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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짘경/약간의 우표] 선 연인 후 친구의 관계

W.불긍

 

 

[블락비/짘경] 선 연인 후 친구의 관계 | 인스티즈

 

 

 


1.

 

 

 

경이 삐딱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경이 반대 방향으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러니까 경은,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지호의 핸드폰 화면에 뜬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경의 눈이 멀쩡하다는 가정 하에, 이 얼굴의 주인공은 지훈이었다. 표지훈. 두어 달 전에 지호가 아는 동생이 생겼다고 경에게 한 번 얘기를 한 적도 있었고, 셋 또는 다른 누구를 포함한 여럿이서 본 적도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 지훈이. 지훈이 싹싹하고 성격도 좋지. 나이도 어려서 형들 잘 챙기고. 근데 지훈이가 왜? 왜 우지호 핸드폰에? 경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을 한 번 쓸었다. 지훈의 셀카가 떡하니 지호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차지한 상태에서, 경은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지호와 친한 지훈이 장난으로 지호의 배경화면을 바꾼 상태이다. 둘째, 서로 같이 찍은 사진을 했는데 우연히 지호의 모습이 잘린 거다. 셋째, 우지호가 표지훈이랑 사귀게 되어 사랑꾼 우지호가 배경을 바꾼 거다. 경이 입을 꾹 다물었다. 흐음. 더는 고개를 까딱이고 싶지 않았던 경은, 뒤이어 욕실에서 나온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지훈이가 너 배경 바꾼 것 같은데?
"내가 바꾼 거야."
"엉?"
"사겨, 걔랑."

 

 


일주일 정도 됐네. 지호가 뒷말을 덧붙이며 경의 손에 들린 자신의 핸드폰을 조금 거친 손길로 뺏고는 익숙하다는 듯이 엄지로 핸드폰 액정을 툭툭 두드렸다. 뭐에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표정의 경이 어엉...? 하고 얼 빠진 소리를 내다가 곧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뭐야, 둘이 썸이었어? 난 몰랐는데? 경의 말에 힐끗, 곁눈질로 살피던 지호가 젖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흔들었다. 좀 됐어. 묘하게 뚱한 말투에 경이 아아, 의미 없는 말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구나, 둘이 썸 탄 지 좀 됐구나. 왜 나는 몰랐지? 나만 몰랐던 건가? 경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려는 질문을 없애려 한숨을 푹 쉬고는 그대로 뒤로 누웠다. 지호가 익숙하게 바닥에 굴러다니던 쿠션을 발로 슥 밀어 경 쪽으로 보냈고, 경이 익숙하게 쿠션을 끌어다 머리를 기댔다.

 

 

익숙하게. 그래, 우리는 어쩌면 너무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우리가 아닌 내가.

 

 

경이 스르륵 눈을 감았고, 언뜻 감은 눈 밖으로 지호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선명했다.

 

 

우지호와 박경의 관계라고 한다면, 얘기할 수 있는 타이틀이 꽤 여럿 있었다. 일단 제일 대표적인 것은 13년지기 친구. 그 다음은 8년에 접어든 작업 파트너. 동거인(이라 부르고 지호의 집에 얹혀서 사는 경)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무엇보다 둘 사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연인. 뭐, 말이 좋아서 연인이지 경과 지호가 헤어진 지 반 년이나 지난 지금은 '옛 애인'이라는 타이틀이 더 익숙할 것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깨달은 서로의 첫사랑은 서로였고, 흔히들 얘기하는 썸남썸녀가 서로가 되었다. 다만 자각이 조금 늦었을 뿐.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는 서로 자각을 한 채로 썸을 타기 시작했다. 우지호를 찾으려면 박경에게, 박경을 찾으려면 우지호를 찾으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둘은 붙어다녔으며, 그 정도로 유명했다.

 

 

6년의 연애 끝에 둘이 헤어진 이유? 간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던 말을, 경은 헤어진 후에도 알 수 없었다. 서로는 이제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없을 뿐이지, 아직 경과 지호는 같이 살고 있었다.

 

 

안 불편하냐? 언젠가 지호와 경의 고등학교 동창인 유권이 은근슬쩍 경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경은 으음,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며 '원래 친구였잖아.'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실은 경도 속으로 알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영미가 첫사랑이라고 했지만, 실은 경의 첫사랑은 처음부터 지호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친구인 적은 없었다는 것을.

 

 


"지훈이랑 너랑 사귀는 거면 누가..."
"내가 언제 아래서 노는 거 봤냐."

 

 


못 봤지. 나랑만 놀아났잖아, 너. 경은 혀의 끝을 타고 나오려는 말에 입술을 꾹 다물고는 애써 몸을 뒤척였다. 생각보다 의외네. 지금까지 내가 본 우지호는 좀 작은 키가 취향인 줄 알았는데.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기고, 키도 작고... 그냥, 박경. 박경 그 자체가 우지호의 취향인 줄 알았는데. 경이 뒤척이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등 뒤에서는 지호의 핸드폰에서 톡 알림음이 울리고 있었다. 표지훈, 표지훈. 경이 입모양을 그렸다. 키도 크고, 전체적으로 동그랗게 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지훈이... 뭐... 귀엽긴 하지. 매번 무슨 안 좋은 말을 들어도 웃는 것도 형의 시점으로는 또 예쁘고. 좋은 동생이지.

 

 


"예뻐?"
"뭐?"
"...아니, 지훈이. 예쁘냐고."

 

 


경은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존나 미련 넘쳐. 아아. 경이 지호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비죽였다. 너 왜 그래, 박경. 헤어진 지 벌써 반 년이나 지났고 지금까지 친구, 작업 파트너로 평범하게 살았으면서 갑자기 왜 그러냐고, 왜. 경이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애매한 표정이던 지호는 곧 입술을 오물거리다 작은 웃음과 함께 어, 예뻐. 하고 대답했다. 애매하게 걸쳐진 미소가 꼭 예전 경과 연애하던 지호를 보는 것 같아서, 경은 어색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끄덕였다. 오래 가. 거짓 가득한 말과 함께.

 

 

 

2.

 

 

 

경은 어쩐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지호에 점점 신경이 쓰이던 찰나였다. 작업실에서 한참 서로의 가사를 쓰며 고치던 중이었다. 전화 한 통을 받은 지호는 갑자기 경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펜으로 선을 지익 긋고 한 번,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은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서는 다시 한 번. 결국 경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왜? 뭐가 안 풀려?"
"어? 아니, 어..."
"뭔데 그래. 나까지 집중 안 되잖아."
"여기 표지훈이 잠깐 온다는데."
"지훈이?"

 

 


응, 잠깐 새참만 준다는데. 지호가 다시 한 번 경의 눈치를 살폈다. 한참 작사를 하고 있던 자신의 노트를 한 번 확인한 경이 노트를 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인데, 뭐. 같이 쓰는 작업실인데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작업 중이잖아."
"어차피 가사도 안 써지더라. 둘이 새참 먹고 있어, 나 잠깐 산책 좀."
"...같이 먹지?"
"가사가 안 써져. 머리 좀 아픈 것 같고."

 

 


아파? 지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아프다는 말에 반응하는 걸 보니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서로의 손에 오래도록 자리를 잡았던 반지가 사라진 채로 손가락에 자국만 조금 남았다는 것 정도. 경은 걱정이 서린 눈빛에 경이 슬쩍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괜찮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작사 노트를 소파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지갑과 핸드폰, 이어폰까지 야무지게 챙긴 경이 작업실 문을 열고 나오면 이미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건지, 아님 방금 막 도착한 건지 손에 봉지 가득 쌓인 간식들을 들고 선 지훈이 눈에 보였다. 형, 어디 가세요? 묻는 목소리가 낮았지만 사랑스러움이 듬뿍 담겼다. 경은 어어? 하고 되묻다가 되도록 활짝 웃으며 산책을 간다며 얘기하고는 지훈을 토닥인 후 건물을 나섰다.

 

 


"아, 춥다."

 

 


경은 갈 곳이 없었다. 사실 그냥 눈치가 보여서 무작정 나온 거지, 딱히 정말로 산책을 할 생각도 없었다. 어째 다시 쌀쌀해진 것 같은 날씨에 경이 후, 한숨을 뱉으며 입김을 만들었다. 담배 연기처럼 모양을 만들고 사라지는 입김을 빤히 바라보던 경이 이어폰을 타고 외부의 소음을 막아 흐르는 노래에 고개를 까딱였다. 지호와 경이 20살, 성인이 됐을 때 처음 만든 노래였다. 참 우스운 사랑 노래였는데, 경의 머리에서 똑똑히 기억이 나는 노래였다. 지호가 대뜸 고백한 노래였으니까. 경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작업실 근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경이 시린 손에 후드티 소매를 잔뜩 내려 들고 있던 맥주를 반대쪽으로 옮겼다. 코를 한 번 훌쩍인 경이 차가운 맥주로 꽁꽁 언 손을 허벅지에 슥슥 비벼 녹였다. 맥주가 몸에 안 받는 경이 그나마 고민해서 고른 것은 맥주였다. 맥주와 소주 중에서 고민한 경은, 그래도 아직 해도 지기 전인데 혼자서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서 소주를 까기엔 부담이 있어 고르고 고른 것이 맥주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거 사기엔 돈이 좀 쪼달리고.

 

 

치익, 탁. 맥주 캔을 따며 경이 힐끗,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빤히 응시했다.

 

 

가사가 안 써지거나 작업이 막히면 우지호와 슬그머니 손을 잡고 나와서 걸었던 길들. 손이 시리면 서로가 서로의 겉옷 주머니에 잡은 손을 넣고 녹여주었던 거리들. 우지호는 맥주를, 나는 콜라를 사 앉았던 이 편의점 테라스. 나는 여기, 너는 저기. 서로의 옆에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아 도란도란 나누었던 얘기들.

 

 


"우지호."

 

 


경이 조용히 지호의 이름을 불렀다. 한 모금 들이킨 맥주는 탄산 가득 입을 휘젓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흘렀다. 미련이 갑자기 생긴 건가. 경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며 처음 캔을 땄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캔을 슥 밀었다.

 

 


"맛도 없는 걸 어떻게 그렇게 마셨대."

 

 


경이 벌써부터 쓰린 것 같은 속에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맥주는 경과 안 맞는다. 경이 아직 무거운 캔을 들고 일어나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안이 가득 찬 캔이 쓰레기통 안으로 떨어지면서 내용물을 쏟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지호와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고, 경은 생각했다.

 

 

 

3.

 

 

 

경이 어? 하고 조금 어색하게 되물었다. 지호는 금방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머리만 매만지다가 말 그대로야. 하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어...

 

 


"꺼지라고?"
"아니, 좀.
"야, 씨발. 그게 그냥 꺼지라는 거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경이 말을 흐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호와 있던 경은 얼추 얘기를 끝난 뒤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경의 앞에는 살짝 화가 난 유권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으게. 애매하게 말 끝을 늘리며, 경이 괜히 유권의 눈치를 살폈다.

 

 

경의 말 그대로였다. 지호가 지훈과 연애를 한 지 어느덧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경과 지호는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 아래 동거 중이었고, 작업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지호는 경에게 작업실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지호가, 동거 조건 중 하나는 경의 작업실을 같이 쓰는 거였는데 갑자기 작업실을 나가겠다는 말을 했으니, 동거 조건이 애매하게 변했다.

 

 

유권은 그런 경의 말을 듣고 열심히 울컥하며 날뛰는 중이었다. 야, 솔직하게 얘기해서 작업실 그렇게 하면 이제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니까? 그럼 너 끝이야, 인마! 유권의 말에 경은 어색하게 웃었지만, 사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럼 집은? 동거는? 하는 불안감에 대답도 어물쩍 했으니까.

 

 


"야, 씨발... 진짜 솔직히 얘기해 봐."
"뭐를..."
"너 아직 우지호 좋아하는 거 아니야?"
"..."
"솔직하게 얘기해, 진짜."

 

 


모르겠어. 경이 애매한 표정으로 볼을 쓸었다.

 

 


4.

 

 

 

경은 숨이 턱 막혔다. 우연인가? 경은 속으로 한 번 떠올렸지만 답은 정해졌다. 우연이 아니었다. 경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발가락을 꼼지락 움직였지만, 신발 안에 가려진 발가락을 보일 턱이 없었다. 경은 무심코 신고 나왔던 운동화가 지호와의 연애 시절에 샀던 커플 운동화임을 알고 살짝 민망해 발을 숨기고 싶었지만 숨길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경이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지호와 지훈이 경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그 한참 뒤에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에서는 유권이 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권이 지호와 지훈의 데이트 날을 어떻게 알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

 

 

경이 입술을 비죽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호 성격에 유권을 아는 체 안 했을 것 같고... 그럼 경은? 경과 지호의 시선이 서로 얽매였다. 잠깐 주춤하던 지호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린 것이 보였고, 경은 먼저 느꼈던 당혹감 대신 어색함을 느꼈다. 아닐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감정에 작은 불씨가 툭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경은 뒤늦게 돌아서 갈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호의 옆에 선 지훈과 눈이 마주치자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가운 표정의 지훈이

 

 


"경이 형!"

 

 


하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어어... 애매하게 대답한 경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으면, 지훈이 영 애매한 반응의 지호를 끌고 가까이에 섰다. 형, 오랜만이에요. 하는 형식적인 말부터 시작해서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다, 누구 만나러 왔냐 등등 질문을 하는 지훈에 경은 난감한 티를 조금 보이면서도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유권이 만나러... 오늘 밥 같이 먹기로 해서. 경이 웃으며 얘기했고, 지훈이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다가 하얀 웃음을 꾹 지었다. 다음에 저랑도 같이 먹어요, 형. 뭔가 어린 티가 조금 나는 말투에 경이 아까 지훈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유권이가 기다려서... 나 먼저 갈게.

 

 


"형, 잘 가요."
"잘 가."
"...응."

 

 


경은 지호에게 대충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분수대에 삐딱하게 선 유권을 퍽 밀쳤다. 제법 힘이 실린 행동에 유권이 살짝 인상을 구겼고, 경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유권을 노려볼 뿐이었다.

 

 


"너 도대체 무슨 그림이 보고 싶었던 거야?"
"마음 접으라고 부른 거였어."
"야."
"솔직히 존나... 너 호구냐? 우지호 이제 너 안 좋아해. 그러니까 쟤랑 저러고 있지."
"그래서 이랬어? 드라마 찍어?"
"존나 답답해서 그랬다고, 답답해서."

 

 


유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경도 유권이 무슨 이유로 이런 상황을 만든 건지 알 수 있었다. 김유권은 우지호보다 박경이랑 더 친하고, 당연하게 둘이 다시 사귈 줄 알았으니까.

 

 


"드라마 아니야, 진짜... 왜 그래? 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삽질 같으니까 하는 말..."
"됐다. 그만 얘기하자. 밥 먹을 기분 아니니까 들어갈게."
"경아."

 

 


좀. 오늘만. 경이 인상을 찌푸린 채 주름이 생긴 미간을 엄지로 꾹 눌렀다. 나중에 얘기하자.

 

 

 

5.

 

 

 

굳게 닫혀있던 경의 방문이 슬쩍 열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경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어제 유권과 싸움 아닌 싸움을 한 뒤로 바로 집으로 돌아온 경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점점 정리를 해 접는 것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정리. 경이 지금 지호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이며 현재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나. 물론 경은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경이 천천히 숨을 정리했다. 은근슬쩍 뒤척이며 몸을 벽 쪽으로 돌리면, 침대의 끝 언저리에 선 지호의 숨결이 귓바퀴를 쓱 훑고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마치 경이 잠에 들었나를 실험하는 것처럼, 지호는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경은 감은 눈을 도르륵 굴렸다. 눈치를 보는 것처럼 하는 행동이었지만, 지호에게 등을 돌린 채 누운 경은 아마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경아."
"..."
"왜 이제야 그러지."
"..."
"진짜, 갑자기 왜 이러지."
"..."
"너 나 좋아해?"

 

 


경이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떴다. 괜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꾹 입술을 다물고 있던 경이 영 움직이지 않고 굳은 것 같은 몸을 살짝 돌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지호와 눈이 마주치고, 경이 이불을 턱까지 살짝 끌어다 덮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 큰 눈이 숨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네. 지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하면 어떡하지?"
"경아."
"야, 우지호."
"..."
"나 지금 너 좋아하면 너무 이기적인 애 아니야?"
"...경아."
"너무 늦었으면 어떡해? 지금 네 눈에 지훈이가 나보다 더 예쁘면 어떡해?"
"..."

 

 


더 사랑스러우면? 네가 보는 눈빛이 나보다 지훈이에게 더 가깝다면?

 

경이 결국은 꾹 입을 다물었다.

 

 


"네가 여전히 박경의 우지호였으면 좋겠어."

 

 


경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던 지호가 손을 내려 큰 손으로 경의 시야를 가렸다. 경의 손과 비교하면 제법 차이가 있는 지호의 손에 살짝 힘이 실렸다. 자연스럽게 감기는 경의 속눈썹이 지호의 손바닥을 먼지 터는 것처럼 살살 쓸어내렸다.

 

 


"이제 따로 살자, 경아."
"..."
"너무 늦었어."

 

 

 

 

*

뭔가 끝이 너무 허무한 기분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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