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바다를 사랑했다.
바다 속에 있는 것이라면 세상 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품었다.
소년은 그 것들이 그저 바다 속에 존재 한다는 조건 하나만으로 그 것들에게 알지 못할 마음이 동했다.
고래나 상어같은 해양 생물로 함축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 깊은 수면아래 잠겨있는 아이들의 오리 장난감이나 구멍 뚫려 너덜너덜해진 튜브, 하다 못해 사람이 먹고 버린 작은 페트 조각까지 정을 주었다.
사람 사이에서 거래되는 진주나 예쁜 조개알. 비싼 해산물의 돈 값 따위는 소년이 마음을 품기에 적절치 못했다.
소년은 파도가 모래를 집어 삼킬 때의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발설 하지 못 할 비밀이 생기면 남 몰래 모래에 끄적이곤 파도가 지워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건 너와 나 둘 만의 비밀이라고,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건 너뿐이라고
바다는 또 다른 소년이었다.
소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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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바다를 품었다. 아니 바다가 소년을 품었다.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은 바다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을 낳고 기른 것이 바다라 믿고 여겨왔다.
소년은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갔다. 아홉의 어린 나이부터 배운 물질이었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는 오래동안 잠겨있었고 소년과 나는 시합을 하듯 매일 같이 서로를 기다렸다.
그는 내가 지쳐 떠나기를 기다렸고 나는 그가 나를 받아드리길 바랐다.
그가 매일 같이 바다에서 무엇을 했냐면, 조개나 전복 따위를 줍고 떼었고 가끔은 통돌이에 들어차는 물고기를 데려오기도 했다.
때론 미역을 가져오기도 했고 바다 깊숙한 곳에 잠겨있는 주인없는 쓰레기를 주워오기도 했다.
나는 그런 소년을 보며 이런것도 애정을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의 웃음을 보면 더이상 나무랄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에 그가 애정을 주는 것 마저 사랑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 이라는 단어가 쉽게 발설 될 감정은 아니지만 그게 소년이라면 가능했다. 앞뒤 재지않고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잠겨있을거니. 매서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바닷내음이 짜다. 쌉사름한 향이 나는 소년을 뭍에서 기다렸다.
너는 늘 나를 기다리게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을 쉽게 놓지 못하는건 사랑하는 이의 필수불가결 한 현상이다.
나는 오늘도 소년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상. 지루하지않다. 그저 먼 발치에서 소년을 담은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년이 수면 위로 올라와 물안경을 올린다. 이제 올라오는건가 싶어 벌떡 일어났다.
두리번 거리며 부둣가를 찾는 고개짓이 멈췄다. 일어나느라 흘러내린 가디견을 추켜 올렸다. 팔뚝을 두어번 쓸며 소년을 바라봤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려 시야에 방해가 일었다.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에 걸었다.
밝아진 시야 사이로 헤엄쳐오는 소년이 보였다.
소년에게 물을 건넸다. 집에 언제 갈거야? 질문도 같이 건넸다. 그가 입모양으로 추워? 하고 물어왔다.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 들어갈거야? 소년에게 물었다.
먼 저 들 어 가
소년이 뻐끔거렸다. 소년이 사랑하는 물고기를 닮았다.
소년이 말을 내뱉고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유영하는 뒷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털썩 주저 앉았다. 너를 사랑하는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평생 너를 기다릴 수 있었다.
이건 평생을 바다에 잠겨 있는 소년을 위한 나의 작은 물보라 헌정극.
수면 밖으로 몇 번 더 올라왔다 내려갔던 소년이 몇십분이 더 지나서야 부둣가 가까이 헤엄쳐왔다.
그가 손에 쥔 통이 눈에 띄었다. 오랜 시간동안 바다 속에서 있던 것 같은데 힘든 기색도, 추운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잔뜩 인상을 찌뿌리고선 다가온다.
소년이 가까이 오는 거리를 바라보다 그의 할머니가 타준 유자차를 보온병 뚜껑에 따랐다.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좀 많이 식었다. 바다에 있어서 많이 추웠을 텐데, 더 따뜻하게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다.
소년은 내가 준 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선 옆에 놓여져 있는 물병을 쥐었다.
춥지. 나지막히 전한 말에 물을 마시던 소년이 마시던 물을 얼굴 위로 쏟았다. 거리가 있는 탓에 물이 튀지는 않았다.
고개를 바로 한 소년이 나를 바라본다. 왜 먼저 들어가지 않았냐는 눈빛이다. 꼭 저렇게 틱틱대지.
쏟아지는 눈길을 무시하며 식은 유자차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뚜껑을 탈탈 털어 보온병을 닫고 가방 안에 놓여있던 수건을 건넸다.
소년이 거절하지 않고 머리 위에 수건을 걸쳤다. 이마를 툭 치고선 먼저 걸어갔다. 그런 소년의 젖은 등을 빤히 바라보다가, 가방을 고쳐메고선 소년의 곁으로 뛰어갔다.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소년의 뒤에 바투 붙어 따라갔다. 소년이 나를 바라봤다. 눈빛을 읽고 얕은 뜀박질로 소년의 곁에 섰다. 자연스럽게 오늘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모가 오늘 저녁은 둘이서 먹으라고 하셨어. 오늘 앞에 영기 이모네에서 마을회의 있어서 거기서 식사하고 오신대. 고기 사놨어. 고기먹자. 너 고기 좋아하잖아.
대화는 이로써 끝이 났다. 소년은 오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대화를 즐거워 하지 않은게 아니라 나와의 시간을 즐거워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건 모른체 했다.
소년은 바다를 제외한 모든 것을에게 마음을 품지 않으니까.
내게 허용되는 것은 그저 소년을 기다리는 시간 뿐 그의 곁 따위는 내어지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마음 깊숙히 숨겨놓았다.
기나긴 꿈 결을 헤매는 중이었다.
빨래집게에 집혀 마당에 널려있던 소년의 옷을 걷어서 탁탁 털었다. 두 번 접어 건네니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화장실로 걸어간다.
따라 들어가 몸을 녹였다. 거실에 누워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가만히 시간의 흐름을 느끼다 고개를 돌려 소년이 씻으러 가는 길에 남기고 간 방울로 남은 바닷물을 바라봤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길을 알리기 위해서 빵가루를 흘렸던 것 처럼 소년도 내게 자신이 간 길을 알리기 위해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간 것일까.
그러면 나는, 그 물방울을 따라 소년에게 다가가면 되는 것일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때 아무런 힘도 없이 저항하지도 못하고 끌려간다. 그럼에도 내게 소중한 소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어서, 내 감정이 그에게는 독일테니까.
내가 그에게 품는 이 감정은 죄이고 죄이니까.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옆에 있는 수건을 들어 그가 남기고 간 물방울이 눈물로 보이지 않게 닦고 닦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가 들어간 화장실의 앞쪽까지 갔을 때 타이밍 맞춰서 문이 열렸다. 쭈그려 있는 나를 보고선 의문을 품는다. 아, 물 떨어졌길래. 멍청한 음성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소년의 뒤로 뿌연 수증기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다 씻은 소년에게서 비누냄새가 난다. 바닷내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몸을 일으켜 소년을 마주했다.
머리, 말려야지. 너 이러다 진짜 감기걸린다.
소년이 대충 손으로 머리를 훑고 옆머리를 탁탁 턴다.
앗 차가.
무미건조한 음성이 소년에게 닿았다. 되려 장난치듯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추워. 머리 말려. 아니면,
내가 말려줄까?
소년은 고개를 내저으며 머리위로 수건을 덮었다. 타인의 손길을 타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절대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대뜸 소년이 나를 화장실로 떠밀었다. 나, 나 옷 가져오고. 등 떠밀리면서도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뜻을 겸허히 받아 드린다. 문을 닫고 옷가지를 한 겹 한 겹 벗어 던졌다. 샤워헤드에서 따뜻한 물이 곧 잘 나왔다.
씻고 문을 빼곰 열자 문 옆에 옷가지가 놓여있었다. 그 위에 속옷까지 세트로.
소년은 섬세하고 다정하다. 가끔은 그 다정이 내 목을 죄었다.
네가 조금만 더 잔인했더라면, 조금만 덜 다정했더라면 내가 너를 품지 않고 죄악 같은 마음을 이고 살지 않았을텐데.
밥을 다 먹은 후 정리를 하고 산책을 가자고 말을 텄다. 소년이 시선을 내리깔고 눈을 느리게 두어번 끔뻑였다. 고민한다. 때를 놓치지 않고 한 번 더 말했다.
별 보러 가자.
소년이 말 없이 옆에 있는 후드집업을 집어 들었다.
입춘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라 날이 쌀쌀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배경삼아 돌멩이를 툭 툭 걷어차며 걸었다. 소
년은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며 걸었다.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그런 소년의 눈을 마주치다 후드집업이 걸려있는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아침에는 바다냄새가, 저녁에는 비누향이 나는 소년의 팔 위에 내 팔을 얹고 싶었다.
시선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 소년이 손에 있던 후드집업을 내 위로 둘렀다. 왜 냐고 물으려다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소년이 어린 아이에게 옷을 입히듯 소매 안으로 팔을 집어 넣어 내 손을 맞잡고 밖으로 빼냈다. 지퍼까지 다 올린 그가 어깨를 툭 툭 치고선 먼저 걸었다.
그가 팔에 걸치고 있던 부분에 작은 온기가 남았다.
나에게서도 비누냄새가 났다.
희서네 슈퍼 앞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두유를 쥐었다. 소년의 손에 들린 두유를 빼앗아 껍질을 벗겨주었다. 그럼 그는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린 두유를 가져가 뚜껑을 까주었다.
안쪽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티비소리.
먼발치에서 보이는 일렁이는 파도
그 위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
적당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
내게서 나는 그의 비누향과 내 옆의 소년.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때.
평생을 앓다 죽을 소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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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직 주인공을 정하지 않아서,
글을 읽고 생각나는 멤버를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안온한 밤 보내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