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02
요즘 따라 느끼는 건데.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다. 영화 장르로 따지면 현재 내 상황은 호러가 딱이다.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 주인공을 겁주고 혹은 죽이기도 하는 그런 호러 영화. 나한테 있어선 정재현, 녀석이 딱 그랬다. 귀신 같은 놈. 처음 내게 물었던 그 질문을 가볍게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자리는 창가 뒷자리, 그것도 맨 뒷자리여서 도영이 자리와 조금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몰래 훔쳐보기 편했는데.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도영이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몰래 보거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떠드는 것을 지켜보거나 할 때마다 아 이러니까 진짜 무슨 스토커 같네. 아무튼 그때마다 정재현이 귀신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도영이 안 보이는데…… 하고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정재현을 바라볼 때면 녀석은 턱을 괴고 흥미로운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대답?"
내 물음에 씩 웃더니 가느다란 제 손가락으로 고영이를 가리켰던 그 손을 입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냐고. 쟤는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말하는 내내 실실 웃는 걸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데.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말할까? 턱을 괴고 실실 웃는 녀석의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도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왜 자꾸 묻는 거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은 짜증 난 투로 물어본 내 질문에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냥이란다. 그냥. 정재현의 간단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정재현을 째려보았다. 내 시선에 오히려 당당했던 건 정재현 쪽이었다. 확 말해버릴까? 그렇게 말하는 정재현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 이 자식이? 주먹을 불끈 쥔 내 모습에 녀석은 농담이라며 웃어넘겼다. 첫 등교를 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동안 변한 게 있다면…… 낯을 가리는 나는 어느새 정재현과 티격태격 거리는 친구가 되었고 저쪽 자리를 보아하니 이민형과 김도영도 친해진 것 같다. 그런데 도영아 너와 내 사이는 어째 변한 게 없네…? 눈을 마주친 이후로 이상하게 날 피하는 것 같단 말이야……? (울컥) 도영아 나는 있잖아. 이런 내 생각이 단순히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급식시간, 아니. 종이 친 순간 소떼처럼 우르르 종이 치면 달려오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매번 자리가 턱 없이 부족하고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의 표정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무튼 자리도 없기도 했고 마침 우리 옆자리에 딱 4개의 빈자리가 있었다. 그 빈자리에 그러니까 내 옆에 이민형이 턱 하고 식판을 내려놓았다. 나는 슬쩍 옆을 보고 다시 밥을 먹으려는데 이민형 입에서 나온 김도영의 석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곧바로 식판을 버리러 가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김도영의 행동에 당황한 이민형이 김도영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이 배가 안 고파서였다. 이민형은 배가 안 고프긴 무슨, 치킨마요 나온다고 2그릇 처먹는다고 한 놈이. 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진 김도영을 질겅질겅 씹어댔다. 그때까진 설마? 였다. 설마…… 나 때문에? 근데 왜? 마땅한 이유가 없음에 나는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닌 거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그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정재현이었다. 그러니까… 음, 워낙 왕자님 같은 이미지라 매점엔 안 오게 생겼… 는데 말이야. 이미 저 많은 학생들을 비집고 사온 것인지 이미 한 손에 빵을 들고 있었다. 너는 왜 안 가냐는 정재현의 말에 갈 거라며 많은 학생들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초코에몽은 너무 다니까… 허쉬 먹어야겠다. 배고프니까 빵 하나 먹을까? 저 앞에 하나 남은 허쉬가 보여 집으려는데 옆에 있던 녀석도 허쉬를 먹으려고 생각했던 것인지 허쉬를 앞에 둔 채로 서로의 손이 닿았다.
"또 너야?"
그 손의 주인은 김도영이었다. 그나저나 또 너라니? 나를 쳐다보는 김동영의 시선은 퍽 달갑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내가 뭘 했다고…… 두 번 눈 맞춤밖에 한 게 없는데…? 울컥한 마음에 매점을 나가려는 김도영의 손을 급하게 잡았다. 잡자마자 김도영은 내 손을 탁- 하고 쳐내렸다. 손바닥의 얼얼한 느낌에 멍하니 도영의 얼굴만 쳐다봤다. 수영이가 말했던 게 이거구나. 벌레 같은 취급을 당한다던 게. 인상을 팍 찌푸린 김도영은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매점 밖으로 나가버렸다.
분명 오해를 산 것 같은데……. 근데 그게 뭔지 알아야 풀기라도 하지. 알 수 없는 원인에 속이 답답했다. 차라리 싫어하는 이유라도 알면 고치기라도 할 텐데. 이유도 모른 채 미움을 받는 건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어니언's
처음이라 아직 많이 모자라고 서툰 글인데 초록글에 떠있는 거 보고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 뻔 했읍니다. 헉.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 댓글 알림 뜰 때마다 얼마나 설레면서 들어가는지 몰라요. 보면서도 내내 웃었던 것 같아요.
제 글 보면서 설렌다고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도 댓글 볼 때마다 설렜답니다!
독자님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암호닉 신청도 감사드려요! [일등이당] [도랑] [하늘]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