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나온 우리는 곧장 차를 타고 유턴을 해 왔던 길을 되돌아 지나쳐 갔다.
도로 위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며 나를 지나쳐가는 것들이 보였다. 학원 끝나고 모여서 편의점에 가는 학생들, 떼 쓰는 아이를 달래주는 엄마,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느 고양이, 음악을 틀고 책을 읽으며 지나가는 여자.
모두 나를 지나쳐가는 풍경이다.
나도 그들에겐 그저 풍경이겠지.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무거운 신음만 살짝 흘러나왔다.
어째서인지 그는 나를 편안해 했다. 오히려 내가 계속 불편해 할까봐 잔잔한 음악을 틀어 어색한 공기를 흘려내다보냈다.
"애기야, 커피 좋아해? 아님 스무디 같은거?"
"저, 커피 좋아해요."
"그렇구나. 알겠어"
흐응, 콧소리를 내며 주문 접수 했다는 듯이 알았다는 사인을 눈빛으로 보내고, 다시 운전에 전념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 되고, 밖을 보자 표지판에는 '삼청동'이라는 글이 써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멀리 까지 왔지. 한번 뇌가 잠기기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차가 멈춘 것은 좁은 골목에 있는 한 카페 였다. 어렴풋이 보면 카페인 것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스쳐 지나갈 듯한 곳에 위치해있었다.
이재환은 밖에 배치되있는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하며, 자신은 주문해오겠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깨끗하고 아담했다. 한 쪽 벽에는 오래된 그릇장에 많은 찻잔들이 들어 있었다. 하나 가져가고 싶을 만큼 이쁜 것들이 많았다.
새삼 그가 이런 곳도 올줄 아는건가, 라는 의문을 던졌다.
"잘 마실께요"
"응,응"
"찻잔.. 이쁘네요"
"여기, 주인은 손님이 오면 그 사람한테서 풍기는 모습이랑 말투 그런거 보고 찻잔을 골라서 주거든. 저기 진열되 있는 곳 가보면 작게 그 찻잔에 그려져 있는
꽃들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적혀있어."
한 입 커피를 마신다음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때, 여기 주인은 나한테 몬스테라라는게 그려진 걸 줬어. 궁금해서 보니까 꽃 말이 '괴기하다,이상하다' 인거야. 웃음이 나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아, 이 사람은 속마음도 볼 수 있는 건가"
정말이지, 정확했어.
이재환은 잠시 자신의 커피가 물결치는 모습을 보고, 추억에 잠긴 듯 했다.
그냥 잠시나마 세상이 고요해 진 듯 했다.
"애기야, 나랑 내기 하자"
"무슨 내기요?"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세가지 할꺼야. 그거 다 대답해 주면 내게 묻고 싶은건 뭐든지 물어봐도 되. 알려줄께 어때?"
좋아요, 뭐든지 물어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덥석 물어버렸다. 뭘 질문 할지도 모르는데.
왠지 내기하는게 딱 그의 수준에 맞는거 같았다.
"자, 그럼 첫번째 질문, 왜 도망가지 않는거야?"
아 역시, 질문이 쎄다. 마치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턱을 괴고는 눈을 마주치며 물어봤다. 나는 조금 당황해 몸을 뒤로 빼자, 이재환은
왜, 대답 못하겠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죽여버릴까봐. 밤새 도망갈 궁리만 한 적도 있어요. 근데 지내보고니 알았어요. 그런 마음 없었다는거. 너무 잘해줘서,,"
"흐음, 그래서?"
"저는 고아라서, 가족이 없어요. 학교를 안다녀서 친구도 없고. 항상 알바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어요. 집에 누군가 있고, 반겨줄 수 있는게 좋았어요."
내가 도망가지 않았던 이유, 딱히 크지는 않았다. 그냥 집에 누군가 있어서. 어쩌면 항상 혼자였던 내가 무의식적으로 외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져서 몸에 그게 베여서,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막 기쁘거나 행복함을 느낀다는게 아니었다. 그저 말소리가 들리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 마주치는게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는 거.
"그렇구나..그럼 두번째 질문! 혁이랑 술마셔 봤어?"
"아,, 네 저는 안마셨지만"
예상 외의 질문 이였다.
"그럼 다 알겠네. 혁이가 왜 사람죽이고 다니는지. 걔는 술버릇이 자기 과거 터는 거거든. 그래서 술마실때 항상 우리들 앞에서만 마셔"
이번 질문은
"그럼 마지막 질문"
"너는 혁이가 어떤 아이라고 생각해?"
세번째 질문을 위한 밑거름 이였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떨구고 찾잔을 만지작 거렸다.
나쁘다고 해야하나, 착하다고 해야하나. 어느쪽이든 내가 생각하는 대답이 되지 못했다.
왜냐면 그는 딱히 나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았다. 이건 내가 정하는게 아니니깐.
"너무 어렵나?"
"네..좀"
"그럼 힌트 좀 줄께"
그는 자신의 커피를 다시 한 번 마시고 고민을 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사실 살인청부업자야. 돈 받고 사람을 대신 죽이는 일을 하지"
어릴 때부터 난 행동이 빠르고, 소질이 있어서 그 쪽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나름 말도 잘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도 않았고.
얼마나 죽였는지, 누굴 죽였는지 모르겠어. 알 필요도 없었고. 내 목적하곤 상관이 없었지.
평소같이 의뢰가 들어왔어. 대기업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 처리대상이였지. 그래서 갔는데, 누군가 이미 죽여놨더라고.
한상혁이였어.
난 뒤에서 숨죽이고 그 현장을 지켜봤어. 한상혁은 찌르고 난 뒤에 칼을 떨어트렸어.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곤 경악을 하더라. 보아하니 사람 처음 죽여보는거 같았어.
그리곤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정택운한테 데려다 줬지.
다친게 아니라 병실에서 좀 누워있더니 깨더라. 그러더니 나를 보곤 갑자기 우는거야.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해달라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미친 놈이라고. 진정하고 다시 말하라고 그랬더니
아빠 복수해야되는데 사람 죽이는게 무섭다면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고. 아빠 너무 불쌍하다고. 막 또 울더라.
"살인의뢰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아. 재산 나눠가지기 싫어서, 누군가 자신을 먼저 죽이라고 할까봐 겁나서, 방해되서. 물론 나도 같아. 그런 일을 하니까."
"근데, 혁이는 다르더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과, 사랑과 아픔 때문에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혁이는 알았던 거겠지. 그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고, 누군가 죽으면 자신과 같이 슬퍼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혁이는 그들이 자신과 같이 않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아빠에 대한 복수를 이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겁만던 아이를 다시 한번 이렇게 만든 건 누구라고 해야할까.
그 순수하던 아이를 어두운 곳에 던져버린건 누구라고 해야할까.
아마 이재환은 이걸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르다는 걸 안거겠지.
"걔는 나같은 세계 사람들하고는 달라. 흥미가 생겼지. 내가 대신 죽여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 자신이 아니면 의미없다고. 남의 손 더럽히면 안된다고.
난 이미 더럽혀졌는데."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우물 속에 던져진 개구리가 슬퍼하자 도와주겠다고 발판을 해줄테니 나가라고 했더니
울던 개구리가 발판하면 힘들잖아, 괜찮아 여기 있을께 라고 말하는 격이였다.
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자신이 있는 세계가 더럽다는 이재환이, 복수에 눈이 멀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상혁이,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그저 불쌍했다.
*
안녕하세요 장미빛 고래입니다.
이번 편은 좀 길어질꺼 같아서 1편과 2편으로 나누려고해요
다들 저번 편보시고 재환이가 상상한것과 다르게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궁금하네요 ㅎ
브금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셔서 다음에 브금정리랑 암호닉같이 정리해서 올릴께요
암호닉 신청해주신분들 감사해여
항상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