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usa
쉽게도 잊혀진 어둠 발 디딜 곳도 못 볼 때
누군가 어디서 비춰준 한줄기 빛의 Limelight
To. 종현이 형.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지옥이 아니었을까. 가끔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이미 내가 죽어서 지금 지옥을 견디고 있는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말야, 그런 내게도 기적이란게 일어났어.
한순간에 내 세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들어오더니 내 모든걸 쥐고 흔드는..
처음에는 정말 싫었는데, 갈수록 그 흔들림이 좋아졌었어.
근데 그 기적이 어느순간 갑자기 날 떠밀고 사라져 버린거야.
바라던 일이니까 홀가분하고 편할 줄 알았는데, 형이 있어주면 괜찮을거라 믿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니라는걸 깨달았어.
우리의 지난 시간들은 너무 그 힘이 강해서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어.
내가 형을 사랑하는 거라고,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나는 미안해하지 않을거야. 형의 사랑도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형, 이제 나는 나의 기적을 찾으러 가.
형도 형만의 기적을 찾길 바라.
종현은 기범의 편지를 곱게 접어 제 교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너의 기적을 찾으러 간다고. 저 멀리 섬나라에 숨어버린 너의 기적은 하늘을 가르고서라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나의 기적은, 기범아, 나의 기적은 만 리나 떨어져 있어서 조금도 다가갈 수가 없어… 종현은 마르세수를 하고 현관으로 나가 제 신발을 구겨신었다. 기범의 집을 나가며 종현은 눈 앞의 까만 차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안에서 여전히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종현은 하하 웃어버렸다.
"다녀왔습니다."
웃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눈물이 조용히 바닥을 적셔간다.
기범은 고심하여 쓴 편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짐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능을 본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나간 종현을 배웅하고 기범은 곧장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미 제 부모님과는 이야기가 끝났고, 공항에 가 예매해둔 표를 받아다가 비행기에 올라타면 그걸로 전부일, 그런 쉬운 일이었지만 기범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작별 인사를 했었어야 했는데… 기범은 용기를 내지 못한 자신을 탓하다 마음을 다잡았다.
데려다 주겠다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택시를 잡아 타 공항에 도착한 기범은 계속 울리는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했다. 자꾸만 액정 위에 뜨는 태민의 이름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매표소에서 예매한 표를 받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에게는 얼마나 길었는지 모르겠다. 기범은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왔던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려는게 얼마만인지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또 나는 너로 인해 변해가고 있구나. 기범은 제 발끝을 내려다본다. 어두운 속을 가리기 위해 화려하게 꾸몄던 겉모습에 따라 지금 신고있는 신발도 아주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민호가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너에겐 잘 어울린다고 웃어주었던, 그 신발.
아, 기범이 탈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다. 기범은 얼른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승무원에게 제 빳빳한 표를 건네며 기범은 미소지었다. 안녕, 나를 묶어두었던 모든 시간들. 앉은 자리에서 기범은 바깥을 바라본다. 배웅하는 사람 하나 없음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민호야, 네가 나에게 와줬던 것 처럼, 이제는 내가 너에게 가려고 해…
기범아.
저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기범이 고개를 돌렸다. 민호… 놀라 이름만을 중얼거리는 기범을 민호는 힘껏 끌어안았다. 네가 올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를 마주안으며 기범은 울음을 터뜨렸다. 민호야, 사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묵혀둔 말을 꺼내고, 민호의 웃는 얼굴을 보며 기범은 그 입술에 먼저 입을 맞췄다. 그리고, 눈을 떴다.
"고객님,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웃는 얼굴로 저를 흔들어 깨운 승무원에게 아, 네, 하고 대답한 기범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간 모양인지 홀로 남아있어 부끄러웠다. 그 긴 이동시간동안 한번도 깨지 않고 자다니… 기범은 머리를 긁적이며 헐레벌떡 비행기를 나왔다.
그다지 크지 않아 따로 보내지 않은 가방을 꼭 쥐고 기범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입국심사를 위해 잔뜩 긴장하고 선 기범은 주섬주섬 필요한 서류를 꺼냈다. 제 얼굴을 보며 입국 목적이 무어냐고 묻는 남자에게 기범은 I came here to meet my friend,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뭔가 틀린 건 아닐까 불안하게 남자를 바라보던 기범은 별 말 없이 저를 넘기고 다음 사람에게 말을 거는 남자에 얼른 뛰다시피 그곳을 벗어났다.
넓은 공항을 꽉 채운 사람들에 질린 기범은 다시금 제 가방을 꼭 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거기 아름다운 분, 바쁜게 아니라면 나랑 차 한잔 할래요?"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기범은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멈추어 섰다. 설마, 이번에도 꿈은 아니겠지.
"바쁜거에요?"
어느새 제 뒤에 붙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기범은 느리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을 마주쳤다. 그가 우는지, 기범이 우는지, 서로를 마주보는 눈동자 사이에 물기가 가득했다.
"네, 제가 좀 …바쁘네요."
"왜요? 런던에 뭐 하러 왔는데요?"
기범이 완전히 제 몸을 틀어 민호와 마주보고 섰다. 여느때처럼 고통과 슬픈으로 얼룩 진 눈물이 아닌 감동과 환희로 가득 찬 기쁨의 눈물이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내린다. 기범은 양 팔을 벌려 민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키가 큰 민호 덕분에 약간 까치발을 들어야 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민호는 제 품에 안겨온 기범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뭐 하러 왔어요?
"…사랑을 찾으러 왔어요."
내 기적같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그럼, 행복은 찾으셨나요?"
"응, 민호야, 네가 내 행복이잖아…"
기범은 꿈에서 본 것 처럼 먼저 민호에게 입맞추었다. 민호의 웃음이 기범에게로 흘러들어온다. 내가 그랬잖아. 반드시 행복하게 할거라고. 여전히 입을 맞대고 말하는 민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는다.
너 내가 여기 올거란거 어떻게 알았어?
종현 형한테 들었어.
뭐어? 너 종현이 형이랑은 연락 한거야?
아, 응. 사실 도망치다시피 유학와서, 후회 많이 했거든. 네가 자꾸 떠올라서.
그래도, 지금 올 줄은 어떻게 알고…
계속 기다렸어. 전화 받고나서부터 너 올때까지.
엇갈렸음 어쩌려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어. 봐, 우리가 결국 다시 만났잖아?
그게 뭐야…
그래서, 지금 행복해?
으응, 행복해.
그럼 다 된거야.
* * *
결말이 눈에 보였죠? 히히.. 너무 허무하게 끝났네요 분량도 넘넘 짧구...
하지만 이게 최선이였어요
더 길게 썼다가는 새드엔딩만 쓸 줄 아는 제 손이 멋대로 기범이가 탄 비행기를 추락시킬 지도 몰라서..ㅋㅋㅋㅋㅋㅋ
여튼 여기까지 함께 달려와주신 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덧글 남겨주신 분들 제일 감사하고, 조용히 봐주시기만 하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메두사의 완결 텍스트 파일은 오타나 맞춤법 교정 후에 메일링 할 예정이구요
앞으로 계속 될 샤이니 인 호그와트, 그리고 또 다른 글도 많이 봐주세용♥_♥
아 그리구 이 다음에 태민이와 종현이의 이야기도 외전으로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