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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후드

01


학관 내에 위치한 편의점은 오가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정문에 꽤 규모가 큰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이 생긴 이후로는 더 그랬다. 하지만 여주는 학관 내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대부분의 강의가 있는 건물과 가장 가까워서.


복학 후 다시 맞은 수강신청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들쭉날쭉한 시간표에 여주는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눈물 난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망하지? 계속해서 내뱉는 혼잣말과 한숨을 끝으로 여주는 수강신청의 결과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미 끝난 걸 어쩌겠냐며 해탈한게 벌써 며칠 전 일이었다.


몇 년만에 찾은 캠퍼스는 낯설 만큼 그대로였다. 여느 카페처럼 적립 쿠폰을 찍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하루에 한 번 꼴로 들리는 편의 점. 그러니까, 학관 내에 위치한 그 편의점. 일주일의 반이 9시 아니면 10시 강의인 탓에 한낱 자취생에게 아침밥이라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늦잠이라도 안자면 그나마 다행인거지. 아무것도 안 먹자니 허전하고, 그렇다고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먹는 건 굳이 말 안해도 알거라고 믿는다.


그 조그만 편의점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결국엔 오전 타임 알바하는 언니와 통성명까지 했다. 글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보이는데 과는 철학과란다. 딸랑이는 종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인사하려던 언니는 여주를 확인하곤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강의 들으러 가? 네, 전공이요... 아침다다 고생이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여주가 주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 야 여주야. 나 잠시만 전화 좀"

"네네 다녀와요"


알바언니가 창고로 들어서고, 울리던 벨소리가 멎었다. 얕게 흐르는 음악 소리에 픽 웃음이 새었다. 노래 취향하고는..

매대 끄트머리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는 고프고, 강의는 얼마 안남았고. 가지런히 정리된 매대를 빤히 바라보다 에너지바를 집어 드는 여주였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찬 공기가 새었다. 살짝 숙인 시선을 옮기자 없던 머리가 튀어나왔다. 계산대로 향하던 걸음이 한 발을 채 내딛기도 전에 가로 막혔다. 뭐야 이사람. 앞을 막아선 채 저를 빤히 보는 눈빛에 미간을 좁혔다. 매섭게 뜬 표정과 달리 눈매가 둥글었다. 도톰한 입술이 열리고, 흘러나온 말은.

[전정국] 편의점 후드 01 | 인스티즈

"알바야, 이거 하나 더 꺼내줘"


이내 여주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저요?"

"엉, 알바야. 이거 재고 없는데"

"저기요, 저 알바 아닌.."

"이거 투 플러스 원 아니야? 여기 두 개 밖에 없는뎅?"


하나 더 주라. 후드 모자를 푹 눌러쓴 머리통이 휙휙,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나보고 알바라고 한 건가? 여주가 대답할 틈도 없이 뒤돌아서 걸어가는 모습에 헛웃음이 흘렀다. 뭐야 진짜.


앞서 걷는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저 구석 창고에서 얼굴만 슬쩍 내민 채 눈짓, 턱짓으로 말하는 알바언니 때문에 깊게 한숨을 뱉은 채 결국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다. 꼭 이렇게 한 번씩 사람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전에도 몇 번 핑계 아닌 핑계로 짧게 카운터를 몇 번 봐줬던 여주였다. 자연스레 포스 기계를 다루는 여주의 움직임에 그가 다신 되물었다.


"이거 하나 더 없어?"

"그게 마지막 재고래요."


아, 구래? 아쉽넹... 계산대 위에 놓인 물품을 하나씩 차근히 바코드를 찍던 여주가 건조한 말투로 답했다. 8300원입니다. 카드를 건네는 손이 동글동글하니 크다. 계산을 끝낸 음료 캔들을 하나씩 챙기면서도 질문 아닌 질문이 그치질 않는 그였다.


"이거 다음에 행사 또하면 재고 많이 넣어줘, 응?"

[전정국] 편의점 후드 01 | 인스티즈

둥그런 눈매가 축 처졌다. 이에 속으로 깊게 한숨을 뱉은 여주가 대답했다. 네. 간결하고도 건조한 대답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그제서야 통화를 끝낸 후 창고 문을 닫고 나오는 알바언니였다. 미안, 미안. 형식적인 사과와 함께.


"언니, 다신 이런 거 부탁하지 마요."

"미안해, 진짜 급한 전화였어."


아 진짜, 근데 왜 웃어요. 알바언니의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여주는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검정색 후드를 뒤집어 쓴 동그란 머리와 동그란 눈. 꽤 특이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날 이후 애석하게도 또 한 번 마주쳐버렸다. 뜬금없는 휴강에 오후 강의까지 붕 떠버린 탓에 청강이랍시고 태형의 수업에 함께 들어간게 화근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여주의 표정이 구겨졌다. 제 자리에서 두 블록 떨어져 앉은 그 사람. 그때 그 편의점 후드. 그냥 근처 카페나 갈까 주섬주섬 가방을 다시 챙기던 여주의 손이 멎었다.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수 덕분에. 타이밍까지 도와주질 않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출석을 부르는 교수의 목소리에 체념하듯 노트를 꺼내어 펼쳤다. 신경 쓰지 말자. 2주도 더 지난 일인데 기억할 리가 없지.


그렇게 여주의 다짐 아닌 다짐이 무너진 건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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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호출예약 했어요~🥰
다음편도 잘 부탁드려용💜💜💜

3년 전
독자2
다음이 너무 궁금해요ㅠㅜㅜ💜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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