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전정국이 나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소문이었다. 단과 대학 내에서 전정국이 워낙 인기인이라 전정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정국은 인맥이 넓었다. 우리 단대는 다른 단대보다 소문이 빠른 걸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그 이상한 소문, 것도 전정국과 관련된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단대에서 아마, 한 명도 없을 거란 말이다.
단대실에 갔다 온 수정이와 태형이도 그 이상한 소문을 들은 건지,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내 앞에서 내 눈치를 봤다.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맞은편엔 친한 친구 두 명을 두고, 나는 새로 산 노트북으로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분명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데,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전정국을 몰랐다면, 잘생긴 남자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할 게 분명했고, 설사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편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전정국을 너무도 잘 알았다. 전정국이 누군갈 좋아하더라도 그 상대가 여자일 리는 없었고, 그 애가 설사 여자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나를 좋아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 이상한 소문은 근원을 알 수는 없지만, 암튼 소문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무엇보다도.
전정국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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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이와 태형이는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갔고, 수강신청을 실패한 나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전정국을 찾았다. 전정국은 늘 그렇듯 과실 소파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고,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주변에 여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수업이라도 간 건지, 점심 시간이라 밥을 먹으러 간 건지 마침 과실에는 전정국과 나, 둘이었고, 그래서 나는 전정국에게 이 소문에 대해 얘기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전정국 맞은편에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끄는 요란한 소리에도, 전정국은 미동도 없이 폰을 보고 있었다. 누구와 연락이라도 하나, 폰에 즐거운 무언가라도 있는가, 전정국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것도 아닌 건 그 애의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으면, 전정국은 여전히 폰에 눈을 두고 입만 벙긋한다.
" 왜. "
늘 그렇듯, 전정국은 나에게 차가웠다. 단 한 마디였지만, 것도 반갑고, 말이라도 걸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정국과 나에 관한 소문에서 말이다.
"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거 같아서… "
내 말에 전정국이 그제서야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를 보았다. 그 소문에 대해서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나를 보는 전정국의 얼굴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어 눈만 끔뻑였다. 전정국이 삐딱한 시선으로,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 이상한 소문? "
" 아, 그…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
"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이상한 소문이야? "
" 응? "
" 아, 이상한 소문. "
전정국이 되묻는 소문을, 나는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소문의 주인공이 소문의 내용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전정국은 찡그리던 얼굴을 피고는, 피곤하다는 듯 소파 등에 제 몸을 기대었다. 대체 내 어떤 말이 그 애를 거슬리게 했는지, 내 말의 한 자, 한 자를 짚어보아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한동안 말없이 눈을 감고 있는 전정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 상관 없잖아. "
" …응? "
" 내가 게인 건 네가 알고 있을 거고, 그럼 넌 내가 널 안 좋아한다는 거 알고. "
" ……. "
" 너는 나를 안 좋아하고. "
" ……. "
" 그럼 상관 없는 거 아니야? 뭐가 문젠데. "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현해보지도 못한 내 감정을 부정 당하는 게 이런 느낌일까. 물론 전정국은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또 나는 그걸 표현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썼다. 전정국에게 마치, 나는 절대 너를 좋아하지 않아, 그건 나보다도 네가 더 잘 알잖아, 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그게 맞는 말이었다.
" 아,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나. "
" ……. "
" 그. "
" ……. "
" 윤기 형? "
전정국은 나를 한 번 더 죽였다. 좋아하는 사람 있냐는 전정국의 물음에, 혹시 네가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내 감정을 알고 있는 걸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사실은 네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두근거리던 심장을 한없이 추락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내뱉은 말이 분명했다. 네가 하는 건 오해가 아니었다. 오해는, 적어도 관심이라도 있는 상대에게 하는 거고,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전정국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수긍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도 바보처럼 복잡하게 얽힌 너와 나 사이를 풀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좋아하다는 사실같은 건 몰라도 되지만, 내가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네가 오해하는 건, 그러니까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무런 수 없이, 너와 나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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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개강 파티였다. 어쩌다보니 과대를 맡게 된 태형이는 여기저기 선배들에게 불려 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들 무리 지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때, 남들과 어울려 노는 걸 별로 즐겨하진 않은 나는 따로 수정이와 4인용 테이블 하나를 잡아 앉았다. 선배들 덕인지, 신입생 환영회보다 사람 수가 두 배 이상은 많은 탓에, 가게가 시끌시끌했다.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온다던 윤기 선배, 그러니까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윤기 오빠는 타이밍 나쁘게 회장 선배가 건배사를 끝내자마자 들어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뛰어온 건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어, 손수건은 없고, 테이블 위에서 휴지를 뽑아 주면 오빠는 고맙다는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한다.
" 인사는 잘 하고 왔어요? "
" 어. 내가 말했지, 전과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
하루 종일 붙어다녔다고, 수정이와 태형이만큼 윤기 오빠가 제법 편했다. 내가 건네준 휴지를 펼쳐, 앞머리를 까고는, 이마에 붙여놓는 오빠의 모습에 수정이가 그게 뭐냐며, 수정이 특유의 웃음을 지었고, 그게 싫진 않았던지 오빠도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우리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온 테이블이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였다. 그 중 물론 선배들에게 불려간 태형이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둘러보면. 늘 그렇듯 여자 선배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전정국이 보인다. 예의 딱딱한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아, 평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혼자서 홀짝였다.
" 술 잘 마셔? "
" 김아미가 무슨 술을 잘 마셔요~ 지금 이거 두 번째로 마시는 거예요, 얘~ "
쓸 데 없는 건 굳이 떠들지 않아도 되는데, 수정이는 다양한 제스쳐를 취해가며 말한다. 근데 술을 왜 그렇게 마셔. 이어지는 윤기 오빠의 말에 폰만 붙잡고 있거나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던 수정이는 금세 비워진 소주 반 병에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 뭐야. 김아미 네가 지금 이거 다 마신 거야? "
혼자 홀짝홀짝 마시기만 했을 때는 별 느낌도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취기가 이제야 오르는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수정이의 물음에도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걱정하는 듯한 수정이의 얼굴에 괜찮다며 손짓 하고는 그 뒤로 누구보다도 맑게 웃고 있는 어쩐지 이중적인 전정국의 얼굴이 괘씸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도,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기분이 꽁기한 것도 다 너 때문이야.
윤기 오빠와 수정이,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태형이는 나를 말렸지만 나는 나를 말릴 수가 없었다. 수정이 말대로 두 번째 마시는 거기도 했고, 술은 몸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저번 술자리에서 익혔지만서도 내 의지대로 술을 넘기는 게 아니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을 때 게임으로 빨리 달린 건지 나보다도 거하게 취한 몇몇 신입생들이 나왔고 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정신은 어렴풋이 있었으나 몸을 가누기 어려워 태형이에게 의지하고 있으면 곧 부르는 학생 회장 선배의 말에 과대인 태형이는 분주하게 이리저리 동기들을 챙기느라 바쁜 듯 해 자리에 앉아 멀뚱히 상황을 보고 있었다.
술이 들어가면 자신감이 늘어난다고 했나. 나는 분명 정신이 있는데 나도 모를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런 게 아니라면 술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는지, 아니면 술이 원래 센 건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전정국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걸음걸이로 술집 밖을 나갔을 때 태연하게 따라나갔을 리가 없다.
전정국은 예상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가 다행인 건진 모르겠지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정국 쪽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전정국은 옆에 서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눈치는 챘지만 모른 척 하는 건지 장초가 단초가 될 때까지 하염없이 연기를 뿜어내다 떨어뜨려 밟아버렸다. 어느새 전정국 옆에서 쪼그려 앉은 내가 전정국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전정국을 따라 나올 자신감은 있었지만 말을 걸 용기는 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내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건 아니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조금 더 많이 마실걸,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더 많이 마셔볼걸, 후회하며 팔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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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내가 어떻게 내 방, 내 침대에 있는 건지 어리둥절했다. 아마 윤기 오빠가 나를 이리로 데려왔으리라, 며칠 전 체중계에 찍혀 있던 두 자리 숫자를 기억하며 한숨을 쉬었다.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기분에 찝찝한 몸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제 씻고 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화장이 지워져 있는 걸 보면 정신 없는 상태에서도 씻긴 했나 보다. 거울에 비친 몰골에 어차피 감아버릴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며 칫솔을 꺼냈다.
왜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던 건지, 왜 당연히 나는 지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건지, 대체 왜 윤기 오빠는 내 시간표를 알면서도 깨워주지 않았던 건지, 결국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었지만 애꿎은 윤기 오빠를 원망하며 집을 나섰다. 식어버린 밥이 식탁 위에 있었지만 슬픈 표정으로 밥을 버리고 왔다. 그러게 어제 술을 왜 많이 마셔서는. 문득 떠오른 전정국의 얼굴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선 하숙집의 맞은편에는 마침 전정국이 나오고 있었다. 말리지 않아 축 가라앉은 머리를 보아하니 전정국도 늦게 일어난 게 분명했다.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를 할 자신이 없어 눈을 피해 먼저 길을 나섰다. 같은 방향이지만 같이 걸어갈 수 없다는 상황이 모순적이었다. 뒤에서 전정국의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전정국이 나를 본다는 가정 하에서였지만 그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뒤에서 걸을걸.
" 김아미. "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에서 아주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전정국의 목소리였고,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발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 있었던가. 왠지 모르게 눈물이 울컥 차오를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정국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전정국이 가까워질 수록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주먹을 꼭 쥐고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전정국이
내 옆을 거쳐, 내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제가 많이 늦었죠 ㅠㅅㅠ 저는 죄인입니다
도저히 떠오르지도 않고 설상가상으로 징계도 먹는 바람에 늦게 찾아온 점 죄송해요
오늘 글도 역시 똥망이지만 예...쁘게 봐주세여... 제가 고작 3회만에 온 슬럼프를 극복하고 오겠슴다
고마운 암호닉
현지 카누 낭자 정국이최소내남자 그리 솜니움
연 목단 가온 계피
윤아얌
>> 제가 놓친 암호닉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