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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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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그룹 아이디어 시상식에서는 총 5명이 수상했고, 정국은 역대 최초로 만점에 가까운 심사 평가를 기록하며 대상을 거머쥐었다. 동시에 한 명이서 뽑아낼 수 없는 수준의 퀄리티라는 호평을 들으며 단연 상위권에 랭크된 한국대 미대의 위상을 한껏 더 높이는 자랑스러운 기회가 됐다. 

 정국은 주변 사람들과 인사하며 순탄하게 지나가는 공모전 시상식에 안도했다. 수많은 기자들과 둥그런 렌즈를 거쳐, 임원진들이 축하 개회사를 이어 가는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두었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시간을 확인하고서는 앞에 섰다. 이 다음 순서에서 움직이면 돼요. 한 시간 전, 진행요원들이 차분하게 오늘 시상식 순서와 관련 사항에 대해 말해 준 것을 상기시키며 말이었다.

 왜인지 긴장이 되어 펼친 손 아래로 축축한 땀이 베어 나왔다. 애써 괜찮은 척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정에 벅차오를 뻔한 순간, 시상하는 사장 뒤로 때깔 좋은 정장을 차려입은 두 눈이 마주쳤다. 단 한 번도 실물 영접한 적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수십 번 매스컴에서 봤을 법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홀린 듯 쳐다보다 아차 싶어 눈을 피했을 때, 그제서야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삐죽 흘러 내렸다. 미래그룹 부회장은 티비에서와 다를 것 없이 냉랭한 눈빛이었다. 그 눈길이 여느 대기업 일가들과 비슷한 듯 아닌 듯 겹쳐 보였다. 잘 사는 사람들은 똑같구나. 재차 납득하고 말았다.

 시상식에서 내려오자마자 대기실로 돌아왔더니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시상식 어때? 전정구기 다 컸네 컸어. 뉴스 기사 벌써부터 올라오고 장난 아니다. 내 친구 셀럽 된 듯?]  

  유명인사는 개뿔. 포스에 눌려서 맥도 못 추리겠드만. 기뻤다가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시상식이라고 나름 거금을 들여서 와이셔츠 사 입었는데, 유명 디자이너가 제작한 후광 번쩍하는 정장을 보자 그나마 있던 어깨도 움츠러들 판이었다. 드는 생각을 애써 덮고 정국이 핸드폰을 껐다. 곧이어 초청만찬 자리로 옮긴다는 관계자의 안내를 들으며 구겨진 셔츠 매무새를 다듬었다.







 

  

  

  

  

  


 
  미리 준비해 준 차에 올라타 미래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호텔로 넘어갔고, 직원이 내민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를 어찌저찌 해치웠다. 이런 호화는 처음이라 복에 겨우다가도 후식으로 나온 디저트까지 섭취하며 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시간이 흘러갔다.
 
 평소와 너무 다르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저녁이었다. 엷은 오렌지빛 조명은 화려한 서울의 야경을 더 돋우었다. 수상자들과 어느 학교 출신이며, 지금 전공은 어떤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었다. 행복하다. 정국은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웃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너무나 완벽한 하루였다. 어떠한 문제도 없었고, 오히려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그렇게 쭉 고소한 버터 향이 진동하는 빵을 뜯어 먹던 정국은 무심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정국은 보고 말았다. 한 눈에 봐도 억 소리 나는 명품을 온 몸에 휘감고 여자친구 어깨에 손을 걸친,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마치 못 볼 꼴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오로지 둘의 시선만이 조용하게 오가는 가운데, 정국은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꼬박 육 년만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저 남자가 어머니가 죽기 전 남겨준 그나마의 사망 보험금까지 모두 들고 잠적한, 그것도 모자라 19살 앞으로 몇천 만원의 대출 부채까지 떠넘긴 형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둔하진 않았다.

 위장이 뒤틀리고,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정국은 느리게 심호흡을 이어가다가, 형 정준을 향해 눈짓을 했다. 같은 피 섞인 형제 사이라고 이딴 사인도 단박에 알아차리는 저 모양새에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

 호텔 앞으로 나와 혈색이 맑은 얼굴과 딱 죽기 직전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할 말은 사무치게도 많았지만,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던 가운데 적막을 깬 건 정국의 목소리였다.

   “얼굴 보니 어디서 잘 굴러 먹고, 잘 지내나 봐? 내 등 쳐 먹더니, 이젠 여자 하나 물어서 연명하고 있나 보네.”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래도 꼴에 형이라고 좋게 넘어가고 싶었지만 머리통에선 차마 좋은 단어라곤 눈꼽만치도 생각이 안 났다.

   “엄마 산소는 좀 갔다 오냐? 그래도 엄마 돈으로 먹고 살았으면 자식으로서 그 정도 도리는 해야 되잖아.”

  이딴 식으로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났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마다 정국의 기분은 바닥을 치며 떨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믿을 건 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썩은 동앗줄을 쥐고 버텼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 둘러본 집엔 돈 될 만한 것들은 싸그리 사라져 있었다. 집 나간 형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작은 쪽방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혹시나 싶어 일하는 곳까지 찾아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 순간에 제 집이 홀연히 남 집이 되어 쫓겨 나고, 그것도 모자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거대한 액수의 체납 독촉장이 날라온 그 날까지도 되묻고 되물어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 형?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걸 잃은 그 몇 년 남짓 동안 인생은 도무지 제대로 흘러가지 않은 탓이었다. 애써 참아온 원망이 왈칵 목 끝까지 차오르자 슬픔이 쏟아졌다. 마주치면 반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정국은 이젠 그럴 만한 힘도 남지 않았다.

   “그래, 형도 힘들었겠지. 아빠 집 나가고, 엄마 병으로 죽을 동 살동 숨만 겨우 붙이고 있었을 때 가장 노릇 했어야 하니까. 그럴 때마다 형한테 미안했어. 또, 형도 행복해질 자격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야, 전 정국.”
   “근데 정말 혼자 행복해지려고 매몰차게 떠날 줄은 몰랐어. 나 진짜 하나 딱 물어 보고 싶은 거 있는데. 정말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 갔어? 내가 형한테 짐 되기 싫어서, 버려질까 봐, 학교 끝나자마자 밤새 한숨도 안 자고 알바 했던 거 알고 있지. 너 다 알고 있었잖아. 아니야?”

  불편한 심기를 알리듯 정준이 입을 다물었다. 핏발이 선 채로 노려보며 육 년 동안의 아픔을 모조리 퍼붓는 정국에게 욕할 핑계를 찾았다는 듯, 욕 한 번, 침 한 번 찍 뱉었다. 어릴 때 으레 형제들이 종종 하는 싸움처럼 주먹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몸싸움보다도 고요하게 소름 끼쳤다.

   “같이 산 정이란 게 있잖아. 미워도 피 섞인 형제인데, 그래도 동생인데 그 동생 새끼가 살아는 있는지, 어디서 얼어 뒤지진 않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아, 씨발. 그래서 뭘 어쩌잔 건데. 뭐 가진 재산이라도 좀 떼어줘? 그렇게 억울하면 사람 붙여서 찾지, 왜 이제 와서 지랄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남은 거라곤 형뿐이었는데 모질 게 굴었어야만 했냐고. 그렇게 더 따져 붙고 싶었지만 정국은 결국 꾹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준은 스스로 분에 못 이겨 성질을 내며 한숨만 팍 쉴 뿐이었다. 갱생 불가였다. 이미 까마득한 육 년 전의 일이었다. 물이 엎질러진 걸 넘어, 이미 매말라 비틀어지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더 이상 따질 가치도 없었다.

   “… 됐다. 내가 꺼져 줄게. 서로의 인생에서 없었던 셈 치자.”

  마치 참기 힘든 기침을 참듯, 간질거리는 입을 틀어 막으며 정국이 픽 웃었다. 그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끈이 모조리 끊어지는 현실을 느낄 뿐이었다. 

 정준이 무어라 더 말을 꺼내려던 찰나, 마침내 정국은 어깨를 밀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호텔과 이어지는 문을 열고 발을 디딜 쯤 저 멀리서 욕설을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감정이었다. 여자를 태우고 거칠게 차를 몰아 멀어지는 소리를 너머로 들으면서 정국은 서글픔만 상처가 잔뜩 뭉쳐 일그러진 얼굴을 했다. 아까는 쾌재를 불렀는데 지금은 널을 뛰며 혼잡해졌다. 힘듦을 티내지 않으려고 참아 왔다. 게다가 오늘은 대상까지 받은 날이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 속에 당장은 슬플 생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다 망쳐버렸다.

 그래도 오늘 꽤 행복했는데. 그 마저의 짧은 행복도 허락되지 않았다. 차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정국은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고 엉엉 울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뭔가 잔뜩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투덜대는 누나 석연을 보며 석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경영도 경영인데 요즘 석연의 성질을 돋구는 것은 바로 같은 부류들이었다. 오늘만 해도 교류하잔 취지로 정계 인사들을 초청한 포럼에서 의견을 주고 받을 때 여자란 이유로 무시를 해댔다.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이 부딪히고, 석연이 가뿐하게 밟아주자 자연스레 기싸움으로까지 번져 다들 트집 잡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 우애 좋은 남매는 아니지만, 석진은 석연을 능력 자체로는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석연은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위권에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사부터 해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콩가루 같은 집안까지. 짧은 순간 넋이 나가버려 석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집무실로 향했다. 얼떨결에 잠시 놀다 가겠다며 따라온 석연이 나름 감정을 추스리며 주스를 들이켰다. 

   “석진이 너, 계속 결혼 걱정되지?”

  석진은 아는 척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런데 석연이 다 아는 듯 눈까지 찡긋대고 나서니 괜찮은 척도 힘들었다. 포커페이스에 아무리 능한 석진일지라도 결혼 얘기만 나오면 힘을 못 썼다. 큰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손은 옅은 떨림이나마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글… 쎄.”

  석진이 애써 덤덤한 기색을 비추려 안간힘을 쓰자 석연이 야유를 보냈다. 

   “그냥 결혼해.”
   “그냥? 결혼이 쉬워? 결혼이 무슨 옆집 개이름도 아닌데 남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같다.”

  재차 이어지는 폭탄 발언에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석연을 바라보았다. 석연에겐 동생을 위한 동정이란 게 있긴 하냐는 눈빛이었다. 아침부터 꼬이네. 석진이 속으로 곱씹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랬다. 오히려 너 같은 타입이 결혼하면 막상 잘 살지도. 석연이 살짝 웃으며 코를 찡긋했지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본디 결혼 파토 난 후로 그냥 독신으로 혼자 명예고 재산이고 독식하다 늙어 죽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었다. 

   “네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래야 지금 당장 그 자리도, 네 미래도 평탄해질 거야.”

  석연과 석진 사이에 어색한 적막감이 돌았다. 금방이라도 치고 받을 듯이 큰 소리로 외치던 석진이 이번엔 반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맞는 말이긴 했다. 사실 미련이 없다면 결혼 따위 개나 줘버리고 물러 나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안타깝게도 석진은 손에 쥔 것은 절대 빼앗기지 않는 불도저였다.

   “네 하나뿐인 누나로서 매우 유감이야.”

  석진의 낯이 금세 울상으로 바뀌었다. 울상의 정도가 아니라 똥이라도 한 수저 퍼 먹은 것처럼. 입맛이 뚝 떨어져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석진이 머리를 부여 잡고 소파에 발라당 누웠다. 잘 생각해 봐 동생. 누나는 너 응원한다.

 남몰래 응원하지 말고 김 회장님 앞에서 편 좀 들어주시지? 걱정하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속이 뒤집히게 비위를 살살 건드렸다. 아까부터 속 긁는 소리만 해대니 석진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렇게 잠깐 떠들기도 잠시, 석연은 비지니스 미팅이 있다며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어둔 자켓을 주워 입었다. 뒤에서 아버지 뵙고 가려는데 동행하지 않겠냐며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싫다는 대답을 최대한 무성의 하게 던졌다. 허공에 붕 뜬 손이 대충 휘저어졌다.

 석진 또한 사장단 회의 관련해서 석필에게 보고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굳이 이 시기에 어색한 부자 상봉을 맞닥뜨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냥, 가능하다면 힘껏 도망칠 준비가 된 것처럼 기분이 그랬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들으라는 듯 격하게 궁시렁거리다가 석진은 결국 의자에 주저 앉았다. 저렇게 씹어 봤자 어차피 석연은 잘 나가는 외국계 CEO와 연애 결혼에 성공해 5년 째 트러블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데 변함 없었고, 공감을 사기도 어려웠다.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석진은 천천히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들었다. 혼란에 휩싸인 이 순간에도 커피는 꿀떡꿀떡 잘도 넘어가는 게 한심했지만, 몸은 이미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컵의 어귀에 굳어 있는 자국을 보니 뒤죽박죽되어 버린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콧속에 스며들자 그 어질함은 더해졌다. 

 이젠 정말 벼랑 끝이었다. 생각하나 마나 탈출구는 눈 씻고 봐도 없었다. 이유는 즉슨, 이랬다.

 첫째. 결혼을 무슨 게임 퀘스트 마냥 도장깨기 해대는 식구들에게 제대로 된 사고 방식을 요구하는 것조차가 무리일 뿐이었다. 정계 원로들의 시선도 따가워졌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버르장 머리 없이 부모한테 반기나 들고 있다며 못 미더워 했다. 천하의 유치한 반격이라면서 말이었다.

 둘째. 거기다 지금까지 유학, 석박사, 해외 여행까지. 갖가지 이유로 사회 곳곳을 적시며 퍼진 수십 억이 훌쩍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교양 발린 화사한 얼굴도, 부모 잘 둔 덕에 누린 호사였다. 수틀려도 뭐라 비난할 사람 없고, 위선이 솟는 재벌가에 적응된 탓이었다. 더 뻐팅기는 건 지금 석진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만약 이대로 완강하게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미래엔 남은 영혼까지 탈탈 털릴 암울함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최후의 통첩이 가능하다면, 재벌가는 피하고자 했다. 정말 딱 질색이었다. 혼인 동맹은 결국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몰락하는, 말 그대로 운명 공동체가 되어야 했다. 리스크도 크지만 한 편으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이만큼 좋은 촉매가 없어 다들 그리 목숨 거는 것이었다. 다만 모든 게 물질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게 너무 위험했다. 잘못 하다가는 두뇌회전 잘 되는 상대방에게 페이스가 말려 혼자 허우적거릴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모든 빌미를 제거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석진의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석진은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럼 아예 정반대로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면 어떨까? 잘 보이려고 힘쓸 필요도 없고, 조금이라도 기업 간 사이가 악화돼서 새우 등 터질 일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당황스럽게 했던 온갖 경우의 수들이 단순하게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 잠깐.
 … 그리고 우연찮게 정국이 떠올랐다.

 정국이라면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 대상 수상자였다.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기발한데다가, 심사위원으로 선 최고 권위자도 대학생의 경지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거라며 인정한 가히 다재다능한 인재였다. 천재적인 능력이라며 작품을 봤던 디자인팀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거리길래 몇 번 흘리듯 들었던 게 다였다.

 그 때 생김새, 학력, 다 구구절절 읊어줬던 것 같은데. 거기다 눈도 마주쳤었는데 별 관심이 없다보니 이제 와 기억해 보려 해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지금 석진은 순전히 제 멋대로 경쟁사회 속 대학생의 자화상 정도로 정국의 이미지를 그려 내었다.

 미친 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미래그룹이라는 진흙탕에서 뒹군 짬밥이 몇 십년인데 그렇게 어려운 도전도 아니었다. 자존심까지 굽혀 가며 이번에는 먼저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떻게 고안해 낸 아이디어인데. 석진의 머릿 속엔 그저 결혼이라는 귀찮은 체크 리스트를 하나 지워버리고 싶은 욕구밖에 없었다.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슥슥 문지르면서도 입꼬리에 웃음을 걸었다. 가만히 있다가 웃음을 흘리고 또 가만히 있다가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망설임 없이 수화기에 박힌 첫 번째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수화음이 가지 않아 한 음성이 들려 왔다.

   ㅡ 네, 부회장님. 말씀하십시오.

  단축키 버튼엔 5분 대기조 비서실이 올라 있었다. 정갈하면서도 딱딱하게 자리 잡은 목소리가 채근하지 않고 석진의 다음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대상 수상자 전 정국 씨 관해서 알아 오세요. 가족 관계, 학력, 사는 곳, 성장 배경, 인간 관계, 특이사항 다 포함해서.”

  도대체 무슨 의중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탓에 직원이 다시금 반문하려다 [아, 예.] 하고 짧게 말을 줄였다. 저 너머로 시간을 벌며 지시 사항을 그대로 타이핑 해 나가는 타자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최대한 자세히.”

  바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오고, 석진은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라지만 아무 것도 모를 대학생을 두고 뒷조사나 부탁하는 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 벗어나면 다시는 본가에 얼씬도 안 하는 것은 물론, 그 방향으로 잠도 안 잘 거라는 생각만 했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 뒤섞여 결말 꽉 닫힌 배드 엔딩에서 헤매고 있는 석진이었다. 혼란스러움에 제대로 차분하게 생각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였다. 집 안에서 뻗치는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이것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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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맥스입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주2회 정도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저, 맥스는 단편을 쓰지 못 하는 병에 걸려서 어쩌다 결혼 역시 장편이 될 거예요.(삐질) 

이미 마지막 화까지 대략 마무리 됐고, 틈틈이 수정과 추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언급했다시피 계약결혼 스토리가 될 거고, 성격도 집안 차이도 모두 다른 두 사람의 우여곡절 결혼 라이프를 담은, 

그리 밝지 않은 로맨스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 마지막 화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 

  

  

  

  

**문의 관련해서 메일 및 댓글로 다 받습니다. 

  

  

어쩌다 결혼. 

written by. 맥스 

  

2022.03.03~ 

지독한 클리셰를 담은 계약결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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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역시 맥스님ㅜㅜㅜ 장편 처돌이는 장편이라는 거에 너무 감사합니다ㅜㅜㅜㅜ 벌써 마무리꺼지 하셨다니 너무 기대되네요!
2년 전
독자2
너무 재미있어요 ㅠㅠ
2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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