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믿을까.
- 날 잊지마.
매번 같은 꿈이 반복된다는 것을.
-깨어서도, 날 잊으면 안돼.
모든 사람에겐 운명이라는게 있지만,
- 내 얼굴을 봐. 꼭 기억해.
나는 오늘도 그 운명을 못본채하려한다.
두렵고,
무서워서.
남자는 나의 양 볼을 부여잡았다. 다급함이묻은 그의 손끝이 얕게 떨리는것이 느껴졌다.자신을 기억해달라니, 잊지말아달라니. 도통 이해할수없는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깨어서도 날 잊지 말아줘. 꼭 날 기억해."
도통 이해할수없는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끝내 남자의 눈시울은 붉어지기 시작헀다. 아까까지만해도 실실 웃으며 잘만 놀던 애가, 제가 집에 가려하자 이렇게 눈까지 붉어져 알수없는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냥 헤어지기 싫으면, 헤어지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던가. 이상하게 빙빙 돌려말하는남자가 어이없기까지 했다. 귀여워서 웃으려고 입꼬리를 올리려는데, 그 전에 내 행동을 가로챈남자 눈물이 올리려던 입꼬리를 다시 굳게 만들었다.
" 제발 날 잊지마. 눈 뜨고나서도 기억해야돼. 그리고 날 찾아. 기다릴게.
이상했다. 그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말하니 발음이 뭉개지기까지했다. 괜히 나까지 불안해져 남자의 팔을 슬쩍 잡았는데, 이상하게 잡혀야할 남자의 팔뚝이 잡혀지지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까부터 주위가 밝다고 느껴졌었다. 시선을 떨구어 남자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 ...뭐야. "
남자가, 사라지고있었다.
밝은 빛이되어.
" 날 잊지마, 사랑해, 사랑해. "
그리고 난 꿈에서 깼다.
마지막으로 본 남자의 모습은, 그저 눈부실뿐이었다.
" ...... "
또 같은 꿈이다. 꿈속에 나왔던 남자도, 그 남자가 했던 말들도. 다른것이라고는 나와 남자의 옷차림이라던가, 내가 그와 함께 같이 갔던곳들. 하지만 패턴은 똑같았다. 꿈속에의 우리는 연인사이같았고, 다른 평범한 연인들과 다를것없이 재미있게 놀러다녔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소하게 수다를 떨었다.
" ..... "
그런데 왜 일까. 그렇게 재미있게 놀아놓고는, 내가 집에가려하자 대뜸 내 손을 잡고 그는 울었다.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라, 쏟아낸다고하는게 맞을정도로, 저러다가 쓰러지는게 아닐까, 걱정될정도로. 길거리에 주저앉아 내 손을 잡으며 그는 하염없이 말했다.
- 날 잊지마.
그때의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것을 인지하지못해 내 손을 잡고 통곡을하는 그를 그저 굳은몸으로 쳐다볼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점점 몸이 빛이되어 사라지는 그를 잡을수도, 그렇다고 왜 사라지는것이냐고, 어디가는것이냐고 물어볼수도 없었던걸까.
" .....아, 머리아파. "
그리고 꿈에서 깬 뒤 뒤따라오는 두통은 이제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가끔은 참을수없이 지끈거릴때도 있었다. 두통은 짧았지만 깨기전에 눈이 아릴정도의 밝은 빛을 봐서일까. 눈을 뜨고나면 항상 밝은 잔상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것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않았다. 부엌으로 나가 찬물을 마셨다. 두통은 잦아들고 있었지만 눈앞에는 자꾸 희미한 그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는 분명-
- 사랑해.
사랑한다고 했었다. 왜 일까. 생전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그가 말했던 '사랑해' 는 왜 낯설지가 않았을까.
마치,
꿈이아닌 다른곳에서도, 그를 만났던것 처럼.
아주 오래전, 내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 그러니까, 매일 같은 꿈을 꾸신다고요? "
" ....네. "
" 어떤 꿈이죠? "
" ..그냥, 자꾸 어떤 남자가 나와요.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매번 저를 붙잡고 울어요. "
" .... "
" 그리고 맨날 이렇게 말해요. 자기를 꼭 기억해달라고, 잊으면 안된다고.. 그리고 그 남자는 사라져버려요. 엄청 눈부시게 빛나면서."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의사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도안되는 말을 하고있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물론 나도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긴했다.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짓껄이고있는건지... 내가 다음 문장을 이으려 입술을 떼려고 할때였다. 의사는 큼큼 거리며 헛기침을 한 후 시선을 내려 차트에 글을 써내렸다. 일종의 차단이었다. 더이상 이 미친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 그냥 단순한 스트레스현상일거예요.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 수면제랑 약 처방해드릴테니 또 그런 꿈을 구시면 복용을- ... 저기, 환자분! "
의사의 말은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않게하기위해 노력을 하는듯했지만, 나는 그가 하는말의 뜻을 이해할수있었다. 이미 의사는 나를 미친사람을 보고있다. 하긴, 내가 말해놓고도 미쳤나싶은데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하는 의사는 오죽할까. 단순한 스트레스현상. 이미 많은 의사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그 뒷말은 안들어도 뻔했기 때문에 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가방을 챙겨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는 당황으로 물든 목소리로 나를 불렀지만, 밖으로나와 나를 잡아세우지는 않았다.
" ... "
근처 정신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단순한 스트레스 현상. 나도 그렇게 결론짓고 넘어가고싶은 일이었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영 찝찝했다. 그렇다고 그런 꿈을 더이상 꾸지않게해주는 약을 찾는건 아니었다. 나만 이런꿈을 꾸는것인지, 혹시 나 아닌 다른사람들도 이런꿈을 반복해서 꾼적이 있는지. 그걸 찾고싶었다.
그리고 묻고싶었다. 꿈에 나온 그를 잊지않고 찾아다녔느냐고, 그리고, 만났느냐고.
" ... "
운명이란 건 실제로 존재하는것일까. 이때동안 꿈에서 그를 수도없이 많이 만나봤지만, 그리고 꿈의 내용과 그가 했던 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햇지만, 한번도 그를 찾아다니지않았다. 아니, 찾고싶지 않았다. 만약 찾는다고해도 나는 운명을 피할것이다.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일어나니 친구에게 조금있다 만나자는 연락 한통이 와있었다. 시내는 우리동네에서 조금 떨어져있는곳이었지만, 버스를 타긴 애매해 걸어서 가는것을 택했다. 걸어갈때도, 신호를 기다릴때도, 나는 고개를들지않았다. 행여나 그 남자를마주칠까봐, 나는 남자를 알아보는데, 남자는 나를 알아보지못할까봐. 그런 불안감때문에.
" 아, 죄송합니다. "
고개를 숙이고가서였을까, 지나가는 어느 남자와 어깨를 부딪히고말았다. 덕분에 손에 들고있던 휴대폰과 지갑을 떨어뜨렸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내 휴대폰과 지갑을 주워주는 그 남자의 손은, 어딘가 익숙할정도로 예쁘고 고왔다. 낯이 익었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손도.
" 미안해요, 케이스 더러워졌네. "
내 휴대폰을 툭툭 털며 나에게 건내는 그 순간에도, 나는 고개를 들지못하였다.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위해 빠르게 휴대폰과 지갑을 건내받았다. 그리고, 괜찮아요. 라고 말한뒤 그남자에게 등을 돌리곤 도망치듯 걸었다. 등을 돌리기 전, 남자와 눈이 마주쳤었다. 스치듯 빠르게 마주쳤던 그 눈은 해사하게 웃고있었다. 그리고, 기분탓인지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오늘도 아닌가... "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오늘 꿈에서는, 어제보다 더 빌어야하나. "
그리고, 그 뒤에붙어오는 또 다른 문장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 저기요, 주문 안 받으세요? "
" .... "
" 이봐요! "
" ..아, 네.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하느라... "
연신 사과를 한 후 다시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맞으시죠? 손님은 대답대신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그가 했던말을 들은뒤로, 지금까지 실수한것만해도 몇십번은 될거라 생각했다. 어제 새벽은 뜬 눈으로 보내야만했다. 잠이 들게되면 또 그 꿈을 꿀것이고, 그 꿈을 꾸면 그가 나올것이고... 또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몰랐기때문이었다. 정말 그가 맞을까, 자기를 잊지말아달라고, 기억해달라고 울부짖었던 그가 맞을까.
만약 그가 맞으면....,
" ...영수증 필요하세요? "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의 실수 때문에 손님은 이미 날 무시하듯했고, 영수증 필요하냐는 내 물음엔 대답도 하지않고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카페 이곳저곳의 바닥을 쓸던 사장님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당연했다. 평소 성실히 일하던애가 하루아침에 변해 하루종일 하는거라곤 실수밖에 없으니까.
오늘은 손님이 많았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건지 시원한 카페에 앉아 얼음이 가득 담겨있는 음료수를 시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이 되어 조금 한적해졌다싶었는데, 딸랑, 하며 카페문이 열리는 소리가들렸다. 나는 터덜터덜 카운터로 걸어가 어느때와 다른점 없이 주문을 받았다. 한가지 예전과 다른점이 있다면, 난 이제 손님의 얼굴을 쳐다보지않았다. 가끔 싸가지없단 소리도 여럿들었지만, 나로써는 이게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그와 마주치지않기위한 노력.
죄라도 지은것처럼 시선을 여전히 내리고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묻자, 내 앞의 손님은 메뉴판을 보고선 조금 고민하다싶더니 무언가를 찾은듯한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그러던말던 빨리 집에가서 쉬고싶었다. 어제 밤을샜으니 피곤한건 당연했다. 아, 근데 오늘도 잠을 자지말아야하는건가.
" 율무차 한 잔 주세요. "
저녁이 되어 조금 선선해지긴했지만 그래도 더운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율무차라니. 단언컨데 오늘 손님중엔 한명도 따뜻한 음료를 주문하지않았다. 뭐, 주문이니 받기는해야겠지만.
" 이천오백원 입니다. "
" 아, 네. 여기- "
" 영수증 드릴까요? "
" 네, 주세요. "
주문을 받고 손님에게 돈을받을때까지 한번도 고개를 들지않았다. 손님이 무슨 옷을 입고있는지조차 몰랐다. 별로 알고싶지도않은 마음이 더 컸다. 주문한 율무차를 내주고 카운터 옆쪽에 있는 직원실로 들어왔다. 자리에앉아 피곤함을 감추지못하고 꾸벅꾸벅 졸고있는데 밖이 유난히 소란스러워 눈가를 꾹꾹 누르며 나가봤더니 여자알바생들이 저들끼리 모여 얼굴을 붉히고 수근대고있었다.
" ..무슨 일 있어요? "
" 아, 깼어? 너 졸고있길래 깨우긴 뭐해서. 아까 얼굴봤지? "
" 네? "
" 저 손님, 얼굴 봤을거아니야. 가까이서 보니까 어땠어? "
피곤해서 그런가. 도저히 알아들을수없는 물음에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알바언니는 그런 내가 답답한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자연스레 나는 손가락이 향하는곳으로 눈을 돌렸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수밖에 없었다.
" 어머! 너 왜그래? 어디 아파? "
사시나무떨리듯 온몸이 떨려왔다. 절대 다른사람 얼굴을 쳐다보지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순간의 본능이었다.
" ... "
비록 옆모습이였지만, 나는 똑똑히 알아볼수있었다.
일인용 테이블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앉아, 아까 내가 만들어준 율무차를 마시고있는 저 남자는.
" ... "
꿈에서 본, 그가 맞다.
독방에서 반응이 좋아 쪄와봤습니다'ㅅ' 단편이지만 잘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