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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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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의 법칙






석진은 당분간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여주랑 만나기도 편하고 회사 일도 본사에 꼭 있어야 할 만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을 일주일 정도 빌린 석진은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물론 그마저도 완전한 휴가는 아니어서 대부분은 업무를 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사장님이 나홀로 부산 출장을 감행해버린 바람에 비서 실장은 꽤 당황했지만 워낙에 일 잘하는 사장님인지라 별 말도 못하고 알았으니 일주일 뒤엔 꼭 오셔야 한다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부산은 거의 10년만인가.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맑게 갠 하늘을 보니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게 꿈처럼 느껴질 만큼 석진은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일주일치 일을 3일만에 마무리한 석진은 쌉싸름한 커피로 목을 축인 후 기지개를 켰다. 업무 화면 창을 끄자 '결혼 계약서'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파일이 열려 있다. 

오늘 여주씨 만나는 날이네. 저녁 무렵에 만나기로 한 여주를 어디서 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여태 '경영18 배여주'로 저장돼있지만 석진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초록색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여보세요."
-교수님 저 여준데, 저희 오늘 보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오늘 바빠요?"
-아, 아니여아니여, 돼요!(다급) 그럼 교수님 지금 호텔에 계시는 거예요?
"응, 근데 그냥 내가,"
-그럼 제가 교수님 방으로 찾아가면 돼요?
"ㅇ,아니,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여주씨 집 근처로 갈게요. 응, 나중에 봐요."


통화를 종료한 석진은 괜히 뒷목을 긁적였다. 겁이 없네, 이 아가씨가. 
함부로 호텔 방에 찾아간다는 소릴 하는 여주에 석진은 꽤 당황했다. 목소리가 마냥 해맑은게,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던 듯 하지만 상대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어찌됐든 위험한 거였다. 이러다 나쁜 사람이 같이 가자한다고 따라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불안하네.(진짜 애기로 보는중) 
여주가 조심성이 없는 것 같으니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석진은 열려 있던 파일에 조항을 추가했다.  


여주는 자신이 석진을 당황케 만들었다고는 1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옷 고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데이트 아닌 거 아는데 그래도 좀 예쁘게 하고 가면 좋잖아..! 
핫쉬 근데 입을 게 하나도 없네. 근 1년동안 옷을 한 벌도 안 산 여주 옷장에는 작년에 산 옷들 뿐이었다. 유행따라 옷을 사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대부분 기본 아이템들이었지만 그래도 저번처럼 소매 닳은 가디건에 청바지 입고 만나기는 싫어서 최선을 다해 원피스나 치마를 찾았다. 그나마 이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노란색 잔꽃무늬가 상큼한 원피스 위에 작년 봄에 산 하얀 가디건을 입은 여주는 거울로 오랜만에 꾸민 제 모습을 바라봤다. 맨날 편한 옷만 입어서 그런지 괜히 어색해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화장품도 거의 없어서 진짜 필요한 것만 대충 바르고, 이번엔 머리를 묶을까 풀까를 한참 고민했다. 일한다고 맨날 묶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풀까..? 

"주야, 니 약속 시간 다 돼가는데 안 나가나."
"어? 지금 몇 시예요?" 
"지금 다섯 시 반 넘었는데." 
"허어어어ㅓ어엌"  

머리 고민은 사치였다는 걸 깨달은 여주는 대충 빗기만 하고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서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6시에 집 근처로 온댔으니까 적어도 지금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여주 저래 꾸미고 어디 가노."
"당신 못 들었나. 여주 남자친구 생겼댄다."
"(청천벽력)"
"알바한다고 바빴을텐데 언제 만났능가 몰라."
"우리 딸래미 아직 어린데 결혼한다는 건 아니겠지."
"결혼한다는 거 같던데. 당신도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라."
"(우울)"
"남자 쪽이 돈이 좀 많은가 보던데 왜 우리 여주랑 결혼할라는지 몰라."
"여주가 예쁘니까 그렇지.(팔불출 부성애)"
"요즘 예쁜 아가씨들 쌨는데, 뭐.(객관적)"

부모님이 저의 결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며 그래서 결혼 자금은 또 어떻게 마련해주나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토도도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간 여주는 석진이 온다고 했던 버스정류장 근처 도로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지금 오고 계시겠지? 교수님 차가 뭐였더라!(차알못) 

그 때 멀리서 주인을 닮은 듯 단정한 하얀 차가 여주의 앞에 섰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계약결혼의 법칙






석진은 당분간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여주랑 만나기도 편하고 회사 일도 본사에 꼭 있어야 할 만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을 일주일 정도 빌린 석진은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물론 그마저도 완전한 휴가는 아니어서 대부분은 업무를 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사장님이 나홀로 부산 출장을 감행해버린 바람에 비서 실장은 꽤 당황했지만 워낙에 일 잘하는 사장님인지라 별 말도 못하고 알았으니 일주일 뒤엔 꼭 오셔야 한다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부산은 거의 10년만인가.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맑게 갠 하늘을 보니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게 꿈처럼 느껴질 만큼 석진은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일주일치 일을 3일만에 마무리한 석진은 쌉싸름한 커피로 목을 축인 후 기지개를 켰다. 업무 화면 창을 끄자 '결혼 계약서'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파일이 열려 있다. 

오늘 여주씨 만나는 날이네. 저녁 무렵에 만나기로 한 여주를 어디서 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여태 '경영18 배여주'로 저장돼있지만 석진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초록색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여보세요."
-교수님 저 여준데, 저희 오늘 보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오늘 바빠요?"
-아, 아니여아니여, 돼요!(다급) 그럼 교수님 지금 호텔에 계시는 거예요?
"응, 근데 그냥 내가,"
-그럼 제가 교수님 방으로 찾아가면 돼요?
"ㅇ,아니,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여주씨 집 근처로 갈게요. 응, 나중에 봐요."


통화를 종료한 석진은 괜히 뒷목을 긁적였다. 겁이 없네, 이 아가씨가. 
함부로 호텔 방에 찾아간다는 소릴 하는 여주에 석진은 꽤 당황했다. 목소리가 마냥 해맑은게,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던 듯 하지만 상대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어찌됐든 위험한 거였다. 이러다 나쁜 사람이 같이 가자한다고 따라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불안하네.(진짜 애기로 보는중) 
여주가 조심성이 없는 것 같으니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석진은 열려 있던 파일에 조항을 추가했다.  


여주는 자신이 석진을 당황케 만들었다고는 1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옷 고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데이트 아닌 거 아는데 그래도 좀 예쁘게 하고 가면 좋잖아..! 
핫쉬 근데 입을 게 하나도 없네. 근 1년동안 옷을 한 벌도 안 산 여주 옷장에는 작년에 산 옷들 뿐이었다. 유행따라 옷을 사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대부분 기본 아이템들이었지만 그래도 저번처럼 소매 닳은 가디건에 청바지 입고 만나기는 싫어서 최선을 다해 원피스나 치마를 찾았다. 그나마 이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노란색 잔꽃무늬가 상큼한 원피스 위에 작년 봄에 산 하얀 가디건을 입은 여주는 거울로 오랜만에 꾸민 제 모습을 바라봤다. 맨날 편한 옷만 입어서 그런지 괜히 어색해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화장품도 거의 없어서 진짜 필요한 것만 대충 바르고, 이번엔 머리를 묶을까 풀까를 한참 고민했다. 일한다고 맨날 묶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풀까..? 

"주야, 니 약속 시간 다 돼가는데 안 나가나."
"어? 지금 몇 시예요?" 
"지금 다섯 시 반 넘었는데." 
"허어어어ㅓ어엌"  

머리 고민은 사치였다는 걸 깨달은 여주는 대충 빗기만 하고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서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6시에 집 근처로 온댔으니까 적어도 지금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여주 저래 꾸미고 어디 가노."
"당신 못 들었나. 여주 남자친구 생겼댄다."
"(청천벽력)"
"알바한다고 바빴을텐데 언제 만났능가 몰라."
"우리 딸래미 아직 어린데 결혼한다는 건 아니겠지."
"결혼한다는 거 같던데. 당신도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라."
"(우울)"
"남자 쪽이 돈이 좀 많은가 보던데 왜 우리 여주랑 결혼할라는지 몰라."
"여주가 예쁘니까 그렇지.(팔불출 부성애)"
"요즘 예쁜 아가씨들 쌨는데, 뭐.(객관적)"

부모님이 저의 결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며 그래서 결혼 자금은 또 어떻게 마련해주나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토도도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간 여주는 석진이 온다고 했던 버스정류장 근처 도로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지금 오고 계시겠지? 교수님 차가 뭐였더라!(차알못) 

그 때 멀리서 주인을 닮은 듯 단정한 하얀 차가 여주의 앞에 섰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계약결혼의 법칙






석진은 당분간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여주랑 만나기도 편하고 회사 일도 본사에 꼭 있어야 할 만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호텔 스위트룸을 일주일 정도 빌린 석진은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물론 그마저도 완전한 휴가는 아니어서 대부분은 업무를 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사장님이 나홀로 부산 출장을 감행해버린 바람에 비서 실장은 꽤 당황했지만 워낙에 일 잘하는 사장님인지라 별 말도 못하고 알았으니 일주일 뒤엔 꼭 오셔야 한다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부산은 거의 10년만인가.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맑게 갠 하늘을 보니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게 꿈처럼 느껴질 만큼 석진은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일주일치 일을 3일만에 마무리한 석진은 쌉싸름한 커피로 목을 축인 후 기지개를 켰다. 업무 화면 창을 끄자 '결혼 계약서'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파일이 열려 있다. 

오늘 여주씨 만나는 날이네. 저녁 무렵에 만나기로 한 여주를 어디서 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여태 '경영18 배여주'로 저장돼있지만 석진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초록색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여보세요."
-교수님 저 여준데, 저희 오늘 보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오늘 바빠요?"
-아, 아니여아니여, 돼요!(다급) 그럼 교수님 지금 호텔에 계시는 거예요?
"응, 근데 그냥 내가,"
-그럼 제가 교수님 방으로 찾아가면 돼요?
"ㅇ,아니,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여주씨 집 근처로 갈게요. 응, 나중에 봐요."


통화를 종료한 석진은 괜히 뒷목을 긁적였다. 겁이 없네, 이 아가씨가. 
함부로 호텔 방에 찾아간다는 소릴 하는 여주에 석진은 꽤 당황했다. 목소리가 마냥 해맑은게,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던 듯 하지만 상대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어찌됐든 위험한 거였다. 이러다 나쁜 사람이 같이 가자한다고 따라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불안하네.(진짜 애기로 보는중) 
여주가 조심성이 없는 것 같으니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석진은 열려 있던 파일에 조항을 추가했다.  


여주는 자신이 석진을 당황케 만들었다고는 1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옷 고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데이트 아닌 거 아는데 그래도 좀 예쁘게 하고 가면 좋잖아..! 
핫쉬 근데 입을 게 하나도 없네. 근 1년동안 옷을 한 벌도 안 산 여주 옷장에는 작년에 산 옷들 뿐이었다. 유행따라 옷을 사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대부분 기본 아이템들이었지만 그래도 저번처럼 소매 닳은 가디건에 청바지 입고 만나기는 싫어서 최선을 다해 원피스나 치마를 찾았다. 그나마 이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노란색 잔꽃무늬가 상큼한 원피스 위에 작년 봄에 산 하얀 가디건을 입은 여주는 거울로 오랜만에 꾸민 제 모습을 바라봤다. 맨날 편한 옷만 입어서 그런지 괜히 어색해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화장품도 거의 없어서 진짜 필요한 것만 대충 바르고, 이번엔 머리를 묶을까 풀까를 한참 고민했다. 일한다고 맨날 묶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풀까..? 

"주야, 니 약속 시간 다 돼가는데 안 나가나."
"어? 지금 몇 시예요?" 
"지금 다섯 시 반 넘었는데." 
"허어어어ㅓ어엌"  

머리 고민은 사치였다는 걸 깨달은 여주는 대충 빗기만 하고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서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6시에 집 근처로 온댔으니까 적어도 지금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여주 저래 꾸미고 어디 가노."
"당신 못 들었나. 여주 남자친구 생겼댄다."
"(청천벽력)"
"알바한다고 바빴을텐데 언제 만났능가 몰라."
"우리 딸래미 아직 어린데 결혼한다는 건 아니겠지."
"결혼한다는 거 같던데. 당신도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라."
"(우울)"
"남자 쪽이 돈이 좀 많은가 보던데 왜 우리 여주랑 결혼할라는지 몰라."
"여주가 예쁘니까 그렇지.(팔불출 부성애)"
"요즘 예쁜 아가씨들 쌨는데, 뭐.(객관적)"

부모님이 저의 결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며 그래서 결혼 자금은 또 어떻게 마련해주나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토도도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간 여주는 석진이 온다고 했던 버스정류장 근처 도로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지금 오고 계시겠지? 교수님 차가 뭐였더라!(차알못) 

그 때 멀리서 주인을 닮은 듯 단정한 하얀 차가 여주의 앞에 섰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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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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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ㅠ수ㅠ님ㅠ이ㅠ밥ㅠ을ㅠ너ㅠ무ㅠ귀ㅠ엽ㅠ게ㅠ드ㅠ시ㅠ자ㅠ나ㅠ


자기가 햄찌야 뭐야ㅠㅠㅠㅠ너무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장 아파ㅠㅠㅠㅠㅠㅠ그냥ㅠㅠㅠㅠ존나ㅠㅠㅠㅠ귀엽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주씨 왜 안 먹어요?새우 상태가 별론가?"


여주가 부정맥이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석진은 갑자기 가슴께를 짓누르는 여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입 안에 파스타를 오물거리며 순하게 물어보는 모습이 꼭 어릴 때 사촌 언니 집에서 구경했던 햄스터 츄츄를 보는 것 같다.

 

"아, 아니여 먹어요! 입맛에는 맞으세요?"

"응, 생각보다 맛있네요(옴뇸)"

"(2차 씹덕사)"


 

 

**여주가 지금껏 봤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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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

"괜찮아요, 그냥 내가,"

"제발여..제가 사게 해주세요 제발..(받고만 있는 거 못 버티는 타입)"

"저번에 만날 때도 여주씨가 커피 샀잖아요."

"않ㅇ...(생각해보니 그럼)"

"다음에요. 우리 앞으로 엄청 자주 볼 건데, 그 때 사면 되지."

"네에.."

"그리고 나 만날 때는 금전적인 거 생각하지 마요. 말했잖아요, 다 해주고 싶다고."

"그래도,"

"나는 여주씨가 나한테 부담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ㅇㅏㄴ...네엥....."


뭔가 반박을 하고 싶긴 한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교수님은 재벌이고...커피는 껌값도 아닐 거고...생각해보니 나는 왜 교수님 지갑 사정을 걱정하는가...마치 빌 게*츠 노후걱정을 한 거 같다는 기분에 여주는 숙연해졌다. 그렇지만 나도 교수님한테 뭔가 해드리고 싶은데.


"여주씨는 스무디 먹을래요?"

"네, 자몽...엏 아니다 민트초코요."


카페 메뉴판에서 민트초코 스무디 7글자를 발견한 여주는 고민없이 주문했다. 스무딘데!민트초코라니!(행복)


"...민트초코 좋아해요?"

"넹."

"그렇구나..."


당황하는 눈빛에 누가봐도 '민트초코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써있다. 교수님 민초배척단이시구나. 민트초코의 매력을 모르다니, 여주는 석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역시 세상은 공평해.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게 분명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2층 구석으로 자리를 잡은 석진과 여주는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석진은 호텔 프론트에서 뽑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보고 바꾸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요. 

그 목소리에 여주의 눈동자가 꼼꼼히 계약 내용을 스캔한다. 자고로 싸인은 아무데나 하는 거 아니라고 엄마가 그랬다. 김석진이 내미는 거면 노예계약서라도 덜컥 서명할 거 같지만. 


[결혼 계약서]

김석진(이하 김)과 배여주(이하 배)는 혼인에 앞서 다음과 같이 계약을 체결한다.

1. 두 사람은 계약이 체결된 시점을 기준으로 2달 안에 혼인 신고 및 결혼식을 진행한다.

2. 결혼 기간은 혼인 신고일을 기준으로 1년이며 이후 바로 이혼할 수 있다.

3. 상황에 따라 언제든 합의를 기반으로 이혼할 수 있다.

4. 김은 배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 생활을 지원하며 부모님 역시 부양한다.

5. 이혼 시 김은 배에게 별도의 위자료를 지불한다.

6.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7. 동거 시 각방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대충 알고 있는 거였다. 7번만 빼고. 뭐 교수님이 날 좋아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니 6번까진 이해하는데 7번은 조금 상처... 각방이라니. 각방이라니!!


"왜요?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요?"

"ㅇ..아니여 없어여..."


여기서 7번 조항이 마음에 안듭니다, 했다가는 음흉한 여자로 낙인 찍혀서 결혼이고 뭐고 다 파토날 각이었다.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지, 뭐...


"교수님은 뭐 더 추가하실 건 없으신지..."

"아. 있어요."


여기서 더 추가될 게 있나..? 혹시 아예 집도 따로 살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여주의 불안한 동공과 다르게 석진은 차분하게 옅은 웃음을 띄었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여주씨는 나 언제까지 교수님이라고 부를거예요?"

"예?"

"어쨌든 남편인데 교수님은 조금... 내가 너무 쓰레기 같고... 아니 뭐,맞긴 맞는데...."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한지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석진이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쒸이ㅂ.... 하. 위험했다. 너무 귀여워서 욕할 뻔 했어. 

아까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알고보니 교수님은 귀엽기까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여주는 다시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마치 탄방소년단 덕질할 때 같은 기분이야....!짜릿해...!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오빠...?"

"오빠요..?"

"죄송해여, 좀 아닌 듯; 선 넘었네요, 제가."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에요. 듣기는 좋았어요."

"그럼 사장님?"

"그건 좀 비서 같지 않아요?"

"흠, 근데 아저씨라고 할 순 업자나요."

"그쵸..."

"석진씨...?석진 씨 어때요."

"괜찮네요."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뭐 시트콤도 아니고. 호칭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모쏠 배여주는 또 배웠다. 교수님한테 석진 씨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다. 괜히 식은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어째 이 호칭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거란 예감이 든다.


"근데 여주씨 알바는 그만뒀어요?"

"네, 일주일 더 하기로 했었는데 요즘 알바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바로 구하셔가지고 그냥 그만 뒀어요."

"그렇구나. 그럼 서울엔 언제쯤 올 생각이에요?"

"글쎄요, 저는 그냥 언제든지 상관 없어서..(백수)"

"그럼 결혼을 다음달 쯤에 하고,"

"ㄴ.."

"집은 지금 옮길래요?"

"예..?"

"나 수요일에 호텔 방 빼고 서울 갈 건데, 괜찮으면 그 때 같이 가요."


사람은 참 간사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방이라니!!이건 말도 안된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던 여주는 막상 같은 집에 살게 될 날이 성큼 다가오게 되자 망설였다. 

배여주가 누군가. 겁은 많고 깡은 없는 쫄보 중의 쫄보가 아니었던가. 절절하게 편지까지 써 가며 고백하고 결혼을 3초만에 냉큼 수락한 것은 애초에 지극히 저답지 않은 행동의 연속이었으니. 따지자면 지금이 더 배여주다운 행동이었다. 


"아...아직 좀 불편해요?"

"ㅇ, 아니요! 그게 아니구,"

"같이 살면서 생활 패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로 편해지면 더 좋고."

"네, ㄱ,그럽시다."


침착한 척 대답했지만 여주는 표정으로, 목소리로 속내가 다 보였다. 투명함 그 자체인 여주를 느릿하게 훑던 석진은 픽 웃음이 났다. 매번 속을 숨기고 접근하는 혼탁한 눈동자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던 석진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투명함이 못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여주씨 지금 얼굴 엄청 빨개졌어요."

"제가요? ㅇ,아 저 원래 잘 빨개져요! 조금 덥기만 해도 빨개지구..."

"그래요?"

"ㄴ,네 진짜로."

"여주씨가 더위를 잘 타는 구나."


석진의 말에 불현듯 바로 옆에 에어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도를 보니.... 망할. 18도네. 


"여주 씨 쓸 방에 에어컨 하나 더 달아야겠네."

"ㄱ..괜찮습니다....저 선풍기 하나만 있어도 잘 살아요..."


망연자실한 여주는 눈 앞의 민초 스무디를 쪽 빨아들였다. 달지만 쌉싸름한 게 지금의 이중적인 심정과 닮았다. 좋긴 좋은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약간은 불안한. 


아니 근데 그와중에 얼굴은 왜 빨개져 가지고. 뭐만 해도 잘 달아오르는 뺨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각방을 쓴다해도 어쨌든 동거라는 생각을 한 게 화근이었다. 

나 이상한 생각 안했는데... 진짜로.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암튼 아님. 모르겠고, 무조건 아님.




"무슨 생각해요?"

"예? 저 이상한 생각 안해ㅆ......"




아. 

아.

시발. 망....

배여주 입. 제발... 제발 닥쳐.


잠시 동그래지던 석진의 눈은 곧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곱게 휘어졌다. 여주는 그 앞에서 낱낱이 제 안을 다 내보인 기분이었다. 

이건 진짜 인생 수치스러운 기억 탑5다. 아닌가, 탑10 정돈가.(수치스러운 경험콜렉터)


"응, 여주 씨 이상한 생각 안 했구나-"

"놀리지 마세여, 제발. 저 지금 진짜 너무 수치스러워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저 진짜 이상한 애 아니거든여...막 음흉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여...(울컥)"

"아닌 거 알아요.ㅋㅋㅋㅋㅋ 그런 생각 할 수도 있지, 걱정 되면."

"..?"

"여주 씨가 걱정할 만한 일 안 만들 거니까, 마음 놓고 와도 돼요."

"ㄴ.....넹...."


저를 이상하게 보지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주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적한 기분이 조금 솟았다. 정말 나를 여자로 생각하시지는 않는구나. 그러니까 지금 대화의 맥락에서 걱정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 사이는 여기서 더 가까워지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었다. 

석진이 세운 벽은 석진을 닮아서 부드럽고 완곡했다. 그러나 여주는 차라리 그 벽이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단하다면 부딪힐 때 너무 아파서 다시 달려들 용기조차 못 낼 텐데, 운이 좋다면 그 벽을 깰 수라도 있을 텐데. 석진의 벽은 젤리처럼 말랑해서 몇번이고 여주를 상처없이 튕겨냈다. 그러나 상처 대신 어지러움과 쓰린 속이 남았다. 부드러운 벽은 여주를 튕겨냈지만, 그 반동 탓인지 또다시 석진에게 이끌리듯 다가갔으니까. 멀미를 잘 하는 여주에게 반복되는 그 일련의 과정은 여지없이 괴로웠다. 

나도 가능성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여주는 작년처럼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할 수 없었다. 대충 석진도 알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대놓고 고백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곧 한 집에 살게 될 텐데 괜히 불편하게 만들기는 싫었다. 내 감정만 잘 다스리면 된다. 그럼 다 괜찮을 것이었다.



 

 

 

 

여주가 카페에서부터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는 걸 눈치챈 석진은 운전을 하면서도 뭐가 문제였는지 고민했다. 막상 같이 살게 되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가. 원래 여자들은 결혼 전에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아마 여주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달래주고는 싶은데, 일반적인 결혼이 아니니 감히 "우리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라던가,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따위의 말로 위로를 할 순 없었다. 뭘 해야 기분이 풀리려나. 여주씨가 뭘 좋아하지. 달달한 걸 좋아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저기 교수님, 그럼 저희 집에 모레 오시는거예요?"

"응, 부모님은 시간 괜찮으시대요?"

"네, 아까 문자 왔는데 두 분 다 괜찮으시대요."

"잘 됐네. ...그럼 여주씨 있잖아요."

"?"

"여주씨는 부산에서 어디 제일 좋아해요?"

"어...일단 부산은 바다죠? 물론 저희 집 근처에는 바다 없지만...그래도 어릴 때부터 바다 엄청 좋아했어요!"

"바다. 나도 바다 좋아하는데."


외우려는 듯이 나긋한 목소리가 바다라는 단어를 소리내 읊조렸다. 취향이 겹친 게 반가웠던 여주는 짝하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엇, 공통점 있었네요! 사실 아까 민초는 살짝 실망스러웠어요."

"민트초코? 솔직히 민트초코는 치약ㅁ.."

"씁. 더 이상 민초 모욕하지 마세여. 안그래도 실망스럽다고요, 지금."

"나한테 실망했어요?"

"조금..?"

"너무하네에. 나는 여주씨가 민트초코 좋아한다해도 실망 안했는데."

"저한테 기대를 안 하셨으니까 실망도 안하신 거겠져."


아. 아무 생각 없이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꺼내버렸다. 나름 유쾌했던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마 석진이 되묻지 않았다면 어색한 채로 다음을 기약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여주씨한테 기대 안 하는 거 같아요?"

"어..어어.."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수습하자, 수습...! ㅅ..


"안 하시는 것..같은데요....(소심)"


수습은 무슨. 거짓말 못 하는 여주는 석진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소신껏 대답하고 말았다. 하필 또 집 앞에 도착해버려선, 운전 중이니 자기 보지 말라는 핑계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저번에 내려준 곳과 똑같은 곳에 차를 세운 석진은 여주의 얼굴을 보고 싶은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눈을 살며시 내리깔았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여주의 통통한 양볼이 움찔거린다. 만져보고 싶다. 석진의 머리에서 본능처럼 스친 그 생각이 실행에 옮겨지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여주의 뺨을 톡톡 건드리자 여주는 토끼마냥 화들짝 놀란다. 그 덕에 저를 보고 있는 석진과 여지없이 눈빛이 닿고 말았다. 

애써 피했던 것이 무색하게, 여주의 두 뺨은 다시금 달아올랐다. 열이 올라 따끈해진 것이 몸소 느껴졌으니 분명 남이 보기에도 엄청 붉어졌을 거였다. 석진의 얼굴이 너무 가깝고, 그래서 평소에는 은은했던 그 시원달달한 체향이 조금은 진하게 다가온 탓이었다. 

그런데도 저 눈동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 번 맞닿은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석진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 너머에 제가 원하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 


"이제야 봐주네."

"..."


낮게 가라앉은 채 속삭이는 목소리는 괜히 사람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마치 처음 석진을 만났던 그 봄이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딱 그 만큼의 간지러움이었다.


"...난 여주씨한테 기대같은 거 못해요." 


심장이 쿵,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떨어졌다. 기대를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내게 바라는 게 없다는 건가?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인가?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옆에 있어주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기대까지 해."      


응..? 뭐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닌...가....? 

너한테 기대할 일 같은 거 없다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던지라 긴장이 풀리면서도 왜인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대를 왜 못해요, 하면 되지!!!(소리 없는 아우성) 그래도 뭐, 고마운 감정이라도 갖고 계신 걸 감사해야하나. 하긴, 내가 자꾸 선을 넘는 건 있긴 해...(빠른 자기 통찰) 

사실, 석진의 입장에선 딱 계약서대로 서로 취할 것은 취하고 지킬 건 지키는 상황을 원할 게 뻔했다. 자꾸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고 마음을 갈구할수록 스스로만 비참해진다는 건 잘 알았다. 알면서도 마음처럼 안 된다는 게 문제지. 


"벌써 늦었네."

"ㅇ,에..? 허업,"

"조심해서 들어가요. 도착하면 연락하고."

"아,넵! 모레 뵈어요..."


아무렇지 않게 벨트를 풀어주는 석진에 숨을 참았던 여주는 서둘러 내렸다. 많이 편해진 것 같다가도 저렇게 어른같은 모먼트를 뿜뿜하며 훅 들어오면,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주는 처음으로 석진과 결혼하기로 한 걸 후회했다. 이미 일은 저질렀는데, 제 심장이 김석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봐도봐도 적응되지 않는 저 잘생김이 근원이었다. 아무래도 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분명하다. 여주는 제 앞날에 다른 의미의 고생길이 열린 것을 확신했다.



"다녀왔습니다아"

"갔다 왔나."

"딸내미,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왜여?"


집에 도착한 여주가 부모님이 앉아있는 거실 테이블 맞은 편으로 가서 풀썩 앉는다. 화나신 거 같진 않은데.


"진짜 결혼할거가."

"웅(당당)"

"하아."


막내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배모 씨(남/58세)는 허망한 얼굴로 마른 세수를 했다. 스물 두살 무렵에 결혼한 저와 집사람을 닮은 탓일까.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째 우리집 딸내미들은 다 남들보다 일찍 시집을 가냔 말이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딸바보였던 그는 아직 어린 막내마저 다른 이에게 보내줘야 한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인데."

"여주 학교 교수였댄다."

"교수?"


끼어든 엄마의 대답에 더더욱 심기가 불편해지는지 다듬어지지 않은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주름진 술톤의 얼굴에 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교수란 사람이 학생을 상대로 말이ㅇ...!"

"ㅇ, 아니야! 내가 매달린 거야!!"


극대노 버튼이 눌린 거 같은 아버지에 여주는 손까지 휘휘 내저어가며 석진을 변호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혼하잔 말은 석진이 꺼냈지만 그 전에 좋다고 따라다닌 건 저였으니까.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쁘고 귀여운 딸이 무려 매달려서 하는 결혼이라니, 아버지는 안 그래도 내키지 않았던 이 결혼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래의 사위가.


"엄마는 결혼하는 거 찬성해."

"어..?진짜요? 만나 보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겠지."

"뭐야...감동.."

"한창 예쁠 땐데 언제까지 빚 갚으면서 이러고 있을 거고.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적어도 학교는 끝내고 니 하고 싶은 거 할 거 아니가."

"으응...근데 꼭 그래서 결혼하는 건 아니구..사실 나는 아직까진 알바하면서 지내는 거 괜ㅊ,"

"뭐?(험악)"

"ㅇ..아니요...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요..."


엄마의 기에 눌린 여주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귀영화를 다짐했다.

역시 우리 엄마 무서워. 다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지만.


"근데..엄마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랑 집안 차이가 좀 날 수 있어요. 알고는 있으라구..(소심)"

"어느 정돈데."

"그냥...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도..?"

"재벌은 아니제. 그 정도만 아니면 된다."

"..."

"진짜가."

"ㅎ..."


부모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능력있고 돈 많은 남자랑 만나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어느 정도를 넘어선다면 장점은 단점이 되기 십상이다. 재벌집안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꼭 불에 뛰어들어야 뜨거운 걸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환경에 여주가 던져진다면 분명 적응하지 못할 게 뻔했다. 답답한 틀과 남들의 시선에 갇힌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숨 막혀 말라 비틀어질 것이 눈에 선하였다. 


"니,"

"어쨌든 허락한 거예요? 무르기 없기야!"


싸늘해진 분위기에 여주는 총총대며 제 방으로 피신했다. 석진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부모님도 생각을 바꿀 거라고 확신하면서.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여전히 배여주를 이길 자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연락을 안 드렸네. 운전 중에 연락하면 방해될까 싶어 여주는 다 씻고 뽀송한 상태로 매트리스에 누워서야 휴대폰을 들었다. 요게 요즘 자주 본업을 한단 말이지.


-저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 재밌었


아니야. 이거 아닌 거 같애. 계약서 싸인하러 만난 건데 재밌었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여주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다섯 글자를 토도독 지웠다.

뭐라고 보내지. 24년 모쏠 인생 중 이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던지라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아?

아, 세상에. 왜 하필.

하필이면 여주가 대화창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석진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망할. 1 바로 없어졌겠지. 아악(+수치)


20xx년 5월 xx일


김석진 교수님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우리 또 통했네요




아 미친, 또 통했대. 언제 수치스러웠냐는 듯 여주는 매트리스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아까 바다 좋아한다던 거 말씀하시는 거겠지? 내가 민망할까봐 일부러 통한 거라고 해주시는 건가...?김석진 당신은 도덕책....



아핳 그러게요! 

교수님은 잘 들어가셨어여?


김석진 교수님

응 이제 막 왔어요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세요!




음..이게 아닌가? 몰라 이미 보냈고 교수님은 읽으셨어.(담담)



김석진 교수님

그래요ㅋㅋ

그래도 오늘 여주씨 덕분에 재밌었어요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


교수님이ㅠㅠㅠㅠ나 '덕분에' 재밌었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열버튼 눌림)



김석진 교수님

요즘 이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가지구

여주씨도 피곤할텐데 잘 자요

저도 노는 거 오랜만이라 재밌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용



카톡인데도 불구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석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여주는 한참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 자요라니, 이건 거의 캡쳐 감이었다. 성시경이야 뭐야, 왜이렇게 감미로워.(주접 발동)

그래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배여주는 덕분에 아주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니 하루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습관이 돼서 그런지 눈은 일찍 떠졌는데, 별로 할 것도 없고 늦잠이란 걸 자보고 싶기도 해서 다시 몸을 뉘였다. 그렇게 한 번 더 자고 일어나도 여태 10시였다. 씻고 아침 먹고 설거지까지 했는데도 11시. 뭘 해야하나 고민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교수님인가 하고 호다닥 확인했는데 정국이었다. 얘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지.


"여보세요."

-어어.. 너 부모님한테 결혼한단 거 말씀드렸어?


이제 일어난 건지 살짝 잠긴 목소리였다. 깨자마자 왜 전화한 거지. 불안하게.

 

"응 내일 엄마아빠랑 교수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지. 아버님 지금 우리 집 와계신다.


롸?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설마 이 아저씨가 또..?


"아빠가 왜 거깄어..? 혹시 너네 아버지랑 또,"

-어. 지금 완전 잠들어 계셔. 일어났더니 거실에 누워계시더라고.

"아...아아...야 미안하다.."

-괜찮아, 딸 결혼한다는데 속상하셔서 마실 수도 있지.

"아니이, 왜 맨날 멀쩡한 술집 놔두고 너네 집가서 마시냐고...아저씨는 괜찮으셔? 괜히 맞춰주신다고 또 과음하신 거 아냐?

-그래도 얘기 들어주신다고 많이 드시진 않은 거 같더라. 

"하, 그나마 다행이네. 나 지금 아빠 데리러 갈게.


어쩐지 집에 엄마 밖에 없더라. 엄마도 아빠가 새벽에 어디갔는질 모르겠다며 걱정했는데, 또 정국이네 집에 간 모양이었다. 두 분이 오랜 술친구였으니 어느정도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그 새벽에 남의 집을 가다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분명 밖에서 1차로 하고 2차를 정국이 집에서 하다가 골아 떨어져 잠든 게 분명했다. 뻔하지, 뭐. 누가 보면 딸내미 어디 팔려가는 줄 알겠다고 투덜대며 여주는 대충 옷을 주워입고 집 밖을 나섰다.


"아이고, 여주 오랜만이네~"

"앟ㅎㅎ 아줌마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아빠 어디.."

"이제 막 깨셔가지고 우리 아저씨랑 아침 드셔."


아놔 이 와중에 밥까지 얻어 드셨어. 여주는 이마를 짚고서 익숙한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현장에서 잡아버리겠어 아주.


"아빠.(험악)"

"ㅇ...왔네."

"왔네? 아니 진짜 왜 남의 집에 와가지구..!"

"어허, 남의 집이라니 듣는 아저씨 서운하게. 우리가 남이가."

"아니.. 아저씨...그건 아니구..."

"아휴, 나는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예?"

"아, 아빠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요."


씻고 나온 건지 때마침 정국이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부엌으로 나왔다. 쓸데 없는 얘기 하지마라는 듯 살짝 부은 얼굴이 옅게 찌푸려진다.


"근데 아줌마도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아니에요!"

"배여주 엄청 잘난 남자친구 있어요. 곧 결혼하는 애한테 무슨."

"그치? 아줌마랑 아저씨가 좀 주책이었다 그제."

"ㅎㅎ그래도 예쁘게 봐주신 거잖아여, 감사하죠"


분위기는 마치 히터라도 틀어놓은 듯 따땃하고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배여주는 제 부친께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이상하게 쎄하단 걸 이 때 알아봤어야 했다.






"크흠...사실 나는 우리 여주랑 결혼했음 싶은 사람 따로 있었네."


아? 아 아빠 제발. 


다음 날, 평소와 다르게 온몸으로 무게를 잡던 아버지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인사하러 온 석진 앞에서 대놓고 자네가 마음에 안 드네!!를 외치고 있다는 거다. 그것도 그냥 마음에 안 든다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고 싶다는 쓰잘데기 없는 말까지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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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발....꿈일거야.....어제 전정국이랑 마신 맥주 한 캔이 아직도 덜 깬 거야....(현실부정)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눈치)


"아니, 이 영감탱이가..! 그런 말을 왜 해, 김 서방 앞에서!"

"할 수도 있지, 뭐."


아노미 상태의 여주와 눈만 꿈뻑거리며 아무 말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석진이 안쓰러웠는지 여주의 엄마는 남편의 등짝을 짝 소리날 정도로 때려가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석진은 아주 흡족한 예비사위였다. 석진은 멀끔한 외모는 물론이고,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게 온몸에서 티가 났으며 사근사근 말도 예쁘게 했다.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이었는데, 손님으로 온 거니 가만 앉아있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며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참 예뻤다.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라오는 센스도 있었고, 분위기도 적당히 풀 줄 알고, 여주를 보는 눈에서는...요즘 애들 말로 뭐라더라. 아, 그래 꿀이 뚝뚝 떨어졌다.

집안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저렇게 성격이 살갑고 바른데 그게 뭐 그리 큰 흠이겠냐 싶었다. 뭘 걱정하는 지 아는 것처럼, 여주 꼭 고생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에서도 왜인지 신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 놈의 도움 안 되는 남편이 지금 어디서 초를 치려고.(분노)


"김 서방, 신경쓰지 마요. 이 사람 괜히 이러는 거야."

"아이, 괜찮습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석진은 머쓱한 듯 허허 웃으며 넉살 좋게 넘어갔지만, 매사 여유롭고 어른스러운 것 같던 석진의 입장에서도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는 이 자리가 쉽지는 않았다. 웬만한 상황은 다 괜찮다만, 석진도 이번 생에 결혼은 처음이니까. 더군다나 저렇게 싫은 걸 대놓고 티내시니 더더욱 가시방석이었다. 하긴, 나였어도 여주씨 같은 딸 누가 데려간다고 했으면 싫었겠지. 저렇게 귀엽고 착한데.


석진은 그 뒤로 일회용 차까지 마시며(석진의 31년 인생 첫 일회용 차였다) 질문에 조곤조곤 잘 대답하고 무사히 여주네 부모님과의 첫 대면을 마쳤다. 물론 여주가 내일 같이 서울에 갈 거고, 결혼 전까지 계속 석진의 집에서 살거라고 말한 후부터는 안 그래도 매서웠던 예비 장인어른의 눈길이 더 무시무시해지긴 했지만...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고, 밖까지 마중 나가라고 부추기는 엄마 덕에 여주는 석진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생겼다. 밤공기가 적당히 선선하니 기분 좋은 날씨였지만 여주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교수니임..."

"응?"


조금 떨어진 채 종종 따라가던 여주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자 차 문을 여려던 석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 아빠 그러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교수님이 잘못하신 거 하나도 없어요. 진짜 괜히 그러시는거예요."

"괜찮아요. 여주 씨 많이 아끼시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내가 더 죄송하지.."


그냥 빈말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사랑스러운 행동은 골라서 하는 여주를 보면서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막상 여주 부모님을 눈 앞에서 뵈니 돌덩이를 얹은 듯 석진은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 진짜 나쁜놈인 거 같은데. 아무리 여주가 좋다고 했다한들 어린애 상대로 이게 딱히 잘한 행동이 아닌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석진은 여주처럼, 결혼하겠다 마음 먹은 게 처음으로 후회스러워졌다. 물론 두 사람의 후회에는 온도 차가 있었지만. 

그 전까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라도 했는데, 여주를 많이 사랑하시는 거 같은 부모님을 마주하자 그 합리화도 먹혀들지 않았다. 근데 지금 이 모든 걸 그만두면 그게 더 쓰레기였다. 나답지 않게 어쩌자고 이랬지. 작게 한숨을 쉬자 여주가 걱정스러운 듯 올려다본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에요. 여주씨도 내일 짐 옮기고 하려면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일찍 자요."

"네...안녕히 가세요."

"내일 봐요."

"네엥.."


그대로 석진의 차가 미련없이 멀어졌다. 부드럽게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이 꼭 주인처럼 피곤해보인다. 아까 웃음에도 별로 힘이 없어보이던데. 역시 아빠 때문인거야..!(확신) 여주는 집에 들어가면 아빠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


"어, 왜."

-내일이지? 서울 오는 거.

"응."

-그래서 뭐 그 여자분이랑은 얘기 잘 됐냐. 결혼 안 한다고 하지?

"한대."

-그럴 줄 알았.....어???? 한다고?????

"어. 부모님도 뵙고 오는 길이다."

-ㅇ...와...집이 많이 어려웠나..?아직 한참 어린데 왜..

"그런 거 같아."

-아님 아직 너 좋아하는 거 아냐?

"...."

-이거네~그 분 너 아직 좋아하나 본대? 부럽다,야. 찐사랑이시네.

"뭐래."

-이 봐봐, 부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너도 대충 눈치 챘네. 내가 너를 모르냐.

"이게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말을 또 섭섭하게 하네. 친구가 결혼한다는데 전화 할 수도 있지.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술 한 잔과 함께 혼자 보낼 생각이었는지 샤워 가운 바람으로 테이블에 앉은 석진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가볍게 들이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던 남준은 저 역시 바쁜 와중에 시간이 나는대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 지금 흥미진진해요' 하는 게 티가 났다. 하여간, 못 말리는 놈이야.


-근데, 그 여자분이 진짜로 널 좋아하는 거면 너 진짜 쓰레기 아니냐? 사람 마음을 막 그렇게,

"나도 그게 지금 후회스러워."


석진은 살짝 젖은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여주가 저에게 아직 마음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올려다 보는 눈빛에 작년처럼 여전한 애정이 뿜어져 나오고 조금만 가까이 가도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니까. 진짜 눈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석진은 눈치가 아주 빠른 부류에 속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어설픈 20대 여자애를 꿰뚫어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었단 얘기다.


-후회된다고 지금 무를 건 아니지? 그럼 너 진짜 회생 불가능한 쓰레기 되는 거다. 

"알아. 그런 거 안해."

-그래. 뭐 계약서까지 썼다니까 그 분도 어느 정도 알고 결정하신 거겠지. 


글쎄. 그런 거겠지. 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감행할 만큼 무모한 애는 아니니까.(배여주 과대평가 중)

석진은 차라리 여주가 대놓고 자길 이용해주길 바랐다. 서로서로 이용해 먹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관계. 여주의 예상대로 석진은 그걸 바라고 있었다. 처음에 결혼상대로 여주를 선택했던 것도, 회사를 비롯해 제 집안과 연관되지 않은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석진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여주는 아직 어렸고 연애 경험도 전무했으며 저를 아직 좋아한다는 거였다. 적당한 호감 이상의 감정은 이 일에 걸림돌일 뿐인데. 그러나 이상하게 석진은 여주에게 더 이상의 깊은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선을 그을 수 없었다. 가장 잘하던 짓인데, 그게 여주한테만 쉽지가 않다. 여동생이 있었던 적도 없는 주제에 여주를 보면 예쁜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팔불출 오빠가 된 거 마냥 그저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러면 혹시 여주가 오해할까. 내가 지금 중심을 못 잡아 주고 있는건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진짜 그 분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거면 적당히 선 그어. 괜히 제자였다고 챙겨주다가 기대하게 만들면 그 분 혼자 상처 받을 거 아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응. ..그래야지."


담담하게 대답하고 대충 몇 마디 더 말을 나누다 전화를 끊은 석진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여주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여지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여주는 결혼 생활이 많이 낯설고 시댁 식구들도 대하기 어려울 텐데 저라도 살갑게 보듬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팽팽히 부딪혔다. 특히나 어머니를 생각하니 자기가 여주를 감싸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머니가 그렇게 악독한 시어머니는 아닐 거라고 믿지만, 자라온 환경이 저와 너무나 다른 여주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실 수도 있고 시댁 특유의 부담을 줄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손주라던가, .......손주라던가. 

최근에도 계속 결혼할 예비 새아가는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아가씨인지 쉬지 않고 궁금해하시는데다 무슨 얘길 하던 그래서 아기는 언제쯤 계획하고 있냐는 기승전아기 대화가 이어졌다. 예비 새아가가 진짜 아가라서 손주는 아마 못 보실 거예요, 라는 말이 입안까지 튀어나왔지만 우선은 자제했다. 어머니 텐션을 보아하니 '어머~~ 너 새아가보고 아가라고 부르니!!세상에!ㅎㅎㅎ' 하실 게 불 보듯 빤해서. 

어쨌든 석진의 머리에서는 지금 당장 여주에게 차갑게 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주 씨는 그래도 나 믿고 서울까지 오는 건데. 무책임하게 굴 순 없으니까. 

석진은 지금은 말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서로 거리를 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는 게,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름대로 아빠랑 화해도 하고, 엄마랑은 따땃한 포옹을 나눴으며 타지에 있는 언니들에게도 영상통화로 각각 인사를 나눈 여주는 옷가지와 책이 조금 들어있는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제 몸만한 캐리어를 끄는건지 끌려가는 건지 구분이 안 가게 낑낑 옮겨서 집 아래 도로까지 온 여주는 그새 기진맥진했다. 짐 좀 줄일 걸 그랬나. 옷도 별로 없고 책도 그닥 많지 않지만 저렇게까지 짐이 무거운 건 아마 탄방 소년단 앨범 및 굿즈 때문인 거 같다. 괜히 들고왔나, 하고 집을 나선지 2분 만에 후회됐지만 그래도 본가에 계속 뒀다간 언젠가 엄마가 다 치울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배여주, 지금 이 무거움은 훗날 신의 한 수가 될거야.(비장) 고1 때부터 착실히 모아 온 피 같은 앨범, 응원봉, 굿즈, 디비디 등등을 어미(ERMY)로서 절대 버릴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덕심을 다잡으며 멍 때리고 있는데, 언제 온건지 이제는 좀 익숙해진 차에서 석진이 다급하게 내렸다. 


"어이구 어떡해, 이 큰 걸 혼자 들고 왔어요?"

"아, 교수님!"


어제 봤으면서 그새 반가운 나머지 여주는 벌떡 일어나 생글생글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저 짐덩이에 고통 받은 10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 어어 근데 그거 좀 무거워요 조심하세여..."


읏차, 하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석진은 다시 걱정되는 듯 되물었다.


"진짜 저거 어떻게 들고 왔어요? 여주씨보다 큰 거 같은데."

"ㅎㅎ..그냥 질질..."

"짐 저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여주씨 집으로 가는 건데. 다 옷이에요?"


아뇨, 탄방소년단 앨범과 굿즈입니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여주는 허허 웃는 채 그냥 책 같은 거라고 얼버무렸다. 뭐 엇저라구, 책 맞잖아.(노양심)



"여주씨 바다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네에, 그랬죠."

"우리 가는 길에 바다 보고 갈까요? 서울 가면 보기 힘들잖아."

"헉 진짜요? 너무 좋아요."


여주는 시트에서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방방거리다가 순간 깨닫고 죄송하다며 입을 틀어막았다. 감히 비싼 차에...감히 석진님이 운전 중이신데 내가 방해를 해...?(마음으로 머리박기)


"근데요, 교수님, 운전 면허 따는 게 많이 어려워요?"

"음, 나는 그냥 할 만 했는데. 면허 따게요?"

"그냥 교수님 운전하기 피곤하실 때만이라도 해드리려구..."


어제 헤어질 때 뭔가 묘하게 예민해보였다는 말은 속으로 꾹 삼키고 여주가 말끝을 흐렸다. 


"응? 괜찮아요, 많이 피곤하면 기사님 부르니까. 비서가 대신 해줄 때도 있고."

"아아, 기사님....기사님이라는 존재가 있었구나........(머쓱타드)"


석진이 살풋 웃어주긴 했지만 여주는 머쓱함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사님이란 존재를 생각도 못해봤네. 대리 말고 전용 기사님 말하는 거겠지...? 거기다 개인비서...

석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확 느껴지는 거리감에 여주는 불쑥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저 너머 세계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1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일 수도 있는데. 


두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앉은 석진이 순간 아주아주 먼 별에 있는 사람 같기만 하다. 잠시나마 교수직을 하지 않으셨다면, 나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겠지. 아마 같은 길을 지나치지도 않았을 거야. 근데 지금은 같은 집에 살러 가는 중이라니, 진짜 인생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자주 뇌리를 지배한다. 잠깐, 근데 그럼 나 진짜 겁나 운 좋은 거 아냐?? 세상 죠오오옹나 평범한 배여주가 김석진이랑 결혼할 확률이 얼마나 됐겠냐구. 하, 나 인생 잘 살았네.(초월긍정)

아주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텐션이 다시 돌아온 여주의 눈에 그새 푸른색의 바다가 들어왔다. 요 바다는 20년을 넘게 봤는데도 하나도 안 질린다. 올 때마다 새로워!짜릿해! 태생이 바다조아걸인 배여주는 그새 창문에 거의 달라붙어서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흘긋 보던 석진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우리 지니도 차 태우면 저러는데. 애기들 특징인가. 

남들은 왜 저렇게 다 큰 성인을 애취급하냐 할지 몰라도 31살 으른 김석진의 눈에 24살 배여주는 햇병아리 쯤으로 보였다. ...여주가 또래들보다 철 없고 밝은 것도 한 몫 하는 거 같지만.


"교수님 저 바다 진짜 오랜만에 와요!!(흥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주는 작게 콩콩 뛰었다. 반응이 좋으니 데려온 사람도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여름도 아니고 해수욕장 부근도 아닌 바다라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바다 자체를 좋아하는 여주는 이 쪽이 더 좋았다. 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저 쪽에 커플도 있고 저어기 사진 찍는 남자도 있..... 어?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뭐야? 저거 전정국 아녀?(눈을 의심)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지, 뭐...


"교수님은 뭐 더 추가하실 건 없으신지..."

"아. 있어요."


여기서 더 추가될 게 있나..? 혹시 아예 집도 따로 살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여주의 불안한 동공과 다르게 석진은 차분하게 옅은 웃음을 띄었다.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여주씨는 나 언제까지 교수님이라고 부를거예요?"

"예?"

"어쨌든 남편인데 교수님은 조금... 내가 너무 쓰레기 같고... 아니 뭐,맞긴 맞는데...."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한지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석진이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쒸이ㅂ.... 하. 위험했다. 너무 귀여워서 욕할 뻔 했어. 

아까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알고보니 교수님은 귀엽기까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여주는 다시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마치 탄방소년단 덕질할 때 같은 기분이야....!짜릿해...!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오빠...?"

"오빠요..?"

"죄송해여, 좀 아닌 듯; 선 넘었네요, 제가."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에요. 듣기는 좋았어요."

"그럼 사장님?"

"그건 좀 비서 같지 않아요?"

"흠, 근데 아저씨라고 할 순 업자나요."

"그쵸..."

"석진씨...?석진 씨 어때요."

"괜찮네요."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뭐 시트콤도 아니고. 호칭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모쏠 배여주는 또 배웠다. 교수님한테 석진 씨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다. 괜히 식은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어째 이 호칭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거란 예감이 든다.


"근데 여주씨 알바는 그만뒀어요?"

"네, 일주일 더 하기로 했었는데 요즘 알바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바로 구하셔가지고 그냥 그만 뒀어요."

"그렇구나. 그럼 서울엔 언제쯤 올 생각이에요?"

"글쎄요, 저는 그냥 언제든지 상관 없어서..(백수)"

"그럼 결혼을 다음달 쯤에 하고,"

"ㄴ.."

"집은 지금 옮길래요?"

"예..?"

"나 수요일에 호텔 방 빼고 서울 갈 건데, 괜찮으면 그 때 같이 가요."


사람은 참 간사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방이라니!!이건 말도 안된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던 여주는 막상 같은 집에 살게 될 날이 성큼 다가오게 되자 망설였다. 

배여주가 누군가. 겁은 많고 깡은 없는 쫄보 중의 쫄보가 아니었던가. 절절하게 편지까지 써 가며 고백하고 결혼을 3초만에 냉큼 수락한 것은 애초에 지극히 저답지 않은 행동의 연속이었으니. 따지자면 지금이 더 배여주다운 행동이었다. 


"아...아직 좀 불편해요?"

"ㅇ, 아니요! 그게 아니구,"

"같이 살면서 생활 패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로 편해지면 더 좋고."

"네, ㄱ,그럽시다."


침착한 척 대답했지만 여주는 표정으로, 목소리로 속내가 다 보였다. 투명함 그 자체인 여주를 느릿하게 훑던 석진은 픽 웃음이 났다. 매번 속을 숨기고 접근하는 혼탁한 눈동자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던 석진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투명함이 못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여주씨 지금 얼굴 엄청 빨개졌어요."

"제가요? ㅇ,아 저 원래 잘 빨개져요! 조금 덥기만 해도 빨개지구..."

"그래요?"

"ㄴ,네 진짜로."

"여주씨가 더위를 잘 타는 구나."


석진의 말에 불현듯 바로 옆에 에어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도를 보니.... 망할. 18도네. 


"여주 씨 쓸 방에 에어컨 하나 더 달아야겠네."

"ㄱ..괜찮습니다....저 선풍기 하나만 있어도 잘 살아요..."


망연자실한 여주는 눈 앞의 민초 스무디를 쪽 빨아들였다. 달지만 쌉싸름한 게 지금의 이중적인 심정과 닮았다. 좋긴 좋은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약간은 불안한. 


아니 근데 그와중에 얼굴은 왜 빨개져 가지고. 뭐만 해도 잘 달아오르는 뺨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각방을 쓴다해도 어쨌든 동거라는 생각을 한 게 화근이었다. 

나 이상한 생각 안했는데... 진짜로.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암튼 아님. 모르겠고, 무조건 아님.




"무슨 생각해요?"

"예? 저 이상한 생각 안해ㅆ......"




아. 

아.

시발. 망....

배여주 입. 제발... 제발 닥쳐.


잠시 동그래지던 석진의 눈은 곧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곱게 휘어졌다. 여주는 그 앞에서 낱낱이 제 안을 다 내보인 기분이었다. 

이건 진짜 인생 수치스러운 기억 탑5다. 아닌가, 탑10 정돈가.(수치스러운 경험콜렉터)


"응, 여주 씨 이상한 생각 안 했구나-"

"놀리지 마세여, 제발. 저 지금 진짜 너무 수치스러워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저 진짜 이상한 애 아니거든여...막 음흉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여...(울컥)"

"아닌 거 알아요.ㅋㅋㅋㅋㅋ 그런 생각 할 수도 있지, 걱정 되면."

"..?"

"여주 씨가 걱정할 만한 일 안 만들 거니까, 마음 놓고 와도 돼요."

"ㄴ.....넹...."


저를 이상하게 보지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주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적한 기분이 조금 솟았다. 정말 나를 여자로 생각하시지는 않는구나. 그러니까 지금 대화의 맥락에서 걱정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 사이는 여기서 더 가까워지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었다. 

석진이 세운 벽은 석진을 닮아서 부드럽고 완곡했다. 그러나 여주는 차라리 그 벽이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단하다면 부딪힐 때 너무 아파서 다시 달려들 용기조차 못 낼 텐데, 운이 좋다면 그 벽을 깰 수라도 있을 텐데. 석진의 벽은 젤리처럼 말랑해서 몇번이고 여주를 상처없이 튕겨냈다. 그러나 상처 대신 어지러움과 쓰린 속이 남았다. 부드러운 벽은 여주를 튕겨냈지만, 그 반동 탓인지 또다시 석진에게 이끌리듯 다가갔으니까. 멀미를 잘 하는 여주에게 반복되는 그 일련의 과정은 여지없이 괴로웠다. 

나도 가능성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여주는 작년처럼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할 수 없었다. 대충 석진도 알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대놓고 고백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곧 한 집에 살게 될 텐데 괜히 불편하게 만들기는 싫었다. 내 감정만 잘 다스리면 된다. 그럼 다 괜찮을 것이었다.



 

 

 

 

여주가 카페에서부터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는 걸 눈치챈 석진은 운전을 하면서도 뭐가 문제였는지 고민했다. 막상 같이 살게 되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가. 원래 여자들은 결혼 전에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아마 여주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달래주고는 싶은데, 일반적인 결혼이 아니니 감히 "우리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라던가,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따위의 말로 위로를 할 순 없었다. 뭘 해야 기분이 풀리려나. 여주씨가 뭘 좋아하지. 달달한 걸 좋아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저기 교수님, 그럼 저희 집에 모레 오시는거예요?"

"응, 부모님은 시간 괜찮으시대요?"

"네, 아까 문자 왔는데 두 분 다 괜찮으시대요."

"잘 됐네. ...그럼 여주씨 있잖아요."

"?"

"여주씨는 부산에서 어디 제일 좋아해요?"

"어...일단 부산은 바다죠? 물론 저희 집 근처에는 바다 없지만...그래도 어릴 때부터 바다 엄청 좋아했어요!"

"바다. 나도 바다 좋아하는데."


외우려는 듯이 나긋한 목소리가 바다라는 단어를 소리내 읊조렸다. 취향이 겹친 게 반가웠던 여주는 짝하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엇, 공통점 있었네요! 사실 아까 민초는 살짝 실망스러웠어요."

"민트초코? 솔직히 민트초코는 치약ㅁ.."

"씁. 더 이상 민초 모욕하지 마세여. 안그래도 실망스럽다고요, 지금."

"나한테 실망했어요?"

"조금..?"

"너무하네에. 나는 여주씨가 민트초코 좋아한다해도 실망 안했는데."

"저한테 기대를 안 하셨으니까 실망도 안하신 거겠져."


아. 아무 생각 없이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꺼내버렸다. 나름 유쾌했던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마 석진이 되묻지 않았다면 어색한 채로 다음을 기약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여주씨한테 기대 안 하는 거 같아요?"

"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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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하자, 수습...! ㅅ..


"안 하시는 것..같은데요....(소심)"


수습은 무슨. 거짓말 못 하는 여주는 석진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소신껏 대답하고 말았다. 하필 또 집 앞에 도착해버려선, 운전 중이니 자기 보지 말라는 핑계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저번에 내려준 곳과 똑같은 곳에 차를 세운 석진은 여주의 얼굴을 보고 싶은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눈을 살며시 내리깔았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여주의 통통한 양볼이 움찔거린다. 만져보고 싶다. 석진의 머리에서 본능처럼 스친 그 생각이 실행에 옮겨지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여주의 뺨을 톡톡 건드리자 여주는 토끼마냥 화들짝 놀란다. 그 덕에 저를 보고 있는 석진과 여지없이 눈빛이 닿고 말았다. 

애써 피했던 것이 무색하게, 여주의 두 뺨은 다시금 달아올랐다. 열이 올라 따끈해진 것이 몸소 느껴졌으니 분명 남이 보기에도 엄청 붉어졌을 거였다. 석진의 얼굴이 너무 가깝고, 그래서 평소에는 은은했던 그 시원달달한 체향이 조금은 진하게 다가온 탓이었다. 

그런데도 저 눈동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 번 맞닿은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석진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 너머에 제가 원하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 


"이제야 봐주네."

"..."


낮게 가라앉은 채 속삭이는 목소리는 괜히 사람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마치 처음 석진을 만났던 그 봄이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딱 그 만큼의 간지러움이었다.


"...난 여주씨한테 기대같은 거 못해요." 


심장이 쿵,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떨어졌다. 기대를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내게 바라는 게 없다는 건가?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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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어주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기대까지 해."      


응..? 뭐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닌...가....? 

너한테 기대할 일 같은 거 없다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던지라 긴장이 풀리면서도 왜인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대를 왜 못해요, 하면 되지!!!(소리 없는 아우성) 그래도 뭐, 고마운 감정이라도 갖고 계신 걸 감사해야하나. 하긴, 내가 자꾸 선을 넘는 건 있긴 해...(빠른 자기 통찰) 

사실, 석진의 입장에선 딱 계약서대로 서로 취할 것은 취하고 지킬 건 지키는 상황을 원할 게 뻔했다. 자꾸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고 마음을 갈구할수록 스스로만 비참해진다는 건 잘 알았다. 알면서도 마음처럼 안 된다는 게 문제지. 


"벌써 늦었네."

"ㅇ,에..? 허업,"

"조심해서 들어가요. 도착하면 연락하고."

"아,넵! 모레 뵈어요..."


아무렇지 않게 벨트를 풀어주는 석진에 숨을 참았던 여주는 서둘러 내렸다. 많이 편해진 것 같다가도 저렇게 어른같은 모먼트를 뿜뿜하며 훅 들어오면,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주는 처음으로 석진과 결혼하기로 한 걸 후회했다. 이미 일은 저질렀는데, 제 심장이 김석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봐도봐도 적응되지 않는 저 잘생김이 근원이었다. 아무래도 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분명하다. 여주는 제 앞날에 다른 의미의 고생길이 열린 것을 확신했다.



"다녀왔습니다아"

"갔다 왔나."

"딸내미,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왜여?"


집에 도착한 여주가 부모님이 앉아있는 거실 테이블 맞은 편으로 가서 풀썩 앉는다. 화나신 거 같진 않은데.


"진짜 결혼할거가."

"웅(당당)"

"하아."


막내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배모 씨(남/58세)는 허망한 얼굴로 마른 세수를 했다. 스물 두살 무렵에 결혼한 저와 집사람을 닮은 탓일까.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째 우리집 딸내미들은 다 남들보다 일찍 시집을 가냔 말이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딸바보였던 그는 아직 어린 막내마저 다른 이에게 보내줘야 한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인데."

"여주 학교 교수였댄다."

"교수?"


끼어든 엄마의 대답에 더더욱 심기가 불편해지는지 다듬어지지 않은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주름진 술톤의 얼굴에 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교수란 사람이 학생을 상대로 말이ㅇ...!"

"ㅇ, 아니야! 내가 매달린 거야!!"


극대노 버튼이 눌린 거 같은 아버지에 여주는 손까지 휘휘 내저어가며 석진을 변호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혼하잔 말은 석진이 꺼냈지만 그 전에 좋다고 따라다닌 건 저였으니까.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쁘고 귀여운 딸이 무려 매달려서 하는 결혼이라니, 아버지는 안 그래도 내키지 않았던 이 결혼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래의 사위가.


"엄마는 결혼하는 거 찬성해."

"어..?진짜요? 만나 보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겠지."

"뭐야...감동.."

"한창 예쁠 땐데 언제까지 빚 갚으면서 이러고 있을 거고.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적어도 학교는 끝내고 니 하고 싶은 거 할 거 아니가."

"으응...근데 꼭 그래서 결혼하는 건 아니구..사실 나는 아직까진 알바하면서 지내는 거 괜ㅊ,"

"뭐?(험악)"

"ㅇ..아니요...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요..."


엄마의 기에 눌린 여주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귀영화를 다짐했다.

역시 우리 엄마 무서워. 다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지만.


"근데..엄마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랑 집안 차이가 좀 날 수 있어요. 알고는 있으라구..(소심)"

"어느 정돈데."

"그냥...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도..?"

"재벌은 아니제. 그 정도만 아니면 된다."

"..."

"진짜가."

"ㅎ..."


부모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능력있고 돈 많은 남자랑 만나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어느 정도를 넘어선다면 장점은 단점이 되기 십상이다. 재벌집안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꼭 불에 뛰어들어야 뜨거운 걸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환경에 여주가 던져진다면 분명 적응하지 못할 게 뻔했다. 답답한 틀과 남들의 시선에 갇힌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숨 막혀 말라 비틀어질 것이 눈에 선하였다. 


"니,"

"어쨌든 허락한 거예요? 무르기 없기야!"


싸늘해진 분위기에 여주는 총총대며 제 방으로 피신했다. 석진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부모님도 생각을 바꿀 거라고 확신하면서.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여전히 배여주를 이길 자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연락을 안 드렸네. 운전 중에 연락하면 방해될까 싶어 여주는 다 씻고 뽀송한 상태로 매트리스에 누워서야 휴대폰을 들었다. 요게 요즘 자주 본업을 한단 말이지.


-저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 재밌었


아니야. 이거 아닌 거 같애. 계약서 싸인하러 만난 건데 재밌었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여주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다섯 글자를 토도독 지웠다.

뭐라고 보내지. 24년 모쏠 인생 중 이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던지라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아?

아, 세상에. 왜 하필.

하필이면 여주가 대화창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석진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망할. 1 바로 없어졌겠지. 아악(+수치)


20xx년 5월 xx일


김석진 교수님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우리 또 통했네요




아 미친, 또 통했대. 언제 수치스러웠냐는 듯 여주는 매트리스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아까 바다 좋아한다던 거 말씀하시는 거겠지? 내가 민망할까봐 일부러 통한 거라고 해주시는 건가...?김석진 당신은 도덕책....



아핳 그러게요! 

교수님은 잘 들어가셨어여?


김석진 교수님

응 이제 막 왔어요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세요!




음..이게 아닌가? 몰라 이미 보냈고 교수님은 읽으셨어.(담담)



김석진 교수님

그래요ㅋㅋ

그래도 오늘 여주씨 덕분에 재밌었어요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


교수님이ㅠㅠㅠㅠ나 '덕분에' 재밌었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열버튼 눌림)



김석진 교수님

요즘 이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가지구

여주씨도 피곤할텐데 잘 자요

저도 노는 거 오랜만이라 재밌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용



카톡인데도 불구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석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여주는 한참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 자요라니, 이건 거의 캡쳐 감이었다. 성시경이야 뭐야, 왜이렇게 감미로워.(주접 발동)

그래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배여주는 덕분에 아주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니 하루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습관이 돼서 그런지 눈은 일찍 떠졌는데, 별로 할 것도 없고 늦잠이란 걸 자보고 싶기도 해서 다시 몸을 뉘였다. 그렇게 한 번 더 자고 일어나도 여태 10시였다. 씻고 아침 먹고 설거지까지 했는데도 11시. 뭘 해야하나 고민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교수님인가 하고 호다닥 확인했는데 정국이었다. 얘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지.


"여보세요."

-어어.. 너 부모님한테 결혼한단 거 말씀드렸어?


이제 일어난 건지 살짝 잠긴 목소리였다. 깨자마자 왜 전화한 거지. 불안하게.

 

"응 내일 엄마아빠랑 교수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지. 아버님 지금 우리 집 와계신다.


롸?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설마 이 아저씨가 또..?


"아빠가 왜 거깄어..? 혹시 너네 아버지랑 또,"

-어. 지금 완전 잠들어 계셔. 일어났더니 거실에 누워계시더라고.

"아...아아...야 미안하다.."

-괜찮아, 딸 결혼한다는데 속상하셔서 마실 수도 있지.

"아니이, 왜 맨날 멀쩡한 술집 놔두고 너네 집가서 마시냐고...아저씨는 괜찮으셔? 괜히 맞춰주신다고 또 과음하신 거 아냐?

-그래도 얘기 들어주신다고 많이 드시진 않은 거 같더라. 

"하, 그나마 다행이네. 나 지금 아빠 데리러 갈게.


어쩐지 집에 엄마 밖에 없더라. 엄마도 아빠가 새벽에 어디갔는질 모르겠다며 걱정했는데, 또 정국이네 집에 간 모양이었다. 두 분이 오랜 술친구였으니 어느정도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그 새벽에 남의 집을 가다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분명 밖에서 1차로 하고 2차를 정국이 집에서 하다가 골아 떨어져 잠든 게 분명했다. 뻔하지, 뭐. 누가 보면 딸내미 어디 팔려가는 줄 알겠다고 투덜대며 여주는 대충 옷을 주워입고 집 밖을 나섰다.


"아이고, 여주 오랜만이네~"

"앟ㅎㅎ 아줌마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아빠 어디.."

"이제 막 깨셔가지고 우리 아저씨랑 아침 드셔."


아놔 이 와중에 밥까지 얻어 드셨어. 여주는 이마를 짚고서 익숙한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현장에서 잡아버리겠어 아주.


"아빠.(험악)"

"ㅇ...왔네."

"왔네? 아니 진짜 왜 남의 집에 와가지구..!"

"어허, 남의 집이라니 듣는 아저씨 서운하게. 우리가 남이가."

"아니.. 아저씨...그건 아니구..."

"아휴, 나는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예?"

"아, 아빠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요."


씻고 나온 건지 때마침 정국이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부엌으로 나왔다. 쓸데 없는 얘기 하지마라는 듯 살짝 부은 얼굴이 옅게 찌푸려진다.


"근데 아줌마도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아니에요!"

"배여주 엄청 잘난 남자친구 있어요. 곧 결혼하는 애한테 무슨."

"그치? 아줌마랑 아저씨가 좀 주책이었다 그제."

"ㅎㅎ그래도 예쁘게 봐주신 거잖아여, 감사하죠"


분위기는 마치 히터라도 틀어놓은 듯 따땃하고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배여주는 제 부친께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이상하게 쎄하단 걸 이 때 알아봤어야 했다.






"크흠...사실 나는 우리 여주랑 결혼했음 싶은 사람 따로 있었네."


아? 아 아빠 제발. 


다음 날, 평소와 다르게 온몸으로 무게를 잡던 아버지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인사하러 온 석진 앞에서 대놓고 자네가 마음에 안 드네!!를 외치고 있다는 거다. 그것도 그냥 마음에 안 든다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고 싶다는 쓰잘데기 없는 말까지 해가며.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쉬이발....꿈일거야.....어제 전정국이랑 마신 맥주 한 캔이 아직도 덜 깬 거야....(현실부정)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눈치)


"아니, 이 영감탱이가..! 그런 말을 왜 해, 김 서방 앞에서!"

"할 수도 있지, 뭐."


아노미 상태의 여주와 눈만 꿈뻑거리며 아무 말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석진이 안쓰러웠는지 여주의 엄마는 남편의 등짝을 짝 소리날 정도로 때려가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석진은 아주 흡족한 예비사위였다. 석진은 멀끔한 외모는 물론이고,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게 온몸에서 티가 났으며 사근사근 말도 예쁘게 했다.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이었는데, 손님으로 온 거니 가만 앉아있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며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참 예뻤다.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라오는 센스도 있었고, 분위기도 적당히 풀 줄 알고, 여주를 보는 눈에서는...요즘 애들 말로 뭐라더라. 아, 그래 꿀이 뚝뚝 떨어졌다.

집안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저렇게 성격이 살갑고 바른데 그게 뭐 그리 큰 흠이겠냐 싶었다. 뭘 걱정하는 지 아는 것처럼, 여주 꼭 고생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에서도 왜인지 신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 놈의 도움 안 되는 남편이 지금 어디서 초를 치려고.(분노)


"김 서방, 신경쓰지 마요. 이 사람 괜히 이러는 거야."

"아이, 괜찮습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석진은 머쓱한 듯 허허 웃으며 넉살 좋게 넘어갔지만, 매사 여유롭고 어른스러운 것 같던 석진의 입장에서도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는 이 자리가 쉽지는 않았다. 웬만한 상황은 다 괜찮다만, 석진도 이번 생에 결혼은 처음이니까. 더군다나 저렇게 싫은 걸 대놓고 티내시니 더더욱 가시방석이었다. 하긴, 나였어도 여주씨 같은 딸 누가 데려간다고 했으면 싫었겠지. 저렇게 귀엽고 착한데.


석진은 그 뒤로 일회용 차까지 마시며(석진의 31년 인생 첫 일회용 차였다) 질문에 조곤조곤 잘 대답하고 무사히 여주네 부모님과의 첫 대면을 마쳤다. 물론 여주가 내일 같이 서울에 갈 거고, 결혼 전까지 계속 석진의 집에서 살거라고 말한 후부터는 안 그래도 매서웠던 예비 장인어른의 눈길이 더 무시무시해지긴 했지만...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고, 밖까지 마중 나가라고 부추기는 엄마 덕에 여주는 석진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생겼다. 밤공기가 적당히 선선하니 기분 좋은 날씨였지만 여주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교수니임..."

"응?"


조금 떨어진 채 종종 따라가던 여주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자 차 문을 여려던 석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 아빠 그러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교수님이 잘못하신 거 하나도 없어요. 진짜 괜히 그러시는거예요."

"괜찮아요. 여주 씨 많이 아끼시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내가 더 죄송하지.."


그냥 빈말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사랑스러운 행동은 골라서 하는 여주를 보면서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막상 여주 부모님을 눈 앞에서 뵈니 돌덩이를 얹은 듯 석진은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 진짜 나쁜놈인 거 같은데. 아무리 여주가 좋다고 했다한들 어린애 상대로 이게 딱히 잘한 행동이 아닌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석진은 여주처럼, 결혼하겠다 마음 먹은 게 처음으로 후회스러워졌다. 물론 두 사람의 후회에는 온도 차가 있었지만. 

그 전까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라도 했는데, 여주를 많이 사랑하시는 거 같은 부모님을 마주하자 그 합리화도 먹혀들지 않았다. 근데 지금 이 모든 걸 그만두면 그게 더 쓰레기였다. 나답지 않게 어쩌자고 이랬지. 작게 한숨을 쉬자 여주가 걱정스러운 듯 올려다본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에요. 여주씨도 내일 짐 옮기고 하려면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일찍 자요."

"네...안녕히 가세요."

"내일 봐요."

"네엥.."


그대로 석진의 차가 미련없이 멀어졌다. 부드럽게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이 꼭 주인처럼 피곤해보인다. 아까 웃음에도 별로 힘이 없어보이던데. 역시 아빠 때문인거야..!(확신) 여주는 집에 들어가면 아빠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


"어, 왜."

-내일이지? 서울 오는 거.

"응."

-그래서 뭐 그 여자분이랑은 얘기 잘 됐냐. 결혼 안 한다고 하지?

"한대."

-그럴 줄 알았.....어???? 한다고?????

"어. 부모님도 뵙고 오는 길이다."

-ㅇ...와...집이 많이 어려웠나..?아직 한참 어린데 왜..

"그런 거 같아."

-아님 아직 너 좋아하는 거 아냐?

"...."

-이거네~그 분 너 아직 좋아하나 본대? 부럽다,야. 찐사랑이시네.

"뭐래."

-이 봐봐, 부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너도 대충 눈치 챘네. 내가 너를 모르냐.

"이게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말을 또 섭섭하게 하네. 친구가 결혼한다는데 전화 할 수도 있지.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술 한 잔과 함께 혼자 보낼 생각이었는지 샤워 가운 바람으로 테이블에 앉은 석진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가볍게 들이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던 남준은 저 역시 바쁜 와중에 시간이 나는대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 지금 흥미진진해요' 하는 게 티가 났다. 하여간, 못 말리는 놈이야.


-근데, 그 여자분이 진짜로 널 좋아하는 거면 너 진짜 쓰레기 아니냐? 사람 마음을 막 그렇게,

"나도 그게 지금 후회스러워."


석진은 살짝 젖은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여주가 저에게 아직 마음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올려다 보는 눈빛에 작년처럼 여전한 애정이 뿜어져 나오고 조금만 가까이 가도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니까. 진짜 눈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석진은 눈치가 아주 빠른 부류에 속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어설픈 20대 여자애를 꿰뚫어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었단 얘기다.


-후회된다고 지금 무를 건 아니지? 그럼 너 진짜 회생 불가능한 쓰레기 되는 거다. 

"알아. 그런 거 안해."

-그래. 뭐 계약서까지 썼다니까 그 분도 어느 정도 알고 결정하신 거겠지. 


글쎄. 그런 거겠지. 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감행할 만큼 무모한 애는 아니니까.(배여주 과대평가 중)

석진은 차라리 여주가 대놓고 자길 이용해주길 바랐다. 서로서로 이용해 먹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관계. 여주의 예상대로 석진은 그걸 바라고 있었다. 처음에 결혼상대로 여주를 선택했던 것도, 회사를 비롯해 제 집안과 연관되지 않은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석진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여주는 아직 어렸고 연애 경험도 전무했으며 저를 아직 좋아한다는 거였다. 적당한 호감 이상의 감정은 이 일에 걸림돌일 뿐인데. 그러나 이상하게 석진은 여주에게 더 이상의 깊은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선을 그을 수 없었다. 가장 잘하던 짓인데, 그게 여주한테만 쉽지가 않다. 여동생이 있었던 적도 없는 주제에 여주를 보면 예쁜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팔불출 오빠가 된 거 마냥 그저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러면 혹시 여주가 오해할까. 내가 지금 중심을 못 잡아 주고 있는건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진짜 그 분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거면 적당히 선 그어. 괜히 제자였다고 챙겨주다가 기대하게 만들면 그 분 혼자 상처 받을 거 아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응. ..그래야지."


담담하게 대답하고 대충 몇 마디 더 말을 나누다 전화를 끊은 석진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여주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여지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여주는 결혼 생활이 많이 낯설고 시댁 식구들도 대하기 어려울 텐데 저라도 살갑게 보듬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팽팽히 부딪혔다. 특히나 어머니를 생각하니 자기가 여주를 감싸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머니가 그렇게 악독한 시어머니는 아닐 거라고 믿지만, 자라온 환경이 저와 너무나 다른 여주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실 수도 있고 시댁 특유의 부담을 줄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손주라던가, .......손주라던가. 

최근에도 계속 결혼할 예비 새아가는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아가씨인지 쉬지 않고 궁금해하시는데다 무슨 얘길 하던 그래서 아기는 언제쯤 계획하고 있냐는 기승전아기 대화가 이어졌다. 예비 새아가가 진짜 아가라서 손주는 아마 못 보실 거예요, 라는 말이 입안까지 튀어나왔지만 우선은 자제했다. 어머니 텐션을 보아하니 '어머~~ 너 새아가보고 아가라고 부르니!!세상에!ㅎㅎㅎ' 하실 게 불 보듯 빤해서. 

어쨌든 석진의 머리에서는 지금 당장 여주에게 차갑게 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주 씨는 그래도 나 믿고 서울까지 오는 건데. 무책임하게 굴 순 없으니까. 

석진은 지금은 말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서로 거리를 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는 게,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름대로 아빠랑 화해도 하고, 엄마랑은 따땃한 포옹을 나눴으며 타지에 있는 언니들에게도 영상통화로 각각 인사를 나눈 여주는 옷가지와 책이 조금 들어있는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제 몸만한 캐리어를 끄는건지 끌려가는 건지 구분이 안 가게 낑낑 옮겨서 집 아래 도로까지 온 여주는 그새 기진맥진했다. 짐 좀 줄일 걸 그랬나. 옷도 별로 없고 책도 그닥 많지 않지만 저렇게까지 짐이 무거운 건 아마 탄방 소년단 앨범 및 굿즈 때문인 거 같다. 괜히 들고왔나, 하고 집을 나선지 2분 만에 후회됐지만 그래도 본가에 계속 뒀다간 언젠가 엄마가 다 치울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배여주, 지금 이 무거움은 훗날 신의 한 수가 될거야.(비장) 고1 때부터 착실히 모아 온 피 같은 앨범, 응원봉, 굿즈, 디비디 등등을 어미(ERMY)로서 절대 버릴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덕심을 다잡으며 멍 때리고 있는데, 언제 온건지 이제는 좀 익숙해진 차에서 석진이 다급하게 내렸다. 


"어이구 어떡해, 이 큰 걸 혼자 들고 왔어요?"

"아, 교수님!"


어제 봤으면서 그새 반가운 나머지 여주는 벌떡 일어나 생글생글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저 짐덩이에 고통 받은 10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 어어 근데 그거 좀 무거워요 조심하세여..."


읏차, 하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석진은 다시 걱정되는 듯 되물었다.


"진짜 저거 어떻게 들고 왔어요? 여주씨보다 큰 거 같은데."

"ㅎㅎ..그냥 질질..."

"짐 저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여주씨 집으로 가는 건데. 다 옷이에요?"


아뇨, 탄방소년단 앨범과 굿즈입니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여주는 허허 웃는 채 그냥 책 같은 거라고 얼버무렸다. 뭐 엇저라구, 책 맞잖아.(노양심)



"여주씨 바다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네에, 그랬죠."

"우리 가는 길에 바다 보고 갈까요? 서울 가면 보기 힘들잖아."

"헉 진짜요? 너무 좋아요."


여주는 시트에서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방방거리다가 순간 깨닫고 죄송하다며 입을 틀어막았다. 감히 비싼 차에...감히 석진님이 운전 중이신데 내가 방해를 해...?(마음으로 머리박기)


"근데요, 교수님, 운전 면허 따는 게 많이 어려워요?"

"음, 나는 그냥 할 만 했는데. 면허 따게요?"

"그냥 교수님 운전하기 피곤하실 때만이라도 해드리려구..."


어제 헤어질 때 뭔가 묘하게 예민해보였다는 말은 속으로 꾹 삼키고 여주가 말끝을 흐렸다. 


"응? 괜찮아요, 많이 피곤하면 기사님 부르니까. 비서가 대신 해줄 때도 있고."

"아아, 기사님....기사님이라는 존재가 있었구나........(머쓱타드)"


석진이 살풋 웃어주긴 했지만 여주는 머쓱함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사님이란 존재를 생각도 못해봤네. 대리 말고 전용 기사님 말하는 거겠지...? 거기다 개인비서...

석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확 느껴지는 거리감에 여주는 불쑥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저 너머 세계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1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일 수도 있는데. 


두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앉은 석진이 순간 아주아주 먼 별에 있는 사람 같기만 하다. 잠시나마 교수직을 하지 않으셨다면, 나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겠지. 아마 같은 길을 지나치지도 않았을 거야. 근데 지금은 같은 집에 살러 가는 중이라니, 진짜 인생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자주 뇌리를 지배한다. 잠깐, 근데 그럼 나 진짜 겁나 운 좋은 거 아냐?? 세상 죠오오옹나 평범한 배여주가 김석진이랑 결혼할 확률이 얼마나 됐겠냐구. 하, 나 인생 잘 살았네.(초월긍정)

아주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텐션이 다시 돌아온 여주의 눈에 그새 푸른색의 바다가 들어왔다. 요 바다는 20년을 넘게 봤는데도 하나도 안 질린다. 올 때마다 새로워!짜릿해! 태생이 바다조아걸인 배여주는 그새 창문에 거의 달라붙어서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흘긋 보던 석진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우리 지니도 차 태우면 저러는데. 애기들 특징인가. 

남들은 왜 저렇게 다 큰 성인을 애취급하냐 할지 몰라도 31살 으른 김석진의 눈에 24살 배여주는 햇병아리 쯤으로 보였다. ...여주가 또래들보다 철 없고 밝은 것도 한 몫 하는 거 같지만.


"교수님 저 바다 진짜 오랜만에 와요!!(흥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주는 작게 콩콩 뛰었다. 반응이 좋으니 데려온 사람도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여름도 아니고 해수욕장 부근도 아닌 바다라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바다 자체를 좋아하는 여주는 이 쪽이 더 좋았다. 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저 쪽에 커플도 있고 저어기 사진 찍는 남자도 있..... 어?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뭐야? 저거 전정국 아녀?(눈을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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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지, 뭐...


"교수님은 뭐 더 추가하실 건 없으신지..."

"아. 있어요."


여기서 더 추가될 게 있나..? 혹시 아예 집도 따로 살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여주의 불안한 동공과 다르게 석진은 차분하게 옅은 웃음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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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씨는 나 언제까지 교수님이라고 부를거예요?"

"예?"

"어쨌든 남편인데 교수님은 조금... 내가 너무 쓰레기 같고... 아니 뭐,맞긴 맞는데...."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한지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석진이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쒸이ㅂ.... 하. 위험했다. 너무 귀여워서 욕할 뻔 했어. 

아까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알고보니 교수님은 귀엽기까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여주는 다시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마치 탄방소년단 덕질할 때 같은 기분이야....!짜릿해...!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오빠...?"

"오빠요..?"

"죄송해여, 좀 아닌 듯; 선 넘었네요, 제가."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에요. 듣기는 좋았어요."

"그럼 사장님?"

"그건 좀 비서 같지 않아요?"

"흠, 근데 아저씨라고 할 순 업자나요."

"그쵸..."

"석진씨...?석진 씨 어때요."

"괜찮네요."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뭐 시트콤도 아니고. 호칭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모쏠 배여주는 또 배웠다. 교수님한테 석진 씨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다. 괜히 식은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어째 이 호칭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거란 예감이 든다.


"근데 여주씨 알바는 그만뒀어요?"

"네, 일주일 더 하기로 했었는데 요즘 알바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바로 구하셔가지고 그냥 그만 뒀어요."

"그렇구나. 그럼 서울엔 언제쯤 올 생각이에요?"

"글쎄요, 저는 그냥 언제든지 상관 없어서..(백수)"

"그럼 결혼을 다음달 쯤에 하고,"

"ㄴ.."

"집은 지금 옮길래요?"

"예..?"

"나 수요일에 호텔 방 빼고 서울 갈 건데, 괜찮으면 그 때 같이 가요."


사람은 참 간사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방이라니!!이건 말도 안된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던 여주는 막상 같은 집에 살게 될 날이 성큼 다가오게 되자 망설였다. 

배여주가 누군가. 겁은 많고 깡은 없는 쫄보 중의 쫄보가 아니었던가. 절절하게 편지까지 써 가며 고백하고 결혼을 3초만에 냉큼 수락한 것은 애초에 지극히 저답지 않은 행동의 연속이었으니. 따지자면 지금이 더 배여주다운 행동이었다. 


"아...아직 좀 불편해요?"

"ㅇ, 아니요! 그게 아니구,"

"같이 살면서 생활 패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로 편해지면 더 좋고."

"네, ㄱ,그럽시다."


침착한 척 대답했지만 여주는 표정으로, 목소리로 속내가 다 보였다. 투명함 그 자체인 여주를 느릿하게 훑던 석진은 픽 웃음이 났다. 매번 속을 숨기고 접근하는 혼탁한 눈동자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던 석진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투명함이 못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여주씨 지금 얼굴 엄청 빨개졌어요."

"제가요? ㅇ,아 저 원래 잘 빨개져요! 조금 덥기만 해도 빨개지구..."

"그래요?"

"ㄴ,네 진짜로."

"여주씨가 더위를 잘 타는 구나."


석진의 말에 불현듯 바로 옆에 에어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도를 보니.... 망할. 18도네. 


"여주 씨 쓸 방에 에어컨 하나 더 달아야겠네."

"ㄱ..괜찮습니다....저 선풍기 하나만 있어도 잘 살아요..."


망연자실한 여주는 눈 앞의 민초 스무디를 쪽 빨아들였다. 달지만 쌉싸름한 게 지금의 이중적인 심정과 닮았다. 좋긴 좋은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약간은 불안한. 


아니 근데 그와중에 얼굴은 왜 빨개져 가지고. 뭐만 해도 잘 달아오르는 뺨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각방을 쓴다해도 어쨌든 동거라는 생각을 한 게 화근이었다. 

나 이상한 생각 안했는데... 진짜로.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암튼 아님. 모르겠고, 무조건 아님.




"무슨 생각해요?"

"예? 저 이상한 생각 안해ㅆ......"




아. 

아.

시발. 망....

배여주 입. 제발... 제발 닥쳐.


잠시 동그래지던 석진의 눈은 곧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곱게 휘어졌다. 여주는 그 앞에서 낱낱이 제 안을 다 내보인 기분이었다. 

이건 진짜 인생 수치스러운 기억 탑5다. 아닌가, 탑10 정돈가.(수치스러운 경험콜렉터)


"응, 여주 씨 이상한 생각 안 했구나-"

"놀리지 마세여, 제발. 저 지금 진짜 너무 수치스러워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저 진짜 이상한 애 아니거든여...막 음흉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여...(울컥)"

"아닌 거 알아요.ㅋㅋㅋㅋㅋ 그런 생각 할 수도 있지, 걱정 되면."

"..?"

"여주 씨가 걱정할 만한 일 안 만들 거니까, 마음 놓고 와도 돼요."

"ㄴ.....넹...."


저를 이상하게 보지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주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적한 기분이 조금 솟았다. 정말 나를 여자로 생각하시지는 않는구나. 그러니까 지금 대화의 맥락에서 걱정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 사이는 여기서 더 가까워지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었다. 

석진이 세운 벽은 석진을 닮아서 부드럽고 완곡했다. 그러나 여주는 차라리 그 벽이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단하다면 부딪힐 때 너무 아파서 다시 달려들 용기조차 못 낼 텐데, 운이 좋다면 그 벽을 깰 수라도 있을 텐데. 석진의 벽은 젤리처럼 말랑해서 몇번이고 여주를 상처없이 튕겨냈다. 그러나 상처 대신 어지러움과 쓰린 속이 남았다. 부드러운 벽은 여주를 튕겨냈지만, 그 반동 탓인지 또다시 석진에게 이끌리듯 다가갔으니까. 멀미를 잘 하는 여주에게 반복되는 그 일련의 과정은 여지없이 괴로웠다. 

나도 가능성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여주는 작년처럼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할 수 없었다. 대충 석진도 알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대놓고 고백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곧 한 집에 살게 될 텐데 괜히 불편하게 만들기는 싫었다. 내 감정만 잘 다스리면 된다. 그럼 다 괜찮을 것이었다.



 

 

 

 

여주가 카페에서부터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는 걸 눈치챈 석진은 운전을 하면서도 뭐가 문제였는지 고민했다. 막상 같이 살게 되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가. 원래 여자들은 결혼 전에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아마 여주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달래주고는 싶은데, 일반적인 결혼이 아니니 감히 "우리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라던가,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따위의 말로 위로를 할 순 없었다. 뭘 해야 기분이 풀리려나. 여주씨가 뭘 좋아하지. 달달한 걸 좋아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저기 교수님, 그럼 저희 집에 모레 오시는거예요?"

"응, 부모님은 시간 괜찮으시대요?"

"네, 아까 문자 왔는데 두 분 다 괜찮으시대요."

"잘 됐네. ...그럼 여주씨 있잖아요."

"?"

"여주씨는 부산에서 어디 제일 좋아해요?"

"어...일단 부산은 바다죠? 물론 저희 집 근처에는 바다 없지만...그래도 어릴 때부터 바다 엄청 좋아했어요!"

"바다. 나도 바다 좋아하는데."


외우려는 듯이 나긋한 목소리가 바다라는 단어를 소리내 읊조렸다. 취향이 겹친 게 반가웠던 여주는 짝하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엇, 공통점 있었네요! 사실 아까 민초는 살짝 실망스러웠어요."

"민트초코? 솔직히 민트초코는 치약ㅁ.."

"씁. 더 이상 민초 모욕하지 마세여. 안그래도 실망스럽다고요, 지금."

"나한테 실망했어요?"

"조금..?"

"너무하네에. 나는 여주씨가 민트초코 좋아한다해도 실망 안했는데."

"저한테 기대를 안 하셨으니까 실망도 안하신 거겠져."


아. 아무 생각 없이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꺼내버렸다. 나름 유쾌했던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마 석진이 되묻지 않았다면 어색한 채로 다음을 기약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여주씨한테 기대 안 하는 거 같아요?"

"어..어어.."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수습하자, 수습...! ㅅ..


"안 하시는 것..같은데요....(소심)"


수습은 무슨. 거짓말 못 하는 여주는 석진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소신껏 대답하고 말았다. 하필 또 집 앞에 도착해버려선, 운전 중이니 자기 보지 말라는 핑계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저번에 내려준 곳과 똑같은 곳에 차를 세운 석진은 여주의 얼굴을 보고 싶은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눈을 살며시 내리깔았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여주의 통통한 양볼이 움찔거린다. 만져보고 싶다. 석진의 머리에서 본능처럼 스친 그 생각이 실행에 옮겨지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여주의 뺨을 톡톡 건드리자 여주는 토끼마냥 화들짝 놀란다. 그 덕에 저를 보고 있는 석진과 여지없이 눈빛이 닿고 말았다. 

애써 피했던 것이 무색하게, 여주의 두 뺨은 다시금 달아올랐다. 열이 올라 따끈해진 것이 몸소 느껴졌으니 분명 남이 보기에도 엄청 붉어졌을 거였다. 석진의 얼굴이 너무 가깝고, 그래서 평소에는 은은했던 그 시원달달한 체향이 조금은 진하게 다가온 탓이었다. 

그런데도 저 눈동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 번 맞닿은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석진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 너머에 제가 원하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 


"이제야 봐주네."

"..."


낮게 가라앉은 채 속삭이는 목소리는 괜히 사람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마치 처음 석진을 만났던 그 봄이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딱 그 만큼의 간지러움이었다.


"...난 여주씨한테 기대같은 거 못해요." 


심장이 쿵,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떨어졌다. 기대를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내게 바라는 게 없다는 건가?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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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어주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기대까지 해."      


응..? 뭐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닌...가....? 

너한테 기대할 일 같은 거 없다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던지라 긴장이 풀리면서도 왜인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대를 왜 못해요, 하면 되지!!!(소리 없는 아우성) 그래도 뭐, 고마운 감정이라도 갖고 계신 걸 감사해야하나. 하긴, 내가 자꾸 선을 넘는 건 있긴 해...(빠른 자기 통찰) 

사실, 석진의 입장에선 딱 계약서대로 서로 취할 것은 취하고 지킬 건 지키는 상황을 원할 게 뻔했다. 자꾸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고 마음을 갈구할수록 스스로만 비참해진다는 건 잘 알았다. 알면서도 마음처럼 안 된다는 게 문제지. 


"벌써 늦었네."

"ㅇ,에..? 허업,"

"조심해서 들어가요. 도착하면 연락하고."

"아,넵! 모레 뵈어요..."


아무렇지 않게 벨트를 풀어주는 석진에 숨을 참았던 여주는 서둘러 내렸다. 많이 편해진 것 같다가도 저렇게 어른같은 모먼트를 뿜뿜하며 훅 들어오면,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주는 처음으로 석진과 결혼하기로 한 걸 후회했다. 이미 일은 저질렀는데, 제 심장이 김석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봐도봐도 적응되지 않는 저 잘생김이 근원이었다. 아무래도 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분명하다. 여주는 제 앞날에 다른 의미의 고생길이 열린 것을 확신했다.



"다녀왔습니다아"

"갔다 왔나."

"딸내미,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왜여?"


집에 도착한 여주가 부모님이 앉아있는 거실 테이블 맞은 편으로 가서 풀썩 앉는다. 화나신 거 같진 않은데.


"진짜 결혼할거가."

"웅(당당)"

"하아."


막내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배모 씨(남/58세)는 허망한 얼굴로 마른 세수를 했다. 스물 두살 무렵에 결혼한 저와 집사람을 닮은 탓일까.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째 우리집 딸내미들은 다 남들보다 일찍 시집을 가냔 말이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딸바보였던 그는 아직 어린 막내마저 다른 이에게 보내줘야 한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인데."

"여주 학교 교수였댄다."

"교수?"


끼어든 엄마의 대답에 더더욱 심기가 불편해지는지 다듬어지지 않은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주름진 술톤의 얼굴에 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교수란 사람이 학생을 상대로 말이ㅇ...!"

"ㅇ, 아니야! 내가 매달린 거야!!"


극대노 버튼이 눌린 거 같은 아버지에 여주는 손까지 휘휘 내저어가며 석진을 변호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혼하잔 말은 석진이 꺼냈지만 그 전에 좋다고 따라다닌 건 저였으니까.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쁘고 귀여운 딸이 무려 매달려서 하는 결혼이라니, 아버지는 안 그래도 내키지 않았던 이 결혼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래의 사위가.


"엄마는 결혼하는 거 찬성해."

"어..?진짜요? 만나 보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겠지."

"뭐야...감동.."

"한창 예쁠 땐데 언제까지 빚 갚으면서 이러고 있을 거고.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적어도 학교는 끝내고 니 하고 싶은 거 할 거 아니가."

"으응...근데 꼭 그래서 결혼하는 건 아니구..사실 나는 아직까진 알바하면서 지내는 거 괜ㅊ,"

"뭐?(험악)"

"ㅇ..아니요...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요..."


엄마의 기에 눌린 여주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귀영화를 다짐했다.

역시 우리 엄마 무서워. 다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지만.


"근데..엄마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랑 집안 차이가 좀 날 수 있어요. 알고는 있으라구..(소심)"

"어느 정돈데."

"그냥...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도..?"

"재벌은 아니제. 그 정도만 아니면 된다."

"..."

"진짜가."

"ㅎ..."


부모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능력있고 돈 많은 남자랑 만나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어느 정도를 넘어선다면 장점은 단점이 되기 십상이다. 재벌집안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꼭 불에 뛰어들어야 뜨거운 걸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환경에 여주가 던져진다면 분명 적응하지 못할 게 뻔했다. 답답한 틀과 남들의 시선에 갇힌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숨 막혀 말라 비틀어질 것이 눈에 선하였다. 


"니,"

"어쨌든 허락한 거예요? 무르기 없기야!"


싸늘해진 분위기에 여주는 총총대며 제 방으로 피신했다. 석진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부모님도 생각을 바꿀 거라고 확신하면서.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는 여전히 배여주를 이길 자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연락을 안 드렸네. 운전 중에 연락하면 방해될까 싶어 여주는 다 씻고 뽀송한 상태로 매트리스에 누워서야 휴대폰을 들었다. 요게 요즘 자주 본업을 한단 말이지.


-저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 재밌었


아니야. 이거 아닌 거 같애. 계약서 싸인하러 만난 건데 재밌었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여주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다섯 글자를 토도독 지웠다.

뭐라고 보내지. 24년 모쏠 인생 중 이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던지라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아?

아, 세상에. 왜 하필.

하필이면 여주가 대화창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석진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망할. 1 바로 없어졌겠지. 아악(+수치)


20xx년 5월 xx일


김석진 교수님

여주씨 잘 들어갔어요?

우리 또 통했네요




아 미친, 또 통했대. 언제 수치스러웠냐는 듯 여주는 매트리스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아까 바다 좋아한다던 거 말씀하시는 거겠지? 내가 민망할까봐 일부러 통한 거라고 해주시는 건가...?김석진 당신은 도덕책....



아핳 그러게요! 

교수님은 잘 들어가셨어여?


김석진 교수님

응 이제 막 왔어요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세요!




음..이게 아닌가? 몰라 이미 보냈고 교수님은 읽으셨어.(담담)



김석진 교수님

그래요ㅋㅋ

그래도 오늘 여주씨 덕분에 재밌었어요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


교수님이ㅠㅠㅠㅠ나 '덕분에' 재밌었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열버튼 눌림)



김석진 교수님

요즘 이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가지구

여주씨도 피곤할텐데 잘 자요

저도 노는 거 오랜만이라 재밌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용



카톡인데도 불구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석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여주는 한참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 자요라니, 이건 거의 캡쳐 감이었다. 성시경이야 뭐야, 왜이렇게 감미로워.(주접 발동)

그래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배여주는 덕분에 아주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니 하루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습관이 돼서 그런지 눈은 일찍 떠졌는데, 별로 할 것도 없고 늦잠이란 걸 자보고 싶기도 해서 다시 몸을 뉘였다. 그렇게 한 번 더 자고 일어나도 여태 10시였다. 씻고 아침 먹고 설거지까지 했는데도 11시. 뭘 해야하나 고민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교수님인가 하고 호다닥 확인했는데 정국이었다. 얘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지.


"여보세요."

-어어.. 너 부모님한테 결혼한단 거 말씀드렸어?


이제 일어난 건지 살짝 잠긴 목소리였다. 깨자마자 왜 전화한 거지. 불안하게.

 

"응 내일 엄마아빠랑 교수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지. 아버님 지금 우리 집 와계신다.


롸? 아빠가 왜 거기서 나와. 설마 이 아저씨가 또..?


"아빠가 왜 거깄어..? 혹시 너네 아버지랑 또,"

-어. 지금 완전 잠들어 계셔. 일어났더니 거실에 누워계시더라고.

"아...아아...야 미안하다.."

-괜찮아, 딸 결혼한다는데 속상하셔서 마실 수도 있지.

"아니이, 왜 맨날 멀쩡한 술집 놔두고 너네 집가서 마시냐고...아저씨는 괜찮으셔? 괜히 맞춰주신다고 또 과음하신 거 아냐?

-그래도 얘기 들어주신다고 많이 드시진 않은 거 같더라. 

"하, 그나마 다행이네. 나 지금 아빠 데리러 갈게.


어쩐지 집에 엄마 밖에 없더라. 엄마도 아빠가 새벽에 어디갔는질 모르겠다며 걱정했는데, 또 정국이네 집에 간 모양이었다. 두 분이 오랜 술친구였으니 어느정도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그 새벽에 남의 집을 가다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분명 밖에서 1차로 하고 2차를 정국이 집에서 하다가 골아 떨어져 잠든 게 분명했다. 뻔하지, 뭐. 누가 보면 딸내미 어디 팔려가는 줄 알겠다고 투덜대며 여주는 대충 옷을 주워입고 집 밖을 나섰다.


"아이고, 여주 오랜만이네~"

"앟ㅎㅎ 아줌마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아빠 어디.."

"이제 막 깨셔가지고 우리 아저씨랑 아침 드셔."


아놔 이 와중에 밥까지 얻어 드셨어. 여주는 이마를 짚고서 익숙한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현장에서 잡아버리겠어 아주.


"아빠.(험악)"

"ㅇ...왔네."

"왔네? 아니 진짜 왜 남의 집에 와가지구..!"

"어허, 남의 집이라니 듣는 아저씨 서운하게. 우리가 남이가."

"아니.. 아저씨...그건 아니구..."

"아휴, 나는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예?"

"아, 아빠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마요."


씻고 나온 건지 때마침 정국이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부엌으로 나왔다. 쓸데 없는 얘기 하지마라는 듯 살짝 부은 얼굴이 옅게 찌푸려진다.


"근데 아줌마도 여주가 우리 정국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아니에요!"

"배여주 엄청 잘난 남자친구 있어요. 곧 결혼하는 애한테 무슨."

"그치? 아줌마랑 아저씨가 좀 주책이었다 그제."

"ㅎㅎ그래도 예쁘게 봐주신 거잖아여, 감사하죠"


분위기는 마치 히터라도 틀어놓은 듯 따땃하고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배여주는 제 부친께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이상하게 쎄하단 걸 이 때 알아봤어야 했다.






"크흠...사실 나는 우리 여주랑 결혼했음 싶은 사람 따로 있었네."


아? 아 아빠 제발. 


다음 날, 평소와 다르게 온몸으로 무게를 잡던 아버지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인사하러 온 석진 앞에서 대놓고 자네가 마음에 안 드네!!를 외치고 있다는 거다. 그것도 그냥 마음에 안 든다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고 싶다는 쓰잘데기 없는 말까지 해가며.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쉬이발....꿈일거야.....어제 전정국이랑 마신 맥주 한 캔이 아직도 덜 깬 거야....(현실부정)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눈치)


"아니, 이 영감탱이가..! 그런 말을 왜 해, 김 서방 앞에서!"

"할 수도 있지, 뭐."


아노미 상태의 여주와 눈만 꿈뻑거리며 아무 말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석진이 안쓰러웠는지 여주의 엄마는 남편의 등짝을 짝 소리날 정도로 때려가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석진은 아주 흡족한 예비사위였다. 석진은 멀끔한 외모는 물론이고,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게 온몸에서 티가 났으며 사근사근 말도 예쁘게 했다.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이었는데, 손님으로 온 거니 가만 앉아있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며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참 예뻤다.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라오는 센스도 있었고, 분위기도 적당히 풀 줄 알고, 여주를 보는 눈에서는...요즘 애들 말로 뭐라더라. 아, 그래 꿀이 뚝뚝 떨어졌다.

집안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저렇게 성격이 살갑고 바른데 그게 뭐 그리 큰 흠이겠냐 싶었다. 뭘 걱정하는 지 아는 것처럼, 여주 꼭 고생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에서도 왜인지 신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 놈의 도움 안 되는 남편이 지금 어디서 초를 치려고.(분노)


"김 서방, 신경쓰지 마요. 이 사람 괜히 이러는 거야."

"아이, 괜찮습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석진은 머쓱한 듯 허허 웃으며 넉살 좋게 넘어갔지만, 매사 여유롭고 어른스러운 것 같던 석진의 입장에서도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는 이 자리가 쉽지는 않았다. 웬만한 상황은 다 괜찮다만, 석진도 이번 생에 결혼은 처음이니까. 더군다나 저렇게 싫은 걸 대놓고 티내시니 더더욱 가시방석이었다. 하긴, 나였어도 여주씨 같은 딸 누가 데려간다고 했으면 싫었겠지. 저렇게 귀엽고 착한데.


석진은 그 뒤로 일회용 차까지 마시며(석진의 31년 인생 첫 일회용 차였다) 질문에 조곤조곤 잘 대답하고 무사히 여주네 부모님과의 첫 대면을 마쳤다. 물론 여주가 내일 같이 서울에 갈 거고, 결혼 전까지 계속 석진의 집에서 살거라고 말한 후부터는 안 그래도 매서웠던 예비 장인어른의 눈길이 더 무시무시해지긴 했지만...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고, 밖까지 마중 나가라고 부추기는 엄마 덕에 여주는 석진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생겼다. 밤공기가 적당히 선선하니 기분 좋은 날씨였지만 여주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교수니임..."

"응?"


조금 떨어진 채 종종 따라가던 여주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자 차 문을 여려던 석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 아빠 그러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교수님이 잘못하신 거 하나도 없어요. 진짜 괜히 그러시는거예요."

"괜찮아요. 여주 씨 많이 아끼시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내가 더 죄송하지.."


그냥 빈말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사랑스러운 행동은 골라서 하는 여주를 보면서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막상 여주 부모님을 눈 앞에서 뵈니 돌덩이를 얹은 듯 석진은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 진짜 나쁜놈인 거 같은데. 아무리 여주가 좋다고 했다한들 어린애 상대로 이게 딱히 잘한 행동이 아닌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석진은 여주처럼, 결혼하겠다 마음 먹은 게 처음으로 후회스러워졌다. 물론 두 사람의 후회에는 온도 차가 있었지만. 

그 전까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라도 했는데, 여주를 많이 사랑하시는 거 같은 부모님을 마주하자 그 합리화도 먹혀들지 않았다. 근데 지금 이 모든 걸 그만두면 그게 더 쓰레기였다. 나답지 않게 어쩌자고 이랬지. 작게 한숨을 쉬자 여주가 걱정스러운 듯 올려다본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에요. 여주씨도 내일 짐 옮기고 하려면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일찍 자요."

"네...안녕히 가세요."

"내일 봐요."

"네엥.."


그대로 석진의 차가 미련없이 멀어졌다. 부드럽게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이 꼭 주인처럼 피곤해보인다. 아까 웃음에도 별로 힘이 없어보이던데. 역시 아빠 때문인거야..!(확신) 여주는 집에 들어가면 아빠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


"어, 왜."

-내일이지? 서울 오는 거.

"응."

-그래서 뭐 그 여자분이랑은 얘기 잘 됐냐. 결혼 안 한다고 하지?

"한대."

-그럴 줄 알았.....어???? 한다고?????

"어. 부모님도 뵙고 오는 길이다."

-ㅇ...와...집이 많이 어려웠나..?아직 한참 어린데 왜..

"그런 거 같아."

-아님 아직 너 좋아하는 거 아냐?

"...."

-이거네~그 분 너 아직 좋아하나 본대? 부럽다,야. 찐사랑이시네.

"뭐래."

-이 봐봐, 부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너도 대충 눈치 챘네. 내가 너를 모르냐.

"이게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말을 또 섭섭하게 하네. 친구가 결혼한다는데 전화 할 수도 있지.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술 한 잔과 함께 혼자 보낼 생각이었는지 샤워 가운 바람으로 테이블에 앉은 석진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가볍게 들이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던 남준은 저 역시 바쁜 와중에 시간이 나는대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 지금 흥미진진해요' 하는 게 티가 났다. 하여간, 못 말리는 놈이야.


-근데, 그 여자분이 진짜로 널 좋아하는 거면 너 진짜 쓰레기 아니냐? 사람 마음을 막 그렇게,

"나도 그게 지금 후회스러워."


석진은 살짝 젖은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여주가 저에게 아직 마음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올려다 보는 눈빛에 작년처럼 여전한 애정이 뿜어져 나오고 조금만 가까이 가도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니까. 진짜 눈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석진은 눈치가 아주 빠른 부류에 속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어설픈 20대 여자애를 꿰뚫어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었단 얘기다.


-후회된다고 지금 무를 건 아니지? 그럼 너 진짜 회생 불가능한 쓰레기 되는 거다. 

"알아. 그런 거 안해."

-그래. 뭐 계약서까지 썼다니까 그 분도 어느 정도 알고 결정하신 거겠지. 


글쎄. 그런 거겠지. 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감행할 만큼 무모한 애는 아니니까.(배여주 과대평가 중)

석진은 차라리 여주가 대놓고 자길 이용해주길 바랐다. 서로서로 이용해 먹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관계. 여주의 예상대로 석진은 그걸 바라고 있었다. 처음에 결혼상대로 여주를 선택했던 것도, 회사를 비롯해 제 집안과 연관되지 않은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석진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여주는 아직 어렸고 연애 경험도 전무했으며 저를 아직 좋아한다는 거였다. 적당한 호감 이상의 감정은 이 일에 걸림돌일 뿐인데. 그러나 이상하게 석진은 여주에게 더 이상의 깊은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선을 그을 수 없었다. 가장 잘하던 짓인데, 그게 여주한테만 쉽지가 않다. 여동생이 있었던 적도 없는 주제에 여주를 보면 예쁜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팔불출 오빠가 된 거 마냥 그저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러면 혹시 여주가 오해할까. 내가 지금 중심을 못 잡아 주고 있는건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진짜 그 분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거면 적당히 선 그어. 괜히 제자였다고 챙겨주다가 기대하게 만들면 그 분 혼자 상처 받을 거 아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응. ..그래야지."


담담하게 대답하고 대충 몇 마디 더 말을 나누다 전화를 끊은 석진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여주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여지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여주는 결혼 생활이 많이 낯설고 시댁 식구들도 대하기 어려울 텐데 저라도 살갑게 보듬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팽팽히 부딪혔다. 특히나 어머니를 생각하니 자기가 여주를 감싸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머니가 그렇게 악독한 시어머니는 아닐 거라고 믿지만, 자라온 환경이 저와 너무나 다른 여주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실 수도 있고 시댁 특유의 부담을 줄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손주라던가, .......손주라던가. 

최근에도 계속 결혼할 예비 새아가는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아가씨인지 쉬지 않고 궁금해하시는데다 무슨 얘길 하던 그래서 아기는 언제쯤 계획하고 있냐는 기승전아기 대화가 이어졌다. 예비 새아가가 진짜 아가라서 손주는 아마 못 보실 거예요, 라는 말이 입안까지 튀어나왔지만 우선은 자제했다. 어머니 텐션을 보아하니 '어머~~ 너 새아가보고 아가라고 부르니!!세상에!ㅎㅎㅎ' 하실 게 불 보듯 빤해서. 

어쨌든 석진의 머리에서는 지금 당장 여주에게 차갑게 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여주 씨는 그래도 나 믿고 서울까지 오는 건데. 무책임하게 굴 순 없으니까. 

석진은 지금은 말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서로 거리를 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는 게,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름대로 아빠랑 화해도 하고, 엄마랑은 따땃한 포옹을 나눴으며 타지에 있는 언니들에게도 영상통화로 각각 인사를 나눈 여주는 옷가지와 책이 조금 들어있는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제 몸만한 캐리어를 끄는건지 끌려가는 건지 구분이 안 가게 낑낑 옮겨서 집 아래 도로까지 온 여주는 그새 기진맥진했다. 짐 좀 줄일 걸 그랬나. 옷도 별로 없고 책도 그닥 많지 않지만 저렇게까지 짐이 무거운 건 아마 탄방 소년단 앨범 및 굿즈 때문인 거 같다. 괜히 들고왔나, 하고 집을 나선지 2분 만에 후회됐지만 그래도 본가에 계속 뒀다간 언젠가 엄마가 다 치울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배여주, 지금 이 무거움은 훗날 신의 한 수가 될거야.(비장) 고1 때부터 착실히 모아 온 피 같은 앨범, 응원봉, 굿즈, 디비디 등등을 어미(ERMY)로서 절대 버릴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덕심을 다잡으며 멍 때리고 있는데, 언제 온건지 이제는 좀 익숙해진 차에서 석진이 다급하게 내렸다. 


"어이구 어떡해, 이 큰 걸 혼자 들고 왔어요?"

"아, 교수님!"


어제 봤으면서 그새 반가운 나머지 여주는 벌떡 일어나 생글생글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저 짐덩이에 고통 받은 10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 어어 근데 그거 좀 무거워요 조심하세여..."


읏차, 하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석진은 다시 걱정되는 듯 되물었다.


"진짜 저거 어떻게 들고 왔어요? 여주씨보다 큰 거 같은데."

"ㅎㅎ..그냥 질질..."

"짐 저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여주씨 집으로 가는 건데. 다 옷이에요?"


아뇨, 탄방소년단 앨범과 굿즈입니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여주는 허허 웃는 채 그냥 책 같은 거라고 얼버무렸다. 뭐 엇저라구, 책 맞잖아.(노양심)



"여주씨 바다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네에, 그랬죠."

"우리 가는 길에 바다 보고 갈까요? 서울 가면 보기 힘들잖아."

"헉 진짜요? 너무 좋아요."


여주는 시트에서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방방거리다가 순간 깨닫고 죄송하다며 입을 틀어막았다. 감히 비싼 차에...감히 석진님이 운전 중이신데 내가 방해를 해...?(마음으로 머리박기)


"근데요, 교수님, 운전 면허 따는 게 많이 어려워요?"

"음, 나는 그냥 할 만 했는데. 면허 따게요?"

"그냥 교수님 운전하기 피곤하실 때만이라도 해드리려구..."


어제 헤어질 때 뭔가 묘하게 예민해보였다는 말은 속으로 꾹 삼키고 여주가 말끝을 흐렸다. 


"응? 괜찮아요, 많이 피곤하면 기사님 부르니까. 비서가 대신 해줄 때도 있고."

"아아, 기사님....기사님이라는 존재가 있었구나........(머쓱타드)"


석진이 살풋 웃어주긴 했지만 여주는 머쓱함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사님이란 존재를 생각도 못해봤네. 대리 말고 전용 기사님 말하는 거겠지...? 거기다 개인비서...

석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확 느껴지는 거리감에 여주는 불쑥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저 너머 세계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1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일 수도 있는데. 


두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앉은 석진이 순간 아주아주 먼 별에 있는 사람 같기만 하다. 잠시나마 교수직을 하지 않으셨다면, 나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겠지. 아마 같은 길을 지나치지도 않았을 거야. 근데 지금은 같은 집에 살러 가는 중이라니, 진짜 인생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자주 뇌리를 지배한다. 잠깐, 근데 그럼 나 진짜 겁나 운 좋은 거 아냐?? 세상 죠오오옹나 평범한 배여주가 김석진이랑 결혼할 확률이 얼마나 됐겠냐구. 하, 나 인생 잘 살았네.(초월긍정)

아주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텐션이 다시 돌아온 여주의 눈에 그새 푸른색의 바다가 들어왔다. 요 바다는 20년을 넘게 봤는데도 하나도 안 질린다. 올 때마다 새로워!짜릿해! 태생이 바다조아걸인 배여주는 그새 창문에 거의 달라붙어서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흘긋 보던 석진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우리 지니도 차 태우면 저러는데. 애기들 특징인가. 

남들은 왜 저렇게 다 큰 성인을 애취급하냐 할지 몰라도 31살 으른 김석진의 눈에 24살 배여주는 햇병아리 쯤으로 보였다. ...여주가 또래들보다 철 없고 밝은 것도 한 몫 하는 거 같지만.


"교수님 저 바다 진짜 오랜만에 와요!!(흥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주는 작게 콩콩 뛰었다. 반응이 좋으니 데려온 사람도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여름도 아니고 해수욕장 부근도 아닌 바다라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바다 자체를 좋아하는 여주는 이 쪽이 더 좋았다. 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저 쪽에 커플도 있고 저어기 사진 찍는 남자도 있..... 어?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

뭐야? 저거 전정국 아녀?(눈을 의심)


[방탄소년단/김석진] 계약결혼의 법칙 03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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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연재텀을 이렇게 늘릴 생각은 없었구요...변명을 해보자면..교수님들이 과제를 다 끝낼만 하면 또주고 또주고 또주고 피보나치 수열처럼 할 일이 늘어나는 바람에....네..그 외 혐생도 있었고..도저히 자리잡고 앉아서 글 쓸 시간이 없었어요...저는 아주 무책임한 인간입니다..(자기성찰)

그래서 왜인지 이번 글은 저번보다 약간 완성도가 떨어진 거 같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기다리는 분이 계실까 싶어서 헐레벌떡 들고 왔어여.. 앞으로 혐생과 연재를 동시에 하려면 좀 버거울 거 같아서 분량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분량만큼은 줄이고 싶지 않았는데ㅠㅠㅠ일단 짧게라도 연재를 빠르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최선을 다해볼게요!  

 

가볍게 시작한 거기때문에 사실 저도 아직 결말을 모르는 채 마음 가는대로 막 쓰고 있는데 이런 허접한 글을 좋아해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ㅎㅎ 정말 천사가 아니실까 싶어요..진짜 진심.... 저 사실 힘들 때 여러분 댓글 정독해요..!(소곤) 어쨌든 최대한 빨리빨리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요..흑흑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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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댑악
4년 전
독자3
후 저도 과제의 쓴맛을 느껴서 이해할 수 있어요..
하나하면 두개 더 내주시더라구요..ㅎ허헣
완성도??떨어진다뇨!!보는내내 행복했습니다ㅠㅠ

4년 전
독자2
저도 과제에 미쳐가는 입장으로 너무 이해가요..올려주신 게 감사합니다ㅜㅜ
4년 전
독자4
완성도 완전익는데요 ㅠ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 짱 ㅠㅠㅠㅠㅠㅠ
4년 전
비회원72.238
핵꿀잼에요ㅠㅠㅠ어미라니 내가미쳐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5
작가님 ㅠㅠㅠㅠ 혐생 속에서 이렇게 재밌는 글 써주신다구 고생이 많으세요🥺 오늘도 넘 재밌게 읽고 갑니다,,💜
4년 전
독자6
세상에 아침부터 이걸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기다렸어요
4년 전
독자7
이렇게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ㅜㅜ많이 기다렸거든요!
4년 전
비회원51.185
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글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조씁니다..😭💛🧡💜 앞으로 시작될 결혼생활이 여주도 아닌 제가 이렇게 기대되고 들뜨면 푸하푸하.. 너무너무 재미써요! 자까님 사랑합니당 히히
4년 전
독자8
와우 작가님 ㅠㅠㅠㅠㅠ 너무 좋아여... 갓벽해요 오늘의글도... 석진이 너무 설레요.... 나주거..헤헿 오늘도 감사해요 작가님!!
4년 전
독자9
과제..저도 지금 끝없이 밀려오는 과제들이 있어서 그 기분 잘 알죠ㅠ 혐생때문에 바쁘실텐데 이렇게 시간내서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아 오늘도 석진이 넘 설레고..ㅠ 여주 너무 귀여워 석진이가 얼른 여주매력에 빠졌으면 좋겠어요ㅠㅠ
4년 전
독자10
작 까 님 사 랑 해 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분량 무엇ㅜㅜㅠㅠㅠㅠ 저도 과제 폭탄에 요즘 정신 없는뎅 그와중에 글을....!!! 전 이거 완결까지 볼꺼에요 작가님(비장) 천천히 쓰시고 싶을때 들고와주시면 보고 행복해하겠습니당🖤
4년 전
독자11
저 진짜 기다리고 있었어요!!!!!!ㅠㅠㅠㅠㅠㅜㅜ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완전 있구요,,,다음 편도 기다릴거예요ㅠㅜㅜㅜㅠㅠ
4년 전
독자12
교수님이 잘못하셨네여!! 오늘 처음 봤는데 너무 재밌어요ㅠ 건강 잘 챙기시구 늦더라도 연재만 계속해주세요ㅠㅜ
4년 전
독자13
대박... 자까님 와주시기망 하면 됨다... 사랑해요... 교수님 최고... 너무 재밌어 짜릿해 새로워...!
4년 전
독자14
완벽합니다 짝짝짝짝짝 작가님 기다릴게요 어서어서 오셔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5
어서오세요 자까님🙆‍♀️💜 넘나 보고싶었어요💜💜💜💜바쁜 와중에도 글 써서 올려주신 것 만으로도 그저 행복합니다💜💜분량이 적든 많든 아무 상관이 없으니 그저 꾸준한 연재만 해주시면 됩니다😍 언제든 작가님의 시간이 남아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럴때 오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으래여❤️❤️오늘도 제 사랑을 드려요~🙆‍♀️💜거절은 거절해요 아무튼 그래요 글 너무 대유잼👍🏻👍🏻 오늘도 귀여운 아기 여주 보며 잇몸 마르고 갑니당~ 천천히 와주쎄여💜💜
4년 전
독자16
늘 재밌어요.... ❤️
4년 전
독자17
흑흑 작가님 글 기다렸는데 진짜 또 이렇게 너무 재밌어버리다니!!!최고당!!!
4년 전
비회원237.133
작가님 와주셔서 감사해요ㅠㅜㅜㅜㅜ
4년 전
독자18
아아니 작가님 퀄 넘 좋은데 무슨 말씀이세여 저 오늘도 짱 행복하게 읽엇다구요!!! 오늘도 우리의 석진찌 넘 다정한데 혹여나 울 여주 맘고생하진 않을까 눈물이 촉촉하게 차오르네여.. 귀여운 아가여주 ㅠㅠㅠㅠㅠ 귀여워요 진짜 귀여워요... 넘 조아.. 지켜주고시퍼.... 💜 희희 이번편도 잘 읽고 가용💜💜💜💜💜
4년 전
독자19
두둥탁...! 정국이가 왜 여기 이쒀...?
4년 전
독자20
와 이거 진짜ㅜ못기다리겟다.... 미치겟서요ㅠㅠㅠ
4년 전
비회원237.133
작가님 빨리오셔서 동거생활 신혼모습 많이 보여주세요ㅠㅠ
4년 전
독자22
헐 작가님 이제야 글을 보게 됐어요ㅠㅠㅠㅠㅠ진짜 너무 재미있어요 사랑합니다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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