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차기작과 도부자 메일링을 기다리시는 우리 독자님들을 달래줄 단편 프로젝트
EP1. 수호 : 오빠입니다
EP2. ?? : ?
EP3. ?? : ?
오빠입니다 : 복학생과 계피 사탕
사탕 세 개(完)
" 헐 야, 웬 사탕 나 하나만 "
학교에 도착해 아저씨가 준 막대사탕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주변 친구들의 관심이 한순간에 내게로 쏠렸다. 그동안 계피사탕이라면서 무시깐게 언제고... 나는 여전히 꽁기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대꾸도 안하고 사탕을 가방에 집어넣는데 여자애들이라고 내 그런 기분을 눈치챈건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면서 물어온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탕 받은건 똑같은데, 그냥 사탕이 계피 사탕에서 막대 사탕으로 바뀐것일 뿐인데.
" 몰라.. 사탕 내가 다 먹을거야 "
" ..어..알았어.. 근데 왜 그래, 저번주까지만해도 계피 사탕하고 이상한 사탕만 가져오더니 "
" 몰라.. "
짜증이 섞인 내 대답에 친구들은 모의고사 성적이 그 모양일 수도 있지. 하며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한다. .... 벌써 등급컷이 나왔어????? 아 나 씨, 망했네. 갑작스러운 성적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사탕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친구들과 입시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정확한 등급컷이 나왔냐는 내 물음에 친구들은 친절하게 핸드폰으로 등급컷 캡쳐본을 보여주었다.
" 뭐야? 이번에 등급컷 왜 이렇게 높아? 영어는 또 왜이래??? "
" 이번에 장난 아니야. 아예 망하거나 아니면 아예 잭팟 터뜨리거나 "
" 아!!! 진짜 나는 아예 망했네.. 어떡하냐.. "
" 모의고사인걸 감사해해야지 "
이런 제기랄.. 죵나 울고싶다.. 나란 년은 숨 쉴 자격이 있는 년일까..? 수능 때도 성적이 이따위로 나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미래설계 초반부부터 보스전이라니 말도 안돼... 아직 내가 양심이 제대로 다 안자라서 눈물은 안나오고 그저 울상만 짓는데 친구들은 이번 모의고사 망했다는 이야기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대박거리며 이번에 컴백하는 우리 오빠들의 티저 캡쳐본을 보여준다. 이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이런거나 보니까...
" 야 진짜, 너네 이런 거 볼 어? 헐 야.. 존나 잘생겼네.. "
" 그치 핵존잘, 모의고사는 나중에 생각하고 나랑 같이 티저나 보자 "
ㅎ.. 어젯밤에도 자기 전에 봤는데 또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우리 오빠들은 언제봐도 존잘이다. 이래서 내가 탈덕을 못한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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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밤하늘과 오늘도 변함없는 으스스한 아파트 단지내를 걷는 나. 오늘은 무서움보다 후회가 가득 밀려온다. 하루종일 자지는 않았지만 우리 오빠들의 얼굴 탐구를 했달까... 하하 나란 년..! 성실한 미친년이야! 우리 오빠들한테 미친년!!!! 맨날 입만 고삼이니까 탈덕해야지,탈덕해야지 해놓고 대체 탈덕은 언제 할 수 있으련지 모르겠다. 오빠들을 향한 애정이 조금 식어갈 때쯤 어떻게 그건 귀신같이 알고 컴백하니까 나로서야 허구한 날 덕통사고를 당할 수 밖에...
공부생각와 우리 오빠들생각이 뒤섞이면서 골이 지끈거린다. 그냥 일년이 후딱 지나가버렸으면 좋겠을 뿐... 마침 주머니에 들어있던 아저씨가 준 막대 사탕을 담배마냥 물고 한껏 고쓰리의 울분을 가득 담아 아련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려는데 문뜩 내가 걷는 보도블럭 바로 옆편에 마련된 쓰레기장에 눈길이 간다. 금방이라도 전기가 나갈것처럼 깜빡거리는 전구 아래, 양손 한가득 쓰레기를 쥐고 나온 한남자의 뒷모습이 익숙하다. 가던 걸음을 잠깐 멈추고보니 분리수거를 하려는지 제발 옆에 쓰레기 봉투를 놓는다. 그리고 투명한 쓰레기 봉투 아래로 선명하게 눈에 띄는 계피 사탕 봉지.
...
" 아저씨 "
세상에 계피 사탕을 먹는 사람이 한두명은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아저씨임을 느낀 내가 입에 물고있던 사탕을 빼고 무언가에 홀리듯이 아저씨, 하고 부르자 뒤를 돈다.
" ... "
" ... "
평소라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안녕, 하고 인사를 해줄 법한 아저씨인데 이상하게 얼굴을 봐놓고 뚫어져라 쳐다볼뿐 인사가 없다. 뻘쭘해진 분위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하니 그제야 안녕, 하고 인사를 받아준다.
" ...어..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
" 잠깐만 "
" ... "
" 같이 들어가자, 위험하니까 "
그러고선 분리수거를 하는 손길이 빨라지는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 민망해져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아저씨 발치에 두었던 쓰레기 봉투를 들었다.
" 이거 일반쓰레기 맞죠 "
" 둬,둬, 괜찮은데 "
괜찮기는, 이미 버리려고 집어들었는데. 묵직한 쓰레기 봉투를 통 안으로 던져넣어버리기 위해 양손으로 힘을 주어 쓰레기 봉투를 위로 들자 계피 사탕 봉지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포장에 고이 싸여져있는 사탕들이 보인다. 거기다가 미네랄 소금 사탕하고 흑사탕에다 홍삼 사탕까지. 아저씨가 내게 주었던 사탕들이란 사탕들은 모두 들어있다.
... 이걸 왜 버려
" 아저씨 "
" 응 "
내 부름에 바쁘게 분리수거를 다 하고는 옆으로 오는데 머리가 복잡해져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한참을 쓰레기 봉투를 통 위에 걸쳐놓고 생각을 하다가 다시 땅 위로 내려놓았다.
" 왜 버려요? "
" 어? "
" 사탕들 왜 나 안주고 다 버려요? "
그러며 쓰레기 봉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자 다급히 일어나라며 재촉하는 아저씨
" 치마 입고 아무데나 앉는거아니야 "
" ... "
" ... "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내 앞에 있던 쓰레기 봉투를 커다란 통에 넣어버리고는 나를 내려다보는가 싶더니 거칠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 안좋아하잖아 "
" ... "
" 저번에 보니까 막대 사탕 좋아하는 것 같아ㅅ "
아저씨의 말을 듣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벌떡 일어나 따지듯이 말했다.
" 누가, · · · · "
*
아침에 웬일인지 평소에 등교하는 시간보다 빠르게 나가버린 옆집 학생을 보지 못했지만 오늘도 역시 분위기를 잡느라 작은 교적 외곽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준면이는 지난 밤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안좋아하잖아 "
" ... "
" 저번에 보니까 막대 사탕 좋아하는 것 같아ㅅ "
" 누가, "
" ... "
" 누가 안좋아한대요? 저 계피 사탕 완전 좋아하거든요? 미네랄 소금 사탕도, 흑사탕도 그냥 막대 사탕도 다 좋아하거든요? "
그리고는 부끄러운지 후다닥 도망가는 모습이란... 준면이는 참다가 으하하하 크게 소리내어 웃었고 그 꼴을 본 여학우들은 뭐야? 왜 저래? 하며 수근거리기 바빴다. 여자애한테 계피 사탕은 좀 아니라던 종대의 말은 틀렸다!! 내가 옳았어!!! 얼른 종대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준면이의 마음을 알아챈건지 오늘도 역시 바쁘게 전화를 받으며 도서관쪽으로 뛰듯이 걸어가는 종대가 보였다.
" 네? 선배, 아니 발표가 이제 내일인데 "
" .. "
" 피피티가 안되면 어떡하라고요. 자료 취합해서 드렸잖아요 "
" .. "
" 만들 수 있다고 하셨잖ㅇ, 선배...,선배? 선배!! "
" .. "
" 이 개새끼야!!!!!!!!!!!!! 금방 만들 수 있으면 니가 만들어!!!!!!!!!!!!!! "
... 오늘 종대를 건들면 좀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으니 준면이는 조용히 먼 산만 바라보았다. 날씨가 참 좋다.. 하지만 종대는 어느새 준면이 옆에 힘없이 쩍벌을 하고 앉아 허공을 보며 멍을 때렸다.
" 아, 살기 싫다 "
" ... 힘 내 종대야 "
" 근데 너 오늘 기분 좋아보인다 "
어, 눈치 챘나.준면이는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선 말했다.
" 내 인생에 봄이 올 것같은 느낌...? "
" 뭐? "
" 농담 "
" 아.. 미친새끼.. "
그 말을 듣자마자 종대는 밥맛 떨어진다는 표정을 하고는 승질이 가득 담긴 발길질로 바닥을 찼다. 이 도둑놈이 결국엔..
" 그 애, 계피 사탕 좋아한대 "
" .. "
" 미네랄 소금 사탕도, 흑사탕도 다 좋아한대 "
" ... 혹시 걔 열 아홉이 아니라 여든 아홉이 아닐까? "
" 아니야 "
단호하게 부정을 하는 준면이에 종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우리 옆집 여자애한테 계피사탕이나 줘볼ㄲ.. 아참 옆집에 할머니밖에 안계시지.. 될 놈은 된다는건가..빌어먹을 세상.. 조별과제에서 핵폭탄급 선배를 캐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종대는 친구의 염장까지 더해져 눈물이 나올뻔했다.
" 그럼 이제 너 은팔찌 차는 것만 기다리면 되는거야? "
" 종대야 "
" 알았어, 나도 농담 "
그리고나서 할 말을 잃은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맑은 구름 몇점만이 동동 떠다니는 높고 푸른 하늘은 척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느라 감정이 메말라버린 대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날씨 오진다, 과제만 아니었으면 놀러가는건데 "
" 그러게 "
" 에이씨, 선배새끼때문에 이게 무슨 봉변이야 "
" 과제 도와줄까 "
제대하고 나서 오랜만에 해보는 수강신청에 그만 파워공강을 만들어버린 준면이는 종대에게 약간의 동정을 베풀었다. 으쌰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종대는 경련하듯 손사래를 쳐보였다.
" 아서라, 너는 그 계피사탕 좋아하는 옆집 애랑 놀던가 "
" 학교에 있는데.. "
" ... 아.. 아.... 이 새끼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도둑놈이네!! "
난데없이 화를 내는 종대에 개구지게 웃던 준면이는 머리 위로 날아오는 종대의 손을 익숙하게 막았다.
" 에이씨, 나 갈거야 "
" 잘 가, 과제 힘내고 "
준면이의 말을 끝으로 종대는 길고 쭉 뻗은 중지를 내보이며 도서관 쪽으로 사라졌다.다시 홀로 남은 준면이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지나가던 여후배 두여명이 갑작스레 선배~하며 말을 걸어왔다.
" 선배 안녕하세요~ "
" 안녕, 날씨가 참 좋지 않니? "
" 장난아니에요~근데 선배 여기서 뭐하세요? "
집에 갈 때 마트 들러서 무슨 사탕을 사갈까하는 생각?ㅎ. 아깝다 어제 그 사탕들 버리지말고 그냥 놔둘 걸.. 한참을 다른 생각을 하다 선배, 하고 제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보다 한발짝 더 가까이온 후배들에게 둘러싸인 준면이
" 어? 어.. 그냥, 교양 들으러가니? "
후배들 각자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책 표지에는 크게 심리학의 이해, 여섯글자가 쓰여져있다. 그거 되게 재미없는데.
" 네~ 그 전에 늦게 점심 먹고 가려고하는데 선배도 같이 드실래요? "
" 아니, 괜찮아. 나는 그냥 ㄷ "
" 선배에~ "
준면이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그럼 너네 계피 사탕 좋아해? "
" 네? "
" 계피 사탕 "
" ... "
" 좋아해? "
뜬금없이 계피 사탕 좋아하냐니.. 여자아이들은 일제히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뭐야 이 선배 좀 이상해,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더니.. 생긴건 멀쩡한데 또라이인가봐..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가운데에 있던 한 명이 분위기를 풀기위해 꺄르르 웃었다.
" 선배도 참, 갑자기 무슨 계피 사탕이에요 "
" 그래? "
" 저번부터 그러더니, 선배 계피 사탕 정말 좋아하나보다~ "
" 응 "
좋아하고 말고, 우리 계피 사탕은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하고 있으려나.
" 그래서 선배, 저희랑 같이 밥 안드실래요? "
" 응, 미안 "
계피 사탕을 안좋아한다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단호박같이 대답을 한 준면이는 더이상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 이만 가보겠다는 굿바이 인사를 해주었다. 물론 특유의 오지랖 펼치는 건 잊지않았다.
" 맞아, 그 교양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재미없어. 밥 많이 먹고 힘 내 "
" ... "
멍하니 뒤에 서서 한껏 신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준면이를 쳐다보는 후배들은 허,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곤 한마디씩 했다.
" 뭐야? 저 선배 원래 저래? "
" 몰라, 계피 사탕 빠돌인가봐 "
사실 계피 사턍 좋아하냐고 물었던건 마음이 여린, 특히나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마음이 여린 준면이가 원하지않는 약속을 거절하기 위해 다급하게 급조해낸 변명거리였다. 뭐 어때 거절만 하면 된거지. 절로 나오는 콧노래와 함께 계피 사탕 선배라는 칭호를 얻어낸 준면이는 다음 강의를 위해 발을 옮기면서도 머릿속으로 성대한 계획을 세웠다.
오늘 집에 갈때 마트 들러서 사탕이란 사탕은 다 사가야지
*
" 여기서 which가 접속사 및 형용사 역할이니까 의문형용사지 "
" ... "
" 뒤에 media, 보여? "
" ... "
" ... 너.. 이해는 돼? "
안돼요 안된다구요!!!!!!!!!!!!!!!!!!!!!!!!!! 야자가 끝난 후 영어 수능특강을 옆구리에 끼고 집에 가는데 도대체 나는 공부를 하려고해도 이 놈의 단단한 머리가 안따라줘서 문제다. 오늘도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다가 다른 애들은 그냥 딱 들으면 이해하는걸 이해 못해서 굉장한 쪽을 당했다. which가 의문형용사이든 말든 내가 알게뭐야!!!!!!!!!!!! 거지같은 꼬부랑 글씨.. 한글이 세계 공용어였으면 좋겠다
나라가 망한 듯 한숨을 푹푹 걷다보니 반대편에서 비틀비틀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걸어오는 취객 한 명이 보였다. 히끅,히끅 거리는 걸보면 보통 마신게 아닌가보다...일에 쩔어서 오랜만에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는 어느 집안의 가장이실 수도 있지만 혹시하는 생각에 온 몸에 바싹 긴장을 주고 한걸음 한걸음 비교적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데 시선을 안마주친다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순간 술에 취해 흐리멍텅한 취객의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는 오줌을 지릴 뻔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괜찮아 나는 짱짱걸이다 나는 아무도 못건들여 나 건들면 우리 아빠가 다 죽여버릴거니까 그래.. 제발.. 아랫입술을 꾹 물고 벌렁 거리는 심장으로 숨소리 또한 내지않으며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데 한층 예민해진 청각임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질질 발을 끌며 가던 취객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불안해진 마음에 꿀꺽 침을 삼키고 뒤를 돌아봐야하나 아니면 그냥 그대로 걸어갈까 아니면 냅따 뛸까 하는데 내 등에서부터 다섯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히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내가 아무리 걷고 걸어도, 10초가 지나도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난생 처음 겪는 상황과 커지는 불안감에 눈물이 터지려고 할 때
" 가자, 가자 "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와 아저씨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확 풀리는 긴장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자 어, 또 떨어뜨렸다. 하며 주워주는 아저씨. 아 진짜... 왜 이렇게 반갑지... 크응, 크게 코를 훌쩍이며 건내주는 책을 받지않고 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얼굴을 살핀다.
" 왜 그래, 울어?? "
" ... "
" 인기척 낸다고 냈는데 많이 놀랐어???? 오빠때문에 우는거야??? "
" ..조용히 좀 해요.. "
왜 이렇게 크게 말해.. 지금 자는 사람들 다 깨우겠네.. 몇번 더 코를 훌쩍이고 나서야 겨우 책을 받아든 나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너 진짜 위험해, 애가 겁도 없이.. 저런 사람 보이면 바로 뒤 돌아서 막 큰 길로 뛰어나가야지 "
" .. "
" 그리고 오빠한테 전화 해 "
미쳤나봐, 또 시작되는 헛소리에 방심한 나머지 웃음을 터뜨리자 아저씨는 내가 왜 웃는지 모른다는 표정을 한다.
" 무슨 전화에요 "
" 해야지, 무섭잖아 "
" 아저씨 번호도 없는데 "
" ... "
" ... "
내 말에 가만히 걸음을 멈춘 아저씨는 정지 화면처럼 굳어있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고이 손을 내민다. 뭘 달라는건지 어깨를 으쓱거리자 폰,폰. 하며 재촉한다. 그럼 그냥 폰 달라고하면 되지 주변은 왜 둘러보고 난리...
" 내가 번호 줄게 "
선심쓰는 척하네! 이내 저장을 완료한 아저씨는 치밀하게 자기 폰에 전화까지 걸어서 내 번호를 확인하며 말했다.
" 너 근데, 다른 남자애들한테도 그래? "
" 뭘요 "
" 나 너 번호 없는데.. 좀 주면 안돼? 이런거 "
나를 무슨 끼순이로 보나.. 거기다 아저씨한테도 번호 좀 주면 안돼요? 이런 말은 한 적도 없는데... 한순간에 끼순이로 몰린 나머지 억울한 표정을 짓자 번호를 저장하다가 힐끔 내 얼굴을 보던 아저씨는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린다.
" 그럼 안된다 "
" 안해요 그런거 "
" 그래야지 "
번호를 깔끔히 저장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저씨. 저장된 꼴을 보자하니 양심도 없는지 준면오빠라고 저장해놨다. 수정하기에도 귀찮아 그냥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폰을 쑤셔넣었다.
" 아저씨는 오늘도 밤 산책하는거에요? "
" ㅇ..어.. 어어, 밤 산책, 내가 말했지? 밤 공기가 좋다고 "
" ... 아 네 "
진짜 이 아저씨는 헛소리하는것만 없으면 참 좋은데. 아니 지금 보니까 헛소리하는게 개성인가 싶기도 하다.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오늘은 다행히 1층에서 멈춰있는 엘레베이터를 빠르게 잡아타는데 문뜩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질문했다가 오히려 더 이해하지 못하고 막혀버린 문제가 떠올랐다. 마침 엘레베이터 등이 밝기도하고 문제집을 촤르륵 소리내어 넘기자 역시나 옆에서 대놓고 왜? 하며 강한 관심을 보여준다.
" 아저씨, 영어 잘하죠 "
" 나 영어 1등급이었어, 말만 해 "
하긴 그래야 한송대를 가지
" 이거, 3번 문제 좀 알려주세요 "
" 3번? 보자 "
내가 손가락으로 문제를 탁탁 찝어주니 음.. 하고 빠르게 지문을 읽어내려가던 아저씨는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펜이 없는 대신 손톱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그어나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 여기 첫문장부터 중요한 내용이 나오네, 중간중간 접속사 잘 체크해놓고 하나하나 해석 해보자 "
" .. "
" 인터넷이 위험한 점은, 그것이 기술이라는 기운을 ······· "
..어.. 음.. 듣고 있다보니 학교 선생님보다는 훨씬 더 낫긴한데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나란 돌머리는 못난 돌머리... 허공을 쳐다보며 썩은 동태눈깔을 하고있자 아저씨는 정신차리라며 나를 툭 밀었다.
" 아 진짜 모르겠어요 "
" 그러게 내가 공부 도와준다니까 "
어느새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터덜터덜 걸어 내리는데 설명해주느라 대신해서 들고있던 책을 장난스레 내 머리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건다.
" 어? 오빠랑 열심히 공부해서 한송대 들어와 "
" 제가 무슨 한송대에요. 운일대라도 굽신굽신거리면서 들어가야할 판에 "
" 할 수 있어 "
" 저 야자있단말이에요 "
" 빼, 과외한다고 "
" ... "
" 밤늦게 들어오는 것도 무섭잖아 "
... 끌리는데? 하긴 내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다고해서 알찬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야!!자라!! 라는 말의 줄임말답게 맨날 쳐자고 오니까...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아저씨가 내 머리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내리는데 들어가라는 자기 집은 안들어가고 자꾸만 내 주변을 얼쩡거린다.
" 어? 공부 도와줄게 "
" ... "
" 그래, 그럼 우리 열심히 하자! "
아무 대답도 안했는데 혼자 우리 열심히 하자!! 하며 외치고는 빠르게 제 집에 들어가버리는 아저씨. ... 보통 미친자가 아니야.. 어리둥절하게 서있는데 이상하게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진짜 알 수가 없어,
그건 그렇고 3학년 야자 담당 선생님이 어디 계시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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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보고니 우리 담임쌤이 야자 담당 선생님이셨다. 대반전잼. 허구한날 탱자탱자 놀고 먹고 자는 모습만 보시던 선생님은 내가 과외를 한다고 하자 굉장히 기뻐하시며 야자를 빼주셨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진작에 구라치고 뺄 걸... 고삼 이후 처음으로 6시 이전에 하교를 해보는데 생각보다 야자를 빼먹고 가는 아이들이 많다. 뭐 다들 학원이나 과외 하러 가는 거겠지. 전교생 의무 야자라더니 다 부질없는 경고였구만...
해가 지기 전 마음 놓고 집에 가보는게 얼마만이더냐, 습하습하 밤공기보다 내게는 더 맑은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뒤에서 큼큼, 큼큼!!!하는 굉장히 성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헛기침을 하나 뒤를 돌아보자
" 그렇게 나랑 공부하기 싫어했으면서 "
또 아저씨다. 이제는 아침에 보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학교에서 집에 갈때마다 마주치는 것같다.
" 아저씨는 나 따라다녀요? 스토커야 완전 "
" 이번에는 나도 학교 갔다가 이제 집에 들어가는거야, 무튼 오늘은 인기척 제대로 냈다 "
" 이번에는? "
" .. 아니, 이번에는 산책이 아니라 나도 학교 갔다온거라고. 나 누구 따라다니는 이상한 사람 아니야 "
그냥 장난친건데 정색 할 필요까지야...
" 알았어요, 장난도 못쳐 "
" 그건 그렇고, 야자 못뺀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뺐네. 내가 학교 선생님들보다 낫지? "
졸졸 뛰어와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발을 맞추는 아저씨
" 그런 것 같아요 "
" 그런 것 같아요 라니, 그래요. 대답은 똑바로 해야지 "
" 진짜 웃겨, 저 아저씨 설명 제대로 들어본적 없거든요? "
" 오늘 들어보면 확실히 그래요. 라는 소리 나올 걸 "
얼씨구 무슨 근자감. 나는 아저씨의 시시콜콜한 농담을 받아주고 아저씨는 도라에몽 주머니에서 사탕들을 한움쿰 꺼내주고, 첫만남 때보다는 훨씬 더 유해진 사이에 이젠 진짜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도 뭐하다. 세상에 어떤 아저씨가 고삐리랑 이렇게 투닥투닥 할 수 있는가. 아저씨가 준 사탕들 중 호박엿을 입에 까넣으며 말했다.
" 아저씨 "
" 응? "
" 이제는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는게 더 편해요? "
" .. 편하기보다는 익숙해진거지 뭐, 왜? "
" 예전에는 오빠입니다. 오빠라니까? 오빠야, 라는 말이 입에 붙었는데 요즘에는 그 말도 안해서 "
" 힘들다 힘들어, 내가 백날 말해봤자 너는 계속 아저씨라고 부를거잖아 "
아하, 난 또 이제는 아저씨라고 불리는게 나은 줄 알고. 지금이라도 오빠 소리를 해볼까 해서 입을 열었지만 익숙한게 무서운거라고 차마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그냥 차라리 처음 봤을 때부터 찌질한 모습 보여주지 말고 좀 번듯하고 샤방샤방한 모습 보여줬으면 오빠란 소리가 좀 나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시선을 피하며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 왜, 이제는 오빠라고 불러줄 마음에 생겼어? "
" 됐거든요 "
" 너 나중에 여섯살 차이 나는 남자친구한테도 아저씨라고 불러라 "
" 남자친구한테 왜 아저씨라고 불러요 "
" 근데 왜 나는 아저씨야 "
" 아저씨가 제 남자친구에요? "
"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
뭔 소리야!!!!!!!!!!!!!!!!!!!!!!!!!!!!!! 말을 하면 할 수록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에 입을 꾹 닫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들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 아저씨가 고삼 때 남친 만들면 대학 못간다면서요 "
" 근데 나는 돼 "
?????????????????????????? 도대체 무슨 논리?????????? 한송대는 논술시험같은거 안보나? 뭐 이런 인간이 한송대를 들어가고 난리.. 말문이 막힌 내가 정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굳건한 얼굴로 나를 엘레베이터로 밀어넣는다.
" 아저씨가 뭔데 돼요 "
" 왜냐하면 나는 너 대학 보내줄거거든 "
네, 존나 대단하십니다.. 내 옆에서 얼굴을 기웃거리는 아저씨와 애써 시선을 맞추지 않기위해 무진장 노력하는데 내가 끝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자 내 팔뚝을 쿡쿡 찌른다.
" 어때 "
" 뭐가요 "
" 대학 보내주는 남자친구 "
" 웃기지 마요!! "
아저씨의 말에 기겁을 하며 대답 하자 티나게 입꼬리를 내린다.
" 요즘 여섯살차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
" 누가 나이보고 싫대요? "
" 그럼, 그냥 내가 싫어? "
아니, 그건.. ㅇ..아닌데... 내가 왜 부정의 반응을 해보였을까... ㅈ..자동반사?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저씨가 싫은건 확실히 아닌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일궈놓은 연서복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나름 이것도 듣다보니 나름 사랑고백 같은데 엄청난 두근거림도 없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수긍하게된다. 아 그렇구나, 음 그래. 이런 느낌?
....
이런게 바로 페이스에 휘말린다고 하는거구나
" 잠깐만요, 아저씨 지금 고백하는거에요? "
" ... "
"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고백인가? 나한테? "
" 그럼 너한테 하지 누구한테 하는거야 "
뭐 이런 뻔뻔한 인간을 다봤어. 나는 진짜 고백하는 상대가 누구든, 편지라도 쓰던지 아니면 분위기 있게 ○○야! 나랑 사귀자..!! 하고 고백 받을 줄 알았는데 이딴 식으로 무드없게 고백을 받다니. 이 아저씨는 언제나 상상 초월이다.
" ㄱ...그.. 그니까 사귀자고, 그 말 하는거에요? "
내 물음에 대답도 않고 엘레베이터에서 먼저 내려버리는 아저씨
" 그 말 하는거야 "
그러면서 손으로 총을 만들어 또다시 내게 빵야! 쏴보이는데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어느정도 아저씨의 마음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까 정신을 못차리겠다. 멘탈에 폭풍이 밀려들어온다고 해야하나,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런 듯하다.
히익! 하며 얼른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집으로 뛰어들어갔고 뒤에서부터 발랄돋는 아저씨의 외침이 들려왔다.
" 저녁 먹고 갈게 ○○야!!! "
.
.
.
스물 다섯 대딩과 열 아홉 고쓰리의 만남이 성사된지 시간이 그렇게 오래지나진 않았다. 소박하지만 엄청난 고백에 정신을 못차리던 것도 잠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과외를 해주고, 사탕을 주고, 장난을 치는 아저씨의 병신같지만 치명적인 매력에 빠졌다는 걸 깨달은 나는 명문대 다니고 대학 보내주는 남자친구 좀 만나보자며 고백을 승낙했다.
물론 고백을 받아주었다고 해도 우리 둘 사이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특별히 엄청난 애정행각을 하지않는터라 우리 엄마도 친한 오빠,동생 딱 그 정도로만 알고있을 뿐이다. 비밀 연애지만 더럽게 스릴감이 없다고 해야하나
얼마 없는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매일 아침 운동하는 척 나를 기다렸던 아저씨가 이제는 대놓고 날 기다린다는 점?
학교에 가기 위해 문을 열면 안녕, 하고 인사를 해주고 그럼 나는 안녕 아저씨, 하고 인사를 받아주고. 곰곰이 생각하면 이게 무슨 연인사이냐 하는 생각도 든다. 아,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은 내가 드디어 사탕 주머니를 마련했다는 거. 매일이 할로윈 같은 나는 문구점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마련해 그곳에 맨날 아저씨에게 사탕을 보급 받아간다. 물론 아직까지 계피 사탕이나 흑사탕, 미네랄 소금 사탕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에 섞인 호박엿이나 막대 사탕 때문에...
" 아저씨 내일은 막대 사탕 하나만 더 가져오면 안돼요? "
" 오빠라고 부르면 "
" 더러워서 안먹는다 "
" 더러워? "
" 아뇨 우리 오빠가 주는 사탕은 어떤 것이든 성스럽죠 "
필요할 때만 오빠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나름 익숙해진 오빠소리와 함께 언제 닮아버린건지, 손으로 총을 만들어 빵야빵야 쏘는 모션을 취한 나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때마침 내려오는 엘레베이터에 몸을 낑겨타는데 문이 닫히기 전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아저씨는 비장한 표정을 하더니
어디서 배워먹었는지도 모를 요망한 손하트를 온몸으로 날려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사람들 다보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 웃음이 터져버린 나는 으악!!! 경악을 하면서도 답례로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작은 하트를 만들어보여주었다.
내가 저런 호구같은 면에 반해 안반해
그리고 과외같지 않은 과외를 할 때에는 또 사람이 호구같은 면을 덜보여준다. 좀 정상적인 시간대라고 해야하나...
" 너 자꾸 나 오기 전에 그 엑스오인가 뭐인가 하는 애들만 주구장창 보고있으면 내가 갤러리 다 지워버릴거야 "
" 아 왜~ 공부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
" 안돼 "
" 알았어, 알았어요. 안볼게 "
" 그래도 안돼, 내가 언젠가는 다 지워버릴거야. 그리고 거기에 내 사진 이천장 집어넣을거야 "
...!
지금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시간대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범상치 않은 호구같은 면이 매력이지. 김준면 아저ㅆ.. 아니 오빠의 매력. 내가 거기에 반한 거 아니겠어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만남,
EP1. 수호 : 오빠입니다
복학생과 계피 사탕
完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부릉부릉님/전봇대님/딸기님/설렘사님/소녀님/제이너님/경수하트워더님/민속만두님/시카고걸님/모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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