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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ger Warning. 이 게시글에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자살 등) 

 

 

 

 

세상은 어지럽고 민심이 흉흉하다.  

현왕의 지속적인 비하와 편애로 세자는 맨 정신을 놓았다.  

“나라의 지존이 될 세자는 세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은  

호족이 아닌 이상 모르는 이가 없다. 

조정에서는 한숨소리 이외의 다른 것은 들리지 않게 된 지가 오래다. 

 

 

 

 

 

 

“마마, 저하께옵서 다시 궁 안에 승니*와 기녀들을 불러들이셨다 하옵니다…”  

(*승니: 여승)  

“알겠네. 이만 나가보시게, 김상궁. ”  

 

상궁이 나가자 경빈은 머리를 짚으며 신세를 한탄하였다.  

 

‘어찌하여…’  

 

 

그때, 세자빈이 행차하셨다는 상궁의 목소리에 경빈은 서둘러 말석으로 자리를 옮겨 섰다. 곧 세자가 도착할 시간이기에 경빈은 파리하게 질린 안색으로 전전긍긍했다.  

 

 

“어머니…”  

 

옆에서는 아직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진언군이 경빈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오늘 아버지께서 이곳으로 행차하시는 것이옵니까?”  

 

“진언군. 잠시 조상궁을 따라 나가주시겠어요? ”  

 

진언군은 조상궁의 손에 천천히 효선당 밖으로 나갔다.  

 

 

 

“경빈. 내 왔네. 잘 지냈는가?”  

 

“소인 덕분에 무탈하였사옵니다. 빈궁마마께서도 그간 별래무양하셨는지요. ”  

 

“그렇네 경빈. 앉음세 “  

 

두 사람은 마주 보고서 말이 없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눈을 피하지 않았으나 이만 경빈은 마음이 급해 눈을 피해버렸다.  

 

“...”  

 

 

“이만 거두절미하고, 우선 자네에게 긴히 청할 말이 있어 왔네. ”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오갔다. 세상 만물에 쫓기고 있는 듯한 기분. 둘 사이의 감정은 서로 공유하지 않았더라도 같았다.  

 

“... 이런 말 하기 미안하네만… 저하의 기미를, 자네가 봐줄 수 있겠는가.”  

 

“마마, 그것은…!”  

 

“맞네. 기미는 본디 기미 상궁의 공무이지. 허나 전에 들었지 아니한가. 저하께서는 상궁에 칼을 휘두르셨네. 상궁은 곧 사망하였고, 그 후에는 임시방편으로 기미를 들고 있던 나에게도 손찌검을 하시었어. ”  

 

언뜻 내린 고개를 들면 보이는 얼굴의 멍자국. 그 눈빛을 알아챈 빈궁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하였다.  

“한동안 아랫것들 보기 민망하였지 뭔가. 허나 걱정하지는 말게. ”  

 

 

“..........”  

 

“별 수 없었네, 경빈. 이제 맡길 사람은 경빈뿐일세. 경빈은 저하의 총애를 받고 있지 않는가. ” 

 

 

 

 

 

“경빈 내가 왔소. 우리 경빈의 지아비가 왔소. 으하하하! ”  

 

정헌 세자는 경빈의 처소 효선당의 처마가 떠나가라 목청을 써댔다. 상궁들과 내시들은 그 소리에 감히 귀를 막지도 못하고 감내할 뿐이었다. 경빈은 평소에 하던 듯이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세자를 반겼다. 물론 당의로 가렸어도 세자는 그 안에서 떨리는 경빈의 손이 보였다.  

 

“왜 그리 떠시오, 경빈? 내 못할 짓이라도 하였소?”  

 

짐짓 느껴지는 목소리에는 가시가 있었다. 급히 경빈은 세자의 화를 진정시키려 화두를 돌렸다.  

 

“저하, 진지는 잡수셨나이까? 수라간의 상궁들이 이곳으로 저하의 상을 차려온다 하였나이다. ”  

 

“크흠. 아직 끼니를 때우지 못했소. 들어감세나”  

 

진언군은 효선당 안으로 들어가는 세자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세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아들 지민이 아닌가? 아버지가 오셨는데, 어디 겸상이라도 해보자꾸나! ”  

 

진언군은 감히 부정하지 못하고 멀뚱하니 섰다. 그런 답답한 부분은 세자의 성질을 임계치에 다다르게 했다. 결국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경빈이 애써 웃으며 진언군을 안에 들여보냈다. 

 

효선당은 세 사람이 모두 앉아있어도 방이 텅텅 비어버릴 정도로 넓었다. 주변에는 거울, 나전칠기, 조선백자, 장롱 등 온갖 도예품과 가구들이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다. 진언군은 잠시 단정하면서도 검소한 어머니의 방을 둘러보았다.  

 

“경빈. 오늘 기미를 해준다 하지 않으셨소? 상이 차려졌는데, 내가 숟가락을 먼저 드는 게 빠르겠소. ”  

 

“...! 저하, 소인이 잠시 다른 생각을 했나 보옵니다. ”  

 

경빈은 급한 마음에 쨍그랑 거리며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세자의 인상이 매우 찌푸려졌다.  

 

“저하. 음식에 이상이 없나이다. 놋그릇들도 변색이 되지 않았사오니, 하저를 하셔도 될 성 싶사옵니다. ”  

 

세자는 천천히 음식을 입에 넣었다. 먹는 데에 속도가 점점 붙기 시작했다. 경빈은 한 숨 놓으며 괜히 바닥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빈. 말린 대추가 자꾸 잇몸을 찌르오. ”  

 

놀란 표정으로 경빈이 세자를 바라보았다. 다시 손은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있었다.  

 

“저 부추전은 짜기도 하고, 김치는 설익은 것이,... 어찌하여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이오?” 

 

 

아까 장난스레 지아비라 자칭하던 인간은 이 세상에 없는 듯, 세자는 광인이 되어있었다. 눈은 튀어나올 듯 크게, 입꼬리는 찢어질 듯 길게 올리며 세자는 소리쳤다.  

 

“경빈!!!!”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잡힌 경빈은 효선당 마루 앞 모래사장에 내던져졌다. 궁인들은 세자의 발작을 보고 의금부에 급박히 뛰어가거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으로 숨었다. 모두가 으레 그랬듯 금방 멈출 줄 알았으나, 세자는 더욱 큰 보폭으로 경빈을 다시 잡고 끌고 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궁 내 우물이었다.  

 

“어머니!!!”  

 

겨우 도착한 지민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쉬며 혼신을 다해 어머니를 불러댔지만 어머니는 기절한 듯 축 늘어져 미동조차 않았다.  

 

세자는 뭣에 홀린 듯한 눈빛으로, 초점이 없는 동공으로 지민을 보더니 경빈을 발로 즈려밟기 시작했다.  

 

지민은 무서웠다. 저 이는 나의 아비가 아니다. 저 이는 나의 원수다. 저 이는 감히 이 나라의 지존이 될 수 없는 자다. 당장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 수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근육으로 다져진 세자를 이기기란…일곱 살의 나이로는 무리였다.  

 

으…. 으…. 으……  

 

단말마의 비명만 지르던 지민에게 경빈을 초주검을 만들어놓은 세자가 다가왔다.  

 

“지민아- 아비랑 좋은 곳으로 가자. ” 

 

세자는 아이를 들듯이, 한 손은 지민의 엉덩이를 받치고, 한 손은 지민의 등을 감싸며 번쩍 들어 올려 우물에 갔다. 이윽고 세자는 미련 없이 지민을 우물에 던졌다. 

 

 

 

+안녕하세요 려온 입니다...처음으로 작가로서 글을 써 보는 거라 참 신기하네요 제가 글을 써보는 일도 다 있고! 

 

사실 이렇게 추가글을 쓰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중요한 개인사정으로 〈사랑하는 눈꽃에게>의 연재가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뭔 글 달랑 한 편 써놓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이 많나 싶으실 수도 있지만ㅠㅠ늦어도 하반기에는 꼭 돌아올 것 같으니 많은 사랑 주시고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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