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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황하 전체글ll조회 489l 1
[김태형] 디우와 연관성 있습니다. 아직까진 그래도 안 읽으셔도 이해는 가요.

TW: 속되고 저급한 언어 사용, 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조직물, 그냥 좀 이상하고 어두운 요소가 있습니다. 







B. 설탕 한 잔, R은 빼고 달콤하게





1.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 다섯 개로 인생을 대체하는 것보다 손쉽게 사람을 비하하는 법은 없을 거다. 


디이 디얼 디산 디쓰 디우. 하다못해 똥개 이름도 이렇겐 안 짓겠다 씨발. 


디이가 집구석을 뒤엎고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정말로 떠돌이 개를 보듯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연초를 태웠다. 뻐금뻐금 맛간 금붕어처럼 움직이는 입술 틈으로 검게 변색한 혀가 보였다. 애가 감사한 줄을 몰라.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인데. 더듬대며 목소리를 이을 때마다 보이는 혀의 밑바닥이 뱀의 뱃거죽을 닮았다. 거지같단 뜻이다. 


아직도 아빠 기달려? 시발 그 짱깨 새끼 뭐 좋다고 아직도 붙잡고 있는데?

…니 아빠 그런 식으로 욕하지 마.

뭔 욕하긴 욕하지 마? 엄마 그건 알아? 지구 좆창난 지도 이제 십년이야. 애비가 살아있는 것보다 내가 윗대가리 눈에 들어서 첩년으로 시집가 팔자 피는 게 더 확률 높을 거라고.

…그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었어. 좋은 사람이었다고... 

뭘 또 좋긴 좋아 씨발. 세계 망하고도 좆질하다 디우마저 고추 달린 새끼 아닌 거 확인하고 냅다 튄 놈인데!!!


디이는 진절머리 나는 눈빛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엄마 제발 좀!! 과거의 망령을 갉아먹는 기생충만큼 두려운 게 없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와 빼짝 말라 거죽이 달라붙은 얼굴이 도르르 디이를 향했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디이는 다시 악을 썼다. 울고, 죽을 듯이 울고, 연초를 빨고, 다시 울고. 저렇게 빼짝 꼴은 얼굴에 빼짝 꼴은 몸뚱이로 겨우겨우 담배만 태운다. 엄마 몸뚱이처럼 똑같이 말라 갈라진 땅덩이에 대고 마실 물도 없는 주제에 담배 이파리를 키운다. 

그제야 디이는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는 뒤졌고 저 몸뚱이에 악령이 깃든 모양이지. 그렇게 제 자신을 세뇌하기로 했다.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때어낸 디이가 이를 딱딱 부딪혔다. 피로 벌겋게 물든 윗니가 흔들렸다.


됐어. 엄마가 짱깨랑 결혼했다고 내가 짱깨 되는 건 아니잖아.


이제부터 나는 디이 아니야. 차라리 사대주의에 찌든 양키놈처럼 DE로 살고 말지 씨발... 


굳이 다시 급을 매기자면 딱 그리 애매모호한 인생이다. 에이도 비도 씨도 아닌 멍청한 디. 확실하게 망하지조차 못해 점수칸에조차 없는 이. 합쳐서 디-이. 그럼에도 디이는 웃었다. 시뻘건 미소에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빈 눈으로 담배를 태웠다.

디이는 문틈으로 좆창난 집안 풍경을 바라보는 막내동생 디우를 바라봤다. 열 살 배기 어린아이의 눈이 아직까지는 유순했다. 디이는 상관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엄마는 뒤진 인간 믿고 살아. 나는 나 믿고 살라니까.


멱통을 내리갈긴 터닝 포인트였다.





2.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전두엽을 규칙으로 지진다. 아직 제 이름 하나 말하지 못하는 애새끼에게 귓구멍이 물러지게 말하는 게 그거다. 

하나, 절대 새비지 스트리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둘, 죽어도 새비지 스트리트 안에서 죽는다. 

바퀴벌레는 제 쥐구멍 안에서 살아야 한다. 지들끼리 행복하게 살든 붙어먹으며 살든 동족장산하며 살든지간에 알 바 아니지만 나오면 박멸당하니까. 규칙에 코웃음을 쳤던 옆집 맥스는 사지가 곱게 갈려 소세지로 동봉된 채 돌아왔다. 맥스의 부모는 혼절했고 동네 개새끼들은 간만에 보는 단백질을 잘도 날것으로 쳐먹었다. 디이는 옆에서 부스러기를 하나 주워먹으며 생각했더랬다. 아 씨발 비린내 나. 이 새끼 뽕 빨았네. 

그래서 디이는 딱 그 규칙만 지키고 막무가내로 살았다. 부러 약에 취한 남자에게 시비를 걸다 다리가 부러지고 숨끝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수영하다 바위에 부딪혀 기절하기도 했다. 눈 세 개 달린 다람쥐도 오색찬란 버섯도 이족보행하는 개새끼도 결국 아득바득 목구멍 너머 삼켰다. 물론 뒤지려고 작정하고 먹은 것도 적지않아 있었다. 인생 망하라는 듯이 살며 디이가 깨달은 건 눈 세 개 달린 다람쥐에서 걸레 빤 맛이 난단 거다. 

그만큼 뭐든 다 별 거 없었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인생은 정말 뒤지겠다 하면 어떻게든 목숨을 다시 도마 위 올린다는 거. 그리고 그에 힘 입어 열심히 살아볼까란 생각만 해도 머리통을 착실히 썰어버린단 거.

대가리가 오함마로 깨진 이후에야 디이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무작정 도망쳤다. 그리고 무턱대고 규칙을 넘었다. 규칙도 넘고 쓰레기 산도 넘고 부글대며 끓는 검은 강도 넘었다. 그렇게 자빠지게 뛰고 뛰고 또 뛰다 보니 아직은 죽기 억울하단 생각을 했다.

선을 넘으면 죽는다. 하지만 선을 넘고 넘고 또 넘으면, 글쎄, 가끔 그런 곳을 만난다.


비켜.



왜 있잖아. 지옥도 천국도 아닌 거.

그거.

림보.





3.

빛이 바래 얼룩덜룩한 진회색 하늘 아래 빗소리가 숨을 쳤다. 후드 아래 허연 입술이 숨을 뱉을 때마다 입김이 안개처럼 얼굴을 감싸들었다. 남자는 허여멀건 밀가루 반죽 같았다. 희멀겋고 시퍼렇고 또 각도에 따라 섬칫 회백색이 돌기도 했다. 비를 털었다 덮었을 때 언뜻 드러난 허연 얼굴이 시체를 닮았다.

얼굴만큼이나 하얀 손가락 사이로 금속 키체인이 찰랑거렸다. 철컥대며 돌아가는 문 안에 대고 디이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무릎 꿇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기서 몇시간을 떠돌았는데 씨발 나 돌아가는 길도 몰라요. 사실 죽을 마음으로 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아니 내 인생이 진짜 너무 아까운 걸 어떡해요. 씨발 고기에 칼질 한 번 못 해보고 맨날 물러터진 흰곰팡이만 쳐먹다가 정신차려보니까 이마에 총알 박힐 신센데 나 어떡해요…


아저씨발 내 말 씹어요? 진짜 너무하다.



콘크리트 벽을 가뿐하게 밀어젖힌 남자가 디이를 돌아봤다. 두건에 덮혀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승사자처럼 시퍼랬다. 물론 디이는 상관 않았다. 저승사자든 염라대왕이든지간에 저를 살려주기만 하면 뭐 가릴 게 있을까.


나 죽으면 아저씨 탓이에요.


뒤지고 말고는 남자의 탓이 아니지만 눈 돌아간 디이는 가릴 것이 없었다. 단순히 생기 없는 시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백사의 것으로 바뀌었다. 힐끗댄 시선을 다시 휙 하고 내리깔았다. 아 씨발 괜히 이 말 했나? 성급하게 목구멍에서 울렁대는 말에 딸꾹질이 일었다. 남자의 창백한 얼굴에 열이 급격하게 전도했다. 악 문 잇새에서 그르렁대는 신음이 들렸다. 뱀 같이 작은 동공이 응축되어 디이를 훑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쿵 쿵 쿵.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났다. 쾅 쾅 쾅. 몸을 맞고 떨어지는 빗소리보다 더 요란했다. 쿵 쿵 쿵. 인상 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애매하게 풀렸다. 쾅 쾅 쾅. 남자가 빗물이 입꼬리에 걸리도록 웃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많이 닮았네.

… 

들어오던가. 니 부모한테 감사해.





4.

심장 소리가 묻히고 고막이 팽창했다. 달팽이관을 배배 꼬아 늘릴 것 같이 요란한 음악이 가사를 짚을 수도 없이 반쯤 끝음을 날렸다. 쓰레기장과 어울리지 않는 형형색색의 리큐어에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디이는 더듬더듬 무지개빛 기억을 추스리며 헤에 입을 벌렸다. 

모든 게 색 바랜 동화책 속 놀이공원 같았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찬란한 과거. 이륙한 문명.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분홍색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멍청한 인류가 휩쓸려 보낸 것들.

두건 아래 창백한 거죽이 지하의 조명등과 맞닿고 나서야 생기를 되찾았다. 디이는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남자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낱낱이 채운 문신이 글라스를 쥐었다. 초록빛 리큐어를 가뿐히 넘기는 얼굴이 밋밋한 표정을 냈다. 꼬부랑거리고 날카로운 온갖 단어와 그림의 행렬이 어지럽게 살 위를 수놓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디이는 입을 다물었다. 묻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말라. 멍청한 원숭이가 된다면 결국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씬 뭐예요?


하지만 디이는 멍청한 원숭이가 아니다. 순간 울음 섞인 멱통이 졸렸다. 지옥판의 폰으로 나락한 나이가 그녀의 나이 열이었다. 체스판을 아로지른 흑백 무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거죽 하나 차이로 피하고 살았다. 왜 쥐새끼처럼 숨 참고 피비린내가 스민 흙덩이를 쳐먹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그래야 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니까. 



뭔데 여긴 전기가 있고…, 아니, 뭔데 이렇게 막, 술을 쳐마시고 씨발…, 아니, 나는 씨발 먹을 거 하나 없어서 쓰레기 주워먹는데. 내 동생은 걔는 씨발 열 살인데 욕하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내가 걔한테 알려줄 수 있는 게 에이비씨발 파닉스도 아니고 어디가 인간 급소인지 독초 특징이 뭔지 막 이딴 거야. 


아저씬…, 왜 씨발 혼자만 잘 쳐먹고 살아요?


파충류의 것처럼 날렵한 동공이 디이를 향했다. 고의든 아니든 창백하고 온기 한 점 없는 눈알이었다. 흉터 흉터 그리고 흉터를 덮은 문신과 흉터와 문신과…, 꼴꼴 주홍색 위스키를 따르는 손이 과거와 현재의 흔적들로 뒤엉켜 있었다. 그가 픽 웃었다.


꼬맹아. 잔소리할 거면 밖에 나가서 총 맞고 뒤지든가.

…….

그 이기적인 새끼한테 어떻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입 닥치고 씻어. 너 더럽거든.


남자가 고개를 흔들 때마다 귀에 달린 피어싱이 오만 각도로 빛이 났다. 무심하고 성의없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조잡한 연민이 있다. 디이는 가만히 그를 올려다 봤다. 꿀렁대는 목울대가 멈추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아저씨 아냐.

……..

슈가.

…….

슈가라고 불러.


슈가 슈가 슈가. 그가 동면기에 든 백사처럼 입술을 느릿하게 비죽대자 불꽃이 탁 탁 튀었다. 갈라진 혀 대신 통통하고 발간 분홍빛 살덩이가 아랫입술을 훑었다. 디이는 그때 조금 안심했던 것도 같다. 




5.


아저씨 그거 뭐냐. 피어싱 있잖아요 많이 아팠어요? 나도 여기에 하고 싶은데… 아저씨가 한 거 중에 여기가 젤 예뻐.

트라거스는 너한테 좀 아플걸. 

헐 맞다 그리고 나 생각해 보니까 아저씨 이름 알아요. 설탕 맞죠 설탕. S-U-G-A.


나 이거 학교에서 배웠었거든요. 그러니까, 막, 그거 있잖아. 내가 초등학교 반은 다녔는데 아저씨는 얼마나 다녔을질 모르겠네. 하여튼 우리 엄마도 제정신일 때는 사교육인가 그거에 미쳐 있어가지구 나 영어 조기교육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거 아직도 기억해.


왜냐면 내가 단 거에 그때 환장했었거든요. 지금은 에이, 기억도 안 나. 근데 혀에서 막 녹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가 입 안에서 녹으면 독에 녹은 내 혀일 가능성이 더 커가지고, 안 녹는 게 낫지만은.


아야!! 거기 트거라스? 아무튼 그거 아플 거라면서요!! 왜 그렇게 막 바늘을 갖다대요!!

…엄살 피우지 마.



6.

매장의 R자 네온사인이 사라지고 알록달록한 설탕 덩어리가 테이블 한 켠에 자리잡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이는 이후 설탕의 스펠링이 S-U-G-A가 아니라 S-U-G-A-R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생각 않았다. 아 몰라 씨발 세상이 좆됐는데 뭐 아직도 영어 스펠링을 신경써. 중요한 건 팔 중간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점점 퍼져나가는 그림이나 귓바퀴에 뚫리는 구멍 같은 것들이었다. 디이는 타투를 좋아한다기보단 타투를 하는 슈가의 얼굴을 좋아했다. 허여멀건 얼굴이 허여멀건 미소를 띠고 허여멀건 말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리는 것들. 아파? 거의 다 끝났어. 겨우겨우 숨을 죽여야 들을 수 있는 달싹이는 말소리. 숨도 손가락도 한 번 얽힌 적 없으면서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 애정을 덧칠했다.

슈가의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모르면서 디이는 이상하리만치 안심했다. 물론 그딴 건 다 상관없지만서도. 그냥 그 밋밋하고 서늘한 얼굴이 제 이름을 부를 때 하나만큼은 온기가 불씨처럼 피어났으니까. 디이 디이 디이. 슈가의 혀 위에서만큼은 급격한 경사도 갑작스레 죽은 심장 박동도 없었다. 소곤거리다시피 달싹이는 목소리. 디이. 디이는 그거 하나만 믿었다. 

대가리에 총알이 뚫려도 믿기야 믿었겠지만은, 사실 총은 대가리에 맞는 것보다 배에 맞는 게 더 아프다. 그러니까 배에 총알 박혔을 땐 슈가고 아저씨고 믿고 뭐 없단 소리다.

아 씨발 존나 아파. 디이는 노래진 하늘을 바라보며 키득댔다. 약이라도 한 대 빨면 어떻게 정신이 트일 텐데 슈가는 유독 디이가 흐트러지는 걸 싫어했다. 땅이 울렁거리고 장기가 꿀렁거리고 두개골이 물렁해지는 순간. 디이는 슈가에게서 그런 것들을 봤으니까. 아빠 왜 엄마 버리고 도망갔어? 왜 내 이름은 디이야? 우린 아빠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웅얼웅얼 서툰 어린애 같은 말투가 분자화된 혀를 타고 흩어졌다. 그럼 결국 입 안에 남아 굴릴 건 슈가가 박아넣은 피어싱 하나뿐이다. 미끌미끌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다시 정신에서 깨어나면 피투성이 된 제 모습이 있다. 디이는 헐떡였다. 이럴 거면 막내 디우를 한 번만 안아주고 올 걸 그랬다. 아니면 한 번만 찾아가 보던가.


내 이름은 설탕 나부랭이가 아니고 슈가다 이 씹새끼야. 파닉스부터 다시 배울래? 고유명사라고 씨발아.


구명 뚫린 하늘에 맹세코 디이는 슈가가 그렇게 화난 걸 본 적 없었다. 도수 높은 위스키를 한입에 털어넣는 얼굴도 총구를 당기고 대가리를 잘그락대는 얼굴도 네온사인을 박살내는 얼굴도 전부 초연한 무표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감정 없이 허여멀겋던 얼굴이 제 얼굴에 묻은 피보다 시뻘겋게 타올랐다. 디이는 제 눈깔이 맛이 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슈가가 지금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미 뒤진 시체의 아가리에 대고 총기를 한참 동안이나 총기를 난사하던 슈가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양 척추를 밟아 우그러트렸다. 디이는 숨을 헐떡였다. 



아저씨 욕 잘하네요.

…디이.

아 몰라. 그 좆같은 악센트로 부르지 말라니까. 아저씨가 슈-가 하는 것처럼 디-이라고 해줘요.


그래도 아저씨 만나서 다행이었다. 난 지구가 망하고 나서 웃을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등요. 근데 아저씨 덕분에 막, 이런 거도 해보구. 피어싱인가 뭔가. 트가러스 거기 뚫을 땐 아저씨가 나 암살하려는 줄 알긴 했는데 그래도 결국엔 예뻤어요.

말하지 마. 너 피 나와.

피를 내가 몇 번을 봤는데 난리예요. 괜찮아요 아저씨. 나 안 죽어.


슈가가 숨을 일그러트렸다. 디이를 만나고 나서 조금 깎여나갔던 눈빛이 서슬퍼런 백사의 동공을 띠었다. 디이가 다시 울컥 피를 토해내는 순간 슈가는 디이의 눈을 가리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디이 | 인스티즈

B. 설탕 한 잔, R은 빼고 달콤하게





1.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 다섯 개로 인생을 대체하는 것보다 손쉽게 사람을 비하하는 법은 없을 거다. 


디이 디얼 디산 디쓰 디우. 하다못해 똥개 이름도 이렇겐 안 짓겠다 씨발. 


디이가 집구석을 뒤엎고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정말로 떠돌이 개를 보듯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연초를 태웠다. 뻐금뻐금 맛간 금붕어처럼 움직이는 입술 틈으로 검게 변색한 혀가 보였다. 애가 감사한 줄을 몰라.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인데. 더듬대며 목소리를 이을 때마다 보이는 혀의 밑바닥이 뱀의 뱃거죽을 닮았다. 거지같단 뜻이다. 


아직도 아빠 기달려? 시발 그 짱깨 새끼 뭐 좋다고 아직도 붙잡고 있는데?

…니 아빠 그런 식으로 욕하지 마.

뭔 욕하긴 욕하지 마? 엄마 그건 알아? 지구 좆창난 지도 이제 십년이야. 애비가 살아있는 것보다 내가 윗대가리 눈에 들어서 첩년으로 시집가 팔자 피는 게 더 확률 높을 거라고.

…그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었어. 좋은 사람이었다고... 

뭘 또 좋긴 좋아 씨발. 세계 망하고도 좆질하다 디우마저 고추 달린 새끼 아닌 거 확인하고 냅다 튄 놈인데!!!


디이는 진절머리 나는 눈빛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엄마 제발 좀!! 과거의 망령을 갉아먹는 기생충만큼 두려운 게 없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와 빼짝 말라 거죽이 달라붙은 얼굴이 도르르 디이를 향했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디이는 다시 악을 썼다. 울고, 죽을 듯이 울고, 연초를 빨고, 다시 울고. 저렇게 빼짝 꼴은 얼굴에 빼짝 꼴은 몸뚱이로 겨우겨우 담배만 태운다. 엄마 몸뚱이처럼 똑같이 말라 갈라진 땅덩이에 대고 마실 물도 없는 주제에 담배 이파리를 키운다. 

그제야 디이는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는 뒤졌고 저 몸뚱이에 악령이 깃든 모양이지. 그렇게 제 자신을 세뇌하기로 했다.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때어낸 디이가 이를 딱딱 부딪혔다. 피로 벌겋게 물든 윗니가 흔들렸다.


됐어. 엄마가 짱깨랑 결혼했다고 내가 짱깨 되는 건 아니잖아.


이제부터 나는 디이 아니야. 차라리 사대주의에 찌든 양키놈처럼 DE로 살고 말지 씨발... 


굳이 다시 급을 매기자면 딱 그리 애매모호한 인생이다. 에이도 비도 씨도 아닌 멍청한 디. 확실하게 망하지조차 못해 점수칸에조차 없는 이. 합쳐서 디-이. 그럼에도 디이는 웃었다. 시뻘건 미소에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빈 눈으로 담배를 태웠다.

디이는 문틈으로 좆창난 집안 풍경을 바라보는 막내동생 디우를 바라봤다. 열 살 배기 어린아이의 눈이 아직까지는 유순했다. 디이는 상관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엄마는 뒤진 인간 믿고 살아. 나는 나 믿고 살라니까.


멱통을 내리갈긴 터닝 포인트였다.





2.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전두엽을 규칙으로 지진다. 아직 제 이름 하나 말하지 못하는 애새끼에게 귓구멍이 물러지게 말하는 게 그거다. 

하나, 절대 새비지 스트리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둘, 죽어도 새비지 스트리트 안에서 죽는다. 

바퀴벌레는 제 쥐구멍 안에서 살아야 한다. 지들끼리 행복하게 살든 붙어먹으며 살든 동족장산하며 살든지간에 알 바 아니지만 나오면 박멸당하니까. 규칙에 코웃음을 쳤던 옆집 맥스는 사지가 곱게 갈려 소세지로 동봉된 채 돌아왔다. 맥스의 부모는 혼절했고 동네 개새끼들은 간만에 보는 단백질을 잘도 날것으로 쳐먹었다. 디이는 옆에서 부스러기를 하나 주워먹으며 생각했더랬다. 아 씨발 비린내 나. 이 새끼 뽕 빨았네. 

그래서 디이는 딱 그 규칙만 지키고 막무가내로 살았다. 부러 약에 취한 남자에게 시비를 걸다 다리가 부러지고 숨끝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수영하다 바위에 부딪혀 기절하기도 했다. 눈 세 개 달린 다람쥐도 오색찬란 버섯도 이족보행하는 개새끼도 결국 아득바득 목구멍 너머 삼켰다. 물론 뒤지려고 작정하고 먹은 것도 적지않아 있었다. 인생 망하라는 듯이 살며 디이가 깨달은 건 눈 세 개 달린 다람쥐에서 걸레 빤 맛이 난단 거다. 

그만큼 뭐든 다 별 거 없었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인생은 정말 뒤지겠다 하면 어떻게든 목숨을 다시 도마 위 올린다는 거. 그리고 그에 힘 입어 열심히 살아볼까란 생각만 해도 머리통을 착실히 썰어버린단 거.

대가리가 오함마로 깨진 이후에야 디이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무작정 도망쳤다. 그리고 무턱대고 규칙을 넘었다. 규칙도 넘고 쓰레기 산도 넘고 부글대며 끓는 검은 강도 넘었다. 그렇게 자빠지게 뛰고 뛰고 또 뛰다 보니 아직은 죽기 억울하단 생각을 했다.

선을 넘으면 죽는다. 하지만 선을 넘고 넘고 또 넘으면, 글쎄, 가끔 그런 곳을 만난다.


비켜.



왜 있잖아. 지옥도 천국도 아닌 거.

그거.

림보.





3.

빛이 바래 얼룩덜룩한 진회색 하늘 아래 빗소리가 숨을 쳤다. 후드 아래 허연 입술이 숨을 뱉을 때마다 입김이 안개처럼 얼굴을 감싸들었다. 남자는 허여멀건 밀가루 반죽 같았다. 희멀겋고 시퍼렇고 또 각도에 따라 섬칫 회백색이 돌기도 했다. 비를 털었다 덮었을 때 언뜻 드러난 허연 얼굴이 시체를 닮았다.

얼굴만큼이나 하얀 손가락 사이로 금속 키체인이 찰랑거렸다. 철컥대며 돌아가는 문 안에 대고 디이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무릎 꿇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기서 몇시간을 떠돌았는데 씨발 나 돌아가는 길도 몰라요. 사실 죽을 마음으로 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아니 내 인생이 진짜 너무 아까운 걸 어떡해요. 씨발 고기에 칼질 한 번 못 해보고 맨날 물러터진 흰곰팡이만 쳐먹다가 정신차려보니까 이마에 총알 박힐 신센데 나 어떡해요…


아저씨발 내 말 씹어요? 진짜 너무하다.



콘크리트 벽을 가뿐하게 밀어젖힌 남자가 디이를 돌아봤다. 두건에 덮혀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승사자처럼 시퍼랬다. 물론 디이는 상관 않았다. 저승사자든 염라대왕이든지간에 저를 살려주기만 하면 뭐 가릴 게 있을까.


나 죽으면 아저씨 탓이에요.


뒤지고 말고는 남자의 탓이 아니지만 눈 돌아간 디이는 가릴 것이 없었다. 단순히 생기 없는 시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백사의 것으로 바뀌었다. 힐끗댄 시선을 다시 휙 하고 내리깔았다. 아 씨발 괜히 이 말 했나? 성급하게 목구멍에서 울렁대는 말에 딸꾹질이 일었다. 남자의 창백한 얼굴에 열이 급격하게 전도했다. 악 문 잇새에서 그르렁대는 신음이 들렸다. 뱀 같이 작은 동공이 응축되어 디이를 훑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쿵 쿵 쿵.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났다. 쾅 쾅 쾅. 몸을 맞고 떨어지는 빗소리보다 더 요란했다. 쿵 쿵 쿵. 인상 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애매하게 풀렸다. 쾅 쾅 쾅. 남자가 빗물이 입꼬리에 걸리도록 웃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많이 닮았네.

… 

들어오던가. 니 부모한테 감사해.





4.

심장 소리가 묻히고 고막이 팽창했다. 달팽이관을 배배 꼬아 늘릴 것 같이 요란한 음악이 가사를 짚을 수도 없이 반쯤 끝음을 날렸다. 쓰레기장과 어울리지 않는 형형색색의 리큐어에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디이는 더듬더듬 무지개빛 기억을 추스리며 헤에 입을 벌렸다. 

모든 게 색 바랜 동화책 속 놀이공원 같았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찬란한 과거. 이륙한 문명.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분홍색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멍청한 인류가 휩쓸려 보낸 것들.

두건 아래 창백한 거죽이 지하의 조명등과 맞닿고 나서야 생기를 되찾았다. 디이는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남자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낱낱이 채운 문신이 글라스를 쥐었다. 초록빛 리큐어를 가뿐히 넘기는 얼굴이 밋밋한 표정을 냈다. 꼬부랑거리고 날카로운 온갖 단어와 그림의 행렬이 어지럽게 살 위를 수놓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디이는 입을 다물었다. 묻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말라. 멍청한 원숭이가 된다면 결국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씬 뭐예요?


하지만 디이는 멍청한 원숭이가 아니다. 순간 울음 섞인 멱통이 졸렸다. 지옥판의 폰으로 나락한 나이가 그녀의 나이 열이었다. 체스판을 아로지른 흑백 무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거죽 하나 차이로 피하고 살았다. 왜 쥐새끼처럼 숨 참고 피비린내가 스민 흙덩이를 쳐먹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그래야 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니까. 



뭔데 여긴 전기가 있고…, 아니, 뭔데 이렇게 막, 술을 쳐마시고 씨발…, 아니, 나는 씨발 먹을 거 하나 없어서 쓰레기 주워먹는데. 내 동생은 걔는 씨발 열 살인데 욕하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내가 걔한테 알려줄 수 있는 게 에이비씨발 파닉스도 아니고 어디가 인간 급소인지 독초 특징이 뭔지 막 이딴 거야. 


아저씬…, 왜 씨발 혼자만 잘 쳐먹고 살아요?


파충류의 것처럼 날렵한 동공이 디이를 향했다. 고의든 아니든 창백하고 온기 한 점 없는 눈알이었다. 흉터 흉터 그리고 흉터를 덮은 문신과 흉터와 문신과…, 꼴꼴 주홍색 위스키를 따르는 손이 과거와 현재의 흔적들로 뒤엉켜 있었다. 그가 픽 웃었다.


꼬맹아. 잔소리할 거면 밖에 나가서 총 맞고 뒤지든가.

…….

그 이기적인 새끼한테 어떻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입 닥치고 씻어. 너 더럽거든.


남자가 고개를 흔들 때마다 귀에 달린 피어싱이 오만 각도로 빛이 났다. 무심하고 성의없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조잡한 연민이 있다. 디이는 가만히 그를 올려다 봤다. 꿀렁대는 목울대가 멈추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아저씨 아냐.

……..

슈가.

…….

슈가라고 불러.


슈가 슈가 슈가. 그가 동면기에 든 백사처럼 입술을 느릿하게 비죽대자 불꽃이 탁 탁 튀었다. 갈라진 혀 대신 통통하고 발간 분홍빛 살덩이가 아랫입술을 훑었다. 디이는 그때 조금 안심했던 것도 같다. 




5.


아저씨 그거 뭐냐. 피어싱 있잖아요 많이 아팠어요? 나도 여기에 하고 싶은데… 아저씨가 한 거 중에 여기가 젤 예뻐.

트라거스는 너한테 좀 아플걸. 

헐 맞다 그리고 나 생각해 보니까 아저씨 이름 알아요. 설탕 맞죠 설탕. S-U-G-A.


나 이거 학교에서 배웠었거든요. 그러니까, 막, 그거 있잖아. 내가 초등학교 반은 다녔는데 아저씨는 얼마나 다녔을질 모르겠네. 하여튼 우리 엄마도 제정신일 때는 사교육인가 그거에 미쳐 있어가지구 나 영어 조기교육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거 아직도 기억해.


왜냐면 내가 단 거에 그때 환장했었거든요. 지금은 에이, 기억도 안 나. 근데 혀에서 막 녹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가 입 안에서 녹으면 독에 녹은 내 혀일 가능성이 더 커가지고, 안 녹는 게 낫지만은.


아야!! 거기 트거라스? 아무튼 그거 아플 거라면서요!! 왜 그렇게 막 바늘을 갖다대요!!

…엄살 피우지 마.



6.

매장의 R자 네온사인이 사라지고 알록달록한 설탕 덩어리가 테이블 한 켠에 자리잡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이는 이후 설탕의 스펠링이 S-U-G-A가 아니라 S-U-G-A-R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생각 않았다. 아 몰라 씨발 세상이 좆됐는데 뭐 아직도 영어 스펠링을 신경써. 중요한 건 팔 중간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점점 퍼져나가는 그림이나 귓바퀴에 뚫리는 구멍 같은 것들이었다. 디이는 타투를 좋아한다기보단 타투를 하는 슈가의 얼굴을 좋아했다. 허여멀건 얼굴이 허여멀건 미소를 띠고 허여멀건 말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리는 것들. 아파? 거의 다 끝났어. 겨우겨우 숨을 죽여야 들을 수 있는 달싹이는 말소리. 숨도 손가락도 한 번 얽힌 적 없으면서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 애정을 덧칠했다.

슈가의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모르면서 디이는 이상하리만치 안심했다. 물론 그딴 건 다 상관없지만서도. 그냥 그 밋밋하고 서늘한 얼굴이 제 이름을 부를 때 하나만큼은 온기가 불씨처럼 피어났으니까. 디이 디이 디이. 슈가의 혀 위에서만큼은 급격한 경사도 갑작스레 죽은 심장 박동도 없었다. 소곤거리다시피 달싹이는 목소리. 디이. 디이는 그거 하나만 믿었다. 

대가리에 총알이 뚫려도 믿기야 믿었겠지만은, 사실 총은 대가리에 맞는 것보다 배에 맞는 게 더 아프다. 그러니까 배에 총알 박혔을 땐 슈가고 아저씨고 믿고 뭐 없단 소리다.

아 씨발 존나 아파. 디이는 노래진 하늘을 바라보며 키득댔다. 약이라도 한 대 빨면 어떻게 정신이 트일 텐데 슈가는 유독 디이가 흐트러지는 걸 싫어했다. 땅이 울렁거리고 장기가 꿀렁거리고 두개골이 물렁해지는 순간. 디이는 슈가에게서 그런 것들을 봤으니까. 아빠 왜 엄마 버리고 도망갔어? 왜 내 이름은 디이야? 우린 아빠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웅얼웅얼 서툰 어린애 같은 말투가 분자화된 혀를 타고 흩어졌다. 그럼 결국 입 안에 남아 굴릴 건 슈가가 박아넣은 피어싱 하나뿐이다. 미끌미끌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다시 정신에서 깨어나면 피투성이 된 제 모습이 있다. 디이는 헐떡였다. 이럴 거면 막내 디우를 한 번만 안아주고 올 걸 그랬다. 아니면 한 번만 찾아가 보던가.


내 이름은 설탕 나부랭이가 아니고 슈가다 이 씹새끼야. 파닉스부터 다시 배울래? 고유명사라고 씨발아.


구명 뚫린 하늘에 맹세코 디이는 슈가가 그렇게 화난 걸 본 적 없었다. 도수 높은 위스키를 한입에 털어넣는 얼굴도 총구를 당기고 대가리를 잘그락대는 얼굴도 네온사인을 박살내는 얼굴도 전부 초연한 무표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감정 없이 허여멀겋던 얼굴이 제 얼굴에 묻은 피보다 시뻘겋게 타올랐다. 디이는 제 눈깔이 맛이 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슈가가 지금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미 뒤진 시체의 아가리에 대고 총기를 한참 동안이나 총기를 난사하던 슈가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양 척추를 밟아 우그러트렸다. 디이는 숨을 헐떡였다. 



아저씨 욕 잘하네요.

…디이.

아 몰라. 그 좆같은 악센트로 부르지 말라니까. 아저씨가 슈-가 하는 것처럼 디-이라고 해줘요.


그래도 아저씨 만나서 다행이었다. 난 지구가 망하고 나서 웃을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등요. 근데 아저씨 덕분에 막, 이런 거도 해보구. 피어싱인가 뭔가. 트가러스 거기 뚫을 땐 아저씨가 나 암살하려는 줄 알긴 했는데 그래도 결국엔 예뻤어요.

말하지 마. 너 피 나와.

피를 내가 몇 번을 봤는데 난리예요. 괜찮아요 아저씨. 나 안 죽어.


슈가가 숨을 일그러트렸다. 디이를 만나고 나서 조금 깎여나갔던 눈빛이 서슬퍼런 백사의 동공을 띠었다. 디이가 다시 울컥 피를 토해내는 순간 슈가는 디이의 눈을 가리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디이 | 인스티즈

B. 설탕 한 잔, R은 빼고 달콤하게





1.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 다섯 개로 인생을 대체하는 것보다 손쉽게 사람을 비하하는 법은 없을 거다. 


디이 디얼 디산 디쓰 디우. 하다못해 똥개 이름도 이렇겐 안 짓겠다 씨발. 


디이가 집구석을 뒤엎고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정말로 떠돌이 개를 보듯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연초를 태웠다. 뻐금뻐금 맛간 금붕어처럼 움직이는 입술 틈으로 검게 변색한 혀가 보였다. 애가 감사한 줄을 몰라.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인데. 더듬대며 목소리를 이을 때마다 보이는 혀의 밑바닥이 뱀의 뱃거죽을 닮았다. 거지같단 뜻이다. 


아직도 아빠 기달려? 시발 그 짱깨 새끼 뭐 좋다고 아직도 붙잡고 있는데?

…니 아빠 그런 식으로 욕하지 마.

뭔 욕하긴 욕하지 마? 엄마 그건 알아? 지구 좆창난 지도 이제 십년이야. 애비가 살아있는 것보다 내가 윗대가리 눈에 들어서 첩년으로 시집가 팔자 피는 게 더 확률 높을 거라고.

…그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었어. 좋은 사람이었다고... 

뭘 또 좋긴 좋아 씨발. 세계 망하고도 좆질하다 디우마저 고추 달린 새끼 아닌 거 확인하고 냅다 튄 놈인데!!!


디이는 진절머리 나는 눈빛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엄마 제발 좀!! 과거의 망령을 갉아먹는 기생충만큼 두려운 게 없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와 빼짝 말라 거죽이 달라붙은 얼굴이 도르르 디이를 향했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디이는 다시 악을 썼다. 울고, 죽을 듯이 울고, 연초를 빨고, 다시 울고. 저렇게 빼짝 꼴은 얼굴에 빼짝 꼴은 몸뚱이로 겨우겨우 담배만 태운다. 엄마 몸뚱이처럼 똑같이 말라 갈라진 땅덩이에 대고 마실 물도 없는 주제에 담배 이파리를 키운다. 

그제야 디이는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는 뒤졌고 저 몸뚱이에 악령이 깃든 모양이지. 그렇게 제 자신을 세뇌하기로 했다.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때어낸 디이가 이를 딱딱 부딪혔다. 피로 벌겋게 물든 윗니가 흔들렸다.


됐어. 엄마가 짱깨랑 결혼했다고 내가 짱깨 되는 건 아니잖아.


이제부터 나는 디이 아니야. 차라리 사대주의에 찌든 양키놈처럼 DE로 살고 말지 씨발... 


굳이 다시 급을 매기자면 딱 그리 애매모호한 인생이다. 에이도 비도 씨도 아닌 멍청한 디. 확실하게 망하지조차 못해 점수칸에조차 없는 이. 합쳐서 디-이. 그럼에도 디이는 웃었다. 시뻘건 미소에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빈 눈으로 담배를 태웠다.

디이는 문틈으로 좆창난 집안 풍경을 바라보는 막내동생 디우를 바라봤다. 열 살 배기 어린아이의 눈이 아직까지는 유순했다. 디이는 상관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엄마는 뒤진 인간 믿고 살아. 나는 나 믿고 살라니까.


멱통을 내리갈긴 터닝 포인트였다.





2.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전두엽을 규칙으로 지진다. 아직 제 이름 하나 말하지 못하는 애새끼에게 귓구멍이 물러지게 말하는 게 그거다. 

하나, 절대 새비지 스트리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둘, 죽어도 새비지 스트리트 안에서 죽는다. 

바퀴벌레는 제 쥐구멍 안에서 살아야 한다. 지들끼리 행복하게 살든 붙어먹으며 살든 동족장산하며 살든지간에 알 바 아니지만 나오면 박멸당하니까. 규칙에 코웃음을 쳤던 옆집 맥스는 사지가 곱게 갈려 소세지로 동봉된 채 돌아왔다. 맥스의 부모는 혼절했고 동네 개새끼들은 간만에 보는 단백질을 잘도 날것으로 쳐먹었다. 디이는 옆에서 부스러기를 하나 주워먹으며 생각했더랬다. 아 씨발 비린내 나. 이 새끼 뽕 빨았네. 

그래서 디이는 딱 그 규칙만 지키고 막무가내로 살았다. 부러 약에 취한 남자에게 시비를 걸다 다리가 부러지고 숨끝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수영하다 바위에 부딪혀 기절하기도 했다. 눈 세 개 달린 다람쥐도 오색찬란 버섯도 이족보행하는 개새끼도 결국 아득바득 목구멍 너머 삼켰다. 물론 뒤지려고 작정하고 먹은 것도 적지않아 있었다. 인생 망하라는 듯이 살며 디이가 깨달은 건 눈 세 개 달린 다람쥐에서 걸레 빤 맛이 난단 거다. 

그만큼 뭐든 다 별 거 없었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인생은 정말 뒤지겠다 하면 어떻게든 목숨을 다시 도마 위 올린다는 거. 그리고 그에 힘 입어 열심히 살아볼까란 생각만 해도 머리통을 착실히 썰어버린단 거.

대가리가 오함마로 깨진 이후에야 디이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무작정 도망쳤다. 그리고 무턱대고 규칙을 넘었다. 규칙도 넘고 쓰레기 산도 넘고 부글대며 끓는 검은 강도 넘었다. 그렇게 자빠지게 뛰고 뛰고 또 뛰다 보니 아직은 죽기 억울하단 생각을 했다.

선을 넘으면 죽는다. 하지만 선을 넘고 넘고 또 넘으면, 글쎄, 가끔 그런 곳을 만난다.


비켜.



왜 있잖아. 지옥도 천국도 아닌 거.

그거.

림보.





3.

빛이 바래 얼룩덜룩한 진회색 하늘 아래 빗소리가 숨을 쳤다. 후드 아래 허연 입술이 숨을 뱉을 때마다 입김이 안개처럼 얼굴을 감싸들었다. 남자는 허여멀건 밀가루 반죽 같았다. 희멀겋고 시퍼렇고 또 각도에 따라 섬칫 회백색이 돌기도 했다. 비를 털었다 덮었을 때 언뜻 드러난 허연 얼굴이 시체를 닮았다.

얼굴만큼이나 하얀 손가락 사이로 금속 키체인이 찰랑거렸다. 철컥대며 돌아가는 문 안에 대고 디이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무릎 꿇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기서 몇시간을 떠돌았는데 씨발 나 돌아가는 길도 몰라요. 사실 죽을 마음으로 왔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아니 내 인생이 진짜 너무 아까운 걸 어떡해요. 씨발 고기에 칼질 한 번 못 해보고 맨날 물러터진 흰곰팡이만 쳐먹다가 정신차려보니까 이마에 총알 박힐 신센데 나 어떡해요…


아저씨발 내 말 씹어요? 진짜 너무하다.



콘크리트 벽을 가뿐하게 밀어젖힌 남자가 디이를 돌아봤다. 두건에 덮혀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승사자처럼 시퍼랬다. 물론 디이는 상관 않았다. 저승사자든 염라대왕이든지간에 저를 살려주기만 하면 뭐 가릴 게 있을까.


나 죽으면 아저씨 탓이에요.


뒤지고 말고는 남자의 탓이 아니지만 눈 돌아간 디이는 가릴 것이 없었다. 단순히 생기 없는 시체라고만 생각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백사의 것으로 바뀌었다. 힐끗댄 시선을 다시 휙 하고 내리깔았다. 아 씨발 괜히 이 말 했나? 성급하게 목구멍에서 울렁대는 말에 딸꾹질이 일었다. 남자의 창백한 얼굴에 열이 급격하게 전도했다. 악 문 잇새에서 그르렁대는 신음이 들렸다. 뱀 같이 작은 동공이 응축되어 디이를 훑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쿵 쿵 쿵.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났다. 쾅 쾅 쾅. 몸을 맞고 떨어지는 빗소리보다 더 요란했다. 쿵 쿵 쿵. 인상 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애매하게 풀렸다. 쾅 쾅 쾅. 남자가 빗물이 입꼬리에 걸리도록 웃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많이 닮았네.

… 

들어오던가. 니 부모한테 감사해.





4.

심장 소리가 묻히고 고막이 팽창했다. 달팽이관을 배배 꼬아 늘릴 것 같이 요란한 음악이 가사를 짚을 수도 없이 반쯤 끝음을 날렸다. 쓰레기장과 어울리지 않는 형형색색의 리큐어에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디이는 더듬더듬 무지개빛 기억을 추스리며 헤에 입을 벌렸다. 

모든 게 색 바랜 동화책 속 놀이공원 같았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찬란한 과거. 이륙한 문명.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분홍색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멍청한 인류가 휩쓸려 보낸 것들.

두건 아래 창백한 거죽이 지하의 조명등과 맞닿고 나서야 생기를 되찾았다. 디이는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남자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낱낱이 채운 문신이 글라스를 쥐었다. 초록빛 리큐어를 가뿐히 넘기는 얼굴이 밋밋한 표정을 냈다. 꼬부랑거리고 날카로운 온갖 단어와 그림의 행렬이 어지럽게 살 위를 수놓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디이는 입을 다물었다. 묻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말라. 멍청한 원숭이가 된다면 결국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씬 뭐예요?


하지만 디이는 멍청한 원숭이가 아니다. 순간 울음 섞인 멱통이 졸렸다. 지옥판의 폰으로 나락한 나이가 그녀의 나이 열이었다. 체스판을 아로지른 흑백 무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거죽 하나 차이로 피하고 살았다. 왜 쥐새끼처럼 숨 참고 피비린내가 스민 흙덩이를 쳐먹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그래야 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니까. 



뭔데 여긴 전기가 있고…, 아니, 뭔데 이렇게 막, 술을 쳐마시고 씨발…, 아니, 나는 씨발 먹을 거 하나 없어서 쓰레기 주워먹는데. 내 동생은 걔는 씨발 열 살인데 욕하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내가 걔한테 알려줄 수 있는 게 에이비씨발 파닉스도 아니고 어디가 인간 급소인지 독초 특징이 뭔지 막 이딴 거야. 


아저씬…, 왜 씨발 혼자만 잘 쳐먹고 살아요?


파충류의 것처럼 날렵한 동공이 디이를 향했다. 고의든 아니든 창백하고 온기 한 점 없는 눈알이었다. 흉터 흉터 그리고 흉터를 덮은 문신과 흉터와 문신과…, 꼴꼴 주홍색 위스키를 따르는 손이 과거와 현재의 흔적들로 뒤엉켜 있었다. 그가 픽 웃었다.


꼬맹아. 잔소리할 거면 밖에 나가서 총 맞고 뒤지든가.

…….

그 이기적인 새끼한테 어떻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입 닥치고 씻어. 너 더럽거든.


남자가 고개를 흔들 때마다 귀에 달린 피어싱이 오만 각도로 빛이 났다. 무심하고 성의없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조잡한 연민이 있다. 디이는 가만히 그를 올려다 봤다. 꿀렁대는 목울대가 멈추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아저씨 아냐.

……..

슈가.

…….

슈가라고 불러.


슈가 슈가 슈가. 그가 동면기에 든 백사처럼 입술을 느릿하게 비죽대자 불꽃이 탁 탁 튀었다. 갈라진 혀 대신 통통하고 발간 분홍빛 살덩이가 아랫입술을 훑었다. 디이는 그때 조금 안심했던 것도 같다. 




5.


아저씨 그거 뭐냐. 피어싱 있잖아요 많이 아팠어요? 나도 여기에 하고 싶은데… 아저씨가 한 거 중에 여기가 젤 예뻐.

트라거스는 너한테 좀 아플걸. 

헐 맞다 그리고 나 생각해 보니까 아저씨 이름 알아요. 설탕 맞죠 설탕. S-U-G-A.


나 이거 학교에서 배웠었거든요. 그러니까, 막, 그거 있잖아. 내가 초등학교 반은 다녔는데 아저씨는 얼마나 다녔을질 모르겠네. 하여튼 우리 엄마도 제정신일 때는 사교육인가 그거에 미쳐 있어가지구 나 영어 조기교육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거 아직도 기억해.


왜냐면 내가 단 거에 그때 환장했었거든요. 지금은 에이, 기억도 안 나. 근데 혀에서 막 녹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가 입 안에서 녹으면 독에 녹은 내 혀일 가능성이 더 커가지고, 안 녹는 게 낫지만은.


아야!! 거기 트거라스? 아무튼 그거 아플 거라면서요!! 왜 그렇게 막 바늘을 갖다대요!!

…엄살 피우지 마.



6.

매장의 R자 네온사인이 사라지고 알록달록한 설탕 덩어리가 테이블 한 켠에 자리잡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이는 이후 설탕의 스펠링이 S-U-G-A가 아니라 S-U-G-A-R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생각 않았다. 아 몰라 씨발 세상이 좆됐는데 뭐 아직도 영어 스펠링을 신경써. 중요한 건 팔 중간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점점 퍼져나가는 그림이나 귓바퀴에 뚫리는 구멍 같은 것들이었다. 디이는 타투를 좋아한다기보단 타투를 하는 슈가의 얼굴을 좋아했다. 허여멀건 얼굴이 허여멀건 미소를 띠고 허여멀건 말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리는 것들. 아파? 거의 다 끝났어. 겨우겨우 숨을 죽여야 들을 수 있는 달싹이는 말소리. 숨도 손가락도 한 번 얽힌 적 없으면서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 애정을 덧칠했다.

슈가의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모르면서 디이는 이상하리만치 안심했다. 물론 그딴 건 다 상관없지만서도. 그냥 그 밋밋하고 서늘한 얼굴이 제 이름을 부를 때 하나만큼은 온기가 불씨처럼 피어났으니까. 디이 디이 디이. 슈가의 혀 위에서만큼은 급격한 경사도 갑작스레 죽은 심장 박동도 없었다. 소곤거리다시피 달싹이는 목소리. 디이. 디이는 그거 하나만 믿었다. 

대가리에 총알이 뚫려도 믿기야 믿었겠지만은, 사실 총은 대가리에 맞는 것보다 배에 맞는 게 더 아프다. 그러니까 배에 총알 박혔을 땐 슈가고 아저씨고 믿고 뭐 없단 소리다.

아 씨발 존나 아파. 디이는 노래진 하늘을 바라보며 키득댔다. 약이라도 한 대 빨면 어떻게 정신이 트일 텐데 슈가는 유독 디이가 흐트러지는 걸 싫어했다. 땅이 울렁거리고 장기가 꿀렁거리고 두개골이 물렁해지는 순간. 디이는 슈가에게서 그런 것들을 봤으니까. 아빠 왜 엄마 버리고 도망갔어? 왜 내 이름은 디이야? 우린 아빠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웅얼웅얼 서툰 어린애 같은 말투가 분자화된 혀를 타고 흩어졌다. 그럼 결국 입 안에 남아 굴릴 건 슈가가 박아넣은 피어싱 하나뿐이다. 미끌미끌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다시 정신에서 깨어나면 피투성이 된 제 모습이 있다. 디이는 헐떡였다. 이럴 거면 막내 디우를 한 번만 안아주고 올 걸 그랬다. 아니면 한 번만 찾아가 보던가.


내 이름은 설탕 나부랭이가 아니고 슈가다 이 씹새끼야. 파닉스부터 다시 배울래? 고유명사라고 씨발아.


구명 뚫린 하늘에 맹세코 디이는 슈가가 그렇게 화난 걸 본 적 없었다. 도수 높은 위스키를 한입에 털어넣는 얼굴도 총구를 당기고 대가리를 잘그락대는 얼굴도 네온사인을 박살내는 얼굴도 전부 초연한 무표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감정 없이 허여멀겋던 얼굴이 제 얼굴에 묻은 피보다 시뻘겋게 타올랐다. 디이는 제 눈깔이 맛이 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슈가가 지금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미 뒤진 시체의 아가리에 대고 총기를 한참 동안이나 총기를 난사하던 슈가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양 척추를 밟아 우그러트렸다. 디이는 숨을 헐떡였다. 



아저씨 욕 잘하네요.

…디이.

아 몰라. 그 좆같은 악센트로 부르지 말라니까. 아저씨가 슈-가 하는 것처럼 디-이라고 해줘요.


그래도 아저씨 만나서 다행이었다. 난 지구가 망하고 나서 웃을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등요. 근데 아저씨 덕분에 막, 이런 거도 해보구. 피어싱인가 뭔가. 트가러스 거기 뚫을 땐 아저씨가 나 암살하려는 줄 알긴 했는데 그래도 결국엔 예뻤어요.

말하지 마. 너 피 나와.

피를 내가 몇 번을 봤는데 난리예요. 괜찮아요 아저씨. 나 안 죽어.


슈가가 숨을 일그러트렸다. 디이를 만나고 나서 조금 깎여나갔던 눈빛이 서슬퍼런 백사의 동공을 띠었다. 디이가 다시 울컥 피를 토해내는 순간 슈가는 디이의 눈을 가리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방탄소년단/민윤기] 디이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맞아. 너 안 죽어.



널부러진 팔다리와 사체와 끊긴 장기 토막이 구두코를 더럽혔다. 디이가 사랑하던 빛 바랜 놀이공원이 죽음의 땅이 되었다. 슈가는 그 질퍽대는 핏자국을 밟고 과거의 핏자국을 거슬러 올랐다. 발걸음이 림보를 지나 천국을 떠나 지옥을 향했다. 오직 디이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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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2.238
크흐으~~~ 진짜재밌어요ㅠㅠ 이런 흑화된 모습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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