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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03
***
이렇게 해가 완전히 저문 밤까지 집 밖에 있었다니, 부승관이 알면 뒤로 넘어갈 일이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으니 됐지 뭐, 혼자가 아니었으니 별 일이 일어날 것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즐거웠다.
이젠 괜찮아진게 아닐까, 하는 기대까지 들었다.
실실 웃으며 집에 들어와서야 옆집 시우 아버님의 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지, 하며 손에 들고 잠깐 망설이다 옷걸이를 새로 꺼내 잘 걸어놓았다.
내 옷들 사이에 걸린 낯선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왠지 모르게 몰려오는 간지러움에 머리를 긁적이며 급히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면서도, 집안의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그 쪽을 향했다.
정말 내가 왜이러나, 싶은데 이젠 실없이 웃기까지 했다.
이불을 덮고 눕자 묘한 밤 공기 냄새와 옅게 섞인 그 낯선 향이 느껴져 또 살며시 웃음이 났다.
***
"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와? "
" 어? "
" 나 빼구 누나랑 비밀얘기 했어어?! "
뭔데에- 나도! 하며 쪼르르 달려와 다리에 매달리는 시우를 대답 없이 번쩍 들어서 안고 신발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치! 하며 어깨에 폭 기댄다.
손 씻었어? 응! 치카치카는? 해써! 옷도? 걸어놨찌!
방으로 들어가며 묻는 말마다 예쁘게 대답하는 시우를 침대에 눕히며 기특함에 머리칼을 부비자 꺄르르- 맑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따라 웃고 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 하고 나를 가리킨다.
" 아빠! 옷! "
" 옷? "
" 옷이 없어졌자나! 아까 아빠 깜장색 옷이었는데에.. "
" 아.. "
그제야 떠오른 얼굴에 작게 웃으며 괜찮아, 없어진거 아니야. 하고 이불을 덮어주자 고개를 갸웃거리다 불 끈다- 하는 내 목소리에 두 눈을 꼭 감고 야무지게 이불을 덮는다.
아부지, 안녕히 주무세여- 어디서 주워들은건지 얼마 전부터 저녁인사 때면 꼭 아부지- 하는데 그 말이 참 사랑스러워 바보처럼 허허, 웃음이 났다.
누가 들으면 아들 바보라며 고개를 저을 생각을 하며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세수를 하고 나와서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업무를 체크하려 책상에 앉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꽤 크게 울린 진동에 움찔 하며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순영아, 엄마다- "
" 네, 무슨일이세요? "
" 주말인데 밥이나 먹으러 잠깐 들르라고. "
" 밥이요? "
" 그래- 오랜만에 우리 예쁜 손주 얼굴도 좀 보고싶고, "
낮게 웃으며 어머니 아들은요- 하자 웃음소리에 이어 다 커서 징그러운 아들은 됐으니 시우나 보내라는 장난스런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 몇마디 더 안부를 전하는데, 빗소리가 조금씩 들리나 싶더니 곧 세차게 비가 쏟아지며 창 밖이 온통 빗줄기로 가득찼다.
놀란 마음에 어, 여기 지금 비 오는데 거긴 어때요? 하자 그래? 여긴 안 오는 것 같은데.. 내일 올 수 있겠니? 하신다.
휴대폰을 든 손 말고 빈 다른쪽 손으로 노트북에 날시를 검색하자 오늘 새벽 동안 잠깐 쏟아지는 소나기라는 뉴스가 뜬다.
" 소나기라네, 내일 시우 데리고 갈게요. "
" 그래, 조심히 와라. "
" 네, 안녕히 주무시구요. "
전화를 끊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무섭게도 내리는구나,
***
시끄럽게 귀를 울리는 빗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기는 이미 무리였다.
눈을 떴지만 어둠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빗방울은 끝없이 창문을 때리며 소리를 냈다.
양 손으로 귀를 아무리 틀어막아도 그 새를 뚫고 들려오는 빗소리에 두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을 리 없었던거다. 비가 내리자마자 나는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침대 끝에 바싹 붙어 무릎을 세우고 귀를 막으며 마구 고개를 젓는데, 작게 진동소리가 울렸다.
겨우 손을 뻗어 전화를 받자마자 큰 소리가 들렸다.
" 야!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
" 흐으... "
" 후, 나 지금 가고 있어. 방에 불 켜고 있어. 어? "
" 승관아아... "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이젠 엉엉 소리를 내며 목 놓아 우는 내 목소리에 곧 한숨소리와 함께 좀만 기다려, 다 와가. 하고 전화가 끊긴다.
끊긴 전화기를 손에 붙들고 이젠 머리를 쥐어 뜯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10년 전 기억이 싫어서 머리카락을 쥐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그 기억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 야! "
현관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닫히고 곧 헉헉대며 들어온 부승관이 방의 불을 켰다.
들어오자 마자 마구잡이로 머리칼을 쥔 내 손을 꽉 붙잡아 내리고 나를 품에 안고는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토닥였다.
엄마, 아빠... 중얼대며 흐느끼는 내 목소리에 나를 안은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내가 진정을 하고 지쳐 잠이 들 때 까지 그 작은 토닥임과 괜찮아, 괜찮아, 하는 속삭임은 계속됐다.
나에게 부승관은 그런 존재였다.
혼자 남은 나를 보듬어준. 늘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준.
10년 전에나, 지금에나,
그런 존재였다.
나는 비가, 그리고 혼자인 밤이, 두렵다.
***
시우는 아침에 어제 통화한 소식을 듣자마자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잔뜩 부은 얼굴로 신난 시우를 옆구리에 끼워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 나란히 서서 양치를 했다.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두 얼굴이 꼭 닮아보여 웃음이 났다.
왜 웃냐는 듯 올려다보는 작은 머리통을 말 없이 슥슥 쓰다듬었다.
부모님 댁 까지는 차를 타고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잔뜩 신이나서 창 밖을 뚫어져라 구경하던 시우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집 앞에 도착한 뒤 어제 평소보다 늦게 잠든 탓에 곤히 잠에 빠진 아이를 안고 들어갈 생각으로 조심히 벨트를 풀었는데, 그 작은 인기척에 뒤척이다 곧 눈을 뜬다.
두리번대는 얼굴을 붙잡고 볼에 짧게 입을 맞추며 다 왔네? 하자 금새 활짝 웃으며 나가려 한다.
그 모습에 따라 웃으며 먼저 내려 조수석에서 시우를 받았다.
왠일로 안기지 않겠다며 진지한 얼굴을 한 시우는 대신 내 손을 꼭 잡고 씩씩하게 걸었다.
그러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제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겼다.
" 할무니! "
" 어유, 우리 이쁜 시우 왔어? "
" 네! 할무니 보고싶었어요오- "
품에 안겨 몸을 베베 꼬며 배시시 웃는 손자의 애교에 어머니는 소리내 웃으며 그 볼을 부볐다.
들어가자, 날이 쌀쌀하네. 하며 앞서 현관을 여는 뒤를 따라 들어가는데, 할머니 품에서 내려와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가던 시우가 멈칫 하더니 뒤돌아 다시 내게 달려왔다.
잔뜩 울상이 된 얼굴에 의아해하며 아이를 안아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쇼파에 앉아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 아빠.. 무서운 하부지야.. "
" ...아버지 계시단 말씀 안하셨잖아요. "
" 주말이잖니, 그리고 언제까지고 피할 수 있는거 아니다. "
보기만 해도 엄한 뒷모습에 한숨을 푹 쉬며 시우를 내려놓았다.
아들, 할머니랑 놀고 있어. ..응- 끝까지 내 눈치를 보며 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아버지, 왔습니다. "
" ... "
" 그간... 안녕하셨죠? "
누구 덕분에 몇년 째 안녕하진 못하구나, 쇼파에 앉아 안부를 묻는데도 묵묵히 신문만 넘기시던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를 내셨다.
그 한마디에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됐다,
내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신문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라는 아들은 늘 아버지께 죄인이었다.
끝까지 내 얼굴은 한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신 아버지는 말 없이 현관에서 시우를 한참 바라보시다 시우가 꾸벅 인사를 하는걸 보시곤 곧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서셨다.
아버지를 본 줄곧 기가 죽어 눈치만 보던 시우는 그제야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아빠아... 괜찮아? 하는 목소리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 아빠 괜찮아. 하고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다.
***
" 시우야, 맛있어? "
" 네! 할무니 밥이 제일 마시써요, "
" 아이고- 우리 시우 이거 다 먹어, 다 먹고 쑥쑥 커야한다? "
눈을 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우의 머리를 몇번 더 쓰다듬은 어머니가 시우만 물끄러미 보고있는 내 앞으로 반찬 그릇들을 옮기셨다.
됐어요, 하며 그릇들을 어머니와 시우 쪽으로 다시 옮기자 한숨을 푹 쉬신다.
꼭 아버지를 뵙고 나면 이렇게 멍해지곤 했다.
" 너도 좀 먹어라, 애가 갈수록 말라가니.. "
" 아니예요, 됐어. "
" ..아버지, 너무 마음 쓰지 마라. "
아버지도 속상해서 그러시는거야. 어머니의 말에 작게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말하자면 홀아비가 된 아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겪어보지 않아 확실히는 몰라도 예상은 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이 나서 이것 저것 집어먹는 시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엄마, "
" 왠일이니, 엄마라고 다 부르고. "
" 참 신기하지? "
" 뭐가? "
" 어떻게 나같은 놈 한테서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애가 나왔을까, "
애가 이렇게 착하고 의젓할 수가 없어, 조곤조곤 뱉은 내 말에 한참을 말이 없던 어머니가 곧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무슨 소리야, 시우는 우리 아들이랑 꼭 닮았어.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럽고. 딱 네 아들이야, 우리 시우는.
내 손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에 꼴사납게 울컥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인 내 손을 말없이 쓰다듬던 어머니가 곧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화제를 바꿨다.
시우야, 요즘은 아빠가 좋다는 여자 없어? 장난스런 말투에 에이, 엄마! 또 시작이야? 하며 고개를 번쩍 들자 뭘? 하며 능청스런 얼굴을 하신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데 시우가 음.. 하더니 아! 하고 입을 연다.
" 아빠는 모르겠구.. 시우가 좋아하는 누나 있어요! "
" 정말? "
" 뭐야 권시우? 누구? 유치원에? "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시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도 흥미롭다는 듯 귀를 기울이신다.
움.. 옆집누나! 손을 번쩍 들며 소리치는 시우에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얼굴이 있어 작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는 뭔가 아는듯 한 내 반응에 흥미가 더하셨는지 옆집누나? 하며 되물었고, 시우는 신이나서 입을 열었다.
" 시우 밥도 해주구, 책도 읽으라고 주구.. 아! 어제 밤에는 아빠랑 누나랑 가치 별도 봤어요! "
" 아빠랑? "
이크, 여사님 또 시작하셨네. 눈을 빛내며 내게 고개를 돌리신 어머니는,
아, 누나랑 아빠랑 딱 네살차이나여! 하고 덧붙이며 헤헤 웃은 시우 덕에 더 눈을 빛내며 아예 몸을 틀어 내 쪽을 향하셨다.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뭐야? 하시는데 손을 내저으며 아, 뭐가요- 하자 자리까지 고쳐 앉으시며 어떤 여잔데? 어떻게 시우랑 저렇게 친해? 하며 호구조사를 시작하신다.
" 아이고 여사님,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야. 앞길 창창한 아가씨 데리고 괜히 상상의 나래 펼치지 마시죠? "
" 얘는? 너랑 4살밖에 차이 안난다며? "
이름은? 이름은 몰라? 덧붙여진 어머니의 질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지껏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는데 옆에서 막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내려놓은 시우가 낑낑대며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 놓았다.
그리곤 자기를 뚫어져라 보고있는 우리 둘에게 해맑게 이름 석자를 말하곤 팔랑팔랑 뛰며 거실로 향한다.
어쩜, 얘, 이름도 너무 예쁘다-
손뼉까지 치며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어머니에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시우 쟤는 대체 하루 사이에 얼마나 친해진거야?
*****작가말 꼭 읽어주세요!*****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어요ㅠㅠㅠㅠㅠㅠ
이제 3화인데ㅠㅠㅠㅠㅠㅠㅠ 이런 똥글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과분한 사랑이라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초록글도 그것도 첫페이지에 그렇게 오래 있고.. 댓글도 100개... 추천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감격스럽잖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가끔 독방에 사진 주우러 가곤 하는데, 제 글이 정~~~~말 가끔 한번씩 언급이 되고 하더라구요!
완전 신기했어요ㅋㅋㅋㅋㅋㅋ 뭐라 댓글 남기기는 민망해서 그냥 보면서 뿌듯해하기만 하고 나왔지만요ㅋㅋㅋㅋㅋ
넘치는 사랑과 관심에 부담 아닌 부담을 느껴 이번 편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는데도 영 불안하네요..
어딘가에 오타라던가 실수가 있을 것만 같아요...
저도 저의 글 솜씨가 굉장히 부족하다는걸 알아서 되게 늘 죄송해요ㅠㅠㅠ 내용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달까요..?
오늘은 시점도 많이 바뀌고 이야기가 휙휙 바뀌는 상황이 많아서 더 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ㅠㅠㅠ
오늘 편으로 조금은 공개가 된 여주와 승관이의 관계, 시우네 가족의 비밀..? 이 성공적으로 전달 되었기를!
더불어 떡밥만 던지고 풀리지 않은 여주의 새로운 비밀도 많이들 궁예해주시길!ㅎㅎ
사실 늘 댓글로 궁예아닌 궁예를 하시는 많은 독자님들이 계셨는데 볼때마다 한편으론 제 뜻대로 전달이 안되서 답답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더라구요ㅋㅋㅋ
암호닉 신청도 너무 많아서 당황+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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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까지는 신청 일단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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