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왔다는 의사 선생님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다. 매사 뚱한 표정으로 직접 링거를 갈아 주고는 했는데, 그럴 때면 꼭 묻고는 했다. 그러니까... - 아파요? 이렇게 물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 - 그럼 참아요. ... 하고 담담히 대답하는 식이었다. 뭐 이런 의사가 다 있나, 하곤 했던 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사람들이 바다로 떠날 동안 내 세상은 이 병원 안에서 펼쳐지고는 했다. 하루, 또 이틀. 멀쩡히 흘러가는 시간이 항상 무료했던 나한테, 의사 선생님은 대뜸 와서는 머리를 쓰다듬고는 했다. - 권순영. 넌 언제 나가냐. - 내가 형이잖아, 김민규. 스스럼 없이 이따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김민규의 취미는 내가 침대 위에 앉아 창틀만 멍하게 바라보면, 다짜고짜 와서는 하얀 게 하얀 걸 입으니까 예쁘다고 한다던가. 뭐 이런 것들로 바뀌고는 했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스물의 젊은 의사 선생님. 진짜 안타깝게도, 환자복과 휠체어가 전부였던 스물 한 살의 내 첫사랑은 그가 되고 말았다. 첫 눈이 내린 날, 심장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둘째로 눈이 내린 날, 심장이 두 배로 빠르게 뛰었다. 셋째로 눈이 내린 날, 심전도기가 급박함을 알렸다. 인공호흡기를 달아 희뿌연 숨을 뱉고 삼킬 때마다, 김민규는 착잡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는 했다. 회진을 돌 때에도, 밤에 와 조용히 내 머릴 쓸어 줄 때에도 그 애 어깨 위로 무겁게 내가 앉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는 했다. 시야가 자꾸만 흩어져서 손으로 왜곡된 세상을 그러쥐며 울 때에는, 내 어깨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의사 선생님이 울면 어떡하냐고, 나는 금방 차분해져 꽤나 형아인 것처럼 너를 토닥였었던 것도 같다. - 환자분, 푹 자고 일어나시면 다 끝날 거예요. 한두 번 누워 본 게 아니라지만, 수술실 침대는 정말 따뜻했다. 헛된 생각을 하며 간호사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내 심장 소리에 얽힌 발자국 소리에 눈길을 돌리자, 굳은 얼굴의 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저 바보, 왜 또 잔뜩 굳었대. 분명 집도를 시작해야 할 텐데, 제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입술을 깨무는 김민규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였다.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입술을 달싹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눈으로 웃어 보였다. 따라 불안하게 웃더니 제 얼굴을 살그마니 쓰다듬는 손에 눈을 감았었다. 천천히, 또 빠르게 제 몸 속으로 들어오는 마취약이 느껴졌다. 얼핏 귓가에, 다시는 불리지 않을 제 이름과 함께 사랑한단 말이 맴돌았던 것도 같다. . . . 다급함과 붉게 물든 수술실 안,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심전도 소리. 제 몸을 엄습하는 네 울음과 마지막 손길을 그대로, 숨을 쉴 줄 알았던 때의 기억의 끝. 첫사랑을 알게 되고 눈을 감을 수 있어 나는 좋았다고, 정말 즐거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전하고 싶었던 널 향한 말들이 강물 위로 흩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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