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아아악!!! 보았느냐, 중생들이여!!!!"
백현이 소리를 꽥 지르는 바람에 양피지에 과제를 써내려가던 경수와 민석이 움찔 놀라며 글자가 삐뚤어진다. 아…, 저 자식이. 경수가 눈을 꾹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민석은 글자를 바라보며 이걸 어떻게 고쳐야하나 고민했다.
"죽고싶냐?"
경수가 이를 악물고 물어보지만 백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백현은 손에 들고 있던 젤리를 먹어버리더니 경수에게 지팡이를 겨눈다.
"아씨오, 세상의 모든 약초!"
백현이 껠껠하는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주문을 외치자 경수의 앞에 놓인 [세상의 모든 약초] 책이 백현의 손으로 날아갔다. 옆에 있던 찬열과 종대가 우와아! 소리를 질렀다.
"미쳤다. 변백현이 제일 먼저 성공했어."
"말도 안 돼에에!"
민석은 펜을 들고 헝클어진 글자의 수술에 돌입했다. 이렇게 하면 글자가 삐뚤어진게 티가 안 날거야…. 찬열과 종대는 백현의 옆으로 가더니 백현이에게 어떻게 하는 거냐며 질문을 해댔다. 경수는 백현을 찌릿 째려보고는 옆 가방에 넣어두었던 지팡이를 꺼내 겨누었다.
"아씨오, 세상의 모든 약초."
그러자 백현의 손에 있던 책이 경수에게로 날아간다. 경수는 자신이 보던 페이지를 열어 과제를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성공했냐. 솔직히 이런건 공유해야 돼."
"하하하, 어리석은 중생들아. 진심을 다해 바라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백현이 눈썹을 어깨마냥 으쓱으쓱대며 말하자 찬열의 표정이 굳는다. 종대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모아 중얼중얼 기도를 드리더니 경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는 백현이 한 것처럼 "아씨오, 세상의 모든 약초!" 외쳤다. 그러나 책은 그대로였다.
"왜 나는 안 되지?"
"아씨오, 젤리."
시무룩해진 종대의 옆에서 백현이 저멀리 있던 젤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젤리가 날아왔다. 한 번 성공하더니 감을 익혔는지 이제는 능수능란해졌다. 찬열도 옆에서 시도했으나 보기좋게 실패했다. 몇 시간동안 계속되는 '아씨오, 젤리'의 향연에 찬열의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듯 싶었다. 종대는 기운이 다 빠져서 의자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아씨오가 뭔데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야."
"아씨오 뜻이 아 씨발 오라고의 줄임말이라던 형들의 말이 맞았던거야."
찬열의 말에 종대가 웃으면서 동감을 표시했다. 과제를 하던 민석도 피식 웃었다. 민석과 학연, 동우가 비글들처럼 4학년이었을 때도 저렇게 힘들어했었다. 특히 학연이. 마법을 배우고 며칠 뒤, 능숙해진 민석과 동우와는 달리 아직도 성공을 못한 학연이 그렇게 말했더랬다. 아씨오의 뜻은 아 씨발 오라고의 줄임말인게 틀림없다고. 백현은 이제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젤리를 제 손으로 옮겼다. 이제 젤리가 몇 개 남지 않았다.
"으아악!! 아아!! 씨발!! 오라고!!! 아씨오!! 젤리이이!!!!"
찬열이 결국 악에 받쳤는지 소리를 구에엑 지르며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기적마냥 젤리가 찬열의 손으로 날아왔다. 헐. 종대가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는 쾅!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김종대!!"
"아아악!!! 아씨오오오!!! 젤리이이이이이이이!!!"
덕분에 글씨가 또 빗겨나간 경수가 결국 폭발했다. 그러나 제 손으로 날아온 젤리에 종대는 경수의 고함을 듣지 못했다. 민석은 보고 생각했다. 진짜 그 뜻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우연이 탄생할 수 있나.
"형?"
민석이 눈을 떴다. 아직도 눈이 흐렸다. 누구 목소리지…? 흐린 시야만큼이나 아직 정신도 흐렸다. 누구야…. 민석이 고개를 돌렸다.
"민석이 형?"
자신의 이름이 불려 대답을 하려고 민석이 입을 여는 순간, 갑자기 식도가 뜨거워지더니 바짝 말라버려 기침이 수없이 나왔다. 옆에 있던 사람이 급히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군가를 다급히 부른다. 컵에 물을 따르는 손이 떨리는지 유리가 부딪치는 다그극대는 소리도 들린다. 말라버린 입술에 물이 닿고 말라버린 식도로 넘어가자 또 기침이 미친듯이 나와 컵을 치워냈다. 뒤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억지로 민석의 입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식도가 아프단 말입니다…. 얼굴을 붙잡은 채 입에 들이부어대는 탓에 말하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자 신기하게도 기침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흐렸던 시야도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좀 어떻니?"
폼프리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경수와 학연, 동우, 게다가 완전 초면인 이씽까지. 민석은 학교 병동에 누워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쓰러졌던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은 그렇다고쳐도 이씽은 왜 있지.
"머리 아파요…."
"그거 말고 손가락은."
민석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말하자 폼프리 부인이 설명을 덧붙인다. 응? 의아한 표정으로 민석이 제 손을 바라보았다. 왼쪽 검지와 중지에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민석이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여긴 왜 붕대가 감겨있어요?"
민석이 묻자 그의 옆에 약을 놓던 폼프리 부인이 설명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폼프리 부인!"
"얘들아, 너네들이 설명 좀 해주렴."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폼프리 부인은 민석이 아닌 다른 학생에게로 달려갔다. 민석이 그들을 바라보아도 눈치만 볼 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뭐야, 다들."
결국 민석과 완전 초면인 이씽이 설명을 해야만 했다.
벽이 무너졌다. 모두가 당황해있는 사이 민석의 외침이 경기장과 관중석에 울린다. 아씨오, 황금알. 가만히 있던 황금알이 민석에게로 날아갔다. 동시에 이씽도 자신을 잡고 있는 팔들을 뿌리치고 경기장 쪽으로 달려나가며 생각한다. 어떠한 것이 좋겠는가. 민석이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왼팔을 황금알에게로 뻗는다. 그리고 민석에게로 날아가는 황금알을 발견한 바실리스크가 민석에게로 달려들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이씽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형!!"
"김민석!!"
지팡이 끝에서 날아간 마법이 바실리스크에게 닿는 순간, 경기장은 민석은 물론 학생들의 비명으로 가득해졌다. 결막염 저주로 인해 노랗던 눈에 흰 막이 생겨버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바실리스크는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여기저기 뒤틀어대다가 크게 포효하더니 다시 정확하게 민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든다. 이씽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듦과 동시에 맥고나걸이 지팡이를 휘둘렀고 맥고나걸의 마법을 맞은 바실리스크는 민석을 해치지 못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그 머리를 떨구고 말았다. 이씽의 뒤를 따라 경수도 들어가자 비글들은 물론 학연과 동우까지 들어갔다. 민석은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행히도, 황금알은 그의 품에 있었으나 그건 황금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미친."
백현이 저도 모르게 한 말이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이씽은 주위를 살핀다.
-학생들은 자리를 지키도록 하세요.
맥고나걸의 방송이 나가고 학생들은 불안한 듯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 자리를 지키세요. 다시 한 번 말하고나서야 학생들은 겨우 자리에 앉는다.
민석에게로 달려들던 바실리스크에게 이씽이 마법을 걸었다…바실리스크는 황금알을 잡으려 뻗었던 손을 노렸다…민석에게 닿기 직전 바실리스크는 결막염 저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순간 방향 감각을 잃은 바실리스크는 민석에게 '정확하게' 달려들지 못했다…빗나간 것이다. 민석의 검지와 중지 손가락은 바실리스크에게 물어 뜯겨져버렸다. 그러나 황금알은 민석의 품에 들어갔고, 경기는 끝이 났으며 교수는 바실리스크를 죽였다. 경기는 어찌되었건 '황금알을 쟁취하는 것'이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일찍 마법을 썼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일찍 벽을 무너뜨리기만 했었더라도 이런 사건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핏자국을 따라가던 이씽이 민석의 손가락을 찾아내고는 그에게 돌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씽이 상처를 치료하는 마법에 강했다는 것. 그래서 경기장 내에서 몇 가지 응급치료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디터니 원액이 있으면 좋은데…."
"이, 있어!"
이씽의 중얼거림을 들은 학연이 소리치더니 허둥지둥 민석의 망토 안을 뒤적거렸다.
"경수야, 니가 가져가라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넣어주었거든. 김민석 얘는 까먹을거 같아서 내가 넣어줬어. 경수야, 니 말이 맞아. 씨발, 존나 재수없긴하지만 드한 교수가 타이밍 알맞게 잘 가르쳐준…찾았다!!"
정신나간 사람마냥 숨도 안쉬고 중얼거리던 학연이 망토 주머니에서 디터니 원액을 찾아내고는 서둘러 이씽에게로 건네었다. 이씽은 일단 잘려버린 손가락 -이 등장하자 백현은 죽을 것 같았다.- 에 지팡이를 대고 몇 가지 주문을 외웠다. 후, 중지 손가락의 원래 자리에 가져다 대고는 이씽은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민석을 잘 잡으라고 경고한 후 디터니 원액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자 초록색 연기가 소용돌이치듯 피어오르더니 새 살이 돋아났다. 그리고 동시에 민석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작은 상처에 뿌려도 그 아픔이 상당한데 아예 잘려버렸으니. 그러나 그런다고 그만 둬버리면 문제는 더 커진다. 이씽은 이어 검지도 본래 자리에 가져다대고 디터니 원액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초록색 연기가 아닌 다른 색의 연기도 옆에서 같이 피어올랐다.
민석은 한참을 제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잘렸었다고? 아니, 그것보다 자기가 아프다고 계속 말을 했었다는데 민석의 기억은 손에 아픔이 느껴지면서 끝나버렸다. 아프긴 엄청 아팠던 모양이네. 기억이 안 날 정도면.
"민석이혀어어어엉!!!"
찬열이 소리를 꽥 지르면서 병동에 등장했다. 백현이 다급히 찬열의 입을 막았고 종대는 찬열이 들고 있던 것을 빼앗아 민석에게로 달려갔다.
"형, 이거 우리가…(종대는 소리를 죽였다) 위즐리 가게에서 가져왔어요. 드세요."
그러더니 포장을 까고는 비스킷을 민석의 입에 가져다대었다. 민석은 몸을 일으키고는 자세를 고쳐앉아 비스킷을 한 입 물었다. 그제서야 병동의 분위기가 조금 유해졌다.
"참, 경기 결과 어떻게 되었어?"
"어…형, 그게요…."
민석의 물음에 비글들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학연과 동우는 고개를 푹 숙였으며 경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이씽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아무래도 결과가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싶어 민석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괜찮아! 시험이 이게 끝이 아닌데, 뭐. 그치? 그러나 그들은 침울했다. 민석이 당황해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비글들을 붙잡았다.
"너네까지 우울할 필요는 없잖아! 아, 안 그래? 다음 시험이 있는거고…!"
"형…."
"어, 어어. 백현아…."
백현이 민석을 우울하게 불렀다. 민석이 입꼬리만 올린채로 하하, 하고 육성으로 웃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형이 35점 받아서 일등이지롱!!!"
"축하합니다아아앗!!!"
생일때나 보이는 폭죽을 펑펑 터트렸다. 결국 비글들은 폼프리 부인에게 혼나면서 병동에서 쫓겨나고 말았으며 그 옆에서 조용히 축하만하던 학연과 동우, 경수, 이씽까지 모두. 깐깐하시네-, 투덜대며 비글들은 연회장에 2차 저녁을 먹으러 간다며 사라졌다. 학연과 동우, 경수는 기숙사로 들어가 쉬겠다며 사라졌다. 래번클로의 기숙사로 돌아가던 이씽은 생각에 잠긴다.
대강의 응급치료를 끝내자 이씽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도 아니었다. 경기장 안에 또다른 마법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민석이 자꾸만 눈을 비볐던 것이었으며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민석과 바실리스크 모두 듣지 못한 것이다. 이씽이 예측하기를 아마도 민석은 머리도 아팠을 것이다.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엔 구토를 유발하며 쓰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씽은 바닥에 앉아 민석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설 하나. 민석이 황금알을 빼앗아와야하는 상대가 바실리스크로 바뀌었다. 첫 번째 생각, 바실리스크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상함. 이씽은 그리스로마신화의 메두사로부터 그 해답을 얻는다. 눈을 마주치면 죽어버리는 바실리스크와 메두사. 그리고 메두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돌로 변해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바실리스크는? 동일할 것이었다. 바실리스크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죽을 것이 분명할텐데도 바실리스크는 민석이 세운 얼음벽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죽지 않았다.
민석이 황금알을 빼앗아와야하는 애쉬와인더의 외형이 바실리스크로 바뀌었다는 두번째 가설이 옳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얼음벽에 비춰진 바실리스크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죽지 않았던 것이며 바실리스크와 눈을 마주친 민석이 죽지 않은 이유이리라. 그리고 두 번째 가설이 가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사실이 되는 증거는 이씽의 앞에 있었다. 민석의 검지 손가락에 디터니 원액을 떨어뜨리는 순간 초록색 연기와 함께 옆에서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회색의 붉은 눈, 그리고 얇은 몸을 가진 애쉬와인더로 변해버린 바실리스크의 시체말이다.
이제 이씽의 생각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과연 이 어마어마한 행동을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성취하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