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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가 앓다 죽을 유타야ll조회 2693l 4
















1.




"누나, 어디에요?"
"나 카페 곧 도착해. 바로 앞이야. 횡단보도."
"빨리와요. 저 심심하단말이에요. 와서 빙고나 몇판 해요. 오늘 손님 개없음."
"동혁쓰, 그런 소리 하지마라. 갑자기 손님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그래?"
"헐. 불길한 소리 하지마요."




알바하는 카페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에 뜬 사람은, 타임이 겹치는 친한 알바생인 동혁이었다. 에어팟을 낀 채 전화를 받으니 찡얼거리는 동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출근하기 까지 15분정도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찡얼거리는 것을 보니, 오늘 손님이 없어도 여간 없는 것이 아닌가보다.
하긴, 대학로에 위치한 카페이긴 하지만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까닭에 비오는 날은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니까. 그와중에얘는최근에빙고에꽂친건지, 손님이 없는 널널한시간때마다 내게 카페티슈랑볼펜던져주고매일같이빙고를 하자고졸라댄다.나는 괜히 웃음이 나서, 입꼬리를 올린 채 피실피실웃었다. 찡얼거리는 동생같은 동혁이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곧 도착한다는 말과함께 심심하다고 투정부리는 동혁이를달랬다. 알았어. 횡단보도 건너고 있어. 진짜 앞이라니까 짜샤. 3분 안에 가.
그때 기다리고 있던 신호가 바뀌며 초록불이 바뀐다. 어, 신호 바꼈다. 끊을게 동혁아. 급하게 전화를 끊으며 한손에 쥐고 있던 폰을 자켓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어깨에 걸친 채 옆쪽으로 조금 기울이고 있던 있던 우산을 다시 똑바로 들어 올리며 걸음을 뗐을 때, 그 순간 별 생각 없이 횡단보도옆에위치한버스정류장에 시선이 갔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익숙한 인영에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자리에서멈춰 서고 말았다.아까까지만해도우산에가려져있던시야였다.
어.....?




...... 김정우......?
벌어진입술 사이로 오랜만에 뱉어보는 이름이 터져나왔다. 그 익숙한 이름을 뱉는 순간, 거짓말처럼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찌릿 찌릿 저려온다. 금새 약속이라도 한 듯 코 끝이 시큰 해졌다. 꼭 눈물이 터져나올 것 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이 익숙한 감정. 에어팟에서 흐르는 노래에서는 핸드폰에서 임의로 재생 된 비오는 날 플레이리스트가 느릿하게 그의 배경 아래 깔렸다.
그때 갑자기 비 냄새가 났던 것 같아. 혹시 넌 기억하니. 한방울,방울떨어질때에그곳에있던너와나.
초록색 불이 빨간 불로 바뀌는 순간까지 나는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멍하니 그 곳을 바라봤다. 변한 모습이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또렷이 그의 모습이 느린 모습으로 재생되었다. 1초가 마치 1분처럼.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번의 신호가 바뀌는 순간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으면, 아까 자켓 안에 쑤셔 넣었던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멍하니 에어팟 위를 톡톡 쳐서 전화를 받는다.




"응....."
"누나! 왜 안와요. 3분컷이라면서요. 10분 넘었는데요?"




이제 누나 곧 지각임. 동혁이의 목소리가 흐물흐물하게 들려온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바보처럼, 어. 금방 가. 미안. 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전히 시선은 그 곳을 향한 채였다. 에어팟 넘어로 동혁이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나?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무슨 일 있어요? 그 말에 나는 멍하니 중얼거린다. 아니, 그냥. 누구를 좀 봤어..... 내 말에 동혁이가 헛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묻는다. 아, 뭐야. 사고 난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근데 누구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첫사랑......"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줄 알았던, 그런. 처음으로 누구를 너무 좋아해서 열병을 앓았던 그런 내 짝사랑. 그 사람을 봤어.




2.





처음에는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뒤늦게 3학년이 되고 나서 김정우와 처음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남녀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꽤나 발랄한 성격에 속했지만, 나와는 정 반대로 김정우는 이성에게 낯을 가리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덕분에 1학년, 2학년때 그와 다른 반 이었던 나는 그를 같은 반이 되기까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 물론 범생이 전교 1등이라 대충 소문을 들어 알긴 했다. 근데 전교 1등이 알게 뭐람. 내가 전교 2등, 아니 10등 안에도 못드는데. 진짜 노관심.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오다가다 마주쳤을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속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소리다. 말 그대로, 말하자면 얼굴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던 그런 사이에 불과 했으니까. 어, 그러니까 그때 그에게 무관심 할때 내게 비춰지던 그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부 진짜 열심히 하고 조용한 학생. 맞아, 어딜가나 학교에 존재하는 그런. 장점이 공부밖에 없는 딱 그런.
생각해보면 왈가닥인 나의 비해 딱히 눈에 띄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항상 알이 큰 안경을 쓰고 다니고, 머리는 딱 학생 답게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나름 안경 속 얼굴을 알아본 여학생들이 얼굴은 꽤 한 따까리 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눈을 틀리지 않았다며 학기 초에 조금 화제가 되긴 했었는데, 뭐 그것도 학기 중반이 되면서 흐물흐물 해졌다. 이성이 익숙하지 않은 까닭인지, 아니면 한창 사춘기 나이에도 관심이 너무 없어도 없는 건지 여자애들이 호기심에 말을 걸어도 반응은 시원치 않았던건 물론이요, 오히려 말만 걸었다 치면 온 몸에서 나 불편해요를 써 놓고 피하는 듯 했으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애들 사이에서 좀 재수없는거 같다고 소문 났었다.
아, 근데 그 당시의 나는 그 모습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던거 같다. 뭐, 무턱대고 싫어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달갑게 보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물론 고삼? 좋다 이거야. 공부 열심히 해야하는거? 그것도 아주 이해해. 근데 사람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그걸 대놓고 피하고 불편해 하는건 너무하지 않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물론 나도 그때는 생각이 어렸다. 모든 사람들의 성격의 다름을 이해하기에 아직 철이 덜 들었던 때니까. 그렇게 그와 말한번트지않은학기중반을넘겼다. 신기하게도 인연은 아니었는지 단한번도짝이적은없었다.심지어가까운자리에앉았던또한없다.나는항상뒷자리를선호했고,그는담임선생님의이쁨을받아항상교탁에서두번째줄에앉았으니까.중반이넘어가도록그를 향한 내 편견이 담긴 인식은여전했다.공부오지게잘하는범생이. 존나게 재미없는애.담임이서울대보내려고안달난우리반,아니우리학교기대주.
그런 김정우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한 순간은 아주 순간적 찰나였다. 그 순간은 짧았고, 강렬했으며, 단순했다.

그래,마치소나기같았다.짧은순간 나를 단숨에젖게 만들어버린.










3.





내가 주번인 주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같이 주번을 하는 아이가 눈병때문에 학교를 결석해서 청소를 나 혼자 하느라 평소보다 하교가 훨씬 늦어졌다. 그러게. 생각해보면 그 날따라 지지리도 운 없는 날이었다. 더 짜증이 나는건,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소를 끝마치고 교무실에 열쇠까지 반납하고 내려와 신발을 갈아신는데, 갑자기 빗소리와 함께 금새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교실 문 잠구고 나왔는데. 꼭 이럴때 비 오더라. 우산도 없는데. 나는 투덜 거리며 학교 중앙 현관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입을 삐죽였다. 보니까 소나기 같은데 금방 그치려나. 그냥 10분정도 기다려볼까. 그렇게 5분, 10분, 15분, 20분이 지났다. 어째 빗줄기는 얇아질 생각을 안하고 굵어지기만 한다. 애들은 벌써 다 하교한 터라, 꽤 조용했다. 그나마 우산을 피고 지나가는 애들은 다 처음 보는 아이들 뿐이다.
아, 망했다. 진짜 맞고 가야해? 젖는건 죽어도 싫은데. 미간을 찌푸리며 어쩔지 곰곰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런 내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우리반 김정우. 아까 보니까 교무실에서 담임이랑 무슨 상담하고 있던데, 그것 때문에 하교가 늦은듯 해보였다. 그는 시선을 두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향한채 조용히 내 옆에 섰다. 나는 슬쩍 남 모르게 그를 곁눈질로 훑었다. 헐, 얘도 우산 없나. 그러다가 그의 손목에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검정색 우산을 보고 애써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아, 쟤는 우산 있구나.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흠, 같은반 친구니까 버스정류장 까지만 같이 가자고 말해볼까. 근데 쟤 버스 타고 집 가긴 해?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적 한번도 없는거 같은데.
포기는 빨랐다. 같은 반이면 뭐해. 말 한번 터본적 없을 뿐더러,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방향도 아닌거 같은데. 같은 등교시간과 같은 하교시간인 것에 비해 마주치는 횟수가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망했다. 그냥 맞고 가자.
근데 얘 있는 앞에서 처량하게 맞고 가기는 좀 쪽팔려서 가만히 그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었다. 갑자기 옆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산 없어?"




나는 어깨를 움찔 떨며 놀랐다. 그도 그럴게, 쟤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도 못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두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 시선이 고정되어있다. 우와, 쟤는 사람한테 말 걸 때 사람 보지도 않나? 진짜 재수없다. 이게 진짜 조또 관심 없다 이거지? 나는 가만히 그의 옆모습을 보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없는데.




"그럼 내꺼 쓸래?"



그의 말에 나는 또 당황했다. 뭐야, 설마 우산이 두 개? 슬쩍 그를 다시 훑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산은 팔목에 걸린 하나 뿐이다. 나는 그를 힐끔 보다가 입술을 삐죽 거리며 답했다. 됐어, 너 우산 하나 아니야? 내 물음에 그는 대답한다. 응. 하난데.



"그럼 버스정류장 까지만 데려다 줘. 부탁 좀 할게. 너도 우산 필요 하잖아."



그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침묵을 지켰다. 나는 속으로 꿍얼거렸다. 뭐야, 같이 쓰긴 싫다 이거야? 그 정도로는 친한건 아니다 이거지? 원래 감정을 잘 못숨기는 성격이라 입술을 툭- 내놓고 나 조금 섭섭해요 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티를 내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좀 더딘 사람이었다.어차피 나를 보고 있지는 않으니, 상관 없을거라 생각했다.​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싫으면 말고. 너 불편하면 걍 너 혼자 쓰고 가. 근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며 곧장 나를 바라본다. 그제서야 처음 눈을 마주봤다.



"그게 아니라, 난엄마가데리러오신다고 하셔서."



이제 필요없어졌어. 그러니까 너가 써.그 말을 끝으로 그는 우산을 내민채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됐어. 너 별로 나랑 안 친하잖아."



괜한 자존심때문에 내게 내밀어진 손을 무시했다. 퉁명스러운 내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우산을 내밀고 있다. 나는 조금 눈치가 보여 그를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너 내 이름 기억은 해? 내 물음에 그는 피곤한지안경을 벗어내리며 안경 밑에 숨겨져있던 두 눈을 꾹 눌렀다. 그는 곧장 한 손으로는 벗은 안경을 쥔 채,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우산을 내민채로 가만히 나와 눈을 마주보며 말한다. 응. 나 아는데.



"김여주."
"........"
"너 김여주잖아."
"......."
"같은 반 김여주."



그때 처음 봤다. 그의 안경을 벗은 모습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도.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하려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너 눈 진짜 예쁘다."
".....어?"




놀란 표정으로 묻는 그의 되물음에 나도 지레 당황해서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내 입에서 나온 내 말이 내 의지가 아니게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너 안경 벗은거 처음 봐서...... 그.... 그.... 눈이 엄청 예쁘다고.....!!! 그니까.... 어.... 그..... 그냥 안경 벗고 다니지 그래?!!! 너 엄청 인기 많아질걸?!!! 허둥지둥거리며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역시 감정을 숨기는데에 더딘 나는 곧이 곧대로 티가 났다. 놀라서 와다다 뱉은 말은 내 얼굴을 더 빨갛게 만들었다. 와, 진짜 당황스러워. 왜 이런 말이 나오고 난리야. 어이없네.
심장이 고장난 듯이 이상하게 펄떡 펄떡 빨리 뛰었다. 많이 당황해서 그런가. 어후. 왜 이렇게 막 빨리 뛰지. 얼굴도 너무 뜨거웠다. 피가 머리에 쏠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펑 터질것 처럼 그랬다.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중인데, 거기다 비가 내린 탓에 꽤나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덥고 온 몸이 후끈거렸다. 몸도 마음도 말도 안되게 이상 증조를 보였다. 순간적으로 이 증상들을 느끼고 감기가 찾아왔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열이 나겠나 싶을 정도로. 큰일났다. 집에 가서 바로 감기약 먹어야겠다. 결국나는마주눈을 내가 먼저 어색한표정으로피해버렸다.다시그의목소리가 우리 사이의 공간에 울려퍼졌다.



"김여주, 우산 안 받아?"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야, 김정우가 웃는다고? 그 김정우가? 나는 또 놀라서 다시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내 눈에 그가 담겼다. 어, 이상하다.눈에담기는그가느리게재생됐다.그것도되감기를하는지머리속으로는여러번재생되기시작한다.
이거뭐야.이래.미쳤어,김여주?와중에그의배경으로내리는비가그와꽤나어울린다고생각했다.그러니까뭐라고표현해야할까.그래,말이맞겠다.청초했다.물에젖은물망초처럼.나는바보같은얼굴로얼떨떨하게 그가건내는우산을받아들었다. 자꾸만 멍해 진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그도 그럴게, 나는 처음 봤거든. 얘 웃는거.

근데 그게 좀...... 그러니까......
그 어린 시절 내가 느끼기에도 내 눈에 비춰진 김정우는 많이 예뻤던거 같다. 우산을 내게 내밀던 그의 손도,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하얗게 웃는 그의 얼굴도.



"잘가. 김여주."



그 순간 내가 반해버릴 정도로 말이다.








4.



"정우는 오늘 결석이다."



다음날, 내게 우산을 준 김정우는 결석을 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네. 다들 고삼인데, 이럴때일수록 몸 관리 잘하고, 감기조심하도록. 이상 조례 끝."



결석의이유는감기였다. 그 날의 내 증상을 떠올려보면 감기는 내가 걸릴줄 알았는데. 엄한 김정우가 걸려서 결석했다. 참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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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마스크를 쓰고 온 김정우는 3학년이 된 처음으로 안경을 벗고 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반 친구들도,
"미친."
그리고내 마음도. 아주 난리에 그런 난리가 없었다. 김정우를 본 내 마음속은 엉망이었다. 혈액순환이 활개를 쳤다. 펄떡펄떡. 미친거 아니야, 심장?
하루종일 이랬다 저랬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친한 친구들은 다 알아채고 내게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이상해. 아주 지극히 공감했다. 나도 내가 이상했다. 진짜 미친 사람 같았다. 그만큼 정신도 못 차리고 하루종일 멍하기도 했으며, 이상하게 시선은 계속 김정우를 향했다. 그를 볼때마다 이상하게 그 날의 증상이 똑같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진짜 이상하다. 분명 감기인 줄 알았는데. 나 감기약 먹었는데. 어라 나 또 감기인가. 감기 걸린거야? 열이 막 나. 이상해. 근데 막 아픈거 같지는 않고......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이 너무나도 생소해서 자꾸 그를 향해 내 시선이 뒤따라갔다.
바보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나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누구를 좋아해본 적도 있고, 남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이상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전혀 느낀 적 없던 감정. 그러니까 그냥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이 더뎠다.
글쎄,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괜한 치기 어린 자존심에 인정하면 지는거라고 생각했다. 헐, 내가 왜 쟤를 좋아해. 얘기 한번에 그렇게 쉽게 넘어갈 내가 아닌데. 그런 김여주가 아닌데. 그것도 저런 재미없는 녀석한테.... 내가?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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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우, 미쳤다. 나는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결국 수업 시간이며 쉬는 시간이며 혼자 몰래 훔쳐보다가 4교시 쉬는 시간쯤에 그와 두 눈이 마주쳤다. 하루종일 바라본거 치고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직 감기 기운이 낫지 않은 건지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서 잠만 자는거 같았거든. 그 말인 즉 나는 1교시가 시작되고, 4교시가 끝날 때까지 저 녀석의 동글동글한 뒷통수만 죽어라고 봤다는 소리다.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모습은 평소에 보던 범생이 김정우와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아닌가. 아픈데 학교를 나와서 교실에 붙어있는 것 자체부터가 범생이인가. 아 몰라. 그걸 왜 내가 고민하고 있냐고. 관심도 없었으면서. 야, 김여주 그만 봐. 그만 보라고. 이제 그만 눈깔 돌리자. 그렇게 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김정우가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 4교시가 끝날때까지 웬종일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그 말인 즉, 나는 계속 스토커처럼 김정우를 몰래 지켜봤다는 말이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 시선은 그를 쫒았다.
결국 그러다 마주친 두 눈에 나 혼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잠시동안 스친 눈맞춤에 나는 괜히 움찔 거리며 시선을 티나게 피했다. 아씨, 김여주. 미쳤어? 자연스럽게. 네추럴리. 몰라? 인상을 찌푸린채 이를 악 물고 속으로는 나를 욕했다. 아, 진짜 쪽팔려서 나 어떡해. 계속 본 거 들켰으면 어떡하지. 괜히 교과서를 읽는 척 페이지만 벅벅 넘기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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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전히 김정우의 시선은 내게로 향해있다.

뭐지. 이상하다. 김정우가 자꾸 감기를불러오나보다. 온 몸에 또 열이 난다. 얼굴이 불타오르는거 같다. 큰일났다. 나 어떡해.
볼때마다맨날이런증상을겪어야하는거야? 저 무정해 보이고, 냉정해 보이며, 사람 말도 막 제대로 대꾸도 안하고 존나게 재수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친절한것도 같고, 같은 반 친구 이름도 기억하고 있고, 거기다 우산도 빌려주고, 웃는 것도 예쁘고, 안경 벗은 모습은 물망초 같고, 어 또 나 대신 감기도 걸려주고, 키도 자세히 보니까 180이 넘는것 같고, 핏도 오지게 좋은거 같고, 또 공부도 잘하는데 시크한거 같고 막..... 생각해보니까 엄청 완벽한데.
.....아, 망했다.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시작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 그거. 그거말이야.



"김여주, 너 오늘 이상해. 밥 먹으러 제일 먼저 달려가는게 너잖아. 웬일로 아직도 교실에 있어? 이제 그만 밥 먹으러 가자. 급식실 끝에 가서 줄서기 귀찮단 말이야."
"......망했어."
"아까부터 계속 어디를 보는.... 어...? ....헉쓰..... 뭐야..... 김정우.....?"
".......진짜 망했다고."




내 친구 미현이가 내 귓가에 속닥속닥 거리는 말이 한귀로 들어와 한귀로 흘러나갔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2교시만 되어도 꼬르륵 소리가 울리던 배가 조용하다. 매일 배고프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웬일로 밥맛도 없었다. 진짜 큰일났다. 감기보다 더 심한 병이 찾아왔다.



"왜 이래. 너도 김정우 안경 벗으니까 잘생겨보이냐? 이거 이거, 완전 다들 얼빠구만."





그래 그러니까 그거. 상사병인거 같다고. 그 막 영화나 소설같은거에서 본 그런거. 그제서야 인정했다. 내가 저 녀석 짝사랑을 시작한거 말이다.












6.
이상하게 내 짝사랑은 인정하자 마자 힘들어졌다. 나는 이상하게 운을 피해가는 재주가 있나보다. 이런 운빨로 대학은 붙을 수 있으려나. 제기럴. 안경을 벗은 김정우는 그 날의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개 돋친듯 아주 하늘을 날아 인기의 절정을 달렸다. 우리학교 얼굴의 신, 그냥 수만고 하면 간판으로 유명한 정재현과 투톱이 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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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 3학년이라 자유시간인데, 남자아이들과 체육관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김정우를 보면서 반 여자애들이 모여 속닥거린다. 저 녀석이 안경을 벗은 후부터 우리반 여자애들은 그의 얘기만 한다. 지켜보는 내 마음 활활 타들어가게.
"와, 김정우 진짜 잘생기지 않았냐."
"그러니까. 갑자기 왜 안경 벗기 시작한거야? 이유는 모르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내가 그랬잖아. 김정우 진짜 훈남이라고."
"근데 쟤 공부도 전교 1등인데, 심지어 운동도 잘해."
"생각해보면, 여자애들한테 낯가리고 무뚝뚝한데, 어울리는거 보면 남자애들이랑은 사이 꽤 좋지 않아?"
"와, 진짜 발린다. 안경 벗었더니 복권 당첨."
"근데 솔직히 김정우 안경 써도 잘생겼었어. 성격이 조용해서 그렇지. 학기 초엔 꽤 좋아하는 여자애들 많았잖아."
와, 진짜 큰일났다. 괜히 안경 벗으라고 했어. 나 진짜 그때 미쳤었나봐. 하, 그때 입조심만 했어도...... 뭐 후회해 봤자 이미 일어난 일이라 소용은 없지만서두..... 근데 또 김정우의 얼굴을 보니 퍽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원래 짝사랑이란 그렇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괜히 원망도 해보고. 근데 그 사람이 또 미워지지는 않고. 정을 떼보고 싶어서 지랄 염병을 떨어보지만 제자리 걸음을 걷는. 그러면서도 계속 시선은 그를 향해 쫒아가는. 그래서 더 억울해지는 그런 마음.
나는 괜히 속상한 마음에 체육관 사각 지대로 유명한 제일 구석자리에 가서 쭈구려 앉아 무릎 안에 고개를 푹 파묻고 혼자 중얼거렸다. 하여튼 김정우 쟤는 또 인기 많아질거 같다니까 곧이 곧대로 안경 벗고 학교를 오냐. 줏대가 없어요 진짜. 다시 안경 써. 쓰라고! 아니, 저렇게 잘 생기지나 말던가.사람마음심란하게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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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축구도 잘하네. 관심 없어서 몰랐는데. 공부만 잘하는 샌님인줄 알았더니, 운동도 잘해요. 못하는게 대체 뭐냐. 진짜 짜증나게. 점점 뱉어내는 말이 칭찬이 되는 것을 깨닫고 나는 괜한 빡침에 머리를 벅벅 흐트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아니야. 김정우 생각 그만하자. 하루종일 김정우 생각만 하냐. 니가 진짜 고삼 맞아? 정신 좀 차려 김여주.
그러다 바보같이 거기서 잠들었다. 나는 머리만 붙이고 자나보다. 한심해 죽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만큼, 깊게 잠 들었나 보다. 갑자기 톡톡,팔을조심스럽게건드리는느낌에나는잠에서잔뜩찡그린얼굴로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들어 올렸다. 우씨, 누구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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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종치기5분전이야. 우리 이제 슬슬 반에가야하는데."



고개를 들어올리니 바로 앞에 보이는 김정우의 얼굴에 놀라서 훅하고 고개를 뒤로 뺐다. 악! 깜짝이야! 뭐야! 있는 힘껏 크게 소리 지르며 그를 밀어냈다. 사실 엄청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랬다.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쭈구려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일어났으면 빨리 가자. 진짜 시간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체육관에는 우리 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빨게진 얼굴로 허둥지둥 그를 뒤따라 일어섰다. 그때 내 몸에서 바닥에 툭- 하고 뭔가 떨어진다. 우리 학교 저지. 그때서야 그가 쌀쌀해진 날씨에도 반팔만 입은 채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멍하니 체육관 바닥에 떨어진 저지를 바라본다.
그가 덤덤히 체육관 바닥에 덩그라니 떨어진 저지를 한 손으로 주워올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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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늦었어."



아, 짝사랑 하면서 느낀 거 하나 더 있다. 별거 아닌거에 혼자 착각하고 설레는 거. 나는 그 날 집에가서 밤잠을 설쳤다. 억울하다. 툭툭 던지는건 김정우인데, 애먼 내 마음만 갈대처럼 휙휙, 줏대 없이 흔들린다. 속으로는 김정우가줏대없다고욕했지만,사실은마음이줏대가없다.
먼저 앞서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쪽팔려. 진짜 쪽팔려 죽을 거 같다. 혼자 설레고 쌩쇼에 쌩쇼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허무하고 쪽팔리다.



"뭐해, 안 가?"



근데 너무 좋다. 김정우 너가 너무 좋다. 미쳤나 싶을 정도로 너가 더 좋아진다. 하나하나 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각성하는 듯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다.
온 몸을 덜덜 떨며 그 자리에 덩그라니 서있는 나를 보던 그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내게 다가와 쥐고 있던 자신의 체육복 저지를 다시 내 어깨에 덮어준다. 그가 내게 물었다. 많이 추워? 두 눈을 꿈뻑 거리며 무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애먼 고개만 끄덕였다. 속으로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춥다. 이 새끼야. 너를 혼자서 앓는 내 마음이 미친듯이 뜨거우면서도, 너무 뜨거워서 갑자기 차게 식는 기분 너가 아니? 내가 지금 그래. 지금 너때문에 냉탕 온탕을 미친듯이 번갈아 오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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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실다녀와.내가선생님께말해놓을게."



억울하다. 진짜 억울해. 존나게 재수 없는줄만 알았는데, 또 생각보다 내게 베푸는 행동이 엄청 다정해서 화가 난다. 야, 이러면 더 좋아지잖아. 안될거 알면서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기대하잖아. 사실 그냥 포기 못할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고 찾는 거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속으로 그만하자, 그만하자, 매일 매일 다짐을 하면서도 어느새 그를 눈으로 쫒으며 계속 좋아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이런내가구질구질하게느껴질정도로. 정작 김정우는 내게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구질구질한 내 모습이 진짜 싫은데,



"이거 가져가. 이 저지 너꺼라며."
"됐어, 너 입고가. 춥다며."



근데 김정우 너는 미치게 좋다. 그래서 더 짜증난다. 고삼의 마지막 끝자락에 걸린 짝사랑은 독이었다. 진짜 울고싶은 마음 뿐이다.









7.
아, 김정우를 쭉 지켜보면서 하나 더 깨달았다.
항상 무표정인줄 알았는데, 지 친구들 곁에서는 꽤나 웃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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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막말로 욕 나오게 이쁘다. 저 웃는 얼굴을 이제것 왜 모르고 이 인생을 살았나 싶을 정도로.
알아, 나도 안다. 관심 없어서 몰랐던거. 누가 몰라서 그러나. 그냥.... 그냥 혼잣말이다. 짝사랑하다 보니 혼잣말이 익숙해졌다. 제 감정을 숨기는 것에 항상 더디고 더뎠던 내가 이제는 숨기고 멀쩡한 척을 하고, 게다가 더 나아가 그림자처럼 펄쩍 뛰어 숨는 것까지 나날이 실력을 늘려간다. 짧은 시간 내에 짬빠가 늘었나보다. 이런 짬빠만 늘어서 어따 써먹을까 싶은데, 지금 잘 써먹으니까 됐다 싶다.
진짜 찌질하기 그지 없는데, 그런데 죽어도 포기는 못하겠더라. 이제 포기하자, 너는 왜 내 앞에서 웃어서 사람 반하게 만드냐, 라는 그를 보며 하던 원망은 이제 변질되었다. 그 화살표는 나를 푹푹 찔러왔다. 조금만 더 일찍 좋아할 걸. 왜 이런 너를 몰랐을까, 나 진짜 바보다. 이젠 멍청이 같은 나를 원망한다.
이상하게 너는 아무리 봐도 밉지가 않다. 내가 그랬잖아. 진짜 욕 나올 정도로 좋다고. 내가 미쳤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회까닥 돌만큼 좋다고.





와씨, 또 눈 마주쳤어. 나는 책상 위로 세워 놓은 교과서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또 얼굴이 터질듯이 붉어진다. 나는 차가운 책상 위로 볼을 묻으며 멍하니 교과서를 바라본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져서, 일상이 되었다. 눈앞에하얗고까맣고염병 천병을하는교과서를바라보고있으면 깊은 한숨이터져나온다. 와,진짜중증이다.이제는답도없네.없어.
생각해보면 이제그와이렇게같은공간에서같은시간을공유할날이얼마남지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졸업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있기때문이다.아아-나도김정우도졸업안하면안되나.그러다고개를혼자절레절레저으며중얼거렸다.어후,김여주.말이되는소리를해라.고삼또하라고?사랑에미쳐서내가아주돌았구나.
누가 제발 시간 좀 멈춰줬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김정우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만착잡해진다. 진짜 빡치는게 짝사랑도 내 맘대로 못한다. 나는 무슨 운이 이따구야? 이래가지고 대학은 붙겠냐고. 하필 좋아해도 존나 철벽남 새끼를 좋아해서는......
그래 생각해보면 철벽남 김정우 죄는 아니고, 무조건 내 죄긴 하다. 내가 혼자 짝사랑 한 죄. 그래. 내 죄야..... 내가 더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그러다 혼자 또 바보처럼 망상한다. 아니, 그냥 눈 딱 감고 번호 따버려? 그러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미래를 예측하면서 나 혼자 또 수백번 포기한다. 생각보다 현실은 생각보다 막막했다.
나는 내가 김정우에게 번호를 따려고 다가갔을 때에 받을 상처가 지금 가마니로 있는 내 현재 상황보다 아주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잘 알고 있다. 솔직히 지금 현 상황만 봐도 그렇다. 김정우가 안경을 벗고 우리 학교를 얼굴로 제패하고 나서는 이제 그의 번호 따려고 줄 선 여자애들이 한 트럭이었다. 그만큼 그 숫자 그대로 빠꾸 당한 여자애들이 한 트럭이었고. 그래, 그림자처럼 맨날 김정우를 눈으로 쫒으며 혼자 짝사랑 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우리 반, 아니 우리학교 여자애들 중에 김정우 번호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그만큼 김정우는 철벽남이라는 것을.
그런 현실을 맞닥뜨리니 갑자기 김정우가.... 그러니까, 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아, 혼자 짝사랑 하니까 감정기복 하나는 진짜 심한 것 같다.. 하루에도 오조 오억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8.





김정우는 역시 본투비 범생이 답게 서울대를 수시로 붙었다. 결국 수능으로 서울대 최저 점수만 맞추면 된다고 담임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알게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직업, 고사미인 나는 김정우와 생기는 멀고 먼 거리감에 혼자 열심히 땅굴파고 들어갔다. 그를 보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 하나도 비빌 수 없는 내가 진짜 못나보였다.
아, 물론 나도 수시로 붙었다. 쟤는 서울대. 나는 그냥 뭐.... 비빌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서울은 했다. 내 머리 치고는 성공했다고 본다. 인서울이면 잘한거 아닌가. 일단 상위권이잖아. 담쌤도 우리 부모님도 내가 우리 학교 붙은걸 보고 존나게 기뻐하며 쌈바춤을 췄으니, 일단 내가 능력치를 넘어서 대학을 간 것은 확실할거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 말인 즉슨, 나의 이 거지 발싸개같은 짝사랑의 끝이 오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난 이제것 내 성격을 착각하고 살아온거 같다. 내 성격이라 하면 존나게 패기 넘치는데, 또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핵인싸에다가, 나름 싸가지는 또 없어서 할말 다하는 성격인데, 거기다 무식하고 드럽게 용감하고, 게다가 온 몸을 막가파로 무장한 어마무시한 녀석. 그게 바로 나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주장해왔는데.....
뭐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거 같다. 고백 같은건, 무슨 고짜에 고도 꺼내지 못하고, 심지어 고백하는 꿈도 못 꾸는걸 보면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냥 고자인거 같다. 하, 내가 고자라니..... 아무튼 이제는 김정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단계에 도달했다. 무소유. 그런 마인드.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미현이가 그랬다. 넌 이제 간디랑 헤이 듀드 하면서 어깨동무 할 수 있을 정도로 도 닦은거 같다고. 뭐, 인정 하는데 미현이가 그런 말 하니까 좀 기분 나쁘다. 야, 니가 짝사랑의 괴로움을 알아? 참나. 모르면 그 입 다물라 다물라 다물라.
근데 오늘 김정우도 존나게 잘생겼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화딱지 난다. 아악! 진짜 좋아!








9.







수능날까지 존나 별일 없었다. 기껏해야 초콜렛 전달했다. 페이스 투 페이스는 당연히 불가능 했고, 그냥 수능 3일 전날에 김정우 사물함에 초콜렛 넣으려다가, 하필 이 새끼는 드럽게 꼼꼼해서 자물쇠로 잠가 놨더라. 하여간 범생이 티 내기는. 그치만 포기할 수야 있나. 짝사랑은 원래 또 끈질기고 끈질긴 법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사라진 하교 후, 몰래 책상 서랍 밑에 넣으려고 봤는데......
와, 나는 기함을 토했다. 초콜렛,사탕,엿,기타등등오지게많더라. 그래서 그냥 나도많은먹을것들사이에 덤덤하게 내초콜렛끼워 놓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상하게 이런 내 모습이 초라해졌다. 그냥 김정우를 향한 내 마음이 초라했다. 그래서 그 날 큰 맘 먹고 집에 가서 엉엉 울었다. 진짜 거지같다. 짝사랑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다. 너무 초라해진다.
김정우, 너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여전히 너는 내게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염병을 떠는 중이다.






10.









시간은 또 흘러 흘러, 졸업식 날에 도달했다. 내 짝사랑? 너어무 여전했다. 이런 내 모습에 나 자신도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저을만큼. 그냥 눈 딱 한번만 질끈 감고 사진 찍어달라고 말해볼까. 그래도 말 좀 텄는데 사진 정도는 가볍게 찍어주지 않을까. 오늘은 그 누가 뭐래도 졸업식이니까. 머뭇머뭇, 내 발걸음은 그의 반경 100미터 이내로 맴돌았다. 꼭 그의 주변을 자전하는 행성처럼.
그런 내 바램과는 다르게 다른 친구들에게 붙잡혀서 사진만 오질나게 찍혔다. 나름 왈가닥 인싸였던 까닭이다. 하, 찍고싶은 사람이랑은 못찍고 다찍네. 이러다 김정우 빼고 전교생이랑 다 같이 찍겠어!! 속상한 마음에 괜히 발장구만 툭툭 치며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표정에도 입만 대빨 내미고 있을 때었다.



"같이 사진 찍어도 돼?"



뒤에서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그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또 놀라서 악! 하고 소리질렀다. 아 진짜. 야. 기별도 없이 그렇게 잘생긴 얼굴 들이밀면, 내 심장 놀라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겠다.



"미안, 놀랐어?"
"아... 조금."



그는 또 사람 마음 모르고 덤덤한 얼굴로 다정한 소리를 뱉는다. 아니 그니까 다른 사람에게 대입 하자면 또 딱히 다정한 대사는 아니었는데, 혼자 짝사랑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나 다정하게 들렸다 뭐 이런 말이다. 그는 잠시동안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내게 다시 묻는다.
저기.... 사진... 같이 찍어도 돼?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속으로는 존나게 예스 동그라미를 온 몸으로 댄스를 추며 격한 긍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현실 감각이 별로 없어서 겉으로 들어난 표정은 멍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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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사진은 진짜 뭣 같이 나왔다. 물론 김정우는 완벽했다. 내 얼굴이 뭣같았다고. 이런 멍청하고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진짜 뭣같았다. 아, 짜증난다. 마지막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고마워."
"........"
"잘 지내. 김여주."
"......"
"그리고 졸업 축하해."



진짜 마지막까지.... 진짜 마지막인데.... 나는 되는 일 하나 없이 끝내버렸다. 내 짝사랑을.



"너도."



그가 뒤돌아서 내 곁을 떠나고 나서야 나는 그 말을 내뱉었다. 너도 졸업 축하해. 정우야. 그의 앞에서 쑥스러워서 이 한마디 뱉지 못했다. 나는 주먹을 꾹 쥔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았다. 진짜 마지막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바보 김여주. 되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다. 운을 대학 가는 데에 다 써버렸을 정도로. 막말로 대학 대신 너랑 잘되는데 운을 쓸 수 있었다면, 주저 없이 그 선택을 했을 정도다. 그만큼 너가 좋았다.
아아-진짜싫다.정말끝까지초라하다. 여전히 너를쫒는시선이.
근데여전히 너는 좋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쫒을 정도로.











11.









"누나?"



동그란 얼굴을 들이 밀며 두 눈을 꿈뻑 거리는 동혁이의 얼굴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누나. 진짜 어제부터 왜 그래요. 정신 아예 가출한 사람 같아요. 방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했거든요? 핫 말고, 아.이.스!!!!! 나는 당황해서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다 말고 그대로 내 손등에 엎어트렸다. 아!! 화상을 입은 손등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온통 딴곳에 가있었다. 동혁이는 놀라서 내 손을 붙잡고 싱크대 가장 차가운 물을 틀어 그대로 내 손을 집어넣었다. 미쳤어요, 누나? 조심 안하죠.




"사장님께 제가 연락드릴테니까, 누나 오늘 빨리 퇴근해요. 어차피 그 손으로 누나 몇일동안 일 못할 각인데."




으으, 벌써 물집 잡혔다. 병원 꼭 가구요. 알겠죠? 화상 연고를 덕지 덕지 바른 내 손등에 각얼음을 가득 채운 비닐봉지를 올리며 그는 질질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묻는다. 진짜 혼자 괜찮겠어? 손님들 갑자기 오면 어떡해.
그 물음에 동혁이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짓는다. 아니, 누가 누구를 걱정해요. 어차피 사장님 콜 할거니까 걱정하덜 마셔요.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카페 서랍 구석에 놓여진 내 롱패딩을 몸에 걸치며 들고 온 크로스 백을 어깨에 걸쳤다. 내가 퇴근 준비를 하자 그는 실실 웃으며 말한다. 아, 그리고 누나. 어제 오늘 멍때리다 사고 났다는건 사장님께는 비밀로 해줄테니까 갑자기 뭐 그만두거나 그러면 안돼요. 알죠 누나? 빙고 게임 해줄 사람 누나밖에 없음.
퇴근 준비를 다 마친 나는 화상 당하지 않은 다른 손으로 동혁이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동혁아, 누나 진짜 가볼게. 나 진짜 가도 괜찮은거지? 그러니 동혁이가 훠이훠이 손을 내젓는다. 네네, 가세요. 좀. 나가려고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동혁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맞다 누나.




"근데 어제부터 보니까 첫 짝사랑인가 뭔가 하면서 계속 멍때리는거 같던데."
"어?"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거. 그 말에 동혁이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눈도 야리꾸리하게 치켜뜬다. 이게 진짜. 하여튼 이동혁. 눈치 오지게 빠르네. 아닌가, 그냥 내가 티가 잘 나는 얼굴인가. 나는 괜히 내 얼굴위로 손을 올려 매만진다. 찝찝하네. 나름 이제 얼굴에서는 티 안나게 행동한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 꼬맹이가 눈치챌 만큼 얼굴에 다 티가 난다니.




"아니 뭐,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비슷한 시간대에 거기 가보는건 어때요?"




그러다 마주치면 운명이다 생각하고 막용기내서번호도따버리고,사랑도 확 따버리고.라임오졌다.방금지렸다이동혁.자신 너무 완벽해서 사랑해. 그러다가 괜히 또 나를 붙잡아뒀다면서다시 훠이 훠이 손을 내저으며 이제 떠라나라고 말하는 그의 행동에 나는 크게 웃음이 터졌다. 하여튼 지 할말만 다 하고 또 보내네. 이 귀여운 놈.




"고마워 동혁아. 수고해!"




결국 멍때리다 사고 친 나는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퇴근길에 별생각없이걷다가무턱대고그를버스정류장에걸음을멈췄다.



'보니까짝사랑인가뭔가하면서계속멍때리는거같은데,그렇게마음에걸리면비슷한시간대에거기가보는건어때요?'




동혁이의 말이 스쳐갔다. 비슷한 시간대도 아니고, 장소만 같네. 나는 멍하니 그 곳에 서서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생각해보면 말이 안된다. 그게 김정우인지 솔직히 확실하지도 않고. 물론 내 눈은 정확하다고 믿지만, 아닐수도 있는거니까. 여기가 뭐 서울대 있는 정류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근처 정류장도 아닌데.
미쳤다고 이 큰 대한민국에서, 복잡한 서울에서 그렇게 그를 마주칠 수 있는게 말이나 되나 싶다. 아니, 그렇잖아. 내 짝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뭐 다 끝나고 이제와서 그런 인연이 있다는 것도 웃기고...... 짜증나지만, 내 첫 짝사랑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운 지지리도 없고, 초라하고, 그냥 온갖 개같은 수식어는 다 붙여도 어울리는 그런거.

근데 이상하게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짜증나게. 손등이 펄펄 끓어오르는데, 얼음 주머니만 손에 올린채 그 버스 정류장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하여튼, 미련한걸로는 곰인 웅녀보다 더 미련할거다. 그나저나 이거 병원 갈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 아프긴 오지게 아프네. 호- 호- 손등 위로 바람을 불며 화상 상처를 살펴보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야...... 착각 아니었다. 진짜 김정우다. 어제 비오는 날 봤던 그 사람. 내가 김정우라고 확신했지만 애써 부정했던 사람.
이게 몇 년만이더라. 아, 졸업한지 3년만이다. 아직까지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내 기억속에 또렷한 존재인데, 어째 겉모습은 조금 변한거 같다. 범생이 티도 완전히 벗은거 같고, 젖살도 빠진거 같은데. 거기다 원래도 컸던 키가 훨씬 더 큰거 같네. 얼굴은 조콩만해서 비율은 또 오지게 좋다. 원래 좋았는데 더 좋아졌다 이 말이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내 부자연스러운 시선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고개를 푹 숙였다. 그로 인해 다친 손등이 눈에 들어온다. 화끈 화끈, 아프고 물집이 터져 곪아 있다. 꼭 김정우를 짝사랑하던 내 마음처럼. 아 진짜 짜증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왜 하필 또 이럴때 마주치냐. 운도 지지리 없지.



'용기내서번호도따버리고,사랑도따버리고.'



동혁이의 말이 왜 그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근데 번호도 사랑도 뭣도 철판 깔고 걍 따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거지 같았다는게 문제다. 아니, 이 물집 잡힌 손으로 폰 내밀면서 번호는 어떻게 따냐고. 알바하다 나와서 메이크업 수정도 안 했는데. 나는 건성 김미연도 아니고 지성 김여주니까 얼굴도 기름이 더럽게 꼈겠지. 알바하느라 장작 4시간동안 아무 수정 화장도 안 했으니까.
아니 참나. 이 기름진 얼굴로 정우야, 나 기억하니. 정말 오랜만이야~ 라고 인사를 한다? 인사는 개뿔. 절대 안돼. 내가 수치스러워서 라도 절대 반대. 거기다 입술에 틴트는 남아있던가. 그러고 보니 아까 멍때리면서 입술 쥐어뜯어서 남아있을리가 없다. 꾹꾹 깨물은 까닭에 자연 틴트라도 남아있길 바라고 있지만, 사실 이 추운 날씨에 하얗게 질렸음 질렸지 생기 있을리도 없으니 그것도 말이 안된다. 아니다, 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이 운명같지만 운명이 아닌, 그러니까 나만 운명처럼 느껴지는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이 말이 안되는 것도 같다.



'누나!'
'용기내서번호도따버리고,사랑도따버리고.'



아니, 글쎄 말이 안된다니까 동혁아. 지금은 안된다고!!!! 머리속에 울리는 동혁이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여전히 푹 숙인채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단 확실한건 오늘은 날이 아니다.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버스정류장 뒤쪽으로 뱅 돌아서 걸어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오랜만에 듣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내 등 뒤로 들려왔다.



"손 다쳤어?"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며 그를 마주본다. 마주본 그는 가만히 버스정류장에 몸을 기댄 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잘못들었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네?
내 갑작스럽게 나온 존댓말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너는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아니면 못하는 척 하는 거야?"



그 물음에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꾸역꾸역 열었다. 그럼 너는 나 기억해? 그 물음에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응, 너 김여주잖아."



나긋한 목소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참 김정우는 여전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망쳐 놓는다. 내 온몸에 숨어있는 곳곳에 숨은 세포들까지 몇년이 지난 아직도 그에게 펄떡펄떡 반응했다. 졸업하고 3년이나 지났는데. 아, 이제 진절머리가 나고 지긋지긋하다.
근데 그를 향한 내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아, 진짜 거지같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벅차고 설레는지 아마 그는 모르지 싶다. 정우야,내가너를기억하지할리가없잖아.너는첫사랑이고,유일하게인정한인생유일한짝사랑인데. 입밖으로뱉지못한말을꾸역꾸역삼켜냈다.내가생각하기에도마음은그에게있어서너무뜬금없었으며,너무나도부담스럽게느껴질게뻔했다.
나를보는그는여전히덤덤한표정이다.한참을그는나를자신의눈에담은채혼잣말을하듯중얼거린다.김여주.내가너를기억못할리가없잖아.



"너가 내 첫사랑인데 어떻게 기억을 못 해."



내 짝사랑이긴 했지만......
그 말 한마디에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번쩍거리는 도시의 불빛들도 그대로 멈췄다. 꼭 우리 둘만 남은 듯이.​오랜 바램 끝에 내게 기적이 찾아왔다. 아니면 꿈인가 싶기도 하고. 진짜 꿈인가. 그렇다면 행복한 꿈이긴 한데.
그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예쁜 얼굴, 그리고 예쁜 미소로 웃으며 나를 바라봐왔다. 그리고 꿈속에서나 나와 말할 것만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근데 나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긴 해."



이렇게 말하면 너가 많이 부담스러우려나.



"근데 이번 아니면 이제 다시는 기회가 없을거 같아서."



그래서 용기 한번 내봤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덤덤하게 내뱉는 그의 말에 내 뺨 위로 눈물이 뚝 뚝 흘러내렸다. 어라, 진짜 꿈인가. 근데 이게 꿈이라면 다시는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정우야, 사실은 너는 모르겠지만 졸업식때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던 말이 있어. 모두들 고삼때 공부 적당히 한 내가 인서울 대학 붙은데 내 모든 운을 다 썼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의 운을 내가 선택해서 쓸 수 있다면 너와 마주보면서 웃는 것에 거침없이 이 운을 쓸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말이야. 나는 또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게 만약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겠다고. 영원한 꿈이었으면 한다고. 진짜너무행복해서,차라리영원히없는꿈이라도여기서너랑행복하고싶다는생각을했어. 영원히 잠을 자게 되어도 말이야.
나도이런생각을하는내가무서워.그만큼지독해.너를향한마음이.



"아니, 부담은 무슨. 나 완전 좋은데."



근데 너는 그런 내 지독한 마음을 몰랐으면 좋겠어.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
"김정우, 너가 내 첫사랑이거든."
"......"
"짝사랑이었지만."



아아- 김정우, 너는 사랑이다. 내 지독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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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작가님,,,,
미쳤어요 너무 아련하고 첫사랑 너무 잘 어울리고 너무 좋아요 아
제가 말을 너무 못해서 이런식으로 밖에 말을 못하는데 한마디 하자면 갓벽해요 진짜
사랑해요

•••답글
독자2
어엉ㅇ엉엉ㅇ엉ㅇ엉ㅇ엉엉엉ㅇ 진짜 너무 좋아서 침대위에서 탭댄스 추는 중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쓰실 수 있죠? 작가님이 쓰시는 모든 작품 제 취향저격입니다. 또 제가 정우 최애인건 어떻게 아시고 정우를....!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최고입니다! 비지엠까지 완벽해요!
•••답글
독자3
작가님 진짜 모든 장르를 이렇게 다 잘쓰시면 오바쌈바 아오 제 심장 어뜨케 오늘도 브금은 찰떡 너무도 행복.... 감사합니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항상 행복하시구 건강하세요!!!!!!!
•••답글
독자4
아아아아아아앙아아ㅏ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 내가 다 두근거려 ㅠㅠㅠ 진짜 ㅠㅜ 아련보스 김정우 ㅠㅠ 작가님 글은 항상 대박이에오 ㅠㅠㅠ 진짜진짜 감사합니당 작가님 ㅠㅠ 💚💚
•••답글
독자5
와....... 작가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ㅜㅠㅠㅠㅜㅠㅜ하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심장아파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6
하ㅜㅜㅜㅜㅜ진짜ㅜㅜㅜ아련한데 설레고ㅠㅠㅠㅠ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7
아악!!!!!!!!작가님ㅠㅠㅠㅠㅠㅠ미쳐써요미쳐써🙈분위기진짜크으....👍👍👍이거 설마 단편,.인가요?????
•••답글
독자8
.....작가님 뒤집개 죠? 제 마음 다 뒤집어 엎어 놓으셨어요ㅠㅠㅠㅠㅠㅠㅠ 분위기 뭐죠ㅜㅜㅜㅜㅜㅜ 아아아아가 작가님 진짜 짱이에여ㅠㅠㅠ
•••답글
독자9
와 진짜 대박이에요 오ㅓ
•••답글
독자10
작가님 짤들은 어디서 이렇게 완벽하게 주워오시눈거예여? 천재인가요? 작가님 에프포 쓰셔서 작가님이 이제 현세계에 벗어나시려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상글같이 나에게 일어날것같이 쓰시나구여!! 주위를 둘러보게 되잖아요!! 사랑한단 뜻이예요!
•••답글
독자11
에프포 읽다가...숨 넘어 갈 뻔 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현실에선 짝사랑조차도 한 적이 없어 또 이렇ㄱㅔ 대리 연애해보고 가요 ㅋㅋㅋㅋ
•••답글
비회원154.107
와 작가님 너무 설레서 죽을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
이건 진짜 후속작 있어야돼요 둘이 꽁냥꽁냥 사귀는것도 써주세요💚

•••답글
비회원228.188
작가님,,,,진짜 미쳤어요,,,진짜 나죽어
없던 첫사랑이 생긴기분,,,,잠못자,,,
진짜 작가님 모든작품이 제 취향저격이에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진짜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ㅜㅜ💚ㅜㅜ엉엉우ㅜ

•••답글
독자12
아아아아아악 작가님 이건 그냥 대박이에요ㅠㅠㅠ 여고에다가 짝사랑도 해본적 없는데 그냥 지독한 짝사랑 이미 한 느낌이에요ㅠㅠ 엄청 몰입해서 한글자 한글자 곱씹으면서 천천히 상상하면서 읽었더니 거의 한시간 걸린거 같아요 물론 중간중간 멈춰가면서 보긴했지만요ㅎㅎ 근데 아무튼 이건 대박이에요 작가님은 그냥 대박 아몰라요 너무 좋아요 그냥 작가님 사랑합니다💚💚💚
•••답글
독자13
첫사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 인생에 ㅜㅜ저 심장 ㅜㅜㅜㅜ 떨려요ㅜㅜ
•••답글
독자14
아아아ㅏ아아각
•••답글
독자15
작가님 저 진짜 죽을거같아요....너무 좋아서 지금 심장 약간 멈춘거같은데
•••
독자16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작가님 진짜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독자17
와 작가님,,,, 진짜 대박이에요ㅠㅠㅠㅠ
너무 설레고 아련하고 ㅜㅜㅠㅠㅠ
사랑합니다 작가님,,,

•••답글
독자18
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아련하고 설레고 .. 저 지금 짝사랑 하나 하고 왔어요ㅠㅠㅠ 진짜 정우야..... 작가님 감사합니다ㅜㅜ
•••답글
독자19
와 진짜... 사랑해요..
•••답글
독자20
기억조작 갑입니다 이거...저 지금까지 짝사랑하고 았는 줄......
•••답글
비회원80.15
작가님,, 이건 정우 시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있지도 않은 첫사랑이 생겨버렸슴다,,
•••답글
독자21
암호닉 안 받으시나요? 신청받으신다면 전 [아이고 앓다죽을작가야]로 신청하겠습니다. 첫사랑 보관소라는 제목답게 제발 이건 작가님 삭제리스트에 오르지 않길 빌어요...., 방심하지 않을거에요.
•••답글
독자22
아 미쳤어요 미쳤어... 이런 아련한 첫사랑이랑 짝사랑 해본적은 없지만 오늘부로 제 첫사랑 김정우입미다ㅜㅜ o<-<
•••답글
독자23
하...정말 너무너무어무너무너무 좋아요
제 첫사랑 기억도 같이 더듬더듬 소환햇아요
진짜ㅜㅜㅜㅜㅜ 행복한 결말이라 너무 좋네요
만수무강하세여ㅜㅜ

•••답글
독자24
와 작가님 .., 진짜 최곱니다 여주의 짝사랑의 감정이 정말 다 느껴지네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첫사랑 김정우라니 ., 진짜 잠 다 잤습니다
•••답글
독자25
제목부터 김정우랑 찰떡이구요ㅠㅠㅠㅠㅠㅠㅠ 김정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엉덩이로 탭댄스도 출 수 있을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26
진짜오 작가님 글 보고 있던 첫사랑 바뀔 뻔 했어요ㅠ아니 어떻게 이렇게 한줄한줄 감정이 움직일 수 있을까요 흑흑 최고입니다
•••답글
독자27
말도 안돼 .......... 아 너무 글이 좋아요 ㅠㅠㅠㅠㅠ 아 진짜 뭐랄까 그 때로 돌아가서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고 좀 말도 계속 걸어보고 그랬으면 고딩때도 사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 뭔가 현실감있다해야하나ㅜ그래서 더 몰입이 잘돼요 ... 진짜 환장하겠네 ...
•••답글
독자28
서로의 첫사랑이라니 그리고 비오는 날의 다시 만남이라니 아 이거 완전ㅜ 취향 저격 탕탕아닙니까 바부여주야,,, 정우가 왜 갑자기 안경을 벗고 왔겠어ㅜ 너 때문이지바부야ㅜ 제 학창시절 비오는 날은 야자 쉬는 시간에 매점 간다고 양말벗고 슬리퍼 신은 채로 우산 쓰고 달려가는 건데요ㅜ
•••답글
독자29
첫사랑 재질 정우랑 비지엠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낸 기억조작 어쩔거예요 작가님ㅠㅠㅠㅠ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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