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너무 갑자기 말 걸어서 당황스럽나?
매일 이 시간에 그 자리 앉으니까 얼굴 외우게 되더라고...
내일 또 올거야?"
"시간 되면 올게요!..."
"내일 또 와,
와서 나랑 좀 놀아줘."
02
"안녕하세요."
"왔네."
"시간이 비어서..."
"나 때문에 일부러 온 건 아니고?"
"그, 그냥! 여기가 분위기도 좋고 편해서 시간 나면 매일 오는 거죠!"
"근데 나 여기 매일 출근하는 거 아닌데."
"네?"
"친구랑 같이 운영하는 곳이라 내가 출근 할 때도 있고,
친구가 출근 할 때도 있어."
"알아요!"
"아, 그래?
정말 매일 오나 보네."
"...네."
"뭐 주문할래?"
03
"야, 너 맨날 저녁 7시 쯤에 와서 그 장미꽃 화분 옆에 앉는 여고생 알아?"
글쎄? 왜?
"그냥."
언제부터 왔었는데?
"한... 두 달 됐나?"
그렇게 오래 됐다고? 글쎄, 전혀 모르겠는데.
"그래?..."
04
"어서오ㅅ... 어, 왔어?"
"안녕하세요."
이 아가씬 누구야?
"저희 가게 단골손님이에요.
여기는 나랑 아는 동네 할머니셔."
"안녕하세요!"
안녕하셔요~ 예쁜 아가씨네.
"그쵸, 예쁘죠?"
05
"신기해요."
"뭐가?"
"이 하얀 장미 어떻게 한 번도 안 시들어요?"
"내가 출근하면서 매일 한 송이씩 사오거든."
"왜요?"
" 아내가 좋아해."
"아, 아저씨 유부남이었어요?..."
"응, 집에 꼬맹이 한 마리도 있는 걸?"
"...그렇구나."
06
"안녕하세요."
"안녕, 손에 그건 뭐야?"
"초코파이요. 이거 아저씨네 꼬맹이 주세요."
"이걸 왜?"
"어린이날이잖아요. 동생 주려다가 남은 것 갖고 왔어요."
"오,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아저씨 먹지 말고 꼭 꼬맹이 줘요."
"알았어, 알았어."
07
"맛 이상해?"
"맛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고구마라떼는 처음 만들어 보거든."
"아저씨 아내는 좋겠다."
"왜?"
"이렇게 맛있는 것도 해주고,
또, 아저씨는 아내한테 잘할 것 같아요."
"...그런가."
08
"나 이제 여기 그만 둬."
"풉! 컥, 크흑... 네?"
"괜찮아? 옷에 묻었다."
"왜요? 왜 그만 둬요?"
"조금 더 큰 곳에서 공부 하다가 내 가게 차리려고."
"...그렇구나."
"나 그만 두면 얼굴 보기 힘들겠네."
"그렇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가 내일 저녁 사줄까?"
"네?"
"매일 우리 가게 매출도 올려주고,
저번에 우리 꼬맹이 과자도 사다줘서 고마우니까."
"아, 그게 저, 그니까..."
"시간 없으면 굳이 나 보러 안 나와도 돼."
"아뇨! 시간 많아요! 무조건 많아요!"
"무조건 많은 건 뭐야.
번호 좀 줘. 아저씨가 내일 연락할게.
근데 아저씨 내일 퇴근하고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09
"맛있어?"
"네! 맛있어요."
"그래? 근데 시간 너무 늦은 거 아니야?"
"괜찮아요!"
당신 누구야?
"어,엄마!..."
당신 누구냐고!
"아, 어머님이세요?
따님이 저희 가게 매일 오고 그래서
제가 고마워서 밥 좀 사주느라..."
그렇다고 학생을 이 시간에 불러내요? 그것도 여자애를?
"엄마아... 그만해..."
"아, 어머님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정말 나쁜 생각으로 불러낸 건 아니고요.
저 술도 잘 못마시고,
집에 아이도 있어요."
하... 저 정말 지금 안 참았으면 얘한테 손 올라갔어요.
"죄송합니다.
절대 따님이 잘못한 일 아녜요.
제가 이번에 가게를 그만 두게 돼서
마지막으로 얼굴 좀 볼까 해서 제가 불렀어요.
죄송합니다."
일어나, 가자.
"엄마아..."
일어나.
"아저씨..."
"잘 가."
10
어서오세요.
"저... 여기 다른 아저씨 그만 뒀어요?"
네? 아, 네. 이틀 전에...
"아..."
아, 혹시.
"네?"
윤기가 저번에 말한 그 학생인가?
11
-"여보세요."
-"지금 통화돼?"
-"네."
-"저번 일 미안해서. 그때 집에 잘 들어갔어?"
-"네."
-"집에 가서 어머님한테 더 혼난 건 아니고?"
-"네네!... 그냥 그러고 집에 가서 둘 다 잠들었어요."
-"다행이네."
-"..."
-"있잖아. 혹시, 내가 아내 얘기 자세하게 한 적 있나?"
-"아니요."
-"그럼 내가 아내랑 너랑 닮았다고 말한 적 있나?"
-"아니요."
-"하긴, 죽은 사람이랑 닮았다고 그러면 기분 찜찜할테니까..."
-"...네?"
-"이 말하려고 전화한 게 아닌데."
-"..."
-"앞으론 다른 사람들이 밤에 불러내면 나가지 말고,"
-"..."
-"그동안 고마웠어. 심심했는데 매일 와서 나랑 얘기도 해주고."
-"좋아했어요, 많이."
-"풋, 알고 있어."
-"..."
-"아, 그리고 시간 되면 하얀 장미 꽃말도 찾아봐."
-"네."
"응, 무조건 한 송이야. 한 송이."
-"허, 알았어요."
-"그래, 잘 지내고."
-"아저씨도 잘 지내요."
-"응."
-"아, 아저ㅆ..."
...
나도 고마웠어요.
HIDDEN
"네, 말씀하세요."
03
그 카페에 간 지 거의 한 달이 되었을 때,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카페 주인의 통화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왜 울어어."
누구랑 통화하기에 저리 다정할까.
딱히 관심도 없던 카페 아저씨가 달라보인다.
내가 사람이 고프긴 했구나.
아무 생각없이 아저씨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눈이 마주친 이후로 난, 학원 가는 길에
카페 창 밖에서 오늘 아저씨가 출근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 진짜 그때 군대에서 혼자 삼계탕 3그릇 먹고 배탈나서 죽는 줄 알았다니깐."
06
"나 이제 여기 그만 둬."
아저씨가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와는 다른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제서야 더욱 실감이 났다.
아저씨가 나에게 정말 특별한 무언가였구나.
"아저씨가 저녁 사줄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가 나에게 특별하듯,
나도 아저씨에게 특별하고 싶었다.
07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엄마,
엄마는 아저씨를 향해 마구 화를 냈다.
그 순간 엄마를 원망하진 않았다.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