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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이준혁 엑소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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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보낸이























06

완벽한 이혼

























선호는 울다 지쳐 잠이 든 도아를 바라봤다. 길쭉한 그녀의 속눈썹에는 채 다 마르지 못한 눈물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그는 도아가 앉아있는 조수석의 시트를 젖혀주고, 정차되어있던 차를 출발시켜 그녀의 집 근처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다정한 배려였다. 그가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돈 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도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 언제 잠들었어?” 

“그러게. 코까지 골면서 잘 자던데.”


그의 말에 도아가 픽 웃었다. 평소와 다르게 차분히 가라앉은 그녀의 모습이 퍽 낯설었다. 도아가 자신의 위에 덮여있는 선호의 겉옷을 만지작거렸다. 희한하게도 그에게서는 향수도,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닌 도브(Dove) 냄새가 났다. 도아는 그 비누 향이 마음에 들었다. 도아가 그의 옷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선호 오빠.”


도아의 부름에 선호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의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구절보다는 다음 구절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왜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그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색하는 저 여인을, 제 겉옷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을 뿐이다. 그녀 또한 알지 못한다. 저가 왜 그의 이름을 이토록 다정하게 부른 것인지. 그저 집에 돌아가기 싫었을 뿐인데. 그냥 비누 향이 좋아서, 그가 덮어준 옷의 촉감이 따스해서, 그래서 더 같이 있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바다에 가자.”


그녀의 한 마디에 선호의 심장이 멎어 들어갔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벽 한   이 
























그렇게 둘은 조선 사대부집 여인과 노비가 은밀한 사랑의 도피를 떠나듯 단둘이 바다로 향했다. 다른 점은, 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도아가 왜 그에게 아무런 명목도 없이 바다로 가자고 이야기했는지, 선호는 왜 이유도 묻지 않고 바다를 향해 출발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둘은 그저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들은 그 침묵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노래 틀어도 돼?”


도아의 물음에 선호가 응, 하며 블루투스 버튼을 꾹 눌렀다. 도아의 핸드폰과 블루투스가 연결되는 소리가 나며 음악이 시작되었다. 도아는 창을 열었다. 밤이 되자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아가 창문 밖으로 손을 살짝 내밀었다. 이제 봄이구나. 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따뜻해지는 밤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삶이 힘겨울 때
세월이 지나고
아득한 그 향기가 잊혀져 간대도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나 그대의 향기가 되리




도아가 술에 취하면 지원에게 틀어달라고 하는 그 노래를, 그녀는 맨정신에 스스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또한 알지 못 하는 일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무언가 다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앞에 있을 때 유독 우는 일이 잦았고, 그 앞에 있을 때 웃는 일도 많은 것 같았다. 도아는 괜히 몸을 뒤척였다. 비누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얼마 가지 않아 둘은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유독 오늘따라 도로에도 휴게소에도 사람이 없는 모양새가,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도아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밸트를 풀었다. “배고파!” 도아의 말에 선호가 웃으며 차 시동을 껐다. 


“와, 벌써 맛있는 냄새 나.”

“뭐 먹을래?”

“핫도그 먹을까? 아니, 떡볶이? 헐! 알감자도 있잖아!”


도아는 걸음 하나하나에 음식들이 지나쳐갈 때마다 아우성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선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사 줘, 나 돈 없으니까.”

“뻥치지 마. 오빠 부자잖아.”

“야, 그럼 너는. 너희 집 돈 많잖아.”

“아닌데. 우리 집 가난해서 나 집 나온 거야.”

“뻔뻔한 거 봐라.”

“아 좀 사 주라. 응? 사 줘!”


도아가 선호의 옷자락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야, 라고 해 봐.”

“내가 살게. 핫도그 두 개요.”


도아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선호가 도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핫도그 세 개요”


도아가 선호를 노려봤다. 짜증 난 도아의 얼굴은 마치 화난 뱁새 같다고 선호는 생각했다. 귀여워. 그가 계산 안 하고 뭐 하냐는 듯 눈썹을 들썩이자 도아는 마지못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손을 갖다댔다. 저가 치마를 입은 줄도 잊어먹고 버릇처럼 주머니 위치로 손을 올린 것이다. 허벅지 위를 방황하던 손이 그다음에는 몸을 더듬었다. 가방, 가방에 지갑이 있는데. 온몸을 스스로 수색하던 도아가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 미친! 차에 두고 왔어. 도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팍 쳤다.

선호는 그런 도아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아마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갑을 챙겨왔고, 도아는 가방도 지갑도 없이 휴게소를 왔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냥 먹지 말자! 나 갑자기 배가 안 고파.”

고민하면서 뱉은 말이 겨우 이거라니. 선호는 제 앞에서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어색하게 거짓말하는 도아가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선호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지만, 핫도그를 향해 우수에 찬 눈빛을 보내는 도아를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핫도그들아… 다음에 꼭 먹어줄게….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숨을 쉬었다.


“지갑이 없으신가 봐요.”

“…차에 놓고 왔어.”

“내가 사 준다니까?”

“진짜? 그럼,”

“자기야라고 부르면.”

“……”


도아가 씩씩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선호는 도아의 화 난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기 바빴다. 도아는 닫힌 차 문을 열기 위해 낑낑대며 애썼다.


“차 문 열어!”


도아가 선호를 향해 소리쳤다. 선호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도아에게 다가갔다.




“왜?”

“아 빨리 열어라!”

“그러니까 내가 왜.”


절대 열지 않을 것만 같은 선호의 태도에 도아가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이네.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언젠가는 그런 호칭으로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한 번 확 지르고 말까 생각하다가도, 핫도그 하나 먹겠다고 그 말을 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존심보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징조가 느껴졌다. 그 말을 하고 나면, 정말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것만 같아서, 진짜 내 진심이 그 호칭 하나에 묻어나올 것만 같아서. 그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날은 정말 이상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껏 제가 무슨 일을 해도 안온하고 은연하게 받아주던 그였다. 그래서인지 도아에게는 뭔지 모를 배짱이 생겼다. 도아는 그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어디 한 번 너도 당해봐라. 도아는 결심이 선 눈빛으로 선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앞으로의 상황을 한 치도 모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아를 바라봤다. 도아는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선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느릿한 목소리로 선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자기야.”
“사 줘.”

도아는 그 말을 하고는 겁도 없이 담대한 웃음을 지으며 휴게소로 걸어갔다. 선호가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도아가 멀어진 후였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격이었다. 완벽한 선호의 패배였다. 늘 예고 없이 통통 튀어대는 도아였지만, 그녀가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덫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절대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쁘지 않은 덫이었으나, 아슬하고 위험했다. 선호가 멀어지는 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토끼가 아니라 여우였네.”


지금 그의 심장은 두근거리다 못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구 뛰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했다.














*















도아는 배가 채워지고 나니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선호는 자꾸만 귀에서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아는 노래를 듣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만 뒤적거리기에 바빴다. 더위를 느낀 선호가 창문을 열고 차를 출발시켰다.


휴게소에서부터 바다까지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한 시간여 쯤 지나고 나니 어느새 바다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바닷가는 바람이 찼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음악까지 끄고 소리에만 집중했다. 창문을 넘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차 안을 꽉 채웠다. 바람이 머리를 헝클였다. 도아가 눈을 감고 창틀에 고개를 기댔다. 선호는 그런 도아를 관망했다. 남에게 일절 관심이 없는 그가 도아만 보면 유독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눈을 끌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고아하면서도, 어딘가 순수했다. 다채로운 그녀에게 선호가 사로잡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빠, 우리 나가자.”

“응?”

“바다에 가자구.”

“추워서 감기 걸릴 텐데…”

“그럼 걸리고 말지 뭐.”


도아는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고 곧바로 바다로 뛰어갔다. 와아아-! 도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선호가 살풋 웃었다. 그녀는 복사꽃 같으면서도, 설중매 같기도 했다. 그는 도아가 놓고 간 자신의 겉옷을 챙겨 나왔다. 봄이라고 해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그가 바다 앞에서 콩콩 뛰고 있는 도아에게 다가가 겉옷을 입혀 주었다. 도아는 어느새 코를 훌쩍이며 소매에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춥다고 했지.”

“오빠 나 여기 들어갈 거야.”

“물에 들어간다고? 이 시간에?”

“응.”

“얼어 죽을걸.”

“그냥 발만 담그면 되잖아!”


도아가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선호는 구태여 그녀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왜냐면 물이 차가워서 정말 발만 담글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혹시 감기에 들까 초조한 선호의 마음과 달리 도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물속으로 천천히 발을 집어넣은 도아가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와 씨발, 개 차가워!”

도아가 소리를 지르며 선호에게로 뛰어갔다. 그가 웃으며 티슈로 그녀의 발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욕했어?”

그가 웃으며 묻자 도아는 아차 싶었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도아가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잘했어.”

“응?”

도아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는 태연하게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도아가 모랫바닥에 앉자 그가 발바닥에 붙어있는 모래들을 털어주며 말했다.


“다음에는 속상하면 그냥 욕해. 화가 나도 욕하고, 슬퍼도 욕해.”

“화날 땐 이미 그렇게 하는데… 슬플 땐 왜 욕을 하래?”



그녀의 말에 선호가 소리 내며 웃었다. 그가 그녀에게 신발을 신겨 주며 말했다.


“그냥, 울지만 마.”

네가 울면…….
그가 도아를 일으켜 세웠다. 도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호는 어딘가 씁쓸한 속을 웃음으로 무마했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w.보낸이























06

완벽한 이혼

























선호는 울다 지쳐 잠이 든 도아를 바라봤다. 길쭉한 그녀의 속눈썹에는 채 다 마르지 못한 눈물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그는 도아가 앉아있는 조수석의 시트를 젖혀주고, 정차되어있던 차를 출발시켜 그녀의 집 근처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다정한 배려였다. 그가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돈 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도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 언제 잠들었어?” 

“그러게. 코까지 골면서 잘 자던데.”


그의 말에 도아가 픽 웃었다. 평소와 다르게 차분히 가라앉은 그녀의 모습이 퍽 낯설었다. 도아가 자신의 위에 덮여있는 선호의 겉옷을 만지작거렸다. 희한하게도 그에게서는 향수도,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닌 도브(Dove) 냄새가 났다. 도아는 그 비누 향이 마음에 들었다. 도아가 그의 옷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선호 오빠.”


도아의 부름에 선호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의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구절보다는 다음 구절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왜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그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색하는 저 여인을, 제 겉옷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을 뿐이다. 그녀 또한 알지 못한다. 저가 왜 그의 이름을 이토록 다정하게 부른 것인지. 그저 집에 돌아가기 싫었을 뿐인데. 그냥 비누 향이 좋아서, 그가 덮어준 옷의 촉감이 따스해서, 그래서 더 같이 있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바다에 가자.”


그녀의 한 마디에 선호의 심장이 멎어 들어갔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벽 한   이 
























그렇게 둘은 조선 사대부집 여인과 노비가 은밀한 사랑의 도피를 떠나듯 단둘이 바다로 향했다. 다른 점은, 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도아가 왜 그에게 아무런 명목도 없이 바다로 가자고 이야기했는지, 선호는 왜 이유도 묻지 않고 바다를 향해 출발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둘은 그저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들은 그 침묵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노래 틀어도 돼?”


도아의 물음에 선호가 응, 하며 블루투스 버튼을 꾹 눌렀다. 도아의 핸드폰과 블루투스가 연결되는 소리가 나며 음악이 시작되었다. 도아는 창을 열었다. 밤이 되자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아가 창문 밖으로 손을 살짝 내밀었다. 이제 봄이구나. 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따뜻해지는 밤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삶이 힘겨울 때
세월이 지나고
아득한 그 향기가 잊혀져 간대도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나 그대의 향기가 되리




도아가 술에 취하면 지원에게 틀어달라고 하는 그 노래를, 그녀는 맨정신에 스스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또한 알지 못 하는 일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무언가 다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앞에 있을 때 유독 우는 일이 잦았고, 그 앞에 있을 때 웃는 일도 많은 것 같았다. 도아는 괜히 몸을 뒤척였다. 비누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얼마 가지 않아 둘은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유독 오늘따라 도로에도 휴게소에도 사람이 없는 모양새가,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도아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밸트를 풀었다. “배고파!” 도아의 말에 선호가 웃으며 차 시동을 껐다. 


“와, 벌써 맛있는 냄새 나.”

“뭐 먹을래?”

“핫도그 먹을까? 아니, 떡볶이? 헐! 알감자도 있잖아!”


도아는 걸음 하나하나에 음식들이 지나쳐갈 때마다 아우성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선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사 줘, 나 돈 없으니까.”

“뻥치지 마. 오빠 부자잖아.”

“야, 그럼 너는. 너희 집 돈 많잖아.”

“아닌데. 우리 집 가난해서 나 집 나온 거야.”

“뻔뻔한 거 봐라.”

“아 좀 사 주라. 응? 사 줘!”


도아가 선호의 옷자락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야, 라고 해 봐.”

“내가 살게. 핫도그 두 개요.”


도아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선호가 도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핫도그 세 개요”


도아가 선호를 노려봤다. 짜증 난 도아의 얼굴은 마치 화난 뱁새 같다고 선호는 생각했다. 귀여워. 그가 계산 안 하고 뭐 하냐는 듯 눈썹을 들썩이자 도아는 마지못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손을 갖다댔다. 저가 치마를 입은 줄도 잊어먹고 버릇처럼 주머니 위치로 손을 올린 것이다. 허벅지 위를 방황하던 손이 그다음에는 몸을 더듬었다. 가방, 가방에 지갑이 있는데. 온몸을 스스로 수색하던 도아가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 미친! 차에 두고 왔어. 도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팍 쳤다.

선호는 그런 도아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아마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갑을 챙겨왔고, 도아는 가방도 지갑도 없이 휴게소를 왔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냥 먹지 말자! 나 갑자기 배가 안 고파.”

고민하면서 뱉은 말이 겨우 이거라니. 선호는 제 앞에서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어색하게 거짓말하는 도아가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선호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지만, 핫도그를 향해 우수에 찬 눈빛을 보내는 도아를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핫도그들아… 다음에 꼭 먹어줄게….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숨을 쉬었다.


“지갑이 없으신가 봐요.”

“…차에 놓고 왔어.”

“내가 사 준다니까?”

“진짜? 그럼,”

“자기야라고 부르면.”

“……”


도아가 씩씩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선호는 도아의 화 난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기 바빴다. 도아는 닫힌 차 문을 열기 위해 낑낑대며 애썼다.


“차 문 열어!”


도아가 선호를 향해 소리쳤다. 선호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도아에게 다가갔다.




“왜?”

“아 빨리 열어라!”

“그러니까 내가 왜.”


절대 열지 않을 것만 같은 선호의 태도에 도아가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이네.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언젠가는 그런 호칭으로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한 번 확 지르고 말까 생각하다가도, 핫도그 하나 먹겠다고 그 말을 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존심보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징조가 느껴졌다. 그 말을 하고 나면, 정말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것만 같아서, 진짜 내 진심이 그 호칭 하나에 묻어나올 것만 같아서. 그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날은 정말 이상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껏 제가 무슨 일을 해도 안온하고 은연하게 받아주던 그였다. 그래서인지 도아에게는 뭔지 모를 배짱이 생겼다. 도아는 그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어디 한 번 너도 당해봐라. 도아는 결심이 선 눈빛으로 선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앞으로의 상황을 한 치도 모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아를 바라봤다. 도아는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선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느릿한 목소리로 선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자기야.”
“사 줘.”

도아는 그 말을 하고는 겁도 없이 담대한 웃음을 지으며 휴게소로 걸어갔다. 선호가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도아가 멀어진 후였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격이었다. 완벽한 선호의 패배였다. 늘 예고 없이 통통 튀어대는 도아였지만, 그녀가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덫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절대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쁘지 않은 덫이었으나, 아슬하고 위험했다. 선호가 멀어지는 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토끼가 아니라 여우였네.”


지금 그의 심장은 두근거리다 못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구 뛰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했다.














*















도아는 배가 채워지고 나니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선호는 자꾸만 귀에서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아는 노래를 듣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만 뒤적거리기에 바빴다. 더위를 느낀 선호가 창문을 열고 차를 출발시켰다.


휴게소에서부터 바다까지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한 시간여 쯤 지나고 나니 어느새 바다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바닷가는 바람이 찼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음악까지 끄고 소리에만 집중했다. 창문을 넘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차 안을 꽉 채웠다. 바람이 머리를 헝클였다. 도아가 눈을 감고 창틀에 고개를 기댔다. 선호는 그런 도아를 관망했다. 남에게 일절 관심이 없는 그가 도아만 보면 유독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눈을 끌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고아하면서도, 어딘가 순수했다. 다채로운 그녀에게 선호가 사로잡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빠, 우리 나가자.”

“응?”

“바다에 가자구.”

“추워서 감기 걸릴 텐데…”

“그럼 걸리고 말지 뭐.”


도아는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고 곧바로 바다로 뛰어갔다. 와아아-! 도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선호가 살풋 웃었다. 그녀는 복사꽃 같으면서도, 설중매 같기도 했다. 그는 도아가 놓고 간 자신의 겉옷을 챙겨 나왔다. 봄이라고 해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그가 바다 앞에서 콩콩 뛰고 있는 도아에게 다가가 겉옷을 입혀 주었다. 도아는 어느새 코를 훌쩍이며 소매에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춥다고 했지.”

“오빠 나 여기 들어갈 거야.”

“물에 들어간다고? 이 시간에?”

“응.”

“얼어 죽을걸.”

“그냥 발만 담그면 되잖아!”


도아가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선호는 구태여 그녀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왜냐면 물이 차가워서 정말 발만 담글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혹시 감기에 들까 초조한 선호의 마음과 달리 도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물속으로 천천히 발을 집어넣은 도아가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와 씨발, 개 차가워!”

도아가 소리를 지르며 선호에게로 뛰어갔다. 그가 웃으며 티슈로 그녀의 발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욕했어?”

그가 웃으며 묻자 도아는 아차 싶었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도아가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잘했어.”

“응?”

도아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는 태연하게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도아가 모랫바닥에 앉자 그가 발바닥에 붙어있는 모래들을 털어주며 말했다.


“다음에는 속상하면 그냥 욕해. 화가 나도 욕하고, 슬퍼도 욕해.”

“화날 땐 이미 그렇게 하는데… 슬플 땐 왜 욕을 하래?”



그녀의 말에 선호가 소리 내며 웃었다. 그가 그녀에게 신발을 신겨 주며 말했다.


“그냥, 울지만 마.”

네가 울면…….
그가 도아를 일으켜 세웠다. 도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호는 어딘가 씁쓸한 속을 웃음으로 무마했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w.보낸이























06

완벽한 이혼

























선호는 울다 지쳐 잠이 든 도아를 바라봤다. 길쭉한 그녀의 속눈썹에는 채 다 마르지 못한 눈물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그는 도아가 앉아있는 조수석의 시트를 젖혀주고, 정차되어있던 차를 출발시켜 그녀의 집 근처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다정한 배려였다. 그가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돈 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도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 언제 잠들었어?” 

“그러게. 코까지 골면서 잘 자던데.”


그의 말에 도아가 픽 웃었다. 평소와 다르게 차분히 가라앉은 그녀의 모습이 퍽 낯설었다. 도아가 자신의 위에 덮여있는 선호의 겉옷을 만지작거렸다. 희한하게도 그에게서는 향수도,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닌 도브(Dove) 냄새가 났다. 도아는 그 비누 향이 마음에 들었다. 도아가 그의 옷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선호 오빠.”


도아의 부름에 선호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의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구절보다는 다음 구절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왜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그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색하는 저 여인을, 제 겉옷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을 뿐이다. 그녀 또한 알지 못한다. 저가 왜 그의 이름을 이토록 다정하게 부른 것인지. 그저 집에 돌아가기 싫었을 뿐인데. 그냥 비누 향이 좋아서, 그가 덮어준 옷의 촉감이 따스해서, 그래서 더 같이 있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바다에 가자.”


그녀의 한 마디에 선호의 심장이 멎어 들어갔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벽 한   이 
























그렇게 둘은 조선 사대부집 여인과 노비가 은밀한 사랑의 도피를 떠나듯 단둘이 바다로 향했다. 다른 점은, 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도아가 왜 그에게 아무런 명목도 없이 바다로 가자고 이야기했는지, 선호는 왜 이유도 묻지 않고 바다를 향해 출발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둘은 그저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들은 그 침묵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노래 틀어도 돼?”


도아의 물음에 선호가 응, 하며 블루투스 버튼을 꾹 눌렀다. 도아의 핸드폰과 블루투스가 연결되는 소리가 나며 음악이 시작되었다. 도아는 창을 열었다. 밤이 되자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아가 창문 밖으로 손을 살짝 내밀었다. 이제 봄이구나. 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따뜻해지는 밤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삶이 힘겨울 때
세월이 지나고
아득한 그 향기가 잊혀져 간대도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나 그대의 향기가 되리




도아가 술에 취하면 지원에게 틀어달라고 하는 그 노래를, 그녀는 맨정신에 스스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또한 알지 못 하는 일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무언가 다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앞에 있을 때 유독 우는 일이 잦았고, 그 앞에 있을 때 웃는 일도 많은 것 같았다. 도아는 괜히 몸을 뒤척였다. 비누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얼마 가지 않아 둘은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유독 오늘따라 도로에도 휴게소에도 사람이 없는 모양새가,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도아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밸트를 풀었다. “배고파!” 도아의 말에 선호가 웃으며 차 시동을 껐다. 


“와, 벌써 맛있는 냄새 나.”

“뭐 먹을래?”

“핫도그 먹을까? 아니, 떡볶이? 헐! 알감자도 있잖아!”


도아는 걸음 하나하나에 음식들이 지나쳐갈 때마다 아우성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선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사 줘, 나 돈 없으니까.”

“뻥치지 마. 오빠 부자잖아.”

“야, 그럼 너는. 너희 집 돈 많잖아.”

“아닌데. 우리 집 가난해서 나 집 나온 거야.”

“뻔뻔한 거 봐라.”

“아 좀 사 주라. 응? 사 줘!”


도아가 선호의 옷자락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야, 라고 해 봐.”

“내가 살게. 핫도그 두 개요.”


도아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선호가 도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핫도그 세 개요”


도아가 선호를 노려봤다. 짜증 난 도아의 얼굴은 마치 화난 뱁새 같다고 선호는 생각했다. 귀여워. 그가 계산 안 하고 뭐 하냐는 듯 눈썹을 들썩이자 도아는 마지못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손을 갖다댔다. 저가 치마를 입은 줄도 잊어먹고 버릇처럼 주머니 위치로 손을 올린 것이다. 허벅지 위를 방황하던 손이 그다음에는 몸을 더듬었다. 가방, 가방에 지갑이 있는데. 온몸을 스스로 수색하던 도아가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 미친! 차에 두고 왔어. 도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팍 쳤다.

선호는 그런 도아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아마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갑을 챙겨왔고, 도아는 가방도 지갑도 없이 휴게소를 왔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냥 먹지 말자! 나 갑자기 배가 안 고파.”

고민하면서 뱉은 말이 겨우 이거라니. 선호는 제 앞에서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어색하게 거짓말하는 도아가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선호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지만, 핫도그를 향해 우수에 찬 눈빛을 보내는 도아를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핫도그들아… 다음에 꼭 먹어줄게….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숨을 쉬었다.


“지갑이 없으신가 봐요.”

“…차에 놓고 왔어.”

“내가 사 준다니까?”

“진짜? 그럼,”

“자기야라고 부르면.”

“……”


도아가 씩씩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선호는 도아의 화 난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기 바빴다. 도아는 닫힌 차 문을 열기 위해 낑낑대며 애썼다.


“차 문 열어!”


도아가 선호를 향해 소리쳤다. 선호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도아에게 다가갔다.




“왜?”

“아 빨리 열어라!”

“그러니까 내가 왜.”


절대 열지 않을 것만 같은 선호의 태도에 도아가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이네.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언젠가는 그런 호칭으로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한 번 확 지르고 말까 생각하다가도, 핫도그 하나 먹겠다고 그 말을 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존심보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징조가 느껴졌다. 그 말을 하고 나면, 정말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것만 같아서, 진짜 내 진심이 그 호칭 하나에 묻어나올 것만 같아서. 그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날은 정말 이상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껏 제가 무슨 일을 해도 안온하고 은연하게 받아주던 그였다. 그래서인지 도아에게는 뭔지 모를 배짱이 생겼다. 도아는 그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어디 한 번 너도 당해봐라. 도아는 결심이 선 눈빛으로 선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앞으로의 상황을 한 치도 모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아를 바라봤다. 도아는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선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느릿한 목소리로 선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자기야.”
“사 줘.”

도아는 그 말을 하고는 겁도 없이 담대한 웃음을 지으며 휴게소로 걸어갔다. 선호가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도아가 멀어진 후였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격이었다. 완벽한 선호의 패배였다. 늘 예고 없이 통통 튀어대는 도아였지만, 그녀가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덫에 걸린 것만 같았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절대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쁘지 않은 덫이었으나, 아슬하고 위험했다. 선호가 멀어지는 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토끼가 아니라 여우였네.”


지금 그의 심장은 두근거리다 못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구 뛰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했다.














*















도아는 배가 채워지고 나니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선호는 자꾸만 귀에서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아는 노래를 듣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만 뒤적거리기에 바빴다. 더위를 느낀 선호가 창문을 열고 차를 출발시켰다.


휴게소에서부터 바다까지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한 시간여 쯤 지나고 나니 어느새 바다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바닷가는 바람이 찼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음악까지 끄고 소리에만 집중했다. 창문을 넘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차 안을 꽉 채웠다. 바람이 머리를 헝클였다. 도아가 눈을 감고 창틀에 고개를 기댔다. 선호는 그런 도아를 관망했다. 남에게 일절 관심이 없는 그가 도아만 보면 유독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는 눈을 끌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고아하면서도, 어딘가 순수했다. 다채로운 그녀에게 선호가 사로잡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빠, 우리 나가자.”

“응?”

“바다에 가자구.”

“추워서 감기 걸릴 텐데…”

“그럼 걸리고 말지 뭐.”


도아는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고 곧바로 바다로 뛰어갔다. 와아아-! 도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선호가 살풋 웃었다. 그녀는 복사꽃 같으면서도, 설중매 같기도 했다. 그는 도아가 놓고 간 자신의 겉옷을 챙겨 나왔다. 봄이라고 해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그가 바다 앞에서 콩콩 뛰고 있는 도아에게 다가가 겉옷을 입혀 주었다. 도아는 어느새 코를 훌쩍이며 소매에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춥다고 했지.”

“오빠 나 여기 들어갈 거야.”

“물에 들어간다고? 이 시간에?”

“응.”

“얼어 죽을걸.”

“그냥 발만 담그면 되잖아!”


도아가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선호는 구태여 그녀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왜냐면 물이 차가워서 정말 발만 담글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혹시 감기에 들까 초조한 선호의 마음과 달리 도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물속으로 천천히 발을 집어넣은 도아가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와 씨발, 개 차가워!”

도아가 소리를 지르며 선호에게로 뛰어갔다. 그가 웃으며 티슈로 그녀의 발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욕했어?”

그가 웃으며 묻자 도아는 아차 싶었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도아가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잘했어.”

“응?”

도아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는 태연하게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도아가 모랫바닥에 앉자 그가 발바닥에 붙어있는 모래들을 털어주며 말했다.


“다음에는 속상하면 그냥 욕해. 화가 나도 욕하고, 슬퍼도 욕해.”

“화날 땐 이미 그렇게 하는데… 슬플 땐 왜 욕을 하래?”



그녀의 말에 선호가 소리 내며 웃었다. 그가 그녀에게 신발을 신겨 주며 말했다.


“그냥, 울지만 마.”

네가 울면…….
그가 도아를 일으켜 세웠다. 도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호는 어딘가 씁쓸한 속을 웃음으로 무마했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추우니까 이제 가자.”


그가 그 말을 끝으로 걸어갔다. 도아는 자신을 등지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애달프게 느껴졌다.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도아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작은 손이 그를 붙잡았다. 그는 이것이 완전한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제게 이 손을 놓는 방법은, 없다. 손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저는 이 손길을 내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어쩌면 이것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운명이 그녀로부터 잉태된 것이라면, 기꺼이 순응하겠노라고.




“손이…, 손이 추워서.”


그 말을 하는 도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붉게 물든 뺨을 하고,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너를,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아는 맞춰오는 그의 진득한 시선을 피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피하지 않았다. 선호는 외려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도아를 원망했다. 왜 내 손을 잡았으면 할 때는 잡지 않고, 왜 내 눈길을 피했으면 할 때는 피하지 않는 걸까. 왜 제멋대로인 걸까, 너는

바람이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가 도아의 팔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숨을 달싹이던 도아가 눈을 감았다. 말랑하고 녹녹한 촉감이 혀를 감쌌다. 도아가 선호의 목에 팔을 감자 그가 도아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둘의 뜨거운 숨이 녹아들어 갔다. 숨이 찬 도아가 입술을 떼자 선호가 풀린 눈으로 다가와 다시 키스했다. 그의 눈빛이 야릇했다. 둘은 서로를 잠식시켰다. 숨소리가 파도 소리를 덮었다. 












































[김선호] 06. 완벽한 이혼 | 인스티즈

완 벽 한  이 

















































































-


분량... 면목이 없습니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요즘 무지막지한 혐생을 사는 중이라...

키스신 있으니까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뻔뻔)

농담입니다 다음에 분량 잘 챙겨서 올게요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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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아아 대박 키스신이라니 드디어 도아가 마음의 문을 열었네요ㅜㅠㅜ
3년 전
비회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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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독자2
이번에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3년 전
독자3
ㅏ아아나ㅏㅇ아ㅏ아아아앙 ㅜ ㅜ 머에야 ㅜ ㅜ ㅜ 작가님 짱
3년 전
독자4
와 진짜 너무 재미있어요 히힣
3년 전
독자5
작가님 언제 오시나요 ㅠㅠㅠㅠ 얼른 오셔요💛💛😭
2년 전
비회원132.142
작가님 진짜 글 너무나도 제 취향이에요ㅠㅠㅠㅠㅠㅠ 아까 짤 선정 썼던 사람입니다ㅠㅠㅠㅠㅠㅠ 흑흑.....혹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으신지요ㅠㅠㅠㅠㅠ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2년 전
독자6
작가님ㅠㅠㅠㅠㅠ 너무 늦게 알게 됐지만 진짜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ㅠㅠ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ㅠㅠㅠㅠㅠ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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