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내려 애를 썼던 적이 있었다.
별로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머리카락에서 빗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빗방울이었을까?
아니면 당신의 눈물이었을까.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마 너는 모르겠지만...
다 젖었네.
현관에 들어선 나를 보며 그가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네 번째 손가락을 만지작 거렸다.
아직 따뜻한 것 같아서 이상했다.
그래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서.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춥겠다. 이리와.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품 안이 무서울 만큼 따뜻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을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슬쩍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렸고,
참 눈물나게 부드럽게도 입을 맞췄다.
비에 젖은 옷들을 다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침대에 앉아 이불을 걸쳤다.
그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쇄골에 입을 맞췄고
나는 그의 머리칼에 베어있는 비릿한 향에 눈을 감았다.
오늘은 어땠어.
하고 그가 물었다.
그냥 그랬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시끄러웠고,
그냥 그렇게 나약했고,
또 그냥 그렇게......
징그러웠어.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그 경기어린 순간이
나는 무엇보다도 징그러웠어...
...너는 예뻐.
그가 웃었다.
뜨거운 입술이 목에 닿았다.
거짓말도 잘 하고.
나는 그저 천천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거짓말.
그래도 널 사랑해.
아- 또 한 번의 저주.
나도.
그리고 정해진 대답.
그럼 이제 솔직하게 대답해.
문득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아까 주머니에 만지작 거리던 건 뭐야?
... 네 번째 손가락.
네 번째 손가락...?
반지를 끼고 있었어.
그가 나를 바라봤다.
웃음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를 미묘한 얼굴로.
그 표정이 조금 섬뜻하면서도 즐거워보이는 건 기분탓이 아니란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주 예쁜 여자였어.
아주 예쁜 목소리로 말을 했지.
아주 긴 속눈썹을 가지고 있었고.
반짝이는 미소가 질투날 만큼 부러웠지.
근데 그것 뿐이었어.
다 똑같아.
고통의 신음은 다 똑같아.
마음에 들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때
그때 네 입술은 정말 예뻐.
입맞추기 아까울 정도야.
칭찬이니?
내가 물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칭찬이지.
지독하게도 잔인한 칭찬이지.
운명의 수레바퀴와
거꾸로 매달린 남자.
숨을 참는 여자와
비가 내리는 저녁.
잃어버린 숨결.
뭐가 가장 뜨거워?
그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내가 물었다,
어느거 중에?
그가 되물었다.
껴내자마자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뜨거운 거.
그게 뭐야...?
아마....
심장이겠지.
심장이 가장 뜨거워.
그가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가볍게도 올라가는 입꼬리와.
예쁘게도 휘어지는 눈꼬리.
차가운지 뜨거운지 모르겠는 목소리와.
이명처럼 징그럽게도 이어지는 비명.
이미 귀에 익어버린 소리들.
이미 눈에 새겨져버린 악령들.
저주와 사랑과 또 ...
또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네 심장이 제일 뜨거워.
Bonnie & Clyde
"그래서 반지는 어떻게 했어?"
"버렸어"
"어디에"
"아무도 못 찾을 곳에"
Can You Find ME?
Hide and Seek.
H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