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뒤에서 봤는데 되게 힘들어 보이길래"
작아서 그런가, 하긴 넌 예전부터 작았지. 자연스레 말을 이으며 여주의 아이스크림을 녹이는 태형의 손가락이 붉었다. 여주가 제 입에 물린 아이스크림을 주물거리는 태형의 손을 둥글게 감쌌다. 얼마나 기다렸어? 태형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좋아서 기다린거니까 뭐라 하지말고. 태형이 다시 한번 입을 열려는 여주의 입술을 툭 건드렸다. 유연하지만 완고한 태도에 여주의 입이 다물렸다. 쓸데없는 부분에서 단호하지. 태형은 그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매일 집 혼자 간거야?"
"알바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뭘.."
"앞으로가 위험하다는거지"
여주는 태형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으려다가도 얼마전에 완전히 고장나버린 가로등이 떠올랐다. 딱히 그것 때문에 위험해졌다는 건 아니였지만 아롱아롱 달려있던 빛마저 없이 암흑으로 잠겨버린 골목이 괜히 싫었다. 여주를 잔잔히 내려다보던 태형이 아이스크림이 묻은 여주의 볼을 살짝 훑어내렸다. 여주는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쭉 빨아들였다.
"내가 매일 올게"
"뭐? 안돼 너 피곤해"
"..."
어느새 가까워진 집에 태형 쪽으로 몸을 돌린 여주가 끼익, 열리는 현관문을 주시했다. 안에서 나온 정국이 마주친 여주와 태형을 길게 응시했다. 정국의 시선이 마주잡은 태형과 여주의 손으로 내려갔다. 힘을 주어 맞잡은 태형의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여주가 태형을 올려다보며 미약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미동없이 정국을 바라보던 태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여주를 보며 웃는 것처럼 잔잔한 빛이 서린 미소는 아니였다.
"사랑해 여주야"
정국이 개의치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전히 집요한 시선을 두는 정국을 이기지 못한 여주가 천천히 시선을 마주했다. 여주의 코 끝에 저와 같이 쓰는 정국의 바디워시 향이 훅 끼쳐들어왔다. 우린 지금 같은 향기를 품고 있을까.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까.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날 사랑하고 있을까.
"..나도 사랑해"
주저하다 결국 제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말을 잇는 여주에 정국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 올라가는 티셔츠를 잡고있던 여주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여주의 몸을 끌어안은 정국이 그대로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품에 안긴 여주는 제 것이였다.
그때도 지금도 언제든지.
***
"어서오세.."
교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들어온 손님에 여주가 빠르게 카운터를 정리했다. 딸랑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열린 문이 그대로 멈췄다. 카운터에 가계부를 가지런히 올려놓던 여주도 그대로 굳은 채 들어오는 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석진의 눈이 둥글게 올라가기도 잠시 입가에 생글거리는 웃음을 달았다.
"미스코리아씨 여기서 알바하는구나"
"..시비 걸러 오셨어요?"
"제 이름은 김석진이예요"
발걸음을 맞춰 걷던 석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성가셨던 목소리가 약간은 가라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린 여주가 그런 석진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이상한 사람이였다. 두 번 보고 말 사람한테 굳이 제 이름까지 알려주는 사람이라니. 입가에 걸린 가벼운 웃음과는 다르게 꽤나 진중한 눈빛이 모순적이였다.
"저번에 그쪽 울린 남자친구죠"
"..."
"같이 사는 집 앞에서 되게 진하네"
덤덤하게 눌린 석진의 목소리에 여주가 정면을 응시했다. 다 온 집 앞에서 저번에 봤던 여자와 입을 맞대고 있는 정국이 보였다. 저번에 나가서 보지 못했던 그 여자였을까. 고작 두번째라고 어이없이 담담해진 태도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픈만큼 곪아버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를 내는 여자를 말리려다 맞아버린 입술이였는지 들린 여자의 손목을 잡은 정국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넌 사람 참 끝까지 비참하게 하는구나. 여주가 텅 빈 눈을 고정했다. 사랑에 있어서 을에 놓인 사람은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그럼 나랑도 해요"
어쩌면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시야에서 사라진 정국의 모습에 여주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제 허리를 잡고 돌린 석진의 손길이 꽤나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 날 봤던 김석진은 아픔에 취해 보았던 환상이 아니였다. 단단하게 저를 옭아맨 입술이 텅 빈 마음을 쓰다듬고 있었다. 김석진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실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실없는 것이 그저 사람이 가벼워서 그랬다 단정지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모호한 모든 것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방글방글 웃다가도 미묘하게 굳은 표정이, 포근하게 감싸다가도 아찔하게 닿은 입술이 그렇게 모호했다. 모든 것이 모호한 그를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김석진은 적어도 두 번 보고 말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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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강이긴 하지만 저두 개강이라 앞으로는 좀 slow 해질 것 같아요 우리 독자님들도 바쁘지만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저번 화에 댓글 너무 예쁘게 달아주신 진이님, 말랑이님, 하늘 연 달 열사흘님, 토깽이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글 쓰고 있어요!ㅎㅎ♡
+ 댓글 다시는 분들 암호닉 달아주세요!
나중에 결말 번외 드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