 이제는 왠지 아득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아니, 먹을 게 없어서 내가 지금 더위를 다 먹은 건가? 두 눈 다 뜨고서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겠고. 어쩌면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다 보니까 몹쓸 냉방병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잘 붙어 있던 나사가 와장창 빠지기라도 했나. 덕분에 머리에 생겨난 잡념이 아주 한 가득이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상 선택지 모두 어딘가 시원치 않다는 게 영 문제지만.



  "…저, 저를요?…,"



  장편영화 한 편도 10초면 금방 다운로드 받는다는 요즘 같은 5G 시대에, 버퍼링 잔뜩 걸린 스피커처럼 어버버 얼버무리다 나도 모르게 귓가를 긁적였다. 덩달아 잘근잘근 아랫 입술도 깨물어 씹었고. 궁지에 몰리면 절로 튀어나오는 내 오랜 버릇들이었다.



  "음…그…어,"



  내뱉어진 말끝마다 당황, 창피, 부끄러움. 당장이라도 홍당무 색 크레파스로 색칠해야 할 법한 울긋불긋한 감정들이 진득하게 묻어나 두 뺨을 가득 물들였다. 밀려드는 민망함에 표정 짓는 법을 까무룩 까먹은 사람처럼 그저 바보처럼 허허실실 웃던 내 두 눈이 덜컥 걸음을 멈춘 곳은,


하필 그의 티없이 깨끗한 낯이었다. 흘끗, 나는 겁도 없이 그 잘난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눈, 코,

그리고 입….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푸흡…."




  그래봤자 그 멋들어진 생김새를 호기롭게 올려다 볼 용기란 몇 초도 안 돼 금방 사라져버렸지만.


  그게 다 저 이해 못할 웃음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뻘건 고구마가 된 내 얼굴을 발견한 그가 또 한 번 꺄르르 낯모를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저 쪼꼬만 얼굴까지 가려가면서.



  연이은 웃음 때문에 몽글몽글 다람쥐가 따로 없는 유독 통통한 두 볼이 연거푸 부풀었다 말았다 한다. 아니, 이 봐요. 그렇게 계속 웃으시면 고개를 들 수가 없잖아요…. 보고 또 봐도 그저 낯설기만 한 그의 웃는 얼굴 때문에 나는 당장이라도 어딘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고만 싶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음 미리 어디 구석에 구덩이라도 파놓을 걸 그랬지.



  어………뭐더라, 다음이…,

  "아이구, 맞다."



  나는 약 2, 3초간 멍하니 놓고 있던 넋을 황급히 다잡았다. 그래, 일단 할 일은 마저 해야지. 고개까지 좌우로 내저으며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맸다. 성장 드라마 주인공라도 된 듯 두 주먹에 힘까지 주고서 정신을 차렸다.


  사실 이번엔 좀 위험했다. 인정하는 바다. 하는 말마다 눅눅함 뚝뚝 떨어지는 말만 하나 둘 늘어 놓는 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잖아.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은 전부 시커먼 거짓말이더라. 이 사람이 내 인생의 호랑이일지도 모르고.



  놓을 뻔한 정신을 가까스로 되찾은 나는 애국가처럼 줄줄 꿰고 있던 매뉴얼대로 다시 물었다.


  뭐 어차피 물어도 필요 없다 할 걸 잘 알지만,

  혹시…,



  "그, 적립…은 안,"

  "할게요."

  "…?!"



  엥. 내 예상을 가로 막는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게 어째 물 흐르듯 잘 흘러간다 했지. 흐트러지려는 정신 잘 다잡자고 열심히 채찍질 한 지 10초도 안 돼 또다시 렉에 걸리고 말았다. 고장난 로봇처럼 버벅였다. 이 역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멈춰 설지 모를 탱탱볼 같은 신비소년이 만든 작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부르는 메뉴는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한 잔 통일에, 그 흔한 포인트 적립도 제휴 할인도 일절 필요 없다던 소위 '레벨 1 손님'이었던 그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레벨 만렙'이 된 채 내 앞에 서있다. 수개월이 넘도록 묻는 족족 딴 건 다 마다하던 사람이 대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실까. 반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뒀음 공짜로 먹은 프라푸치노만 몇 십잔은 됐을 텐데.



  "아?! 하, 하시는 구나! 어……”

  “….”

  "네, 번호! 번호 불러주세요…,"



  '뜬금포 시리즈, 지은이 신비소년'이라는 책이 만약 이 세상에 있다면, 1탄 제목은 아마 <느닷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테고, 후속작 2탄은 <당신을 기다렸어요>, 마지막 최종 시리즈 타이틀은 <백년만의 포인트 적립>이 될 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햇볕 가득 비추는 저 창밖부터 쳐다봤다. 오늘도 엄청 덥겠다. 생전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할 정도로 날이 많이 무덥나. 그런 말이 되지도 않는 것에 가능성을 끼워 맞춰 볼 만큼 어쩐지 오늘의 신비소년은 해도 해도 너무 엉뚱했으니까.



  "010…"


그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저 번호를 불렀다. 어쨌거나 포인트 적립용이겠지만.



"아, 아니다."



  숫자 11자리를 나지막이 불러주던 그는, 고장이 난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곧바로 정정하고 나섰다. 나는 그저 두 눈만 꿈뻑일뿐이었다.



  "오늘은 적립 말고 저장해주세요."

  "…네?!"



  나는 곧바로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을 쳐들고서 그를 보았다. 덜덜거리는 검지로 그가 천천히 불러주는 번호 열 한 자리를 열심히 찍어 내려가던 내 모든 것을 멈추게하는 그 문제의 음성을 듣자마자,



  "저장이요."

  "…저장…이요?"

  "응, 저장."



  나는 또다시 앨리스가 살 법한 미로 속에 놓였다.

  죄송하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모르겠어요.




'뭐라고요? 제가 아는 저장은 '컴퓨터 파일 저장' 같은 거나 '내 마음속에 저장' 뿐인데….'


뭐 이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지금 이런 허튼 소리나 늘어 놓을 때가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양쪽에 무려 두 개씩이나 달려 있는 귀가 일순간 하등 쓸모없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소리가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나타나 똑같은 메뉴를 늘 같은 방식으로 주문하던 그를 나는 이젠 훤히 다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이쯤되면 그는 내게 눈 가리고 푼다 해도 자신 있는 애기들 산수 문제였는데. 



  "하하, 저…한 번만 다, 다시 말씀…해주시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있는 그는 봐도 봐도 통 어렵기만 한 미적분 공식이 따로 없었다. 풀기는커녕 무어라 건드리지도 못할 고난이도 수수께끼가.



  표정 짓는 법도 모자라 이젠 대답하는 방법까지 죄다 까먹어 웅얼웅얼 얼버무리던 내게, 미궁의 신비소년이 다시금 확인 시켜주듯 음절 하나하나 힘주어 내뱉은 그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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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해요, 내 번호.



수포자였던 나를 매일 울게 만든 미적분이나 벡터 공식보다 적어도 열 배 쯤은 더 어려웠다. 덕분에 잔뜩 꼬여 복잡한 이 속내 모른 채 한껏 여유로운 저 표정도, 능구렁이가 따로 없는 녹진한 두 눈빛도 모두 다, 내겐 정답 모를 문제 같았다.



  "이따 퇴근하고 뭐해요."



  풀기 힘든 문제가 무려 두 개다. 이젠 딱히 뭐 출구도 없는 것 같다.


음…'세상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가기'라든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말고는 뭐 없긴한데.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너무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때문인지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뭐랄까, 왠지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뭐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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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화해요, 기다릴게."



  묻는 것도 그가, 그에 따른 대답도 역시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린다'는 말만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미다.


기다린다는 말은 여태 내게 그저 '왜 이렇게 커피가 안 나와요!', '아니, 사람을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해요!' 와 같은 죄다 뾰족뾰족 날이 선 것들 뿐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혼이 아주 쏙 빠져 너덜너덜해진 나를 향해 싱긋, 지구의 모든 걸 화르륵 녹일만큼의 미소를 짓던 신비소년은 본인 얼굴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큰 손바닥을 귓가에 갖다 대곤 팔랑팔랑 전화 받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휘적휘적 카페 밖을 나섰다. 왠지 이제 조금은 어울리게도 보이는 까만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로 유유히.



  아 맞다.

기다린다고 했어요, 나.



  카페를 벗어나던 그가 고개를 돌아 동글동글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그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분명 이제 그는 사라지고 없는데,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았다. 영수증 정리하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있던 내 눈에 그제야 들어 온건,



'Minnie'



수개월이 넘도록 내 왼쪽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아빠진 초록색 명찰이었다.



  늦었지만 레벨 1 수준의 쉬운 손님이라는 말은 이제 정말 취소다. 어쩌면 지금의 내겐 저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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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신비소년이 모습을 감춘 후, 나는 숨만 붙은 따뜻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온통 헤집어 놓은 머릿속을 잘 다독여 정리해보려 해도 결국 그 끝엔 그에 관한 적잖은 궁금증만 배로 커질 뿐이었으니까. 나름 잘 닫아뒀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창문이 열려있었다. 반도 안 열려 있던 창문을 대놓고 활짝 열어 젖힌 건 모두 그 사람이고. 



  정말 그 사람이 날 기다릴까, 정성스레 불러준 이 번호로 대체 어떤 연락을 보내는 게 좋을까. 전쟁 같았던 점심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오후 개시를 하고도, 나는 동전 넣는 자판기와 다름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 빠졌다. 그 사람의 멀끔한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머릿속에서 속절없이 표류한 셈이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뇌중에 가득 들어찬 그의 생김새를 오목조목 뜯어 보던 나는 다시금 내 명찰을 매만졌다. 미리 좀 바꿀 걸 그랬다.



  'Minnie' 느닷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어이가 없어서 터지는 실소가. 겁도 없이 용기와 감정만 앞섰던 어린 날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몸소 깨달았다. 그때 불렸던 닉네임이 아직까지도 내 명찰을,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여태 안 바꾸고 있었던 닉네임이 이렇게 불릴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미니씨. 

  그것도 그 사람에게서.



  '미니마우스 알아? 미키말고 미니. 너 미니마우스 닮았어.'


  치기어린 지난 날의 사랑이 지어다 준 이름을, 신비소년이 불러 주는 날도 있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구나 싶어진다. 사랑 같은 건 더이상 취미도 없고 조금의 관심도 없다 자부했었는데, 참으로 웃긴게, 밋밋하기 짝이 없던 내 인생에 그 남자 한 명 등장했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 모든 걸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퇴근까지. 다섯 시간 가량 포스기를 두드리는 내내 내 주위를 맴돌던 고민은 단 하나였다. 


  번호를 불러 줘서 받긴 받았는데, 저장하래서 저장까지도 해뒀는데, 이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까. 늘 나를 기다렸다는 그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머리를 아무리 갸웃대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영 않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아냐, 이건 너무 영업 사원 같잖아.


  >저기…안녕하세요.

  이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다.



  그의 빤한 눈을 두 눈으로 마주할 때보다 오만 배는 더 넋이 나간 상태로 하루를 보냈던 내가 오랜 고민 끝에 픽한 문장은,



  >저녁 

  >드셨어요?



  그래도 다행히, 후보작으로 선정된 문장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편에 속했다.




  Rrr-


  전송 버튼을 누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화면이 금방 깜빡인다. 벌써 그 사람일까, 대체 뭐라고 답이 왔을까. 갖은 두려움에 실눈을 뜨고 있던 내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날 반긴건,



  <안 먹었어요. 같이 먹으려고.

  <나 지금 카페로 가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낮은 그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그만의 문장들이었다. 퇴근하려면 아직 30분은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입이 마르고 땀이 난다. 내가 이토록 자율신경계가 예민한 사람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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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에 쩐 유니폼을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둘둘 말아 놓았던 머리를 풀어 내렸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왠지 신경이 쓰인다. 라커룸에 넣어 놓고 도통 쓰지 않았던 헤어 미스트까지 뿌려가며 머리를 빗어 넘겼다. 틴트를 들어 다 날아가버린 화장을 고치고, 눈 밑으로 비죽 번진 아이라인을 면봉으로 정리했다. 퇴근 후 카페를 나서면 그 사람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부터 찾았다. 해가 다 졌는데도 이렇게나 덥네. 오래 기다렸음 더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영 취미가 없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휘두르며 그를 찾았다.


  어, 저기…. 

  주머니 춤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벽 한 쪽 구석에 기대 서있던 그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왔어요, 피곤하죠."



  발이 묶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향해 신비소년이 기다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온다. 그가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아, 많이 기다리셨죠. 미안해요…"

  "음…별로."



  그저 고개를 내젓는다. 둥근 이마가 조금 젖어있는데, 그는 결국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음…정 미안하면,"



  미안하면?

  본인도 조금은 민망한지, 두 볼을 머쓱하게 매만지던 신비소년이 드디어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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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구요, 그쪽."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그만의 공기로 읊조리듯 말하는 그를 처음으로 마주한다. 덕분에 지금 내 눈엔, 이 땅의 모든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 걸린 듯 느리게 펼쳐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이 멈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것도 나 혼자만.



  힘들죠.

  아니, 한 번을 안 웃길래.


  난 그쪽 때문에 몇 번도 더 웃는데.



  그가 차곡차곡 쌓은 말을 그대로 옮겨 내 머릿속에다 나열했다. 빠질 것 같이 위태롭던 정신이 대체 어디로 도망갔나 했더니, 벌써 저 손아귀에 있다. 노랫말 같은 목소리도 저 다정한 표정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건,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요' 라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은 거, 가져갈게요' 같은 세상 멋 없는 몇 마디와 '적립 필요하세요' 혹은 '네, 진동벨로 알려 드릴게요' 따위의 답변이 여태껏 서로 나눈 이야기의 전부였던 우리 사이에 오고 간 첫 대화였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한밤중의 폭풍우처럼 마구 휘몰아치는 주문의 향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자 이제 막 고지가 보여 한숨 돌릴 채비를 할 시간인 '오후 2시'만 되면 꼭 찾아와 나를 묘한 미궁 속에 빠뜨리고 말던 나만의 신비소년이, 그저 존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상상을 불러 일으키던 그 신비소년이 글쎄,



  "저, 저를…기, 기다려요?"



  나더러 지금 기다렸다고 말한다. 왜요? 두 눈을 뜨고도 두 귀로 생생히 듣고도 영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이건 모두 실제상황이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전부,


  이 모든 게 나를 기다렸다고.

  다 나를 향한 것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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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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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쪽이요."



  기다란 고개를 잔잔히 끄덕이다 또다시 나를 뚫어져라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오는 특유의 저 빤한 두 눈 그리고 그만의 어투. 존댓말과 반말을 적절히 섞는다는 게 어떤 건지 가슴에 확 와닿은 적이 여태 없었는데, 어쩌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저 다정한 고갯짓과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기다렸어요.


그가 다시금 문장을 이루는 형태소 하나 하나 음미하듯 읊었다. 쭉 뻗은 목울대가 나지막이 진동할 때마다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그의 붉은 입술이 만들어 낸 음성은 하루 온종일 지겹도록 카페 안을 내내 감돌던 CD 음악 소리보다 더 음악같이 느껴져 이제는 왠지 아득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아니, 먹을 게 없어서 내가 지금 더위를 다 먹은 건가? 두 눈 다 뜨고서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겠고. 어쩌면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다 보니까 몹쓸 냉방병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잘 붙어 있던 나사가 와장창 빠지기라도 했나. 덕분에 머리에 생겨난 잡념이 아주 한 가득이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상 선택지 모두 어딘가 시원치 않다는 게 영 문제지만.



  "…저, 저를요?…,"



  장편영화 한 편도 10초면 금방 다운로드 받는다는 요즘 같은 5G 시대에, 버퍼링 잔뜩 걸린 스피커처럼 어버버 얼버무리다 나도 모르게 귓가를 긁적였다. 덩달아 잘근잘근 아랫 입술도 깨물어 씹었고. 궁지에 몰리면 절로 튀어나오는 내 오랜 버릇들이었다.



  "음…그…어,"



  내뱉어진 말끝마다 당황, 창피, 부끄러움. 당장이라도 홍당무 색 크레파스로 색칠해야 할 법한 울긋불긋한 감정들이 진득하게 묻어나 두 뺨을 가득 물들였다. 밀려드는 민망함에 표정 짓는 법을 까무룩 까먹은 사람처럼 그저 바보처럼 허허실실 웃던 내 두 눈이 덜컥 걸음을 멈춘 곳은,


하필 그의 티없이 깨끗한 낯이었다. 흘끗, 나는 겁도 없이 그 잘난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눈, 코,

그리고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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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그래봤자 그 멋들어진 생김새를 호기롭게 올려다 볼 용기란 몇 초도 안 돼 금방 사라져버렸지만.


  그게 다 저 이해 못할 웃음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뻘건 고구마가 된 내 얼굴을 발견한 그가 또 한 번 꺄르르 낯모를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저 쪼꼬만 얼굴까지 가려가면서.



  연이은 웃음 때문에 몽글몽글 다람쥐가 따로 없는 유독 통통한 두 볼이 연거푸 부풀었다 말았다 한다. 아니, 이 봐요. 그렇게 계속 웃으시면 고개를 들 수가 없잖아요…. 보고 또 봐도 그저 낯설기만 한 그의 웃는 얼굴 때문에 나는 당장이라도 어딘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고만 싶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음 미리 어디 구석에 구덩이라도 파놓을 걸 그랬지.



  어………뭐더라, 다음이…,

  "아이구, 맞다."



  나는 약 2, 3초간 멍하니 놓고 있던 넋을 황급히 다잡았다. 그래, 일단 할 일은 마저 해야지. 고개까지 좌우로 내저으며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맸다. 성장 드라마 주인공라도 된 듯 두 주먹에 힘까지 주고서 정신을 차렸다.


  사실 이번엔 좀 위험했다. 인정하는 바다. 하는 말마다 눅눅함 뚝뚝 떨어지는 말만 하나 둘 늘어 놓는 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잖아.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은 전부 시커먼 거짓말이더라. 이 사람이 내 인생의 호랑이일지도 모르고.



  놓을 뻔한 정신을 가까스로 되찾은 나는 애국가처럼 줄줄 꿰고 있던 매뉴얼대로 다시 물었다.


  뭐 어차피 물어도 필요 없다 할 걸 잘 알지만,

  혹시…,



  "그, 적립…은 안,"

  "할게요."

  "…?!"



  엥. 내 예상을 가로 막는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게 어째 물 흐르듯 잘 흘러간다 했지. 흐트러지려는 정신 잘 다잡자고 열심히 채찍질 한 지 10초도 안 돼 또다시 렉에 걸리고 말았다. 고장난 로봇처럼 버벅였다. 이 역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멈춰 설지 모를 탱탱볼 같은 신비소년이 만든 작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부르는 메뉴는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한 잔 통일에, 그 흔한 포인트 적립도 제휴 할인도 일절 필요 없다던 소위 '레벨 1 손님'이었던 그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레벨 만렙'이 된 채 내 앞에 서있다. 수개월이 넘도록 묻는 족족 딴 건 다 마다하던 사람이 대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실까. 반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뒀음 공짜로 먹은 프라푸치노만 몇 십잔은 됐을 텐데.



  "아?! 하, 하시는 구나! 어……”

  “….”

  "네, 번호! 번호 불러주세요…,"



  '뜬금포 시리즈, 지은이 신비소년'이라는 책이 만약 이 세상에 있다면, 1탄 제목은 아마 <느닷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테고, 후속작 2탄은 <당신을 기다렸어요>, 마지막 최종 시리즈 타이틀은 <백년만의 포인트 적립>이 될 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햇볕 가득 비추는 저 창밖부터 쳐다봤다. 오늘도 엄청 덥겠다. 생전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할 정도로 날이 많이 무덥나. 그런 말이 되지도 않는 것에 가능성을 끼워 맞춰 볼 만큼 어쩐지 오늘의 신비소년은 해도 해도 너무 엉뚱했으니까.



  "010…"


그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저 번호를 불렀다. 어쨌거나 포인트 적립용이겠지만.



"아, 아니다."



  숫자 11자리를 나지막이 불러주던 그는, 고장이 난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곧바로 정정하고 나섰다. 나는 그저 두 눈만 꿈뻑일뿐이었다.



  "오늘은 적립 말고 저장해주세요."

  "…네?!"



  나는 곧바로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을 쳐들고서 그를 보았다. 덜덜거리는 검지로 그가 천천히 불러주는 번호 열 한 자리를 열심히 찍어 내려가던 내 모든 것을 멈추게하는 그 문제의 음성을 듣자마자,



  "저장이요."

  "…저장…이요?"

  "응, 저장."



  나는 또다시 앨리스가 살 법한 미로 속에 놓였다.

  죄송하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모르겠어요.




'뭐라고요? 제가 아는 저장은 '컴퓨터 파일 저장' 같은 거나 '내 마음속에 저장' 뿐인데….'


뭐 이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지금 이런 허튼 소리나 늘어 놓을 때가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양쪽에 무려 두 개씩이나 달려 있는 귀가 일순간 하등 쓸모없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소리가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나타나 똑같은 메뉴를 늘 같은 방식으로 주문하던 그를 나는 이젠 훤히 다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이쯤되면 그는 내게 눈 가리고 푼다 해도 자신 있는 애기들 산수 문제였는데. 



  "하하, 저…한 번만 다, 다시 말씀…해주시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있는 그는 봐도 봐도 통 어렵기만 한 미적분 공식이 따로 없었다. 풀기는커녕 무어라 건드리지도 못할 고난이도 수수께끼가.



  표정 짓는 법도 모자라 이젠 대답하는 방법까지 죄다 까먹어 웅얼웅얼 얼버무리던 내게, 미궁의 신비소년이 다시금 확인 시켜주듯 음절 하나하나 힘주어 내뱉은 그 말은,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저장해요, 내 번호.



수포자였던 나를 매일 울게 만든 미적분이나 벡터 공식보다 적어도 열 배 쯤은 더 어려웠다. 덕분에 잔뜩 꼬여 복잡한 이 속내 모른 채 한껏 여유로운 저 표정도, 능구렁이가 따로 없는 녹진한 두 눈빛도 모두 다, 내겐 정답 모를 문제 같았다.



  "이따 퇴근하고 뭐해요."



  풀기 힘든 문제가 무려 두 개다. 이젠 딱히 뭐 출구도 없는 것 같다.


음…'세상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가기'라든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말고는 뭐 없긴한데.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너무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때문인지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뭐랄까, 왠지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뭐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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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화해요, 기다릴게."



  묻는 것도 그가, 그에 따른 대답도 역시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린다'는 말만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미다.


기다린다는 말은 여태 내게 그저 '왜 이렇게 커피가 안 나와요!', '아니, 사람을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해요!' 와 같은 죄다 뾰족뾰족 날이 선 것들 뿐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혼이 아주 쏙 빠져 너덜너덜해진 나를 향해 싱긋, 지구의 모든 걸 화르륵 녹일만큼의 미소를 짓던 신비소년은 본인 얼굴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큰 손바닥을 귓가에 갖다 대곤 팔랑팔랑 전화 받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휘적휘적 카페 밖을 나섰다. 왠지 이제 조금은 어울리게도 보이는 까만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로 유유히.



  아 맞다.

기다린다고 했어요, 나.



  카페를 벗어나던 그가 고개를 돌아 동글동글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그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분명 이제 그는 사라지고 없는데,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았다. 영수증 정리하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있던 내 눈에 그제야 들어 온건,



'Minnie'



수개월이 넘도록 내 왼쪽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아빠진 초록색 명찰이었다.



  늦었지만 레벨 1 수준의 쉬운 손님이라는 말은 이제 정말 취소다. 어쩌면 지금의 내겐 저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니까.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신비소년이 모습을 감춘 후, 나는 숨만 붙은 따뜻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이 온통 헤집어 놓은 머릿속을 잘 다독여 정리해보려 해도 결국 그 끝엔 그에 관한 적잖은 궁금증만 배로 커질 뿐이었으니까. 나름 잘 닫아뒀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창문이 열려있었다. 반도 안 열려 있던 창문을 대놓고 활짝 열어 젖힌 건 모두 그 사람이고. 



  정말 그 사람이 날 기다릴까, 정성스레 불러준 이 번호로 대체 어떤 연락을 보내는 게 좋을까. 전쟁 같았던 점심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오후 개시를 하고도, 나는 동전 넣는 자판기와 다름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 빠졌다. 그 사람의 멀끔한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머릿속에서 속절없이 표류한 셈이다.



  그럼 나 갈게요,

  미니씨.



  뇌중에 가득 들어찬 그의 생김새를 오목조목 뜯어 보던 나는 다시금 내 명찰을 매만졌다. 미리 좀 바꿀 걸 그랬다.



  'Minnie' 느닷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어이가 없어서 터지는 실소가. 겁도 없이 용기와 감정만 앞섰던 어린 날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몸소 깨달았다. 그때 불렸던 닉네임이 아직까지도 내 명찰을,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기만 했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여태 안 바꾸고 있었던 닉네임이 이렇게 불릴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미니씨. 

  그것도 그 사람에게서.



  '미니마우스 알아? 미키말고 미니. 너 미니마우스 닮았어.'


  치기어린 지난 날의 사랑이 지어다 준 이름을, 신비소년이 불러 주는 날도 있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구나 싶어진다. 사랑 같은 건 더이상 취미도 없고 조금의 관심도 없다 자부했었는데, 참으로 웃긴게, 밋밋하기 짝이 없던 내 인생에 그 남자 한 명 등장했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 모든 걸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퇴근까지. 다섯 시간 가량 포스기를 두드리는 내내 내 주위를 맴돌던 고민은 단 하나였다. 


  번호를 불러 줘서 받긴 받았는데, 저장하래서 저장까지도 해뒀는데, 이제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까. 늘 나를 기다렸다는 그가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머리를 아무리 갸웃대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영 않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아냐, 이건 너무 영업 사원 같잖아.


  >저기…안녕하세요.

  이것도 영 마음에 안 든다.



  그의 빤한 눈을 두 눈으로 마주할 때보다 오만 배는 더 넋이 나간 상태로 하루를 보냈던 내가 오랜 고민 끝에 픽한 문장은,



  >저녁 

  >드셨어요?



  그래도 다행히, 후보작으로 선정된 문장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편에 속했다.




  Rrr-


  전송 버튼을 누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화면이 금방 깜빡인다. 벌써 그 사람일까, 대체 뭐라고 답이 왔을까. 갖은 두려움에 실눈을 뜨고 있던 내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날 반긴건,



  <안 먹었어요. 같이 먹으려고.

  <나 지금 카페로 가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낮은 그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그만의 문장들이었다. 퇴근하려면 아직 30분은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입이 마르고 땀이 난다. 내가 이토록 자율신경계가 예민한 사람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2 | 인스티즈













 

   땀에 쩐 유니폼을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둘둘 말아 놓았던 머리를 풀어 내렸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왠지 신경이 쓰인다. 라커룸에 넣어 놓고 도통 쓰지 않았던 헤어 미스트까지 뿌려가며 머리를 빗어 넘겼다. 틴트를 들어 다 날아가버린 화장을 고치고, 눈 밑으로 비죽 번진 아이라인을 면봉으로 정리했다. 퇴근 후 카페를 나서면 그 사람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부터 찾았다. 해가 다 졌는데도 이렇게나 덥네. 오래 기다렸음 더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영 취미가 없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휘두르며 그를 찾았다.


  어, 저기…. 

  주머니 춤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벽 한 쪽 구석에 기대 서있던 그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왔어요, 피곤하죠."



  발이 묶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향해 신비소년이 기다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온다. 그가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아, 많이 기다리셨죠. 미안해요…"

  "음…별로."



  그저 고개를 내젓는다. 둥근 이마가 조금 젖어있는데, 그는 결국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음…정 미안하면,"



  미안하면?

  본인도 조금은 민망한지, 두 볼을 머쓱하게 매만지던 신비소년이 드디어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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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밥사게 해주고."



  그는 말했다. 밥을 사달라도 아니고 사주게 해달라고.

  

  이젠 내 앞에서 잘도 웃는다.

  대체 어느 별에서 내 앞에 이런 사람을 보낸 건지.




  




+

글이라하기도 뭐한 글의 퍼레이드...죄송 ㅠ_ㅠ

지녁...그래도 난 당신을 사랑해!♡


댓글 항상 너무마니 고마워욥!

여러분들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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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아아ㅠㅠㅠㅠ알림 뜨자마자 달려왔어요ㅠㅠㅠㅠㅠㅠ적립말고 저장...밥을 사주게 해달라니...이런 다람쥐인간 어디가면 만날ㄹ수 있나요...
4년 전
중력달
진혁 말곤 대체 불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댓글 넘 고맙구 사랑해욤♡
4년 전
독자2
완벽한 글이ㅔㄴ네오 작가님.... ㅈ짝작짝..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왕대럼지 밥사고 싶펏서ㅠㅠㅠㅠㅠ
4년 전
중력달
이토록 누추한 글에 완벽이라뇨ㅠㅠㅠㅠㅠ고마오요 싸랑함미다♡
4년 전
독자3
기다렸다구요, 작가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덕분에 좋은 글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도 좋아요 정말루ㅠㅠㅠㅠㅠㅠ 날 더운데 건강 잘 챙기시구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4년 전
중력달
어쩜 말도 이쁘게ㅠㅠㅠ사랑한다구요...♡
4년 전
독자4
나 죽어요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쉬는 날 열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넘모 설레여...핡 💙
4년 전
중력달
제가 덕분에 오히려 조아 주거요ㅠㅠㅠㅠ고마오요
4년 전
독자5
밥 사주세요도 아니고 밥..사게 해달래...아니...무슨...저런. 멋진말을...
4년 전
독자6
적립말고 저장 워후 ㅠㅜㅜㅜㅜㅜㅠㅠㅠㅜㅜㅜ 밥 사게 해달라는것도 ㅠㅜㅜㅜㅠㅠㅠㅜㅜㅜㅜㅠ 그냥 대박이에요
4년 전
중력달
그거슨 그저 이지녁이라 가능한....ㅠㅠㅠㅠ♡....소즁 댓글 넘 고마버요
4년 전
독자7
아휴 간질간질하여라ㅠㅠ 그래 밥사라 나는 백번은 더 사줄게ㅠ 말 하는 거 하나가 다 설레고 난리여 좋아쥬금..
4년 전
중력달
마니 부족한 글에 고마운 댓글 넘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흐잉♡
4년 전
독자8
진혁이 먹고 싶은거 다 사줄게 ㅠㅠㅠㅠ
작가님 기다렸어요!! 너무 글 잘쓰시는 거 아닌가요 ㅠㅠ 💙💙

4년 전
중력달
볼수록 읽을 수록 부족의 끝입니다....이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ㅠㅠㅠ♡
4년 전
독자9
자까님ㅠㅠㅠㅠ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중력달
자까라 불리기도 민망한걸료ㅠㅠ 징짜 고마오요 ♡
4년 전
독자10
어후 읽는내내 진짜로 심장이 아파섴ㅋㅋㅋㅋㅋㅋㅋ 힘들었어요 작가님 ㅠㅠㅠㅠㅠ 좋은 의미입니다 ㅠㅠㅠㅠ 감사해요 진짜루ㅠㅠㅠ
4년 전
중력달
흐어ㅠㅠㅠ제가 더 감사해요ㅠㅠㅠㅠㅠ사랑 그거 마니 하구ㅠㅠㅠㅠ♡
4년 전
독자11
작가님 설렘사 할 것같아요 ㅠㅠㅠㅠ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
4년 전
중력달
읽어도 읽어도 부족하기만 한걸유ㅠㅠㅠㅠㅠ고마워요 징쨔루♡
4년 전
독자12
와 작가님... 글잡을 뒤집어 놓으셨다ㅠ 진짜 저 너무 설레서 베개 쥐어짜면서 읽었어요... 세상에ㅠ 읽다가 자율신경계 나와서 전공서적 생각나버렸지만ㅋㅋㅋㅋㅋㅋㅋ 아 표현 너무 최고예요 당신 글 최고야ㅠ
4년 전
중력달
채고는 무슨ㅠㅠㅠㅠ징쨔 좋게 바주셔서 넘 고맙구 사랑해요ㅠㅠㅠㅠ♡힝
4년 전
독자13
어어엉ㅇ엉 심장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혁아ㅠㅠ 진짜 사람 설레게 하는데 재주있다 정말ㅠㅠㅠ 쵝오야ㅠㅠㅠㅠ 작가님 정말 사랑합니다 작가님이 더 최고에여ㅠㅠㅠ
4년 전
중력달
제가 더 사랑하구 도짜님이 더 채고잉거 아시져...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4
으악ㅜㅜㅠㅠ작가님 사랑훼요,, 신알신하고 갑니당ㅜㅠㅠ
4년 전
중력달
으이 신알신까쟝ㅠㅠㅠㅠㅠ사랑해욤...
4년 전
독자15
와근데 진짜 글 왜이렇게 잘쓰세요???? 진짜 피.알.오 그자체시다....워후 최고의 작가님.... 정말 읽을 맛 납니다.... 이진혁 사랑해... 작가님도 사랑해요😭😭👍👍
4년 전
중력달
채고라기엔 아직 갈길이 멀기만 한 걸요ㅠㅠㅠㅠㅠ이쁘게 봐주셔서 제가 더 사랑해요...♡
4년 전
독자16
ㅠㅠ밥사게 해달라니
4년 전
중력달
멋짐의 의인화 이딘혁....♡ 댓글 정말루 고마오요
4년 전
독자17
아.... 미쳤네여 ....... 진혁아.... 와.......... ㅠㅠㅠㅠ
4년 전
중력달
댓글 넘 고맙꾸 마니 사랑합니당...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8
왛진짷.... 너무 몽글몽글해서 간지러워요ㅜㅜ
4년 전
독자19
저기..저 좀 힘들어요 작가님.. 저는 왜이걸 이제 봤대요...? 보는데 광대에 경련이 나는것같기도 하고 다람쥐소년 너무 설레서 관자놀이가 지끈거립니다 작가님. 다음편으로 책임져주세요. 신알신 해버립니다(쒸익쒸익)
4년 전
중력달
설레는 거 세상에서 제일 못쓰는데ㅠㅠㅠ설레는 거 못쓰기 대회 1등인데ㅠㅠㅠㅠㅠ고맙다는 말 밖에 할수 없는 바보 글쓴이...고맙고 사랑합니다
4년 전
독자20
저 죽어요 작가님...... 몽글몽글ㅠㅠㅠㅠㅠ
4년 전
중력달
누추한 글에 귀한 댓글ㅠㅠㅠㅠ이쁘게 바쥬셔서 고맙숩니다...ㅠㅠㅠㅠ♡
4년 전
독자21
하 진짜 이지녁 이란 사람 어느별에서 왔는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2
와 읽는 제가 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듯한 신기한 느낌 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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