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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전체글ll조회 495l 3
"나 진짜 그 주임하고 아무사이도 아닌데"

"알아요. "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여자 이야기는 이제 안했으면 좋겠다.  바로 금방 새장 어쩌구하면서 시를 떠올렸으면서도, 나의 옹졸한 마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역시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가 그랬었잖은가. 원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고.  ....왜 내 마음의 온도가 다 이 사람의 말을 따라 흘러가는 거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고 자리에 앉는데 그의 눈이 슬깃 접히는 게 보였다.





"왜요?"

"그냥 기분좋네."

"이유가 있을거아니에요."

"그냥... 나는 너만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

"싱겁기는."

"기분도 좋은데 우리 와인도 한잔 시키자."

"딱-한잔만이에요!!"





급정색을 하는 나를 보며 그가 반달눈을 하고 웃었다.





"응. 딱 한 잔만."





그의 아기같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그를 따라서 금방 풀어졌다.  질투하니? 질투하는구나? 흔히들 풀어 낼 레파토리를 건너뛰고 그는 그냥 내 마음을 눈치챈 것 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었다.  이미 다 읽혔는데도, 나는 부끄럽다기보단 고마웠다.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그의 배려가 따뜻하게 다가왔고, 새삼 그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가 느껴졌다.



나도 그를 보면 기분이 좋다.  그냥. 그를 보면 이유가 필요없이 그냥 좋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드핑크 #04 ------------------------------------------

오픈한지 얼마 안된 대형서점에서 그를 기다렸다.  나는 여유롭게 북카페에서 책 몇권을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비가 오고나서 하늘이 너무 맑아서, 필요한 사진 나오겠다고 급히 연락이 왔어.  큰 작업은 아니라서 두 세 시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우리 약속시간 미룰까?

-아니요, 서점에서 책읽으면서 기다릴께요.

-정말 미안해 ㅜㅠ

-걱정 말고 일 잘하고 와요~^^





두어시간을 앉아 집중하자니 짧은 에세이 정도는 금방 읽혔다.   부드러운 커피향을 맡다가 컵 위로 떨어지는 햇빛을 따라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보았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보였다.  하늘이 더 없이 파랗고 구름들은 티없이 하얗다.  지난 밤, 천둥번개까지 동반하며 비를 뿌렸던 하늘답지 않게 맑다.  보기만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설레게 만드는 그런 예쁜 하늘이 도심에 긴 빛을 뿌렸다.  딱딱하고 안이쁜 건물들, 낡아 부스러진 흔적이 보이는 인도와 그보다는 조금 덜 낡은 아스팔트, 그리고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차가운 바람에게 나뭇잎을 털리는 은행나무, 그렇게 드러나는 나무의 잔가지들과 공중에서 바람과 한 번 더 부딪혀야 하는 불쌍한 낙엽들.   모두가 골고루 깊고 진한 가을 하늘의 빛을 받고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공평한 빛의 혜택을 못 받는 건 길 건너편,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진 공간들 뿐 이었다.  오후가 깊어지면서 그림자들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날씨 참 좋네."





좋은 책을 보며 가을풍경을 감상한다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책을 덮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 것은 다 읽어서가 아니라 방금 읽은 페이지가 너무 좋아서였다.  마음에 가득 담긴 그 글귀를, 금방 넘겨버리고 싶지가 않아서, 이 느낌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창 밖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자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웃음부터 났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웃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늘 그를 마주하거나 떠올리면 미소부터 짓고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눈 앞에 분홍색 장미꽃이 한가득 보였다.  손을 뻗어 꽃다발을 받아 들고 나니 그 뒤로 그가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서 있었다.  향긋한 꽃냄새를 맡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예요?"

"기다리게 한 게 미안해서."

"괜찮은데.... 일은 벌써 다 끝났어요?"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서 후작업은 후배에게 미루고 왔지."





그가 외투를 벗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책을 수면제 삼아서 자고 있었구나?"

"감상 중이에요 감상-"

"이런 에세이 취향일 줄은 몰랐네"

"그럼 무슨 취향일 것 같은데요?"

"글쎄..."





손바닥으로 부채질 하는 그가 더워보였다.  바람도 불고 좀 쌀쌀한 날씨인데, 정말로 급하게 뛰어왔나보다.





"그거 나 마셔도 돼?"

"응? 응 마셔요. 근데 이거 식어서..."

"목말라서 그래, 괜찮아"





그가 씩 웃더니 내가 마시던 커피로 손을 뻗었다.





"앉아있어요, 아이스커피 하나 사올께요"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괜찮아, 진짜로. 이거 마시고 조금만 앉아있다가 같이 나가."





식어서 맛도 없고, 시원하지도 않고 미지근한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그가 안쓰러웠다.  늦은 건 그인데도 내가 미안해지는 건, 무슨 마음일까...  그는 계속 커피를 든 채로 내가 골라온 책들을 뒤적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냥 이것저것.... 근데 읽은 건 한 권이네요"

"그럼 집에 가져가서 읽어. 다 사줄께"

"아니에요. 사도 내가 사야지 왜..."





그가 씩 웃더니 책들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우리회사랑 계약 맺은 데야."

"우와, 진짜?"

"응, 여기 홍보영상하고 웹사이트 관리 우리가 해주고 있어. 그래서 상품권 좀 얻었지."





그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보여주었다.





"짜잔. 이건 우리가 홍보영상 찍어준 다른 팀 공연표 초대권이지롱~"

"이야 능력자네."

"공연보고나서 여기 탑플레이스에 레스토랑도 괜찮은데 거기 가자."





그가 계산대에 서는데, 계산대에 있던 직원 옆에서 누군가 다가오며 반가운 표정을 했다.





"어머, 웬일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라~ 잘지내셨죠?"

"네, 아 저번에 주신 상품권 쓰려고요"

"주세요. 제가 계산해드릴께요"





그녀는 계산대 직원을 옆으로 비켜서게 한 후 본인이 직접 계산해주고 포장까지 해주었다.





"이 책은 서비스. 너무 좋아서 읽어보시라고 드리는거에요."

"어 괜찮은데..."





어정쩡하게 뒤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들이대는 여자의 폼이 심상찮다.





"홍보영상 너무 예쁘게 잘 찍어줘서 고마워서요"

"모델들이 좋으니까 잘나온거죠, 뭐... 감사합니다"

"근데 책을 참 여러 권 읽으시네요. 일관성이 전혀없네. 호호호..."

"아 그게...."





.....이건 뭐지, 이 분위기는?





"이 친구꺼에요."





그제야 직원의 눈에 내가 띄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곧바로 내 손에 들린 커다란 꽃다발로 향했다.





"아...? "





눈꼬리를 치켜뜨며 나와 그를 번갈아 보는 낌새가 역시....





"일행이신가봐요"

"아... 네."





그가 가볍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시려운지 품 속의 꽃들이 다 시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꽃다발을 두 손으로 가렸다.





"우리 회사에서 이 서점 영상 찍어줬다고 했잖아. 여기 직원분 몇 명이 잠깐씩 나왔거든.  여기 주임님도 나왔는데 되게 잘나왔더라고.... 그래서 나온 영상 좀 모아서 선물로 드렸었지."





나는 어설프게 목례로 인사를 건냈고, 그녀도 어색하게 내게 인사를 건냈다.  우리의 어색한 기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손을 풀고 계산을 끝낸 책을 내게 건냈다.





"자 이거 받아. 아, 이건 서비스래.... 이것까지 전부 다 읽고, 감상문 써서 제출하도록. 알겠나?"





분위기 파악이 아직도 안되는지 그는 계속 농담같은 말을 건냈다.





"그럼 주임님 그만 가보겠습니다. 또 뵈요"

"네."

"가자, 배고프지?"

"응? 응... 네.."





나는 다시 어색하게 목례를 한 뒤 그의 뒤를 따라 서점을 나섰다.  안봐도 느껴지는 시선 때문에 뒤통수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바보 아냐?"

"응?"





책을 들고 책장을 후루룩- 넘기며 중얼거리는데 신나게 먹는데 집중하던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직원이 서비스로 준 책은 사랑에 관한 시를 모아 둔 미니북이었다. 진짜 바보 아냐?





"왜 그래?"

"아니 됐어."

"왜?"

"됐다고요-"

"뭐야 왜 그래,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없어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이 책은 내가 읽으면 안될 것 같아서요."

"왜, 그냥 너 가져.나 솔직히 책 별로 안 좋아해..."

"그래도 그 분이 선물로 주신 거 잖아요. 신경써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워진 마음에 몇 마디 내뱉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 왜........."





그도 말하다 말고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분위기를 흐트리며 잘못한 건 나인데도 그가 저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게 너무 민망해서 제발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싶은- 그래서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잠시 화장실로 나가는 중에도 그의 표정이 계속 나를 따라왔다.





"뭐하는 거냐..."





정신차리라고 세수라도 하고 싶었는데 화장이 다 지워질까봐  한숨을 푹푹 쉬며 그냥 찬 물에 죄없는 손만 계속 씻어댔다.  손을 털며 거울을 보고 있자니 서릿발 같던 그녀의 시선이 떠올랐다.





"일로 만난 사이인데. 뭐... 어짜피 친절한 게 몸에 배인 사람이고..."





그의 선한 인상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겠지.  나에게만 그랬을 리가 없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책을 훑고 있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 그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반듯한 이목구비, 넓은 등과 어깨, 적당히 차려 입은 블레이저 자켓 차림의 그는 먼 거리여도, 옆모습이어서 반만 보인다해도 이 넓은 가게 안에서 혼자 모든 조명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바른 자세로 기대있는 엔틱한 디자인의 의자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작은 책과 그 옆에 있는 기다란 물잔도, 테이블 위에 마치 설정처럼 놓여있는 분홍색 장미꽃 다발도 전부 그와 함께 있으니까 저렇게 멋있어 보이잖아.   그러니까 조그만 친절에도 그렇게 다들 착각해서....





-안들어오고 뭐해?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입모양을 크게 벌려 말을 건냈다. 이 상황이, 언젠가 겪은 것 같아서, 지금 내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서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서서 그를 쳐다만 보았다.  사지의 감각이 떨어진 사람처럼,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었더니 그가 잠시 갸웃하다가 일어서서 내게로 걸어왔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구김없이 밝은 미소를 띄우는 그를 보며 나는 아까 훑던 시집에서 봤던 시가 떠올랐다.



-조그만 새장으로는 새를 사랑할 수 없다.





"왜그래, 진짜 화났어?"

"아니에요"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며 옆에 서있다가 의자를 밀어주었다.  새삼 그의 다정함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  건너편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다정한 남자일까.





-이친구꺼에요

-일행이신가봐요?

-아... 네





맞다. 난 그의 일행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왜 이렇게도 유치하고 이기적인가.  복잡미묘한 내 표정을 보며 그가 말을 건냈다.





"나 진짜 그 주임하고 아무사이도 아닌데"

"알아요. "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여자 이야기는 이제 안했으면 좋겠다.  바로 금방 새장 어쩌구하면서 시를 떠올렸으면서도, 나의 옹졸한 마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역시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가 그랬었잖은가. 원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고.  ....왜 내 마음의 온도가 다 이 사람의 말을 따라 흘러가는 거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고 자리에 앉는데 그의 눈이 슬깃 접히는 게 보였다.





"왜요?"

"그냥 기분좋네."

"이유가 있을거아니에요."

"그냥... 나는 너만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

"싱겁기는."

"기분도 좋은데 우리 와인도 한잔 시키자."

"딱-한잔만이에요!!"





급정색을 하는 나를 보며 그가 반달눈을 하고 웃었다.





"응. 딱 한 잔만."





그의 아기같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그를 따라서 금방 풀어졌다.  질투하니? 질투하는구나? 흔히들 풀어 낼 레파토리를 건너뛰고 그는 그냥 내 마음을 눈치챈 것 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었다.  이미 다 읽혔는데도, 나는 부끄럽다기보단 고마웠다.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그의 배려가 따뜻하게 다가왔고, 새삼 그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가 느껴졌다.



나도 그를 보면 기분이 좋다.  그냥. 그를 보면 이유가 필요없이 그냥 좋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장동료들이 부러움에 가득찬 야유를 보낼 만큼 커다란 꽃다발이 내 책상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흰장미를 푸르게 염색시켜 고운 하늘빛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룬 장미다발에 꽂힌 카드를 열어보니 우리가 친구가 된지 일년이 된 기념이라 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죽은 그가 생각나서가 아니라, 죽은 그로 인한 고통보다도 지금 이 선물이 행복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져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게 다가 아니야, 집에 도착하면 또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꺼야.' 라는 그의 마지막 덧글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죄스러운 마음은 죽은 그에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앞 우편함을 뒤적이는데 관리인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아이고, 오늘 무슨 날이에요? 손이 모자라겠네. 내 품 가득한 푸른장미를 보며 관리인 아저씨가 사람좋은 미소를 건냈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온 무언가를 전해주었다. 월말이 다다라서인지 유난히 고지서들이 많이 쌓인 우편함이 아닌, 관리인 아저씨의 손으로 소포를 두 개나 건네 받았다.  두개씩이나-, 피식 웃음이 나 얼른 집에 들어가 확인해보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소포를 두 손에 올려놓고 보는데 서류 봉투사이즈의 소포에서 낯익은 향기가 났다.  너무 오래되어 오히려 낯설기까지하지만 분명 익숙한 느낌에 가슴이 뛰었다.  몇 년 전의 기억이 머리위로 내려앉자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나는 휘청거렸다.  이 소포는 외국에서 온 것이었다.  유럽.  그가 죽은 곳.  바닥으로 떨어진 버거웠던 꽃다발과 선물, 고지서들과 핸드백에 걸려 넘어진 채로 나는 덜덜 떨었다.  손이 떨려 소포지가 제대로 뜯어지지가 않았다.  땡그랑- 무언가 작은 것이 굴러 떨어지면서 낯익은 필체의 편지가 나왔다.  낯익은 필체는 죽은 그의 것이었다.



그가 살아있었다.



-살아있을 리가 없다.





두 개의 생각이 연달아 머리를 내려쳐서 정신이 없었다.












-놀랐지? 너랑 처음으로 싸우고 밤을 새워 생각했어. 그리고 네가 영원히 끝내자고 할까봐 두려워져서 도망쳐왔어. 여기 와서 그림들을 다시 보아도, 그림은 눈에 안들어 오고 너만 보이더라. 그림 속의 여자가 너로 변해서 내게 화를 내고, 그림 속의 꽃들이 네 얼굴 때문에 빛을 잃고, 그림 속의 사람들이 네게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한다. 그래서, 도망쳐 온 걸 뉘우치며 이 글을 쓴다. 하지만 왠지 부끄럽다. 나는 아직 능력도 없고, 제대로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림쟁이라서,  네게 해줄 것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 뿐이야. 마음이 무거워서 도저히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써야하나 몇 번이나 쓰다 버리고 다시 쓰다 버리고... 결론은,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거야.  네게 돌아가서 말 할꺼야. 미안하다고. 내가 어떻게 해야 네 화가 풀릴까?  이 편지가 먼저 도착할지 내가 먼저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네가 나를 떠올리며 웃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나의 반지도 동봉한다. 이 반지를 받으면, 네 손으로 다시 내게 끼워줄래? 네가 내게 되돌려 준 반지는 내가 다시 끼워 줄꺼야. 노력할게. 너를 잃지 않도록.  너는 나의 첫사랑이고... 또 마지막 사랑이야.  기다려 줘. 언젠가 네 앞에서 당당히 멋지게 프로포즈할때까지.  후회하지 않게 해줄께. 영원히 사랑해. 

추신: 동봉한 그림은 내내 나를 쫓아다녔던 너야. 기차 안에서 그렸어.  이 그림을 넣으려고 편지만 보내려다 우체국에서 다시 찾아 왔어.  보고싶다, 아주 많이.












나의 초상화가 있었다.  몇 군데 삐친 선이 보이는, 오랜 시간 공들이지 않았음에도 분명한 나의 얼굴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소포를 뜯을 때 바닥으로 떨어진 무언가가 그의 반지였음을 그제야 인식했다.  계속 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나는 다시 편지를 읽고 또 그림을 보았다.  그의 글씨체, 누가봐도 나처럼 보이는 여자의 그림.  머리가 멍해졌다.







소포의 겉에는 보낸 이의 메시지가 있었다. 싸구려 유스호텔의 다락방 구석에서 보물찾기하듯이 우연히 발견한 우편물을, 한글이라 반가워 본의 아니게 내용까지 읽게 되었다했다. 이미 두 사람은 화해했다고 믿고 싶으며 이것은 두 사람에게 뜻밖의 이벤트가 되길 바란다며 그는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빌어주었다.





























































-뭐야, 왜 전화 안받아?

-바빠?

-무슨일있어?

-걱정되니까 톡이라도 해 줘.





닥달하듯 울리는 폰을 모른척 하고 있으려니 옆 자리의 대리님이 계속 수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요새 좀 일이 바빴어요. 그리고 좀 아파서....





답을 하자마자 바로 전화가 울렸다.  눈치를 보며 전화를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왜, 어디가 아파? 많이 아파?

-아뇨... 날이 좀 추워져서 그런가, 감기기운때문에...

-병원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목소리가 기운이 하나도 없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아픈 게 왜 나한테 미안해.

-...

-아니다, 미안해야겠다. 사람 걱정시켰으니까.

-미안해요..

-농담이야. 진짜 걱정되니까, 병원 꼭 가봐. 감기 우습게 보면 큰일나.

-알았어요.

-.....저기.

-네?

-....아니야, 병원 꼭 가.





기운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로 톡이 날라왔다.  죽을 종류별로 다섯개나 살 수 있는 쿠폰이었다.





-이거 퇴근길에 사들고 가서 먹어. 자기네 회사 근처에 있는 가게 거로 보낸다.





언제 따라 나왔는지, 대리님이 옆에서 커피를 내리며 말을 걸었다.





"자기 감기야?"

"네? 아... 네 조금."

"약이라도 사다 먹어, 그럼."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애인님 걱정하다 숨넘어가시겠다. 아니면 휴대폰이 지쳐 운명하시던가."





대리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그의 톡이 왔다.





-걱정되니까 꼭 병원가. 꼭.





픽. 웃음이 났다.  이 상황에 너는 웃음이 나니?  뒷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긁적이다가 휴대폰을 들고 탕비실 구석에 주저 앉았다.  대리님이 쳐다보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괜찮아? "

"괜찮아요."

"안되겠다. 반차 내고 퇴근 해."

"....그래도 될까요?"

"자기, 요 며칠동안 점심 한끼도 안먹은거는 알아? 밥은 먹고 다니니?"

"....제가 그랬나요? 저는 잘..."

"무슨 일 있는거지?"

"그냥 감기가 좀 심하게 오나봐요."

























결국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해버렸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에 들어서서야 그가 보내 준 쿠폰이 생각났지만 어짜피 입맛이 없어 사놓고도 안먹을 게 뻔했다. 비틀대며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으러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말에는 힘이 있다더니, 내가 며칠 굶었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부터 온 몸에 기운이 쪽 빠져서는 옷을 벗을 힘도 나질 않았다.  그렇게 쳐진 몸으로 화장대에 앉아있다가 옆자리 침대에 쓰러지 듯 누웠는데 그런 내 시선을 따라 머리 맡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게 있어. 사진도 없는데 그 옛날에 이런 햇볕 가득한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가 있어?  그림을 다 그리기도 전에 해가 져버릴 것 같은데.

-대충의 터치를 끝내놓고 낮의 풍경을 기억하면서 계속 그리면 되지.

-그래도 난 밤에 다시 그리려면 기억이 안날것같아.

-밤이 되었다고 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잠시 안보일 뿐이야.  그래서 난 태양이 느껴지는 그림이 좋아.





아니야.



나는 눈을 가렸다.



해가 졌잖아. 밤이잖아. 이제 그만 안보여도 되잖아.





-맞아,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세상에 영원한 게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랬잖아, 원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고.  영원해도 상관없고, 변해도 상관없고... 다 그런거야

-그러다 정 힘들면 가끔씩 이렇게 나한테 기대면 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죽은 그의 편지를 받은 이후로, 나는 방안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언젠가의 그처럼 동그랗게 온 몸을 말고 대충 구겨져서 잠들었다.  죽은 그에게, 살아 내 옆에 있는 그에게 나는 둘 다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편히 잠을 못이루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 이제 그 사람은 다 잊은거지?





살풋 잠이 들면서, 나는, 나는 정말로 못된 꿈을 꾸었던 것 같았다.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기도하고, 초인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비몽사몽간에 몸을 일으켰다.





-현관에 약봉지 걸어놨어. 깨면 봐.





그의 톡이 또 와 있었다.  기운없이 일어나자니 머리가 핑돌았다.  물을 마시려고 주방으로 들어섰는데 또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려버렸다.  기억나지 않는 꿈이 자꾸 머릿 속을 괴롭혔다.





"정신 좀 차리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고리에 약봉지가 걸려있었고  약이 종류별로 한가득 담겨 있었다.





"-괜찮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현관 앞 계단에 앉아서 이 쪽을 보고 있었다.





"어...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왜 거기 있어요, 추운데..."

"회사 가보니까 반차내고 갔다고 하길래..."

"아... "

"약만 두고 가려다, 분명 밥도 안먹었을 것 같아서. 뭘 먹이고 약을 먹여야할 것 같아서."

"먹었어요."

"거짓말."





그가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내 눈앞에 들ㅇㅓ보였다.





"얼른 먹어."





종이가방을 쥐고 있는 그의 빨간 손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 올해는 추위가 빨리 올거라더니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밤에는 이미 추운 겨울이 된지 오래였다.  그가 약을 걸어놓겠다고 톡을 한게 몇 시 였더라...?





"여기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그냥 생각 좀 하던게 나도 모르게 길어졌나 봐."





곧바로 다가가 그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들어와서 몸 좀 녹이고 가요."

"나 들어가도 괜찮아?"

"응, 방금 커피도 내렸어요. 한 잔 마시고 가요"





그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 이끌려 들어서다  거실 안을 보자마자 다시 걱정스런 표정을 했다.





"왜 거실바닥에서 자고 있었어? 침실 들어갈 기운도 없었어?"

"그냥 정신없이 자다보니..."

"병원 안갔구나."





그가 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차가운 그의 손이 이마에 닿는데, 반대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단 방에 들어가. 내가 죽 데워다 줄께"

"자.. 잠시만요."

"응?"

"방이 지저분해서... 저기... 조금만 치울께요"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어. 아참, 나 그동안 차에서 뭐 좀 가져올께."

"죽 여기 있는데 뭘 또 사오려고요"

"사오려는게 아니라, 며칠 전부터 준비한 선물이 있어서..."

"선물?"

"크리스마스 한 달도 안남았잖아. 집에 기분도 낼 겸 패브릭 트리 하나 해놨더니 좋길래."

"패브릭 트리요?"

"응 자리도 안차지하고 그냥 벽에 걸어두면 되거든. 난 거기다가 네 사진으로 장식해놨지."





그가 뒷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긁적였다.





"사실, 며칠 전에 주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진들.... 맘에 들었어?"





며칠 전 그가 소포로 보내줬던 usb가 떠올랐다. 그 안에 가득한 사진들은 우리가 친구가 된지 일년이나 되었다는것을 증명하듯이 엄청난 양이었다. 



 그는 꾸준히 나를 찍어왔었다. 우리가 친구가 되기 그 이전부터.   미술관 근처의 공원에서, 처음에는 우연찮게 그의 프레임 안에 내가 들어갔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아는 사이가 되어 그는 나를 찍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시선을 피하던 나는, 언제부턴가 나를 향한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그답게 참 따뜻한 사진들이었다. 그는 늘 나를 이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사진 모서리에 그가 나타났다.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그는 나의 독사진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 밝고 싹싹하게 웃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조심스러웠던 걸까.  사진 속의 나는 결국 미소짓고 말았다.  나를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그를 향해서.





-이제 그 사람은 다 잊은거지?





사진 속의 그가 나를 보며 질문하고 있었다. 이제 더이상 아프지않지? 눈 앞의 그가 여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복잡한 마음을 숨기려 고개를 떨구고 아직도 차가운 그의 손 끝을 잡았다. 바보같이... 초인종도 못누르고 얼마나 그 추운데서 그러고 있었길래. 빨갛게 얼은 손가락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니, 나는 여전히 아파요. 당신의 그 다정한 마음 때문에. 며칠간의 고통이 그 사람 때문인지 알았는데 이렇게 눈 앞의 당신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나봐. 그의 차가운 손가락을 힘주어 잡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내려놓지 못한 마음을 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 인물사진 꽤 잘찍어서 다들 좋아하는 편인데."

"아... 네. 응. 좋았어요"

"다행이다."

"........."

"혹시, 네 사진 찍어서 기분 나빴어?"





사진 속에서처럼, 그는 조심스레 내 시선을 살폈다.





"아니에요. 사진 너무 이쁘던데요. 나처럼 안보일정도로."

"내가 말안했나. 너 이쁘다고."

"지겹도록 들어서 이젠 정말로 진짜인 줄 알겠어요."





배시시. 웃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가 한 손으로 내 뺨을 톡 치더니, 몸을 돌려 현관문앞에 걸려있는 전자키를 들어 보였다.  나는 들고 갔다 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 요 앞에 세워놨어. 금방 갔다올께. 10분안에 치울 수 있겠어?"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서서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 그림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미술관에서 일하던 때의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커다랗고 하얀 손만은 기억이 선명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생각이 났다.  이 그림을 죽은 그와 함께 살 때, 아직 미술관에서 일하던 그가 손수 포장해줬었다.  그의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포장해 준 그림을 끌어안고 웃으며 미술관을 나섰었다.  언제나처럼 의무적인 그의 인사를 받으며.



심장에 촘촘한 올무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뛸 때마다 점점 더 안으로 파고 들어서 숨쉬는 게 고통스러웠다.  이 그림은, 정말로 떼어 내야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그림을 뻗자마자, 기억나지 않던 꿈이 스믈스믈 내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이성을 놓아버린 꿈 속에서, 적나라하게 자기 변명을 하고 있던 내가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사람 사랑하면서 제대로 행복한 적도 거의 없었어.

-늘 나는 뒷전이어서 외로웠고 힘들었잖아.

-결국 그래서 터진거잖아, 그래서 싸운거잖아.

-그래놓고 그 사람은 미안하단 말도 못하고 도망갔어.

-그리고 자기 맘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어.

-이미 죽은 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그만큼 아파했으면 이제 충분해.

-이건 더이상 사랑이 아니야. 그냥 죄책감이지.

-죽은 사람따위 잊어.





죽은 사람.  내게 보내려다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낯선 곳 차가운 바닥에서 피흘리며 죽어갔을 사람.  옥죄오는 올무 때문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만 같았다.





-영원히 사랑해.





화장대 위에 놓여져있던 한 쌍의 반지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너무 오랫만에 만나 아직도 서로가 어색한 반지를 쳐다보았다.  증거 품목에 끼여있던 탓에 너무 늦게 내게 되돌아왔던 반지.  낯선 곳에서 죽은 그를 대신 해 오랜 여행을 하고 내게 되돌아 온 반지.  반지를 손에 쥐고, 몇 번을 만지작 거렸다.  며칠 굶어서인지 그새 손가락 살이 빠진 건가 싶게 반지가 커보였다.  손에 슬쩍 끼워보니 정말로 반지가 커져 있었다.  사이즈까지 틀어져 버렸으니, 이제는 정말로 다시는 끼울 일이 없어질 것 같았다.





-미안해.

-그 사람이 이 그림을 보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미안해.





마음을 크게 먹고 다시 한 번 그림에 손을 뻗었다.  한 손가락에서 서로를 어색해하며 덜그럭거리는 반지가 보였다.





-원래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은 많이 없댔어.





몇 번을 머뭇거리며 그림에 손이 닿았을까. 문득 내가 방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을 훨씬 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방문이 언제부터 열려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들어오면서 닫지 않았던거 같기도하고.  그가 한 손에 머그컵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림을 향해 있는 내 한쪽 손을 보면서.  내 손 뒤에 배경처럼 걸려있던 그림을 계속 쳐다보면서.  내가 그의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는 시선의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





그가 마른 침을 삼키듯 몇 번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겨우 입을 뗐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나 해서...."





그리고ㅡ 정말로 어렵게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어정쩡하게 내려지는 내 한쪽 손을 따라서 시선을 내렸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반대편 손이 움직여 내린 손을 감쌌다. 손바닥 안에서 반지들이 숨죽이며 떠는게 느껴졌다.





"죽 다 식을까봐...."





그의 얼굴이 이렇게 눈 안에 아프도록 박히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한두번 짐작해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바로 눈 앞에서는 한번도 본적 없는 눈빛이었다.  핏기가 가신 그의 얼굴을 보면서 예전 내 얼굴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면서도 외로운 마음. 좋아하면서도 믿지 못해 서글픈 마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로 쌓은 마음들이 차곡히 배여있었다.  낯선데도 익숙한 것은, 내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어서 터지기 직전에 흔들리던 마음.  그 날처럼. 내가 처음으로 소리지르면서 싸웠던 어느 날인가처럼. 



나는 감히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두 개의 반지를 빼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뭐라 말할 듯 말듯한 표정을 지었다.  힘겹게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는 내게 시선을 맞추려 애썼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듯 결국 고개를 떨궜다.





"아.....아무래도 너무 늦었지? 몸도 안좋으니까 그냥 푹 쉬는게........"





마음 한 구석이 싸아해져서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진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인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서운하고 화가 난 쪽이어서. 이런 상황 속에서 미안해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왜이렇게 늘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일 이야기하자."





그는 머그잔을 조용히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는 사라졌다.





"잘자."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터덕터덕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텅빈 거실 탁자 위로 머그잔 옆에 그가 챙겨왔던 죽이 차갑게 식어가는게 보였다.  바닥 한켠에 그가 펼쳐놓은 페브릭 트리와 미니 전구들이 보였다.  그 옆에 곱게 쌓여있던 사진들도 눈에 들어왔다. 원래 혼자 살아왔던 공간인데, 그가 잠시 들어왔다 나간 것 뿐인데  갑자기 이 텅빈 공간이 너무 춥게 느껴졌다.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소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네가 뭔데 서운해. 무슨 자격으로. 무슨 마음으로.  나는 반지를 침대 위에 집어던지고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터져나오는 울음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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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언제부터..찌통이였을까요(광광과광
3년 전
비회원27.242
엉엉엉ㅇ엉 ₍o̴̶̷᷄﹏o̴̶̷̥᷅₎ 작가님 너무 잘읽었습니다💜
3년 전
독자2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3년 전
독자3
다음편이 있는데 과몰입 해서 찌통에 웁니다 흑흑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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