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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제이꽃집에.

15


W. 포장





달은 이미 제 존재를 숨기기 시작하고 해는 아직 고개를 내밀지 않은 어둑한 새벽. 제형 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인 네 시는 아직 이십 분이나 남았지만, 가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칭칭 감은 목도리를 더욱 끌어 올리게 되고 꽁꽁 싸맨 패딩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도 몸을 더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 때문에. 밤새 차게 얼어버린 땅이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발소리를 크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종종거리게 됐고.



여느 겨울이 그렇듯 차창을 모두 새하얗게 물들이기 때문에 미리 가서 녹여둘 생각이었다. 제형 씨도 출발하기 전에 똑같은 절차를 밟아 분명 훈훈한 공기 속에 오고 있을 테니까. 차를 옮겨 타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고픈 생각이 가득했다.



여유롭게 걸어도 집에서 가게까지는 십오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 시간을 더 단축했다. 어두컴컴한 가게에 도착해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익숙하게 카운터를 돌아 들어갔다. 서랍에서 차 키를 꺼내고 어제 열심히 만들어둔 목록이 적힌 종이를 두 번 접어 패딩 주머니에 쓱 집어넣었다.



가게 뒷문으로 나가 상가건물 직원들만 사용 가능한 주차장에 세워둔 1톤 탑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켰다. 성에가 녹는 것을 보며 차가운 손에 입김을 호호 불고 있으니 동동거리던 발도 점차 멎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좋은 타이밍에 제형 씨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게 보여 전화를 걸었다.





[네, 하루 씨.]


“제형 씨, 저 보이죠?”


[보여요.]


“지금 제 자리에 주차하면 돼요. 다 지정석이거든요.”


[알겠어요.]


“그럼 차 뺄게요.”





들려오는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고 차를 빼내어 공간을 만들어 주니 매끄럽게 그곳에 주차를 하는 제형 씨다. 차에서 내리는 제형 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니 씩 웃으면서 보조석에 올라탄다.





“하루 씨, 안녕.”


“제형 씨도 안녕. 잠은 잘 잤어요?”


“네. 하루 씨는요?”


“저도요. 춥지는 않아요? 온도 더 높여줄까요?”


[데이식스/박제형] 어서 오세요, 제이꽃집에. 15 | 인스티즈

“딱 좋아요.”


“다행이다. 출발할까요?”


“네-”





안전띠를 매는 제형 씨를 보고 차를 출발시켰다. 평소였다면 핸드폰을 연결해 노래를 틀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과정을 생략했다.



차가 없는 도로에 들어서고 나서야 제형 씨가 말을 걸어왔다.





[데이식스/박제형] 어서 오세요, 제이꽃집에. 15 | 인스티즈

“저 꽃시장 처음 가 봐요.”


“오늘 재밌는 구경 하겠네요. 꽃 반, 사람 반이에요.”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은가 봐요.”


“생화는 새벽이랑 오전에만 판매하니까요, 보통은.”


“아… 그래요?”


“네. 그래도 지금 시간에는 대부분 소매상인들이라서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구나. 재밌겠네요.”


“처음에는 흥미롭기는 해요. 매번 사람에 치이다 보면 정말 살 것만 사고 나오게 되기는 하지만요.”





진절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를 끌어올리는 나를 보고 제형 씨가 크게 웃었다. 마침 신호에 걸려 눈을 크게 뜨고 제형 씨를 쳐다보며 ‘정말요!’ 하고 진지하게 말하니 ‘이해해요-’ 라고 답하며 눈웃음 지었다. 그런 반응에 고개를 돌려 웃으며 신호를 받아 다시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그래도 항상 기분 좋기는 해요.”


“왜요?”


“좋아하는 향기 가득한 곳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 싸여있으니까. 시즌마다 다른 꽃 나와 있는 거 보면 매번 새롭기도 하고요. 일하는 거긴 하지만, 산책한다는 생각으로 다녀요.”


“좋겠다, 하루 씨는.”


“다들 그래요, 저 복 받았다고. 좋아하는 일 즐기면서 하니까. 그 말 듣고서 실제로 따지고 봐도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더라고요.”





잠시 대답이 없길래 웃는 얼굴로 힐끔 쳐다보니 제형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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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네요, 하루 씨. 그래서 더 좋아졌어요.”


“제형 씨도 만만치 않거든요. 저번에 한강으로 산책하러 갔을 때 보니 더 멋있던데요?”





얼마 전까지도 당황에 물들어 말을 더듬었을 텐데, 단 이틀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해졌다. 아니, 뻔뻔해졌다기보다는 나도 인정을 하고 받아들인 거겠지. 꽤 오래 강을 따라 걸으면서 주고받은 이야기도 많았고 진지하고 새로운 모습도 보았고 제형 씨의 진심도 확 와닿았고. 그제야 내내 일렁이던 마음이, 알 수 없던 불편함과 간지러움이 설렘이라는 걸 깨달았다.



역시나 내 변화를 눈치챈 제형 씨가 또 말이 없어졌다. 긴가민가했었지만 설렘이었다고 인정하고 나니 왜인지 지금 순간에 제형 씨의 얼굴을 볼 용기는 또 없어졌다. 그래서 아닌 척 차 앞 유리에 비친 제형 씨를 짧게 짧게 훔쳐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약간은 놀란 듯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음기는 전혀 없는 얼굴이라 제형 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르기에 앞만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얼마간 그러고 있었을까, 조용히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오길래 또다시 보조석 쪽 앞 유리로 눈길이 갔다.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던 제형 씨의 옆 모습이 눈에 들어와 긴장이 풀리듯 작게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소리 없이 이유 모를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나도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마치 이틀 전 늦은 밤으로 되돌아간 듯, 제형 씨도 나도 말없이 따뜻한 히터 바람을 끼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렇게 꼬박 삼십 분을 달려 목적지이던 꽃시장에 도착했다. 나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제형 씨는 주머니에서 마스크 하나를 꺼내어 썼다.





“들어갈까요?”





주차장 가득한 탑차와 트럭들 사이를 익숙하게 빠져나와 커다란 카트 하나를 골라잡아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 발 뒤에서 내 뒤를 따라 걷던 제형 씨는 시장 안에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으로 와서는 자연스럽게 나 대신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제가 해도 되는데…”


“오늘은 일꾼도 같이 왔는데 좀 편하게 다녀요. 매번 혼자서 하는 일이잖아요.”


“미안해서 그러죠. 그거 이리 주고 그냥 구경만 하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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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싶어서 따라 온 건데요, 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마음 쓰지 마요.”


“정말…”


“진짜 괜찮다니까요.”


“고마워요.”


“뭘요-”





잠깐의 실랑이를 한 후 종이를 꺼내 사야 할 꽃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제형 씨에게 말했다.





“일단은 주로 거래하던 도매상부터 들를 거예요.”


“그래요?”


“네. 가면서 다른 집 꽃 상태 봐두고 가서 비교해 봐야죠. 뭐가 더 싱싱한지.”


“눈에 보인다고 바로 사는 거 아니었네요.”


“그렇죠. 근데 대부분은 거기서 구매해요. 상태도 좋고 가격도 괜찮거든요.”


“오늘은 뭐 사야 해요?”


“장미류 몇 종류도 사야 하고, 퐁퐁소국, 아네모네. 그리고 수국도 좀 사야 하고요. 목화랑 안개꽃, 라넌큘러스도 사야 하네요.”


“뭐가 되게 많네요.”


“더 있는데요? 스톡도 사야 하고 다육식물들도 좀 사고. 튤립이랑 이런저런 소재들도 좀 사야 해요. 아, 그리고 그거 기억해요? 드라마 할 때 사 갔던 천일홍? 그것도 더 사야 해요. 지금 말한 거 말고도 한참 더 있지만요.”





사야 하는 아이들을 죽 늘어놓고 있으니 제형 씨가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스크 아래에 가려진 표정이 눈에 선했다. 그게 또 귀여워 보여서 고개를 돌려 이미 터진 웃음을 참기 바빴다. 그러고 있으니 떠오른 표정만큼이나 넋이 나간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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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빼면 이름만 듣고서는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그래도 자주 쓰이는 거라 보면 바로 알 걸요. 꾸준한 관심이 없으면 이름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죠.”


“하긴…”


“사실 오늘은 종류만 다양하지 정작 가게에 들여놓으려고 많이 사는 건 몇 종류 안 돼요.”





여즉 멍하던 제형 씨의 눈에 물음표가 들어차며 생기가 돌았다.





“그럼요?”


“음- 말해도 되나 모르겠네-”


“뭔데요?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물어오기에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약 올리듯 대답하니 잡고 있던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나를 재촉했다.





이럴 때 보면 또 아이 같기도 하고…





꽃을 살펴보며 웃기만 하자 옆에서 뾰로통한 목소리로 툴툴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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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게 해놓고 알려주지도 않네.”





귀여워.





“장난이에요, 장난. 뭐, 별건 아니고 제형 씨가 초대한 시상식이요. 꽃다발 제가 맡기로 했어요. 그래서 몇 개 먼저 만들어서 확인받으려고요.”


“그걸 하루 씨가 만든다고요?”


“네. 그렇게 됐어요.”


“와- 그게 뭐가 별거 아니에요!”


“그래요? 그 날 잘 보고서 어땠나 제형 씨도 말해 줘요.”


[데이식스/박제형] 어서 오세요, 제이꽃집에. 15 | 인스티즈

“당연하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걸 보고 있자니 어째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연예계에서 일한다면서 덩치만 컸지 이런 순수함은 어째 잃지를 않은 것 같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러기도 드물다던데.



찾아온 스태프에게 또 초대를 받게 되었다고, 그런데 이미 갈 계획이 있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제형 씨의 입장도 있을 테고 그냥 선약이 있다고 둘러대었다는 얘기를 하자 ‘난 괜찮은데.’ 하고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닌데 누군가 알아챈다면 자기는 숨기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제형 씨 옆에서 ‘그렇구나-’ 대답하며 걷다 보니 시장에 올 때마다 보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여기예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이번 주에는 두 번이나 오네?”


“네. 급하게 필요한 게 생겨서요. 별일 없으셨죠?”


“그렇지. 얼굴 본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새 별일이야 생겼겠어.”





듬직한 체구에 흔히 볼 수 있는 목장갑을 끼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러다 시선이 제형 씨를 향하기에 나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머쓱하게 내 뒤에 서 있던 제형 씨가 아저씨께 상체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숨긴다고 숨겼지만, 혹시나 목소리로라도 알아채실까 봐 평소보다 목소리가 약간 낮아져 있다. 제형 씨의 인사를 받은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물어오셨다.





“저 청년은 누구야? 하루 애인이야? 훤칠하니 괜찮네! 몇 년만에 혼자가 아닌 건 처음이네. 웬일로 애인을 다 데리고 왔어, 그래?”





내가… 항상 혼자 다니긴 했지… 아니, 그래도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덜컥 남자친구로 단정 지어 말씀하셨다. 커진 아저씨의 목소리에 양옆에 계시던 아주머니 아저씨께서도 한 번씩 돌아보셨다.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 쥐고 어색하게 웃다가 이미 그렇게 보시고 흐뭇하게 웃고 계신 아저씨께 제형 씨와의 관계를 바로잡았다. 약간의 거짓을 보태어.





“아쉽게도 남자 친구는 아니고, 단기 아르바이트생이에요.”


“에이-”


“정말요. 항상 이 기간에 바쁘긴 했지만, 올해는 유독 더 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저히 혼자는 안 되겠다 싶어서 도움을 구했죠.”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제형 씨에게 재차 확인하셨다. 아니라고 답하는 목소리에 아쉬움도 불만도 담긴 것 같았지만 부러 모른 체하며 꽃을 살폈다.





역시 여기만 한 곳이 잘 없다.





가격 확인까지 하고 이것저것 골라 밀고 온 카트에 실었다.





“눈만 봐도 잘 생긴 거 알겠고 이렇게 보니 둘이 잘 어울리는데 아니라니 내가 다 아쉽네.”





결제하면서도 나와 제형 씨를 번갈아 보며 아쉬워하셨다. 그에 내가 할 수 있던 건 아저씨의 눈을 피하며 멋쩍게 웃는 것밖에 없었지만 제형 씨는 아니었나 보다. 마지막까지 ‘둘이 잘 해봐! 나쁘지 않겠는데?’ 하고 말씀하시는 아저씨께 원래의 자기 목소리로 ‘잘 되면 언제 또 한 번 올게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아저씨는 또 거기에 맞춰 ‘거 성격도 시원시원하니 마음에 드네!’ 하며 껄껄 웃으셨고. 나만 중간에 끼여 눈동자를 굴리다 급하게 인사를 하며 제형 씨의 등을 떠밀었다.



아저씨의 웃음소리와 멀어지니 이제는 제형 씨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제형 씨!”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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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래서 싫었어요?”


“…”


“응?”


“됐어요, 가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냐는 듯 웃으며 물어왔다. 그 질문이 뭐라고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느낌에 제형 씨보다 앞서 걸어가며 더 사야 하는 아이들을 눈으로 찾았다. 내 빠른 발걸음도 성큼성큼 따라잡고 끈질기게 묻는 제형 씨에게 결국 ‘아니요!’ 라고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지만. 인정은 했다지만 역시 아직은 직접 말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나는.



제형 씨도 아니라는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 뒤로는 내가 필요한 품목을 다 고를 때까지 별다른 말이 없이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옆에서 나를 말 없이 따라다니던 제형 씨는 저를 힐끔이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며 내 시선을 잡아두려 하기도 했었다. 기어코 아무런 대꾸도 없다 차로 돌아가 화물칸에 짐을 싣고는 차에 올라탔지만.



가게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계속 말을 거는 제형 씨 덕에 나도 금세 잊고 다시 제형 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하늘이 점점 푸른 빛을 되찾아가는 시간, 딱 가게와 꽃시장의 한중간에 있는 24시간 햄버거 가게에서 아침 메뉴 콤보 두 개를 구매해 제형 씨에게 건네주다 문득 어제 통화를 하던 중 손님이 와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게 떠올랐다.





“참, 어제 하려다 만 얘기는 뭐였어요?”


“어제요?”


“그… 재밌는 일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아- 그거! 화보 촬영할 때 잡지사에서 협찬받아 준비하는 옷이 따로 있어요. 그걸 촬영장 한쪽에 순서대로 쭉 걸어놓거든요.”


“네.”


“이제 촬영 막바지에 옷을 두 벌인가 세 벌인가 더 남겨둔 상황이었어요. 입고 있던 옷 촬영이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대기실로 가서 옷도 갈아입고 스타일링도 새로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스태프 한 명이 들어오더라고요.”


“왜요?”


“바로 다음에 입어야 할 옷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스타일리스트는 당연히 지금 갈아입은 옷이 아니라 그다음 옷인 줄 알았죠. 스타일리스트가 깜짝 놀라서는 급하게 머리를 만져주고 심각한 표정으로 촬영장으로 가더라고요.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갔고.”


“그래서 옷은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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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니까 촬영장 분위기는 급격히 심각해졌지, 의상 관리 맡은 신입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여기저기 뒤적이고 있지… 장난 아닌 거예요.”


“네.”


“그랬었는데 먼저 뛰어가서 얘기를 들어보던 스타일리스트가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거예요.”


“갑자기 왜요?”


“그 무거운 분위기에 제일 심각해야 할 사람이 웃기 시작하니까 다들 놀라서 돌아보지 않겠어요? 스타일리스트가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하면서 뒤돌아서 저를 가리키는 거 있죠? 그러니까 다들 벙찐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는 거예요. 그때는 나도 흠칫해서 그 자리에 멈춰섰어요. 아니 뭔데 다들 나를 저렇게 쳐다보나 하면서요.”





갑작스러운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던 제형 씨조차도 그때는 한껏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며 그때를 회상하며 그 표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내가 그 상황의 신입이라도 된 것처럼 같이 긴장하고 있다 쳐다본 제형 씨의 얼굴에 별안간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제형 씨가 ‘…그래요. 하루 씨가 웃기다는데… 그걸로 됐지, 뭐.’ 하며 불퉁하니 입을 내밀었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나도 그 자리에서 멍청하게 스태프들 쳐다보고 있고 스태프들도 허탈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그 중간에서 담당 스타일리스트는 웃기 바쁘고. 웃음소리는 크게 들리는데 또 정적이 가득한 그런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그랬겠네요.”


“근데 갑자기 신입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막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짜 서럽게. 초등학교 1학년 첫 등교 날 엄마 떨어진 입학생같이.”


“…이해해요, 그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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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울려고 우는 게 아니라고, 진짜 놀랬다고, 오늘 내가 직장을 잃는 건가 하고 울음 사이사이에 섞어서 얘기하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다들 또 금세 흐뭇한 표정으로 바꾸고 쳐다봤어요. 물론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 진짜 너무 애 같은 거야.”


“응. 알죠, 그 마음도. 저 같아도 그랬을걸요.”


“나중에 울음 그치고 진정하고 나서 뻘쭘하게 ‘그런데요…’ 하고 입을 뗐는데, 세상에... 그 없어졌다는 옷, 내가 그때 입고 있던 그 옷 말이에요.”


“네.”


“그걸 그 신입이 다들 편하라고 나름대로 신경 써서 대기실에 미리 가져다 두었던 건데, 자기 선배가 옷 없어졌다고 어디 갔냐고 막 다그치니까 그걸 잊어버렸던 거죠.”


“그럴 수 있죠. 머릿속이 새하얘졌을 거야.”


“네, 그랬던 거죠. 그러면서 눈가는 발개서 해맑게 웃는데, 나 선생님 된 줄 알았잖아요.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다들 그런 마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달래준다고 그 날 회식하러 갔대요. 삼겹살 먹으러.”


“귀엽네요. 진짜 사회 초년생이네요. 막 더 챙겨주고 싶어졌겠다, 다들.”


“그랬을걸요.”





그 아이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상황이었겠지만, 조금 더 일찍 사회에 나와 있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참으로 귀여웠겠지. 얘기만 들은 나도 이러한데 직접 보았을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 뒤로 촬영을 마칠 때까지 스태프들은 그 일로 신입을 놀리기 바빴다고 했다. 그런데도 신입은 헤실헤실 웃기만 해 촬영장 분위기가 한없이 유해졌었다고도 했고. 생생하게 묘사를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게에 도착하고 짐도 가게 뒤편에 어지럽게 내려두었다. 정리도 도와주겠다던 제형 씨를 햄버거 식기 전에 얼른 먹자고 말리느라 또 잠시 실랑이가 있었지만, 내가 제자리에 얼른 찾아 넣는 게 빠르다는 말을 듣고 알겠다며 본인 차를 가게 앞으로 옮겨 주차하고 가게로 들어와 마주 앉았다. 햄버거와 해시브라운, 콜라를 하나씩 앞에 두고 조금은 이른 아침 식사를 했다.





“그나저나 혼자서 이걸 어떻게 매번 다 해요?”


“처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할 만해요. 요령도 생기니까-”


“아니야…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안 되겠다! 내가 자주 와서 도와야겠네!”


“자기 일로도 바쁜 사람이면서 어떻게 도우려고요?”


“하려면 못 할 건 또 뭐가 있겠어요.”


“에이, 안 돼요.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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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면 되죠. 아까 말했다시피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하루 씨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더 미안하죠!”


“아- 몰라요, 몰라. 하루 씨 말 안 들려. 자주 도우러 올 거야. 끝!”





제형 씨가 눈을 감고선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이내 끝이라며 다시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제형 씨를 빤히 바라보다가 나도 작게 웃으며 고개를 잘게 흔들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저러는 걸 누가 말려.





“오늘 고마워요, 제형 씨.”


“네- 고생했어요, 하루 씨.”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혼자 할 때보다 덜 힘들고 더 재밌기는 했어요.”


“나도 새로운 구경도 하고 재밌었어요.”





나는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제형 씨는 몇 번이고 아니라며 주거니 받거니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마주 앉아 웃으며 식사를 하는 것도 더는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햄버거를 사며 따라왔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넣어 치우고 나니 제형 씨가 패딩 안에 입고 있던 후드 티 주머니에서 금색의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건네받아 열어보니 시상식 초대장 두 장이 들어있었다. 다시 봉투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드니 긴 팔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제형 씨 피곤하겠다. 얼른 가서 좀 자요.”


“하루 씨는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해서 어떻게 해요.”


“누가 새벽부터 도와줘서 오늘은 일 마치고도 조금 덜 피곤하겠는데요?”


“누군지 모르지만 참 좋은 사람이네, 그 사람!”





제형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 다 또 소리내 웃었다. 항상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다, 제형 씨 와는. 그래서 좋은 기운을 매번 듬뿍 얻는 것 같고, 또 그 위에 설렘도 쌓게 되고.





“오늘도 힘내요. 하루 씨 말대로 가서 좀 자고 일어나서 또 메시지 보낼게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운전 조심하고요.”


“그럼요. 나중에 또 봐요.”


“잘 가요.”





여느 때처럼 제형 씨는 한결같이 손을 흔들면서 가게를 나갔다. 제형 씨가 차에 타서 가기 전에 또 한 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기에 나도 따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떠나는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문을 닫고 가게로 들어왔다. 당연한 순서인 듯 앞치마를 손에 들어 꽂혀 있던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 제형 씨의 웃음을 떠올리다 앞치마를 매었다.





***

약속 지키려고 열심히 글 쓰고 있어요! 자주 오고 있는 거 맞죠...? ㅋㅋㅋㅋㅋ

하루는 좋겠다... 제형이랑 데이트도 하러 가고...

오늘은 하루 일 도우러 같이 꽃시장에 다녀온 제형이입니다-

이번 화 기다리셨던 분들 몽글몽글 설레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남겨주시는 댓글은 글 쓰는 동기부여가 돼요. 너무 좋아서 웃으면서 얼른 다음 편 써야지 하고 있어요. ㅎㅎㅎ

오늘도 참 감사드립니다♥


암호닉은 따로 남기는 의미가 없는 듯 하여 앞으로 글 올리면서 같이 적지는 않을 거예요.

말씀해주시거나 새로이 남겨주시면 기억하겠습니다. :)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독자1
자까니이임 숙자 입니다ㅠㅠ 현생에 치여서 중간에 몰아봤다가 오늘에서야 댓글을 달아요 ㅠㅠㅠ오늘도 간질간질한 하루와 제형띠,,, 둘이 얼릉 안 사귀고 뭐하냐아아아ㅠㅠㅠㅠ 새벽시장 데이트 넘 설레요ㅠㅠㅠ 담편 기다리겠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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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숙자님- 오랜만에 뵈어요! ㅎㅎㅎ 현생에 치이고 계시는 군요... ㅠㅠ 저도 1월까지만 해도 현생이 혐생이었던 지라 그 마음 이해해요 ㅠㅠ 언제든 글 쓰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편하실 때 오셔요 ㅎㅎ 항상 잊지 않아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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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작가님 너무 기다렸어요 ㅠㅠㅠ 비젬도 너무 잘어울리고 오늘도 설레고 갑니다 ㅠㅠ
•••답글
포장
제이꽃집은 유독 비지엠 고르는 재미가 더 한 것 같아요. 오늘은 어떤 곡을 넣으면 애들 분위기가 살까 하면서요 ㅎㅎㅎ 오늘도 많이 감사드립니다♥♥
•••
독자3
슨생님 ㅠㅠㅠ 정말 자주 오시네여 ㅠㅠㅠ 전 좋아죽그습ㄴ디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더 자주 보고 싶은 건 욕심이겠죠..? 슨생님이 편하신대로 언제든지 와주세요 저는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제형이 설레서 미쳐버리겠네여 ㅠㅠㅠㅠㅠ 얼굴이 제일 설레 진짜 ㅠㅠ 그런데 선생님의 글까지 더해지니 완벽조합...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답글
포장
여유롭게 글 쓸 수 있을 때 많이 써서 최대한 자주 놀러올게요- 매일 글만 쓰면서 살고 싶지만 어떻게... 현생이 어찌 될 지 모르니까요, 또 ㅠㅠ 많이 기다리시지 않게 노력할게요- 헿ㅎㅎ 진짜... 얼굴이 제일 설레요. 얼굴 열일해요, 정말 ㅠㅠ 제가 항상 많이 감사드립니다♥♥
•••
독자4
제가 기다릴게용 !!! 작가님은 현생 살다가 딱 생각날 때 와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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