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건
오늘 누군가는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건 미친 것 같은 내가 될 수도 있었고
지극히 정상인 당신이 될 수도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으깨지는 빗방울들이 쓸데없는 자국들을 남기고 있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비릿하지도 끈적거리지도 않는
쉽게 닦아내고 흔적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붉은 매화같은 자국들이 아니었다.
그는 문지방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그가 뜬 눈으로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걸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슴을 움켜쥐는 커다란 손도
목을 타고 지분대는 뜨거운 입술도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칼날 같은 것이었다.
나갈거야?
그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기도를 올렸고
그는 눈을 떴다.
그딴 짓 좀 하지마.
그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네 기도는 닿지 않아.
그의 발소리가 들렸다.
다가오고 있었다.
낚아채는 손이 날카롭고
내리 누르는 힘은 해일같고
그럼에도 너는 여전하고
여전히도 독하고 끔찍하게 아름답고.
신은 없어.
그가 말했다.
알아.
신이 있었다면....
그가 굳게 닫힌 쇠문을 바라봤다.
저것들도 없었겠지.
차가운 살가죽과
굳은 뼈라던가
흐르지 않는 피.
그런 건 없었겠지.
그래.
나의 한 마디.
그가 나를 바라봤다.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는 눈이었다.
나도 분명 같은 눈을 하고 있었으리라.
불 같은 믿음과 얼음 같은 불신의 눈.
결국 만나 끓어넘칠 운명.
언제 올거야.
그가 물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 정적이 불안해 보였다.
언제 올거야.
한 번 더 그가 물었다.
...비가 그치기 전에 올게.
.....
비가 그치기 전에.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억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흔적이 남을 틈도 없이,
소리를 전할 틈도 없이.
나는 빨간 구두를 신었다.
그는 소매를 걷으며 쇠문을 열었고
나는 문득 퍼지는 비릿함에 붉은 꽃을 생각했다.
발이 다 젖을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바라봤다.
늦지마.
날카로운 쇳덩이를
너무나 상반되게도
부드러운 천조각으로 닦으며
그는 내게 말했다.
절대 늦으면 안돼.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동자에 쌓여있는
검은 불안감이 낯설어 입을 꾹 다물었다.
작은 중얼거림.
뼛소릴까.
빗소릴까.
네 목소릴까.
너의 작은 중얼거림.
네가 나의 신이야.
그가 말했다.
아....
그건 분명 저주일거야.
그래, 이건 분명한 저주야.
재환은 나를 바라봤다.
보기좋게 올라가는 그 입꼬리.
유연하게도 휘어지는 그 눈꼬리.
그러니까,
절대 늦지마.
Bonnie & Clyde
Curse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