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完]
우리의 대담한 이혼 발표는 한동안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었지. 누군간 재벌들의 문란한 파장으로, 누군간 안타까운 로맨스로 받아들이기도 했어.
그리고 상속 순위에서 밀려나게 된 것은 물론이고, 혈육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된 것또한 당연했지. 그것쯤은 예견된 미래였으니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 가족들이라면 질색을 하던 당신에겐 좋은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있잖아 준면씨, 솔직히 말해 나 때로는 당신이 그리워서 울기도 했고, 당신이 어떻게 지낼까 인터넷 기사를 남몰래 찾아 보기도 했어.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로부터 당신의 소식을 들었어. 당신은 타지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어.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당신이 그리워서 매일 밤 몰래 훌쩍이는 일도, 당신의 소식을 뒤적이는 일도 그만 뒀어.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나는 눈과 귀가 먼 사람처럼 지냈어. 정보로부터의 모든 원천을 폐쇄하고, 작고 조용한 마을에 카페를 차리고…, 아주 고요하게 살아왔어. 가족들은 더이상 내 얼굴을 보지 않길 바랬고,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
그리고 가끔 그녀의 기일이 되면 그녀의 생각을 하곤 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을 떠올리는 일이라곤 하나도 할 수 없었으니까. 돌파구라도 찾고싶었던건지도 몰라.
그렇지만 당신을 아직까지 사랑하고 있단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당신은 그저 내가 6년이라는 시간으로 잊기엔 너무 무거운 존재일 뿐이야. 내 가슴 한 켠에 콱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해.
하긴, 당신은 19살 때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내 가슴속에 자리잡았는데 고작 5~6년 따위로 청산이 될 리가.
그래서, 난.
내 곁에 있는 찬열이의 얼굴을 보면 자신이 없어져.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걸까,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일까.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야.
항상 날 생각하고 있대.
내가 당신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와는 어떻게 재회하게 됐냐고?
그는 당신과의 끝에 만신창이가 된 날 감싸주고 보듬어줬어. 나를 다시 보게 된 날 내게 화를 냈어. 왜 걱정되게 연락도 없냐고, 손목의 상처는 또 뭐냐고. 왜 대체 당신과의 이혼 소식을 인터넷으로야 알게 한 거냐고.
그는 나와 함께 작고 아담한 카페를 가꾸고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 매일 고민해. 찬열이 역시 부족함 하나 없이 자라 그런지 욕심같은 게 전혀 없어. 우리가 신경 쓰는 건 '무엇을 더 많이 팔리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손님들이 행복해 할까' 야. 내가 항상 고집하고 싶었지만 이윤은 내지 못 해 접어야 했던 사업의 모토야. 그래서 난 지금 굉장히 내 삶에 만족하고 있고, 행복해.
그리고…, 그리고 있잖아….
"엄마!"
내게 아주 작고 예쁜 요정이 있어.
아기는 이제 막 다섯 살 무렵에 접어들기 시작했어. 이젠 제법 문장을 길게 구사할 줄도 알고, 어느덧 숟갈도 잘 쥘 수 있게 되었어.
어리지만 마음이 예쁘고 착한 아이야. 먹던 사탕을 뺏어간 친구가 넘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 일으켜 주고, 보이는 사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야.
나는 이 아이를 찬열이와 함께 기르고 있어.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엄마소리는 그렇게 잘 하는데, 아빠 소리를 잘 안해. 신기하지. 처음엔 걱정되는 마음에 그 어린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아봤지만, 아무 문제가 없댔어. 되려 의사선생님이 나보고 그러더라. 조급해하지 말라고. 아빠의 존재가 낯설거나, 아빠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은 가끔 그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이상해. 찬열이는 우리 아기를 모자람 없이 잘 챙겨주는데 말이야. 그래서 우리 애는 찬열이보고 엄마라고 그래.
근데 준면씨, 그거 알아?
우리 딸아이는 점점 자라면서 당신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어.
동그랗고 큰 눈망울…, 눈처럼 하얀 피부와 발그레한 볼. 오똑한 코와 작게 꼭 다문 입술….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나.
**
오랜만에 어린이집을 빨리 마친 터라 2시도 안 된 시간에 찬열이의 품에 안겨 쫄래쫄래 웃으며 카페로 오는 아이를 안아들었다.
볼에 입을 맞추고 이마를 부비적거리니 신난다고 까르륵 넘어가는 소리로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현아야, 옷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린이집 갈 때는 분명히 공주님같았는데."
"넘어져써!!"
짧은 혀와 고사리같은 하얀 손으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현아를 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따금씩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 내게 화가 났던 찬열이의 표정이 막 풀어지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을진 몰라도 그와 나는 아직까지 친구관계다. 점점 자라가는 현아의 모습을 보며 먼저 밀어냈던 쪽은 내 쪽이었고, 아이는 물론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찬열이를 완전히 아빠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엔, 나 또한 찬열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했던 선택이었다. 물론 찬열은 내게 수십차례 구혼을 했다. 하지만 초롱초롱한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는 현아의 눈을 볼 때면 자신이 없어졌다. 우린 세상에서 제일 우스꽝스러운 사이였다. 본질은 친구지만, 잠정적 연인관계라고 해둘까나.
선을 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서로에게 연인 그 이상으로 의지하고 기대는, 그런 사이. 또, 현아에게 찬열이는 아빠 혹은 삼촌이기도 했고.
찬열이라고 왜 안 불안했을까, 결국 그 불안함이 오늘에서야 터지고야 말았다. 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 찌꺼기같은 감정들을 추스리며, 잔해들을 정리할 거냐고 찬열이가 내게 툴툴거렸고, 난 보채지 말라며 화를 냈다.
결국 오픈 시간부터 지금까지 말 한 마디 없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더니, 현아가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며 슬슬 입꼬리가 올라간다.
현아가 빨리 하원을 하기도 했고, 오늘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찬열이 때문에 카페 문을 빨리 닫는 수밖에 없었다.
제멋대로 차키를 챙겨 차로 향하는 찬열이 때문에 서둘러 가방을 챙기며 현아의 손을 꼭 붙잡고 카페 문을 잠구는데….
"안녕."
"…"
"오랜만이야."
그가 서있었다. 그가….
"아빠?"
나는 손에 힘이 빠지는 것도 모른 채 가방을 떨구고야 말았다. 현아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준면을 주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빠? 그렇게 어려웠던 한 마디…, 그런 말을….
"아빠!"
준면의 동공도 따라 커졌다. 이제 막 키가 제 무릎을 넘기 시작한 딸아이를 눈으로 훑던 준면은 이내 아기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얼굴을 오목조목 뜯어보기 시작한다.
준면이 와락 현아를 품에 안았다. 준면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품에 안은 현아의 머리를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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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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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신청을 했는데 없었다! 하시는 분들께서는 꼭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끝까지 저와 함께해주셔서 정말정말로 감사해요. 어떻게 보면 이 짧은 글을 1년도 훨씬 넘게 질질 끌며 쓴 것도 대단하네요..ㅎㅎ(셆디스)
하지만 그만큼 지치지 않고 여러분께서 절 응원해주시고 따라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물론 암호닉 칸에 쓰지 않은 다수의 분들도요.
애정도 미련도 애착도 정도 너무너무 많이 간 글이고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았던 글이기에 섭섭함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ㅠㅠ
마라톤을 이제 막 완주한 사람처럼 벅참과 함께 막 눈물이 밀려와요ㅠㅠ...
무엇보다 저를 코끝 찡하게 만드는 건 여러분을 향한 감사함과 영원히 완결이 날 것 같지 않았던 사업파트너 글을 정리하며 여러분과의 연결고리 하나가 끊기게 된다는 점이에요.
여러분께서 당신의 하루를 제게 늘어 놓으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했을 때, 저보다 더 글에 대한 애착이 느껴질 때, 저는 항상 그 누구보다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댓글 수가 적어짐에 따라 답댓을 다는 것이 편리해지고, 익숙해졌지만, 그렇지 못 했을 때, 여러분께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너무나 많아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하지만 여러분, 제가 다른 글로 찾아 왔을때, 분명히 여러분께서 반겨 주실 거라 믿어요. 물론 그만큼 여러분을 실망시키는 글이 되면 안 되겠지만요.
후기나 해석, Q&A, BGM 목록 같은건 여러분께서 요청해주시면 올리도록 하겠구요, 공지는 음... 필요에 따라 조만간 올릴게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여러분, 저는 더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