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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꿈 속의 남자 시리즈에서 파생된 글입니다.










[방탄소년단] Mellow Dream, 01 | 인스티즈



[ Mellow Dream ] 


원만하고 부드러운, 네가 있는 그 세상으로.

ⓒ고또







*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 꿈










*









1. 잊지 말아야 할 이름






[202X]



" 헉, 헉... "


이른 새벽, 여주는 잠에서 깼다.

창 밖을 보니 동이 터오기 전인 듯 하늘은 짙은 장막이 한참이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그 사이 빛을 비추고 있는 달이 흐렸다.

여주는 거칠게 눈가를 부볐다. 눈가를 훔친 소매가 흠뻑 젖었다.


꿈을 꿨다. 요근래 어렴풋이 이어지는 듯한 그 꿈을.

꿈 속에서 누군가를 보았던 것 같았다. 그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뭉쳐진 덩어리처럼 좀처럼 펼쳐지지 않는 꿈에 대한 기억들이 머리를 지끈하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를 눈물들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이상했다. 공연히 슬펐다. 이른 새벽 꿈에서 깨면 다시는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







" 얼른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 화장대 위에 노트 꼭 챙기고. "



이른 아침부터 아침을 준비한 엄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여주에게 다가왔다.

엄마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주방으로 가려하자, 여주가 그를 놓치지 않고 뒤에서 안아왔다.



" 얘가 왜이래. 아침부터 징그럽게. "

" 아이, 좀만 이러고 있자 엄마. "



품이 따뜻했다. 엄마 살냄새. 뽀송하게 마른 섬유유연제 냄새. 포근한 냄새가 머릿 속까지 들어와 곤두서있는 감정들을 안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여주는 동이 터올 때까지 눈물을 쏟았다. 왜 그렇게 많이 우는 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도 곁에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우는 일은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의 품 속에 더 파고 들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출처를 모를 불안함이 순식간에 환기되는 것 같았다.



" 얼른 준비해야 안늦어. 노트도 얼른 읽고 나와. "

" 노트? "

" …잔말말고. "



엄마는 여주의 손을 떼고 잠시 시선을 맞췄다. 여주의 부은 눈가를 어루만졌다.


예쁜 내 새끼.

…가여운 내 새끼.


갑작스럽게 슬픈 눈을 한 엄마를 여주는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엄마는 그 표정을 금세 감추고, 손수 노트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곤 그대로 주방으로 나갔다.



" …엄마? "



여주는 엄마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엄마가 손에 쥐어준 노트를 보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노트였다. 이게 뭐지? 

분명히 기억에 없는 것인데, 노트의 겉표지에 적힌 '아침마다 꼭 읽을 것' 이라고 쓰인 문장은 분명히 제 글씨체였다.

의아한 기분으로 표지를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는 알츠하이머 환자다. 진단은 작년. 해리성 기억장애도 동반한 병이라 날이 갈수록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이 노트는 기억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이 노트는 아침마다 꼭 읽을 것. 또한 항상 챙기고 다닐 것.



머리가 아찔해졌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맺힌 엄마의 눈빛이 둥실 떠올랐다.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이름 김여주. 나이는 2X살. 핸드폰 번호와 집 전화번호, 학교 전화번호는 노트의 뒷페이지에 적어놓았다. 개인정보가 전부 들어가 있으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


-집 주소는 서울특별시 **구 **13길. 912번 버스를 타고 **역에서 내리면 가장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서 우측 골목으로 꺾어 들어갈 것.

거기서 검정색 대문을 가진 주택이 내 집이다. 비밀번호는 0613. #누르는 걸 잊지 말자.


-나는 현재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아빠는 일찍이 집을 나갔다. 아빠는 어릴 적 기억도 없으므로 이 사실에 괜히 우울해하지 말 것.

엄마와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직업은 **고등학교 음악교사. 학교건물로 들어가 2층 오른쪽 맨 끝 교실이 음악교실이다. 항상 그 곳에 있을 것.

반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진 않으나 현재 내 병에 대해서는 교감선생님, 정선생만이 알고 있다.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에 의존한 채 부르지 말 것. 항상 명찰표를 보고 부를 것. 아이들과 친해지지 말 것. 전부 잊어버릴 테니까.


-병세가 심해지면 정선생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하고 퇴직할 것.



이외에도 각종 개인정보와 기본적인 생활반경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제 손으로 적은 정보를 읽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것들이 전부 생경하게 느껴져서 더더욱.

꽤나 자세하게 적힌 정보들은 몇 개는 기억나고 몇 개는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들, 대부분은 전혀 모르겠는 것들의 집합체였다.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말대로 병이 있는 건 확실해보였다. 꾹꾹 눌러쓴 제 글씨체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상태를 보아 퇴직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가 '출근'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여주는 이미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충격이었지만, 새벽에 많은 양의 눈물을 쏟은 탓인지 눈물이 나진 않았다.

다만 눈가가 뭉근한 게 그대로 다시 잠에 들고 싶었다. 꿈 속이라면 이 지독한 현실을 도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주는 숨을 내쉬며 눈가를 누르다가, 다시 다음장을 넘겼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할 것들이었다. 언제 잃어버릴 지 몰라도, 기억해야하는 것들이었다.


이어지는 글들은 제 가정사와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떤 아픔이 있었으며 어떤 꿈을 꿨었는지. 묵혀두고 덮어두고 싶은 기억들이 낱낱이 쓰여져 있었다.

절반정도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좀 아팠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에는 묵직한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스스로가 가엾게 여겨질 정도였다.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다보니, 노트의 마지막장에 다다랐다.

마지막장을 열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아마 이상한 꿈에서 깬 직후일 것이다. 나는 종종 이어지는 꿈을 꾼다.

그 꿈의 기억이 잠에서 깨면 조각조각나는데, 나는 그걸 꼭 기억해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꿈 속에는 그가 있으니까.



영문 모를 말들이었다. 누군가를 명확히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 노트를 쓸 때까지만해도 꿈 속에 나타나는 누군가를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몇년전부터 수면제를 복용해왔다. 아마도 그 때문에 병이 온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괜찮다. 그는 내 세상의 전부다.

혹시나 꿈 속에서 내게 또 수면제를 먹었냐고 물어오면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금방 눈치 채겠지만. 그를 걱정시키진 말자.


-그는 꿈 속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말했다. 항상 괜찮다고 말하지만 외로울 것이다.


-잠들기 전엔 꼭 이 노트를 읽을 것. 꼭 그의 이름을 기억한 채 잠들 것. 꿈 속에서 그 이름을 꼭 불러줄 것.






꽤나 절절한 심정으로 적어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꿈 속의 남자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구기에.

여주는 맨 아랫 문장으로 미끄러지듯 시선을 내렸다.







잊지말자.






꼭 기억해야 할 이름,

잊지 말아야 할 이름.













김남준












[방탄소년단] Mellow Dream, 01 | 인스티즈






2. 입학식, 핫팩




[201X]




때맞춰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전국을 강타하던 날, 여주는 홀로 다 헤진 교복만 입은 채 운동장에 서서 고등학교 입학식을 맞이했다.

물려받은 교복이어서 예상은 했지만 꽤나 험하게 입은 듯 싶었다.

엉덩이 부분은 맨들맨들해져 있었고 치마의 허리춤은 살에 눌렸는지 조금 튿어져 있었다. 고3때 많이 먹어서 살이 좀 쪘다더니. 이건 조금 찐 게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비싸고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주는 행복했으니까.

이 세상은 빈곤한 자들에게 무자비했지만, 사회 이전의 학교는 발톱 때만큼의 자비는 있어서 여주같은 차상위 계층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었다.

여주는 장학금을 준다기에 했던 중학교 합창단에서 지도선생님의 강력한 푸시로 이 유명한 사립고교의 '음악특기자' 전형을 지원하게 되었고,

예상치도 못하게 수석장학생으로 발탁되어 모든 등록금은 물론 소량의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조건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여주가 살던 동네에서는 여주의 고등학교 입학이 한참 화젯거리였다. 동네 어른들의 말마따나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격이었다.

아, 용까진 아니고…도마뱀정도. 여주는 자기객관화에 철저했다.


여주는 학교를 둘러봤다. 가슴이 벅찼다. 지금은 비록 도마뱀이지만, 졸업할 때는 용되어 나가겠다는 결심을 마음에 새겼다.


대강당이 노후되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어쩔 수 없이 입학식 장소를 운동장으로 정했다는 교감선생님의 멋쩍은 첫인사로 입학식이 시작됐다.

날씨가 추워지자 이곳저곳에서 부모님들이 춥다며 저마다 핫팩, 따뜻한 음료수, 목도리, 담요 등을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건넸지만 여주에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뼈가 아릴만큼 시린 추위였다.

기모스타킹도 준비못해 맨다리로 서있던 여주는 당장이라도 운동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모가 없는 학교행사야 익숙해진 지 오래였지만 이런 추위가 오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악바리 근성으로 이런 저런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온 여주였기에 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딱 하나 있는 약점이 추위였다.

여주는 겨울을 싫어했다. 본래 추위를 잘 타기도 했고, 겨울을 날 수 있는 난방용품은 하나같이 비쌌다.

오래되서 우풍이 심한 집은 온 몸을 무장하고 잠들어도 내내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돌아 매일 감기를 달고 살아야했다.

매번 감기를 달고 오는 바람에 가장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음식점서빙은 절대 못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늘어지는 교장선생님의 축사에 여주는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당장 이 운동장을 뛰쳐나가고 싶지만…, 참아야했다.

여주는 아이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각종 따돌림에 괴롭힘을 당했던 지난 학창시절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저 어느 반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학생B정도로, 졸업앨범을 들춰보면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정도의 아이로 남고 싶었다.

이미 첫 날부터 그냥 교복에 맨다리로 입학식을 견뎌내고 있는 것 자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긴 했지만.


결국은 콧물이 훌쩍훌쩍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침도 계속해서 나는 바람에 주위 학생들의 곁눈질을 받았다.

뒤에선 두꺼운 숏패딩을 입은 여자애들이 제 맨다리를 보고 수근수근대는 게 들려왔다. 아이씨, 여주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렇게 추울 거였으면 집에 유일하게 있는 오래된 솜패딩이라도 꺼내입을 걸 싶었다.

거위털이 빵빵하게 들어있는 저 애들의 패딩에 비하면 숨도 다 죽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 패딩이긴 했지만 버틸만은 할 터였다.


여주가 본인의 안일함에 혀를 차던 찰나, 뒤에서 큰 손이 불쑥 어깨부근으로 들어왔다.

놀란 여주가 뒤를 돌아보자 족히 자기보다 20센치는 더 큰 남자애가 저에게 뭔갈 내밀고 있었다.




" 추워보이길래. "




핫팩이었다. 시중에서는 잘 팔지 않는 큰 핫팩이었는데, 그마저도 남자애의 큰 손에 들어오니 작아보이는게 어딘가 웃겼다.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서 처음엔 대형견처럼 느꼈는데, 좀 자세히 살펴보니 눈이 살짝 찢어지고 단단한 입매를 가진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대형견보다는 늑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목 끝까지 채워올린 단추와 넥타이, 칼같이 세워져있는 바지선같은 단정한 모습이 잘 어울리면서도 아이러니했다.


여주는 고마워, 하며 조심스럽게 핫팩을 받아들었다. 사이 스친 남자애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흠칫했다.

핫팩은 이미 열이 오를대로 올라 뜨거울 정도였는데 그걸 쥐고 있던 남자애의 손이 그렇게 차갑다는게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주는 그대로 받으려다가 도로 손을 집어 넣으려던 남자애의 손목을 다짜고짜 잡아챘다.

뭔가 있을텐데, 있을텐데, 하며 교복 안쪽을 뒤졌다. 다행히도 교복을 물려받으며 함께 받았던 ABC초콜릿이 안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여주는 그걸 주섬주섬 꺼내 남자애의 손 위에 올려놨다. 뿌듯했다. 원래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하는 법인데, 항상 되돌려주기엔 제가 가진 것조차 없었던 여주였기에 더 그랬다.

입학식에서 처음 만난 친구한테 작게나마 보답한다는 사실에 기뻐서 혼자 만족한 표정으로 남자애를 올려다봤는데, 그는 여주가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애의 얼굴에서 발견했던 건 불쾌함과 경멸이었다. 대번에 지우고 싱긋 웃어보이는 그 짧은 찰나를 여주는 알 수 있었다.

아랫것을 대하는, 불쾌해서 참을 수 없다는 그 얼굴. 아주 오래전부터 봐왔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방탄소년단] Mellow Dream, 01 | 인스티즈



" 고마워. "




남자애의 양 뺨에 보조개가 깊이 패였다.

누가봐도 해사한 얼굴을 가진 다정한 아이였다. 여주도 하마터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찰나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눈치가 없었더라면.

이 세상 온갖 종류들의 저질을 태어났을 때부터 접했기에 제 속내를 감춘 이들을 눈치 채는 건 여주에겐 일도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애들이 어린데다가 대부분 정신연령도 딱 그 즈음에 멈춰있어 이런 종류의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아주 간혹 그런 이들이 있기는 했다.

공부도 곧잘하고 친구들 사이도 원만해서 평판이 좋은 아이. 하지만 약자 앞에서는 숨길 수 없는 잔인한 본성을 보이는 아이.

여주는 그런 이들을 속으로 '엄석대과'로 분류하며 결코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덕에 따돌림은 당했지만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여주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애는 '엄석대과'라는 걸.

저 다정하고 해사한 얼굴 뒤에 어떤 본성을 숨겼을 지 모르는 무서운 늑대같은 아이라는 걸.


여주는 남자애의 미소에 웃음으로 받아치며 빠르게 등을 돌렸다.

속으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입학식 첫날부터 엮이지 말아야 할 부류를 알아두는 건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되도록 남자애와는 거리를 유지하되 찍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주 가정부인 엄마를 따라 들어간 집이 그 남자애의 집임을 알기 전까지는.






*






그래, 분명히 듣긴 했었다. 동갑내기 남자애가 있다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일이 입주가정부인데, 여주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며 엄마는 기뻐했었다.

여주도 내심 기뻤다. 마치 주인집에 딸려가는 강아지같긴 했지만 그런 체면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여주에겐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게 자존심이었으니까.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언덕에 위치한, 겨울이면 감기를 여름이면 땀띠를 달고 사는 이 집에서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걸 무시할 수 있었다. 

엄마 말마따나 으리으리한 부잣집이라면 동갑내기 남자애가 있다곤 해도 알아서 잘 피할 공간들이 여럿 있을 테였다.

그래서 엄마가 하나 걸리는 부분이라고 했던 ‘동갑내기 남자애’는 여주의 머릿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입학식에 맞춰 입주하게 된 엄마에게 떠듬떠듬 주소를 받아 도착한 곳은 입이 떡 벌어지는 단독주택이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부잣집이었는데, 실제로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대문을 들어서자 일렬로 늘어서있는 나무들과 작은 분수대가 무슨 동화 속에 들어가는 것마냥 비현실적이었다.

저 분수대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정자가 제 집보다 더 클 것 같았다. 아직 겨울이라 나무들과 화초들이 앙상했지만 곧 봄이 되면 정원을 가득 채울 테다.

이런 곳에서 입주가정부라니. 여주는 엄마가 일을 잡아도 제대로 잡았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의 뒤를 따라 들어간 집안은 정원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거실은 천장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할 정도로 드높았고, 그 정중앙을 차지한 샹들리에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전반적으로 무채색 계열의 단정한 집이었지만 군데군데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어 더 멋스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부잣집이 틀림없었다. 보통 부자도 아니고, 억소리 나는 부자일 것이다.


입주가정부가 기거하는 공간은 1층 서고 옆에 딸린 작은 방이었는데, 모든 짐을 다 들여놓고도 장정 서너명은 발 뻗고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방이었다.

게다가 햇빛도 넉넉히 들어오고, 따뜻했다. 엄마가 계약한 3년간은 무탈하게 이 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앞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두컴컴한 그 길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됐다.

꿈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게 되다니. 사람 두 명 누우면 딱 들어차는 제 집이 떠오르자 여주는 몸서리를 쳤다.


비록 입주가정부의 딸로 들어오긴 했지만, 여주는 개의치 않았다. 여기서 쥐죽은 듯이 살며 열심히 돈을 모으다가, 성인이 되면 작은 전셋집 하나를 얻을 계획이었다.

사는데 불편함이 하나 없어 보이는 이 곳은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에 제격이었다. 여주는 엄마를 고용해준 사모님께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엄마는 지금 주인네들이 없다며, 미리 주인집 얼굴을 익혀두라고 일렀다. 하긴.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빨래를 돌려야 한다며 바삐 빨래실로 향하는 엄마를 등지고, 조심스레 엄마가 일러준 가족사진이 있는 복도 끝으로 향했다.

무슨 집이 복도 끝까지 다다르는 데도 한참 걸렸다. 앞으로 사소한 부딪힘이 없으려면 주인집이 없는 시간에 집 구조를 잘 익혀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계단이 보였다. 보통 가정집에 있는 좁은 계단이 아니라, 네다섯명이 동시에 어깨동무를 하고 올라가도 널널할 정도로 넓은 계단이었다.

그 층계의 끝에, 엄마가 말한 가족사진이 보였다. 고개를 올려다 봐야 한 눈에 들어오는 가족사진은 아주 웅장하고 위엄있었다.

부모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커플 뒤에 건장한 아들 두 명이 서 있었다. 잘 먹고 잘 자랐는지 둘 다 신수가 훤했다.

찬찬히 그 얼굴들을 뜯어보고 있는데, 여주는 낯익은 얼굴에 흠칫 놀랐다.



" 핫팩…? "



문득 엄마가 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엮이지 말라던 주인집네의 '동갑내기 남자애'.

첫 인상부터 단정하고 친절한 게 사윗감으로 딱이었다던, 그래서 네가 반할까봐 아주 걱정이라던 그 애는

입학식에서 제게 핫팩을 건넸던 그 남자애였다.


다부진 체격에 넓은 어깨, 목 끝까지 채워져있는 셔츠와 넥타이. 살짝 찢어진 눈과 두툼한 입술.

바다처럼 깊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모두가 웃고 있는 가운데 홀로 동떨어진 듯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이 세상에서 혼자 모든 아픔을 겪어내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상했다. 남자애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마음이 헛헛한게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3. 미련하고, 성가신 아이




그냥, 입을 막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추위를 타지 않는 남준에게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매서운 날씨였다.

아무런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맨다리로 제 앞에서 온 몸을 떨고 있는 여자애는 마치 객기라도 부리는 듯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처음엔 멋때문에 저렇게 입고 온 건가 싶었다가, 살갗이 닿는 부분마다 맨들맨들해져있는 교복을 보고 대략적인 여자애의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리 없다곤 해도 외투 하나 걸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남준은 금세 생각을 몰아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없는 사람은 평생 없는 채로 사는 것일 뿐, 쓸데없는 시간까지 들여가며 생각할 거리는 아니었다.

보통은 발단까지도 가지 않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이유는 단순히 입학식이 너무나도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이사장인 어머니 앞에 서있는 교감과 교장은 제 얘기하는 걸 참 좋아했다.여기서 자기 얘기 귀 기울여 듣는 학생이 도대체 어딨다고. 남준은 피곤했다.

마음같아서는 입학식도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를 용납치 않을 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준을 끌고 왔을 것이다.

입학식 이후에 있을 교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저를 소개하고 자랑을 하며 자기 위치를 공고히 할 셈일테니.

아마도 자신은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키링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남준은 벌써부터 그 시간이 끔찍했다.



" ㅍㅜ에취! "



별안간 기침소리가 들렸다. 엄숙한 교장의 훈화시간의 적막을 깨는 소리였다. 앞의 여자애였다.

언제 그렇게 된 건지 입을 막은 손 끝이 새빨개져있었다. 보아하니 콧물도 훌쩍이고 쉴 새없이 기침을 하는 게 영락없이 감기에 걸린 듯 했다.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추우면 떠나면 될 걸, 감기에 걸리면서까지 버티고 있는 모양이 어리석었다.

한 번 기침을 시작하자 여자애는 계속해서 잔기침과 큰 기침을 번갈아가며 했다. 짜증이 났다. 미련한 애가 성가시기까지 했다.

그래서 따뜻한 거라도 던져주면 기침을 멈출까 싶어서 제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건넸다.

기사님이 날이 춥다며 제게 준 것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남준은 추위를 잘 타지 않았기에 필요없는 물건이었다.

필요없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건, 예컨대 적선같은 거였다. 남준에게는 아주 익숙한.


그런데 핫팩을 받아든 여자애가 갑자기 제 손목을 확 낚아채더니 제 손에 초콜릿을 쥐어주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했다. 적선을 받던 이가 제게 닿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불쾌했다. 미련하고 성가신 애가 불쾌하기까지.

아주 싫은 유형의 아이였다. 순간 표정이 굳었지만, 남준은 초콜릿을 손에 쥐고 웃어보였다. 고마워, 라는 말도 잊지 않고.


분명 눈치 챌 새도 없이 순식간에 표정을 잘 지워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애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제 시선을 피했다.

보통은 제 웃음을 보여주면 덩달아 웃거나 수줍어하거나 주제파악 못한 애들은 선을 넘어 친한 척까지 해왔다.

단 한 번도 제 감정을 들킨 적 없는 남준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애는 순식간에 자기 눈을 뚫어지게 보곤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마치 다 눈치 챈 사람처럼. 다 꿰뚫어본 사람처럼.


남준은 찝찝했다.

미련하고 성가시고 불쾌한 애가 눈치까지 빠르다면, 아주 귀찮은 존재가 될 터였으니까.

그래서 가능한 여자애와는 거리를 잘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준에게는 더이상 불필요한 일에 흘려보낼 시간이 없었다.

지금처럼 무난하게,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 반듯하고 다정한 아이로 기억되는 일.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 지 모르는 고등학교 생활에서 지키고 싶은 유일한 목표였다.










4. 네 눈동자 속은





새학기가 시작됐다.

유명사립고교여서 괜히 애들이 콧대가 높을까봐 걱정했던 여주는 며칠이 지나자 여기 애들도 다 비슷비슷하단 걸 깨달았다.

적당히 치기 어렸고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미웠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주는 그런 아이들 틈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튀지 않고 적당히 어리석은 척, 바보인 척 굴면 됐다. 괜한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 것이 생존방법이었다.

열일곱. 여주는 제 나이의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


아직 정식적으로 자리가 정해지지 않은 반에서 여주는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애를 피해 최대한 멀찍이 앉은 게 마침 창가쪽 자리였다. 제게 핫팩을 건넸던 그 남자애의 이름은 김남준이었다.

의도치 않게 같은 집까지 살게 된.


항상 일찍 집을 나서는 남준 탓에 여주는 그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등굣길에 겹쳐서 들키고 싶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를 오면 할 일이 없었다. 아니, 실은 공부를 하면 됐지만…졸렸다. 하기가 싫었다. 엄마 미안...!!!

그래서 그냥 책상에 누워서 잠을 청하거나 공용휴식공간에 있는 의자를 이어붙여 부족한 잠을 채웠다.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항상 남준보다 늦게 하교해서 두바퀴 정도 돌고 집으로 돌아갔다. 알바하는 날에는 일부러 더 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눈물겹도록 힘든 도망이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 칠흑같은 밤에 집에 들어가는 건 정말 싫었으니까. 그나마 남준의 집은 밤에도 대낮처럼 밝아서 다행이었다.


전반적으로 하루의 패턴이 일찍 시작해서 늦게 끝나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남준을 제외한 다른 주인집 가족들은 전부 사회인이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제각기였지만 대부분이 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거나였다.

며칠 살펴본 결과 엄마가 아침마다 차리는 밥은 남준이 혼자 챙겨먹고, 돌아와서 저녁도 혼자 챙겨먹는 식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점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아버지로 보이는 사장님이 들어오면 항상 사모님과 그의 맏형은 함께 식사를 했지만 그 자리에 남준은 항상 없었다.

그들의 식사시간이 끝나면 들어와서 남은 밥을 혼자 챙겨먹었다.

한 번은 늦은 저녁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물을 마시러 주방에 나갔다가 마주칠 뻔 했는데, 혼자 저녁을 챙겨 먹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거기서 캐캐묵은 외로움이 느껴져서 여주는 당혹스러웠다.

그마저도 깨작거리며 절반도 먹지 않는 게 왜 그렇게 신경쓰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섣불리 엮이면 안됐다. 남준은 제 본성을 숨기고 있는 아이니까. 절대로 피해야 하는 '엄석대'과였으니까.

아직까지는 여주의 계획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자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왕래할 일도 없었고, 저 쪽에서도 딱히 신경쓰는 기색은 없었다.


자리는 일주일 후 공식적인 반장선거와 함께 제비뽑기를 통해 정한다고 했다. 상당히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절차였다.

부자들이 있는 곳은 막 자기들 맘대로 자리를 바꾸고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반장하고, 뭐 그럴 줄 알았는데 그건 전부 제 선입견이었다.

여주는 제발 자리가 바뀌지 않았으면 싶었다. 창가쪽이 좋기도 하지만, 남준과 가까이 앉고 싶진 않았다.



[방탄소년단] Mellow Dream, 01 | 인스티즈


" 야, 나랑 매점갈래. "



그 덕에 날티나는 애가 옆에서 자꾸 들러붙긴 했지만.

제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첫날부터 자기 자리를 빼앗아 갔다며 괜한 시비를 털곤 했다.

귀찮아서 싱겁게 대꾸하니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재미있었는지 며칠 지나자 친한 척까지 하기 시작했다.

좀 성가시긴 하지만 나름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척을 져봤자 좋을 게 없어보였다. 그래서 적당히 대꾸하며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 아침부터 웬 매점. "

" 아침이니까. 나 아침도 안먹었단 말야. "

" 아침밥도 안챙겨먹어? "

" 울 엄마 아빠 엄청 바빠. 얼굴도 못보는데 아침밥은 무슨. 나한테 관심도 없을 걸. "


태형은 입을 쭉 내밀며 양 손으로 턱을 받쳤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을 것 같은 아이가 부모의 무관심을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게 제게 고백했다.

이다지도 순수하고 무구했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을까. 여주는 잠시 태형에게서 지나간 자신을 찾아보았다.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없었던 모양이다. 아주 조금 서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같았다.

태형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값비싼 시계였다. 태형은 시계를 만지작 거렸다. 제 부모를 그리는 듯이.

하지만 태형도, 여주도 알고 있었다. 저건 부모의 애정의 잣대가 될 순 없었다.



" 아 그래서 갈거야 말거야아. "

" 안가 귀찮아. "

" 칫. "



태형은 짐짓 삐진 채를 하며 핸드폰에 코를 박았다. 저러다가 또 금세 풀려서 다음교시가 끝나면 같이 가자고 조를 것이다.

그 사이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의례와도 같은 HR시간이었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끝나자 담임은 한 번 아이들을 둘러봤다.



" 오늘 지난주에 누락됐던 교재가 하나 있는데, 그게 왔다고 하네요. 그걸 가져와야 하는데 혼자서는 무거우니 둘이 가져오도록 합시다. 임시반장? "



남준이 손을 들었다. 아무런 저항없이 담임의 부름에 교탁 앞으로 나가 교재를 가져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주는 어리둥절했다. 그런게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날부터 아이들의 추천으로 임시반장이 됐던 것도 같았다.

반듯하고 단정한 게 딱 어울리긴 했다. 근데 이런 시덥지 않은 일 시키려고 임시반장을 찾다니. 담임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이었다.



" 임시반장이랑 한 명이 더 갑시다. 음…거기, 창가쪽에 김태형. "



별안간 불린 제이름에 놀란 태형이 고개를 쭉 뺐다. 순식간에 얼굴을 구기는게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담임이 손수 이름까지 불러줬는 걸.



" 남준 학생이랑 같이 다녀오세요. "

" 아…아, 선생님. 얘가 남준이랑 같이 가고 싶대요! "



잠시 동공지진이 일어나던 태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여주였다.

이 새끼가…!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 했다. 지가 가기 싫다고 저를 팔아먹다니!

담임은 잠시 당황하더니 아, 그래요? 하며 남준학생이 인기가 많네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 새끼가…! 여주는 또 한 번 욕이 나올 뻔했다.

어른들은 저렇게 프레임 씌우는 걸 좋아했다. 무슨 여학생 남학생 쌍만 있으면 엮을라 그래! 우리가 보리굴비도 아니고!

아이들이 대번에 제게 관심을 집중하는 걸 여주는 느꼈다. 



" 그럼 원하는 대로 남준학생이랑 다녀오세요. 여주학생. "




젠장….






*





교재를 받으러 1층으로 내려가는 길, 사이 적막이 숨막혔다.

복도가 유난히 길었다. 이 넓은 학교에서 양 사이드에 위치한 1학년 교실과 교재를 나눠준다는 과학실은 꽤나 멀었다.

원래 교실에서도 말 수가 없어보이긴 했는데 이상하게 주변에 애들이 끊이지 않는 남준이었다. 적당히 받아칠 줄 알고 말도 건넬 줄 아는 아이같았다.

그런데 제게는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게 서운한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신경쓰였다.

그래서 적막을 못견딘 여주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지난번에 핫팩 고마워. "



꾸역꾸역 꺼낸 말이었다. 사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감사인사를 하는게 좀 웃겼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할 말이 없는데.



" 아냐. 그 날 추워보여서. "

" 너 덕에 얼어죽을 뻔한 거 겨우 살았어. "

" 나야말로 초콜릿 고마워. 잘 먹었어. "

" 그 조그만한 걸로 뭘… "



거기서 대화가 끊겼다. 오히려 한 마디도 안하고 묵묵히 걸어가던 때가 나았지 싶을 정도로 더 어색해진 것 같았다.

망할. 과학실과 1학년 교실을 멀리 설계한 건축설계자한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까스로 과학실에 도착했다.

누락됐던 교재는 국사책이었는데, 꽤나 두꺼웠다. 이걸 열권씩 들고 4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체력이야 자신있었지만 좀 아찔해졌다.



" 생각보다 무겁다. 내가 다 들게. "



옆에 서서 교재를 챙기던 남준이 말했다. 여주는 잠시 남준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열권을 챙겨 품에 안았다.



" 나 힘 되게 좋아. 괜찮아. "



남준은 들고 갈 교재를 정리하다가 멈칫했다. 

지난번에 같이 왔던 여자애는 제가 그런 말을 하자 수줍은 얼굴로 고맙다며 남은 교재를 제품에 안겼더랬다.

그 날 이후 제게 채근대는 횟수가 잦아지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러 제자리를 찾아오기도 했다.

내치진 않았다. 말이 많은 아이라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여자애는 남준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우스웠다. 남준은 그 아이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남준은 작은 품 안에 교재를 담은 여주를 내려다 봤다. 제 체력을 자신있어하며 씩씩한 얼굴로 웃어보이는 게 어딘가 뻐근했다.

티없이 해맑아 보이는 얼굴이 제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은 불쾌함일까. 알 순 없었지만 짜증이 났다.


남준은 남은 열권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얼른 교실로 가서, 여주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이 불편한 심기를 다스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볍게 웃어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빠르게 과학실을 나섰다.



" 같이 가. "



남준의 빠른 보폭에 여주가 따라오질 못했다. 저보다 키가 한참이나 작은 여주는 제 한 걸음이 두걸음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성가셨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남준은 보폭을 줄이지 않은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복도 끝에 다다라, 계단을 올랐다.

한층을 올라가자 갑자기 심장이 요동쳤다. 근래 약을 꾸준히 먹어서 괜찮아졌다 싶던 심장이 또 고장난 것 같았다.

머리가 빙글 돌았다. 남준은 계단을 오르다 휘청였다.

순간, 뒤따라오던 여주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남준의 등을 받쳤다. 그리곤 재빠르게 교재를 놓고 남준의 얼굴을 살폈다.



" 괜찮아? 무슨 일이야? "



여주가 남준의 한쪽 어깨를 부축하며 표정을 살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순식간에 핏기가 가신 안색이었다. 단순한 빈혈끼라고 하기에는, 그 반응의 정도가 너무 컸다.

여주는 눈을 감고 고통스러운 듯 숨을 내쉬는 남준에게서 교재를 빼앗아 바닥에 놓았다.

다리의 힘조차 풀린 듯 제게 더 두른 팔에 무게가 더해지는 남준을 여주는 그대로 반대쪽 어깻죽지를 안아 자리에 앉혔다.

남준의 덩치가 워낙 커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여주가 안긴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였다.

남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숨을 내쉬기 힘든 듯 거친 숨이 계속됐다.


여주는 남준의 등을 토닥이며 편히 숨을 내쉬는 걸 도왔다. 이윽고 남준의 숨이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당황했던 여주도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오자 문득 남준의 품이 너무 가깝게 있다는 걸 느꼈다.

앉히고 진정시키느라 남준의 어깻죽지를 토닥이던 제 오른쪽 팔이 새삼 뜨거웠다.

남준에게서는 희미한 새벽의 냄새가 났다. 비같기도 하고, 빗물에 젖은 나무같기도 한.


여주는 남준의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안정을 되찾은 남준이 눈을 뜨며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쳤다.

여주의 심장이 요동쳤다. 남준과는 다른 방향으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주는 남준에게서 가족사진 속 어렴풋이 느꼈던 깊은 바닷 속 심연같은 눈을 마주했다.

지나치게 짙고, 푸르렀다. 여주는 그 눈동자에 깊숙이 빠져서 나갈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그 속에서 익사할 것만 같았다.



" 놔. "



지독하게 차갑고 낮은 목소리였다.

마치 불결하다는 듯 가까이 붙어있던 몸을 떼어내며 남준은 여주의 팔을 내쳤다.

마주한 남준의 눈에 정신이 저만치 아득해졌던 여주가 그 목소리에 정신을 되찾았다. 다시 마주한 남준의 눈은 탁해져있었다.

혐오와 경멸로 가득찬 얼굴이었다.

남준은 옆에 있던 교재 전부를 다시 들고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여주도 화가 났다. 가만히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순간 모든 머릿 속을 이상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갔던 이가, 제게 던진 눈빛이 너무 탁하고 차가워서 머리 끝까지 열이 올랐다.



" 너 뭐야? 왜 그런 눈빛으로 봐. 너 갑자기 휘청였잖아. 그거 내가 받아줬잖아. 뭐가 그렇게 짜증나는데? 왜 내가 너한테 그런 취급 당해야 되는 건데. "



여주는 분노에 씩씩대며 말을 내뱉었다. 이제 엮이고 싶지 않다거나, 건드리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대답을 들어야 했다. 저에게 저런 눈빛으로 받아친 이유를. 


남준은 고개를 돌려 여주를 내려다봤다.

잔뜩 화가 나서 치켜 뜬 눈이 컸다. 눈동자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롯이 저를 담고 있었다. 맑았다. 티끌 하나 없었다.

깊지 않았다. 낭떠러지같지 않았다. 끝도 없는 절벽같은 제 눈과 달리 여주의 눈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안온했다.

또 어딘가가 뻐근했다. 불쾌했다. 저 눈동자를 마주하는 게 화가 났다.


남준은 다른 아이들 앞에서와 달리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잔뜩 이격이 나서 저조차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남준은 여주 앞에서 가면쓰기를 포기했다. 안되는 건 일찍이 포기하는 게 낫다.


그래서 제 감정 중 가장 노골적이고 민낯이 만연한 감정을 꺼내 뱉었다.






" 니가 싫으니까. "
















*****






넵 이번 글의 주인공은 남준이입니다!


꿈 속 시리즈는 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서사가 너무너무 중요한 작품이라서,

앞으로는 현재시점은 [202X] / 과거시점은 [201X]으로 구분될 예정입니다.


아마도, 엄청나게 애달픈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너무나도 애정을 가지고 있는 소재이기에, 꾸준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1화의 분량이 좀 많은데...ㅎㅎ

앞으로는 적당한 분량으로 천천히 찾아올게요.

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 / 00화 기준


느낌표님, 라호님, 보라해님, 뀨링님, 연꽃님, 잠만보님, 블루님, 짱밍님, 지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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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선댓이요!!!
4년 전
독자3
[방람둥이] 로 신청할게요 작가님! 이 이야기 뭔가 저를 많이도 울릴 그런 이야기가 될듯 싶네요. 특히나 남준이라서 그런가봐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궁금합니다!
4년 전
고또
방람둥이님! 아마도...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열심히 울려드리겠습니다 !!ㅋㅋㅋ
4년 전
독자2
지온입니다 작가님! 남자주인공 누굴까 정말 궁금했는데 남준이군요ㅠㅠㅠㅠ 너무 찰떡 아닙니까 컨셉이,,, 긴 분량에 행복해하며 잘 읽었습니다 😭❤️ 얼른 이야기가 전개되는걸 보고싶네요💜!!
4년 전
고또
지온님 안녕하세요! 컨셉을 잡으면서 주인공을 정했는데 빼박 김남준,,,너무너무 김남준이었어요,,,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4년 전
독자4
남자주인공이 남준이라뇨ㅠㅠㅠ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요!!암호닉 [싱글벙글] 신청해봐요!!
4년 전
고또
싱글벙글님 반가워요! 다음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어주러 오실거조!!!
4년 전
독자5
헐 너무 재밌어요ㅠㅜㅜㅜ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4년 전
고또
꺄 감사합니다ㅠㅠㅠ
4년 전
독자6
와 ㅠㅠㅠㅠㅠㅠ너무좋아요 작가님 [연탄이발톱] 으로 암호닉 신청할게요💜❗
4년 전
고또
연탄이발톱님 저도 좋아요 (코쓱)
4년 전
독자7
[스메랄도]안녕하세요 작가님 어서 오세요💜이전 빌런 석진에서 신청했던 암호닉으로 다시 신청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남준이군요 선댓 후 감상 가겠습니다💋💋
꿈속의 남자 시리즈 엄청 좋아하는데 진짜 이 작품으로 와주셔서 감사해요💜

4년 전
고또
스메랄도님 반가워요!! 꿈속 시리즈 재미있게 읽어주셨군요 구럼 앞으로 쭉 함께 달릴 일만 남아따!!
4년 전
독자8
블루예요ㅠㅠㅠㅠ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
4년 전
고또
블루님! 감사합니다 ㅜㅜㅜ
4년 전
독자9
연꽃입니다 아ㅠㅠㅠㅠ미쵸따미쵸따 진짜로ㅠㅠㅠㅠㅠㅠㅠ최고예요
4년 전
고또
연꽃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4년 전
독자10
허헐 세상에 이거 대작 스멜 난다구요ㅜㅜ
4년 전
고또
킁킁,,,저도 함 맡아보고 싶네요,,ㅋㅋㅋㅋ
4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4년 전
고또
빙빙님! 함께 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빌런글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끝나면 시작될 것 같아요!
4년 전
독자12
암호닉 솝소비 신청이요!!! ㅠㅠㅠㅠ 1화부터 대작 느낌이ㅠㅠㅠㅠ 꾸준히 오겠습니다
4년 전
고또
솝소비님 반갑습니다!!! 저도 꾸준히 달려보겠습니다 함께해요!
4년 전
독자13
전 익명독자가 좋으니 쭉 이대로 갈게요 작가님 ㅎㅎㅎ 늘 잘 보고 있는데.. 새드인가요? 흡 ㅠㅠ 다음편 보러 올 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야겠어요 ㅠㅠ
진짜 너어무 너무 재밌어요!!

4년 전
고또
새드,,,가 아닐 수도 있고요!! 엔딩을 정해놓긴 했는데 확답을 드리기가 힘드네요ㅋㅋㅋ앞으로 재미있게 함께 해주세요!
4년 전
독자14
랄라 입니다
주인공이 남주니였군요 ㅠㅠ
2화 기대됩니다 ㅠㅠ♡

4년 전
고또
남주니였습니다!!! 2화도 열심히 쪄올게요 랄라님!
4년 전
독자15
뀨링입니다 !!!! 세상에 .. 남준이가 주인공이었군여 .. 완전 찰떡 너무 좋아요 게다가 과거 얘기도 나오다니 다음 화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여 헤헤
4년 전
고또
뀨링님! 남주니,,,차갑고 예민한데 다정다감한 거 완젼 찰떡이조...그쵸...ㅋㅋㅋ담화도 함께 해주세요!
4년 전
독자16
보라해입니다!
와악 상상도 못한 남주의 정체!
학창시절부터 교사가 된 지금까지 이어지다니 벌써 너무 기대됩니다ㅠㅠㅠㅠ
오늘 글도 너무 잘 봤어요ㅠㅠㅠ

4년 전
고또
보라해님! 상상도 못한 정체!ㄴㅇ0ㅇㄱ!! 시점은 과거/현재 계속 왔다갔다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함께 달려주세용!
4년 전
독자17
[아나]입니다 빌런썰잘보고있었는데 또 이렇게 좋은글로 뵙게 돼서 기뻐용 알츠하이머랑 꿈이라니... 글이 너무 취저입니당!!
4년 전
고또
아나님! 취향저격 탕탕해서 다행입니다! 열심히 함께 달려봐용
4년 전
독자18
오마이갓 자까님,,💖 진짜 꿈속의남자 애정했는데, 이렇게 긴 글로 볼 수 있다니.. 행복합뉘다..! [윤꼬꼬]로 암호닉 신청할게요!!
4년 전
고또
갹 저도 진짜진짜 애정하는 고르기글이에요ㅋㅋㅋ앞으로 함께 달려요 윤꼬꼬님!
4년 전
독자19
여주가 어쩌다 기억을 잃게됐는지 남준이와 여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네요..!! 좋은글 감사해요 다음 글 기대할게요!!
4년 전
고또
앞으로 차근차근 잘 풀어볼게요! 함께 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20
[솜사탕]으로 암호닉 신청할게요! 앞으로 내용 너무 기대가 됩니다ㅠㅠㅠㅠㅠㅠ
4년 전
고또
솜사탕님 반가워요! 완결까지 천천히 오래 봐요!
4년 전
독자21
[너만볼래♥️] 암호닉 신청하고 갑니다~~
주인공 남준이... 너무 좋아요><

4년 전
고또
너만볼래님 반갑습니당! 저도 좋아요><
4년 전
독자22
빌런석진때부터 재밌게 봤었어요ㅠㅠ 다시 한번 [가든]으로 암호닉 하겠습니다! 새벽에 아련하게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어요ㅠㅠ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4년 전
고또
가든님 다시 한 번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함께 끝까지 달려봐요!
4년 전
독자23
노트내용 끝나고 준이사진 뜨자마자 입막고 댓먼저 쓰러왔어요ㅠㅠㅠㅠ [23층] 으로 암호닉 신청하겠습니당😇🥰
4년 전
고또
꺅! 끝까지 재미있게 읽으셨을까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3층님!
4년 전
독자24
글 읽고 먹먹해지는 기분 되게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아요ㅠㅠ[슈르]로 암호닉 신청하겠습니다!!
4년 전
고또
슈르님! 아직 1환데 먹먹해지면,,,앞으로는...흑흑..!!!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4년 전
독자25
휴 느낌표입니다! 신알신이 고장나서 지금 한꺼번에 다 읽고 있네욤,,, 하 진짜 대작 냄새 폴폴입니당🤦‍♀️🤦‍♀️
4년 전
독자26
ㅈㄴㅈ잼(필터링 ㅠㅠ)... 남준이가 남주라니 🥺 너무 좋네요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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