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방 돌아온 독스입니다.
지난 화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감격)
부족한 글이 사랑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했습니다ㅠㅠ
덕분에 으쌰으쌰 힘을 내어 이렇게 하루만에 글을 들고 돌아왔어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뚠뚠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들기름 짜듯 짜낸 결과물이랍니다
애정으로 어여삐 봐주시고, 또 많은 사랑의 댓글 부탁드릴게요!
p.s. 방탄소년단 600일 축하해, 사랑해
- 참 쉬운 여자 독스 올림
BGM과 함께 읽으시면 훨씬 몰입하실 수 있어요
늦잠을 자버렸다. 보충 수업이 시작 되었다는 것을 깜박 잊고는 알람을 끄고서 더 자버린 거다. 잠결에 울려대는 전화벨소리를 듣고 뭉그적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땐 이미 1교시가 지나간 후였다. 망할? 욕지거리가 입에서 튀어나오고 뒤늦게 정신을 차려 울리는 전화를 받았을 땐 ‘김탄소 미쳤냐?’ 라고 날카롭게 울리는 정호석의 목소리로 꾸중을 들어야 했다.
부랴부랴 씻고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2교시 수업이 한창이었다. 살금살금 깨금발로 복도를 걸어와 유리창으로 교실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더니 수업에 열중인 친구들과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들어갈까 싶었지만, 이목이 집중 될게 분명해 그러지 못했다. 입술만 깨물다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민윤기가 나왔다. 그를 발견하고는 고양이를 본 생쥐 눈이 되어 뒤로 획 돌아섰다. 1반은 우리 반을 지나쳐야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발견할 게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내 꾀죄죄한 모습은 보이기가 싫었다. 울상을 짓고 있는데 내 뒤를 지나치던 민윤기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일부러 안 보이는 쪽으로 돌렸다. ‘김탄소?’ 나를 알아본 것 같은 민윤기는 민망하게도 내 이름을 불러왔다.
“안녕, 윤기야.”
“왜 그렇게 있어?”
“아, 늦잠 자서 이제 학교 왔거든.”
“늦잠 잤어? 근데 교실에는 왜 안 들어가고 있는 거야?”
“그, 그게…….”
‘거기 누구야. 누가 수업시간에 땡땡이 치고 연애질이야?’ 대답을 바로 못하고 있는데 멀리서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드니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불안한 마음에 뒤로 들고 있던 가방끈을 꼭 쥐고 있는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민윤기는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채어가더니 제가 들었다. 갑작스러운 민윤기의 행동에 놀랄 새도 없이 학생주임 선생님이 내 앞에 멈춰 섰다. 내 가방을 자연스럽게 어깨에 걸친 민윤기는 늘 짓던 잔잔한 미소가 깔린 착한 얼굴을 했다.
“지금 수업시간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 지금 두 사람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아, 그…….”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열려는데 민윤기가 내 말을 가로챘다. ‘저는 지각했고, 얘는 화장실 갔다가 들어가는 길에 마주쳐서 잠깐 인사 했는데요.’ 민윤기는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당황함에 입술을 달싹 거리자 민윤기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 등에 살짝 얹었다. 등으로 온몸의 열이 모두 쏠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와 민윤기를 번갈아 보던 학생주임 선생님은 별다른 의심 없이 나는 교실로 들어가라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민윤기에게는 지각의 벌로 하교 후에 강당청소를 하라고 했다. 미안함에 눈이 댕그랗게 뜨인 나를 보며 민윤기는 그것마저도 괜찮다며 눈을 찡긋거렸다.
학생주임 선생님께 떠밀리다시피 교실로 들어왔고, 예상대로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어디 갔다 이제오니?’ 사회 선생님의 말씀에 말을 더듬으며 ‘화, 화장실이요.’ 라고 대답했다. 시계를 올려다보신 선생님은 20분 동안 화장실에 있었던 거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를 돌아본 정호석이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선생님, 쟤 변비라서 한번 화장실 가면 오래 걸려요.”
반에 있던 모든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부끄러움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묻었다. 선생님은 미안한 얼굴로 얼른 자리로 돌아가 앉으라고 했다. 종종걸음으로 자리로 와 앉는 나를 보던 정호석은 제 서랍에서 미리 펴놓았던 내 책을 꺼내주었다. ‘왜 그렇게 늦었냐. 가방은 어쩌고.’ 살짝 귓속말을 보내는 정호석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내 가방의 행방이 떠올랐다. 아, 그거 민윤기가 들고 갔는데. 내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던 정호석은 다른 말은 묻지 않고 헛기침을 하며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깜빡 잊을 뻔 했던 나대신 벌을 받게 된 민윤기도 떠올랐다.
“아, 미안해서 어쩌지.”
입술을 깨물고 책에 얼굴을 박았다. ‘김탄소, 볼일 보고 와서 이젠 잠까지 자는 거니?’ 그러다 선생님의 엄한 목소리에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나보다 앞자리에 앉은 박지민은 소리 없이 나를 돌아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눈이 마주치고 살짝 웃어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난 모르겠다, 정말. 다 모르겠어.
Love Like Sugar
W.독스
02
급식실에 앉아 식판을 깨작대고 있는 나를 박지민은 별일이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점심시간이면 그 어느 때보다 전투적으로 변했던 내가 이렇게 밥맛없다는 얼굴로 앉아있으니 이상하게 볼 법도 했다. 끝내는 젓가락을 내려놓는 나를 보며 정호석이 ‘야, 너 어디 아파?’ 하고 묻기도 했다. 아니, 입맛이 없어.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박지민이 ‘너 입맛 없는 거 아플 때 말곤 없잖아.’ 라고 거들었다.
아픈 것도 아니었고 입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민윤기가 신경이 쓰여 입 안이 까끌했다. 나 때문에 벌을 받게 된 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그냥 벌을 받아도 됐었는데, 왜 그런 건지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민윤기는 진짜 치사하게 가끔 이렇게 훅훅 치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다가가면 쌩하니 지나가 버리면서도 왜 그런 민망한 상황에서는 잊지 않고 아는 체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이따가 가방은 어떻게 찾으러 가야하지? 또 얼굴이 홍당무가 될 텐데.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들에 입술을 깨물고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아침의 일을 말해주지 않은 탓에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고만 있던 박지민과 정호석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민윤기는 정말 오해의 소지를 잘 만들어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호의적인 행동들은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라고 해봐도 달리 할 말이 없는 게, 민윤기는 매사에 늘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다가왔다 쉽게 멀어지고, 어렵게 다가가면 더 어렵게 달아났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더 쉽게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아는 게 하나 없어서인지 민윤기가 내게 하는 모든 행동들이 당황스럽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오늘 아침 내 등에 얹었던 큰 손도 마찬가지였다. 손이 등으로 올라온 순간 민윤기가 여자에게 이런 스킨십을 아무렇지 않게 잘 하던 사람이었던가 하는 찰나의 생각도 스쳐지나갔었다. 기억을 더듬어도 여자와 어울리던 모습을 많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의 민윤기가 더 의아했다. 그런 의아함은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끌고 들어갔고, 결국엔 빠져들어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꼴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야, 근데 너 가방은 어쨌어? 설마 가방 없이 학교에 온 건 아닐 거 아냐.”
“아, 그거 민…….”
정호석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려다가도 금방 박지민의 눈치가 보였다. 박지민을 흘긋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거 안 들고 왔어. 깜박했어.’ 그리고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내 거짓말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두 사람이었건만 의외로 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티가 안 났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해주는 건지는 자기들만 알고 있을 일이었다. 그냥 시선을 피했다. 그럼에도 진득하니 달라붙는 박지민의 시선이 따가워서 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 맞다. 오늘 오후 수업 없대. 선생님들 학교 행사 있어서 오늘은 일찍 마친대.”
정호석의 말에 화색을 띄며 반겼다. 진짜? 되묻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정호석은 학교 끝나고 피시방을 가자며 꼬드겼다. 됐다며 고개를 내저으니 치사하게 빠지지 말라고 또 옆구리를 찔러온다. 싫은 건 아니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종례 후에 혼자 남아 강당청소를 할 민윤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으니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나를 보며 박지민은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너 진짜 오늘 좀 이상해.’ 박지민의 말에 뭐가 하고 물으니 입술을 삐죽이던 박지민은 ‘그냥 전부 다.’ 라고 대답했다. 나를 빤히 보는 박지민의 시선에 숨고 싶어진 건 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상하긴 해.’ 고개를 끄덕거리던 정호석은 내 얼굴을 흘긋 보더니만 수저를 내려놓았다. 너 때문에 나까지 입맛 떨어졌잖아. 덩달아 수저를 내려놓는 박지민까지 보고 나는 당황했다. 정말 기분이 상했는지 사납게 구겨진 정호석의 미간을 보고 안절부절 못하자 박지민은 그만 먹어도 된다며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잔반을 버리고 급식실을 벗어나자 머리 위로 한꺼번에 햇볕이 쏟아졌다. 눈이 부셔 고개를 숙이자 정호석은 가만히 손을 들어 내 머리 위를 가려주었다.
“너 머리는 감았냐?”
“당연하지.”
“일교시 땡 친 주제에 머리는 감고 나왔네.”
“안 그럼 떡 져서 안 돼.”
내 얼굴 위를 가린 정호석의 큰 손을 붙잡고 걸으니 옆에서 박지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야, 정호석 손으로 네 얼굴은 가려지지 않아.’ 왜 또 태클인가 싶어 노려보니 박지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호석의 손 옆으로 제 손을 들었다. ‘내 손까지 더해야 살짝 가려질까 말까지.’
교실에 들어가 좀 않아있으니 곧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오늘 일찍 마치게 되는 간단한 이유를 말씀 하시고는 곧바로 종례를 해주셨다. 인사를 하고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가는 애들 틈에 섞여 나오는 순간에도 정호석은 정말 피시방에 가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나를 보며 박지민은 입술을 삐죽였다. ‘왜 안 가는데. 이유를 말해봐.’ 이유를 묻는 박지민의 얼굴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자 박지민은 눈귀를 좁히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데. 냄새가 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나와 그런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던 박지민을 번갈아 보던 정호석이 결국 중재에 나섰다. ‘안 간다잖아 호구야.’ 내게서 박지민을 떼어 놓는 정호석의 손길에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더니 박지민은 쯧 하고 혀를 차고 먼저 앞서 나갔다. 또 삐졌나. 작게 중얼거렸더니 정호석은 바람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놀다 가든지, 우린 먼저 갈 테니까.’
멀어진 정호석의 등을 보고 그대로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애들이 걸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실내화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뒷문을 통해 강당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즐비하게 늘어선 계단들을 하나 두 개 밟고 오를 때마다 심장이 더 세차게 뛰고 있었다. 지붕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강당의 모습에 괜히 입술이 바짝 말랐다. 왜 긴장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축축해진 손을 치마에 문질러 닦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니 박지민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손목 괜찮아?]
아까 괜찮아진 걸 봤음에도 이런 연락을 한 걸 보니,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괜찮다고 답장을 해주고 도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박지민에게 카톡을 받고 나서 내딛는 걸음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박지민을 속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야, 김탄소.”
편치 않은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제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손엔 내 가방을 들고 있는 민윤기가 보였다. 놀란 마음에 딸꾹질이 튀어 나왔다. 민윤기는 그런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왜 네가 이곳에 있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왔다.
“어디가?”
“아, 강당.”
“강당엔 왜?”
“…너 찾으러.”
‘나?’ 민윤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날 바라보다가 이내 제 손에 들린 내 가방을 보고는 ‘아아, 이거 찾으러?’ 라고 물었다. 그런 이유도 있고, 미안함에 청소를 거들려던 이유도 있어서 시원찮은 반응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민윤기는 그럼 가져가라는 듯이 내게 가방을 내밀었다. 고개를 숙인 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입술만 물어뜯다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고마워― 하고 말했더니, 민윤기는 잘 듣지 못한 듯 ‘뭐라고?’ 하고 되물었다.
“아니 나 대신에 네가 지각했다고 해서 벌을 받게 된 거잖아.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서 청소 도와주려고.”
“아아, 그거? 괜찮은데.”
“아냐, 내가 도와주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테니까 집에 일찍 갈 수 있잖아.”
“그래? 뭐, 그럼 그러든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민윤기는 나보다 앞서 계단을 올랐다. 세 걸음 정도 앞에서 걷고 있는 민윤기의 넓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엉성하게 얹혀있는 파란색 가방에 더 어울리지 않게 매달려 달랑거리는 귀여운 인형도 눈에 들어왔다. 말없이 따라 걷고 있으니 뒤를 힐끗 돌아본 민윤기는 나를 보더니만 살짝 웃었다. ‘진짜 청소 도와주려고?’ 보지 않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나를 보지 못할 걸 깨닫고 뒤늦게 ‘응!’ 하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민윤기는 또 살짝 웃었다. 사람 설레 죽이려고, 왜 자꾸 웃고 난리야.
강당으로 가는 길을 단 둘이 걸어서인지 참 멀다고 느껴졌다. 5분이 마치 50분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강당 앞에 서서 열쇠로 문을 여는 민윤기의 뒤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철커덕 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간 민윤기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안에서 문을 잡고 기다렸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내가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민윤기는 잡고 있던 문을 놓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큰 문이 몇 번 흔들리더니 문이 닫혔다.
넓은 강당 안에 새어 들어온 몇 가닥의 빛줄기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바깥보다는 선선한 공기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들고 있던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고 청소도구함을 찾으려 창고 문고리를 잡았다. ‘김탄소.’ 순간 민윤기가 내 이름을 부르며 크게 웃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청소를 할 생각이었어?”
“어?”
“너는 내가 진짜 청소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뭐 이렇게 순진해. 순진한 척 하는 건가.”
창고 문고리를 쥔 채 멍하니 있는 나를 보더니 민윤기는 내 손목을 잡고 강당 한 쪽으로 끌고 갔다. 그쪽 벽엔 작은 농구대가 걸려있었다. 어디서 굴러다니던 농구공을 찾아 들고 온 민윤기는 공을 가볍게 튕겼다. 그리고 살짝 뛰며 슛을 넣었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흔들리는 네트를 보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소심하게 강당 내부를 울리는 내 박수소리를 가만 들으며 공을 튕기던 민윤기는 나를 향해 공을 던졌다. 무의식적으로 공을 받아든 나에게 ‘너도 한 번 넣어봐.’ 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리둥절한 내 얼굴을 보면서 민윤기는 헛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유하게 녹아있었다. ‘내가 작년에 농구 알려줬잖아.’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에 뭐에 홀린 것 처럼 민윤기가 서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작년 봄 쯤에 그에게 배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몸을 낮췄다가 살짝 점프를 할 것, 공을 던지지 말고 팔을 뻗어 쭉 밀것. 내 손을 떠나간 공은 공중을 가로지르다 골대 근처에도 못가고 아래로 툭 떨어졌다. 힘 조절을 실패 한 까닭이었다. 멋쩍게 웃는 나를 보고 민윤기는 공을 주우러 갔다. 얼마 못 굴러간 공을 드리블해 오면서 다시 한 번 슛을 했다. 민윤기의 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골대로 들어갔다. 공이 통과했음을 알리는 네트의 경쾌한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배웠어도 자꾸 안하면 까먹게 돼.”
“……….”
“그래서 내가 매일 농구를 하는 거야.”
이번엔 공을 줍지 않았다. 통통 튕기다 데구루루 굴러간 공은 강당 구석에 처박혔다. 민윤기는 아무렇게나 강당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곤 뭐 이렇게 덥냐면서 셔츠를 펄럭였다.
“생각해봤는데, 아마 그래서 멀어 진 걸지도 몰라.”
“뭐가?”
“너랑 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민윤기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멀어졌다는 걸 나만 느낀 건 아니었다는 사실과, 분명 나처럼 녀석도 나를 조금은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흘긋 보던 민윤기는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맞잖아. 자꾸 안 봐서 멀어진 거. 혹시 나 혼자서만 너랑 가까웠다 생각했던 거면 민망한 거고.’ 민윤기는 내 심장을 가볍게 쥐어뜯을 법한 그런 말들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했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던 주먹이 덜덜 떨려서 등 뒤로 숨겼다. 혹시 민윤기가 내가 저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머릿속의 모든 생각이 뒤죽박죽 제 멋대로 뒤엉켜서 입을 앙 다물었다. 민윤기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민윤기와 마주하게 된 시선에 마른 침이 목 뒤로 넘어갔다.
“다시 친해졌으면 해서 한 말이야.”
“……….”
“별 다른 뜻은 없을걸.”
애매모호한 말을 끝으로 민윤기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굴러다니던 공을 창고로 대충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나가자며 나를 잡아끌었다. 잡힌 손목이 화끈했다. 전에 박지민이 잡았던 그 손목이었다. 다급하게 가방을 챙겨들고 민윤기의 뒤를 엉거주춤 따랐다. 체육관 문을 단단히 잠근 민윤기는 강당 앞에 서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집에 가야지?’ 그리고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저었다.
“조심해서 가. 나는 열쇠 교무실에 놓고 가야해.”
“내가 기다려줄까?”
“아니, 더운데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
눈치를 보며 물으니 손을 저으며 사양을 했다. 이런 식이었다. 다가온 줄 알고 손을 뻗으면, 민윤기는 훨훨 날아가 버렸다. 다정한 철벽남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아쉬움에 입술을 내밀고 있다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가.’ 민윤기의 낮은 목소리에 괜스레 가슴이 시렸다.
좋아하는 티내기가 싫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는데 뒤에서 민윤기가 내 이름을 불러왔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매달린 강아지 인형을 떼어내는 민윤기가 보였다. 그는 내 앞으로 돌아와 나를 돌려 세우더니 내 가방에 제가 달고 다니던 인형을 달았다. 영문을 몰라 올려다봤더니, 웃는 얼굴로 ‘너 가져.’ 라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좀 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치 꿈인 것 마냥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는 나 혼자 남겨졌다.
“뭐야, 민윤기.”
자꾸 이렇게 잘해주면, 나 또 착각한단 말이야.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다. 눈앞에서 보기 좋게 버스를 놓치고는 조금 기다리는 게 지루해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에게 뜨거운 햇빛은 쥐약과도 같았다. 축축 쳐지는 몸을 애써 추스르며 걷는데, 또 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힘없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더니 박지민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뭐하냐.
“집에가.”
-이제? 여태 어디서 뭐하고?
겨우 종례한지 한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이렇게 극성이다. 더워죽겠는데 뜨거운 핸드폰 까지 들고 있으려니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좀 끊으라고 했더니 시무룩한 목소리로 ‘왜 나한테만 그러냐. 정호석한테는 살갑게 잘만 하면서.’ 라고 투덜거렸다.
‘더워서 그래. 집까지 걸어가는 중이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왜 집까지 걸어가느냐고 묻는다. 거기에 대놓고 버스도 놓쳤고 민윤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것도 있어서 그렇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이라고 심심한 대답을 했다.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걸고넘어지려던 박지민은 또 그냥 넘어가준다. 항상 이랬다. 박지민은 날 괴롭히는 듯 참 자상하게 잘 챙겨줬다. 그래서 난 그날의 박지민이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는 거였다. 생각이 난 김에 물어볼까 싶어 박지민을 불렀다. 야, 박지민. 내 부름에 꽤나 다정한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하는 박지민의 기분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너 윤기랑 같은 중학교 나왔다고 했었지.”
-야, 민윤기 이야기 할 거면 끊어. 허구한 날 할 이야기가 민윤기 이야기 밖에 없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너랑 윤기랑 사이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궁금해서 그래.”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궁금할 수도 있잖아.”
별게 다 궁금하다며 박지민은 나를 타박했다. 그리고 그냥 아는 사이였다면서 정말 대충 대답을 해줬다. 무슨 그런 대답이 다 있냐며 칭얼거렸다니 정말 그뿐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대답을 피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정말 그게 다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저번에 정호석이 했던 ‘얼굴만 알고 이름만 알던 사이’ 라는 말이 떠올랐다. 진짠가, 싶어 알았다고 대답했다.
-야, 너는 민윤기가 왜 좋아?
“말했잖아. 너 같은 호구에게는 안 보이는 멋짐이 있다고.”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니야, 호구야.”
-왜 자꾸 호구래. 누가 호구야.
누구긴 누구야, 너지. 박호구. 내 대답에 박지민은 발끈했다. 박지민을 괴롭히다보면 어느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지민은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어쪔 나는 박지민을 너무나도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야, 진짜 끊어. 핸드폰 뜨거워서 신경질 날 거 같아.”
-그냥 전화 받기가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래, 너랑 통화하기 싫어. 됐지? 이제 좀 끊어.”
-나쁜 놈.
결국 전화를 끊었다. 좀 전보다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이 걸어와 있었다. 멀리서 우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내일은 늦지 말고 와. 아침에 깨워줄게.]
박지민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화면을 확인한 나는 웃는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역시 박지민은 참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
아침부터 나는 무슨 죄수마냥 정호석과 박지민의 손에 이끌려 등교를 해야 했다. 아침에 박지민이 모닝콜을 했는데 귀찮아서 받지 않았더니 벌어진 일이었다. 나를 믿지 못했던 박지민은 정호석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를 이대로 지각하게 둘 수는 없다는 명목 하에 새벽부터 둘은 우리 집을 들이 닥쳤다. 엄마도 놀란 얼굴로 정호석과 박지민을 번갈아 보며 ‘아침부터 무슨 일이니?’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둘은 너무 당당한 태도로 ‘탄소랑 학교 같이 가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서게 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를 기다렸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나를 보며 내 옆에 서있던 정호석은 대체 밤에 뭘 하냐고 물었다. 딱히 하는 게 없는데 그냥 잠이 많은 거야― 라는 내 대답에 박지민은 ‘미인도 아니면서 잠이 왜 많아.’ 라고 또 나를 놀렸다.
“야, 미인이 잠이 많다는 거지, 잠이 많은 사람이 미인이라는 건 아니잖아.”
“그게 그 말이지.”
“어떻게 그게 그 말이야. 공부 못하는 거 티내냐.”
“야, 공부로는 너나 나나 피차일반이다?”
“시끄러워, 멍청이들아. 버스 온다.”
정호석의 중재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또 그 자리에서 말을 주고받으며 스무고개를 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우리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버스는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출근 시간과 겹친 등교 시간의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게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버스 안은 전쟁터였다. 무료한 표정으로 버스 안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익숙한 머리통이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카드를 찍고 두리번거리며 설 자리를 찾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민윤기였다. 민윤기는 한참 나를 보다 눈웃음을 지었다. 인사 같았다. 따라 웃어주니 손잡이를 잡고 섰다. 잠깐 마주쳤던 시선이었지만, 충분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야, 호석아. 얘봐라 얘.”
“왜.”
“혼자 웃는다. 미친 건 아니겠지.”
“몰라. 미쳤을지도 모르니까 안 물리게 조심해.”
“그래야겠다.”
옆에서 뭐라 하건 들리지가 않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흔한 사랑노래에 슬며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사랑에 힘을 실어주신 나의 암호닉분들 ♥
석진센빠이 / 공감 / 정희망 / 민살랑 / 김치찌개 / 환타 / 두부
단미 / 계피 / 충전기 / 메로나 / 버들 / 노리 / 청춘
그대의 하해와 같은 사랑 위로
내 눈물 젖은 입술을 묻습니다
* 암호닉 양식은 따로 없어요.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 해드립니다
* 암호닉 빠졌다 하시는 분들 채찍질과 함께 댓글로 꾸짖어 주셔요(울먹)
* 작가님 이라는 호칭보다는 독스님 이라는 호칭이 훨씬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