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우리에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살짝 건들면 깨질꺼 같은 이 상황.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재환은 한참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전혀 그럴꺼 같지 않던 사람이 안어울리게 서글픈 눈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좋아. 이제 애기 차례야."
"마지막 질문...대답 못했는데"
"괜찮아. 들은걸로 하지 뭐. 물어보고 싶은거 있으면 물어봐도 좋아"
"정택운 씨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
"아 그게 궁금했구나? 너가 봐도 이상하겠지. 한의사랑 살인청부업자랑 친구라니 그치?"
나는 왠지 잘못하진 않았는데 손이 뒷통수로 향했다.
흐음, 콧소리를 내며 알까말까한 얼굴을 하고는 마치 나를 골려먹는 듯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어릴때부터 친구였어. 친한 친구. 그게 다야"
진짜인가,
"진짜야"
깜짝이야. 독심술이라도 하는건지 저번 처럼 나를 꿰뚫어보고있다는 듯한 눈을 하고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다시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음 질문 받을께~"
"저, 이재환씨"
"응? 애기야"
"이재환씨는 그 일 그만둘 생각 없어요?"
"응"
"왜요?"
"세상은 나같은 사람을 정상으로 봐주지 않아서.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서 반항해보려고"
"그리고 난 이게 더 잘 어울려. "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커피마시는 것도 잘 어울려요"
제발 당연한듯이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요.
"그럼 애기가 나 책임져줄래?"
"ㄴ,네??"
"나 이일 그만두면 애기가 나 책임져줄꺼냐구요"
"아,아니요 그건 조,좀"
이재환은 큭큭거리며 웃더니 일어서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기 앞날이나 걱정하세요, 라면서 다 마신 컵 두잔을 들고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작스런 행동에 나도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 버렸다. 이재환씨가 주인과 커피의 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찾잔이 진열된 곳에 가보았다.
내가 마셨던 컵의 꽃은 작고 옅은 보라색이였다.
이 진열장에 많은 찾잔 중 비어있는 곳 두 곳.
내게 줬던 찾잔의 꽃 이름은 '물망초'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
*
[정택운 시점]
오후 진료까지 다 끝나고 다음 날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보며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재환이 나간 뒤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별빛씨를 보고 재밌을 꺼 같다는 말에 괜찮겠거니 연락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터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오니 쇼파에는 이재환이 누워있었다.
"미친놈, 놀랐잖아!"
"어이구 그랬어요~ 많이 놀랐어요~"
"확 씨"
"용케 전화도 안했더라?"
"받을 생각도 없었을꺼아냐"
"역시 정택운. 내 남자야"
"닥쳐"
이재환은 옥상에 같이 바람쐬러 가자며 나를 이끌고 올라갔다.
한참 거리를 내다보며 말이 없었다.
"할 말이 뭔데"
"너가 준 침 잘 먹히더라. 뒷통수 아래 척수 가운데 꽂으니까 한방에 가더만"
불법으로 구한 이재환의 침은 보통 한방 도구와는 좀 달랐다. 조금 더 굵고 길며, 끝이 한쪽은 뾰족하고 손잡이 부분은 없었다.
피 한방울 안 흘리게 죽이기 위해 이재환이 쓰는 칼이였다.
사람 살리라고 만든 걸, 재환이는 반대로 쓰고 있었다.
"너, 별빛씨 앞에서 죽인건 아니겠지"
"어이, 정택운 선생님,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까?"
"응"
"하,"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곤 자세를 바꿔 난간에 기댔다.
차마시고, 데려다 주고 일나간거야. 라면서 나를 보며 힘 없이 웃어보였다.
"택운아, 애기가 그러더라. 평범하게 커피마시는 것도 잘 어울린다고"
"내가 뭐라 그랬어, 다른 병원 알아보라니까"
"어딜가도 안받아줘. 내 이 병신같은 성격 때문에 다들 기분 나쁘다잖냐. 어쩌겠어. 이러고 살아야지"
"다시 검사 받아보면 되잖아!"
"..이미 늦었어."
재환이의 아버지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일명 소시오패스라 불리는 우울증을 앓고 계셨다.
초반에 재환이가 눈치를 채고 검사를 받아, 일찍 치료를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재환이의 아버지께서는 잘 견뎌내시고 계셨다.
하지만 그게 재환이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나와 재환이는 둘다 병원쪽에서 일을 하고 싶어해서, 고등학교때부터 같은 목표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별난 성격때문에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는 못했지만, 딱히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그저 나한테는 친구이니까.
운인지, 기적인지 우리 둘은 같은 대학에 합격하고 공부든 인턴인든 열심히 하려했다.
어느날 재환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걸린 병이 유전이 된다는 사실을 수업을 통해 배우게 되고, 나 몰래 검사를 받았고했다.
"나 반사회적 인격장애로...나왔어"
"..뭐라는거야 개소리 집어치워. 잘못나온거야 다시 받으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건가"
그 뒤로 재환이는 한 동안 연락을 받지 않았었다.
아마 자기 자신이 제일 무섭겠지. 버려진다는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저 핸드폰을 붙잡고 기다리는 거 뿐.
그리고 이재환은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나 여기서 일해"
그리고 이재환은 갑자기 내게 혼란스러운 말을 했다.
사람 죽이는 일을 한다고.
"미친 새끼! 야 이 새끼야 너 이러려고 나랑 그 시간동안 공부한거냐? 뭐가 그리 무서운데, 어!? "
나는 말보단 주먹이 먼저 나갔고, 이재환은 입술이 터진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병신같은 새끼, 의사되겠다고 한 놈이 뭐? 살인청부업자?"
"시발 그럼 어떻게 해, 나도 해봤어, 이력서 들고! 병원 돌아다녔어. 저 그런 사람아니라고. 제발 일 하게 해달라고!"
안된다잖아.
"한번 걸리면, 그냥 뒤지는거야"
*
"혁이는 요즘 어떠냐"
"별빛씨가 온 뒤로, 예전보단 나아진거 같아"
"넌 혁이 어떻게 생각하냐"
"..잘 모르겠어. 자기가 정한 길 가겠다고 했으니 기다려봐야지."
"애기는 어쩔꺼야"
"기다려봐야지"
기다려야지. 과거에서 벗어날 때까지.
*
안녕하세요 장미빛 고래 입니다!
이번 편으로 재환이의 이야기가 끝이 났어요.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이란건 무섭죠. 아버지가 그러니까 아들도 무조건 그럴꺼야. 라는 고정관념.
다음편부터는 상혁이가 자주 나와요 ㅎㅎ
이제 3분의2만큼 연재한거 같아요.
BGM하고 암호닉 신청 받은건 오늘 저녁에 공지로 쓸께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