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바닥에 검은 자국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건 내 발을 묶은 족쇄같기도 했고
그냥 흘러나온 검은 오물같기도 했다.
커다란 붓으로 그린 듯
빈틈 하나 없이 채워진 그 검은 선들을
나는 약간의 신음과 잔잔한 미열을 앓으며
가만히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지독한 향이 피어올라올 때가 되서야 나는 눈을 떴고
침대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풀고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그의 존재를 확인하려 애를 썼다.
문득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부재는
그 어떤 것보다 아프고 끔찍하기 마련이었다.
놀라지 않은 척을 해 보려 해도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마 항상 함께하던 그의 온기도
그 존재와 함께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겠지.
어젯밤 너와 나의 장난으로
부어버린 내 두 손목과
닳아오른 내 발목을
나는 가만히 어루만졌다.
나는 일어나서 샤워를 했고
찬장에 즐비한 사람들의 조각들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차오르는 불안함에 헛구역질을 뱉어냈다.
그녀의 심장이 나를 향해 박동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비틀린 내 심연을 응시했다.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으면서도
신기루처럼 믿을 수 밖에 없이 만드는
아주 잔인한 환각이었다.
꿈에서 본 검은 선들이 방 안에 실존하는 것만 같았다.
현관까지 이어져 결국에는 더러운 카펫이 되어
언젠가는 끝날 이 네버랜드의 이야기를
다른 깨끗하고 정의로 무장한 사람들에 들려주려 할 것만 같았다.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임을
나도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불리고 싶지 않은 그 이름들.
오직 너만이 나를 살게 하는데.
왜 여기에 나는 혼자인 건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지독하게도 고통스러웠다.
밤이 되면 달이 비추는 길을 애써 피해 걷던 그의 발자국이
나에게는 아주 작은 안식처였다는 것을 당신들이 알았더라면
아마 나에게 돌을 던지며 소리 없이 죽어간 이들의 저주를 대신 쏟아부어 줬겠지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정말 사랑을 했다.
오후가 지나자 어디선가 썩은 내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던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그제야 굳게 닫힌 쇠문을 바라봤다.
이례 없이 진동하는 냄새에 속이 매스꺼워
당장 게워낸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다.
매번 차가운 공기와
너와 나의 들뜬 숨들로
달아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던 이 무색무취의 공간이
이렇게 더럽고 오염되어 문드러지는 향으로 가득 차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무거운 문을 간신히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은색 상 위에는
어제 그가 만지작 거리던 푸른 손이 여전히도 놓여 있었다.
문득 그 엄지 손가락이 다시 한 번 움직인 것만 같아
나는 숨을 멈추고는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자르고 헤집고 또 불질렀어도
눈 하나 깜짝 않던 내 두 눈동자가
이미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지고
무뎌질대로 무뎌졌다 생각되던 내 자아가
이제야 비로소 두려움을 깨달았다는 듯
거친 심박수로 달리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의 심장이 가장 뜨겁다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매번 내 심장을 어루만지고 있던 것일까?
애써 차갑게 식히려?
매번 영하의 온도로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진,
더 이상 무엇이라고 부르기에도 이상한 것들을
꽁꽁 묶어버리고 꽝꽝 얼려버리던 그 냉장고는
어느새 우기의 정글같은 습기와
건기의 사막같은 열기로
썩어버린 것들의 존재를 밝히고 있었다.
그 냉장고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검붉은 액체에
나는 감히 겁이 나서 입을 막은 채로 뛰어나왔다.
너는 이곳을 아주 차갑게 하는 일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거친 숨이 입밖으로 뛰어나오기 무섭게
나도 모르는 누군가도 저 현관문을 열고 무섭게도 뛰어들어왔다.
말 같지도 않은 비명이 입술 사이로 뱉어졌고
풀린 다리에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분명 너였으면
그게 너였다면
웃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너였더라면 너는 분명 웃으며
일어나- 바보야-
말하곤 얼른 내 손을 잡고 입을 맞췄을 텐데
하지만 너일리 없는 그는
마치 내가 마지막 구원을 받은 천사라도 되는 냥 단단하게 감싸안고는
내 손목과 발목을 번갈아 확인하곤 가볍게 나를 안아들어 침대에 앉혔다.
아- 아-
검은 무전기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눈으로 이야기를 했고
그게 마치 괜찮을 거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
나는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계속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아- 아-
그가 말했다.
김원식- 강력 2팀 형사 김원식입니다.
들립니까?
지지직-
들립니다.
말씀하세요.
마지막 피해자 찾았습니다.
이재환 말대로 자택에 있었고
손목과 발목에 마찰로 인한 상흔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고.
헛구엿질을 했고.
그는 나를 봤고.
나는...
나는...?
왜 혼자지?
괜찮으십니까?
김원식이 나에게 다정히 물었다.
끄덕-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응"
.
.
.
.
"잘 들어"
.
"네"
"말이라면"
"뭐든지"
.
.
Bonnie & Clyde
Final Destination
Goodbye
*
운이 좋았어요.
피해자 손톱에서 나온 살점과
시계에서 나온 흔적이 없었으면 피해자가 한 명 더 있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고마워요.
SETs HER FRE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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