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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재욱 윤도운 방탄소년단 엑소
1323 전체글 (정상)ll조회 14645l 25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NOTE: SERO-GOCHIM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 


“……아무것도 기억 못 하면서.” 


 


 


 


 


 


 


 


 


 


 


 


 


 


 


 


 

OFF ON OFF 

;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상경한 촌뜨기에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그야말로 별천지입니다. 밤 10시가 되어도 여우나 늑대가 울지 않고요, 집 앞 슈퍼 문이 닫히지 않고요, 자정이 넘어도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는 지하철도 있습니다. 특히 대학가 근처는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습니다. 술고래 20대들 사이에서 술찌인 나는 한 두 잔에 꽐라가 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분위기에 맛들려 술자리에 자주 갑니다. 사실 분위기 말고도 가는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어, 왔냐.” 





권순영입니다. 같은 학과 동기 중 가장 먼저 친해진 남양주 사람입니다. 술 게임을 하다 된통 걸렸는지 눈치를 보며 내게 다가옵니다. 아이스크림 사러 갈래? 너 먹고 싶을걸? 순영은 벌주를 먹지 않으려고 시간을 버는 겁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찰떡같이 권순영 말만 믿고 내가 과연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는지 고민합니다. 뽕따와 생귤탱귤은 너무 많이 먹어 질렸으니 이번엔 우유 아이스크림을 먹어볼까 합니다.





“그거 있잖아, 남양주 우유 아이스크림.”


“우리 동네 이름 걸고 파는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동기들 중 한 명이 아하, 하며 웃습니다. 남양주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서주 우유 아이스크림 아니야? 그 말에 내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서주가 그…… 남양주 관련된 거 아닌가? 억지로 짜 맞추기를 하지만 결국은 와르르 맨션입니다. 권순영은 시원하게 웃습니다. 네가 남양주면 남양주지. 서주 말고 남양주 아이스크림이라고 하자. 권순영은 웃으면 눈이 가늘게 휩니다. 빨간 망토 차차처럼 간드러지게 웃습니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볼에 보조개도 옅게 패입니다. 500cc에 새까맣게 담긴 벌주를 동기가 흔들며 손가락을 까딱거립니다. 권순영이 내 어깨에 팔을 두릅니다. 나는 끌려가듯 자리에 앉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나.” 


“……으응, 그럼.” 


“오늘은 술 말고 안주 많이 먹어라.” 





자리에 앉아도 권순영은 팔을 풀지 않습니다. 맨정신에, 심지어 권순영 품에 안겨있으니 술을 먹은 듯 하늘이 핑핑 도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사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공중 옆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권순영과 나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티나는 얼굴과 단정한 얼굴부터가 영 반대입니다. 뭘 입어도 맵시 나는 권순영과 달리 뭘 입어도 나는 힙찔이 같습니다. 패션은 자신감이라는데 나는 자신감을 두 번 가졌다간 큰일 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권순영은 내 후드티가 귀엽다고 칭찬합니다. 본인도 무신사 vvip 회원이랍니다. 포인트를 무나해주고 싶습니다.





“야, 진짜 나 못 먹어.” 




권순영이 계속해서 벌주를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대신 마셔야 합니다. 어디서 샘솟았는지 모를 용기로 내가 번쩍 손을 듭니다. 술찌인 내게 동기들의 의심이 쏟아집니다. 너 벌써 3차 뛰고 왔냐면서 내 이마에 열을 잽니다. 뜨겁답니다. 하지만 술을 마셔서 뜨거운 건 아닙니다. 권순영의 팔은 여전히 내 어깨에 걸려 있습니다. 난 진지합니다. 의지도 굉장하고요. 





“어우…… 야, 괜찮냐.” 





내 고개가 젖혀지는 만큼 권순영의 턱도 올라갑니다. 테이블에 탁! 내려치는 빈 잔에 박수가 쏟아집니다. 술찌가 레벨업을 했다는 별 시답잖은 얘기입니다. 히히덕거리는 동기들 사이에서 권순영의 손바닥에 내 뺨을 덮습니다. 





“진짜 괜찮아?” 


“응!” 


“……약간 맛이 갔는데?” 





고삐가 풀렸습니다. 그날은 소원이고 나발이고 술맛을 알아버린 술찌의 역사적인 날이 됩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스무 살은 참 좋은 나이입니다. 4차를 뛰어도 체력이 좋습니다. 3차부터 피곤하다며 연발하던 권순영도 포기한 채 내 옆에 있습니다. 그렇게 새벽이 찾아오면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갑니다. 권순영은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었으므로 5차는 자연스럽게 권순영 집이 됩니다. 남녀 불문 편의점에서 산 페트병 소주와 맥주를 들고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걷습니다. 권순영은 지그재그로 걷는 나를 뒤에서 잡아줍니다. 





“너 오늘 좀 무리한 거 아니냐.” 


“나 지인짜 괜찮아. 똑바로 걷고 있잖아. 방금도. 나처럼 곧게 걸어야 인생도 곧아질걸? 항상 똑바로, 똑바로 걸어야…… 근데 내가 뭐라고 그랬지?” 


“야, 거기 우리 집 아니야.” 


“알아, 알지. 당연히 알아버리지.” 


“여주 취했네.” 


“스녕아.” 


“어유, 야, 너무 취했는데?” 





그리고 그 동행에 나도 함께합니다. 분명 4차가 끝난 후 기숙사로 향해 길목을 틀었지만 권순영이 내 손목을 잡은 탓에 무리와 섞여버렸습니다. 송아지 고삐를 잡아 쥔 것처럼 혀로 쪼쪼- 거리며 권순영은 내게 길을 안내합니다. 





“인간으로 대접해줬으면 좋겠어.” 


“야, 누가 보면 내가 송아지 고삐 쥐고 가는 줄 알겠다.” 


“대박, 소름. 나 방금 그 생각 했거든?” 


“진짜? 야, 근데 다 왔다. 다 왔어.” 





여섯 명의 동기들은 주문에 이끌리듯 순영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다들 거나하게 취한 터라 따뜻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눕기에 바쁩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소주는 따지도 못하고 그들은 금세 잠에 빠져듭니다. 고로 권순영과 나만 눈을 뜨고 있습니다. 종이컵에 소주와 맥주를 반반씩 섞은 권순영이 내게 내밉니다.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발언입니다. 하지만 장난이 대화의 대부분을 먹고 들어가는 권순영의 화법을 안다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중의 하나가 나였으므로 대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원샷을 때립니다. 





“마셨다, 됐지?” 


“진짠데 안 믿네.” 


“언제는 진짜 아니었게?” 





권순영은 삐낀 듯이 입술을 샐쭉 입니다. 스크래치 난 눈썹도 아래로 살짝 내려갑니다. 





너 소원은 언제 말하냐.” 


“소원? 무슨 소원?” 


“아까 내 벌주 마시고 소원 안 빌었잖아.” 


“아, 그 소원. 근데 아직 뭐 말할지 안 정했는데…….”


“자기 전까지 말해야 유효한 거야. 알지.” 


“신촌 광장 앞에서 엉덩이 까고 이름 쓰기.” 


“손절할래?” 





종이컵이 여러 번 오고 갑니다. 순영은 전보다 솔직해집니다.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너는 혼자 밥 먹지 말고 나랑 좀 같이 먹자. 교양도 같이 듣는데 강의 끝나면 혼자 팽 가버리고 나만 남잖아.” 


“친구들도 많으면서 갑자기 웬 밥 타령? 수업 끝나면 게네랑 같이 먹으면 되지.” 


“그냥 너 찾다가 없으면 여기가 좀 그렇다고.” 





권순영은 제 가슴을 퍽퍽 두드립니다. 뭘 모르면 가만히 있어 인마. 아까보다 입술을 삐죽 내밉니다. 가슴 아플 정도로 뼈아픈 슬픔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역시 알콜이 들어가서인지 그런 과장된 행동도 필터링 없이 이해합니다. 알겠어, 같이 먹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합니다. 권순영의 표정이 환해집니다. 나는 부러 시선을 내립니다. 결국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우는 건 나일 테니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넘어가는 소주마다 달아 미칩니다. 밥 메이트가 생겨 기쁜 권순영은 제 핸드폰과 다가옵니다. 같이 밤새운 기념 샷을 찍잡니다.





“근데 뽀뽀해도 되나.” 


……뭐래 미친놈이.” 


“야, 장난이니까 정색하지 마. 맘 아프게.” 





이럴 때마다 속이 뒤집어집니다. 내 맘도 모르는 권순영이 짜증 나고 과장을 보태자면 부아가 치밉니다. 술이 좀 들어간 권순영은 계속해서 치댑니다.





“한 번만 얼굴 부비면서 찍으면 안 되냐.”


“개새끼니?” 


“엉, 진하게.”





저 애교스러운 얼굴과 목소리를 매일 들을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한테 벌써부터 질투가 납니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짝사랑은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바람 쐬고 오겠다는 핑계로 권순영의 집을 나갑니다. 내일부터 담배를 배워볼까 잠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답답할 때마다 피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뭐하냐. 추운데.” 


“왜 안 자고 나왔어?” 


“밖에 두고 어떻게 자.” 


“누가 보면 내가 네 애인인 줄 알아.” 


“해, 그럼.” 




권순영은 거리낌 없이 대답하며 패딩을 내 어깨 위로 덮습니다. 내 것도 아니고 무려 자신의 패딩을요. 애인하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거리고 코끝에 들어오는 향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향수도 아니고 섬유유연제도 아닙니다. 어느 햇볕 좋은 날에 빳빳하게 말린 이불 냄새 같습니다. 권순영은 알까요. 한 번쯤은 품에서 직접 맡아보고 싶은 것을요.





“내 소원, 지금 써도 돼?”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또다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내게 될 겁니다. 그러니 소원을 핑계로 내가 영원히 간직할 순간을 남기고 싶습니다. 보기보다 나는 알딸딸하게 취했고 인간이 가장 연약해지는 새벽 4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후드 모자를 둘러쓴 권순영이 뭐하냐고 묻기도 전에 나는 그 넓은 품에 말없이 안깁니다.  





“이렇게 1분만. 딱 1분만 있을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쉽니다. 이제야 권순영의 향기가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집 냄새입니다.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우리 집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권순영을 가까이하고 싶었던 걸까요? 낯선 환경에 닥친 누구는 상담을 받고, 누구는 명상으로 안정을 되찾듯, 나의 안정감은 권순영 품에 있습니다. 하여 오늘이 지나면 다신 안기지 못할 권순영 품이 조금은 씁쓸합니다. 





“됐다아, 1분.” 





위로 고개를 듭니다. 권순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취기가 확 몰려옵니다. 






“야.”


“…….” 


“취했어?”





권순영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날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심한 두통에 눈을 뜨니 같이 온 동기들은 없고 권순영만 남아있습니다. 물론 집주인이니 이상하진 않습니다. 문제는 왜 나만 혼자 남아있냐는 겁니다. 





“깊게 자더라. 깨우지 말라고 그랬어 내가.” 





권순영은 콩나물국을 끓여 내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둘이서 밥을 먹게 됐습니다. 혼자 밥 먹지 말고 같이 먹자더니 어젯밤 대화는 전조현상이었을까요? 학교가 아닌 집에서, 그것도 권순영 집에서 마주 보며 직접 끓인 콩나물 국을 나눠 먹다니요. 





“나 어제 어떻게 잤어?” 


“잘.”


“실수한 건 없었어?” 


“몰라.”





대답이 애매합니다. 아침부터 삐뚤어진 권순영은 나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화의 강도를 보면 소노-중노의 가운데쯤 되는 것 같습니다. 침대에 오바이트를 했다거나, 갑자기 쌍놈이라고 욕을 했다거나, 하다못해 고백하지 않은 이상 저런 표정은 아닐 겁니다. 






……고백? 






“내가 실수했지? 맞지? 이상한 말 했지?” 


“말실수 없었는데.” 


“진짜?” 


“엉.” 


“그럼 네 표정은 똥 마려운 것처럼 왜 그래?” 


“과제 못 내서.” 


“왜 수석처럼 굴어? 안 한 게 한두 번이야?” 


“야.” 


“뭐.” 


“……그냥 밥 먹어.” 





분위기가 이상해집니다. 내가 꼭 죄를 진 것 같습니다. 얼큰한 콩나물 대가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권순영을 바라보며 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먼저 식사를 마친 권순영은 곧바로 칫솔을 뭅니다. 새 칫솔을 뜯어 내 옆에도 놔줍니다. 





“바로 강의 들어갈 거지?” 


“엉.” 


“끝나면 밥 같이 먹을까?” 


“봐서.”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 나란히 붙어서 칫솔질을 합니다. 나는 권순영을 보며 어금니를 닦고, 권순영은 거울로 나를 보며 아랫니를 닦습니다. 어제 고작 품에 한 번 안겼다고 마음 정리가 됐나 봅니다. 얼굴 쳐다보는 게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권순영은 영 딴판입니다. 





“나가, 나 벗을 거야.”


“벗어.” 


“……가.” 


“응…….” 





장난도 먹히지 않습니다. 괜히 미간을 긁적이며 화장실을 나옵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립니다. 권순영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계단을 내려갑니다. 문단속은 내 몫이 됩니다. 닫힌 걸 세 번 쯤 확인하고 나서야 계단을 내려갑니다. 후드를 뒤집어쓴 권순영이 신발 끝을 바닥에 툭툭 쳐대고 있습니다. 뭐 때문에 아침부터 심통이 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고백은 아니라고 했으니 한시름 놓겠지만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새벽에 권순영과 술도 다정하게 나눠 먹고, 얘기도 하고, 패딩도 빌려 입고, 소원도 빌고, 그 소원이 권순영 품에 안겨서……. 






……품에 안겨서?! 






“……야, 권순영.”


“왜.” 


“내가 어제 너한테 뭘 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막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았어?” 





백주대낮 골목길에서 권순영 품에 가까이 얼굴을 댑니다. 내가 너한테 이러고 있었잖아, 맞지? 내 물음에도 권순영은 눈을 내리깐 채 킁킁대는 탐지견을 내려다봅니다. 





“그다음은.” 


“……그다음?” 


“그 뒤에 너 어떻게 했는데.” 





빤히 쳐다보는 권순영의 시선을 피합니다. 네가 인간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저 눈빛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자의 최후수단은 권순영의 어깨를 둘러 학교로 향하는 겁니다. 키가 큰 권순영은 강제로 허리가 반쯤 접힌 채 학교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내 팔을 내치치도 않습니다. 단지 얼굴이 새빨개질 뿐입니다. 




“술 덜 깼어? 너무 빨갛다.” 


“……그냥 앞에 봐.” 


“너 어제 많이 마시긴 하더라.” 


“아 그냥 앞으로 어깨동무 하지 마.” 




몸을 휙 돌려 내 품을 빠져나갑니다. 아구를 꾹 물고 앞서 걷는 권순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잘만 하는 어깨동무를 갑자기 하지 말라고 성을 내고 앉아있으니 이걸 줘 팰수도 없고 난감하기만 합니다.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앞서 걷던 권순영이 휙 뒤를 돕니다. 바닥만 내려다보며 걷던 내 정수리가 권순영 명치에 닿습니다. 





“야, 너 진짜 기억 안 나? 모른 척하는 거 아니고?”


“그니까 뭐를! 말을 해줘야 기억이 나든 말든 하지!”


“됐다, 그만하자 그냥.”





권순영은 골이 난 표정으로 휙휙 앞서갑니다. 이대로 놓치면 친구고 뭐고 곱창 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난 다급히 권순영의 팔목을 잡습니다. 이유 모르는 화를 참기엔 나도 어립니다. 





“기억나. 기억난다. 됐지?”


“뭐가 기억나는데.” 


“내가 너한테 안기고! 그다음에 네가 딱 받치고! 어?!” 


“…….” 


“어?!” 


“…….” 


“……어?!” 


“그냥 가.” 


“웅…….”





예, 할 말이 없습니다. 둘러대기엔 건덕지가 너무 없습니다. 권순영은 휘적휘적 걸어가 강의실 안으로 사라집니다. 자판기 앞에 덩그러니 남은 내가 돌아가지 않는 짱구를 굴립니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야 합니다.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전원우가 보이는군요.





“어제? 왜?” 


“너 몇 시에 일어났어?” 


“한 4시 반인가?” 


“나 그때 뭐하고 있었어?” 


“권순영 안고 자고 있던데?”


“……뭐라고?” 


“왜? 둘이 사귀는 거 아냐?”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내가 걜 안고 잤다고? 내 팔로 직접 안고 걔 옆에서 잤다고?!” 


“권순영이 팔베개도 해주길래 둘이 사귀나 보다 하고 말았지.” 


“다, 다른 애들도 봤어?” 


“애들 깨기 전에 권순영이 먼저 너한테 배게 주고 주방 옆에서 자던데.”  


“너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남 연애사 딱히 관심 없어서.” 


“연애 아니라니까!” 





당황한 내 목소리는 논산 훈련소 교관급입니다. 전원우는 대꾸하지 않고 두 귀를 막으며 강의실로 들어갑니다. 벽에 이마를 박고 자판기를 발로 차는 건 내 몫입니다. 어제 기억 진짜 안 나냐고 묻는 권순영의 얼굴이 또렷해집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민 가고 싶습니다. 자퇴하고 재수할까요? 





“자퇴할 생각 말고 얼른 와라.” 





권순영이 뒷문에서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기억나지도 않는 일에 괜히 화끈거린 나머지 몸은 주체할 수 없이 오두방정을 떱니다. 고장 난 내가 이상했는지 권순영이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내가 저 어깨와 팔과 가슴에 밤새도록 포옥 안겨 있었다는 말이지요? 





“왜 그래?” 


“뭐, 뭐가?” 


“귀신 봤냐?” 


“……응.” 


“진짜? 어디!” 





바싹 쫄은 권순영이 주변을 아싸리 살핍니다. 발이 있었어 없었어? 목은? 댕강댕강? 고명 같은 눈꼬리를 세우고 학교 귀신의 흔적을 찾습니다. 매몰차게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내 뒤에 숨어 흘긋댑니다. 어제고 뭐고 나는 권순영이 쪽팔립니다. 전원우처럼 두 귀를 막고 강의실에 들어갑니다. 그 뒤를 권순영이 빠르게 쫓습니다. 





“네가 아무리 걸어봤자 내 한 걸음이지.” 


“붙지 마.” 


“야.” 


“뭐! 뭐!” 


“넌 또 애기처럼 뭘 묻히고 다니냐.” 





권순영이 내 볼을 톡톡 건드립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권순영을 버리고 강의실에 들어갑니다. 정 반대편에 앉아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을 합니다. 옆에서 어이없이 쳐다보는 권순영을 모른 척하며 강의에 집중하려 노력합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필기 노트에는 권순영 이름만 잔뜩이니까요. 






내가 어제 너한테 뭘 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막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았어? 


그다음은. 


……그다음? 


그 뒤에 너 어떻게 했는데. 





그다음에 뭐!!! 그다음이 뭐길래 내가 널 안고 있었냐고!!!


노트가 구겨집니다. 손마디에서 튀어나온 볼펜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하지만 교양 교수님은 차마 지적할 수 없습니다. 강의 주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몰두한 것처럼 고뇌하는 학생을 오히려 감싸주고 싶습니다.





— [또라이냐] 


— [뭐 잘못 먹었나?] 


— [뒷머리 아침에 먹은 콩나물 대가리 같다] 





권순영의 똥같은 문자가 빗발칩니다. 진퇴양난입니다. 답장은 하지 않습니다. 이미 눈앞에 권순영이 가득합니다. 가까스로 2시간을 버틴 몸뚱아리가 강의실을 허겁지겁 떠납니다. 하지만 맹수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습니다. 





“내가 밥, 밥맛이 없어가지고…… 막, 콩나물 대가리가 뒤통수로도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응, 내가 좀 중증이야. 그러니 비켜주겠니?” 


“이것 봐라? 뭐가 생각났나 본데?” 


“아닌데?” 


“딱 보니깐 맞는데?” 


“아무것도 아닌 걸로 트집 너무 잡는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트집?” 


“맞잖아, 괜히 나 놀리려고 분위기 잡는 거 다 알거든요?” 


“……말 진짜 상처 준다.” 





냉랭해진 권순영이 저만치 앞질러 갑니다. 뒤늦게 달려가지만 이미 권순영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권순영은 늘 저런 식입니다. 





‘……말 진짜 상처 준다.’ 





비겁하지만 나도 늘 이런 식입니다. 


 


 


 


 


 


 


 


 


 


 

* * * 


 


 


 


 


 


 


 


 


 

얼레벌레 시험 기간이 옵니다. 매 학기 빚 독촉하는 은행 대출부서처럼 교수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레포트와 시험을 독촉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도서관은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권순영은 늘 자리를 맡겠다고 공강 아침마다 달려가곤 했습니다. 권순영이 전공 책을 펴놓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침 흘리며 곯아떨어지는 겁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대학생답게 머리는 어제 감았는지 그제 감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건 그 모습이 드러워야하는데 사랑스럽더군요. 공부하기 싫다며 떡볶이로 나를 꼬시던 권순영을, 볼에 볼펜 자국을 묻힌 채 필통을 정리하는 권순영을, 오늘은 너무 열심히 했다며 자화자찬하는 권순영을, 공부하다 말고 학과 체육대회 계주 연습으로 불려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씩 웃는 권순영을……. 


 


 


 


 


 


 


 


 


 


 

아,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권순영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게.
 


 


 


 


 


 


 


 


 


 


 


 

하지만 모든 건 지난 일입니다. 내 옆은 권순영이 아닌 다른 동기들 차지입니다. 폭탄주 세 잔 먹고 뻗은 나를 데려다준 후로 권순영의 연락은 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자는 〈작작 좀 마셔. 필름 끊기지 말고> 입니다. 몰래 훔쳐본 최근 인스타에는 친구들과 바닷가를 놀러 간 사진만 잔뜩입니다. 시험 기간에 바닷가라니, 염치도 없습니다. 여자 동기도 섞여 있는 것 같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뭐든 시험이 더 중요합니다.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아,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권순영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게.
 


 


 


 


 


 


 


 


 


 


 


 

하지만 모든 건 지난 일입니다. 내 옆은 권순영이 아닌 다른 동기들 차지입니다. 폭탄주 세 잔 먹고 뻗은 나를 데려다준 후로 권순영의 연락은 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자는 〈작작 좀 마셔. 필름 끊기지 말고> 입니다. 몰래 훔쳐본 최근 인스타에는 친구들과 바닷가를 놀러 간 사진만 잔뜩입니다. 시험 기간에 바닷가라니, 염치도 없습니다. 여자 동기도 섞여 있는 것 같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뭐든 시험이 더 중요합니다.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아,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권순영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게.
 


 


 


 


 


 


 


 


 


 


 


 

하지만 모든 건 지난 일입니다. 내 옆은 권순영이 아닌 다른 동기들 차지입니다. 폭탄주 세 잔 먹고 뻗은 나를 데려다준 후로 권순영의 연락은 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자는 〈작작 좀 마셔. 필름 끊기지 말고> 입니다. 몰래 훔쳐본 최근 인스타에는 친구들과 바닷가를 놀러 간 사진만 잔뜩입니다. 시험 기간에 바닷가라니, 염치도 없습니다. 여자 동기도 섞여 있는 것 같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뭐든 시험이 더 중요합니다. 


 


 


 


 


 


 


 


 


 


 


 


 


 



 

“이야, 너는 술을 또 마셨어?”


“숭영아, 나는 숭영이 네가 참말루 좋다.” 


“이게 지금 발음을 제대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건스녕.” 


“얘 언제부터 이러고 빙구짓 했냐.” 





권순영은 동기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나 봅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도 직직 끌고 왔으니까요. 제 자취방에서 술집까지 택시로 족히 10분은 되는데 그걸 직접 달려왔나 봅니다.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앞머리가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너 깻잎 머리 같다. 내년에 유행할 것 같아. 반 나간 정신으로 권순영을 게슴츠레 올려다봅니다. 권순영은 이미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내 옆에 앉아 있습니다. 버퍼링 걸린 고개는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순영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로 내립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입니다. 





“야 씨, 너는 눈이나 좀 제대로 떠야 데려다주든 말든 하지.”


“너는 야…… 내일 교양 시험인데 막 이래도 돼?” 


“나만 시험 보냐. 뭔 술을 정신 빠지게 먹었어.” 


“아하, 맞다. 맞아. 나도 있지. 와아, 나도 있어. 있습니다.” 


“이걸 언제 깨우고 언제 가냐.” 





내 마빡에 콩알을 먹이는 순영의 낯빛이 좋지 않습니다. 애한테 뭘 먹인 거야. 동찬아,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폭탄주 제조기 박동찬 학우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일주일 전에도 폭탄주 석 잔에 넉다운 땅땅 박은 나를 빡친 권순영이 수거해 갔기 때문이에요.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줘야 갈 수 있거든. 진심이야.” 


“말끝마다 진심만 붙이면 진심이 되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줍니다. 툴툴거리면서 해줄 건 해줍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슬라임처럼 찌부가 됩니다. 거기서부터 기억을 잠깐 잃습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하지요.





“김여주.” 


“네에.” 


“갑자기 대답하네?” 


“네에.” 





눈을 떠보니 권순영 등짝입니다. 운동을 한다더니 등판이 축구장만 합니다. 샴푸 냄새가 폴폴 나는 뒤통수에 코를 박고 흐흡- 들이킵니다. 케라시스다. 도브 아니고 케라시스야. 내 팔에 목이 졸린 순영이 몸을 흔들며 캑캑거립니다.


야, 아오, 악, 알겠으니까 놔봐. 케라, 케라, 엉, 그거 맞아. 네 말이 다 맞으니까 길바닥에 던져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


권순영은 다정하고 괴팍합니다. 아수라 백작 같아요. 걱정돼서 달려왔다더니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털이 삐쭉 선 고양이처럼 부르르 떱니다.


……야, 너 그거 하지 마.


아무렴 괜찮습니다. 요즘 나만 보면 뚱하고 서운해 보이는 권순영이 내가 술만 마시면 달려오니까요. 나한테 화난 게 있나 싶다가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걸 보면 삐낀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봅니다.





“정말 나한테 화난 거 없다고? 요즘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 없다고 그러고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이랑 밥 먹었다고 거절하고…… 진짜 가슴에 손 얹고 나한테 서운한 거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나는 네가 달라진 것 같지? 금쪽 상담소 나가볼래?” 


“오 박사님은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실 거니까 괜찮아.” 


“순영아.” 


“왜요.” 


“우리 집 저쪽인뎅.” 


“알아.” 


“근데 어디가?” 


“바람 쐬잖아. 너 술 좀 깨라고.”


“안 무거워?”


“무거워. 지독해.” 


“그럼 내려줘.” 


“내려줬다가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학점 망했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걸 또 보라고? 야, 내가 바보냐.” 


“순영아.” 


“그만 불러.” 


“웅…….” 





순영은 픽 웃습니다. 나는 무척 서럽습니다. 그만 부르라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나 싶다가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압니다. 예전에는 노래방도 같이 가고 인생 네 컷도 찍고 빙수도 두 개씩 털고 에버랜드에서 이틀 연속 썰매도 타면서 추억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권순영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 없어지고 강의실에서 봐도 눈인사만 할 뿐 장난을 치거나 옆으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 권순영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뭐든 같이 하고 싶은데 권순영은 이제 그럴 마음이 없나 봅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요?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있으면 내가 널 데리러 갔겠니.” 


“그럼 있기 전까지 앞으로도 올 거지?” 


“어.”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익숙하게 누릅니다. 네, 꽐라를 데려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순영은 침대 이불보 속에 손을 넣어 전기장판 스위치를 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도 뱉습니다. 희끄무레한 순영의 잔상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빨간 네온사인 조명이 순영을 덮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술기운에 눈만 끔뻑이는 나를 위에서 바라봅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 


“……아무것도 기억 못 하면서.” 

 

 


 


 


 


 


 


 


 


 


 


 

이상하게 필름이 제대로 돌아갑니다. 권순영의 표정은 더더욱 선명해집니다. 내가 미워 죽겠다는 얼굴입니다. 나는 큰 숨을 후우 뱉습니다. 13도짜리 소주 두 병이 목구멍 밖으로 인사할 것 같지만 지금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맨정신에 절대 물어보지 못할 나를 압니다. 그러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그때 있잖아.” 


“…….” 


“내가 왜 너를 안고 있었어?” 





권순영의 날카로운 눈매가 둥글어집니다. 놀란 얼굴입니다. 다행히도 전원우는 내가 물어본 사실에 대해 권순영에게 입을 털지 않았나 봅니다. 만나면 포카리라도 사줘야겠습니다. 내 침대에 앉은 권순영은 내려다보기만 할 뿐 말이 없습니다. 목젖만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옵니다. 호랑이 발톱이라고 본인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녀도 내 눈에는 눈치 보며 휴지만 줫뜯는 고양이 같습니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좋아한다고, 안아달라고 했잖아 네가.” 


…… 


“야, 우리 그날 키스도 했는데 그걸 기억 못 하면 어떡하냐.” 





권순영은 돌직구입니다. 진탕 취한 술기운이 말미암아 확 깹니다. 고백도 모자라서 키스를 했다고요? 누가요? 우리가요? 예상 밖의 일이라 몸은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눈만 굴리는 내 얼굴에 권순영의 차가운 손바닥이 닿습니다. 





“언제 기억할까 끝까지 보고 있다가는 내가 죽겠다, 내가 죽겠어.” 


…… 


“내일 술 깨면 연락해. 괜찮으니까.” 





권순영이 일어납니다.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권순영의 손목을 잡습니다. 교양 시험은 앞으로 8시간 정도 남았지만 역시 교양 과목이니 불안은 덜어도 됩니다. 





“……갈 거야?” 





과도한 음주는 병을 낳지만 적당한 음주는 고백을 부르고 사랑을 부르고 때에 따라 용기도 부릅니다. 권순영의 인싸력이 어떻든, 주변에 친구가 얼마나 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요. 우린 이미 밤을 보냈고 서로를 안아버렸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된 거 침대에 있는 곰돌이 인형이라도 영어유치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지 말까.”


……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아니 팔배게 해달라면서 왜 자꾸 뒤로 빼.” 


“……너무 가까우니까.” 


“그땐 안겨서 잘만 잤으면서.” 


“그날은 너무 취했었다고.” 


“지금은 안 취했어?” 


“몰라, 다 깼어.” 


“그럼 오늘 뭘 하든 기억하겠네. 





천천히 입술을 맞댄 권순영의 턱이 벌어집니다. 내 뺨을 감싸며 고개를 비틉니다. 혀가 질척댈수록 상체가 들립니다. 어느새 내 허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인의 연애는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야릿한 숨을 뱉으며 내 티셔츠를 들어 올리려는 손을 막습니다. 대신 권순영의 바지 버클 위를 톡톡 두드립니다. 다급한 권순영은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주워 입습니다. 정확히 8분 뒤 권순영이 놓고 간 핸드폰에 문자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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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1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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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까.”


……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아니 팔배게 해달라면서 왜 자꾸 뒤로 빼.” 


“……너무 가까우니까.” 


“그땐 안겨서 잘만 잤으면서.” 


“그날은 너무 취했었다고.” 


“지금은 안 취했어?” 


“몰라, 다 깼어.” 


“그럼 오늘 뭘 하든 기억하겠네. 





천천히 입술을 맞댄 권순영의 턱이 벌어집니다. 내 뺨을 감싸며 고개를 비틉니다. 혀가 질척댈수록 상체가 들립니다. 어느새 내 허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인의 연애는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야릿한 숨을 뱉으며 내 티셔츠를 들어 올리려는 손을 막습니다. 대신 권순영의 바지 버클 위를 톡톡 두드립니다. 다급한 권순영은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주워 입습니다. 정확히 8분 뒤 권순영이 놓고 간 핸드폰에 문자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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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까.”


……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아니 팔배게 해달라면서 왜 자꾸 뒤로 빼.” 


“……너무 가까우니까.” 


“그땐 안겨서 잘만 잤으면서.” 


“그날은 너무 취했었다고.” 


“지금은 안 취했어?” 


“몰라, 다 깼어.” 


“그럼 오늘 뭘 하든 기억하겠네. 





천천히 입술을 맞댄 권순영의 턱이 벌어집니다. 내 뺨을 감싸며 고개를 비틉니다. 혀가 질척댈수록 상체가 들립니다. 어느새 내 허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인의 연애는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야릿한 숨을 뱉으며 내 티셔츠를 들어 올리려는 손을 막습니다. 대신 권순영의 바지 버클 위를 톡톡 두드립니다. 다급한 권순영은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주워 입습니다. 정확히 8분 뒤 권순영이 놓고 간 핸드폰에 문자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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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기까지 입니다. 


 


 


 


 


 


 


 


 


 


 


 


 


 


 


 


 


 


 


 


 


 

Epilogue. 


 


 


 


 


 


 

이렇게 1분만. 


…… 


딱 1분만 있을게. 





순영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습니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품속에 안겨 있으니까요. 피곤하지만 여주를 보러 오늘 술자리에 참석한 자신을 칭찬하다 못해 캘리포니아 비행기까지 태워 보내주고 싶습니다. 순영은 오늘을 인생 중에 제일 잘한 짓 베스트에 꼽을 예정입니다.





야, 취했어?





여주가 흐물거립니다. 해파리 같습니다. 순영은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여주의 허리를 당겨 받칩니다. 온전히 자신에게 의지한 여주를 눈에 담습니다. 이때쯤 순영은 후회를 합니다. 덜 취했을 때 고백해야 차이든 말든 할 텐데 말이죠. 이젠 좋아한다고 말해도 이미 해파리가 된 여주는 알아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30분 전에 이거 마시면 사귀는 거라고 은근 떠봤을 때도 시큰둥했으니 역시 오늘은 날이 아니려나요? 





권순영. 순영아.


……어. 


내가 너…… 진짜루 좋아한다. 





순영은 뒷목에 소름이 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명론을 믿고 있었던 자신이 드디어 멍청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지요. 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순영은 녹아서 사라질 것 같은 여주를 꼬옥 끌어안습니다. 이내 고개만 든 여주가 까치발을 듭니다. 키스를 합니다. 여주는 알까요. 당신이 순영의 첫 키스라는 걸요. 





……자? 





진탕 취하면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키스하면서 자는 게 가능해집니다. 입술을 뗀 순영이 여주의 볼을 건듭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말랑함은 계속해서 느끼고 싶지만 여주가 찬바람에 입이라도 돌아갈까 순영은 정성스레 패딩에 여주를 감싼 채 집으로 들어갑니다. 


제 침대는 동기 놈들 차지가 됐으니 남양주에서 건너온 제일 비싸고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거실 바닥에 깝니다. 그 위에 여주를 눕힙니다. 순영은 조금 거리를 둔 채 옆에 눕습니다. 


꿈일까요? 이렇게 여주를 오래도록 쳐다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무리 순영이라 할지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티 나지 않게 훔쳐보는 건 꽤 어렵습니다. 한때는 시선이 자꾸 여주한테만 꽂혀서 혹시라도 들킬까 진땀을 뺀 적도 있습니다. 네이버에 〈시선 처리 잘하는 방법>을 검색해본 건 순영이 무덤까지 갖고 갈 중대한 비밀입니다. 




……순영아. 


어…… 물 줄까. 




순영은 홀린 듯 여주에게 다가갑니다. 여주가 방황하는 순영의 팔을 찾아 팔베개를 벱니다. 자연스레 허리도 껴안습니다. 이제 순영의 몸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동해에물과아 배액두산이 마르고 닳도로옥…… 하느님이 보우, 하사, 우리나라, 만……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박…… 자랑스러운, 마석, 고의 아침이 밝았도다아…….” 


 


 


 


 


 

별 노래를 다 부릅니다. 순영은 그날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합니다. 여주가 그리워하는 집 냄새가 자신에게 나는 줄은 모를지만 순영은 눈치가 빠릅니다. 지금 여주한테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팔이 저리든 말든 순영은 여주만 봅니다. 푹 빠졌습니다. 


 


 


 


 


 


 


 


 


 


 


 

[세븐틴/순영] 친구에서 애인이요? (희망편) | 인스티즈 


 

“뭘 해도 안 되네.”


…… 


“김여주 너 씨…… 나 책임져야 돼. 


 


 


 


 


 


 


 


 


 


 

첫사랑과 첫키스는 운명론자 순영에겐 완벽한 바이블이니까요. 


 


 


 


 


 


 


 


 


 


 

 


 


 


 


 


 


 


 


 

더보기 

저도 기억의 권순영 좋아합니다.... 제 취향이에요........ 암호닉은 자유롭게 쓰셔도 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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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 작가님……………………… 또 이렇게 엄청난 작품을…………술 다 깬 여주… 와 순영…을 보며 잠이 다 깬 나… 후, 네,, 좋아요.
2년 전
독자2
사랑한다구요!!!!!!!!!!!!!!!!!!!!!!!!!!!!!!!!!!!!!!!!!!!!!!!!!!!!!!!!!!!!!!!!!!!!!!!!!!!!!!!!!!!!!!!!!!!
2년 전
독자3
이번편 완전 나노단위로 귀엽네요ㅋㅋㅋㅋㅋㅋ
당연히 알아버리지/곧게 걸어야인생도곧아질걸
완전 취향저격 깜쥑이 술주정 미쳣다^^
둘이 양치하는 모습도 상상하니까 넘 귀여워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아악아앙ㅇ앙아아아아ㅏ아 배게 팍팍 치는중

2년 전
독자5
아악 작가님 순영이 너무 귀엽고…….. 좋아 죽아요……… 그런데 희망 편이라면 혹싀 절망편도 있는 건가요,,,,,,!!
2년 전
독자6
쪼꼬렛입니다! 더보기 보고 앗 나구나 싶었어욬ㅋㅋㅋㅋㅋ 심쿵 💘 이번 글도 진짜 대박이네요…. 간질간질하고 귀여워요 ㅜㅜㅜ
2년 전
비회원.
,
2년 전
독자7
와진짜 너무좋아요,,,🥰
2년 전
독자8
작가님 완전 천재만재 .. 사랑해요 ..
2년 전
비회원79.72
와...너무 설렜어요...
저도 순영이가 좋아져버렸어요..😍

2년 전
독자9
몽글몽글 귀여워
1년 전
독자10
하 ㅜ 넘좋아요 ㅜ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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