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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몰래 갈 수 있는데?" 

"몇십억 하는 보물들도 밀수하는데, 사람 하나 못하겠어?" 

 

기나긴 망설임 끝, 배지현의 제안을 받아들인 안나가 물었다.  

 

"안 들킨다는 보장은?" 

"그냥 좀 믿어봐 꼬맹이." 

 

어쨌거나 처음 본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은 인생을 건 일이기도 했다.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생이래도.  

"내 목숨은 안전한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어." 

"피 묻히는 일 시키기에는 너무 아까운 외모지~" 

 

 

그들은 국제 밀매 조직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그저 범죄 조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조직의 규모가 다른 범죄 조직에 비해 아주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세계적으로 뻗어있을 정도이니 크기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조직은 주로 유럽의 귀중품이나 골동품 등을 밀수해 들여온 다음, 고위급 간부들이나 대기업 회장, 재벌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겼다. 여기서 끝이냐? 그렇지 않았다. 아주 귀중한 물건을 팔아넘긴 경우, 구매자를 살해한 후 다시 물건을 찾아와 되팔기도 했다. 꽤나 악랄한 조직이었다. 그래서인지 배지현의 눈빛에는 살벌한 독기가 서려있었고, 탐욕이 가득하게 담겨있었다.  

 

 

배지현은 애써 두려움을 숨기던 안나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부모한테 마지막 인사라도?" 

"됐어. 부모 같은 거 없어." 

"누가 길고양이 아니랄까 봐~" 

 

어느새 스페인의 여름에 어둠이 내렸고, 오랜 이야기를 마친 두 여자였다.  

 

 

 

 

W.블렌지 

 

 

 

 

"배 사장이 한 방에 모여있으라는데?" 

"왜요?" 

"몰라 할 말 있나 봐." 

수빈의 호출에 한 방으로 소년들이 모였다. 

 

 

소년들의 궁금증이 더 번지기 전에 배지현이 안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들어오며 말했다. 

"신입이다. 캐스팅 해왔어 내가~" 

범규와 안나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눈이 커진 범규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 

"어...? 저... 내 지갑 도둑...!!!" 

범규에게 안나가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렸다.  

"야 봤냐? 봤냐고. 저 얼굴 보고 지갑이 안 털릴 수 있냐고!" 

"그러게요. 영혼 안 털린게 다행이네." 

 

 

연준 또한 벙찐 얼굴로 안나를 쳐다봤다.  

아까 낮에 마주쳤던 그 여자였다. 신기루 같던 그 여자.  

심장이 저 밑으로 쿵 떨어져서 그에게만 들리는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애써 담담한 척 머리를 쓸어올렸다.  

 

"갑자기 신입? 뼈밖에 없는 여자애가 뭘 할 수 있다고." 

수빈의 말에 배지현이 안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쓸모가 참 많은 얼굴인데~ 이걸 내가 어떻게 놓치니?" 

안나는 불쾌한 듯 배지현의 손을 탁 쳐냈다.  

"앙큼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손 안타는 길고양이라 그런가~?"  

뭐라 그리 웃긴지 연신 웃는 배지현에게 연준이 물었다.  

"그래서, 데리고 가겠다고? 한국으로?" 

"응, 최연준이 너 말 잘했다. 네가 책임지고 데리고 가. 들키면 둘이 같이 죽던가~" 

 

소년들은 갑작스런 신입에 다들 당황한 채로 서있었다.  

 

"비행기는 이틀 뒤로 미뤘어. 얘 가짜 여권 좀 만들어야 해서~ 그때까지 알아서들 놀아~" 

웃으며 굿나잇 키스를 허공으로 날린 배지현이 방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욕이 쏟아졌다.  

"또라이." 

"맞아. 존나게 또라이. 제 정신이 아니지 저 여자는 항상." 

"지 멋대로야 아주." 

 

배지현을 주어로 한 뒷담화를 뒤로 재치고 연준이 안나에게 다가갔다.  

"구면이지?" 

"기억하네? 자, 다시 만난 선물-" 

안나가 연준에게 선물이라며 건넨 것은 바로 연준의 지갑이었다.  

"이걸 언제..." 

얼빠진 연준의 뒤통수에 대고 범규가 "뭐야! 형도 털렸네!" 라며 깔깔 웃어댔다.  

그런 남정네들에게 "Estúpido. (멍청이들.)" 이라고 말한 안나는 곧이어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나 오늘 어디서 자? 내 방 알려줘. 하나 비워주던가." 

이 신입이라는 여자는 뻔뻔한 데다가 싸가지까지 없다고 생각한 연준이 작게 헛웃음을 쳤다.  

"내 방에서 자. 방 비워줄게." 

 

 

 

 

연준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 안나는 대충 본인의 짐을 챙기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무섭진 않아?" 

멍하니 서있는 안나에게 연준이 물었다. 여전히 손은 바삐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뭐가? 살던 곳을 떠나는 거? 그런 거라면 전혀. 난 죽고 싶을 만큼 지겨웠거든. 거지 같은 이곳에서 줄곧 떠나고 싶었어." 

짐을 바리바리 싸서 손에 가득 든 연준이 뒤를 돌아 안나를 바라봤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야. 도망가려면 지금 가.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안나의 눈이 독기로 가득 찼다. 

"너네가 뭘 하면서 먹고사는지 대충 들었어. 미안한데 난 전혀 무섭지 않아. 도망갈 생각도 없어.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 

연준이 안나의 눈을 피했다. 그녀의 깊은 눈에 속절없이 빠져들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되돌릴 수 없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 네 선택이니까 책임도 네가 지게 되겠지. 피곤하겠다. 푹 자."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연준을 안나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안젤라야, 내 이름. 안나라고 불러." 

연준은 여전히 그녀를 등지고 서있었다. 

"연준이야. 최연준." 

 

달빛 아래 통성명이 이어졌다. 밤은 깊었고,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이 저도 모르게 깊어지는 그런 밤이었다.  

 

 

 

 

안나는 아직까지 연준의 향이 맴도는 호텔 방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불이 꺼진 방은 캄캄했고, 검은 천장이 안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두려웠다. 무얼 믿고 이들을 무작정 따라가는가. 하지만 거지 같은 이곳 생활은 이제 그만 청산하고 싶었다. 줄곧 지옥에서 살아왔으니 이보다 더한 곳은 없으리라.  

 

안나는 떨리는 손을 어둠에게 숨겼다.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여차하면 그냥 죽어버리지 뭐." 

오늘도 밤이 깊었다.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시간이었다. 노크 소리가 안나의 단잠을 깨웠다. 

안나는 작게 신경질을 내며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올려 묶었다. 

 

"뭐야 왜." 

방문을 여니 지갑을 털었던 범규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하고 한 손에는 음식을 든 채 서있었다.  

"아... 안나 맞지? 이것 좀 먹어. 룸서비스 시켰어." 

"마음은 고마운데, 생각 없어." 

"그럼 이따가라도...!" 

범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문에 등을 대고 기대 눈을 감았다. 어지럼증 탓이었다. 평소에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데다가 워낙 선천적으로 허약해서 어지럼증은 열쇠고리 마냥 달고 살아왔다. 

잠시 지지대를 삼아 기대 있던 문 밖으로 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가 감았던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고 서있냐? 안 먹는대?" 

"네... 생각 없대요..." 

안나가 기대있던 문을 다시 열고 범규에게 말했다. 

"배고파졌어. 고마워, 잘 먹을게." 

문을 연 안나와 연준의 시선이 아주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범규 손에 들린 음식을 들고는 다시 문을 닫은 안나의 뒤로 범규의 눈에는 물음표가 그려졌다.  

 

 

 

 

"뭐야 너 어디 나가게?" 

배지현이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나가려는 안나를 호텔 복도에서 잡았다. 

"방에 있으니까 답답해. 잠깐 나갔다 올래. 안 도망가 걱정 마." 

"안나, 너 지금 나가면 한국이고 뭐고 못 가." 

안나의 눈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왜?" 

"니 부모라는 사람들이 너 실종신고해서." 

"끝까지 거지같이 구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내일까지만." 

안나는 신경질적으로 배지현의 손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안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고 소리쳤다.  

끝까지 엿을 준다 이거지. 내가 죽어서 당신들 지옥까지 쫓아갈 거야. 이름만 부모인 악마들. 

안나는 분노와 어딘지 모를 두려움이 섞인 눈물을 흘렸다. 쨍한 태양이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커튼을 쳤다. 또 다시 어둠 속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숨었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항에 심어둔 조직원들 덕에, 조작된 여권으로도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종 신고가 된 터라 항상 조심은 해야 했다. 안나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되도록 얼굴에서 빼내지 않았다.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온 안나에게는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  

"한국 이름 갖고 싶어?" 

배지현의 물음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갛게 손톱을 물들인 손으로 연신 이리저리 물건들을 만져대더니, 선글라스를 들고는 손으로 딱! 소리를 냈다.  

"해나! 해나 어때? 예쁘지. 해가 나듯 밝은 소녀. 우리 해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는 의사를 고개 끄덕임으로 대신 표했다. 해가 나듯 밝은 소녀...  

"넌 이제 신분상 내 동생이야. 배해나." 

웃으며 주먹을 내미는 배지현에게 해나가 작은 주먹을 쥐어 콩- 하고 받아쳤다.  

손장난에 천사마냥 배시시 웃는 해나에게 배지현이 말했다. 

"웃는 거 존나게 예쁘네, 내 동생." 

이제야 제 나이대의 걱정 없이 해맑은 소녀 같았다. 

 

 

 

 

배지현은 아직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해나를 백화점 명품관으로 데려가 하루 종일 쇼핑을 해댔다. 마치 어릴 적 인형놀이를 하듯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입혔다. 하나둘 늘어가는 쇼핑백에 비서의 양손이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다.  

 

배지현이 빨간 손톱으로 가리키는 옷을 직원이 해나에게 건네면, 그녀가 입고 다시 배지현 앞에 섰다. 

"캬, 역시 얼굴이 되니까 다 소화하네?" 

"이제 됐어... 옷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 

"우리 해나, 저것도 입어봐." 

이제 됐다는 해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옷을 골라 들여보낸 배지현이 직원에게 말했다. 

"우리 동생 예쁘죠?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쁜지~" 

배지현은 마치 딸을 데리고 나온 엄마처럼 굴었다.  

 

한나절 동안의 쇼핑을 마친 해나는 지쳐 늘어졌다.  

"나 피곤해. 쇼핑 싫어. 자고 싶어." 

배지현은 이제 집에 가자며 해나를 차에 태웠다. 

 

 

해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스페인의 노을을 떠올렸다. 어쩐지 그곳의 노을만은 그리워졌다. 해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단한 하루에 차에서 잠이 든 해나를 깨운건 배지현의 목소리였다.  

"내려. 들어가서 좀 쉬자." 

 

 

문을 여니 뜻밖의 다섯 남자들이 있었다. 아마 이들도 이 집에 사는 듯했다.  

집은 복층이었고 천장이 아주 높았다. 남자 다섯이 사는 집 치고는 깔끔한 편에 속했다.  

 

"얘네랑 한 집에서 살라고 나보고?" 

"집 세가 비싸서 말이지- 그래도 스페인 길바닥보다는 낫지 않겠어? 

안나가 배지현의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시계 하나만 팔아도 방 하나 더 구할 수 있겠는데." 

배지현이 그런 안나를 달래듯 말했다.  

"독방 줄게. 거실에는 씨씨티비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얘네, 허튼짓 걱정할 정도로 잘못 키우진 않았다 내가.  

 

 

다섯 남자의 시선이 해나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해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 방 어디쓰면 돼?" 

 

 

 

 

"그리고 밖에 나가거나 무슨 일 생기면 배지현한테 연락해." 

집의 구조와 자잘한 규칙들을 설명해 주던 연준이 해나에게 새 스마트폰을 건넸다.  

[TXT/최연준] 수채화(水彩畵)02 | 인스티즈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야. 도망가려면 지금 가.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안나의 눈이 독기로 가득 찼다. 

"너네가 뭘 하면서 먹고사는지 대충 들었어. 미안한데 난 전혀 무섭지 않아. 도망갈 생각도 없어.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 

연준이 안나의 눈을 피했다. 그녀의 깊은 눈에 속절없이 빠져들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되돌릴 수 없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 네 선택이니까 책임도 네가 지게 되겠지. 피곤하겠다. 푹 자."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연준을 안나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안젤라야, 내 이름. 안나라고 불러." 

연준은 여전히 그녀를 등지고 서있었다. 

"연준이야. 최연준." 

 

달빛 아래 통성명이 이어졌다. 밤은 깊었고,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이 저도 모르게 깊어지는 그런 밤이었다.  

 

 

 

 

안나는 아직까지 연준의 향이 맴도는 호텔 방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불이 꺼진 방은 캄캄했고, 검은 천장이 안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두려웠다. 무얼 믿고 이들을 무작정 따라가는가. 하지만 거지 같은 이곳 생활은 이제 그만 청산하고 싶었다. 줄곧 지옥에서 살아왔으니 이보다 더한 곳은 없으리라.  

 

안나는 떨리는 손을 어둠에게 숨겼다.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여차하면 그냥 죽어버리지 뭐." 

오늘도 밤이 깊었다.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시간이었다. 노크 소리가 안나의 단잠을 깨웠다. 

안나는 작게 신경질을 내며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올려 묶었다. 

 

"뭐야 왜." 

방문을 여니 지갑을 털었던 범규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하고 한 손에는 음식을 든 채 서있었다.  

"아... 안나 맞지? 이것 좀 먹어. 룸서비스 시켰어." 

"마음은 고마운데, 생각 없어." 

"그럼 이따가라도...!" 

범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문에 등을 대고 기대 눈을 감았다. 어지럼증 탓이었다. 평소에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데다가 워낙 선천적으로 허약해서 어지럼증은 열쇠고리 마냥 달고 살아왔다. 

잠시 지지대를 삼아 기대 있던 문 밖으로 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가 감았던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고 서있냐? 안 먹는대?" 

"네... 생각 없대요..." 

안나가 기대있던 문을 다시 열고 범규에게 말했다. 

"배고파졌어. 고마워, 잘 먹을게." 

문을 연 안나와 연준의 시선이 아주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범규 손에 들린 음식을 들고는 다시 문을 닫은 안나의 뒤로 범규의 눈에는 물음표가 그려졌다.  

 

 

 

 

"뭐야 너 어디 나가게?" 

배지현이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나가려는 안나를 호텔 복도에서 잡았다. 

"방에 있으니까 답답해. 잠깐 나갔다 올래. 안 도망가 걱정 마." 

"안나, 너 지금 나가면 한국이고 뭐고 못 가." 

안나의 눈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왜?" 

"니 부모라는 사람들이 너 실종신고해서." 

"끝까지 거지같이 구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내일까지만." 

안나는 신경질적으로 배지현의 손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안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고 소리쳤다.  

끝까지 엿을 준다 이거지. 내가 죽어서 당신들 지옥까지 쫓아갈 거야. 이름만 부모인 악마들. 

안나는 분노와 어딘지 모를 두려움이 섞인 눈물을 흘렸다. 쨍한 태양이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커튼을 쳤다. 또 다시 어둠 속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숨었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항에 심어둔 조직원들 덕에, 조작된 여권으로도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종 신고가 된 터라 항상 조심은 해야 했다. 안나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되도록 얼굴에서 빼내지 않았다.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온 안나에게는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  

"한국 이름 갖고 싶어?" 

배지현의 물음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갛게 손톱을 물들인 손으로 연신 이리저리 물건들을 만져대더니, 선글라스를 들고는 손으로 딱! 소리를 냈다.  

"해나! 해나 어때? 예쁘지. 해가 나듯 밝은 소녀. 우리 해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는 의사를 고개 끄덕임으로 대신 표했다. 해가 나듯 밝은 소녀...  

"넌 이제 신분상 내 동생이야. 배해나." 

웃으며 주먹을 내미는 배지현에게 해나가 작은 주먹을 쥐어 콩- 하고 받아쳤다.  

손장난에 천사마냥 배시시 웃는 해나에게 배지현이 말했다. 

"웃는 거 존나게 예쁘네, 내 동생." 

이제야 제 나이대의 걱정 없이 해맑은 소녀 같았다. 

 

 

 

 

배지현은 아직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해나를 백화점 명품관으로 데려가 하루 종일 쇼핑을 해댔다. 마치 어릴 적 인형놀이를 하듯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입혔다. 하나둘 늘어가는 쇼핑백에 비서의 양손이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다.  

 

배지현이 빨간 손톱으로 가리키는 옷을 직원이 해나에게 건네면, 그녀가 입고 다시 배지현 앞에 섰다. 

"캬, 역시 얼굴이 되니까 다 소화하네?" 

"이제 됐어... 옷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 

"우리 해나, 저것도 입어봐." 

이제 됐다는 해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옷을 골라 들여보낸 배지현이 직원에게 말했다. 

"우리 동생 예쁘죠?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쁜지~" 

배지현은 마치 딸을 데리고 나온 엄마처럼 굴었다.  

 

한나절 동안의 쇼핑을 마친 해나는 지쳐 늘어졌다.  

"나 피곤해. 쇼핑 싫어. 자고 싶어." 

배지현은 이제 집에 가자며 해나를 차에 태웠다. 

 

 

해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스페인의 노을을 떠올렸다. 어쩐지 그곳의 노을만은 그리워졌다. 해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단한 하루에 차에서 잠이 든 해나를 깨운건 배지현의 목소리였다.  

"내려. 들어가서 좀 쉬자." 

 

 

문을 여니 뜻밖의 다섯 남자들이 있었다. 아마 이들도 이 집에 사는 듯했다.  

집은 복층이었고 천장이 아주 높았다. 남자 다섯이 사는 집 치고는 깔끔한 편에 속했다.  

 

"얘네랑 한 집에서 살라고 나보고?" 

"집 세가 비싸서 말이지- 그래도 스페인 길바닥보다는 낫지 않겠어? 

안나가 배지현의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시계 하나만 팔아도 방 하나 더 구할 수 있겠는데." 

배지현이 그런 안나를 달래듯 말했다.  

"독방 줄게. 거실에는 씨씨티비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얘네, 허튼짓 걱정할 정도로 잘못 키우진 않았다 내가.  

 

 

다섯 남자의 시선이 해나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해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 방 어디쓰면 돼?" 

 

 

 

 

"그리고 밖에 나가거나 무슨 일 생기면 배지현한테 연락해." 

집의 구조와 자잘한 규칙들을 설명해 주던 연준이 해나에게 새 스마트폰을 건넸다.  

[TXT/최연준] 수채화(水彩畵)02 | 인스티즈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야. 도망가려면 지금 가.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안나의 눈이 독기로 가득 찼다. 

"너네가 뭘 하면서 먹고사는지 대충 들었어. 미안한데 난 전혀 무섭지 않아. 도망갈 생각도 없어.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 

연준이 안나의 눈을 피했다. 그녀의 깊은 눈에 속절없이 빠져들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되돌릴 수 없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 네 선택이니까 책임도 네가 지게 되겠지. 피곤하겠다. 푹 자."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연준을 안나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안젤라야, 내 이름. 안나라고 불러." 

연준은 여전히 그녀를 등지고 서있었다. 

"연준이야. 최연준." 

 

달빛 아래 통성명이 이어졌다. 밤은 깊었고,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이 저도 모르게 깊어지는 그런 밤이었다.  

 

 

 

 

안나는 아직까지 연준의 향이 맴도는 호텔 방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불이 꺼진 방은 캄캄했고, 검은 천장이 안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두려웠다. 무얼 믿고 이들을 무작정 따라가는가. 하지만 거지 같은 이곳 생활은 이제 그만 청산하고 싶었다. 줄곧 지옥에서 살아왔으니 이보다 더한 곳은 없으리라.  

 

안나는 떨리는 손을 어둠에게 숨겼다.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여차하면 그냥 죽어버리지 뭐." 

오늘도 밤이 깊었다.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는 시간이었다. 노크 소리가 안나의 단잠을 깨웠다. 

안나는 작게 신경질을 내며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올려 묶었다. 

 

"뭐야 왜." 

방문을 여니 지갑을 털었던 범규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하고 한 손에는 음식을 든 채 서있었다.  

"아... 안나 맞지? 이것 좀 먹어. 룸서비스 시켰어." 

"마음은 고마운데, 생각 없어." 

"그럼 이따가라도...!" 

범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문에 등을 대고 기대 눈을 감았다. 어지럼증 탓이었다. 평소에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데다가 워낙 선천적으로 허약해서 어지럼증은 열쇠고리 마냥 달고 살아왔다. 

잠시 지지대를 삼아 기대 있던 문 밖으로 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가 감았던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고 서있냐? 안 먹는대?" 

"네... 생각 없대요..." 

안나가 기대있던 문을 다시 열고 범규에게 말했다. 

"배고파졌어. 고마워, 잘 먹을게." 

문을 연 안나와 연준의 시선이 아주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범규 손에 들린 음식을 들고는 다시 문을 닫은 안나의 뒤로 범규의 눈에는 물음표가 그려졌다.  

 

 

 

 

"뭐야 너 어디 나가게?" 

배지현이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나가려는 안나를 호텔 복도에서 잡았다. 

"방에 있으니까 답답해. 잠깐 나갔다 올래. 안 도망가 걱정 마." 

"안나, 너 지금 나가면 한국이고 뭐고 못 가." 

안나의 눈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왜?" 

"니 부모라는 사람들이 너 실종신고해서." 

"끝까지 거지같이 구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내일까지만." 

안나는 신경질적으로 배지현의 손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안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고 소리쳤다.  

끝까지 엿을 준다 이거지. 내가 죽어서 당신들 지옥까지 쫓아갈 거야. 이름만 부모인 악마들. 

안나는 분노와 어딘지 모를 두려움이 섞인 눈물을 흘렸다. 쨍한 태양이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커튼을 쳤다. 또 다시 어둠 속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숨었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항에 심어둔 조직원들 덕에, 조작된 여권으로도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종 신고가 된 터라 항상 조심은 해야 했다. 안나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되도록 얼굴에서 빼내지 않았다.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온 안나에게는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  

"한국 이름 갖고 싶어?" 

배지현의 물음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갛게 손톱을 물들인 손으로 연신 이리저리 물건들을 만져대더니, 선글라스를 들고는 손으로 딱! 소리를 냈다.  

"해나! 해나 어때? 예쁘지. 해가 나듯 밝은 소녀. 우리 해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는 의사를 고개 끄덕임으로 대신 표했다. 해가 나듯 밝은 소녀...  

"넌 이제 신분상 내 동생이야. 배해나." 

웃으며 주먹을 내미는 배지현에게 해나가 작은 주먹을 쥐어 콩- 하고 받아쳤다.  

손장난에 천사마냥 배시시 웃는 해나에게 배지현이 말했다. 

"웃는 거 존나게 예쁘네, 내 동생." 

이제야 제 나이대의 걱정 없이 해맑은 소녀 같았다. 

 

 

 

 

배지현은 아직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해나를 백화점 명품관으로 데려가 하루 종일 쇼핑을 해댔다. 마치 어릴 적 인형놀이를 하듯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입혔다. 하나둘 늘어가는 쇼핑백에 비서의 양손이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다.  

 

배지현이 빨간 손톱으로 가리키는 옷을 직원이 해나에게 건네면, 그녀가 입고 다시 배지현 앞에 섰다. 

"캬, 역시 얼굴이 되니까 다 소화하네?" 

"이제 됐어... 옷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 

"우리 해나, 저것도 입어봐." 

이제 됐다는 해나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옷을 골라 들여보낸 배지현이 직원에게 말했다. 

"우리 동생 예쁘죠?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쁜지~" 

배지현은 마치 딸을 데리고 나온 엄마처럼 굴었다.  

 

한나절 동안의 쇼핑을 마친 해나는 지쳐 늘어졌다.  

"나 피곤해. 쇼핑 싫어. 자고 싶어." 

배지현은 이제 집에 가자며 해나를 차에 태웠다. 

 

 

해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스페인의 노을을 떠올렸다. 어쩐지 그곳의 노을만은 그리워졌다. 해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단한 하루에 차에서 잠이 든 해나를 깨운건 배지현의 목소리였다.  

"내려. 들어가서 좀 쉬자." 

 

 

문을 여니 뜻밖의 다섯 남자들이 있었다. 아마 이들도 이 집에 사는 듯했다.  

집은 복층이었고 천장이 아주 높았다. 남자 다섯이 사는 집 치고는 깔끔한 편에 속했다.  

 

"얘네랑 한 집에서 살라고 나보고?" 

"집 세가 비싸서 말이지- 그래도 스페인 길바닥보다는 낫지 않겠어? 

안나가 배지현의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시계 하나만 팔아도 방 하나 더 구할 수 있겠는데." 

배지현이 그런 안나를 달래듯 말했다.  

"독방 줄게. 거실에는 씨씨티비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얘네, 허튼짓 걱정할 정도로 잘못 키우진 않았다 내가.  

 

 

다섯 남자의 시선이 해나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해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 방 어디쓰면 돼?" 

 

 

 

 

"그리고 밖에 나가거나 무슨 일 생기면 배지현한테 연락해." 

집의 구조와 자잘한 규칙들을 설명해 주던 연준이 해나에게 새 스마트폰을 건넸다.  

[TXT/최연준] 수채화(水彩畵)02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이걸로 연락하면 될거야. 배 사장 번호는 1번으로 단축번호 설정해놨어. 무슨 일 생기면 1번 꾹 눌러." 

"해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연준을 올려다봤다." 

"네 번호는?" 

연준이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채로 답했다.  

"내 번호도 저장해뒀어. 주소록 들어가면..." 

"네 번호도 단축번호 설정해 줘." 

해나의 명령 같은 부탁은 뭔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라는 물음도 연준은 속으로만 삼켜냈다.  

"그래 그럼 2번으로 설정해둘게. 2번 꾹 누르면..." 

"0번으로 해주라." 

"왜?" 

결국 연준의 물음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입 밖으로 튕겨 나왔다. 해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답했다. 

"너한테 자주 연락하고 싶어질 거 같아서." 

연준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로 그저 본인의 번호를 0번에 두었다. 

 

 

 

 

해나는 또다시 캄캄한 천장을 마주했다. 빛은 모두 차단한 상태로 새로운 집의 새로운 침대에 누웠다.  

이제까지가 전부 다 꿈인 것 같았다. 지금 잠에 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여전히 스페인의 작은 방 한 칸에서 눈을 뜰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어도 싫었다.  

해나는 닫았던 커튼을 옆으로 확 열었다. 달은 빛났고, 도시의 불빛에 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달은 밝게, 저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해나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  

내일 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달을 보며 해나는 잠에 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다섯 남자들은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바로 경매가 있는 날이었다.  

스페인에서 밀수해 온 물건을 팔아넘긴 뒤, 타깃을 죽여 다시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죽여야 할 타깃이 그 물건을 사게끔 만드는 일이었다.  

 

해나 손에 피는 안 묻게 하겠다는 배지현의 작전은 이랬다. 해나의 미인계로 멍청한 남자를 꼬신 뒤(주로 나이 많은 남자들이 경매에서 물건을 사거나, 살해의 타깃이 됐다.), 방심했을 때 탕.  

인간은 아주 멍청해서 제 눈에 당장 보이는 것만 믿고는 한다. 그게 제 몸을 찍어내릴 도끼인 줄은 모르고. 태양빛에 눈이 멀어 도끼를 보지 못하는 멍청한 인간들을 이용해보자는 게 배지현의 계획이었다.  

 

 

"나 어디 가는 거야?" 

해나의 물음에 배지현이 답했다.  

"사전 답사... 뭐 이런 비슷한 거?" 

 

저 위를 올려다봐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빌딩 앞에 선 해나는 이글거리는 태양빛에 눈을 찡그렸다.  

스페인에서는 구경도 못할 아주 높은 건물이었다.  

 

 

 

 

"어이 배 사장- 오랜만이군." 

"장 회장님, 잘 지내셨나보네요? 10년은 어려진 거 같아~?" 

"옆에 아가씨는?" 

"아가씨 아니고 내 동생~ 산책 겸 데리고 나왔어~" 

"배 사장한테 동생이 있었구만. 허허." 

더러운 남자의 시선에 해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배지현이 그런 해나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 해나. 잠시 나가있어~ 언니 일 좀 보고 금방 갈게." 

 

 

장 회장이라는 사람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였다. 가진 건 탐욕뿐이었고, 그에 대한 벌 마냥 각종 합병증 또한 달고 살았다.  

한마디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타깃은 장 회장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이었다.  

 

 

몇십 분 뒤, 차에서 멍을 때리던 해나 옆으로 배지현이 들어와 앉았다.  

 

"하여간 저 늙은이. 오늘내일하게 생겨서 예쁜 건 알아가지고. 더러운 새끼." 

배지현이 선글라스를 거칠게 벗으며 중얼거렸다. 

"배해나. 깔끔하게 죽여버리자. 기분 나쁜 늙은이 같으니라고."  

 

해나는 회장이고 뭐고 그저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을 뿐이었다.  

 

 

 

 

집에 도착한 해나는 얼굴에 칠한 색들을 지워냈다.  

해나는 화장하는 것을 싫어했다. 아주 끔찍이도 싫어했다. 

해나가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한숨을 내쉬던 순간이었다. 

 

"누나, 나와서 밥 먹어요." 

태현의 목소리가 노크 소리 이후에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나가보니 큰 식탁에 여러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누가 만든 건지, 아니면 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와, 누가 만든 거야?" 

"저희가요. 저희 요리 잘하죠. 먹어봐요 빨리!" 

 

태현의 말에 반찬 하나를 집어다가 입으로 가져다 댔다. 소년들은 오물거리는 해나를 빤히 쳐다보며 긴장의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때요...? 맛 괜찮아요...?" 

 

무슨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셰프들처럼 다들 해나의 평가만 기다렸다. 해나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웃으며 말했다. 

"진짜 맛있어! 진짜로!" 

해나의 말에 표정이 밝아진 소년들은 그제서야 긴장을 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어쩐지 가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이었다.  

 

 

밥은 거의 다 먹어가는데, 아까부터 연준이 보이지 않았다. 해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소년들에게 물었다. 

"근데 그 파란 머리는 어디 있어? 아까부터 안 보이네." 

"아, 연준이 형이요? 데이트 갔어요." 

"데이트?" 

"네. 데이트." 

 

해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대로 그녀의 식사 또한 멈췄다.  

 

"아, 맛있게 잘 먹었어 정말. 고마워. 나 먼저 방에 들어갈게." 

 

해나는 식사를 곧바로 끝내버리고,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해나를 감싸 안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에 해나는 커튼을 다시 닫아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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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64.183
분위기가,, 미쳤어여,, 이런 분위기 사랑하는데,, 지리겠어서 하기스 착용 완료,, 역시 갓블렌지,, 사랑해요,,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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